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0장 3


 

제 10 장

3

 

모두가 잔디밭에 자리잡고 앉자 장군님께서는 아까 서씨령감들이 하던 말을 전하면서 조합장들의 생각은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장군님께서 무슨 의향으로 말씀을 하시는지 몰라 모두 얼굴들을 숙이고앉아 얼른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뒤쪽에선 서로 먼저 말하라고 옆을 찌르기도 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장군님을 처음 뵈옵는지라 그이의 환하신 얼굴을 우러러보기에 정신이 없었다.

《장군님, 거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동흥리농민조합장 김재경이 두손을 배허벅에 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하십시오.》

《인제 장군님 말씀을 들어보면 저 늙은이들이 지금 씨족관계가 어떻다고 하는 구실을 내대고 저 오봉산앞에 있는 아흔아흡간짜리 지주를 다치지 말아달라고 청원을 한것 같은데 그건 도저히 용서할수 없는 일입니다. 저들은 거지같이 살면서 무엇때문에 서만호는 농민들의 고혈을 짜내며 첩까지 거느리고 흥야라 붕야라 잘먹고 잘살게 하자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저 령감쟁이들은 지금 눈이 멀어도 한정없이 멀었습니다. 우리가 그 눈을 뜨게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 눈을 띄워주어야 합니다. 제스스로 뜨지 못하면 칼끝으로 째놔서라도 눈동자가 세상을 똑바로 내다보게 만들어놔야 합니다.》

결패사나운 다른 농민조합장이 받아쳤다.

《뭐, 뭐라고?》

베감투 쓴 령감이 팔뚝질을 하며 대들었다.

《우리가 장군님께 죄다 말씀을 올리기도 했지만 서만호는 우리 달성서씨의 등걸이야. 그리구 애국자야. 또 같은 서씨로서 제 등걸을 받드는것은 우리 문중의 미덕이구 도리구···》

《그게 잘못 보고 하는 소리요. 서만호가 무슨 애국자란말이요. 그놈이 학도병에 걸린 제 아들놈을 빼내기 위해 총독부를 드나들며 그런 놀음을 벌린걸 누가 모를줄 아는가. 정말 눈들을 째놔야 알겠소?》

《흥, 난 눈알을 째놔도 내 할소리는 해.》

신경질적으로 생긴 베감투쟁이가 순간 장군님께서 옆에 계신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린듯 가슴팍을 주먹으로 탕탕 쳤다. 그러자 한 령감이 그의 팔소매를 황급히 잡아끌며 자중하라고 타일렀다.

《그렇습니다. 토론하는 마당에서 저마다 감정을 사며 화부터 내면 합의가 잘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들을 진정하고 생각하는바를 차근차근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기탄없이 다 말해보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우선우선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할수 있도록 좌중의 기분을 완화시키시였다.

조순근이들이 농조에서 나간 문제때문에 마음을 쓰며 자책하던 강진건은 령감들의 얼빠진 소리를 듣게 되자 다시금 마음속깊이에 있던 밑불이 되살아났다. 우리 농민이 언제 가야 제 정신을 차리겠는가. 저런 감투쟁이들이 언제 가면 눈을 뜨고 세상을 똑바로 내다보겠는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에 속이 타들었다. 강진건은 그래도 장군님의 인내력에 은근히 감화를 받으며 끓어오르는 열기를 눌렀다.

《제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김재경이 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령감쟁이들의 생활형편은 한심합니다. 농사를 지어서 한해 계량은커녕 동삼석달 죽물을 울궈먹기도 힘든 형편입니다.

제 땅이 모자라 더러 소작도 부치는데 글쎄 거기서 난 곡식을 거꾸로 된 3.7제로 갖다바치다보니 제 땅 소출까지 다 빼앗겼습니다. 조순근의 말에 의하면 태호령감넨 벌써 쌀독이 바닥나서 쪽박을 들고 한되박 달라고 동냥을 다닌답니다.》

태호란 서만호의 8촌동생벌되는 령감인데 그는 제 말이 나오자 이마에 지렁이같은 피줄이 돋아올랐다. 그러나 말은 못하고 곰방대만 자꾸 빨았다.

《그다음 또 그곁에 앉아있는 서만호와 8촌형제간이 된다는 정평집 달호네는 농사지은 벼를 다 갖다바치고 온 겨우내 나깨미국수로 살아갑니다.》

나깨미란 메밀의 새하얀 알속을 뽑아내고 겉가죽을 갈아서 가루낸것을 말한다.

