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봄-마감이야기


 

마감이야기

 

훈훈한 봄바람은 정원의 애어린 나무가지들을 가벼이 어루쓸며 쉼없이 어리광을 부린다. 바늘대같이 올려민 풀대들은 따스한 해볕에 노그라지듯 야들야들한 잎들을 한들대고있다. 겨우내 꽛꽛이 얼어붙었던 땅은 봄물에 부풀어 괭이날로 뒤집을 때마다 입김같은 가느다란것을 피워올린다. 턱아래에 들가말가한 정원의 사과나무는 금시라도 터질것 같은 부푼 순들을 가지마다 촘촘히 내밀고 흘러가는 바람과 따스한 해볕속에 취한듯 서있다. 합숙쪽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어간 두줄기 은빛전기줄에는 언제 날아왔는지 청제비들이 녹두알같은 눈알을 굴리며 지지배배를 열심히 외우고있었다.

웃옷을 벗어 사과나무가지에 걸어놓은채 흙을 긁어올려 북을 돋구던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펴며 천천히 이마의 땀을 훔치시였다. 흙내, 풀내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페부에 스며든다. 들이킬수록 가슴이 시원히 열린다. 그이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얼마나 좋은 날인가. 만시름이 일조에 녹아내리는것만 같다. 어제저녁 농림국장은 토지개혁의 완전결속을 집계한 통계자료를 한아름 안고와서 밤새 흥분에 들떠 진정을 못하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벌써 오늘아침에는 서기장이 춘기파종준비에 대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결정서초안을 잡아가지고와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우리 농민들이 수난과 질곡의 땅에 자기의 첫보습을 들이박는 그 력사적인 문건을 들고와서도 그답게 보통있는 례사로운 일처럼 조용히 종곡, 비료, 축력, 농기구 같은것을 보장하기 위한 실무적인 의논만 했다.

이 봄날의 위대한 전변은 이렇듯 사람들에게 제나름의 기쁨과 흥분을 안겨주고있었다. 수천년 내려오던 봉건적인 잔악한 소작제를 철페하는 토지개혁은 스무날동안에 회오리바람같은 속력으로 완전승리를 이룩하였다. 전국적으로 70여만호의 농가가 토지를 분여받았다. 소작주던 토지면적의 99%가 몰수되여 농민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런속에서 우리 인민의 새 조국 건설의 열망을 담은 20개조정강이 발표되여 남북삼천리 온 강토가 물끓듯 솟구치고 뒤번져지며 끓어오르고있다. 지금 북조선의 수백만농민은 얼씨구나 춤을 추며 봄의 대지로 달려나가고있다. 모두다 자기의 땅이 된 농토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있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며칠전 어느날 대동군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밤길에 밭가운데 비석처럼 앉아있던 농민을 만나본 생각이 나시였다.

그날 승용차의 불빛이 벌을 엇쓸며 달리는데 밭가운데 웬사람이 난데없이 허리를 펴고 앉아있는 모습이 비껴들었다. 앉아있는곳이 밭머리가 아니고 수수그루가 삐죽삐죽한 밭고랑인데 거기에 벼짚방석을 깔고 올방자를 괴여올린채 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인사를 하며 여기서 무얼하는가고 물으시였다. 농민은 머밋머밋하다가 《저, 저》소리만 내며 말을 떼지 못했다. 얼마후에야 그는 토지분여시에 이 밭을 분여받았노라고 했다.

《그런데 왜 밭고랑에 나와앉아있습니까?》

《글쎄 이 밭이 내밭으로 넘어오긴 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꿈같기만 하고 거짓말같기만 해서 땅을 눈에 익히기도 할겸 나왔습니다.》

《이젠 들어가 편히 주무십시오. 거짓말도 꿈도 아니고 땅을 들어갈놈도 없으니 밤마다 편안히 쉬며 밭갈이준비나 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담배를 권하시였다.

《간부어른, 밭갈이를 해도 일없겠지요?》

《자기 땅인데 제가 밭갈일 하지 누가 하겠습니까?》

그 말에 농민은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담배대 쥔 우둘투둘한 손이 자꾸 눈가로 갔다.

그날밤 일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시였다. 울고있던 그 농민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광경이 여기서도 보이고 저기서도 보인다. 정말 온 나라 농민들이 다 그렇게 자기가 받아안은 땅을 자기품에 끌어안고 이게 정말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할지도 모른다.

