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장 4


 

제 1 장

4

 

읍거리 한쪽에 넓게 터를 잡은 장마당은 벌써 인산인해였다.

조순근은 지고온 가래기동을 가끔 들리군한 장마당초입의 기름방집에 넘겨주었다. 그는 지전 한장을 움켜쥐고 빈지게바람으로 장마당에 발길을 들여놓았다. 함께 걸어오던 흥묵은 어물전으로 갔다. 조순근은 닭을 사려고 돼지전거리를 지나갔다. 돼지전엔 발들여놓을 틈이 없게 돼지들이 널려있었다. 사람들이 끓는 소리, 꽥꽥거리는 돼지울음소리, 닭의 꼬꼬댁소리에 현훈증이 날만치 정신이 얼떠름해진다.

《끓는다아- 짐승들도 나라가 해방된걸 아는가부지.》

누구인가 꿀꿀거리며 돌아가는 돼지무리들을 보며 껄껄 웃어댔다.

아낙네들이 엄지닭을 두세마리씩 투시에 넣어가지고 앉아있는 닭전에서도 장군들이 붐비였다. 조순근은 검정닭이나 한마리 사들고 갈 생각이였다. 조만식어른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런 어른께 닭 한마리를 가지고간다는것이 너무도 약소하게 생각되였지만 빈궁한 살림에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평양성에 갔다오는 길로 대복이, 서분이들을 지주집에서 빼내게 되면 작히나 좋을가.)

아낙네들이 끼고앉은 닭들을 지켜보며 아들의 행운을 기원하느라니 바로 여섯해전 열두살나던 어린 아들을 이끌고 서만호네 솟을대문을 넘어서던 일이 눈앞에 밟혀왔다.

《아버지, 스무날만 여기서 자문 되나?》

안가겠다고 앙탈하던 애가 정작 지주집 솟을대문앞에 와서는 울음을 그치고 이렇게 물었다.

《오냐, 대복아! 스무날 지나면 널 데리러 아버지가 오마.》

어린 아들은 가느다란 손가락을 꼬부렸다폈다하며 운명의 스무날을 세여보았다. 그렇게 해서 넘어선 지주집 대문이였다. 그 스무날이 골백번 더해서 6년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타향천리도 아닌 지척에서, 가시철조망도 아닌 널대문 하나를 못넘어 장장세월 가슴을 지지였다. 그런데 그대신 얻어부치게 된 진디기논에서 소출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낟알빚이 불어나게 되자 서만호는 아이를 인질처럼 잡아놓고 6년세월을 내주지 않았다.

격강천리라더니 지주집 대문은 아버지와 아들을 천만리로 갈라놓았다. 그래서 안해는 아들에 대한 애처로운 생각으로 가슴을 뜯으며 속을 썩이던 끝에 화병으로 드러눕게까지 된것이다.

조순근은 얼마후에 살집이 오동통한 검정닭 한마리를 사들었다. 그가 방금 닭값을 치르고 돌아서는데 흥묵이 발바리를 달고 나타났다.

《벌써 장을 다 봤시꺄? 그건 무슨 닭이유?》

《큰어른을 찾아가면서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나. 그래 한마리 샀네··· 그런데 임잔 어물전에 가서 왜 그렇게 오래 있었나?》

《공산당이 있다는 읍사무소옆을 지나가봤시다. 못난놈 혹시 달려나올가 해서··· 흥.》

흥묵은 겉으로 시답잖게 투덜거리며 코방귀를 뀌였지만 이제 오게 될 사위에 대한 애모쁜 마음을 금할수 없는 모양이였다. 이러나저러나 제 피줄과 련결이 된 사람이 틀림없지 않는가.

《그래 만나봤나?》

《안왔대유, 올 때되문 오겠지유. 잘난놈, 어서 가서 연설이나 들읍시다. 서만호도 연설을 한다는
데.》

《뭐 참의가?》

조순근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다우쳐 물었다. 서만호를 《참의》라고 부르는것은 그가 한때 중추원 참의를 꿈꾸면서 서울을 몇번 드나든 다음부터였다. 참의가 돼본적도 없는데 그를 추어올리지 못해 애쓰는 서씨문중이 지어붙인 이름이였다.

