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0장 4


 

제 10 장

4

 

이날 김창규는 장군님을 바래드리고나서 곧장 신당리에 눌러앉아 동회를 소집하도록 하였다.장군님을 만나뵈온 무상의 영광을 마을의 전체 농민들에게 전하고 그자리에서 농조대렬을 확장하는 모임도 가지려는것이였다. 그리고 그 기회에 장군님 앞에서 망녕을 부린 서가마을 로인들을 단단히 신칙을 하여 고질화되여있는 그들의 문벌관념을 아예 깨버릴 작정이였다.

저녁 어스름이 지자 회합에 나오라는 징소리와 고함소리가 집오래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동회 모이시오! 동회요! 아래마을 정기찬아저씨네 집으로 모이시오!》

한껏 즐거움에 들뜬 청년들의 목갈린 고함소리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울리였다.

동회를 하게 된 정기찬네 집 앞마당엔 불이 환했다. 밖에다 여기저기 홰를 해세워서 안팎이 밝았다. 오늘저녁엔 농조원이 아닌 사람들도 다 모여와 방안과 퇴지, 마당안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들끓었다.

《이사람, 이젠 올 사람은 다 온것 같네 》

출석인원을 장악하고있던 조순근이 이렇게 방안에 대고 알리자 농민들과 장군님 이야기에 열중했던 김창규가 일어나서 토방으로 나왔다.

《서가마을에서두 다 내려왔습니까?》

《빠짐없이 온것 같네. 눈에 띄는건 다 그것들뿐이네.》

장춘하가 볼부은 소리로 대꾸했다. 김창규가 처음 동회를 소집하자고 할 때 그는 서가마을것들은 부르지 말자고 했다. 생각하면 괘씸하기 그지없는데 그것들때문에 수고를 할 필요가 무엇인가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농조에 받아들이자는 의견에는 더욱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김창규는 장군님께서 그들을 눈띄워주려고 그만치 애쓰시였는데 그렇게 고립을 시키면 되느냐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할수없이 김창규 하자는대로 서가마을사람들도 모이게 하였던것이다.

《자, 방안에서두 이야기 그만하고 여길 보라구요. 그리구 마당 사람들도 좀 가까이 모여오시우. 오늘 이렇게 다 모이자고 한건 알겠지만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던 경사도 다 알게 하고 장군님께서 우리 신당리 농민조합에 주신 과업두 잘해나가야겠기에 동회를 연것입니다. 그럼 먼저 군당조직부장어른이 말씀하겠수다.》

장춘하가 목을 빼들고 퇴지우에서 소리쳤다. 김창규가 머리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고 웃는 얼굴로 마당에 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뜻밖에도 이 신당리앞벌에서 우리 조선민족의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녔습니다. 사실말이지 오늘 이런 경사는 우리 재령벌이 생겨서 처음입니다. 나는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있었다는것을 알리면서 신당리농민 여러분에게 한가지 섭섭한 말을 안할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더러 이야기를 전해들었겠지만 여기 신당리 일부 농민들은 무엄하게도 장군님앞에 달려가 지주의 땅을 빼앗지 말아달라는 불손한 청을 드렸습니다. 인사불성두 이런 인사불성이 어데 있습니까. 장군님께서 찬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농민들에게 땅을 분여해주시려고 그처럼 애쓰시는데 도리여 땅을 받아야 할 당자들이 그런 얼빠진 소리를 아무렇게나 마구 해댔으니 이게 례절이 옳습니까. 우리 장군님은 정말 도량이 넓으신분입니다. 장시간 그 한지에서 그런 청을 드린 령감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주려고 설복하고 또 설복하시며 해를 보내셨습니다.

제가 오늘저녁 말씀드릴것은 이제부터 이 신당리에는 달성서씨니, 조씨니, 박씨니 하는 구별이 없다는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가난한 농민과 지주가 있을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저녁 이자리에 모인 모든 서씨농민들은 다 농조에 가입해서 한덩어리가 되자는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김창규는 마당사람들에게 소리쳐 말하고 사랑방에 앉아있는 서가마을 로인들을 돌아보았다. 누구도 대답이 없어 한동안 회합장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여기저기 매놓은 홰에서 탁탁 불꽃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서씨로인들은 웬일인지 음울한 표정들을 하고 모두 서달호를 지켜보았다. 불안스럽고도 침울한 그 눈길들을 보고 김창규는 서달호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의 예감은 옳았다.

