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제1장 1


 

제 1 장

1

 

서느러운 한줄기 가을바람이 들을 쓸며 지나가자 백양나무 잎사귀들이 곤두박질하며 떨어졌다.

만경봉솔가지우로 수박속같이 불그레한 아침해가 솟아올랐다.

김보현할아버님께서는 백양나무앞에 있는 자그마한 논배미우에서 뒤짐을 짚고 서성거리시였다. 품이 후렁한 광목바지저고리를 입고 고무신을 신은 발로 얼마전에 쇠스랑으로 찍어엎은 흙밥을 죽신죽신 밟아보시였다. 기름기도는 검실검실한 흙밥이 발에 밟혀 떡가루처럼 부서졌다.

(불일간 거름을 다 내야겠군.)

해방을 맞은 기쁨에서인지 이해따라 좀 이르게 가을을 끝냈지만 할아버님의 심정은 급하시였다. 그래서 벌써 며칠전부터 다음해 농사차비를 서두르시였다. 금년에 참외를 놓았던 비탈밭에는 재간에서 여름내 잠재운 재를 여러짐 져내다가 무져놓았다. 어제는 하루동안 쇠스랑, 곽지, 호미같은 연장을 수리하느라 마당에 내다놓고 뚝딱거리시였다. 그러다가 오늘은 백양나무앞에 있는 샘받이논을 돌아보려고 나오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 시집을 오신뒤 일구신 논이였다. 시부모들의 생신날에도 이밥 한그릇 대접못하는것이 마음에 걸려 늘 속을 태우시던 녀사께서는 어떻게하든 논농사를 지어 다문 한말의 입쌀이라도 장만해보려고 손수 쑥대밭을 뚜지고 샘터에서 흘러나오는 도랑물을 끌어다 이 논을 푸시였다.

해마다 벼모는 붓지 못하고 모내기철에 먼 동리에 나가 벼모를 몇춤씩 구해다가 꽂으시였다. 논물이 마르면 바가지로 우물의 물을 퍼서 뿌려주기도 하시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만경대에선 이 논을 지성논이라고들 일러왔다.

예로부터 만경대는 논이란 거의 없는 고장이였다. 그저 이백평, 삼백평씩 되는 자름자름한 밭들에다 조, 수수, 목화, 고구마, 참외씨 같은것을 박아넣군 하였다. 다른 농작물들은 그럭저럭 수확이 괜찮았으나 목화는 두어뽐되는 키에 겨우 네댓송아리 댕그랗게 달릴뿐이였다. 그런것조차 절반은 소작료로 바치고 나머지를 가지고 물레로 실을 뽑았다. 만경대할머님께서도 이 빈약한 수확을 가지고 시름많은 긴긴 겨울밤 스르릉스르릉 물레를 돌리군 하시였다.

바로 이런 고장에 이 지성논 한배미가 생겨난것이다. 비록 쌀은 몇되박 거두지 못하지만 이 고장의 설음을 말하고 며느리의 만단사연이 깃들어있는 이 손바닥만한 논을 할아버님께서는 눈물이 나게 들여다보시였다.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며느리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서 어른거리시였다. 칠골에서 시집을 와서부터 그 순진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구차한 집안의 대소사를 맡아나가며 시부모공양을 그렇게도 착실히 해나가던 며느리, 그 며느리가 지금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이고 이영집사립문안으로 걸어들어가는것 같으시였다. 류수같은 세월에 까마아득히 옛일로 된 일이였지만 생각을 더듬으면 어제일같이 새로우시였다. 그 며느리, 그 아들이 살아서 장군이 된 제 아들과 함께 이 옛자욱이 짙은 땅으로 다시 돌아왔더면 얼마나 좋을가. 날개라도 있다면 훨훨 날아서 아들, 며느리가 누워있다는곳으로 가보고싶다. 바람부는 타국의 쓸쓸한 산언덕에 주인도 없이 누워있을 아들, 며느리··· 할아버님의 눈에 눈물이 고여 주글주글 고랑을 지은 눈가장 주름살우로 두르르 굴러내리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울밖에 있는 두엄무지쪽으로 가시였다. 그 옛 생각많은 논배미에 거름이라도 네댓무지 무져놓으면 가슴허비는 아픈 생각이 좀 나아지기라도 하겠는지···