《군수라든지 자치위원장이라든지 뭐가 된다나봐유.》

《···》

조순근은 걸음을 멈추고 아연히 흥묵을 지켜보았다.

(서만호가 군수가 되다니?)

그는 무언지 모를 어정쩡한 생각에 인총이 붐비는 속을 헤집으며 흥묵의 뒤를 따랐다.

어물전 가까이로 가자 벌써 연설은 시작되였다. 달구지우에서 누가 소리치고있는데 그옆으로 사람들이 하얗게 성을 쌓았다. 굴간의 남포군같이 수건을 머리뒤로 감싸가지고 이마에다 타래쳐 찌른 청년이 혈조가 붉게 오른 얼굴을 좌우로 돌리며 연설을 했다. 말 한마디에 주먹이 두세번씩 오르내리는것 같고 몸뚱이가 훌쩍훌쩍 뛰는것 같았다. 가끔 뒤머리질도 해서 앞에 틀어꽂은 수건꼬리가 넘어갔다 넘어왔다 하며 나비날듯 너펄거렸다. 연설은 그 어딘가에서처럼 로동자와 농민이 잘사는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소리였다.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 말라. 온갖 착취배들에게 해방된 조선프로대중은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로농정권은 이미 수탈자는 수탈해야 한다는 오직 하나의 슬로간만을 인정하고있습니다.···》

청년들이 박수를 쳤다. 장군들도 따라서 손바닥을 두드렸다. 조순근은 다른 말은 어려워서 알아들을수 없었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 말라는 말이 귀에 쑥 들어왔다. 세상이 과연 그렇게 된다는 말인가. 그렇게만 되면 남의 등을 쳐서 놀고먹는 사람은 없고 다 제손으로 제몫을 벌어서 산다는 소리인데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흥묵은 이제는 서만호 연설하는데로 가보자고 팔소매를 내끌었다.

조순근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2층벽돌집들이 주런이 놓인곳으로 갔다. 거기에도 군중들이 적지 않게 모여서 술렁대고있었다.

흰수염이 다보록한 서만호가 양갓을 손에 들고 흔들며 연설을 하고있었다. 너부죽한 얼굴은 혈색이 좋아 처녀애들 볼같이 발가우리했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조순근은 사람들의 어깨사이를 비집고 한걸음두걸음 앞으로 나갔다. 연설은 거의 끝나가고있었다.

《에, 물론 나는 한몸을 아끼지 않고 나라일에 투신할바이나 에, 정사를 직접 맡아봄은 60고령으로서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는것을 고마운 여러분에게 솔직히 자복하는바입니다. 에, 나는 여러분들의 분분한 공론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백번 생각하고 먹은 마음이니 이 불미한 사람의 안타까움을 너그러이 받아주길 재삼 바랍니다. 이제야 포악하던 왜놈세상도 끝장이 났는데 그 누가 고을에 앉든 정사가 바로 못펴일리 있습니까. 그저 농군이 밭을 갈고 목수가 새집을 짓듯이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는 새 정사만 펴면 다 아닙니까.》

그는 뒤에 선 처녀애의 차반에서 포개인 수건을 집어 이마를 훔쳤다. 밑에선 유지들이 박수를 쳤다. 한사람이 팔을 장대같이 뻗치며 소리쳤다.

《그런 사양은 서만호어른답지 않소. 이제 와서 뒤걸음할바엔 무엇때문에 일제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작인들을 돌보아주었소?》

그 왜가리청같은 질문에 서만호는 다시 손을 들며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 찬탄이였다.