이날 장군님을 만나뵈온 서가마을로인들은 마실방으로 쓰는 서달호네 웃방에 모여앉아 장군님의 이야기를 하며 해를 지웠다.

모두가 장군님은 하늘이 낸 분이 분명하다는 탄사들이였다. 저녁이 되자 이 집 부엌에서는 가마에 분틀을 들여놓고 나깨미국수를 누르려고 서달호의 안해와 맏딸이 땀에 떠서 돌아갔다. 갈비뼈가 알른알른한 조무래기들은 짜장 어미제비가 물어오는 먹이에 저마끔 부리를 내대며 짹짹거리는 제비새끼들처럼 부뚜막에 주런이 앉아서 분틀에서 떨어지는 국수오리를 지켜보며 목젖을 꼴깍거리였다. 나깨미국수란 분밑으로 주르르 잇달려 내리는법이 없고 똑똑 끊어져내려서 더운물가마에 들어가면 고투리가 다 여기저기 흩어져 조리로 건져낼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예 딸이 조리를 가마에 넣고 국수오리를 받아서 한참 붙들고 앉은채로 조리속에서 익혔다. 어머니도 딸도 이렇게 나깨미국수를 누를 때면 부뚜막에 모여앉은 올망졸망한 애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였다.

다 누른 국수는 세그릇도 될가말가해서 어이딸이 한숨을 짓고있는데 느닷없이 문밖에서 《자, 만호삼촌네가 이 집에 쌀 한말을 보냅니다. 나깨미국수로 끼를 에운다는 말을 듣고 적선하는 쌀이니 어서 받으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굶주린 어린것들이 좋아라고 손벽을 치며 달려나가서 쌀자루를 정지방으로 들여왔다.

《이게 뭐냐?》

애들의 들끓는 소리를 듣고 서달호가 웃방에서 달려내려왔다.

《왕벌 큰아버지가 쌀을 보냈어요. 흰쌀밥 해먹자요. 응 아버지.》

애들이 발을 구르며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서달호는 애들을 밀쳐버리고 쌀자루를 들어서 구석쪽에 쾅 처박았다. 그리고 독을 뿜는 눈길로 쌀자루를 메고온 사람을 쏘아보았다.

《내가 쌀을 달랬어?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에 비추어보면 내 땀을 흘려서 지은 쌀이 10여석 서만호네 고간에 들어가있어. 내가 그걸 도끼를 메고들어가 고간을 깨고 내 쌀을 찾아내온다면 몰라도 고양이 쥐생각하듯 한되박 두되박 주는 그걸 내가 받아먹어? 당장 도루 가져가라!》

주위의 령감들이 그 말이 옳다고 곁들었다.

《임자도 들었지? 장군님께선 저 양평리 사람들이 농사지은 쌀이 몇백섬이 되지만 서만호한테 빼앗겨 굶을 지경이 되였다고 하시지 않았나. 그 사람들 신세나 내 신세나 뭐가 달라? 무에 적선? 싹 가져가!》

서달호는 정지방구석에 처박아놓은 쌀자루를 다시 힝 들어올려다가 메고온 사람에게 집어던졌다. 하마트면 쌀자루를 메고온 서만호의 9촌조카가 쌀자루에 맞아서 뒤로 벌렁 자빠질번했다. 그는 할수없이 쌀자루를 둘러메고 일어섰다. 방안에 앉은 령감들은 모두 가래를 돋구어올리며 대통을 두드렸다.

《엥이, 인젠 문중이구 뭐구 개 물어간걸로 알아야 해.》

《개가 물어가두 좋고 쇠가 물어가두 좋수다. 그까짓 도깨비헝겊막대 같은걸뭐···》

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뱉었다.

서만호의 9촌조카가 혼비백산해서 쌀자루를 메고 쫓겨나갈 때 《꽤엥-》 《꽤엥-》마을아래쪽에서부터 양푼 두드리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울려왔다. 개들이 문밖에 달려나가 컹컹 짖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우야 하고 달려다니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자 서만호의 6촌형벌이 되는 서만길로인이 깜짝 놀라며 문을 벌컥 열어제끼였다.

《아, 이 정신보지. 오늘저녁 정기찬네 집에서 동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태 잊어버리구있었군.》

만길로인은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어서 동회에 가자고 휘동했다.

