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0장 5


 

제 10 장

5

 

이튿날 마을에는 어제밤 동회에서 서씨농민들이 앞을 다투어 몽땅 농조에 들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그 말은 마름을 통해서 서만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였다.

《아, 이렇게 서씨문중이 망한단말인가?》

종일 화술을 퍼마신 서만호는 저녁녘에 으슥한 솔숲을 거닐면서 황혼이 깃든 선산을 자꾸 바라보았다. 어쩌면 조상을 받드는 지성이 부족해서 분묘속에 묻힌 조상의 망령들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는것 같아서였다. 그는 무서운 고독감을 느끼였다. 그러고보니 오늘 문중중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날이 어두워지자 스스로 서씨마을 몇집을 돌아보았다. 만나는 서씨마다 그전처럼 곰살궂지 못하고 무우를 먹고 체한놈들처럼 시뿌둥해서 묻는 말도 순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이지숙한 령감들은 예나 다름없이 《참의 형님》, 《큰집 형님》하며 존대를 해주지만 무엇인가 진짜 속마음은 뒤에 감추어두고있는것 같았다.

서만호는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어제밤 동회가 있었다는 정기찬네 집앞을 지나며 은근히 동정을 살펴보았다. 불이 환하게 켜져있는 안방에서 세상이 다 들으라는듯이 법석 떠들어대는데 어느 땅은 지질이 좋고 어데가 지질이 나쁘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있다. 벌써 벌을 통채로 빼앗아내여 가로세로 찢어서 서로 노나가질 궁리들을 하는것이 분명했다. 서만호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몸이 휘청거리며 넘어질것 같았다. 그는 후줄근해져서 자기 집으로 비틀걸음을 쳤다. 그는 자기가 주추돌우에 외따로 세워놓은 기둥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누구도 없는 조용한 사랑방에 드러누워서 물끄러미 천정을 올려다보며 천사만념을 굴리였다. 분명 아흔아흡간 대가가 기울어지고있는것 갈았다.

《아니다! 기울어져서는 안된다. 안된다!》

서만호는 주먹을 움켜쥐고 치를 떨며 부르짖었다. 이때 문밖에서 갑자기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상한 예감을 느끼며 개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바깥 대문앞에 내다매놓은 두마리의 개는 검은색안경을 낀 두 사람이 다가오는바람에 으앙 하고 앞발을 쳐들며 달려들고있었다. 개들은 목에 건 사슬이 끊어져나가게 잡아당기며 악악 소리를 질렀다. 이발들을 무섭게 드러내놓고 달려드는품이 물리기만 하면 당장 숨주머니가 결단날것 같았다. 다가오던 두사람은 뒤걸음을 치며 개를 말려달라고 소리쳤다. 그래도 대문안에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자 그들은 련못가근방에 나와서서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집안에 누가 없소? 빨리 나와서 이 개들을 좀 붙들어주시오.》

그들은 손바닥을 입에 오그려붙이고 목소리를 합쳐 쌍나발을 불었다.

그제야 대문밖으로 허리구부러진 장서방이 나타났다. 그렇게 이악스럽게 대들던 개들은 장서방의 바지가랭이를 핥으며 꼬리를 저었다.

《그 개를 좀 붙들어주시오. 우리가 이 집으로 들어가야 하겠소.》

《그 눈에 건 시꺼먼 안경들을 벗수다. 그런걸 걸구다니니까 개들이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짐승으로 보구 갈개지요.》

련못가에 선 사람들은 흐흐흐 웃으며 모두 색안경을 벗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놈! 짖지 말아.》

장서방이 발을 탕 구르며 개를 욕질했다. 개들은 그제야 련못가의 사람들이 다가와도 짖지 않고 꼬리를 저었다. 그들은 버릇이 됐는지 대문을 넘어서면서부터 또 검은색안경을 꺼내서 눈에 걸었다. 벌써 서만호는 사랑마루에 나와있었다. 그는 걸어들어오는 사람들을 엄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 댁 참의아버님이십니까?》

두사람은 대돌밑에 가서 허리를 수그리며 물었다.

《그렇소. 어디서 온 사람들이오?》

《저흰 서울에서 들어왔습니다. 서강선생이 보내서 이렇게 참의아버님을 찾아왔습니다.》

《뭐, 뭐 우리 강이가? 이런 반가운 일이 있나. 어서들 올라오시오.》

서만호는 두손을 내밀어 끌어올리는 시늉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둘이는 대돌로 올라왔다. 그들은 마루우에 올라와서 다시한번 허리를 굽히며 서만호에게 인사했다.