피와 눈물의 력사가 지나간 대지로는 봄바람이 흘러가고 부푼 땅에서는 어디서나 땅김이 아지랑이처럼 서려오르리라. 시체처럼 싸늘하게 식어있던 땅에서 문득 이 땅, 이 나라를 찾자고 피를 뿌린 사람들의 넋이 더운 입김을 불며 떠올라서 곳곳에 만첩으로 붉은 꽃을 피워올릴듯싶었다. 이제 논밭마다 지경마다 패말이 지심깊이에 박히면 이 나라의 땅에 더는 눈물이 고이지 않을것이다. 애오라지 즐거운 로동의 구슬땀을 받아 풍요한 이삭을 주고 행복만을 주게 될 땅, 아, 땅은 이렇게 인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할수도 있었단말인가.

장군님께서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땅의 황홀한 꿈과 미래를 그려보며 괭이질을 멈추고 풋솜같은 흰구름이 둥둥 떠가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시였다. 늦은 철새들이 창공높이 아아히 떠서 북으로 깃을 치고있다. 한일자로 늘어선 기러기떼는 때늦은 느낌이라도 있는 모양 분주히 헤염쳐가며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간고한 봄이기도 하였다. 새 생활, 새 인간, 새 력사가 태여나며 장쾌한 서곡을 울린 봄이였다. 땅만 천지개벽을 일으킨것이 아니였다. 땅의 주인으로 될 새 인간들이 자라나 자기자리에 굳건히 들어선 인간전변의 봄이였다.

력사밖에 밀려나 암담한 세계를 저주하며 울던 눈물의 후예들- 조순근이, 대복이, 서분이 그리고 무지와 몽매의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얽혀 인간 아닌 인간으로 살아오던 베감투쟁이의 달성서씨들, 지금은 농촌위원으로까지 되였다는 나깨미국수집 서달호, 언제인가 투박한 손가락으로 한일자를 가로건너긋던 갈촌의 머슴농민, 바로 그들이 지금 새 인간으로 갱생하여 자기땅을 되찾고 그 땅에다 새 생활의 패말을 박는것이다.

새 인간으로 갱생한것이 어찌 농민들뿐이랴. 지주에게 예수의 자비를 베풀고 그들에게 선심을 호소하여 토지개혁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던 송신일- 그는 이 땅의 전변을 거쳐 진정한 인도주의와 참인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였고 그래서 진실로 정의로운 인생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고있다. 화승대를 메고 흘러온 과거를 탄식하며 이 나라 농민들에게 환멸을 가졌던 강진건-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농민들을 믿고 사랑하는 농민운동의 지휘관으로 자라나 자기 몫을 해내고있다. 재령벌의 김창규는 또 얼마나 믿음직하고 기둥같이 굳건한 우리 당의 일군으로 성장했는가. 토스레옷을 입고 류랑걸식하던 소년시절의 로동청년은 놀랄만치 강한 의지로 자기 고향을 꾸려가고있다.

이렇게 태여난 새 인간들이 이 나라의 어디에 가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자기자리에 들어서고있다. 참으로 토지혁명을 거쳐 이 민족이 몰라보게 키를 훌쩍 솟구었다. 이것이야말로 몰수한 100만정보의 토지보다도 더 큰 재부이고 자랑이고 힘이 아니겠는가. 후세의 사람들은 토지개혁의 력사를 쓰면서 100만정보의 지주땅을 몰수하여 땅없는 농민에게 무상분여하였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록할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땅의 전변과 더불어 일어난 민족의 전변, 인간의 전변에 대해서는 몇페지의 글로 적어내지 못할것이다. 조선의 토지혁명은 바로 그것, 세기를 두고 력사가 바라마지 않은 인간혁명을 가져온것으로 하여 인류앞에 공헌한것이 아니겠는가.

장군님께서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스적스적 괭이질을 계속하시였다. 이 나라의 모든 땅을 그렇게 가꾸듯 흙을 제껴선 괭이등으로 부스러뜨리고 긁어올리시였다. 검붉은 흙은 사과나무밑둥에 쌓이고 또 쌓이여 나무그루를 감싸안고 메같이 두드러져올랐다. 이 나라에 찾아든 새봄의 기쁨을 날새들도 알고있는지 흑곤색깃을 넓게 편 제비들이 푸른 하늘로 솟구치고 누런 대지로 내리꼰지며 끊임없이 사과나무주변을 날아옜다.

제비들은 아지랑이같은 연무속에서 미소를 그리며 김을 문문 날리는 재령벌의 드넓은 대지우로도 날고있었다.

얼어붙었던 재령강은 개안이 그득해서 출렁출렁 흘러간다. 주먹처럼 뻗쳐오른 벼락바위에 부딪칠 때마다 해빛에 수천수만의 은구슬이 부서져내린다.