《무슨 일로 동회를 한답디까?》

《글쎄 그거야 낸들 알겠어. 아까 흥묵이 사위가 나더러 사람들을 다 데리구 오라두만.》

모여앉았던 마실군들은 서만길의 손에 이끌려 마당으로 나오면서도 어리둥절하여 서로들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던 그들은 사립문밖으로 나가자 모두 흠칫 놀라며 굳어져버렸다. 몸집이 한아름되는 서만호가 몽둥이같은 굵은 단장을 들고 막아섰기때문이였다.

《어디들 가는가?》

서만호는 노기를 띤 목소리로 으르듯이 말하고는 다들 도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로인들을 웃방으로 몰고 들어간 그는 정지방을 넌지시 내려다보았다.

그때 정지방에서는 서달호네 조무래기들이 파리떼처럼 밥상머리에 오그그 달라붙어서 후룩후룩 나깨미국수를 들이삼키고있었다. 다른때 같으면 지린내가 난다고 또 타발을 했으련만 오늘은 저녁이 늦어져 그런것을 가리게 못되였다.

《달호, 내 애들이 저렇게 나깨미국수만 먹는다게 가슴이 아파 쌀 한말을 보냈는데 형제지간에 그게 뭔가, 아던정 보던정 없이···》

서만호는 대뜸 이렇게 핀잔하며 서달호를 노려보았다. 사실 그는 마음이 뒤숭숭해서 저녁을 먹자 마을형편을 돌아보려고 서가마을로 내려오는 걸음에 쌀자루를 도로 메고 쫓겨오는 9촌조카를 만났던것이다. 그한테서 달호네들이 하는 소리를 구체적으로 전해들은 서만호는 홍두깨같은 밸이 치받쳐서 곧장 여기로 온것이다.

서달호는 정지방으로 통하는 새문을 후려닫았다. 아무리 구차해도 서만호한테서 애들 나깨미국수 해먹인다는 소리를 듣는것이 역스러웠다.

서만호는 올곱지 않은 서달호의 기색을 한참 지켜보다가 외투주머니에서 은지가 빨각거리는 권연 한갑을 꺼내 테놓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권연갑에 손을 가져가지 않았다.

《어서 피우라는데···》

서만호는 담배갑을 들어 한사람한사람에게 권했다. 령감들은 마지 못해 한가치씩 뽑아들었다. 안피우겠다는 서달호에게도 강요하다싶이해서 한대 뽑게 했다.

이윽고 서만호는 서달호에게서 눈을 떼고 목소리를 한결 가라앉히며 말머리를 돌리였다.

《자네들이 오늘 김일성장군한테 달려나가서 우리 문중을 봐달라고 청을 올렸다는데 그건 참 잘한 일이네. 그래야 해. 암, 우리 달성서가가 어떤 성씨라구.

난 어렸을 때 밤이면 고조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임진왜란때 혁혁한 전공을 세운 달성서씨의 무훈담을 옛말처럼 들어왔네. 서씨조상들이 의병을 일으킨곳이 저 경상도 달성에 있는 비슬봉이라는데야. 조상들은 그 산에 진을 치고 앉아 락동강을 굽어보며 창과 칼을 갈았고 1년 삼백예순다섯날을 하루같이 산에 봉화를 지폈다네.

왜적은 그 불빛을 보면서도 얼씬을 못하구. 우리 달성서씨는 환난이 있을 때마다 몸과 마음을 합쳐서 가문을 지키구 나라를 지켰지.》

서만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옛일을 추억하는듯 했다. 령감들은 묵묵히 앉아 장죽을 놓고 서만호가 준 권연에 성냥을 그어대였다. 얼굴빛이 모두 밝지 못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서만호와 인연을 끊겠다고 윽윽 했지만 그 당자가 이렇게 마주앉아 가문의 력사를 풀어대니 더 억지를 부릴수도 없다. 피줄이야 아니라고 할수 없지 않는가. 령감들은 저도 모르게 한숨까지 내쉬였다.

《생각해보라구. 우리가 선산을 함께 쓰고있으면서 문중끼리 치고받는 싸움을 벌린다면 저 지하에 있는 조상들이 뭐라고 할텐가. 응, 당장 봉분을 털고일어나 불효막심한놈들이라고 종아리를 치지 않으리란말인가. 이런 흉흉한 세월일수록 힘을 모아야 하네. 그래서 요즘 문중에서 내 과거지사들을 세상에 알리고저 합심하여 진정서도 만들지 않았나. 그런데 일조에 변심이 생겼나? 난 달호의 행실이 여간 섭섭치 않네.》

서만호의 목소리는 절절했다. 붉게 상기된 그의 두눈에서는 피가 떨어질듯 괴로운 빛이 번뜩였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계속하였다.

