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2장 2


 

제 12 장

2

 

태양은 아직 지평선 저 뒤쪽에 깊이 가라앉아있는듯 대지의 어둠은 벗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가에는 푸르무레하게 려명이 찾아들기 시작하여 봄날이 시작되는 3월 초하루의 상서로운 기운이 온 평양시가에 퍼지고있었다.

3.1봉기 27주년 기념대회 주석단이 가설된 광장과 그 주변에는 벌써 수만명군중이 꽉 들어차있었다. 기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어뜩새벽부터 밀려온 그들은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격세하여 마음껏 부르게 된 3.1만세, 처지와 운명이 달라진 새조선의 평양거리에서 부르게 된 3.1만세를 생각하며 줄곧 설레이고 들끓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동녘하늘에 붉은 해가 떠오르더니 인산인해를 이룬 광장에서 별안간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울리였다. 기다리고기다리던 장군님께서 양복에 넥타이를 날리며 사다리같이 만들어놓은 나무계단을 걸어 주석단에 오르시였다.

그 뒤로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수십명 오르는데 그중에는 27년전 3.1만세에 참가했던 수염이 하얀 은발의 로인들도 있었다. 기념식 주석단에는 조만식도 나오게 되였으나 그는 몸이 아프다는 구실로 다른 사람을 보내였다.

이윽고 주석단에서 개회선언을 알리는 취주악이 우렁차게 울리고 련이어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나서서 기념연설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연설이 다 끝난 다음에 장군님께서 연설대앞으로 나서시였다.

김일성장군 만세!》

《우리 민족의 영웅 김일성장군 만세!》

광장에는 또다시 환호의 폭풍이 일면서 높이 추켜든 구호판과 표어기들이 수풀처럼 설레였다.

연탁앞에 서신 장군님께서는 자주 손짓을 하며 진정하라는 신호를 하시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세환호소리가 잦아들고 온 광장이 정숙해졌다.

장군님께서는 량손으로 연탁가위손을 쥐며 연설을 시작하시였다.

《친애하는 동포들!

오늘 우리 3천만 동포는 자유와 해방의 기쁨속에서 조선민족의 해방투쟁력사에 길이 빛날 3.1운동 27주년을 기념하게 됩니다.》

장군님께서는 삼천리강토우에서 온 겨레가 한데 뭉쳐 일어났던 거대한 력사적사변의 날을 오늘 해방된 이 땅에서 처음으로 맘놓고 맞이하게 된것은 참으로 한량없는 기쁨이며 감격이 아닐수 없다고 하시였다. 그리고나서 3.1만세의 영웅성을 한참 말씀하시였다. 확성기소리는 광장뿐아니라 거리와 골목들에서도 울렸다. 온 평양시내가 우렁우렁하신 장군님의 음성으로 가득찼다. 박수를 치는 소리, 환호를 올리는 소리, 대동교 다리우에 모여선 군중들도 감격에 넘쳐서 손들을 휘저었다.

장군님께서는 3.1의 이 영웅적인 투쟁이 어째서 좌절을 면치 못했는지 그 쓰라린 력사의 교훈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

3.1운동의 실패원인을 분석하시는 장군님의 눈앞에는 일제의 기마경찰에 짓밟히며 피투성이가 되여 원쑤를 절규하던 농민들의 모습이 펼쳐지시였다. 일제의 총창과 군도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군중들의 머리우에서 번뜩이던 살륙의 참극, 말발굽에 채워 가슴을 안고 딩굴던 사람들의 모습, 짚신을 그러안고 맨발바람으로 달아나던 꼬마동무들의 모습이 가슴저릿하게 그려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시였다.

《3.1운동은 령도적정당이 없었기때문에 투쟁강령과 투쟁계획이 없이 진행되였습니다. 당시 조선혁명의 성격으로 보아 일제를 반대하는 민족해방투쟁은 반봉건투쟁과 밀접히 결합되여야 하겠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절실한 문제인 토지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농민들의 혁명성을 최대한으로 발양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3.1운동의 실패의 원인을 말씀하고나서 광장을 한눈에 둘러보시였다. 바다같이 모인 군중은 숨소리도 없는것 같았다. 바람에 수풀같은 기폭들이 펄럭이였다. 피의 교훈이 그들의 가슴에 쓰라린 추억을 불러일으킨것 같았다.