《아, 인사는 무슨 인사를 자꾸 한단말이요. 어서 들어갑시다.》

서만호는 두사람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덧문을 후려닫고 미닫이도 밀어닫았다.

《그래, 우리 애가 보내서 왔단말이요. 그 애가 지금 어디 있소?》

서만호는 아래목자리에 올방자를 틀고앉으며 다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서강선생은 요즘 서울에 나와있습니다. 뒤따라 평양에 들어온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임무를 주며 평양에 가던 길에 참의아버님을 만나보라고 하기에···》

《무슨 임무요?》

《저, 그건 아직 말씀드릴수 없습니다.》

《음, 그럴수도 있겠지. 복잡한 시대에 쌍방이 싸움을 하고있으니까.》

서만호는 며칠전 마름이 조만식에게 갔다와서 전하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중앙에서도 민심이 적지 않게 공산당쪽으로 쏠리고있기때문에 사태가 급해졌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조만식도 토지개혁을 반대하는 성명서나 항의문을 낼 준비도 하는 한편 공산당과 결사적인 각오로 맞설 태세라는것이다. 분명 이 사람들도 그런 급한 사태와 련관이 있어 들어오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다 색안경을 끼여서 어떤 얼굴인지 딱히 알수는 없으나 한사람은 키가 크고 딴사람은 키가 중키나 되는 사람이였다. 둘이 다 뼈다귀가 굵고 몸집이 든든하게 생겼다. 키가 큰 사람의 이름은 고택이고 중키의 사람은 한상배라는자였다. 사실 이들은 서강이 미군정청 통역관을 하면서 첩보계통에 발을 들여놓던 초기에 그의 휘하에 끌려든 졸개들이였다. 이들은 서울에서 좌익세력을 탄압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서강의 지령을 받기 바쁘게 입북한자들이였다.

서만호와 잠간 이야기를 나누고난 고택이는 들고온 번쩍거리는 들가방을 열고 거기서 횡서로 쓴 상표가 붙은 곽 하나를 꺼내였다.

《저 이건 미국제보약입니다. 늙은이들이 쓰면 청춘이 되살아난다는 고가약입니다. 서강선생이 아버님건강을 걱정하며 들어오는 길에 가져다드리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음, 그놈이···》

서만호는 중얼거리며 약곽을 받았다. 약곽부터가 놀라왔다.

곽에 은지를 입혀 상표가 더욱 번쩍거리였다. 상표엔 손에다 무엇을 든것 같은 미녀가 그려져있었다. 그곁에 까불거려 써넣은 횡서가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수 없었다.

《그 미녀가 바로 미국 베드로섬에 서있는 자유의 녀신입니다. 자유국가인 미국을 상징하는 녀신인데 이 약을 쓰면 사람의 생명도 그 녀신의 영원성과 같이 만년장수를 한다고 합니다.》

《오, 그런가. 그런데 이 손에 들고있는건 뭔가?》

《하나는 홰불이고 하나는 방패입니다.》

《놀라운 나라군.》

서만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했다.

《게 장서방 있느냐?》

그는 새문을 두드리며 장서방을 찾았다.

《예, 여기 있소이다.》

《빨리 가서 술상을 차려오라구 일러라.》

《예, 알겠소이다.》

장서방은 새문도 열지 않고 대답하며 돌아섰다. 뒤문밖에 숨어서 남편방의 이야기를 엿듣던 월미가 장서방이 나오는것 같아 얼른 기둥모서리저편으로 비켜섰다. 날이 갈수록 남편에게 싫증을 느끼며 서울로 내뺄 생각을 하던 월미였다. 그리하여 그는 남편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큰 금고의 열쇠를 노리고있었다. 금고속에 있는 돈을 한보따리 훔쳐내서 트렁크에 넣어들고 뛸 생각이였다. 그런데 좀체로 열쇠를 훔쳐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열쇠에 끈을 매서 배에 휘감고있다고 하기에 밤에 한자리에 들어 잘 때 배를 어루만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열쇠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야 열쇠둔곳을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상 마음을 조이며 남편의 방에서 무슨 소리만 들려와도 뒤문옆에 숨어서서 엿듣군 했다.

서만호의 방으로는 술상이 들어왔다. 서만호는 마음이 흐뭇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술을 권했다. 그는 자기 형편이 각박하게 죄여오는것 같은 때에 서강이 밀파한 젊은 사람들을 앞에 앉혀놓고보니 속이 후련해지고 앞날이 환히 빛을 띠는것 같았다.

