조선의 봄-제12장 3


 

제 12 장

3

 

강진건은 시위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자바람으로 당직근무원에게 각도 농맹과 전화련락을 취해서 3.1기념식행사실태에 대한 통보를 받도록 지시하였다. 그는 날이 퍼그나 저물었을 때 전국에서 200여만의 농민이 로동계급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다는 종합통보자료를 가지고 당조직위원회청사로 달려갔다. 이 기쁜 소식을 어서 장군님께 보고드리고싶어서였다. 자기가 늘 개명하지 못한 답답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해오던 조선농민들이 이렇게 눈을 빨리 뜨고 세상을 들었다 놓을줄은 몰랐다. 그러고보면 자기자신도 눈을 뜬셈이였다. 장군님의 뜻을 따르는 조선농민이 이젠 촌무지렁이들이라고 볼수가 없다. 장군님께선 벌써 오늘을 내다보고 동요없이 토지혁명을 이끌어나가셨으니 그러한 선견지명과 천리혜안을 지니신분을 령수로 모신 이 나라의 장래는 얼마나 휘황찬란하겠는가.

강진건은 이날처럼 자기의 늙음을 한탄해본적이 없었다. 참으로 장군님을 모시고 오래오래 살고싶었다.

그는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청사로 뛰여들어갔다. 현관에는 벌써 전등불이 켜져있었다.

《위원장아바이, 여긴 간부동지들이 안계십니다.》

현관앞에 서있던 보초병이 등을 구부리고 들어오는 강진건을 멈춰세웠다.

《그럼 다 어디 가셨소?》

《합숙에 모였습니다.》

《합숙에? 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였나.》

강진건은 회중시계를 꺼내 들여다보며 합숙으로 걸음을 옮겼다. 합숙마당에 앞치마를 두른 녀인이 앉아 키질을 하고있었다. 구리가락지를 낀 두툼한 손으로 수수쌀이 담긴 키를 잡고 살랑살랑 까부르는 녀인을 보자 강진건은 웬일인지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는 잠시 녀인의 등뒤에 서있었다.

(저 녀인의 남편도 농군이였다지?··· 토지개혁을 한다는 말을 듣고 저 녀인도 얼마나 울었던가.)

강진건은 마음이 억해지자 갑자기 사레에 들려 기침을 깇었다.

《에그머니나, 가슴 철렁이야. 아니 아바이 오셨군요.》

《내가 왔는데 범이나 온것처럼 왜 그렇게 놀라오?》

강진건은 우스개소리를 하며 다가섰다. 그러다가 강진건은 컴컴하게 질린 녀인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있는것을 보고 문득 굳어졌다.

《아주머니, 웬일이요? 어째 혼자 마당에 나와 울고있소?》

녀인은 치마폭으로 눈물을 씻고 설음을 묵새기는듯 한동안 말없이 키질을 하다가 벌겋게 이물린 눈으로 강진건을 돌아보았다.

《글쎄 오늘 반동놈들이 장군님 계신 주석단에다 수류탄을 던졌다면서요?··· 급살할놈들!》

강진건은 반사적으로 몸서리를 치며 녀인을 외면하였다. 그도 이날아침에 있은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몸이 떨리였다.

《아주머니, 울지 마오. 장군님은 하늘이 내신분이요. 그러게 놈들이 수류탄을 내던졌지만 장군님은 끄떡없이 서계셨구 3.1기념식은 더 성황을 이루었소.》

《아무렴, 장군님은 바루 하늘이신데 이 세상 어느 누가 그분을 다칠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말을 들어보니 치가 떨리고 가슴이 아파요. 아까 김책선생이랑 안길선생이랑 여럿이 우르르 밀려오길래 저녁을 일찍 자시려 오는줄 알았지요. 그런데 올라가기 바쁘게 가슴을 두드리며 격한 소리들을 하지 않겠어요. 방금전에도 더운물이라도 들여갈가해서 문앞까지 갔다가 안길선생이 우는것 같아서 문을 못열구 내려오구말았어요.》

《울어요?》

《예, 가슴을 탕탕 치면서··· 인차 끝날것 같지 않아요.》

강진건은 녀인의 소리에 저도 모르게 미닫이를 열고 2층복도로 올라갔다. 나무계단을 조심히 올라서는데 누군가의 격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동무들, 난 어려서 혁명에 참가해서 승냥이굴이라고 하는 서대문감옥에두 끌려갔댔구, 할빈, 봉천, 길림 감옥에두 끌려가 살인적인 고문을 받으면서 살아난 사람이요.》

김책의 목소리였다. 강진건은 걸음을 멈추고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때 내가 놈들의 전향서를 찢어버리며 끝까지 지조를 지켜내구 이렇게 살아서 조국에 온건 나의 혁명성이나 의지가 남보다 굳세여서 그런줄 아는가. 그때 조선혁명의 진두에 김일성동지와 같은 중심이 꿋꿋이 서계신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또 언제든 그이곁으로 갈수 있다는 희망만 없었더라면 난 놈들에게 벌써 굴복하고말았을것이요. 동무들, 자기비판들도 좋지만 우선 날 비판하오. 나의 잘못으로, 나의 무경각성으로 하여 장군님의 신변을 보호하는데서 빈틈이 생겼댔소.》

김책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것 같았다.

《김책동무, 아니요, 잘못은 나에게 더 많았소. 난 어제밤 시보안서장에게 경비를 배가하라는 지시만 주었지 내자신이 보안서원의 자세에서 사전에 대렬과 주석단과의 거리를 어느정도로 하는것이 안전하겠는가, 주석단 앞대렬에 어떤 군중을 세울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치밀하게 따지고들지 못했소. 이런 타산을 결코 보안서원에게만 맡겨둘 일인가?》

징을 두드리는것 같은 챙챙한 목소리다. 안길이였다.

《옳소. 이 김책이도 그것을 생각못하였소. 그것을 생각 못했다는것은 바로 장군님을 모시는 나의 자세가 틀려먹었다는것을 말하오.》

자기를 규탄하는 김책의 목소리가 우뢰처럼 강진건의 귀청을 울리였다. 그는 머리를 들어 천반을 보며 긴 한숨을 쉬였다. 가슴에 찌륵찌륵 전기가 훑어내려갔다. 아, 이들은 여태 이렇게 자기를 반성하며 가슴을 두드리였던가.

강진건은 그 순간 량심의 채찍에 사정없이 얻어맞는것 같은 새로운 아픔을 느끼였다. 자기는 방금전까지도 그저 폭행을 저지른 놈들에 대한 분노만 터뜨렸지 이들처럼 자기를 총화해보지 못했던것이다.

그제야 강진건은 지나간 나날 자기가 장군님의 뜻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을 할 때면 김책이 왜 그리도 엄하게 비판했던지 더욱 똑똑히 알게 되였다. 아, 나는 장군님의 진짜 부하가 아니였다. 저 사람들처럼 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강진건은 벽을 짚고서서 복도바닥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