《여러분!

조선민족은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기반에서 해방되였으나 민족적독립을 달성하려는 우리 민족의 숙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조선인민앞에는 국제국내의 온갖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우리의 민족적력량을 강화함으로써 자유롭고 독립된 민주주의적 새조선을 건설할 력사적인 과업이 나서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친일분자와 반동분자들을 철저히 숙청하고 민주주의적민족통일전선을 튼튼히 꾸리며 생산시설이 빨리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로력있는 사람은 로력을 내여 증산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실업을 퇴치하고 인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자고 힘있게 호소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여기 모인 수만명농민이 절절히 갈망하는 문제를 제기하시였다.

《셋째로, 토지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두손을 높이 쳐드시였다. 그러자 침묵하고있던 군중들이 또다시 목청껏 환호를 올리였다.

《옳습니다. 장군님, 그 말씀이 옳습니다.》

농민들은 저마끔 호미와 낫을 머리우로 추켜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감격의 환호성이 절정에 이르렀다. 해일이 일어난 바다처럼 온 광장이 뒤번지며 들끓는 바로 그 시각에 별안간 주먹덩이만 한 새까만 물체 하나가 포물선을 그으며 살같이 날아서 주석단과 연탁사이에 떨어져내렸다.

악마가 날려보낸 검은 날새마냥 예고도 없이 번개처럼 주석단에 날아떨어진 물체!

그때 수십만 군중들속에서 그 괴이한 물체를 본 사람은 불과 몇십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은 주석단에 날아든 물건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고작해서 어느 저주스러운 불한당놈이 주석단에 돌덩이를 집어던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물체는 장군님께서 서계시는 지척에서 흰 연기를 내뿜으며 폭발직전의 아츠러운 소리를 내고있었다. 그제서야 어디에선가 《폭탄이다!》 하는 경악한 웨침소리가 일어났다. 뒤이어 누구인가 《수류탄이다!》 하고 소리쳤다. 그것은 수류탄이였다. 주석단에 떨어진 고드래돌만 한 수류탄에서는 물김을 뽑는것 같은 쉭쉭소리가 들려왔다.

《피하시오, 피하시오! 주석단에서도 피하시오!》

맨 앞줄에 섰던 농민대표들이 이쪽저쪽으로 피해 달아나며 소리를 질렀다. 폭발물이라는 순간적인 의식은 거의 본능적으로 광장에서도 주석단에서도 소요를 일으키며 자리를 피하게 하였다. 모두가 허둥거리며 움직이였다.

그때 군중속에 서있던 강진건이 《장군님! 피하십시오. 장군님!》 하고 부르짖으며 자기의 육신으로 수류탄을 덮어버리려고 주석단을 향해 내달리는데 혼잡이 일어난 사람떼가 그를 마구 밀치며 밀려갔다. 로쇠한 강진건은 옆구리에 심한 타박을 받고 넘어졌다. 그는 사람들속에 포위되여 아무것도 볼수가 없고 일어날수도 없었다.

《아, 이를 어찌는가 장군님!》

그는 자기의 몸을 짓밟으며 밀려가는 사람들의 발밑에서 주먹으로 땅을 두드리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쾅! 하는 폭음이 울리며 강진건을 가로막은 군중들의 머리너머로 검은 연기와 흙모래들이 타래쳐올랐다.

강진건은 벌떡 일어섰다. 연기속에 가리워 주석단은 보이지 않았다.

《장군님!》

강진건은 아래도리로 붉은 피가 새여나가는것 같은 이상한 허탈감을 느끼며 또다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주석단 저쪽옆을 구름처럼 삼켜버렸던 연기와 흙모래들이 서서히 흩어지며 연탁앞에 서계시는 장군님의 거룩한 영상이 강진건의 눈에 비치였다. 장군님의 모습은 마치 설레이는 망망대해에 뿌리를 박은 거대한 산악과도 같았다.

《아, 장군님! 무사했군요. 장군님!··· 아무렴, 어느놈이 감히···》

강진건은 땅바닥에 손을 짚은채 목청껏 장군님을 불렀다.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승용차들이 서있는 주석단 저쪽옆을 돌아보시였다. 수류탄은 바로 거기서 터진 모양이였다. 물론 강진건은 주석단에 떨어졌던 수류탄이 어떻게 그쪽에서 터지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으며 또 알아볼 경황도 없었다. 그는 오직 장군님께서 무사하셨다는 기쁨의 현훈증으로 비칠거리며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강진건은 주석단에 수류탄이 떨어진 때로부터 폭발이 일어난 그 시각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되였던지도 알수 없었다. 시간은 한순간처럼 짧아보이기도 하고 영원처럼 길어보이기도 했다.