《난 예나 지금이나 나라와 작인을 생각하는 한가지 락에 사는 사람입니다. 에, 솔직히 말하면 왜정통치에서는 작인들을 돌보는 일을 내 뜻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전장에서 난 쌀은 강도같은 왜놈의 정책을 밑받침하는데 많이 실려갔으니 그날의 절통함을 어찌 여기서 다 말할수 있겠습니까. 숟가락꼭지가 휘여들게 풀기가 많다는 나무리벌 입쌀대신 우리 작인들에겐 찐 좁쌀밖에 차례진것이 없습니다. 에, 난 그래서··· 작인들앞에서 머리를 들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주실것은 내가 우리 고을의 정사를 맡는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난날 작인들을 돌보지 못한 가석함을 회개한다는 마음에서는 일신의 안일을 버릴 생각이 있다는것입니다. 래일이라도 읍으로 내려와 정사를 총찰한다기보다 가사를 돌보는 심정으로 이 고을일을 맡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에, 이 로쇠한 몸을 이끌고 군민의 총애에 보답해내겠는지 장담을 내릴수가 없어 그러니 며칠 말미를 주십시오.》

서만호는 염소수염같이 끝이 뾰족한 흰수염을 비다듬으며 말을 마쳤다. 서만호가 로대에서 물러나자 이번에는 앞가슴에 금시계줄을 드리운 양복쟁이 신사가 나서서 군자치위원장추대문제는 후일로 미룬다는것을 알렸다.

《여러분, 로상에서 연설을 경청하시느라 수고했습니다. 그럼 이미 말씀드린대루 홍락관, 해방면옥, 장국밥집으루 모두 가주십시오. 오늘 점심은 서만호씨가 한턱 내는것이니 사양 말고 다 가십시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헤여져갔다. 모두 나라가 해방되더니 서만호도 인심이 후해졌다고 들끓었다.

《성님, 우린 장국밥집으로 갑시다유. 거길 가야 막걸리두 한사발 있다는데 시원히 목구녕을 적시자유.》

흥묵은 울대가 솟게 군침을 꿀꺽 삼키며 조순근의 팔을 건드렸다. 역시 흥묵이답다. 언제 장국밥집에서만 막걸리 낸다는걸 다 알아내였는가.

《난 그만두려네.》

《쟈, 이 성님, 오늘 또 줄나게 구시네. 서만호가 이담에 밥값내랄가봐 그래유?》

흥묵은 장국밥집으로 유혹하였으나 조순근은 딴 생각에 마음이 씌여있었다.

《이보라구, 그러니까 서만호가 군수가 되겠다는 소리지?》

조순근은 장국밥집에 눈을 주고있는 흥묵에게 불쑥 물었다.

《원 성님두, 아니아니하면서 제 욕심 채우는 그 검은 속이 짐작되지두 않시꺄?》

《그래서 하는 소리야. 친일을 한 죄두 다 회계가 된것처럼 말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서만호두 군수되문 여기서 당대 눌러살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응?》

《아니, 성님은 그건 왜 자꾸 마음을 쓰웨꺄, 그깐놈 달아나든 눌러앉든 무슨 일이 있시꺄?》

《무슨 일이 왜 없겠나. 서만호가 옛일을 회개한다 어쩐다 하지만 그 왕벌이 군수질하면 선정을 베풀것 같은가?》

《허, 성님은 웬 걱정이 그리 많시꺄? 그깐놈 오늘밤이래두 범물어가문 씨원하겠지만 그래두 땅있구 권세있는놈두 저렇게 빌붙으니 오죽 좋시꺄. 그리구 이젠 서만호두 공산당과 한뭉치루 되려나봐유. 누가 그러는데 이젠 조선사람들이 한뭉치루 되여야 나라가 흥한답디다. 어서 장국밥집으로 갑세다.》

조순근은 그의 말도 그럴상싶었다. 왜놈이 없어진 세상에서 조선사람끼리 한뭉치가 된다면 그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것은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서만호가 한턱 낸다는 점심만은 어쩐지 먹고싶지 않았다.

《자네 혼자 가게.》

조순근은 시들하게 내뱉고 돌아섰다.

《챠 성님, 오늘만은 가유.》

흥묵은 팔을 잡고 사정하듯 말하였다.

