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0장 1


 

제 10 장

1

 

승용차는 들판으로 곧추 뻗은 신작로를 따라 경쾌하게 달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밝은 표정으로 줄곧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아득한 하늘가에 억센 기복을 이루며 연줄연줄 뻗어간 산발들에는 연무와도 같은 뽀얀빛이 어려있었다. 점점이 널려있던 잔설마저 깡그리 녹아버린 거뭇한 들판은 물기를 머금고 번들거리고있었다. 봄은 벌써 대지의 구석구석에 찾아온듯싶었다. 새들이 가로세로 차창을 스쳐날며 그 무슨 뜻모를 소리를 끊임없이 지저귀였다. 반쯤 열린 차창으로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옆에 앉은 강진건을 잠간 돌아보고 조용히 속삭이시였다.

《예, 날씨같아선 당장 밭을 갈아도 될것 같습니다.》

강진건이도 차창밖을 내다보며 소생하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있었다.

《밭을 간다!》

장군님께서는 의미심장히 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해주쪽으로 나가는 길이였으나 자동차를 재령벌로 몰라고 이르시였다. 며칠전에 그이께서는 재령벌에서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큰 농민궐기대회가 열렸다는 보고를 받았고 어제는 또 이곳 2천명 농민이 서명날인한 진정서를 받아보시였다.

진정서는 한지에 먹으로 썼는데 편지가 너무도 길어 종이두루마리를 말아서 올려보내왔었다.

두루마리를 밀어나가며 진정서를 다 읽고나시니 두루마리종이가 책상우에 한벌 덮였었다. 그토록 농민들의 심정은 절절하였고 만단사연 또한 그지없었던것이다. 서명날인은 2천명이 다 했었다. 지장이 더러 있긴 했지만 거의 둥근 목도장을 찍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진정서를 읽으며 인차 조순근농민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다시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싶으시였다. 믿을곳은 오직 장군님밖에 없어 찾아왔다며 눈물을 머금던 농민, 그의 가둑나무등걸같은 두주먹과 피타는 부르짖음속에서 수천년 잠자던 조선농민의 새 모습을 보던 일이 하루도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으시였다.

지금 전국의 농촌들에서는 농민들이 궐기하기 시작하였다. 산간, 벌방 할것없이 모든 농촌들에서 지주를 숙청하고 토지를 분여하라는 목소리가 터져오르기 시작했다. 한점의 불꽃이 활화산같이 일어나 대중적인 청원운동으로 번져가기 시작한것이다. 벌써 당조직위원회와 림시인민위원회청사에는 각종 편지, 전보들이 비발치듯 날아오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군중대회, 소작인대회, 농민대회, 주민대회들을 열고 봄갈이전으로 하루빨리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토지를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나누어달라는 편지와 진정서, 청원서들을 채택하고 올려보내였다. 어떤데서는 토지를 요구하는 자기들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대표들을 선출해서 평양에 올려보내기도 했다. 차츰 지주들속에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공포에 질린 적지않은 지주들이 토지소유권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두대의 자동차는 벌길을 지나 야산굽이를 돌았다. 앞차에는 장군님께서 타시고 뒤차에는 경위대원들이 탔는데 그들은 항일빨찌산시기 소년중대원으로 한몫씩 해내던 청년투사들이였다.

야산굽이를 돌아 나지막한 둔덕들을 타고넘으며 달리던 자동차는 어느덧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진 아스라한 재령벌어귀에 들어섰다.

《장군님, 저기가 신당리본부락입니다.》

운전수옆에 앉은 부관이 펑퍼짐한 산세를 타고 벌판에 미끄러져내린것 같은 마을을 가리켰다. 땅에서 솟아오른 버섯모양의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크지 않은 마을이였다.