할아버님께서는 두엄을 바지게에 담아 논으로 져나르기 시작하시였다. 대여섯번 두엄짐을 나르고나서 지게를 벗어놓으시려는 참인데 형록삼촌이 전선타래와 애자묶음을 새끼줄에 꿰여들고 나타나시였다.

《아니, 아버님, 아침부터 무슨 두엄을 져내느라고 이러십니까?》

형록삼촌은 달려와서 지게초리를 잡고 할아버님을 부축하시였다.

《아버님, 그만하고 들어가십시다. 남들이 보면 집안에 일손이 영 없는줄 알겠어요.》

《됐네. 그런데 이사람, 전기공사는 다 돼가나?》

할아버님께서는 두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서시였다.

《예, 하루이틀 전주구뎅이나 마저 다 파면 환한 전기불을 볼것 같습니다.》

형록삼촌은 지게를 한쪽 어깨에 둘러멘채 할아버님을 모시고 마당으로 들어가시였다.

《해방이 좋긴 좋구나. 여기두 다 전기불이 들어오구. 그놈의 기름접시에 담아놓은 고투리불 보기두 싫더니.》

할아버님께서는 형록삼촌을 따라 들어와서 마당 한귀에 조그맣게 무져있는 한말가웃쯤 되는 탈곡한 벼알무지를 바라보시였다. 지성논에서 거두어들인 벼였다. 20년만에 돌아온 장군에게 햇쌀밥이라도 한끼 지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에 례년보다 퍽 일찌기 베여서 탈곡하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지성논의 벼를 바라보느라니 장군을 찬바람이 새여드는 어설픈 방에 맞아들이던 며칠전 일이 다시금 가슴에 사무쳐오시였다. 그때 만경대집은 수리중이여서 이웃에 있는 깨끗한 집에 주무실 방을 마련하였댔으나 장군님께서 굳이 마다하시였다.

《할아버님, 저는 이 방에서 할아버님, 할머님과 함께 자겠습니다. 15년이나 산에서 나무잎을 깔고잤는데 왜 이런 방에서 못자겠습니까.》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20년세월 덧쌓인 그리움과 정을 쏟으며 어린 시절처럼 할아버님곁에서 하루밤을 지새시였다.

《요즘 장군이 바쁜 모양이야.》

할아버님께서는 자그마한 벼무지를 생각깊이 내려다보며 조용히 뇌이시였다.

《그럴테지요. 빈터에서 새 나라를 일구자니 여북하겠어요. 그러지 않아 장군을 좀 만나봐야겠어요. 앞으로 세상일이 어떻게 되는지 두루 알아보고싶은게 많아요.》

형록삼촌은 갑자기 말씀을 끊으시였다. 사립문밖에서 낯익은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기때문이였다,

《오늘은 내가 일찍 만경대에 와서 두엄을 몇점 져볼가 했는데 벌써 다 져날랐구만요.》

뜻밖에도 양복차림의 장군님께서 우선우선한 모습으로 울바자를 돌아 사립문으로 들어서시였다.

《아니··· 장군이?》

할아버님과 형록삼촌은 거의 동시에 놀라운 소리를 내며 달려가시였다.

《할아버님, 삼촌, 이 며칠새도 다 무고하셨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정답고도 유쾌한 웃음으로 온 뜰안을 밝히는듯 하시였다.

《어떻게 온다는 기별도 없이··· 여보, 장군이 왔소.》

할아버님께서는 사립문너머에 얼핏 시선을 주었다가 부엌쪽을 향해 소리를 치시였다.

《아니 누가 왔다구요?》

부엌일을 하던 할머님께서 치마폭에 손을 씻으며 뛰여나오시였다.