《내가 달호나 여기 문중어른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지 않아. 난 우리 문중사람들이 남들보다는 배불리 먹고 옷가지라도 허술히 입고다니지 않게 하려구 늘 마음을 쓰고있어. 문중사람들 등 덥구 배부르게 하는 일이라면 입에 넣었던것두 꺼내주고싶은게 내 마음이야.》

서만호는 머리를 쳐들고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서달호는 무릎걸음으로 한걸음 다가앉았다.

《형님, 그럼 한가지 물읍시다. 그렇게 생각이 깊은이가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3.7제를 물구두 든든해있게 하구 우리 서씨들한테서는 추가소작료까지 다받아자셨소, 예? 그래 이게 돌봐주는거요? 그래 우리가 남들보다 배불리 먹고 헐벗지 않고 지내는게 뭐가 있소? 자 보오. 이 집에 무슨 세간같은게 있소? 형님은 나깨미먹는다고 걱정한다는데 그래 그걸 혀끝에 한번 대보기나 하셨소?》

서달호는 후려닫았던 새문을 쩡 열어던졌다. 부엌과 정지에는 뜬김이 서려돌았다. 찬장 하나 없는 부엌드렁에 자시물그릇에 애들 국수먹은 빈사발이 한가득 담기고 독 한개가 덩그랗게 놓여있다. 정지에는 맨 노전방에 애들이 여기저기 군드러져 코를 박고있다. 어이딸은 국수가 모자라 국수 익혀낸 물을 한사발씩 마시고 노그라졌다. 덮을것이란 헌 이불 한뙈기뿐이여서 모두들 넝마같은 옷을 그냥 입은채로 통잠을 잔다. 기실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칠것이란 오롱조롱 헐벗은 애들뿐이였다.

《너무해요, 너무해! 빨아먹을건 다 빨아먹구 쌀 한말 주며 적선한다구요?··· 돌봐준다구요?》

《어허, 여보게 달호, 그만하게. 형님이 어찌다 오셨는데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령감들이 서달호를 나무랐다. 그래도 가문의 등걸인데 그렇게 맞서면 되는가 하는 핀잔이다. 그러나 서달호는 숨을 씩씩하며 말리는 령감들을 쏘아보았다. 그만큼 속아살았으면 됐지 계속 참으라는가 하는 밸통이다.

《놔두게, 집안끼리두 할말이야 하구 살아야지. 그래 달호, 타성놈들이 3.7제를 물었다구 우리까지 조상전례에 없는 그런짓을 따라야 옳나. 그것들이 해방이 되자 제멋대루 지랄을 쳐두 몇날 못가. 두구보라구. 앞으루 저놈들한테서 못받은 도조만 뺏아낼줄 알아. 땅두 다 뺏아낼테야, 고현놈들.》

서만호는 손을 들어 문밖을 가리키며 을러메였다. 밖에서는 지금 동회나오라는 징소리, 고함소리가 그치지 않고 울려왔다.

《흥, 땅을 뺏아요. 형님이 지금 가지고있는 땅이나 잘 건사하시우. 꽹당꽹당하는 저게 무슨 소린지 알기나 하슈. 형님 땅을 뺏자는 소리웨다.》

《뭐, 뭐 어쨌다구?!》

서만호는 참아오던 노기를 폭발하며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들겼다.

《그래 이놈아, 내가 땅을 빼앗겨서 너 씨원할게 뭐냐? 이 배은망덕하는놈. 문중사람들이 어느 땅에 목줄을 걸구있니, 그 땅을 빼앗기면 서씨문중 삼백호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돼서 나앉을건 생각 안하느냐 이놈!》

《걱정 마시우. 토지개혁하문 서씨문중이라구 땅 안주겠소. 땅없는 사람에겐 다 준답디다.》

서달호도 점점 열기가 올라 입에서 구렝이가 나오는지 뭐가 나오는지 가리지 못하고 휘뚜루 뇌까렸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서만호앞에서 감히 얼굴 한번 들지 못하던 그가 무슨 배심으로 저렇게 맞서는지 모두들 경악실색하였다. 그것은 서달호자신도 알수 없는 분노의 대결이였다.

