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1장 6


 

제 11 장

6

 

농민대표대회는 회의에 기여든 어중이떠중이들의 방해책동을 짓부시며 자기의 사업을 성과적으로 밀고나갔다. 회의에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 보내는 요청서를 채택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서 그 요청서를 읽고계시였다.

 

···북조선 6도 농민련맹대표들인 우리는 평양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여 토지개혁에 대한 문제를 토의하고 북조선농민의 명의로 긴급한 토지개혁실시의 필요성에 대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성명을 시인하며 환영한다. 조선인민들은 수십년간 일본제국주의통치의 가혹한 탄압하에 있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장구한 통치는 북조선농촌경리에 막대한 후과를 남겨놓았다. 전토지의 반수이상을 지주들이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였다. 그리하여 농촌에서는 로력농민들로부터 피와 기름을 흡취하는 불공평한 소작제가 지배적인 형태로 되고있다.

지주의 토지소유권을 철페함이 없이는 농민경리가 성과있게 발전하지 못할것이다. 토지반분소작제는 반드시 종식되여야 한다. 지주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여 자기 토지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려는 조선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이 실현될 때는 지금 박도하였다. 우리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실행할시에 아래와 같은 우리의 요망을 고려할것을 청한다.

1. 우리는 이전 일본인들에게 소속되였던 토지와 조선인민의 리익에 손해되도록 일본통치기관과 열성적으로 협력하던 변절자들에게 속한 전토지를 몰수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소작제를 철페하며 조선인 지주들의 압박으로부터 농민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자기의 전체 토지를 소작주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고용법으로써 경작하는 조선인 지주들에게 속한 토지를 몰수하며 동시에 사원과 기타 종교단체에 속한 토지도 몰수하는것이 필요하다.

3. 우리는 고용로동자들과 토지없는 농민들과 토지 적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여하며 그에 부과된 제부채로부터 해방시킬 목적으로 농민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넘겨줄것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 요청한다.

···

 

요청서에서 눈을 떼신 장군님께서는 탁상우에 손을 얹고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문득 태동하는 재령강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오시였다. 불가항력적인 동토대의 얼음산같던 지주와 땅과 농민의 삼각관계는 바야흐로 붕괴전야에 이른것이다.

위대한 사변은 눈앞에 다가왔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이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에서 이 요청서에 의탁하여 빨리 법령을 채택하는 일만이 남았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뇌이며 요청서를 다시 들여다보시였다. 그러자 웬일인지 항일혈전의 나날에 잃어버린 무수히 많은 전우들의 얼굴이 눈앞으로 흘러갔다. 그렇다, 바로 이날을 위해서 그네들이 눈비를 맞으며 항일의 만리길을 헤쳐가다가 목숨마저 바친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비싼값을 치르고 도래한 사변적인 력사의 시각을 음미하듯 팔목시계를 이윽히 들여다보시였다. 초침소리가 깊은 의미를 띠고 유난히도 선명히 들리시였다. 그러는데 정복을 입은 보안국 부국장이 허둥거리며 들어와서 거수경례를 하였다.

《무슨 일이요?》

《장군님, 오늘 새벽에 송신일선생이 테로를 당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있소?》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자리에서 훌 일어서시였다. 그리고는 얼굴빛이 먹빛이 되여 서있는 그의 앞으로 다가오시였다.

《송선생의 저택이 반동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송선생이? 송선생이 테로를 당했단말이요?》

《녜, 송선생은 팔에 약간 상처를 입었는데···》

《어서 말하시오. 누가 잘못되였소?》

장군님께서는 그의 팔을 잡아흔드시였다.

《장군님, 제가 현장에 가보니 송선생의 딸이 총탄을 맞고 잘못되였습니다. 그리고 손님으로 왔던 목사 한분이 중상입니다.》

장군님의 안색에 급기야 어두운 그늘이 덮였다. 길게 내뿜으시는 장군님의 한숨소리가 뼈아프게 방안을 울렸다.

