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장 2


 

제 1 장

2

 

승용차는 교외의 들판길을 조용히 달리였다. 묵묵히 차창밖을 내다보시는 장군님의 귀전에는 아직도 할아버님의 목소리가 울려오는듯 하시였다.

낟알을 가꿔 만민을 먹여살리는 농군들을 천대하지 못하게만 해도 한이 없겠다시던 할아버지, 그 소원은 얼마나 소박하고 눈물겨운것인가. 이 나라 농군들이 그렇게도 천시당했음을 장군님께서는 새삼스럽게 절감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조국에 개선하신 첫무렵 황해도 파견원으로부터 소작인들의 참상에 대한 서면보고를 받아보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그때 그 파견원이 보낸 서면보고에 의하면 지주집 뒤주마다엔 쌀이 가득 넘쳐나지만 소작인들은 한창 무르익는 논벌의 벼를 바라보면서도 기근에 시달린다고 하였다. 특히 나무리벌의 어느 마을은 기아와 영양실조로 해서 무리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다는것이였다. 파견원은 현 농촌의 실태가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있는가를 생동하게 재현하기 위해 어느 한 문필가의 연설내용의 일부분을 서면에 실려 보내기까지 했다.

바로 추석날저녁에 연사로 나타난 그 문필가는 해주시가에 모인 자연군중을 향해 《농군들이 지금 무르익어가는 황금이삭을 목전에 보면서 기근의 위협을 느끼고있다. 절대다수가 절량농가여서 그네들은 오늘 팔월가위에 추석빔도 못입고 조상의 산소에 떡 한그릇도 빚어올리지 못했다. 나라는 해방되였으나 농군들의 설음은 가셔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천년동안 이 땅에 지속되여온 가혹한 삼각관계-지주와 땅과 소작농의 관계에서 빚어진 비극이다. 농군들은 지주의 땅에 얽매인 자기들의 설음을 숙명으로 생각한다. 과연 수천년동안 얼어붙어 높이 쌓인 얼음의 산악을 일격에 녹여버릴 구호신이 내 나라에 있을가? 과연 해방이 그네들의 운명을 구원해줄수 있을가.》 하고 통탄하였다 한다.

장군님께서는 농민들을 동정하는 그 문필가가 지나치게 허무적인 연설을 하였지만 그의 넉두리에는 제딴으로 현사태의 진실을 반영하려는 남다른 모대김이 있다고 생각되시였다. 그가 말한것처럼 지주의 땅에 얽매인 농민들의 운명을 구원하는 문제가 결코 북극의 얼음산을 녹이는것과 같이 불가항력적인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가장 어려운 혁명임에는 틀림없었다.

이날 할아버님께서도 수백만 농군들에게 다 땅을 주는것은 천고에 없는 천지개벽이라고 하시였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장군만은 할수 있다고 믿으시던 할아버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할아버님의 믿음이라기보다 간절한 부탁이라고 생각되여 더욱 어깨가 무거워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소작료와 장리쌀때문에 가을철에마저 기아에 시달리고 영양실조에 걸려 무리죽음의 위험을 당하고있었던 나무리벌의 한 마을을 머리속에 다시 그려보시였다.

그때는 장군님께서 인민들앞에서 개선연설을 하시기전이였다. 백두산에서 빈 배낭만을 가지고 돌아온 장군님께서는 굶주려 죽게 된 농민들의 소식을 듣고도 쌀 한줌 보내줄수 없으시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마을을 기아에서 구원하도록 대책을 취하시였을뿐이였다.

그러나 한갖 응급처치에 불과한 그런 방법으로는 이 나라 농민들의 가난을 구제할수 없는것이다.

문제는 농민들을 땅의 주인으로 만드는것이였다.

할아버님께서 늘 외우시는 천하지대본인 농사, 그것은 옳은 말이다. 전인류적으로 볼 때에도 인간생존의 기초수단은 농업인것이다. 그래서 토지개혁이 여간 어렵지 않지만 제일 선참으로 해야 할 변혁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번 공산당 제1차확대회의에서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을 채택한것이 백번 옳은 일이였다는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시였다.

(우선 3. 7제투쟁이 온 나라 농촌마을에서 벌어지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당면하게 농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이 장차 땅의 주인이 될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각성시켜야 한다.)

장군님의 사색을 싣고 승용차는 어느덧 평양시가에 들어섰다. 가랑잎이 굴러다니는 가을바람 소연한 거리에는 아직도 식민지노예살이의 상처와 때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거장 뒤거리를 지나자 우뚝 솟은 3층벽돌집 현관이 차창에 비쳐왔다. 그전날의 경찰서건물이였다. 조선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이고 유린하는 저들의 무한한 권력을 시위라도 하려는듯 붉은 벽돌로 어마어마하게 담벽을 치고 베란다에는 한아름씩 되는 원형기둥을 다듬어 세웠다. 건물앞에는 둥그렇게 련못을 팠는데 그전날에 그 못 복판에는 일본 사무라이가 금붕어입에 장검을 들이찌르는 서툰 조각상이 세워있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던 날에 군중이 달려들어 그 조각상을 까부셔버려 지금은 못변두리에서 다박솔같은 분수만 쏟아져내렸다. 멱에 칼을 찔리였던 금붕어, 은붕어가 그 칼에서 놓여나기라도 한듯 못에선 물고기가 비늘을 번쩍이며 추석추석 뛰여올랐다.

승용차는 평천리에 들어섰다.