《나도 저 집에 가서 국수를 한그릇 사먹은 일이 있는데 대여섯명되는 어린애들이 국수내리는 더운 가마옆에 모여앉아서 서로 흰국수 달라고 울며 보채였습니다. 시꺼먼 나깨미국수는 지린내가 나서 못먹겠다고, 그래서 내가 국수 한그릇을 사먹고 한그릇 더 달래서는 그 우는 아이들을 모여앉히고 저가락으로 국수를 한오리씩 걸어서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한오리라도 더 먹겠다고 납작납작하는 입들을 제비새끼가 에미 물어온 벌레들을 받아먹겠다고 내밀듯 다투어 내밀었습니다. 나도 속으로 울면서 아이들한테 국수오리를 먹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나와서는 아무리 국수가 먹고싶어도 저 집에 국수사먹으러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글쎄 제농사 지어서 다 갖다바치고 저는 이렇게 살면서 뭐뭐 왕벌 서만호는 다치지 말아달라고?》

태호령감의 곁에 앉아있는 정평집 달호령감은 비뚤어진 통감투머리를 끄덕거리며 울었다. 다른 령감쟁이들도 낯색이 시뻘겋게 되여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방금 들고일어나며 윽윽하던 기운들이 단매에 넋을 먹은것 같았다. 엇나갈 땐 엇나가더라도 흥정할수 없고 감출수 없는것이 자기의 처지였던것이다.

《장군님, 저 서만호는 때려없애야 합니다. 저걸 그냥 두고는 이 재령벌농민들이 한시도 편안히 살수가 없습니다. 저놈은 사방 100리가 되는 벌을 가지고있습니다. 벌의 소작인들이 몇천명, 몇만명이 될것입니다. 저놈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 몇만명이 다 저 태호령감이나 달호네 이상으로 가난에 울수 있습니다. 저놈이 저를 떠받들어올리는 제 문중에 대해서도 그 모양인데 항차 다른 소작인들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서만호의 땅은 빼앗아내야 합니다. 한평도 남기지 말고 다 빼앗아내서 농민들을 살궈야 합니다.》

이 소리가 나오자 농민조합장들이 옳다고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한 농민조합장은 일어서며 땅을 빼앗을 때 저따위 령감쟁이들도 서만호와 같이 죽을 구멍에 몰아넣어버려야 한다고 웨치였다. 장군님께서는 껄껄 웃으시였다.

《지주의 땅을 빼앗아내야 한다는것은 백번 옳은 소리입니다. 내 여기서 올려보낸 군내농민들의 청원서를 받아보았습니다. 그런 편지가 지금 온 나라 농촌에서 올라오고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힘을 얻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농민들의 들끓는 기세에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이때 김재경이 엉거주춤 앉다 말고 두손을 배허벅에 대며 장군님의 얼굴을 송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더 할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녜, 실은···》

김재경은 말을 꺼내기가 거북한듯 운만 떼놓고는 자기 조카의 얼굴을 피끗 훔쳐보았다. 김창규는 삼촌이 그러는 모습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쉴뿐 별다른 표정이 없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장군님께서 재촉하셔서야 김재경은 입술을 깨물며 허리를 폈다.

《실은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꼭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싶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장군님께서는 김재경이 갑자르는것을 보며 어서 말을 하라고 끄덕이시였다.

《장군님, 앞으로 지주의 땅을 다 빼앗은 다음 땅은 어떻게 됩니까. 여기 장군님을 직접 만나뵙고온 조순근의 말을 들을것 같으면 땅은 분명 농민들의 소유가 된다고 했는데 또 다른 소리도 있고 해서···》

《다른 소리라면 어떤 소리입니까?》

《글쎄 지주의 땅을 빼앗아선 농민들한테 노나주지 않고 무슨 집단농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 군당비서어른이 저번날 군중대회에서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집단농장을 만들다니?》

장군님께서는 뜻밖의 말에 뒤에 서있는 김창규를 돌아보시였다. 창규는 고개를 숙이며 그런 일이 있었다는것을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얼굴에 그늘을 짓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제 겨우 눈을 뜨고있는 순박한 농민들에게 허튼 소리를 마구 줴치는 사람이 군당비서의 자리에 앉아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으시였다.

《군당비서는 지금 어디 있소?》

장군님께서 한참만에 창규에게 물으시였다.

《큰 간부가 부른다면서 평양에 올라갔습니다.》

《평양에?··· 그래 조직부장동문 어떻게 생각하오?》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창규는 군당비서의 전횡과 오만무례한 행동에 대해 말씀을 올리기가 부끄럽고 괴로와 주밋거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창규에게 더 캐여묻지 않고 당의 로선과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는 그 누구든 사상투쟁을 해야 된다고 하시였다. 그리고는 농민들을 향해 돌아서며 물으시였다.