《그러니 그 애가 죽었단말이요?》

장군님께서는 탁상가위손을 움켜쥐시였다. 불현듯 그이의 눈앞으로 꽃같은 숙영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랑만과 열정에 불타던 처녀, 료원하고 창창한 인생의 길을 활기있게 걸어가리라던, 금옥같이 자래운 송선생의 사랑하는 외딸이 죽다니···

《만행을 한 놈들은 잡았소?》

《한놈 혐의자는 잡았는데 남에서 들어온자들이 폭탄을 던지구 자긴 길안내만 했다고 합니다.》

《알겠소. 내가 나가보겠소.》

장군님께서는 탁상앞으로 가서 문건들을 한곳에 주섬주섬 모아놓으시였다. 탁상을 정리하시는 장군님의 두손길이 정확치 못했다.

그가 지금 얼마나 괴로와하겠는가. 그 어진분이 그런 타격을 이겨낼수 있을가.

조만식의 압력과 협박때문에 마음을 쓰는 그에게 졸지에 그런 엄청난 불행이 들씌워졌으니 다시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수 있을것도 같지 않다. 본래 웃음이 적고 말이 적은 그가 외동딸을 잃고 무슨 기분이 좋아서 얼굴이 밝아지랴싶었다.

장군님께서 타신 차가 선교리례배당어귀에 들어서자 방금 금쟁반같은 해가 솟아오르며 거리에 덮인 우유빛 안개를 걷어내였다. 차창밖으로 누기를 머금은 눅눅한 안개가 밀려들었다.

《세우오.》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의 집이 아직 먼발치에 있었으나 차를 내리시였다. 주위가 가뭇 조용했다. 이따금 새들이 메마른 나무가지우에서 날아올라 어디론가 날개를 푸득거리며 분주히 가고있었다. 거리쪽으로는 차들과 행인들이 태평한 걸음으로 거리가 메게 오가고있었다.

자신의 심정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주변의 모든것이 평화롭고 례사로웠다. 자연을 보고는 간밤에 총성이 울리고 폭음이 터졌다는게 믿어지질 않으시였다. 한참 걸어가시자 구슬픈 곡성이 울려왔다. 머리를 들어보시니 송신일의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침울한 안색을 지으며 무겁게 걸음을 옮기시였다. 낯익은 송목사의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당에서 흰옷입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조객들을 맞고있었다.

그이께서 송신일의 집마당으로 들어가시자 교인들이 우르르 달려나오며 절을 했다.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침통한 눈빛으로 집안팎을 둘러보시였다. 교인들이 모여들어 입관도 끝냈고 집도 대충 정리하여 사람이 다시 들어 살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정지방문턱에는 아직 피자욱이 남아있고 방안에서는 재티가 날렸다.

장군님께서는 방안에 들어와 관이 놓인 앞에서 묵례를 하시였다. 묵례를 마치자 그이께서는 무릎을 꺾으며 관을 쓸어만지시였다.

《숙영아! 앞길이 구만리같은 네가···》

장군님께서는 목이 꽉 메여올라 말씀을 이을수 없으시였다.

주위에 둘러서있던 교인들이 목을 끄덕거리며 울었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관을 쓸어만지시는 장군님을 뵙는것이 더욱 가슴아팠다.

《장군님, 참으십시오. 우리도 참겠습니다. 마음을 더 굳게 가지겠습니다. 놈들이 이런 비극을 강요한다고 하여 건국성전에서 물러설 우리가 아닙니다.》

한 교인이 흰 수염을 날리며 거기에 모인 모든 교인들을 대변하여 장군님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송선생은 어디 계십니까?》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이 보이지 않아 교인들에게 물으시였다.

《중상을 입은 박목사를 만나겠다고 나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아래방으로 내려오시였다. 재티가 날리는 정지방에 송신일의 처 정씨는 기절해누운채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정씨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아흔드시였다.