무슨 임무를 맡고 들어온다고 하면서도 말을 못하겠다고 하니 십상 중대한 임무일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과는 서울형편이고 또 서강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묻지 말아야 옳을것 같다.

이때 장서방이 새문을 비써 열며 대문밖에 마을사람들이 찾아와 주인어른을 만나겠다면서 기다린다고 했다.

《뭐, 이밤중에? 무슨 일때문에 왔다더냐?》

《예, 농조에서 주인어른께 꼭 할말이 있다나봅니다.》

《뭐 농조에서? 가만 그럼 둘이 앉아 술을 나누게. 내 잠간 나가보구 올테니.》

서만호는 구리주전자를 들어 술을 부어주며 말했다.

《어서 그렇게 하십시오.》

서만호는 자리에서 일어서 장서방방으로 내려왔다.

《누가 왔다구?》

《예, 물방아간 정기수와 조순근, 장춘하 그리고 한두어명 더 따라왔습니다.》

《무엄한놈들.》

서만호는 욕을 퍼부으며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안에는 흑호가 찾아온 사람들을 경계하며 뻗치고 서있었다. 조순근이며 장춘하, 정기수들이 곰방대를 빨며 걸어나오는 서만호를 쏘아보고있었다. 뒤에 따라온 두 청년은 어깨에 총까지 메였다. 마을 자위대원들이였다.

《무슨 일들인고? 이 재밤중에?》

《밤에 이렇게 찾아서 안됐시다. 그래두 꼭 알려야 할게 있어서 왔시다.》

장춘하가 한발 나서며 배를 내밀고 서있는 서만호에게 점잖게 말을 했다.

《뭔데?》

《다름이 아니구, 어제 여기 서가마을농민들이 모두 농조원으로 가입했다는걸 알리면서 동시에 농조의 결정대로 그들이 추가로 문 소작료를 돌려받아야겠다는걸 통고하자는거웨다. 말하자면 3.7제결정을 정확히 집행하자는것이지요.》

조순근이 쥐고온 장부책을 펼치며 새로 가입한 농조원이 50여명 되는데 이들이 추가로 가져온 소작료 120석을 다 내놔야겠다고 했다. 서만호는 조순근을 쏘아보다가 머리를 뒤로 제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건 그렇게 못해. 그리구 농조결정이라는건 나하구 상관없는 놀음이야. 난 땅임자로서 계약대루 받았을뿐이구···》

어둠속에서 서만호는 이를 갈고있었다.

《그럼 응하지 않겠다는거요?》

조순근이 따져물었다.

《물러가게, 되지도 않을 소릴 들고다니며 야밤중에 소란을 피우지 말구.》

《좋시다. 그럼 우린 이 댁에서 읍에다 도매한 쌀을 회수할테유.》

장춘하는 주먹을 쥐고 내흔들었다. 같이 온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서만호의 거동을 살폈다.

《엑끼! 이 불한당같은놈들! 이놈들을 내쫓지 못할가?》

서만호는 발을 구르며 흑호에게 소리쳤다. 조순근이들은 이젠 할말을 다했으니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들이 돌아서자 총을 멘 두 자위대원청년들이 뒤에서 따라걸었다.

《야, 이 시라소니같은놈아, 저놈들을 왜 때려눕히지 못해? 뭐, 도매한 쌀을 빼앗겠다구.》

서만호가 발광이 나서 옆에 서있는 흑호의 등을 갈겼다. 그바람에 대문을 나서던 청년들이 뒤를 돌아보며 눈알을 굴렸다. 그들을 따라나가려던 흑호는 기겁을 해서 그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아하, 통탄할 일이로다! 저 거지같은것들이 언제부터 저런 무엄한짓을 하게 됐단말인가. 내 저놈들 껍질을 벗겨 나무에 매달지 못하면 이 성을 갈겠다. 이, 이놈들, 어디 두고보자.》

서만호는 온몸을 와들거리며 대문밖에 뛰여나가 조순근이네들이 가는 앞길쪽에 대고 웨쳐댔다. 대문의 수장목에 쓰러지듯 기대선 그의 입에선 짧은 비명같은 소리도 울려나왔다.

서만호가 조순근이들한테서 뜻밖의 봉변을 당하고있을 때 월미는 서울사람들앞으로 들어가 술잔에 술을 부어 권하며 서울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서울로 도망칠것을 꿈꾸며 요새는 내내 서울을 생각하는 월미인지라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서울은 아주 좋습니다. 지금은 미국 신사들과 조선 신사들이 얽혀돌아다니며 료정출입도 하고 한강백사장으로 나가 산책도 한답니다.》

《지금도 종로거리, 남대문거리가 붐비겠지요?》

월미는 목구멍까지 호기심이 가득차서 물었다.