《옳지, 네놈이 알구보니 토지개혁덕을 볼가 해서 괘사를 부리는구나. 엑끼, 간에 붙었다 섭에 붙었다 하는 요사한놈! 실컷 덕을 봐라! 토지개혁은 한뙈기라두 제 땅을 가지고있는 너같은 자작농, 중농의 땅두 다 빼앗는다. 호박쓰고 돼지굴에 들어가봐라. 이놈!》

서만호는 고함을 내지르고는 결별하려는듯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겁이 많은 서만길로인이 허둥거리며 그의 팔소매를 부여잡았다.

《만호적은이, 너무 노염을 타지 말게. 그 그런데 이자 중농들 토지두 뺏는다는 말이 적실한 말인가?》

다른 령감들도 이구동성으로 따져물었다.

《허허, 절 모르고 시주한다니까. 난 없는 소리 지어내지 않소. 내가 여기 이렇게 촌구석에 들어박혀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보구있소. 토지개혁을 하문 개인토지를 가지고있는 자작농까지도 다 청산해버리네. 그러나 애국공적이 있는 사람의 땅은 다치지 못하게 됐기에 내가 서씨문중을 내세워 진정서두 쓰구 힘을 쓰는게 아닌가.》

《아, 그럼요. 형님 토지야, 아니 우리 문중토지야 대대손손 장만한 땅인데 누가 감히, 그리구 형님은 세상이 다 아는 애국자구.》

령감들은 자작농토지를 빼앗는다는 말에 속이 뜨끔해서 앉은자리에서 서만호의 편으로 넘어갔다.

《흥, 자작농토지를 누가 뺏는단말이요? 다 허튼 소리요. 그리고 형님이 애국자는 무슨 애국자요. 서강이때문에 편지질 한것이 애국자라면 그런 애국자는 쌔구 넘칠거우다. 형님, 사람 앉혀놓구 생거짓말 꾸며대려면 당장 올라가시우. 쩍하면 달성서씨가 경상도에서 봉화를 지피고 칼을 갈았다구 하는데 거기서 곽재우 의병장이 붉은바지를 입고 싸웠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달성서씨가 비슬봉에서 싸웠다는 소리는 듣다가 처음이요. 이젠 그만하구 가슈. 없는 소리 지어내지 말구. 앉았던 구들장까지 파던지겠수다.》

서달호는 문을 열며 나가라고 소리쳤다. 서만호는 그의 서슬푸른 눈빛을 보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온몸의 피가 혈관을 쓸면서 머리끝으로 세차게 거슬러 올라가는것 갈았다.

《조상을 헐뜯는 이 벼락맞아 죽을놈! 좋다. 나두 이젠 널 돌아보지 않겠다. 여기 문중어른들두 내가 싫으면 좋을대루 하게. 그러나 이다음 땅 다 떼우구 알거지가 돼가지고 나한테 찾아와서 울고불고하진 말게.》

서만호는 선언조로 부르짖고 문밖으로 나섰다. 퇴지를 내려서는 그의 두다리가 학질을 만난 사람처럼 떨었다.

누구인가 단장을 쥐여주자 후들거리는 손으로 받아서 내짚었다. 단장이 한곳을 찍지 못하고 여기저기 헛짚었다.

서달호는 내다보지도 않고 방안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방안은 한여름 소낙비가 두드리고 지나간 뒤처럼 고요했다. 등골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려 허리까지 내려왔다. 무서운 싸움을 치르고난 그의 가슴속으로는 무어라 형언할수 없는 불안이 엄습하였다. 그는 력대적으로 서만호와 의가 덧난 사람들은 모두가 무사치 못했다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서만호에게는 그런 악마와 같은 힘이 있었다. 사실 서가문중사람들도 그것이 무서워서 지주에게 더욱 굽실거리고 순종해온것이다.

서만호를 바래우고 들어온 령감들도 불안에 잠겨 묵묵히 담배를 태웠다. 이따금 정지에서 들려오는 가위눌린것 같은 아이들의 잠꼬대소리가 서달호를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가만, 거 이자 서만호가 적실한 말이라구 했지?》

서만길이 입에서 장죽을 떼며 물었다.

《형님, 무슨 말이 적실하다는거요?》

서달호가 휙 돌아앉으며 역증을 냈다.