《여기 군당비서가 집단농장을 만든다고 했다는데 그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구도 인차 대답을 못했다. 김재경이도 질문을 해놓고는 안타까운듯 곰방대만 주무르며 입을 꼭 다물고있었다.

《대복이 아버지, 대복이 아버지가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장군님의 말씀에 조순근은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지만 얼른 말은 꺼내지 못하고 일순간 푸들푸들 떨었다. 마른침을 삼켰는지 주먹만 한 울대뼈가 목에 두드러져 올랐다.

《순근이, 어서 대답을 올리게.》

곁에 앉아있던 정기수가 조순근의 다리를 꾹 질렀다. 지난번 흑호놈들한테 맞아 한절반 죽게 되였던 정기수는 조순근이 지어온 약을 먹고 완쾌되여 털고 일어났다. 막내아들도 몸이 다 나아 지금 그의 겨드랑이밑에서 새별같은 눈으로 장군님을 우러러 보고있었다.

《장군님, 지금 당장이래두 지주의 땅만 빼앗아내면 전, 전 여한이 없습네다. 그저 이 눈앞에서 지주만 얼른거리지 않으면 제땅이 아니구 나라땅에서래두 농사를 지어먹갔습네다.》

조순근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두눈에는 말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더 있었다. 땅에 대한 사무치는 생각을 아뢰고싶었으나 입을 꾹 다물고 말을 더 잇대지 않았다.

《대복이 아버지, 됐습니다. 그 심정을 내 다 알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일어서며 조순근의 두손을 들어 힘있게 잡아주시였다. 그리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절절하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러분, 똑똑히 들으십시오. 우리가 토지개혁을 하자는것은 집단농장이 아니라 여러분들과 같은 농민들에게 땅을 노나주기 위해서입니다. 농민들모두가 제 땅을 가지고 제 농사를 짓게 만들자는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려는가? 그게 바로 농민들의 요구이고 소원이기때문입니다. 수천년세월 기원해온 이 나라 농민들의 희망이기때문입니다. 농사와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우리는 농민들이 요구하고 소원하는대로 하지 절대로 다르게는 하지 않을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들고 넓은 벌을 바라보시였다.

그렇다. 이제 세월이 흘러 썩 후날에 가서 만약 저 농민들에게 집단농장이 사활적인 요구로 제기된다면 그이께서는 또 집단농장을 만드실것이다. 인민들의 요구와 념원을 원동력으로 해서 력사의 수레바퀴를 굴리여야 한다는것은 일찌기 그이께서 새롭게 찾으신 혁명의 진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고전리론들에 크게 비여있는 공백들을 머리속으로 한참 더듬다가 김창규를 돌아보시였다.

《지금 토지개혁에 관여하는 많은 간부들과 파견원들이 어떻게 하면 토지개혁을 잘할수 있겠는지 자주 물어보군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건 농민들에게 물어보라. 그저 농민들의 요구대로, 소원대로 하면 된다〉 하고 대답해주오. 그렇소. 저 대복이 아버지같은 불쌍한 조선농민들이 자기들의 소원대로 땅을 받아가지고 제 땅에서 마음껏 농사를 짓게 해야 하오. 나는 요즘 꿈에서조차 제 땅을 받아안고 대복이와 함께 춤추는 조순근농민을 봅니다.》

《장군님, 고맙소이다.···흐흑···》

조순근은 그만 격정을 억제하지 못해 부지중 장군님의 두팔을 잡고 머리를 푹 떨구었다. 모든 사람들이 장군님의 말씀에 가슴이 쭝해져서 일어섰다.

《군농민조합장동무, 또 한가지 물읍시다.》

장군님께서 문득 이렇게 말씀하시자 키가 작달막한 군농민조합장이 두손을 배허벅에 대고 일어섰다.

《듣자니, 대복이 아버지가 아직도 농조에 다시 들지 못한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복이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빈농민들을 위해서 애쓴 사람입니다. 대복이 아버지가 나한테 가지고 온 혈서에는 이 마을 농민들의 심정과 온 나라 농민들의 간절한 소원이 다 있었습니다. 그가 교활한 놈들에게 일시 속히우기도 하고 일처리를 조금 잘못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이런 농민을 농조에서 영 내쫓는다는겁니까?》

장군님께서는 노한 표정을 짓고 엄하게 꾸짖으시였다.

《녜,··· 저 그것은 ··· 군당비서동지랑···》

군조합장은 떠듬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장군님, 그건 제탓이라구 봐야 합니다.》

강진건이 장군님을 돌아보며 침통하게 뇌이였다.

