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0장 2


 

제 10 장

2

 

재령강다리로 웬 령감들이 허우적거리며 뛰여건너왔다. 바지저고리를 입고 베감투, 통감투들을 쓴 농민들이였다. 그들은 장죽을 휘저으며 저편에 있는 경위대원들한테로 다가왔다.

《저 말 좀 물읍시다. 여기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려오셨다는데 그게 사실이온지?》

《령감님들은 어데서 왔습니까?》

경위대원들은 숨가쁘게 달려온 농민들을 의아쩍게 바라보며 따져물었다.

《저 건너 〈서가마을〉사람들인데 우리 서씨문중이 하소할 일이 있어 군에 진정하러 가던길에 마침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천방지축 달려왔쉐다. 강가에 빨래나왔던 서분이라는 계집애가 그런 말을 하는데 그게 사실이온지?》

로인들중에서도 좌상인듯 한 령감이 제 손자또래의 젊은 경위대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였다. 그러고보니 서분이가 경위대원들을 통해서 여태 자기와 이야기하신분이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자 마을로 달려가서 그 희귀한 소식을 알려준 모양이였다.

경위대원들은 령감들을 데리고 장군님께서 걸어오시는곳으로 갔다. 강진건이 한발 먼저 나섰다.

《웬 사람들이요?》

강진건이 엄한 눈빛으로 농민들을 주르르 돌아보며 물었다.

《저기 〈서가마을〉이라는데서 장군님을 찾아뵙겠다고···》

경위대원이 로인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무슨 일때문이요?》

강진건은 여전히 근엄한 표정을 짓고 따지였다.

《녜, 그저 일세풍진을 다 겪으시며 나라를 찾아주신 장군님의 안면이라도 한번 익히 뵈옵자고··· 그리고 저희들 심중에 장군님께 청원할 말씀도 있고해서 급히 뛰여왔소이다.》

《꼭 장군님께 해야 할 청원인가요?》

강진건은 농민들이 한무리 우르르 밀려온것이 심상치 않아서 엄하게 경계하였다. 그런데 이때 장군님께서 한걸음 나서며 로인들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보내시였다.

《제가 김일성입니다. 이렇게 서있지 말고 저 불곁으로 가앉아서 이야기들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경위대원들이 피워놓은 불무지로 령감들의 손을 잡아 이끄시였다. 모두 땅과 씨름을 한 곽지같은 손들이였다.

《저에게 청원할 문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서 말씀들 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로인들이 모두 불곁에 쭈그리고 앉은 다음 친절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 험지에서 이렇게 뵈워 죄송합니다.》

장죽을 든 늙은이가 손을 배허벅에 붙이고 베감투 쓴 머리를 수그리며 인사를 올리였다.

《죄송할게 있습니까. 보아하니 로인장들 모두가 평생 농사일에 고생하신분들같은데 마침 잘 만났습니다. 그러잖아 농민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고 왔는데 어떤 청원인지 우선 말씀하십시오.》

장군님께서 긴장해있는 농민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강진건이 옴니암니 하는바람에 주눅이 들었던 그들은 한결 기분이 누그러져서 대답했다.

《녜, 다른게 아니고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요새 나라에서 지주의 토지소유권을 빼앗아낼 법을 만들고있다는 소문이 들려와서 지금 우리 동리에서는 뒤숭숭하게 끓고있습니다.》

《어째 끓고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신당리란 우리 달성서가네가 20대를 살아오며 뿌리내린 고장인데 지금 우리 문중엔 저 서만호같은 지주도 있습니다. 서만호로 말하면 제 증조부시절에 갈라져 가지를 쳐내려온 집안인데 나완 팔촌간이 됩니다. 그리구 여기 앉아있는 령감들이 다 등촌이기는 하지만 한집안 족속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집안에 서만호같은 땅임자가 있는걸 아주 자랑으로 여기고있습니다.》

《자랑으로만 여기겠습니까. 쌀이 없을 때는 쌀 한되박을 얻어다먹어도 그게 남한테서 얻어다 먹는것과 같겠습니까?》

장죽을 쥔 령감이 대를 부들부들하며 말하자 곁의 령감들이 다 그 말이 옳다고 부축해나섰다.