신당리마을이 다가올수록 장군님의 옆에 앉은 강진건의 심정은 착잡해졌다. 자기의 지시에 의해 농조에서 쫓겨난 빈농 두명이 저 신당리마을에 살고있는것이다. 이름도 딱히 알아보지 않고 얼굴도 보지 못한채 농조에서 쫓아내는걸 묵과한 자신의 그 경거망동과 몰인정으로 해서 장군님께서는 무척 괴로와하시였다. 그래서 강진건이도 며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들수 없던 그 밤에 웬일인지 김형직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더욱 간절해졌다. 1926년여름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받고 눈앞이 캄캄해져서 서대문형무소의 철창을 치며 호곡을 터뜨리던 그 망극한 슬픔의 날이 새삼스레 돌이켜졌다. 그때 강진건은 절망한 나머지 자기도 그분을 따라 저승으로 찾아갈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만주땅 어딘가에 모셨을 선생님의 시신을 생각하고 자결하려던 마음을 달리하게 되였다. 어떻게 하든 내 나라의 흙 한줌이라도 자기 손으로 정히 싸들고 가서 선생님의 분묘앞에 뿌려서 성묘를 한 다음에 죽어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그러던 그가 형무소에서 김형권동지를 만나 장군님의 투쟁소식을 들은 때부터는 죽지 않고 살아서 기어이 광복된 조국을 보아야겠다는 희망속에서 옥중고초를 이겨나갔다. 스무해 가까이 옥살이를 하면서도 그가 명줄을 부지하고있은것은 아마도 그 하나의 간절한 념원과 희망이 있었기때문인지 모른다. 그렇게 살아난 강진건이였으나 지금 장군님께 짐이 되고 근심만 끼치고있다고 생각하니 죄송스러운 마음과 함께 자기 생명의 가치에 대한 뼈저림을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장군님을 받들지 못하는 생명이 도대체 한푼어치의 가치인들 가질수 있겠는가싶었다.

신당리마을이 가까와올수록 김책의 말이 그의 뇌리를 자꾸만 때렸다.

《인민을 믿고 혁명을 하는것이 바로 장군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강아바이는 우리 농민들을 허무적으로 대해왔습니다. 아바이가 한심하다고 하며 농조에서 내쫓아버린 바로 그 농민이 장군님께 토지혁명의 불꽃을 일으킬수 있는 혈서를 써가지고 왔습니다. 보십시오. 장군님께서 된다고 믿고 내미시는 일에 대해서는 추호의 동요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아바이는 여태 장군님께서 토지혁명의 주인으로 믿고있는 우리 농민들을 깨지 못했다고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정치적과오인지 알고있습니까? 장군님께서 된다고 하면 되는것으로 믿고 안된다고 하시면 안되는것으로 믿는것이 우리의 신조입니다. 아바이에게는 그러한 신조가 부족합니다.》

김책의 호된 질책은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에 진땀이 확 돋아났다. 장군님께서 이날 아침 황해도쪽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하실 때 강진건은 몸둘바를 몰랐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망쳐버린 황해도 농조사업을 수습하기 위해 장군님께서 백사를 젖히고 친히 황해도지방으로 어려운 걸음을 하시게 된것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강진건은 황송한 마음으로 장군님을 따라나섰던것이다. 자책과 회오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강진건을 괴롭히였다.

《강선생님, 멀미를 하시는게 아닙니까? 로인들은 차를 타고다니기도 헐치 않은 일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수건으로 이마의 진땀을 훔치는 강진건을 다심히 살펴보며 걱정스레 물으시였다.

《아, 아닙니다.》

강진건은 황황히 머리를 저었다.

어느덧 차창으로는 재령강이 바라보이였다. 강물은 해동이 시작되여 황토물로 오염되고 곳곳에서 허연 성에장들이 굼실거리며 떠내려갔다. 장군님께서는 사품치는 여울물을 보자 며칠전에 혈서를 써가지고 왔던 조순근농민의 얼굴이 다시금 떠오르시였다. 그 농민의 아버지도 한뉘 지주의 착취를 받다가 한많은 세상을 저주하며 이 강물에 몸을 던졌다고 했다.

