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장 3


 

제 1 장

3

 

강뚝너머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강쇠바람이 선뜩 목언저리를 스쳐지나갔다. 팔월한가위가 지나자 바람소리가 소연해지며 열독이 빠지던 날씨는 요즘 아침저녁이면 코끝이 시리게 썰렁해졌다.

조순근은 가래기동을 덧놓아지고 안개포말이 뽀얗게 흩날리는 재령강나무다리에 들어섰다. 머리우로 높이 솟도록 골박아진 까마득한 지게초리우에서 가래기동이 위태롭게 기우뚱거렸다. 그럴수록 그는 허리에 힘을 주고 헌걸차게 걸어갔다. 실한 참나무같이 미츨하고 듬직한 체구와 한여름 벌바람과 땡볕에 그슬려 고동색으로 된 길둥그런 얼굴에서는 유순하고 건강한 농군의 체취가 풍기였다. 약간 꺼질사하게 들어간 검은 눈은 진중하면서도 고집스러워보였고 굳게 다물린 조갈이 든 입술과 구슬땀이 맺힌 이마에는 직심스러운 근면성이 그대로 내비쳐있었다.

조순근은 소매자락으로 땀에 젖은 이마를 뻑 문지르고는 앞을 내다보았다. 동뚝으로는 그냥 강쇠바람이 불어와 물낯우에 떠도는 하얀 안개를 끊임없이 휘저었다.

조순근은 행길에 장군들이 뜸해진것을 보고 장길이 어지간히 늦어졌다는 생각으로 걸음발을 재우쳤다.

(오늘 장은 어떻게 하나 잘 봐야겠는데···)

그는 여러가지 번거로운 생각을 하였다. 그는 웬간하면 오늘 로자를 마련해서 조만간 평양성안을 갔다올 생각이였다. 그 걸음은 대처구경이나 하고 바람을 쐬러 다니는 한가로운 보통나들이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지주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불쌍한 아들과 친구의 딸을 고역살이에서 빼내보려고 귀인의 도움을 받으러 가는 운명의 나들이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을 거듭해서 작정하게 된 그 나들이길이 새로운 운수를 틔워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그는 새벽에 욕심스럽게 가래기동을 쳤다. 농량이 넉넉하면 타작한 곡식을 팔아도 되겠지만 해마다 기근의 시달림을 받고있어 그럴수도 없다.

점점 지게짐이 어깨를 파고들어 조순근의 이마와 목덜미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장볼 욕심에 가래기동을 네개씩이나 덧졌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지게짐이 어떻게나 큰지 뒤에서 보면 사람이 아니라 마치 가래기동이 드적거리며 움직여가는것 같았다.

그는 모질게 한자욱두자욱 발끝을 세워박으며 재령강 목다리를 건너섰다.

이때 뒤에서 그를 찾는 되알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가는 그게 재령강집이 아니시꺄?-》

조순근은 작대기를 땅에 박으며 무겁게 몸을 돌렸다. 무슨 큰 일이나 난것처럼 야단스레 소리치며 다가오는것은 계남집 흥묵이였다.

《그렇게두 소리쳐 부르는데 못듣다니. 쯔 쯔···》

조순근은 땀에 젖은 얼굴을 소매자락으로 씻어내며 순한 웃음을 지었다. 제 생각에 옴해서였던지 여태 찾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흥묵은 투덜대며 쫓아왔다. 발이 굵은 열석새 무명두루마기를 펄럭이며 활개를 젓는 품이 그 역시 읍에 급한 볼일이 있는 모양이였다. 그의 발꿈치에 털갖이 가무스레한 불강아지 한마리가 짧은 다리를 달싹거리며 묻어다녔다.

《심두 좋네. 엊제냑엔 진디기논에서 돌피뽑더니 은제 또 가래기동쳤시꺄?》

그는 가까이 다가와서도 목소리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노르탱탱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패이고 수염도 턱밑에만 밤가시같은것이 몇대 내밀었지만 흰 무명두루마기와 곱게 한 짚신감발로 해서 풍신이 그렇게까지 초라해보이진 않았다.

《임자두 장엘 가나?》

조순근은 두툼한 입술을 열며 물었다.