《우리는 이 신당리 아래마을 사람들이 소작료를 3.7제로 물어야 한다고 들고일어났을 때에도 그 소리를 듣지 않고 겉으로는 3.7제로 무는척하고 뒤로는 다 그전대로 가져다물었지요.

그리구 전번날 땅 달라고 고아대는 읍내 농민회합에도 우리 서씨들은 한사람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또 우리가 3.7제로 할수 없는것이 저 사람은 왜정때 일본놈들과 열렬하게 맞서싸운 애국지주지요. 총독부정무총감한테 학도지원병제를 걷어치우라는 통고문까지 냈던 사람이웨다. 한다하는 지사들이 엄두도 낼수 없는 일을 저 사람은 제 나라의 청년들을 위해서 목을 내대고 그런 대담무쌍한 일을 했지요.···》

통감투 쓴 정평집령감이 껴들었다. 통감투밑의 이마에서는 땀이 번들거렸다. 여기 나온 령감들은 신통히도 읍에서 열렸던 농민궐기대회에 가지 않았던 령감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두서없는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심중하게 새겨들으시였다. 지주에 대한 농민들의 원한이 하늘에 사무쳐있어 혈서까지 들어오고있는 때에 도대체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싶었다. 다른 지방에서도 지주의 문중세력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말이 옳은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서가마을》농민들의 주름많은 고동색 얼굴과 갈퀴같은 손들을 보고 그들 역시 지주의 천대속에서 착취당하며 살아온 농민들임을 확신하시였다.

그런데 이 농민들이 왜 이렇게까지도 서만호지주를 옹호해나서는것인가?

장군님께서는 분명 그들이 지주의 어떤 꼬임수에 넘어갔거나 아니면 오랜 세월 문중의 세력자인 지주놈에게 얽매여살던 종속관념의 타성으로 해서 그런 황당한 소리를 하고있다고 생각되시였다. 한평생 굴종하는데 습관된 이 어리숙한 농민들의 배후에서 간악하게 압력을 가하고 추동질을 하는 지주의 책동이 눈으로 보는듯 선하시였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서가마을》농민들이 스스로 자기 본심을 드러내도록 서두르지 말고 품을 놓아 이야기를 차근차근 끌고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장군님 곁에 있는 강진건은 이 쓸개빠진 령감들을 당장 쫓고싶었지만 장군님께서 그들과 하도 진지하게 말씀하시는바람에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로인님들이 여태 많은 말씀들을 하셨지만 나에게 무슨 청원을 하자는것인지 아직 똑똑히 모르겠습니다. 우선 그걸 찍어서 말씀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없기때문에 곬을 잡아주시였다.

《예, 그 청원이란 다름이 아니고 우리 서만호동생의 땅을 빼앗지 못하도록 란동군들을 신칙해달라는것입니다. 제발 장군님께서 땅빼앗는 법을 만들어 내려보내지 못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 땅은 만호적은이의 등기책에 올라있을뿐 우리 종중전답, 아니 문중전답이나 한가지입니다. 대대손손 복을 누리며 살아온 신당리 서씨가문에 그런 법을 내린다는것은 달성서씨더러 모두 타죽으라고 불을 지르는것과 같습니다.》

《···》

장군님께선 아무리 봉건관계에 얽매인 령감들이라도 말이 너무 지나친것 같아 안색이 엄해지시였다. 서씨가문에 불을 지르다니? 그건 웃어넘길수 없는 말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서만호지주의 악의에 찬 진정서를 읽어보신 생각도 나시였다. 이런 봉건문중의 울타리속에 굳건히 앉아있는놈이니 과연 그런 거만한 편지를 보낼만 하였겠다고 생각되시였다. 령감들은 안색이 근엄해지시는 장군님을 은근히 살펴보며 저들도 말이 너무 지나친것 같아서인지 입을 다물고앉아 장죽과 고불에 담배들을 쑤셔담았다. 운명적인 판결을 기다리고있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살가죽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실지 그들은 만호가 망하면 곧 자기들도 망하는것으로 생각하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신당리농민들과 영길이를 비롯한 자위대원들이 또 재령강다리쪽으로 밀려왔다. 장군님께서는 찾아나온 사람들을 따뜻이 맞아주고 《서가마을》령감쟁이들과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또 말씀을 하십시오.》

《서가마을》령감들은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을 흘끔흘끔 돌아보면서 장군님의 물음에 대답했다. 주위사람들은 그들의 외람된짓을 좋지 않게 보고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것 같았다.

