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1장 4


 

제 11 장

4

 

전국도처에서 농민집회와 시위들이 벌어졌다. 도시와 산간, 거리와 마을마다에 농민들이 운집하여 땅을 달라는 구호를 웨치며 지주들을 전률케 했다. 이것은 농민대중이 지주를 계급으로서 청산할것을 선언하는 공개적이며 대중적인 운동이였다. 군중대회와 집회들에서는 토지개혁을 봄갈이전으로 실시할것을 요망하는 편지, 결의문, 청원서 등을 채택했다. 그것을 품은 농민대표들이 장군님을 찾아 매일과 같이 평양으로 올라왔다. 1946년 2월 하순경까지 장군님을 찾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로 올라온 농민대표들만도 수백명을 헤아렸다. 이때에 이르러 장군님께서는 북조선농민대표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를 통하여 토지개혁에 대한 농민들의 청원운동을 결속하는 한편 그들의 결의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정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자는것이 장군님의 결심이였다.

회의가 결속되기 전날저녁에는 조만식의 심복으로서 평남인민정치위원회 농림부장을 하는 안경쟁이 한사람이 휴계실에 앉아있는 강진건에게 찾아와서 트집을 걸었다.

《농맹위원장선생, 우리 조만식위원장께선 그동안의 회의상황을 보고받고 아주 불안스럽게 생각하고있습니다. 만약 농맹이 공산당을 따라 토지개혁을 단행하려들면 조만식선생께선 민주당원들을 정권기관에서 전부 해직소환하는 단호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언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민주당은 공산당이 하는 지주숙청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는것입니다.》

농림부장은 선자리에서 빨간 혀끝으로 종이장같이 얇은 입술을 감빨며 강진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안경쟁이가 바로 회의과정에 제일 말썽을 일군 사람이였다. 통일정부가 설 때까지 토지문제를 그대로 두자는 주장도 그가 내놓은것이였다. 강진건은 주석단에서 그자의 거동을 주의깊이 보아온터여서 분기가 치밀었다.

《뭐 조령감이 어쩌겠대? 좋소. 어서 해직소환하시오. 그래 당신들이 물러나면 누가 무서워할줄 아오. 우리가 토지개혁을 못해낼것 같은가? 썩 사라지시오!》

강진건이 주먹을 들어올리며 버럭 소러질렀다. 그바람에 안경쟁이는 더 수작을 걸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강진건은 그자가 열어던지고 달아난 문을 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저놈들을 그저···》

분을 이기지 못해 문손잡이를 쥔 손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얼마후 흥분이 가라앉게 되자 강진건은 은근히 마음이 쓰이며 불안해졌다.

(정권기관에서 민주당원들을 몽땅 소환해가?)

사실이 그렇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만 보더라도 공산당출신 간부가 대여섯명 되나마나하고 나머지 전부가 민주당출신이였다. 토지개혁을 하자고 한창 들끓으며 일이 사태가 난 때에 조만식의 지시를 받고 그 사람들이 전부 사무를 집어치우고 방들을 비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작년가을에도 조만식이 반동세칙을 내려보내서 3.7제 실시가 도내에선 애를 먹었는데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알겠는가?

강진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자의 말이 심상치 않아서 곧장 장군님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강진건은 장군님께서 손짓으로 권하시는 쏘파에 앉아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전화로 주고받으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상대편이 안길인데 조만식이가 장군님께 무슨 접견을 요구해나선다는것 같았다.

《···조위원장이 요구한다면 만나줍시다. 아니 그래선 안됩니다. 만나줘야 합니다. 일없소. 아무리 바빠도 만나줍시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전화를 마치고 탁상앞으로 나와 강진건이와 마주앉으시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래 회의가 잘됩니까?》

《예, 그럭저럭··· 그런데 거 조만식이때문에 감옥에서 세지 않았던 제 머리가 지금 세는것 같습니다.》

강진건은 개탄을 하면서 방금 안경쟁이 농림부장이 줴치고간 말을 옮기였다.

《장군님, 조만식이 이젠 드러내놓고 반동을 합니다. 우리가 토지개혁을 하면 자기네 민주당원들을 정권의 자리에서 전부 소환하겠다고 하니 어디 참을수 있습니까.》

《허허허··· 강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가 그런다고 민주당원들이 다 그러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우선우선한 표정을 지으며 강진건을 위로하시였다.

《장군님, 어떤 사람들은 조만식이가 애국자의 탈을 쓴 친일파, 민족반역자라고 하는데 전 그 말이 옳은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까지 방해하여나선단말입니까?》