《쭁 쪼르르, 쭁 쪼르르.》

흰배에 청저고리를 입은 물촉새, 할아버지의 갖저고리를 입고 나온것 같은 할미새들이 개버들사이를 오고가며 봄의 송가를 읊조린다.

《이랴!》

황소고삐를 잡은 조순근이 대복이와 팔에 부목을 댄 서분이 그리고 얼마전에 찾아온 막동이를 저만치 앞세우고 재령강방축길을 걷고있었다. 이젠 한집안식구가 된 서분이와 막동이를 바라보며 그는 흔연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바구니에 점심밥그릇을 담아이고 조순근의 옆에서 걷는 안해도 대지우에서 비단무늬같이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바라보며 기쁨에 눈시울을 적신다. 오늘은 밭에 패말도 박고 그 밭을 다 갈아엎을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차비들이였다.

재령강을 건너 장사래밭에 이르자 조순근은 소고삐를 놓고 밭이랑들을 세여나갔다. 고랑을 밟으며 스무고랑을 세고 또 스물다섯고랑을 세였다. 그 마흔다섯고랑이 다 조순근의 차지가 되였다. 그리고 그만큼 더 고랑을 밟아나갔다. 그것은 서분이, 대복이, 막동이 몫으로 더 받은것이다. 그옆으로 정기찬이네와 정기수네가 삼천오백평씩 나누어가졌다.

새벽이슬이 내렸는지 밭고랑들은 축축히 젖었다. 눈물이 배여있는것 같기도 하다. 머나먼 저승에서 날아온 두 농사군들이 기쁨의 눈물로 밭이랑들을 적시며 인젠 옳은 재판이 내렸다고 수군수군 이야기라도 나누는것 같았다.

조순근은 팔굽을 들어 눈물을 뿍 씻어던지였다.

《얘, 대복아, 패말을 여기다 박자.》

조순근은 조끼를 벗어 안해에게 던져주며 소리쳤다. 대복이가 제 키만큼 높은 패말을 안고와서 밭최뚝에 곧추 일으켜세웠다. 조순근은 서분이 쥐고서있는 떡메를 받아쥐였다.

《잘 붙들어라, 패말이 놀지 않게.》

조순근은 이러며 뒤로 한발 물러나 패말에 쓴 글자를 다시한번 들여다보았다. 네모지게 깎은 면에 《조순근 밭 3000평》이라고 내려쓴 참먹글이 윤이 번쩍인다. 조순근은 떡메를 거머쥐고 매질을 시작했다. 패말끝이 땅에 박히자 떡메를 머리우에 쳐들었다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한 두어개 치고났는데 벌써 헉헉 하며 메질소리가 약해졌다.

《아버지, 왜 그래요?》

《잘 보이지 않는구나.》

《그럼 제가 박을가요?》

대복이 패말중둥을 쥐고앉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서라. 오늘은 내가 박아야 한다.》

조순근은 다시 메를 쳐들어 떵떵 내리쳤다. 그래도 메바람이 약하다. 둘에 하나는 빗때리며 중심을 잃고 몸을 비틀거렸다. 허공에 떴던 떡메가 기운없이 패말꼭디에 와서 퍽 하고 군드러졌다.

《아버지 웬일이예요?》

《···》

조순근은 눈을 감고 대답을 안했다. 다시 떡메를 머리우로 쳐들었는데 눈을 감은채로 내려치는바람에 빗때린 떡메가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대복이는 얼른 잡았던 패말을 놓고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버지, 왜 이래요? 정기찬아저씨랑 패말을 다 박았는데 이러구있으면 어떻게 해요?》

《우리두 박자꾸나.》

조순근은 간신히 떡메를 그러당기며 중얼거렸다. 벌써 맞은켠 밭머리에 패말을 박은 정기찬이네는 끌고나온 소를 밭에 들여세우고 멍에를 메우고있었다. 그것을 보자 조순근의 눈앞으로 또다시 허우적거리며 재령강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아버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슬을 마시고 떠나간 김창규의 부모들, 장구배미를 받는다면서 논두렁을 베고자다가 흥타령을 부르며 올라오던 그 밤의 흥묵이···어찌된 일인지 땅과 더불어 떠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연줄연줄 떠오르면서 가슴을 허비였다.