《놓게, 난 가서 일을 해야겠네.》

조순근이 몸을 홱 돌리며 역정을 쓰는바람에 흥묵은 지게팔에 턱을 맞찧었다. 이때 뒤에서 누구인가 길을 내라고 큰소리로 웨쳐대였다. 흰 모시두루마기를 입은 풍신좋은 서만호가 인력거에 앉아오다가 멎어있었다. 상고머리의 걸대 큰 장년이 인력거채를 배에 대고 길을 내라고 소리치는것이였다. 흥묵은 황급히 조순근을 비켜세웠다.

《가만, 그게 신당리사람들 아닌가?》

서만호가 딱선을 접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흥묵이와 조순근은 얼른 허리를 굽석했다.

《음, 옳군. 장보러 왔댔나?》

《예.》

흥묵이 두손을 배허벅에 대고 씽긋 웃어보였다.

《그런데 점심들은 안하구 가려나?》

둘이 옥신각신하는것을 다 지켜본것 같았다.

《예, 뭐 괜찮소이다.》

조순근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순근이, 그러지 말구 가서 먹게. 나두 이렇게 밝은 세상에서 자네들을 보니 기쁘네. 우리 홍락관으루 함께 가지 않으려나?》

《아 아니, 우린 장국밥두 좋소이다.》

조순근은 서만호의 함께 가자는 소리에 그만 당황해지고말았다.

《그럼 그렇게 하라구.》

서만호는 딱선을 펴서 활활 저으며 인력거군에게 떠나자고 소리쳤다.

《성님! 자 어서 갑시다유.》

흥묵은 신이 나서 조순근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만보니 그는 연설보다도 점심에 더 구미가 동해있은것 같았다. 조순근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프리였다.

흥묵을 따라가는 조순근의 걸음은 사뭇 무거웠다.

장국밥집앞에는 사람사태가 났는데 마당 한쪽에서 청년들이 무리를 지어 떠들썩거리고있었다. 아까 장마당에서 으쓸거리며 돌아가던 청년들이였다. 그속엔 덩저리 큰 광주리머리도 있었다. 그들은 남포군수건을 쓰고 장마당에서 연설을 하던 청년을 둘러싸고 법석거리였다.

《잘하는군, 연설은 지주, 자본가를 치고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면서 먹기는 여기 와서 지주의 턱을 얻어먹어, 빨리 가자구. 지금 저 5리밖에 있는 송화리학교마당에 학생들이 가뜩 모였소. 거기 가서 또 한마디 해야겠소. 이번엔 수건을 쓸게 아니라 안경을 걸어야지. 인테리청년들앞이니까. 자, 거 빗질 좀 하라구···》

얼굴이 기름한 한 청년이 달려들어 주머니에서 뽀마드통을 꺼내 청년의 총이 센 머리에 기름칠까지 하고 머리를 빗어넘겨주었다. 다른 청년은 주머니에서 굵은테안경을 꺼내 청년의 코등에 걸었다. 문앞에 서있는 광주리머리는 단장으로 청년의 구두를 가리켰다. 좀 닦아신기라는 뜻이다. 그러자 한 청년이 주저앉아 휴지로 구두를 문댔다.

그들은 번듯한 신사가 된 연설군을 앞세우고 우르르 밀려갔다.

《저 남포군이름이 뭔지 아오? 최폴이라고 하오.》

《최포리라니? 거 이름두 별났군.》

장국밥집앞에 모인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였다.

《맑스령감의 사위랍디다.》

《뭐 맑스령감? 그것두 별난 이름이군, 그 령감이 어데 있답디까?》

《저 경상도 어디라는 소리도 있고 또 무슨 구라파라는 외국나라에 있다는 말도 있고···》

《좌우간 이젠 저 사람들이 세상을 잘 만들어갈거우다.》

사람들은 성수가 나서 장국밥집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세상을 잘 만들게 된다니 조순근의 마음도 기꺼웠다. 문득 정거장쪽에서 기적소리가 울리였다. 철길을 달리는 기차소리가 그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하였다. 그는 철길 저쪽으로 멀어져가는 렬차를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벌써 평양에 가닿은 그의 마음속 거울에는 두루마기틀 입고 말총모자를 쓴 조만식의 얼굴이 우렷이 비쳐오고있었다. 그리고 지주집 솟을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웃으며 달려오는 아들의 얼굴이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