《강선생님,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애국자의 탈을 쓴 친일파라?》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고 땅거미 짙어가는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조만식은 그자신이 부농의 아들로서 한평생을 자산계급출신의 민족주의자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속에 에워싸여 살아온 사람이였다. 그는 비록 수수한 농민처럼 말총모자에 두루마기를 입고다녔으나 실지로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땡볕에 비지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보지 못했고 굶어본적도 없었다. 그때문에 그는 로동자, 농민을 불쌍히 여긴다며 크게 부르짖어왔지만 실지로는 로동자, 농민보다도 자산계급, 착취계급에게 더 정이 들어있는것이다. 그것은 결코 변명할수 없는 사실이였다. 실지로 지금 그는 착취계급의 리익에,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황해도의 서만호와 같은 지주들의 리익에 외면하지 못하면서 이 땅에 부르죠아제도를 세우려고 한다. 그 모양대로 나가면 민족반역자로 굴러떨어질수밖에 딴 길이 없다. 창밖에서는 황혼이 더욱 짙어가고있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조용히 방안을 거닐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조위원장이 어느것이 진정한 애국의 길이고 민주주의의 길인가 하는것을 깨닫게 하려고 그가 이런저런 반인민적행위를 할 때도 참고 타일렀습니다. 그런데 그는 점점 민족반역의 길로 접근해가고있습니다. 마침 그가 접견을 요구한다는 련락이 왔으니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탁상앞으로 돌아오시였다. 강진건은 가슴이 뭉클하여 덤덤히 앉아있었다. 드러내놓고 반동을 하는놈마저도 마지막까지 어떻게 돌려세울 길이 없겠는가 마음쓰시는 그이의 너그러움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아, 그전에 김형직선생님께서 바루 저러하셨지.)

강진건은 무중 가슴속에 사무쳐오는 뜨거운 생각에 눈을 슴벅이였다. 민족을 사랑하고 인간을 아끼시는 장군님의 마음이 그처럼 지극하시기에 조만식이 거듭 야지랑을 부리며 훼방을 놀고 못된짓을 하여도 백번 천번 참으며 타이르고 언제이건 개심할 날을 기다려주시는것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괴로움에 이그러진 강진건의 얼굴을 일별하고 기분을 돌려주려는듯 벽에 걸린 달력을 가리키며 화제를 바꾸시였다.

《강선생님, 이제 며칠 있으면 3월에 들어갑니다. 3월은 봄이지요.》

강진건은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장군님, 정말 밭갈이철이 다가오고있습니다.》

강진건은 불현듯 봄이라는 말씀에 가슴을 울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젠 일판을 벌렸으면 합니다. 이젠 농민들의 기세가 오를대로 올라서 토지개혁법령만 내리면 될것 같습니다.》

《허허··· 그러니 이젠 강선생의 눈으로 개명되는 조선농민을 보고있다는 말씀이군요.》

장군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시였다.

그이께서는 의미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3월이라··· 3월이란말이지.》 하고 되뇌이더니 강진건을 돌아보시였다.

《선생님은 그전에 3.l봉기를 어디서 맞았었습니까?》

《예?!··· 아, 기미년 만세시위말입니까?》

강진건은 미간을 쪼프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다섯이였는데 장백에서 독립군을 하면서 조국땅에서 터지는 만세소리를 들었습니다.》

《옳습니다. 지금 선생의 나이가 60돐, 올해가 병술년이니까 그때 선생의 나이가 서른다섯이였겠습니다. 그런데 강선생, 나라가 광복된 다음 우리가 처음으로 그 3.l만세기념일을 맞이하게 되는데 어떻습니까. 무슨 기념식을 해야 하지 않을가요? 금년이 스물일곱해되는 해입니다.》

《스물일곱해라. 어제일같은데 벌써 그렇게!》

강진건은 감회가 깊은듯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날 기념식을 좀 뜻깊게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그걸 좀 강선생과 토론하자는것입니다.》

《장군님, 제게 무슨 좋은 안이 따루 있겠습니까. 그저 제 소견으로는 이번 토지개혁법령이 공포되면 그 옛날 만세시위를 할 때만치나 온 강토가 끓어번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회의를 빨리 끝내고 대표들을 인차 내려보낼 생각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토지개혁은 왜놈식민지통치에서 해방된것 못지 않게 큰 사변입니다. 그런데 강선생, 난 이런 생각이 있는데··· 말하자면 법령을 공포하기전에 또 한번 천지를 들었다놓을수 없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법령을 공포해서 천지가 아주 들썽들썽하게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이번 3.l기념식을 계기로 하자는것입니다.》

《녜에.》

강진건은 자기도 짚이는 생각이 있는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27년전 3.l시위는 왜놈들의 총칼에 조국땅이 피로 물들었지만 이번에는 전국의 로동자, 농민이 다 들고일어나서 한번 우리 힘을 크게 시위해보자는것입니다. 그래서 반동들이 기를 못펴게 만들고 갈팡질팡할 때 토지개혁법령을 가지고 재차 뢰성을 울리자는것입니다. 그러면 오는 봄을 막지 못하듯이 토지개혁을 막을수 없다는것을 그들도 똑똑히 보게 될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장군님, 옳은 말씀입니다.》

강진건은 환희에 휩싸여 저도모르게 큰소리로 부르짖듯이 대답을 올렸다. 3.l봉기기념시위를 토지개혁준비의 봉우리로 만드시려는 장군님의 의도를 간파한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창문가로 걸어가서 미구에 수천명의 로동자, 농민의 대렬이 흘러갈 평양거리를 내다보시였다. 하늘에서는 선명한 별빛이 내리비치고있었다. 강진건은 그 빛을 바라보며 장군님의 예언을 확신하고있었다.

오, 3.l아, 피를 뿌리며 잃어버린 조선을 부르던 기미년아! 스물일곱해 긴긴 세월이 지나 드디여 장군님을 모시고 너를 기념해 만세를 부르게 됐구나.

강진건의 눈에 갑자기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