《허허, 위원장선생이 책임을 다 떠맡겠습니까?》

《장군님, 그 책임은 백번 다 제가 져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좀 숨이 나갈것 같습니다.》

《위원장선생, 그럼 우리 조순근농민을 비롯해서 농조에서 나간 농민들을 도로 받아들이도록 여기서 락착을 지은것으로 하는것이 어떨가요?》

《예, 장군님, 그리구 제가 여기 좀 남아서 일을 바로잡겠습니다.》

《그렇게 안해도 여기 동무들이 다 잘할것입니다.》

이때 조순근이 옷자락을 만지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저, 장군님.》

《왜 그럽니까?》

강진건과 말씀하던 장군님께서는 의아한 시선으로 조순근을 올려다보시였다.

《전 농조에 안들어두 일없습네다. 제가 농조에 안든들 지주놈과 안싸우겠습니까. 전 우리 신당리에서 농조에 안든 마지막 한사람까지 설복해가지구 그때 같이 들갔습네다. 지금 농조에 들어가지구두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두 많은데 저혼자나 들어가선 뭘하갔습네까.》

《농조에 든 사람들이 무슨 말썽을 부립니까?》

《요새 또 우리 마을에서 지주를 애국자라구 하는 문서에 지장을 찍는 놀음이 벌어져서 문제가 섰습네다.》

조순근은 붉어진 얼굴을 수그리며 구부정하게 서있었다. 그러는것을 장군님께서 손을 잡아 곁에 앉히시였다.

《장군님, 제가 이 신당리일을 잘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김창규가 송구한 심정으로 말씀올렸다. 그도 여기서 애국지주 보증서를 꾸민다는 상서롭지 못한 소식을 듣고 면에 나왔던것이다.

《앉소, 오늘 여기 와서 보니까 이곳 실정이 좀 복잡합니다. 이런곳일수록 농조를 강화해야 합니다. 자꾸 딸궈낼내길 하지 말고 대렬을 넓혀야 합니다. 알쭌한 사람만 찾다간 지주한테 사람들을 다 떼웁니다. 내 생각같아선 오늘 여기 나와있는 이 서씨농민들도 다 농조에 받아야 된다고 봅니다.》

《녜?》

리농민조합장들이 모두 놀랐다.

《왜 놀랍니까. 이분들의 손을 좀 보십시오. 이 손이 어디 놀고 먹는 사람의 손입니까. 아주 흙이 배인 손인데 왜 안됩니까. 잘못이 있어두 농조에 들어서 고치고 모르는것두 농조에 들어서 깨우쳐야 합니다. 농조는 농민들의 학교가 되여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앞에 앉은 서씨농민의 손을 잡아 손의 앞뒤등을 펴보이시였다. 기름기 없고 마른 나무등걸같은 검붉은 손이였다. 손바닥도 터갈린 자리들이 빗살처럼 세로 뻗었는데 손금조차 보이지 않았다. 장군님께 손을 맡긴 서달호는 코물을 들이키며 얼굴을 못들었다. 자기들이 장군님앞에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불손하게 늘어놓아 무슨 처벌을 받을줄만 알았는데 모두 농조에도 들수 있다고 하시지 않는가.

마침내 서달호는 장군님앞에 엎드리며 실토하였다.

《이 미련하고 무지한놈들을 용서해주시오이다. 실은 요즘 서만호지주가 매일같이 저희들을 모아다놓고 술잔을 권하며 토지개혁이요 3.7제요 하는건 조순근이같은 타성놈들이 서씨문중일이 잘되는게 배가 아파서 하는 고약한짓이라고 꼬드겨서 저희들이 오늘 군에 진정을 하러 가던길이였소이다. 그러던차에 장군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서달호는 말끝을 채 여무리지 못하고 온몸을 떨었다.

장군님께서는 금시 옆으로 쓰러질것같은 서달호의 어깨를 부축해주시였다.