《무슨 말은 무슨 말. 자작농토지두 몰수한다는 소리지···》

《헛 참, 그건 거짓말이라는데두요. 아까 장군님께서두 땅없는 농민에게 땅을 준다고 하셨지 언제 자작농토지를 몰수한다고 하셨소?》

《그래두 그 사람이 그렇게 엉뚱한 소릴 지어내겠나. 이제 와서 가만 생각해보면 장군님께선 우리를 저 조순근이같은 알짜 소작농으루 아신것 같아.》

서만길은 점점 더 낯빛이 컴컴해졌다.

《좋수다. 여기서 벙어리 랭가슴앓듯 말구 마침 동회를 한다는데 거기 가서 알아봅시다. 씨원히.》

서달호가 먼저 일어나서 령감들을 내끌었다.···

서가마을로인들이 제일 늦어서 회합장에 나타난것은 바로 이런 사연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물론 김창규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지 알수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그려진 불안의 그림자가 심상치 않게 생각되였다. 그러나 그는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서씨농민들도 농조에 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젠 다른 농민들도 지주 서만호와 맺힌 원한을 그 무슨 서씨문중에 대한 원한과 같이 생각해선 안되겠습니다. 저 장춘하아저씨나 조순근아저씨까지도 그렇게 생각해왔기때문에 서씨농민들이 오늘까지 농조를 더 경원해왔습니다. 이게 잘된 일입니까. 다같이 제 땅을 못가지고 가난한 소작살이를 하면서 넌 서가가 돼서 싫고 넌 박가나 조가가 돼서 싫다, 이렇게 짓몰아댈내길 하면 농조는 해서 뭘하자는것입니까. 그리구 또 말해둘건 자작농들은 앞으로 토지개혁을 해도 리해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있다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 장군님앞에 달려갔던 농민들중에 자작농들이 대부분인것 같은데 말 좀 해보십시오. 서만호가 그 땅을 자손대대루 붙여서 잘살라고 그냥 놔둡니까. 이 신당리에두 자작농을 하다가 소작살이로 떨어진 농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땅도 땅같은걸 못가지고 반자작 반소작을 하면서 왜 토지개혁이 자기네와는 상관이 없다고 보십니까. 나라에서는 앞으로 정평집 서달호농민처럼 땅이 적은 자작농민들, 중농들에게도 땅을 더 주고 나쁜 땅은 좋은 땅으로 바꾸어도 줍니다. 그런데 지주편에 가붙어서 토지개혁을 강건너 불보듯한다면 그게 한심하지 않습니까. 오늘저녁 이자리에 모인 달성서씨농민들은 다 토지개혁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김창규는 두손을 내흔들며 땅을 노나주는 시늉을 했다.

김창규의 연설은 정통을 찔렀다. 바로 그 문제를 알아보려고 왔던 서가마을로인들의 눈은 금시 별처럼 반짝거리였다. 서달호의 눈귀에는 굵은 이슬이 맺히였다.

김창규의 이야기가 끝나자 장춘하가 농조원명부책을 들고 퇴지에 나와서 새 사람들을 농조에 가입시키는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였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이미 조합에 든 사람들은 그냥 그자리에 있고 이제부터 들 사람들은 이름을 부를테니 한사람씩 나와서 여기 제 이름자곁에다 지장을 찍던가 십자를 긋던가 해야겠습니다. 그새 내가 일을 잘못했습니다. 군당조직부장한테 말을 들었지만 이제까지 서가마을과 담을 쌓고 산건 사실이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터이니 서루 마음을 엽시다. 자, 서만술, 농조에 들겠소?》

장춘하가 퇴지밑에 서있는 농민을 굽어보며 물었다.

《녜, 그런데 농조에 들긴 들겠는데 저···》

《어서 말하오.》

농민은 발끝을 내려다보며 대답을 못했다. 조순근이 옆에서 왜 그러는가고 다시 물어서야 머리를 들며 래일 와서 대답하면 안되겠는가고 했다. 그 소리에 주위사람들이 와 하고 웃었다.

《거 안사람하구 의논을 해봐야겠다는군.》

《챠, 그런 잡스런 말은 왜 꺼내? 내가 농조에 안들가봐 그래?》

서만술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러더니 목을 빼들고 울밖을 발돋움해서 휘 둘러본다.

