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1장 3


 

제 11 장

3

 

당청사의 2층회의실에서 당4차확대집행위원회가 끝나자 오기섭은 자기 숙소로 가지 않고 곧장 함남대표들이 들어있는 려관으로 찾아갔다. 회의장을 나설 때 그는 아주 서리맞은상이 되여 어깨를 쳐뜨리고있었다. 회의에서 녹초가 되도록 얻어맞았기때문이였다. 사실 어제밤만 하여도 그는 기고만장해서 잡소리를 치며 돌아갔다. 심지어 그는 자기 동료들에게 최근에 장군님께서 이때까지 해오던 정책에 대하여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고 했다.

쏘미공동위원회가 열리고 남북의 정치적세력들이 통일정부수립문제로 해서 물끓듯 하는 때에 민주개혁을 실시하는것은 오히려 당의 공고화에 불리할수 있다, 때문에 장군님께서는 토지혁명에 대한 공식표명이 없이 계속 농촌지역에 대한 시찰만 진행하시였다. 이런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회의에서 문제를 공론에 붙이고 장군님께서 한걸음 물러서 그 무슨 조치를 취할것 같은 가능성이 보인다고 했다. 만약 회의가 그런 방향으로 나가기만 하면 우리가 더 바짝 죄여서 제반 개혁들이 시기적으로 불가능하기때문에 일정한 시간적여유를 얻은 다음 즉각 사회주의적구호를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력설했다.

그러나 사태는 역전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보고에서 함남도당조직의 분파주의적행위에 대하여 심각한 지적을 하시였다. 3차확대집행위원회의 정당한 결정을 접수하지 않고 그 집행을 의식적으로 태공하였을뿐아니라 심지어 그 결정을 하부당단체에 전달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반당적인 행위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시였다. 처음 회의가 시작될 무렵에 오기섭은 장군님께서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기를 맞아주시기에 옳지, 장군님께서 이번에는 립장을 한발자국 드티시려는가부다 하고 느물거리며 앉아있다가 벼락을 맞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는 장군님께서 보고를 하시는동안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보고에 이어 격분한 회의참가자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오기섭이들에게 호된 추궁과 날카로운 질문들을 들이대였다. 구변이 좋은 오기섭이도 이번 회의에서는 말 한마디 변변히 하지 못했다. 특히 김책의 비판이 그를 아주 녹초로 만들었다.

오기섭이한테 제일 싫은 사람은 늘 김책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비판을 주어도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유하게 주시는데 김책은 도끼를 메고 달려드는것 같은 무서운 기상으로 해냈다. 해주에 나가 민청개편에 관한 잘못된 연설을 하여 문제가 섰을 때에도 장군님께서는 웃으며 고치라고 하시였지만 김책은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오기섭은 속에서 밸이 꿈틀거렸지만 김책의 정당한 론리를 굽혀버릴수가 없었다.

김책은 오기섭을 좌경에서 우경으로, 우경에서 좌경으로 줄넘기를 하는 극단한 교조주의자로, 맑스주의를 부르짖으면서 맑스주의를 외곡하는 무식한 말공부쟁이로 규탄하였다. 당내에서 맑스주의대가로 자처하며 우쭐대던 오기섭은 코가 납작해지고말았다. 그는 그것이 너무도 분해서 려관방에 들어서는 길로 동료들을 둘러보며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었다.

《허허, 내 살아가다 무식하단 소릴 들어보긴 처음이요. 아무래도 이 회의를 고쳐하자고 문제를 제기해야 될가봐!》

사각형얼굴에 주의자머리를 하고 메기입같이 큰 입둘레로 수염이 더부룩한 그는 빈 파이프를 문채 진정하지 못하고 려관방을 왔다갔다 하였다.

《회의를 고쳐하다니? 그건 뭐 정신있는 소리요?》

양기렬이 실성한 모양으로 돌아가는 오기섭을 어이없이 지켜보았다. 유난스레 코등이 높은 그는 함남도당에서 오기섭의 지시를 집행해온 사람이다.

《그럼 이대로 물러서고만단말이요? 난 맑스주의자요. 뭐 날 교조주의자라고? 본 풍월, 들은 풍월로 남의것을 그대로 옮겨놓는 교조주의자라고, 또 좌경에서 우경으로 줄넘기를 한다고? 아니 그럼 우리 조선이 자본발달을 못했던 나라이기때문에 그 단계를 거쳐서야 사회주의로 간다는건가, 그래서 산업부흥도 한다는거요?》

오기섭은 식탁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한사람은 빙긋 웃는 표정으로 맞은편 의자에 가서 조용히 앉았다. 그도 함남에서 함께 온 오기섭의 동료였다. 그러자 오기섭은 매부리코의 양기렬을 쳐다보며 당신은 뭐냐고 소리쳤다.