《할머님!》

장군님께서는 감격의 첫 상봉을 하던 며칠전 그때처럼 세월의 풍파에 늙고 쇠진해진 할머님의 어깨를 그러안으시였다.

《오늘은 소문두 없이 네가 왔구나.》

할머님께서는 장군님의 손을 쓸어만지며 울어버릴듯이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요즘 정사에 바쁘다는데 어떻게 짬을 냈느냐?··· 전번에두 네가 강나루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더니 또 걸어온가보구나.》

할머님께서는 장군님의 한쪽팔을 잡아쥔채 눈물을 머금고 사립문밖 저쪽을 내다보시였다.

《제가 이 집 마당에 차를 타구 들어서면 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비록 례사로운 표정으로 조용히 말씀하시였으나 그속에 눈물겨운 뜻이 담겨있는것 갈아 할머님은 더욱 오열이 북받치시였다.

조부모님들의 피눈물자욱이 속깊이 스며있는 땅, 여기에는 어린 시절 아버님과 함께 늘 오르시던 소나무 푸르른 만경봉이 있고 어머님께서 그네를 밀어주며 효자동, 영웅동이 되라고 노래불러주시던 그네터가 있는것이다. 그 부모님들의 뜻대로 나라를 찾고 돌아왔으나 이런 땅, 이런 집에 차를 타고 들어오기에는 정녕 너무도 가슴이 쓰라리고 마음이 송구하신것이였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구.》

형록삼촌께서도 눈을 슴벅이며 장군님의 팔을 잡아 끄시였다.

《삼촌, 날씨도 좋은데 밖에서 좀 이야기하다 가겠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시간이 좀 바쁜걸 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감회롭게 마당을 둘러보시였다. 마당귀에 조그맣게 무져있는 지성논의 벼가 문득 그이의 눈에 밟히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이 벼한줌을 집어보고는 쇠스랑, 호미따위의 농쟁기들이 눕혀있는 저편으로 걸어가시였다. 거기서도 호미 한개를 들고 한참 쓸어만지시였다. 할아버님의 손때가 오른 호미는 닳고 닳아서 귀가 모지라지고 날도 몽실몽실해졌다. 해마다 벼림질을 해서 귀를 늘구고 날을 세우지만 워낙 오래된데다 한시도 쉴틈이 없는 호미여서 반쪽이 되여버렸다.

할아버님께서 얼마나 흙을 허비고 돌을 번졌으면 이렇게도 모지라졌으랴싶었다. 할아버님의 고된 로동속에서 호미날은 갉히고 만경대 비탈밭은 낮아졌으리라. 그것은 바로 불우한 이 나라 농군들의 화상같기도 하시였다.

《글쎄, 아버님이 이젠 일손을 놓고 좀 쉬였으면 좋지 않겠나. 그런데 금년 가을엔 오히려 더 극성이시네. 오늘아침엔 뫼덤같은 두엄무질 다 헐어서 져내셨구만, 허 참.》

형록삼촌께서 장군님의 아픈 마음을 헤아린듯 안타까이 말씀하시였다.

《그러게말이다. 저렇게 극성을 부리군 밤엔 삭신이 저리고 쑤셔서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하지. 동네에서도 이젠 손자가 장군이 되여 오셨는데 고령에 무슨 들일을 하느냐구 말려도 어디 말을 들으셔야지···》

할머님께서 아드님의 말에 동을 달며 혀를 차시였다.

《무슨 말들을 그렇게 해!》

할아버님께서는 토방에 앉아 구리대통을 빨면서 두분을 향해 눈섭을 구핏하시였다.

《나서부터 땅을 뚜져온 내가 오륙이 성해있는이상 손에서 호미를 놓으면 되겠나?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농사는 천하지대본이야. 농사가 잘되구 농군이 극성스러워야 장군이 하는 나라정사도 잘되는거지. 안그렇나?》

할아버님께서는 장군님을 돌아보시였다.