《다른게 아니구 내 아까 들어오면서 보느라니 울밖에 국둑발이랑 몇이 와서 엿보더군. 그것들이 가서 저 만호형님한테 고해바치면 래일부터 당장 땅떼고 빚갚으라고 지랄을 할게 아니야.》

그 소리에 조순근이 눈을 부릅뜨며 울밖을 내다보았다. 딱히 얼굴은 안보이는데 검은 그림자가 두서넛 얼른거리다가 울바자밑에 숨는것이 보였다.

《괘씸한놈들, 영길아! 너들 총 있지. 그걸루 저 울밖에 와서 어슬렁거리는놈들을 갈겨라!》

사람들이 모두 돌아서고 굴뚝옆에 앉아있던 영길이가 장총을 절컥거리며 마당으로 달려나왔다. 그 소리에 기겁을 한 검은 그림자들이 후닥닥 일어나 달아났다. 영길이와 청년들 몇이 따라가며 《이놈들, 서라!》 하고 소리질렀다. 그들을 따라가는 자위대원청년들의 뜀박질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어 설레던 군중이 다시 정숙해졌다. 장춘하는 서만술에게 지장을 누르게 한 다음 련이어 서가들을 불러내였다.

조순근이 장춘하의 옆에 서서 일을 돕고있는데 누군지 옆에 와서 그의 손을 움켜잡았다.

《이건 뭐요?》

조순근은 눈이 둥그래져서 손을 움켜잡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순근이, 우릴세, 우릴 용서하라구. 먼저번엔 정말 안됐어.》

말하는 사람은 오봉산비탈밭을 서만호한테서 소작받았다고 하면서 제 밭처럼 돌아보던 사람이였다. 제 사촌동생도 함께 지장을 찍겠다고 나와섰다.

《우리가 땅이 없어 그랬지 그 돌밭이 무슨 욕심이 나서 그랬겠나. 우리 서로 화해하자구.》

《허허, 그게 뭐, 자네들 잘못이겠어··· 서만호의 롱간질에 그렇게 된거지.》

조순근은 얼굴을 붉히며 어서 지장을 찍으라고 고개짓을 했다. 지장을 찍고 돌아서는 그들은 땅이라도 분여받은것 같은 기분으로 입이 벌어져 벙글거렸다.

《다음은 서달호아저씨 나오시오.》

조순근이 사랑방에 대고 손짓했다. 그러자 군중들속에서 그 령감은 농조에 들 자격이 없다고 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령감은 그 성을 갈기전에는 안돼요. 농조가 뭐 저런 령감들 가난구제하는데요. 실컷 나깨미국수나 눌러먹다가 북망산에 가라구 내버려두자요.》

한 농민이 송편을 입에 문듯 볼이 부어서 소리쳤다. 그러자 일어서 나오려던 서달호가 그 소리를 듣고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같이 온 령감들을 둘러보았다. 그 령감들도 같은 처지인지라 모두 어깨가 축 늘어져 눈길을 허둥댔다.

《달호아저씨, 일없습니다. 어서 나와 지장을 찍으십시오.》

조순근의 곁에 서있던 김창규가 웃음을 짓고 말했다. 서달호는 사람들 어깨를 누르며 발을 빼였다.

걸어나오는품이 어쩌면 술에 취한 사람같았다. 걸음을 옮겨짚을 때마다 다리가 비틀거리고 손이 허우적거렸다. 얼굴은 수수떡처럼 뻘개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지경이다. 사람들은 더 말을 걸지 않고 그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서달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조순근이 가리키는 곳에다 지장을 꾹 눌렀다. 그러더니 풀썩 주저앉으며 아이들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으으으··· 내가 등신이웨다. 오늘저녁에두 우리 집에선 에딸이 나깨미국수를 눌렀시다. 내가 환장을 했지. 그 사람 못먹을걸 먹으면서두 서만호의 땅을 다치지 말아달라구 장군님께 진정을 해. 이, 이놈은 골통이 박살나두 아까울게 없어요. 날 왜 모아붙어 두들겨패질 않소? 난 아까 여기 들어와서부터 맞아죽던지 동리에서 쫓겨나던지··· 그럴 각오를 하고 기다렸시다. 으흐흐흐···》

서달호는 복장을 두드리며 울었다. 조순근은 그러지 말고 어서 일어서라고 어깨를 잡아당겼다.