《붐비다뿐이겠습니까. 그런데 서울에 대한 관심이 보통아닌데요.》

《저는 꿈은 서울에 두고 육신만 여기 와있어요.》

《아니 육신만 여기로 오다니? 꿈도 가지고와야지요.》

고택이와 한상배는 무르팍을 치며 껄껄거렸다. 그들은 인차 이게 서만호의 돈을 먹자고 달라붙은 서울태생의 첩이라는것을 알아먹었다. 그러지 않고야 나이 푸름푸름한 젊은 녀자가 무엇때문에 늙은 령감을 끼고 살겠는가. 월미는 무슨 노래인지 머리를 숙이고 군노래까지 부르며 또 술잔에 술을 따랐다.

《좀 크게 부르시오. 내가 장단을 칠게.》

고택이 이러며 상머리에 저가락을 대고 다드락거렸다.

《아이, 그만두세요.》

월미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저었다. 밖에서 서만호의 발걸음소리가 났다. 월미는 얼른 저고리앞자락을 여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새문미닫이를 열고 제 방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첩이 괜찮은데, 신녀성인것 같애 》

고택이 한상배에게 수군거렸다. 서만호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치떨리는 소리를 듣고 와서 얼굴이 시꺼멓게 동해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분기를 담차게 눌러내며 술상머리에 들어앉았다.

《아니, 이거 그새 술들을 안한 모양이군.》

《참의아버님, 많이 들었습니다. 그저 우린 술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서울에서도 저녁마다 명월관으로 간다, 카페로 간다 합니다.》

벌써 아까와는 다르게 혀끝이 까부라진 소리였다.

《음, 가야지. 젊은 때인데 취흥이 없이 한세상을 살수가 있겠나.》

《아버님, 술 많이 먹는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우린 아무리 취해도 제정신을 잃지 않습니다. 저 아버님도 한잔 드시오.》

고택이 아까 서만호가 들다가 나간 빈잔에 술을 따랐다. 한상배는 곁에 앉아 그저 빙긋빙긋 웃기만 했다. 서만호가 술을 들고 빈잔을 놓자 고택은 또 한잔 따랐다.

《참의아버님, 술도 마음껏 드시고 무슨 고민이 있으면 우리들한테 말해주십시오. 우리가 참의아버님한테 고통을 가해오는자가 있다면 그저 이렇게 해던지겠습니다.》

그는 손을 들어 목을 베는 시늉을 해보이였다.

《내가 무슨 고민이 있겠소. 그리고 무슨 고통을 가해오는 대상이 있겠소?》

서만호는 시침을 뗐으나 목소리는 저절로 처량하게 울리였다.

《그래도 서강선생은 북조선에서 이제 곧 토지혁명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아버님한테 가서 잘 위안해드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이미 전쟁을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뭐, 뭐 전쟁?》

《참의아버님, 백만장졸이 있어야만 전쟁을 하는줄 압니까. 우리는 혼자서도 하고 둘이서도 합니다.》

을러대는 잡도리가 꼭 갈바람이 일것 같다.

(음, 이게 자객들이구나, 테로패들이야. 하긴 무슨 방법으로든지 공산당패들과 맞서나서야지···)

서만호는 마음이 든든해지는것을 느끼며 고택이들을 고쳐 쳐다보았다. 그들은 생김새가 기운도 쓸만하고 담력도 있어보였다.

고택이는 코가 둥실하고 입이 큰데 곁에 앉은 한상배는 작은 코에 작은 입이고 그 입에 줄곧 늠실거리는 웃음이 어려있다. 주먹을 거머쥐면 무슨 일이든지 해낼것 같은 인상들이다.

(좋아, 정치라는것도 이런 힘을 안받침해야 하고말고, 전쟁을 선포했다는 말이 그럴듯해. 암, 전쟁을 해야 하고말고.)

《자, 둘이 다 내 잔을 받게.》

서만호는 자기의 빈잔을 고택에게부터 내밀어주고 술을 따랐다. 고택이 다 마신 다음에는 그 잔을 또 한상배에게 내밀어주고 술을 따랐다. 그저 자기의 량손에 장검을 거머쥔듯 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후련해왔다.

(네 이놈들 보자! 내 네놈들의 사지가 찢어지는걸 내 눈으로 보구야말테다.)

그는 더운물 끓듯 치밀던 격분을 누르며 입속으로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