《우리 하라뱜제사가 래일모레 아니꺄. 조구 한손 사다둘려구.》

《나인들은 뭘하구?》

《아따, 나들우테 한벌없는 그 벌개둥이들이 어딜 나다닌다구. 참 조구값이 오르진 않았을가유?》

《올라두 조구값이지. 대치가 석돈이구 소치가 두돈밖에 더 하겠나. 임자야 제 땅에서 신풀이했는데 조구 한손 사는게 무에 그리 대수라구.》

조순근은 돈이라면 덧대놓고 손을 떨고 공짜라면 양재물도 마시려드는 그의 욕심이 씨만스러워 한마디 퉁을 주었다.

《성님두 그게 어디 땅이유?··· 하긴 없을 때보다 더 걱정이 되유, 옛말 못들었시꺄. 피리불며 한가롭게 살던 사람이 부자한테서 재산 받아놓구 그게 없어질가봐 걱정끝에 피리 못불었다는 소리···》

《그건 그래, 재산이라는게 사람을 병신 만들지.》

바지런한 흥묵은 작년에 서만호한테서 푸서리라고 붙이며 말며 하던 천둥지기를 비싼값을 치르고 넘겨받았다. 그걸 논이라고 신답풀이를 해서 올봄에 처음 모를 낸것이 그런대로 이삭이 패고 알이 여물었다. 흥묵은 그게 대견스러워 늘 웃음이 한벌 번져있으면서도 가끔 깊은 밤에 신답풀이한 땅이 큰물에 짓이겨지는 악몽을 꾸다가 화닥닥 일어나는 때가 있었다. 그 조그마한 소유물이 그를 그렇게 기쁘게도 하고 불안하게도 하는것이였다.

《성님, 그게 사실이꺄? 성님두 평양나들이 떠난다는게.》

《허허 그쯤 알아두게.》

《아니 금방 가을을 하겠는데 신당리, 동흥리 할것없이 각 동네에서들 평양나들이바람이 났다니 웬일이꺄?》

조순근은 지꿎게 캐여묻는 흥묵을 흘깃 스쳐보고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의논조로 심중의 생각을 터놓았다.

《임자두 10여년전에 〈물산장려회〉일때문에 오셨던 조만식선생이 생각나겠지?》

《두루마기 입고 말총모자 쓰고다니던 장로령감말이유? 아무렴 내가 조만식선생을 모르겠시꺄.》

총기가 좋은 흥묵은 10여년전 그때 조순근이 서만호의 분부로 조만식의 자그마한 가죽트렁크를 지게에 놓아가지고 역에 바래워준 일까지 기억하고있었다. 지금은 조순근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서만호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있지만 10년전 그때는 조순근자신이 머슴살이를 하고있었기때문에 서만호의 분부를 받고 조만식을 바래웠던것이다.

키가 작고 약간 얽을사한 얼굴, 그러면서도 언행이 근감하고 기품이 있어보이던 사람, 10여년전에 새겨둔 조만식의 모습을 우렷이 그려보며 조순근은 말을 이었다.

《그 조만식선생이 지금은 도지사격이 되여 평양성안에 틀고앉아 서도일판을 쥐락펴락한다누만. 그런데 고맙게도 그분이 농민들에게 좋은 정사를 펴기 위해 이제 곧 평양성에서 무슨 회의를 소집한다네. 그래 우리 나무리벌에서도 여러 사람 가게 됐는데 동흥리 박병칠의 양아들이 나더러도 그 회의에 참가하라데.》

조순근이 군자치위원회 서무과장 박종관으로부터 그런 귀띔을 받은것은 벌써 보름전 일이였다. 그러나 평생 몸에 흙을 묻히며 논밭에서만 살아온 자기가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는 회합에 참석한다는것이 지체에 맞지 않는 일같아서 처음에는 못가겠다고 버티였다. 기실 나들이옷 변변한것이 없는 농군들이 허술한 바지저고리를 입고 으리으리한 회의장에 가앉는다면 백로의 무리속에 까마귀가 끼여있는것처럼 볼꼴 사나울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조순근은 아들이 머슴살이를 하고 안해는 병들어 몸져누워서 집안에 일손이라고는 자기 하나밖에 없는터에 한가롭게 나들이를 다닐 계제가 못되는것이였다. 그러나 박종관서무과장의 말은 달랐다.