《달성서씨라고 하면 조선의 성씨중에서도 다섯손가락안에 꼽히는 성씨지요.》

《독립군들이 의연금 모으러 다닐 때 우리 문중에서 소를 팔아 돈을 낸 생각은 안하나. 저 서만호가 총독부정무총감한테 학도지원병제를 걷어치우라고 호령을 친것도 다 그런 바탕에서 나온거라네 》

좌상격인 령감이 목을 쳐들고 소리쳤다. 장군님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없어졌던 서분이가 나타난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다리목으로 숨을 할딱거리며 달려오더니 사람들속에 앉아계신 장군님을 띠여보고는 대바람에 엎어질듯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장군님!》

《얘야, 넌 어딜 갔댔느냐?》

장군님께서는 서분이를 안아일으키여 어깨를 다독여주시였다. 처녀는 어떻게나 급히 달려왔는지 어깨가 땀에 젖고 코마루에 콩알같은 땀방울이 함함히 내돋혀있었다. 주눅이 들고 수집음만 타던 처녀가 그리도 명랑해지고 장군님께 스스럼없이 부니는지 사람들모두가 놀라와했다. 어째서 한순간에 딴 처녀처럼 됐는지 그것은 서분이자신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장군님, 대복이 아버지가 옵니다. 저기 저 다리로 들어서는게 대복이 아버지입니다.》

《음, 걸음새가 비슷하다. 그러니 네가 동네방네 알리러 뛰여다녔구나. 허허허.》

장군님께서는 웃으며 다리쪽을 바라보시였다. 등이 굽고 키가 꺽두룩한 농민이 토목바지저고리를 펄럭거리며 다리를 바삐 건너오는게 조순근이 틀림없었다. 조순근이 뛰여오는것을 보고 《서가마을》령감들도 수군거리며 일어섰다. 그들은 평시에 무던하다가도 일단 성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순근이 자기네 가문을 곱지 않게 본다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다리를 건너온 조순근이 장군님앞으로 반달음으로 걸어왔다.

《장군님, 아니, 이 추운날에 여기 오시다니···》

조순근은 장군님앞에 엎드리며 절을 올리려고 하였다.

《하하, 이러지 마십시오. 젊은 사람한테 절은 무슨 절을 합니까. 이젠 구면인데 손이나 잡아봅시다.》

장군님께서는 서둘러 조순근의 어깨를 들어올리며 손을 내미시였다. 조순근은 겨우 일어나 장군님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구석엔 어느새 물기가 개펴돌았다. 그는 상기된 얼굴을 들어 장군님앞에 둘러선 사람들을 주런이 둘러보다가 영길이를 보더니 눈빛이 사나와졌다.

《너랑 여기 있으면서 한지에 이렇게 장시간 앉아계시게 하느냐?》

조순근이 언짢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놔두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마을에 자꾸 들어가자는걸 내가 싫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지주가 저렇게 틀고앉아서 이 마을을 굽어보고있는데 내가 들어가선 뭘합니까. 생각같아선 대복이 아버지, 어머니 사는걸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또 시간도 그렇게 많지 못합니다. 해주로 가던길이 돼나서.··· 그래 대복이랑 잘 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둘러선 청년들을 쭉 훑어보며 물으시였다.

《예, 그놈은 요즘 무슨 공부를 한다면서 오늘따라 새빠지게 공책을 사러 읍으로···》

조순근은 장군님앞에 아들을 내세우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워서 중얼거리고는 장군님을 올려다보았다.