《아니 이건 종로에서 뺨맞고 뒤골목에 가서 눈 흘긴다더니 회의장에선 꼼짝을 못하고 여기 와서 누구와 화풀이를 하오?》

《그게 글쎄 뭐요? 분파주의를 했다고 왜 인정을 하는가말요? 연단에 나가섰으면 뻣뻣이 배를 내밀고 제 주장을 말해야지 죽어넘어가는 소릴 하면서···》

《그럼 빤히 꿰들구 내리치는걸 어찌겠소. 이제 회의를 고쳐한들 무슨 용빼는수가 있을것 같소.》

《있소. 있단말이요!》

오기섭은 발광적으로 부르짖었다.

《나의 말은 모두가 진리요. 진리는 언제나 이단의 운명을 지니고있기에 진리인거요.》

오기섭의 소리에 앉은 사람들은 허허 소리를 내여 웃었다.

《오기섭동무, 당내의 로선상 분쟁이라는거야 어디 하루이틀에 끝나는 일이요. 우린 중앙의 로선과 정책을 좀더 두고 관망할 필요가 있소. 그 로선과 정책이 잘못되였다면 일정한 시기에 가서는 좌왕우왕하며 뒤걸음치질 않겠소. 그런 때 우리가 소리치며 들고 일어나는것이 현명한줄 아오? 진리는 언제나 자기의 광명한 빛을 잃지 않는 법이니까.》

그는 오기섭을 얼렸다.

《흥, 맑스주의진리도 실천을 가지고 검증하겠단말이군. 그러느라면 우리가 그만치 시간을 잃는건 어떻게 한다?》

《시간을 잃어도 우리에겐 그 방법밖엔 없소. 수인사대천명이라 운수를 기다리는수밖에 없소.》

양기렬이 어딘가 서글픈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다음은 누구도 응대를 안했다. 오기섭은 실눈을 짓고 마드로스파이프에 담배를 피워물었다.

얼마후 저녁을 치른 그들은 거리로 나가 한시간 좋이 소풍을 하고나서 려관으로 돌아왔다.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두루마기를 입고 수건을 쓴 늙은이가 오기섭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네였다.

《누굽니까?》

오기섭은 그가 누구인줄 알면서도 일부러 거만하게 물었다.

《난 이런 사람이요.》

마주선 사람이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엔 《고당 조만식, 평안남도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 민주당위원장》이라고 씌여있는데 집주소와 전화번호도 밝혀있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습니까?》

명함을 든 오기섭의 귀밑으로 피줄이 일어섰다.

《꼭 상담할 일이 있어 걸음을 했으니 너무 밤늦게 찾아왔다고 나무라진 마오.》

《그럼 올라갑시다.》

오기섭은 앞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양기렬은 무슨 희한한 일이 벌어질것이라고 생각하며 조만식을 앞세우고 오기섭을 따라 올라갔다. 오기섭은 2층에 올라오자바람으로 수달피털을 댄 외투를 벗어서 긴 쏘파 한쪽에 훌 집어던졌다,

《그래 상담할 일이란 무엇입니까? 마음놓고 말씀하시오. 이 사람들은 다 내 동지요.》

오기섭은 조만식이와 마주앉자 다짜고짜 말을 하라고 들이댔다. 벌써 그의 낯가죽은 댕댕해져서 바늘이 안들어갈 지경이 되였다.

《다른게 아니고 우리 당은 토지혁명에서···》

《토지혁명에서 어쨌단말이요? 토지혁명을 반대하는 성명을 낸다더니 그래 찾아왔소?》

《아니 왜 그렇게 우들우들 성부터 내오? 우리 민주당도 농민본위의 토지개혁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운다는걸 당신들도 알지 않소.》

《허허.》

오기섭은 몸을 제끼며 웃었다.

《지지하는데는 당분간 통일정부가 설 때까지 기다렸다 하자는것이요. 그래서 나는 오기섭씨의 주장이 우리와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고 보고 합세할 의도를 가지고 왔소.》

《그럼 어떻게 합세를 하겠소?》

오기섭은 기분을 늦추며 정색하여 물었다.