《농사를 잘 지어야 나라일도 잘된다는 할아버님의 말씀은 천만번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제가 오늘 할아버님, 삼촌과 마주앉아 래년농사를 어떻게 하면 잘 짓겠는지 그걸 좀 의논해보자고 왔습니다. 이젠 나라도 해방되였는데 한번 본때있게 농사를 잘 지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우리 농민들도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암, 그래야지. 그러나 한해농사를 잘 짓게 만드는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농군의 가난을 구제하는 일은 헐한 일이 아닌줄로 안다.》

할아버님께서는 서글프게 중얼거리며 마당귀에 무진 지성논의 벼를 새삼스레 건너다보시였다.

《장손아!》

할아버님께서는 부지중 이렇게 부르시였다.

《나는 네가 찾아준 해방된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된것만두 족하게 생각한다. 농사가 민생의 기본이구 누구나 낟알을 먹구 살건만 우리 농군은 늘 천대만 받아왔다. 나는 이제 네가 흙을 뚜져 낟알을 가꿔 만사람을 먹여살리는 우리 농군들을 천대하지 못하게만 해두··· 우리 농군들을 사람대접만 시키게 만들어두 한이 없겠다.》

할아버님의 눈귀에 눈물이 고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에 사무친 이 나라 농민들의 원한의 목소리를 듣는것만 같아 심중해지시였다.

《농군들이 그저 기를 펴고 살게만 해다오. 그러잖아 흉흉한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어제두 이 마을 숱한 농군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한바탕 걱정들을 늘어놓구 갔느니라.》

《무슨 일로 걱정들을 했습니까? 다 말씀하십시오. 털어놓고 말해서 저는 할아버님과 삼촌이 농사물계에 환하실뿐아니라 누구보다도 기탄없이 말씀하실수 있다고 믿고 찾아왔습니다.》

《다른게 아닐세. 윤지주의 마름놈이 요즘 소작지를 싸다니며 농군들의 마음을 설뚱하게 만들고있어서 그러네.》

형록삼촌이 그 자초지종이야기를 차근차근 옮기시였다.

오래전부터 여기 만경대일대의 토지는 평양성에서 사는 윤장엽이라는 대지주가 다 거머쥐고있었다. 그놈은 일본놈을 등에 업고 이곳 농민들의 피땀을 악착스레 빨아먹다가 해방이 되자 제일 먼저 남으로 들고뛴놈이였다. 호의호식하며 갖은 악한짓을 다하던 그놈이 도망쳤다는 말에 만경대농민들은 저마다 환성을 올리였다. 그런데 며칠전에 느닷없이 그놈의 마름이 나타나서 해방된 나라에 낟알을 성출하도록 령이 내렸으니 빨리 소작료를 5할이상으로 바치라며 싸다녔다는것이다.

어떤 어리숙한 농군의 집에 가서는 소작료를 제대로 빨리 물지 않으면 당장 땅을 떼겠다고 재털이에 상아물부리를 두드리며 을러멨다 한다.

《그래서 농군들이 아버님을 찾아다녔지. 실상 낟알을 그렇게 바치고나면 래년농사는커녕 몇달을 못가 입안에 거미줄이 칠판이니 걱정하게도 됐지.》

형록삼촌께선 장군님의 표정을 은근히 살피며 조용히 한숨을 쉬시였다.

《할아버님은 그놈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내흉스러운놈이 까마귀 꿩잡을 계교를 꾸미네. 나라에 소작을 바칠것 같으면 농군이 직접 바치지 제 손을 빌어 바칠가. 그래서 내가 농군들보구 그놈의 쓸개빠진 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소문을 들어보면 정사를 보는이들중에 지주의 역성을 드는 사람도 없지 않는가 보더라. 마름놈은 그런 사람의 등을 믿고 돌아치겠지.》

《나라가 갓 해방되다보니 좀 복잡합니다. 그러나 우리 농군들의 소원을 꼭 풀어볼 결심입니다.