장군님께서는 무심히 지나갈수 없어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강진건을 부축하고 차에서 내려 천천히 강기슭을 향해 걸어가시였다. 그때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흘러가도 흘러가도

한숨인가 눈물인가

깊은 물 임당수엔

우리 눈물 고인다네

에헹 에라 재령강 재령강아

 

변성기에 들어선 어린 처녀의 목소리였다. 가락을 섧게 뽑는 애잔한 노래소리가 그대로 눈물같기도 하고 한숨같기도 했다. 장군님께서는 뒤따르는 강진건이와 함께 노래소리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시였다. 웬 처녀가 얼음구멍을 까놓고 그앞에 댕그랗게 앉아서 빨래를 헹구며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이쁘장한 얼굴에 고생자국인듯 입술이 까칠하게 마른 열예닐곱살쯤 났음직한 처녀였다. 가냘픈 몸이며 갸름하고 초강초강한 얼굴은 그늘밑에서 자란 풀대처럼 예리고 약해보이였다.

처녀는 새빨갛게 언 손을 품안에 넣고 멀리 지평선 한끝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자기 설음을 쏟듯이 한층 더 애달프게 노래를 불렀다.

 

공양미 삼백석엔

밝은 세상 본다는데

우리 농군 드린 공양

깊은 물이 못찼더냐

에헹 에라 재령강 재령강아

 

처녀는 애잔하고 처량한 곡조에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여올라 입술을 깨물고 침을 삼키였다. 처녀는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면서 노래를 이었다.

 

임당수가 그 어디냐

던져주오 이내 목숨

살아서는 못볼 날을

죽어서나 가보려오

에헹 에라 재령강 재령강아

 

장군님께서는 성에장을 담고 흘러가는 재령강물을 묵묵히 바라보시였다. 처녀의 노래를 듣고나니 어쩐지 가슴이 아프시였다.

 

공양미 삼백석엔

밝은 세상 본다는데

 

장군님께서는 임당수가 있는 망망한 바다를 생각하며 처녀가 부른 노래의 한구절을 조용히 외워보시였다. 그 슬픈 재령강의 노래에는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것만 같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처녀에게로 걸어가시였다.

《얘야, 너 이 마을에 사는 처녀냐?》

장군님께서는 얼음구멍앞에 이르러 다정히 물으시였다. 처녀는 무안을 타며 그렇다고 외마디 대답을 하고는 빨래를 돌우에 놓고 방치로 팡팡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강기슭의 얼음판이 금시 꺼져내릴듯이 움씰움씰 하였다. 얼음구멍이 있는 빨래터에서 얼마 나가지 않아 강물이 출렁이며 흘러내렸다.

《얘야, 지금 한창 강얼음이 녹는 때인데 이런데서 빨래를 하는건 아주 위험한 일이다. 언제 얼음판이 꺼져내릴지 알겠느냐. 어서 빨래를 걷어가지고 나가자. 봐라, 저 얼음판들이 쩍쩍 갈라지지 않았느냐.》

장군님께서 친히 빨래함지를 집어들고 금이 가서 쪼개지기 시작하는 주변의 얼음판들을 가리키시였다. 처녀는 그제야 위험을 느꼈는지 겁먹은 눈을 치뜨고 서둘러 일어섰다.

장군님께서는 빨래함지를 강기슭의 잔디밭에 내려놓고 처녀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뭐냐?》

《서분이라구···》

《서분이?》

장군님께서는 놀라며 반문하시였다. 조순근농민이 혈서를 써가지고 왔을 때 서분이란 이름을 들었던 기억이 나셨기때문이였다.

《서분이라?··· 그럼 네가 혹시 지주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처녀애가 아니냐?》

《?!》

처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군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서 오신 손님인데 자기 이름을 들으시자 곧 알아맞히는지 너무도 놀라왔던것이다.

《네가 바로 대복이와 함께 6년동안이나 지주집에서 종살이를 해왔다는 그 서분이가 옳은 모양이구나.》

장군님께서는 빨갛게 언 서분이의 손을 감싸쥐며 오봉산기슭에 솟아있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바라보시였다. 서분이는 여전히 어리둥절한채 그러나 무언지 모를 감격에 눈물이 글썽해서 서있었다.