《나라가 해방됐는데 조선백성이 정사를 외면하면 됩니까. 이번 회의에선 농민들을 허리펴게 하는 법령을 하나 만들어낸답니다. 우리 나무리벌치구 이댁만큼 농사일이 걸싸구 직심스러운 농민이 없는데다 본이 창녕이라니 회합에 가기만하면 조만식선생이 종씨가 왔다구 여간 반가와하지 않을것입니다.》

땅마지기나 가지고있는 양아버지 덕분에 중학물을 먹은 박종관은 사리있는 언변으로써 조순근이 어쩌지 못하도록 눌러놓았다. 그래도 조순근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어느날 문득 신당리에서 70여리 떨어져있는 양평마을에 대한 희한한 풍문을 듣고는 홀연 생각을 달리하게 되였다. 그 희한한 풍문인즉은 지난 추석무렵에 양평마을 의원령감이 기근에 허덕이는 마을농민들의 정상이 하도 가긍하여 조만식에게 양평마을 작인들의 하정을 살펴줍시사 하는 편지를 올렸는데 짜장 그 며칠후에 영양실조로 몸져누운 마을농민들의 집에 쌀과 고기가 내려왔다는 이야기였다.

조순근은 그 기이한 풍문을 듣고 자기도 평양나들이를 마다치 말고 직접 조만식령감을 만나서 지주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아들을 빼내줍시사 하고 간청해볼 용단을 내린것이였다.

《그런 말을 어디 가서 휘뚜루 내뱉지는 말게.》

전후사연을 다 이야기한 조순근은 흥묵의 헤픈 입이 걱정되여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나두 양평마을에 웬 어른 한분이 숱한 쌀과 고기를 가지고 내려와서 죽게 된 사람들을 살려냈다는 풍문을 들었소만 그게 조만식선생에게 올린 편지와 연줄이 있는것인줄은 몰랐시다. 이러나저러나 해방이 좋긴 좋시다. 성님이 이제 팔자 고치구 벼슬자리 얻는게 아니웨까?》

《내가 벼슬자리에 올라? 헛허허···》

조순근은 실없이 떠드는 흥묵의 소리에 어처구니가 없어 목을 제끼고 허거픈 웃음을 쳤다.

《참 요즘엔 희한한 소리뿐이유. 성님, 전번 장에 갔다가 공산당얘긴 못들었시꺄?》

뒤따르던 흥묵이 조순근의 지게옆으로 돌아나오며 새 말을 꺼내였다.

《공산당? 그게 뭔데···》

《허허 그게 왜아이들 도망친 다음 새루 생긴 관청이래유. 그 사람들두 뭐없이사는 사람들 세상을 만든다나봐유··· 한데 허허, 기가 막혀서···》

《왜 그러나?》

조순근은 별안간 낯빛이 달라지는 흥묵에게 의아쩍은 시선을 돌리였다.

《글쎄 우리 못난 사우가 그 공산당에서 한자리 하려고 오늘 래일 여기루 온다지 않아유.》

《사우라니?》

조순근은 눈을 크게 뜨며 흥묵의 이죽거리는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흥묵은 입가에 묻은 거품을 손등으로 뻑 문대며 열적게 대답했다.

《그 겸이포 가있는 우리 맏딸 새서방 있지 않시꺄. 집난이가 기별을 해왔어유.》

《그럼 그 싹뿔이 말인가. 도대체 어떤 벼슬자리게?》

《예, 정 낮은 벼슬은 아닌가봐유. 군수다음가는 자리라니까.》

흥묵은 자랑도 아니고 비웃음도 아닌 어조로 남의 소리하듯 주어섬겼다.

《거 그럼 오늘 내려갔다가 기다려서 데리구 와야지.》

《내가 밸이 빠졌다구 그녀석을 기다려유.》

《옛날일은 옛날일이구 해방이 돼서 돌아오는데 무슨 세혐이 있다구 상종을 안허겠나.》

《그눔이 남의 딸 채가지고 들구 뛰였는데 가시애비라는게 미시리 아닌댐에야 뭣땜에 감질이 나서 기다리구말구 하겠시꺄. 옛말에두 사위란놈은 백년을 끼고살아도 남이라구 했어유.》

성난듯이 푸념하며 적삼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는 흥묵의 손이 웬일인지 부들부들 떨리였다. 뒤따라온 발바리가 납작한 코를 벌름거리더니 앞발을 쳐들고 담배불에 시누렇게 누른 흥묵의 손끝에 혀를 날름거리며 낑낑 울었다. 그의 담배마는 손을 보고 먹을것인가 해서 그러는 모양이였다.