《장군님을 한지에 모시니 저희들 마음이 죄송스럽습네다.》

《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무들이 여기다 이렇게 모닥불을 피우지 않았습니까. 참 강선생님, 이분이 저에게 혈서를 가지고왔던 바로 그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곁에 서있는 강진건에게 조순근을 소개하였다. 강진건은 기골이 장대하고 입술이 두툼한 조순근을 보며 태연히 눈인사를 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저처럼 순진한 농군을 농조에서 쫓아버리게 한 자신의 죄책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히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조순근의 어깨를 누르며 불곁에 앉히시였다. 그때 마침 그이께서는 조순근의 어깨너머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오는 농민들을 보시였다.

《그런데 저기 저 사람들은 웬 사람들입니까?》

《면농조에서 저와 같이 회의를 하던 사람들입네다.》

조순근은 뒤를 돌아보며 말씀드리였다. 군당조직부장 김창규와 군농민조합장, 면농민조합장, 동흥리 김재경을 비롯한 각 리조합장들이 10여명 달려오고있었다. 서분이의 련락을 받자 회의고 뭐고 다 걷어치우고 뒤따라 달려온것이다.

조합장들은 모두 두손으로 장군님의 손을 부여잡고 허리가 땅에 닿게 인사를 올리였다.

《장군님, 제가 군농민조합장입니다.》

군농민조합장은 인사를 하고나서 다시 허리를 구부리며 자기 소개를 했다.

《아, 그렇습니까. 군농민조합장동무, 한 군의 조합일을 책임지고 얼마나 수고가 많겠습니까?》

《저야 뭐, 장군님께선 나라의 인민위원장을 하실래기 얼마나 수고하시겠습니까.》

군농민조합장은 원래 토배기농사군이여서 말투가 투박하고 인사치레를 할줄 모르는 사람이였다. 뒤에 서있던 김창규가 그의 옆구리를 지르며 무슨 인사가 그런가고 눈을 흘겼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하하하, 군농민조합장동무가 진짜 내 수고를 알아줍니다. 아닌게 아니라 인민위원장을 처음 맡다보니 억이 막히는 때가 많고 일이 간단치 않습니다. 인사를 받던중 제일 씨원하고 마음에 드는 인사입니다. 허허허.》

그바람에 주위사람들이 모두 긴장한 마음을 풀고 소리내여 웃었다. 군농민조합장의 어이없는 인사에 가슴이 뜨끔해졌던 김창규도 장군님께서 허물하시지 않자 어깨를 들썩거리며 따라웃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인사를 한 다음 맨 나중에 정중히 나서서 장군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군당 조직부장동무라? 이름이 김창규?··· 아하 생각나오. 바로 동무가 재령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김책동무한테 떼를 쓴 동무지? 송림로동자 강습소를 졸업하던 날에···》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머금고 물으시였다. 창규는 더수기를 긁적거리며 어줍어하였다. 그러면서도 장군님께서 자기 이름을 알고계시는데 놀랐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동무의 부모들이 재령벌에서 돌아갔고 또 동무도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머슴살이를 했다는데 왜 오지 않겠다고 했소? 이 재령벌에는 바로 동무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데···》

《장군님!》

창규는 그저 이렇게 부르고는 목이 메여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고 머리를 수그리였다. 장군님께서도 부모잃고 고생하던 그의 가슴아픈 옛 상처를 건드리는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말씀을 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난날의 머슴이 제철소 로동을 거쳐 오늘 군당조직부장으로 사업하고있는것이 대견스러워 이윽히 창규를 지켜보시였다. 젊음과 열정을 담고 번쩍거리는 그의 눈빛을 보자 이런 로동계급출신의 일군들을 농촌에 파견하는 조치를 취한것이 천만번 잘한 일이였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가지게 되시였다.

《그러니 이 마을 농민들로부터 농조와 군당간부에 이르기까지 다 모인셈인데 뜻밖에 일이 잘됐군. 여기는 자리가 좀 좁으니 저쪽 잔디밭으로 가서 이야길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맞은편 잔디밭을 가리키며 걸어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