《저 기와집이 아흔아흡간이나 된다는 서만호지주네 집이냐?》

장군님께서는 오봉산기슭의 《대궐》을 가리키시였다.

《네. 그 집이 나리님네 집이와요.》

세도집행랑방 말씨가 입에 오른 처녀의 대답이 더욱 가슴아프게 들리시였다.

《대복이는 요즘 지주집에서 나왔다지?》

《네. 나왔세요.》

서분이는 어쩌면 이 손님이 대복이와 자기 일을 그리도 자세히 알고있는지 점점 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서분이는 문득 얼마전에 대복이 아버지가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운 사실을 상기하게 되였다. 그러자 혹시 이분이 김일성장군님밑에서 일하는 어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대복이 없이 네 혼자 고생하자니 더 외롭겠구나.》

장군님께서는 처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측은하게 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린 처녀가 빨래터에서 부르던 구슬픈 재령강의 노래를 다시 생각하시였다.

《얘, 서분아. 너 아까 부르던 그 노래 있지 않느냐. 재령강, 재령강 하는 노래말이다. 그 노래가 왜 그리 슬프냐? 그게 어떻게 생겨난 노래냐.》

《저도 잘 모르겠세요. 여기서 대복이 할아버지랑 물에 빠져 돌아가신 담부터 생겨난 노래라고 했세요. 내가 아이때 우리 엄마도 불렀세요. 그래서··· 엄마생각 나문 부르군 했세요.》

서분이는 머리를 들지 못하고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그는 어느덧 장군님의 살틀한 인정에 이끌려 어려움도 잊어버리고 대복이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와 생리별을 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주집 종살이를 해온 자기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서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하였다. 물론 그 비극의 이야기는 조순근농민을 통해 들은것이였으나 나어린 처녀의 입을 통해서 재령강의 슬픈 노래와 함께 듣게 되니 더욱더 가슴이 아프시였다.

《음, 대복이 할아버지가 물에 빠져 돌아가신 다음에 생겨난 노래라.》

장군님께서는 강기슭 잔디밭을 천천히 거닐며 벼락바위가 서있는 저편 여울물쪽을 바라보시였다. 얼음장을 안고 격랑을 일으키는 여울목 근처에 삐죽삐죽 솟아있는 바위돌은 마치 원한의 주먹을 뻗쳐올린것 갈기도 했다.

 

공양미 삼백석엔

밝은 세상 본다는데

···

살아서는 못볼 날을

죽어서나 가보려오

···

 

장군님께서는 서분이의 노래를 되새겨보시였다. 노래를 부른 서분이의 애잔한 목소리는 이 나라 농민들의 비극의 력사를 끝장내달라는 눈물의 하소같기도 했다.

《강선생님, 저 애의 노래만 들어도 모든걸 알수 있습니다. 조선농민의 비참한 생활도 그들의 념원도···》

장군님께서는 강진건을 돌아보며 문득 이렇게 말씀을 떼고 조순근농민에게서 들은 재령강의 비화를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서분이의 래력에 대해서도 자상히 말씀하시였다.

서분이는 생면부지의 낯선분이 자기의 래력을 그렇게도 구체적으로 알고있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한편 그 뜨거운 동정의 말씀에 설음이 북받쳐올라 처녀는 빨래함지옆에 주저앉아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임당수가 그 어디냐

던져주오 이내 목숨

 

장군님께서는 처녀의 흐느낌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노래가사를 외워보시였다. 그리고 비통하고 억울한 생각을 참을수 없어 마음속으로 웨치시였다. 조선농민은 이렇게 고달프게만 살아와야 했던가. 이 피눈물의 력사를 그대로 두고서야 우리가 산에서 20성상을 싸워온 보람이 있겠는가. 피눈물로 얼룩진 이 땅, 이 강, 조순근이도 대복이도 그리고 서분이도 이 눈물의 땅, 눈물의 강에서 나서자란 불우한 후예들이다. 그래서 이 땅 어디에 가나 눈물의 이야기, 눈물의 노래뿐이였다. 수천년세월 이 나라에 빚어진 그 절통스러운 눈물의 력사가 더는 이어지지 말아야 하며 재령강의 슬픈 노래는 반드시 농군들의 환희의 노래로 바꿔져야 한다!