《다 알고있습니다. 이젠 농조에 들어서 땅을 되찾아야 합니다.》

얼마후 이야기는 농사에 대한 의논으로 번져졌다. 장군님께서 목책을 꺼내고 이것저것 질문하시자 농민들은 연방 밭농사, 벼농사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순박한 농민들은 땅이 분명 차례진다는 장군님의 말씀에 기세가 충천하였다. 소출이 어떤가, 지질이 어떤가 넌지시 꼭지만 건드려도 다투어 일어나서 알고있는 농사지식을 장황하게 엮어대였다. 농사물계에 들어선 서씨농민들도 만만치 않았다. 땅을 손금보듯 하고 농사물계가 책장번지듯 밝은 이들이 땅을 다루고 곡식을 키우는 일에서 누구에겐들 뒤지려 할터인가. 땅은 하느님도 지주의것도 아니였다. 아직은 선포되지 않았지만 바로 이들이 응당 주인이 되여야 하고 또 되고도 남을 사람들인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더듬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지난해 가을 황해도 파견원으로부터 가슴아픈 서면보고를 받았던 양평마을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김창규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조직부장동무, 여기서 양평이 한 70리 된다지?》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서 갑자기 양평마을을 화제에 올리시자 농군들모두가 류다른 관심을 가지고 듣고있었다. 한때 소문이 자자했던 마을이기때문이다.

《그 마을에선 3.7제가 잘됐소?》

《우리 군이 아니기때문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잘됐다고 합니다. 양평에 있는 전답들도 여기 서만호지주의 땅인데 그 마을에서는 농조투쟁이 잘되는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 작년 가을에 파견원을 통해 숱한 쌀과 고기를 그 마을에 보내주셔서 영양실조에 걸렸던 병자들도 다 회복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는것은 그 쌀과 고기를 조만식놈이 내려보내준것으로 세상에 헛소문이 퍼진것입니다. 저도 엊그제야 그게 헛소문이라는걸 알았습니다.》

《허허, 소문이야 어떻게 나든 무어라오. 병들이 다 낫고 3.7제 투쟁도 잘했다니 됐소.》

장군님께서는 웃음을 지으며 농군들을 돌아보시였다. 그러나 농군들은 눈이 둥그래진채 서로들 마주보며 수군거리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경악하게 만든것은 장군님께서 내려보내주신 쌀이 조만식이 보내준것으로 와전된 사실이였다. 얼마나 무엄한 일인가. 물론 그 랑설의 근원을 캐여보면 양평리 의원의 잘못으로 생겨난것이다. 그는 지주를 신칙하고 농군들을 살려줍시사 하는 하소의 편지를 조만식에게 띄운 그무렵에 난데없이 마을에 쌀과 고기가 내려왔기때문에 조만식이 보낸것으로 짐작하고 기뻐서 소문을 퍼뜨렸던것이다.

조순근은 다른 농군들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있었다. 그는 양평마을에 쌀을 보내준 고마움이 커서 조만식에게 무릎을 꿇고 감사의 절을 올렸던 지난해 가을을 회고하며 낯을 붉히였다. 그때의 조만식의 얼굴은 태연하였다. 아니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조만식은 무엇인가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한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제가 보내준척하고 양평마을을 대신한 조순근의 절을 받아주었던것이다.

(고현놈, 나는 여태 사람들을 웃기는 어리석은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조순근은 가슴속 상처가 새롭게 통세를 일으켜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수그리였다. 장군님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리였다.

《조직부장동무, 그동안 양평마을같은데선 3.7제가 말썽없이 잘된것 같은데 신당리에선 왜 그렇지 못했소? 그 원인이 어디에 있소?》

《장군님, 제가 일을 쓰게 못했기때문입니다. 군당적으로 제가 신당리를 담당해서 지도하도록 과업을 받았는데 일을 옳게 못했습니다.》

김창규는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대답을 하였다.

《원인을 찾지 않고 그저 내가 잘못했소 하면 앞으로도 일을 바로잡아나갈수 없소.》

장군님께서는 김창규를 애틋이 바라보며 천천히 잔디밭에서 일어나시였다. 그이께서는 토지혁명의 앞길에 날카롭게 솟아있는 하나의 암초를 지금 이 재령강기슭에서 발견한듯싶었다. 수천년동안 뿌리깊이 박혀있는 문벌관념을 지주놈이 악용함으로써 무시할수 없는 난관을 조성시켜놓은것이다. 돌이켜보면 여기 신당리처럼 지주의 문벌이 크게 자리잡고있는 마을에서는 거의 례외없이 3.7투쟁이 순조롭게 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문벌관계로 장애받고있는 농촌마을이 적지 않은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신당리에서도 토지혁명을 잘해나가자면 반드시 문벌의 장애를 해결해야 되겠다는것을 새롭게 절감하게 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지금까지는 로동계급출신의 일부 사람들을 농촌혁명에 파견했다면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로동계급집단이 토지혁명을 도와주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지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김창규를 따로 만나 여러가지 당사업방법을 가르쳐주고 달성서씨농민들을 잘 교양할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였다. 그러느라 장군님께서는 날이 퍼그나 저물어서 신당리를 떠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