강진건은 《반동이다!》《반동 잡아라!》 하는 군중들의 고함소리를 듣고야 새 정신을 가다듬었다.

《반동놈, 잡아라!》

군중속에 끼여있는 고택이도 눈에 피발이 서서 부르짖었다. 수류탄을 내던진 고택은 붙들릴가봐 미친듯이 돌아치며 반동놈을 죽이라고 고함쳤다. 재령벌에서 올라오는길로 고택은 먼저 들어와있는놈들과 손을 잡고 서강의 지령을 받으며 려관뒤방에서 쑥덕공론을 벌리다가 드디여 일을 시작했는데 이꼴이 되고만것이였다.

온 광장에 분노의 함성이 터져올랐다.

《반동놈들을 모조리 잡아내자!》

고택은 군중의 기세에 겁을 먹고 슬그머니 대렬에서 내뺐다.

그때 김책과 안길이 장군님곁에 뛰여왔다.

《장군님, 이 위험한곳에 홀로 서계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연설을 그만하고 내려가십시다.》

그들은 장군님의 량팔을 부여잡았다.

《일없소, 저걸 보오. 우린 혼자가 아니요, 저렇게 믿음직한 로동자, 농민을 우리가 가지고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러오.》

장군님께서는 반동들을 잡아낸 군중들을 가리키고나서 연설문을 들고 연탁에 대고 그루를 박으시였다.

《김책동무, 안길동무, 걱정 말구 제자리에 서있소. 나는 연설을 계속하겠소.》

장군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손을 들어 연설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시였다.

김책과 안길은 장군님의 그 담력에 가슴을 들먹이며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돌발적인 소동에 넋을 잃고 저도모르게 자리를 피했던 주석단성원들이 한명두명 올라와서 자기자리를 차지했다. 어느정도 장내가 진정되자 장군님께서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연설을 계속하시였다.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의 정당한 위업은 폭탄으로써도 막아내지 못합니다.》

장군님의 음성은 더욱 격렬하게 울리였다. 그때문인지 장내는 소동이 일어나기전보다 더욱 엄숙해졌다.

《봉건적소작제도를 철페하고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땅을 주는 원칙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머리우로 쳐들어올리시였다.

《기뻐하십시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는 며칠전에 있은 북조선 6도농민대표대회의 요청서를 받고 토지개혁법령을 공포할 준비를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다 내놓고 까밝혀 선언하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아직 그때까지는 며칠 시간을 두어야 했다.

그래도 폭풍같은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군중의 머리우에 농쟁기들이 올라가고 온 광장이 파도를 안은 바다처럼 움씰거렸다.

《땅, 땅이 생긴다.》

어떤 농민들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었다. 이런 군중들과 함께 송신일은 연탁쪽을 바라보며 못박힌듯 서있었다. 장군님께서 량쪽 모서리를 꽉 잡고계시는 연탁앞으로는 아직도 연기가 가볍게 뒤틀며 날아지나가고있었다.

《장군님!··· 폭탄앞에서도 끄떡하시지 않는 장군님! 그 담력은 어디서 생겨난것입니까? 장군님이 아니시였다면 오늘의 3.1기념식은 일진광풍에 흩어진 27년전의 3.1봉기처럼 속절없이 흩어져 실패를 면치 못할번했습니다.》

이렇게 뇌이는 송신일의 머리속에는 가장 자비롭고 가장 거룩한 우리의 하늘, 조선의 하늘이 다름아닌 장군님이시라는 생각이 번개쳤다.

송신일은 이 준엄한 상황에서 그것을 더 명백하게 그리고 사무치게 느끼고있었다.

얼마후 연설을 끝내신 장군님께서는 군중속으로 내려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로동계급속에 들어서서 로동자들과 발맞춰 행진하자고 하시였다. 장군님을 옹위하며 김책과 안길이도 량옆에 우둑우둑 들어섰다. 온 군중이 눈물이 그렁해서 장군님 만세를 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