옆에 서있는 강진건이도 무언지 구슬픈 생각에 휩싸여 서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때 황토물을 머금은 재령강도 비분에 몸부림을 치듯 사나운 물이랑을 일구며 가녁의 얼음장들을 들부시였다. 그러자 강 한복판에서 쩡-하고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굳게 얼어붙어 풀리지 않고있던 마지막 두터운 얼음장들이 움씰거리며 드놀기 시작했다. 뒤이어 뿌지직 뿌지직 얼음판들에서 신음소리가 일어나면서 한 귀퉁이가 풀썩 꺼져내려갔다. 례년에 없이 때이르게 봄시위물에 불어난 강물은 꺼져내린 얼음장을 싣고 기운차게 흘러내려갔다. 강한 음향을 일으키며 한쪽 얼음장이 꺼져내려가자 련쇄적으로 이쪽저쪽에서 얼음장들이 쩍쩍 갈라지면서 그 무슨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사납고도 구슬픈 얼음의 비명이 일어났다. 강진건은 60평생 살아오면서도 그렇듯 장엄한 강의 해동을 처음 보는터여서 아이들과 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짜개지는 얼음강판을 계속 주시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분이가 놀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는 서슬에 고개를 돌리였다. 강쪽을 지켜보는 서분이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종이장처럼 하얗게 되여있었다. 그제서야 강진건은 처녀가 앉아있었던 얼음구멍 빨래터가 뭉청 꺼져내려간것을 보았다. 노전뙈기만 한 크기로 쪼개져나간 빨래터의 성에장은 사품치는 강물에서 흥떵거리다가 아래쪽으로 밀려내려갔다. 6년세월 겨울마다 처녀의 손발을 얼쿠던 종살이의 고역과 설음이 새겨있는 눈물의 빨래터는 그것으로 영원히 종식을 하고 바다로 흘러내려가고있었다. 그것은 수천년세월 이 땅에 얼어붙었던 봉건의 동토대가 해빛에 녹아나는 력사의 상징처럼 그리고 처녀의 불행한 운명을 끝장내는 자연의 함성처럼 통쾌한것이였다. 그러나 어리고 단순한 서분이는 흘러가는 얼음장에서 자기의 새 운명을 예고하는것과 같은 의미심장한것을 전혀 느낄수 없었다. 그는 다만 자기가 빨태터에 앉아있었던것이 불과 10여분전의 일이였다는것 그리고 만약 인정깊은 저 낯선분이 빨래터의 위험을 예감하고 자기를 강밖으로 데려내오지 않았던들 바다로 떠내려가는 얼음장과 더불어 자기의 목숨도 끝장날번했다는것을 상상하며 몸서리를 치고있었다.

(네가 정말 천행으로 살아났구나!)

강진건은 해쓱하게 질려있는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신통히도 그런 운명적인 시각에 장군님께서 빨래터를 찾아오시게 되였을가고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예로부터 위인의 예감은 신의 계시와도 같은것이라 하였으니 선견지명이 있는 장군님께서 멀리 평양에서부터 벌써 처녀의 불행을 예감하고 여기 재령강으로 찾아오셨는지도 모른다.

강진건은 그런 생각을 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장군님을 지켜보았다. 그이께서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얼음장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잔디밭을 거니시였다.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시는듯 한동안 말씀이 없이 강기슭을 거니던 그이께서는 처녀의 《빨래터》가 강아래 저쪽으로 사라지자 경위대원들과 함께 다리목에서 대기하고있는 부관을 부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부관이 가까이 다가온 다음에도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문득 말씀을 떼시였다.

《우리 동무들에게 불을 지피게 하오. 그래서 저 처녀의 몸을 녹이게 하고 무얼 먹일게 있으면 좀 먹이시오.》

장군님께서는 그때까지도 하염없이 강물만 지켜보고있는 서분이를 가리키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