그의 사위 김창규는 원래 이곳 신당리에서 20리 떨어진 동흥리란 마을에서 나서자란 사람이였다. 거기서 일찌기 량부모를 잃은 그는 지금 군자치위원회 서무과장을 하는 박종관의 양아버지 박병칠의 집에서 꼴머슴을 살다가 뛰쳐나왔으나 얼마 되지 못해 이곳 신당리 서만호의 집에서 다시 머슴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였다. 농촌의 불운아에게도 꽃피는 시절은 어차피 찾아오기 마련인지 그 가년스러운 더꺼머리 총각머슴이 어떻게 흥묵의 딸과 정분이 나게 되였다. 좀상스럽게 생긴 흥묵이와는 달리 그의 딸은 농가마을에서는 전혀 보기 힘들도록 몸매가 민출하고 얼굴이 끼끗해서 성장한 아들이 있는 집에서는 누구나 넘보던 처녀였다. 그래서 흥묵은 딸에 대한 은근한 자랑과 기대를 가지고 장차 어딘가 돈푼이나 있는 집에 주어서 팔자라도 고쳐보자고 실로 한가닥 행운을 몽상해오던차에 느닷없이 머슴총각과 정분이 났다는바람에 자벌레뛰듯 날뛰며 소란을 피웠다.

《체네 한살에 돈이 얼만지 아 아니, 이 속곳 한벌 못입고 사는 알몸뚱이야. 체네나이 한살에 백냥이면 체네 열살에 돈이 천냥이야.》 이러며 분기가 충천해서 창규를 맞대놓고 삿대질을 하였다. 그에게 딸을 주었다가는 당장 굶겨죽일것만 같은 아뜩한 생각에 한사코 도리질을 했던것이다.

그러던가위에 어느날 아침 창규가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춰버려 서만호집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흥묵에게서 갖은 모욕과 욕설을 받고 분김에 젊은 머슴이 어디 외딴곳에 가서 자결한것 같다는 억측까지 떠돌았다. 그랬던 창규가 1년이 지난 한밤중에 흥묵이네 집에 유령처럼 불쑥 나타나 돈 오백냥을 집어던지고 그의 딸과 함께 그밤으로 또 사라져버렸다. 썩 후에야 제딸이 겸이포로 창규를 따라 아주 달아났다는것을 알고 흥묵은 그년은 내딸이 아니라고 숨이 턱에 닿아 고아대였다. 그리고 자기를 두고 딸 팔아 팔자 고치려는 두상이라느니 공짜라면 양재물도 마시려드는 령감이라느니 욕질을 했다는 창규에 대해서는 골을 까서 매밥을 해도 씨원치 않을놈이라고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쏟았다. 흥묵은 여태 딸집에는 외눈도 돌아보지 않았고 어찌다 마누라가 딸을 찾아 겸이포로 가보려는 눈치만 보여도 온 동네가 들썩하게 야단을 쳤다. 그렇게 수년세월 마음의 문을 닫고 서로 격조하였던 사위가 이제 공산당벼슬을 하고 제고장으로 돌아온다는것이다.

《김창규까지 돌아온다니 해방이 좋긴 정말 좋구나.》

조순근은 은연중 느슨한 웃음을 지으며 읍거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창규로 말하면 그전날 조순근이 서만호집에서 한참 머슴을 살 때 새 머슴으로 들어왔던 사람이여서 그와는 남다른 정회가 있는것이였다. 조순근은 지난날에 한낱 천덕구니 머슴이였던 김창규가 공산당벼슬을 따고 돌아온대서 그런지 오늘은 읍에 가면 무슨 귀가 번쩍 뜨일 소리를 들을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들었다.

《헛허허, 저눔 가이가 또 장엘 묻어가려나.》

한동안 덤덤히 걸어가던 흥묵이는 무중 무슨 생각을 해서인지 히죽이 웃으면서 발밑에 묻어다니는 불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집으로 되짚어 돌아간줄 알았던 개가 조순근의 다리짬으로 빠져나와 냅다 달리였다. 몸피는 주먹만하고 볼품이 없이 여위여서도 네발을 들고 달리는게 나는듯이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