《사모님, 사모님 》

정씨는 기척이 없었다.

《병원에 가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뒤에도 주기적으로 이렇게 까무라치군 합니다.》

뒤에 선 교인이 말씀드렸다.

《사모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

교인이 안타까이 흔들었지만 정씨는 여전히 숨소리없이 조용했다.

《의사를 부르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며 다시금 관을 내려다보시였다.

《숙영아, 이제 우리 인민들이 너의 원쑤를 갚아줄게다. 네가 바라던 모든것을, 너의 꿈과 행복한 미래를 우리 인민들이 어김없이 이 땅우에 꽃피워줄게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말씀을 이렇게 하시였다. 다시는 이 땅에 류혈이 흐르지 않게 하고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려고 심혈을 다해 뛰고계시는데 놈들은 또다시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이 땅을 물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슬픔을 참을수가 없어 마당으로 나오시였다.

이때 삼각건으로 팔을 걸어멘 송신일이 황급히 들어섰다. 경황없이 시선을 옮기던 그는 장군님을 보자 쓰러지듯 달려왔다.

《장군님!-》

송신일은 목메인 소리를 지르며 장군님의 팔을 잡고 고개를 숙이였다.

장군님께서도 목이 메여 송신일을 묵묵히 굽어보기만 하시였다.

송신일은 촉한을 만난 사람처럼 어깨를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의 두손을 부둥켜잡으시였다.

《선생님, 이게 무슨 불행입니까?》

《장군님.》

송신일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장군님의 손에도 뚝뚝 떨어졌다. 장군님께서는 손수건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그는 손수건을 받아들고도 눈물을 닦지 못했다.

하루밤사이에 그의 얼굴은 백지장같이 바래지고 두눈이 방아확같이 들어갔다. 그러나 눈빛만은 그전과는 다르게 무서운 증오의 섬광으로 번뜩이는듯 칼날처럼 예리했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부축하여 토방마루에 앉히시였다.

《장군님, 저는 이제야 이 세상을 알게 되였습니다. 왜 토지개혁을 해야 하는지 그것두 알게 되였습니다.》

송신일은 마루바닥을 두드리며 설분을 터뜨리다가 참변이 벌어진 전후사연을 말씀올렸다.

어제 한낮때 송신일의 사무실로 조만식의 비서가 찾아왔었다. 그는 조만식의 지시라고 하면서 토지혁명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를 표명하는 성명서라는것을 내놓고 거기에 수표를 하라고 했다. 당상무집행위원회를 소집할 시간이 따로 없으므로 직접 위원들을 찾아다니며 개별적으로 수표를 받는다는것이였다. 송신일은 피가 꺼꾸로 흐르는것 같았다. 여러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쳤던 성명서를 다시 끄집어내여 회람시키는 조만식의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였던것이다. 조만식은 민주당의 성명이라는것을 무슨 방패처럼 내두르지만 사실 그것이 공개되는 경우 미군이나 지주계급들의 지지를 받을수는 있으되 민주당원들을 포함한 절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조만식이 규탄의 대상으로 되여 하루아침에 거덜이 날수도 있는것이다. 조만식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거기에 매달리며 또다시 개별적인 상무집행위원들을 찾아다니게 하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는 조만식이 노리는 딴 목적이 분명 숨어있었다. 송신일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송선생이 이번까지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재미없을것 같습니다. 조당수께서는 그처럼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송선생이 계속 공산당정권과 결별하지 못하는데 대해서 지금 여간만 노염을 사고있지 않습니다.》

《성명서》를 보지도 않고 옆으로 밀어놓은 송신일에게 비서가 말했다.

《비서는 날 위협하는거요?》

송신일이 쏘아보며 따지고 물었다.