《날 농조에 받아주니 고마우이. 난 성을 갈겠시다. 이제부턴 서달호라구 하지 말구 박달호라구 불러두 좋아요. 윤달호라구 불러두 좋구요. 글쎄 저놈이, 저 살괭이같은놈이 오늘저녁에두 내 집에 쌀 한자루를 내려보냈수. 서만호! 이 이 구미여우 같은놈, 내가 그 쌀 받아먹고 장창 따라지목숨으루 죽어살줄 아느냐? 갈아먹어두 씨원치 않을놈! 어이구, 내가 미쳐두 바루 못미쳤지.》

《저런 마른 벼락맞을놈 봤나.》

서만호가 쌀 보냈다는 소리에 귀가 떠서 모두들 주먹을 떨었다.

《이 사람들! 우리 집이 왜 정평집인줄 아나? 우리 조상들이 뭐 정평에서 살기라두 한줄 아우? 우린 정평이 어데가 붙어있는지두 모르오. 정평이 옛날 제일 못사는곳이 돼서 그곳 사람들을 정평짜드래기라고 했답디다. 우리 집이 너무 못살다보니 옛날 내 나기전에 벌써 정평집이라는 패호가 붙은거요.》

서달호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주위사람들이 모두 눈물이 그렁해서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쉬였다. 조순근은 옷소매로 눈언저리를 닦아내리며 서달호더러 어서 일어서라고 코멘 소리를 했다. 옆사람들이 들어일구어서야 서달호는 겨우 일어나 방안으로 비칠거리며 들어갔다.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 코물이 범벅이 되여 불빛에 번들거렸다.

서달호까지 가입하자 조순근은 마음이 후련하였다. 그는 신기한 생각에 잠겨 농민들의 이름이 적히고 붉은 지장이 찍힌 명부책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다투고 경원하던 여러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진것이다. 사람이 개심되는것이 이렇게 되는것인가.

조순근은 가슴속에서 뜨거운 정이 끓어올라 번쩍 고개를 쳐들고 서씨농민들이 들어가있는 방안과 마당을 살펴보았다.

《여러분들, 이밤에, 나는 서씨들한테 고맙단 인사를 따루 하구 싶쉐다. 이렇게 다 농조에 드니 정말 고맙시다.》

조순근은 허리를 굽혀 방안과 마당에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느닷없이 서씨들을 향해 인사를 하는 조순근을 의아쩍게 바라보았다. 그러거나말거나 조순근은 숨을 크게 들이긋고는 하고싶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젠 우리가 김일성장군님 말씀대루 힘을 합쳐서 저, 저 서만호를 치게 됐시다. 우린 김일성장군님을 믿고 장군님 하라는대루 하면 됩네다. 내 일전에두 군중대회에 나가서 소리쳤지만 우리의 하늘이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시우다. 서씨문중두 이젠 김일성장군님을 믿고 따라야 살길이 열린다는걸 똑똑히 알아야 해요. 서만호같은놈을 아무리 두손끝에 받들구다녀야 땅 한평 거저 생깁디까. 배가죽에 비게가 한뽐이나 되는 저놈은 평생 우리 작인들의 뼈국물을 울궈먹고있다는걸 잊어선 안돼요. 내가 성미가 우락부락해서 서씨들한테 눈에 거슬리는 일이 많았겠는데 다 용서해주슈!》

조순근의 목소리는 갈려있었다. 그는 또한번 손을 배허벅에 대고 허리를 굽혔다.

《그만하우. 잘못이야 우리한테 더 있지.》

서씨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질렀다. 얼굴에 웃음이 함뿍 실린 김창규는 박수를 쳤다. 농민들이 다같이 박수를 따라쳤다.

창규는 문득 장군님께서 토지개혁은 다름아닌 사상개혁이며 인간개혁이라 하던 말씀이 떠올랐다. 스무대를 내려온다는 서씨문중의 얼음산이 눈녹듯 녹아내리는 마당에서 자신을 회개하는 농민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듣느라니 그 말씀의 의미가 더욱 뜻깊어져 그는 흥분을 눅잦힐수가 없었다. 방안에서 마당을 내다보는 서달호의 얼굴에도 미소같은것이 어려있었다. 아, 내가 서만호와 맞서서 그렇게 해댈수 있은것이 결국은 내 등뒤에 이 사람들이 뭉쳐있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였구나. 서달호는 가슴이 확 열려 두터운 손으로 더 세차게 무릎을 쥐였다.

회의가 끝나고 흩어질 때에는 서씨들도 타성사람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그것은 마을이 생겨 처음보는 희한한 광경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