장군님께서는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키높은 널바자를 둘러치고 서있는 내화벽돌집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운전수에게 물으시였다.

《가만, 무송동무, 저 벽돌집에 〈대동철제〉라는 간판이 나붙었는데 철공소가 아니요?》

《장군님, 철공소같습니다.》

두볼이 오동통한 스무살안팎의 젊은 운전수는 차의 속도를 늦추며 대답하였다.

《철공소란 말이지?》

장군님께서는 차를 멈추게 하고 양철을 말아세운 굴뚝을 바라보시였다.

만경대에서 보았던 할아버님의 호미생각이 불시에 떠오르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평양교외의 농촌마을들을 돌아보는 과정에 전반적으로 농쟁기들이 낡고 부족하다는것을 알게 된 장군님께서는 철공소 사람들과 당면한 농쟁기생산문제를 의논해보면 좋지 않겠는가싶었다.

《그런데 굴뚝에서 왜 연기가 나지 않소?》

장군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여 철공소문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시였다. 《대동철제》라는 간판을 붙인 한길이 넘는 시꺼먼 철문에 주먹크기만 한 넙적자물쇠가 매달려있었다.

《철공소가 일을 안보는구만.》

장군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그러다가 철공소 맞은편에 있는 사진관을 띠여보고 박무송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무송동무, 저 사진관에 가서 좀 물어보시오. 철공소에서 왜 아직 문을 열지 않는지 거기서 혹시 알수 있을거요.》

박무송은 곧 그리로 달려갔다.

큰길을 향해 유리창문들을 내고 붉은 벽돌로 아담하게 벽을 친 《광명사진관》사진실에는 여라문명의 사람들이 주런이 늘어서 있는데 그앞에서 회색 세루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안경을 낀 얼굴 해말간 사나이가 류창한 목소리로 말하고있었다.

박무송이 손님들속에 끼여서 가만히 듣고보니 평남인민정치위원회가 조직하는 《서도빈농협의회》에 대한 선전을 하고있었다.

《···사실상 평남은 서도에선 이모저모로 중심이라고 보오. 그래서 빈농협의회를 소집한게요. 평남인민정치위원회가 도시의 식량난을 풀자고 단호하게 정책을 펴는게 틀림없다고 보오. 소문에 의하면 소작료문제도 토의될것 같다고 하오.》

《소작료문제야 이미 공산당에서 3. 7제로 하라고 결정을 내리지 않았소.》

방한쪽구석에서 기다란 사진기나무다리를 손질하고있던 사진사인듯 한 사람이 불쑥 말참녜를 하였다.

《그래서 장군님의 정치가 좋다는게 아니요. 결정두 나오구 법두 만들구. 더구나 이번 회의에는 순수 농사군들이 참석해서 한다는 사실이요. 옛날엔 생각이나 할수 있었소.》

《듣고보면 그럴듯도 하오만 어쨌든 북조선에는 로국처럼 공산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하오.》

사진사는 수심어린 얼굴로 중얼거리였다.

그는 며칠전에도 공산당부에서 나왔다는 한사람이 철공소문앞에서 들썩하게 연설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철공소주인이 서울로 내빼지 않았소. 공산당은 일체 개인재산을 몰수하고 개인기업을 국영기업으로 한다니 이 사진관도 장차로는 국영으로 될것 같소.》

《아니 철공소주인이 서울로 갔다구요? 그게 사실입니까?》

박무송은 저도 모르게 사진사의 말을 가로 막으며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부르짖듯이 물었다. 그바람에 사진관안의 모든 눈들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일시에 그에게로 쏠리였다. 군복을 입은 애리애리한 청년이 들어온줄도 모르고 이야기에만 팔려있었던터라 모두가 어정쩡해있었다.

《예, 철공소주인이 서울로 갔습니다. 왜 그러는거요?》

사진사가 박무송의 군복차림을 아래우로 훑어보며 의아쩍어했다. 사진사는 거의 중년배가 되는 사람이였지만 군복차림에 위압되여선지 박무송에게 깍듯이 례절을 지켜 말했다.

《철공소주인이 가족을 다 데리고 갔는가요?》

《자기 혼자만 갔다는것 같습디다.··· 그런데 어데서 오셨습니까?》

사진사는 잔뜩 긴장해진 얼굴을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박무송은 고개를 약간 숙여보일뿐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잘 알았습니다. 실례했습니다. 한가지 알아둘것은 공산당이 일체 개인재산을 몰수한다는것은 허튼 소리입니다. 그러니 마음놓고 사진관경영을 하십시오.》

박무송은 장군님께서 기다리실것 같아 그렇게 자기 말을 아퀴짓고 표연히 사진관문을 나섰다.

박무송은 철공소주인이 서울로 나간 사실을 그이께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철공소문에서 주먹같은 자물쇠를 보는 순간에 벌써 불길한 예감이 드시였던것이다.

그것은 그마적에 일부 사람들이 좌경적인 연설들을 하여 이미 적지 않은 기업가들속에 공산당을 불신하고 경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있었기때문이였다.

《남으로 갔단 말이지?》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반문하며 차에 오르시였다.

승용차가 서서히 미끄러지며 큰길로 빠져나가자 장군님께서는 혼자소리처럼 뇌이시였다.

《철공소주인은 꼭 돌아올게요. 가족을 둬두고 자기만 살겠다고 가진 않았을테니까. 그는 이제 모든걸 리해하게 될거요.》

장군님께서는 어쩐지 가슴이 아프시였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장애물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나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