《우리 당이 자기 태도를 표명하는 성명을 내고 떠들테니 공산당안에서도 오기섭씨가 함께 박자를 치면 되지 않겠소.》

《거 그런데 한가지 좀 물읍시다. 민주당이란 소부르죠아당인데 당신네 민주당원들이 사유재산을 내놓으라면 군말없이 내놓을것 같소.》

《아니, 그럼 립장이 달라졌소?》

조만식은 눈이 둥그래져서 오기섭을 마주보았다.

《달라진것은 조금도 없소. 우린 토지뿐아니라 일체 소부르죠아적인 제도자체를 증오하오. 그래서 민주당이라는것도 인정하지 않소. 그런 거치장스러운 집단은 우리 프로레타리아에게 필요가 없소. 그건 다 타도대상이요.》

오기섭이 자리에서 훌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아니, 뭐 뭐라구? 우리가 거치장스럽다구?》

《그렇소. 당신이 과거 친일파였다는것도 다 알고있소.》

《뭐뭐 친일파? 도민의 추앙을 받는 날보구 친일파라구. 에익 이 무지한놈아!》

조만식이 자리에서 떨쳐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런 소릴 안듣겠거든 날 찾아다니지 마시오. 우리 맑스주의자들의 명예가 어지럽혀지오.》

오기섭은 마주보기가 싫다는 뜻으로 창가로 몸을 삐뚤구며 마드로스파이프를 꺼내물었다. 양기렬이 조만식의 곁으로 다가가 그만하고 나가는게 좋겠다고 얼리였다.

《가겠소, 가겠소. 그러나 똑똑히 알아두시오. 서울에 중앙정부가 선 다음 내 오늘 받은 대접을 봉창할테요.》

조만식은 격노해서 부르짖었다.

《허허, 해방이 되니까 별게 다 놀아나는군.》

조만식이 쾅하고 문을 열고 나가자 오기섭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뚜걱거리며 계단을 내려간 조만식은 짚고왔던 단장도 내버리고 차에 올랐다.

오기섭은 방안에서 사라져가는 조만식의 자동차를 내다보며 이마전이 댕댕해서 부르짖었다.

《이게 바로 통일전선로선이 낳은 희극이요. 계급투쟁에서 우산 하나를 받쳐들고 거기에 일체의 정치세력이 들어가 비를 막게 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우산이란 본래 1인용으로 만든것이요. 불가피해서 지나가던 사람이 한사람 끼여들수는 있지만 그도 내 집까지 갈 사람은 아니고 자기 집 근처에 오면 다시 우산밖으로 뛰여나갈 사람이요. 민주당이란 우리의 프로레타리아 우산밑에 들어와서 저들의 소부르죠아국가, 즉 지주나 자본가들에게서 약간의 양보를 얻어낸 그런 타락한 제도를 세울걸 꿈꾸고있소. 때문에 빨리 그들을 우리의 우산밖으로 몰아내야 하오. 프로레타리아에게는 자기 존엄과 긍지감이 빵보다 더 소중하오.》

오기섭은 그럴듯 한 비유로 당장 민주당을 하나 박살내기라도 한것 같은 쾌감을 느끼며 실내를 자꾸 돌았다.

집으로 돌아온 조만식은 불이 없는 교회당안으로 들어갔다. 교회당도 요새는 례배를 하는 사람이 적어져 한산했다. 조만식은 교도들이 앉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그리고는 정중한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다.

《오, 주여,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지하신 하느님이시여, 간절히 기도드리오니 저 붉은 마귀들을 건국성전에서 제거해주옵소서. 주님께서 성운의 빛발을 내리비쳐 저 붉은 마귀들이 하루아침 이슬과도 같이 사라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교도들은 내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들자고 합니다. 삼천리강토에 교회당이 수풀처럼 일어서고 온 나라 온 민족이 주님께 기도드리려고 모여드는 그런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기여든 사탄의 후예와 다름없는 저 붉은 마귀들이 그걸 막습니다. 저의 걸음걸음에 쟁기를 놓고 저의 길을 막습니다. 하느님이시여, 이것은 오직 신의 나라, 자유의 나라의 군정이 서울로부터 이북으로 넘어와야 성취될수 있을것입니다. 하루빨리 신의 사도들인 미국어른들이 십자가와 대포를 메고 고통받는 이북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넘어와야 합니다. 주님이시여, 살펴주시옵소서 아멘.》

기도를 마치고 일어선 조만식은 여러번 합장배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