《가서 조령감한테 이르오. 난 수표를 할수 없소. 우리 민주당을 반인민적이며 반민주적인 당으로 만들어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이요. 그리고 조령감이 요즘 나더러 림시인민위원회에서 사직하라고 계속 협박을 하는데 나는 사직할수 없소. 공산당과 제휴하며 민주주의를 하는건 민주당의 리념이요. 그러니 협박장을 보내고 협박전화를 거는 그런 비렬한 놀음도 더는 꾸미지 말라고 이르오.》

송신일은 책상을 울리며 돌아앉았다. 히물거리며 접어들던 비서는 말문이 막히자 송신일의 마지막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수표를 안하고 사직을 안하는건 송선생의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삼가하십시오. 조당수께서 그런 비렬한 놀음을 꾸미다니요.》

비서는 눈알이 새빨개서 독을 뿜었다.

《당신은 내 시키는대로나 하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때문에 나를 찾아다니지 마오. 어서 돌아가서 이 말을 전하시오.》

송신일은 얼음장같은 싸늘한 시선으로 비서를 쳐다보며 방문을 손짓해 가리켰다. 비서는 입술을 사려물고 송신일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획 돌아서 나가버렸다.

이렇게 그를 돌려보내고난뒤였다. 송신일이 분격을 못참아 안절부절하고있는데 대동군에서 그가 잘 아는 박목사가 찾아왔다. 그는 종교인대표로서 군인민위원회에서 사업하는 사람이였다. 그가 가져온 소식은 또 생각지도 않았던 엄청난 일이였다. 조만식이 민주당에서 3.1운동기념식을 따로 가질 작전을 꾸미고있는것 같다는것이였다.

《미리 준비시켜놓았다가 차후 지시가 있을 때 극비밀리에 데리고 들어오라는것입니다. 저희들은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이 한곳에 모여서 기념식을 한다는것으로 지시를 받고있는데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습니다. 송선생, 과연 우리 민주당에서는 기념식을 따로 가지게 되는건가요?》

박목사는 겁먹은 소리로 따져묻기까지 했다. 송신일은 어이가 없어 한참 웃었다. 이러고난 그는 저녁에 박목사를 데리고 집으로 일찌기 돌아왔다.

《장군님, 변고는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송신일은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격정이 북받쳐올라 몸을 우들우들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차마 그 정경을 보기 괴로와 눈길을 돌리시였다.

《장군님, 너무 걱정마십시오. 새 나라 건설에 딸을 바친것으로 생각하면 이 마음이 더욱 떳떳해지고 굳어집니다. 토지개혁과 같은 대사가 어찌 순풍에 돛을 단것처럼 되겠습니까.》

《송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송신일의 손을 꽉 움켜쥐며 갈린 음성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되뇌이시였다. 기실 그가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버리고도 흔들림없이 굳세게 일어나는것이 장한 모습으로 돋보이시였다. 조용하고 온화하던 송신일이 언제 이렇게 강해졌는가싶었다. 결국 낡은것을 쓸어버리며 투쟁하는 격동의 시대는 세상만을 변천시키는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강철로 벼려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오래도록 송신일의 손을 잡은채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금옥같이 키운 숙영이를 잃어버렸으니 선생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만 쓰러지지 마십시오. 이겨내주십시오.》

《장군님, 알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종교라는 하나의 상아탑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계급의 원쑤들이 이리도 악랄하다는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소위 인도적인 방법으로 토지문제를 해결할수 없겠는가 하는 얼빠진 소리를 하며 자주 졸라대서 장군님을 괴롭혔습니다. 어제밤 테로놈들을 우리 집에 안내한놈도 지주의 아들놈입니다. 이제는 장군님께서 말씀하시던 그 숙제를 완전히 풀었습니다.》

송신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흰구름 떠있는 저 푸른 하늘, 불가사의한 저 우주의 한끝에 천당이라는 리상의 세계를 그리면서 걸어온 인생의 길을 서글프게 더듬었다. 비록 본의는 아니지만 순박한 교인들에게 무익한 설교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싶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령혼도 부질없이 떠돌지 말고 오직 장군님의 품을 찾아 따라다녀라.)

송신일은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