할아버님, 우리는 며칠전에 당을 세우고 련이어서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을 채택했습니다. 그건 당장 소작료를 3. 7제로 하고 장차로는 지주의 토지나 일본놈들이 가지고있던 모든 땅들을 농군들에게 노나주게 하는 결정입니다. 땅의 주인이야 밭갈이하는 농민들이 아니겠습니까.》

《으음···》

할아버님께서는 일순 놀라서인지 아니면 가슴이 뻐근해서인지 미처 대답을 못하고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시였다. 마당귀에서 벼무지를 고르시던 할머님께서도 이 무슨 천지개벽을 일으키는 말인가싶어 몸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세분들이 다 잘 리해하실수 있도록 《토지문제에 대한 결정》내용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해설해주시였다.

《네가 과시 백성의 장군이로다. 아무렴 땅의 주인이야 우리 농군들이지. 고맙다. 장군이 되여서도 근본을 잊지 않는 네가 고맙다.》

할아버님께서는 목메인 소리를 하며 장군님의 손을 덥석 쥐시였다. 마른 진흙덩이처럼 터갈린 할아버님의 손을 내려다보는 장군님의 목소리도 갈리시였다.

《할아버님, 제가 어떻게 그걸 잊겠습니까.》

《우리 농군들에게 땅을 주겠단 말이지?》

할아버님께서는 다시금 반문하며 강한 충격에 떠받들리듯 움쭉 일어서시였다. 그리고는 북받치는 생각을 진정못해 구리대통을 손에 쥔채 사립문앞에까지 걸어가시였다. 어딘가 멀리를 내다보시는 할아버님의 눈물어린 두눈에서 고달픈 농군의 한생이, 아니 수천년의 고난의 력사가 흘러가는듯하였다.

《수백만 농군들에게 다 땅을 준다! 그건 참 전고에 없는 천지개벽이다. 허나 나는 어쩐지 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너만은 할수 있다고 생각되누나.》

《할아버님께서 그렇게 믿어주시니 힘이 생깁니다. 왔던 보람이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벼무지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장군님의 모습을 여겨보시였다.

《그 토지결정소식을 들으니 젊은 기운이 되살아나는것 같구나. 나도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결정을 받들어 직심히 농사를 짓겠다.

3. 7젤 잘하구 마을농군들을 들어일궈 마름놈이 더는 못된짓을 못하게 만들겠다.》

할아버님께서는 사립문밖을 다시 내다보시였다. 70평생 밟고다니며 낟알을 가꿔온 눈물겨운 땅들을 바라보시는듯했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뜨거워지시였다.

《나도 아버님과 같은 심정일세. 장군의 삼촌답게 농사를 잘 짓겠네.》

형록삼촌께서는 목이 메여올라 잠시 서있다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할아버님을 돌아보시였다.

《우리 아버님이 이제 정말 3. 7제투쟁을 잘하실게야. 저렇게 유순하지만 배짱이 대단하시거던. 왜정때두 순사놈과 지주놈앞에서 땅땅 맞섰다네. 한번은 지주놈이 소작룔 가지구 롱간질을 해서 성안에 있는 그 윤장엽이놈을 직접 찾아가 당장 소작룔 낮추라구 호령을 했다네.》

형록삼촌께서는 성수가 나서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이때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계시던 할머님께서 한마디 참견하시였다.

《네 아버지에게 배짱은 무슨 배짱이 있겠니. 세상 마음이 여린 령감이지. 왜정때 일본놈들이 장군을 꾀여보겠다구 나를 앞세우고 만주에 가서 돌아칠 때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님은 집에서 울고계셨다면서?》

《그건 어머님의 고생을 생각해서 그러신거지요. 허허허···》

형록삼촌께서는 부모님을 번갈아보시며 만시름을 털어버리듯 크게 웃으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흰구름 떠도는 가을하늘을 하염없이 지켜보시였다.

장군님의 일가분들이 서계시는 마당으로 두엄냄새를 싣고 소슬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