《이제 농민들이 잘살수 있는 좋은 세상이 올걸세.》

문득 어디선가 저 만경대 할아버님의 다정한 음성이 들려오는듯 했다. 참으로 할아버님의 예언은 옳았다. 그리운 할아버님을 생각하며 평양쪽 하늘을 바라보느라니 장군님 저택의 자그마한 닭장도 보이고 쇠독이 거밋거밋 내배인 호미 두가락을 받아안던 일이 꿈같이 떠올랐다. 재령강가에 오셔서 자기의 팔을 끼시고 나무다리로 힘있게 건너가시던 장군님, 우리 대복이와 서분이를 살려주고 이렇게 넓은 땅을 주신 장군님, 아, 백골이 진토된들 이 은혜를 어찌 잊을소냐.

《으흐흐···》

조순근은 밭에 엎치듯 풀썩 주저앉았다.

(이게 이젠 내 땅이란말이구나. 내 땅!)

조순근은 눈물배이는 흙을 볼에 갖다대였다. 흙이 부스러져 목깃을 타고 선뜩선뜩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검붉은 얼굴과 목에 눈물젖은 흙이 진흙처럼 진득진득 게발렸다.

《아버니임!ㅡ》

조순근은 또 황소울음을 터쳤다. 가슴에 몽켰던 용암이 기둥처럼 올려뻗치며 목구멍이 꺽 막히였다. 불찌같이 뜨겁게 단것이 볼을 지지며 두르르 굴러떨어졌다.

《아버지, 울긴 왜 자꾸 울어요. 이 기쁜 날에···》

대복이는 갈린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오냐, 안우마 안우마. 어서 말뚝을 박자.》

대복이는 손바닥에 침을 텍 받고 떡메를 거머쥐였다.

《떵, 떵》

메질소리는 아까보다 여무졌다. 둔중한 음향은 느물느물 여운을 흘리면서 온 들에 울려간다.

《할아버지도 이, 이 소릴 들으실거예요.》

대복이는 힉힉거리며 말했다.

《암, 들으시구말구, 깊이 박아라. 어느놈이 와서도 뽑아던지지 못하게.》

조순근은 엉금엉금 기여가 안잡아도 될 패말을 잡아주며 소리쳤다. 조순근의 안해도 그 모습을 보구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들먹였다. 서분이는 대복이 어머니의 어깨에 눈물젖은 볼을 대고 다정하게 속삭이였다.

《어머님 어머님,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지금 여기 와있는것 같아요. 그러지 않고야 여긴 바람도 없는데 왜 저렇게 풀대들이 한들한들 하겠세요.》

력사가 뒤바뀌는 대지로는 따사로운 바람이 숲을 핥으며 불어왔다. 땅에는 패말이 박히고있다. 온 나라 방방곡곡 눈물의 후손들이 조순근이네처럼 원한을 가시며 패말을 박고있다. 대성통곡을 터뜨리며 떠나간 원한의 선대가 머나먼 저승에 가서라도 들으라고 억세게 매질을 하고있다.

《아버지, 어서 이 호미루 북을 주세요. 패말이 넘어가지 않게.》

대복은 아버지의 손에 호미자루를 쥐여주고 자기도 호미를 들어 패말옆의 흙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한낮의 붉은 해빛에 쇠날이 번뜩이는 호미, 장군님께서 주신 그 호미로 전야의 곡식들에 북을 돋구듯 두 부자는 자기의 땅, 자기의 패말에 북을 주고있는것이다.

스적스적 부드러운 흙을 어루만지며 대대로 흘러온 피눈물의 자욱을 긁어던지는 호미, 이 땅에 행운을 가져다준 그 호미로 북을 돋군 농민의 지경패말은 이제 세세년년 더 크게 자라고 억세게 뿌리박혀서 수호병처럼 농민의 행복을 영원히 지켜주리라.

어디선가 건드러진 타령이 들려왔다.

 

이랑 길고 뚝높은 밭에

님 넘겨볼래기 목 늘어나누나

에헤루 에헤루 에헤루요

 

조순근의 밭옆 앞머리에서 정기찬이 소를 몰고나오며 부르는 타령소리였다. 그는 몸에서 빈열이 나는지 버선도 벗어버리고 새빨간 발로 번져진 흙밥을 밟으며 소잔등에 채찍을 후렸다. 한여름 논물보는 사람처럼 바지가랭이도 걷어올려 허연 장딴지살이 해빛에 번쩍이였다.

《여보게 기찬이, 이젠 프로트가 됐는데 한가락 더 뽑으라구.》

《허 말버릇 고약스럽다. 내 밭갈래기 짬이 없어 쌈을 못거는줄이나 알라구. 와와와, 이놈의 소 어디다 족다리질이야, 그렇지, 곧추 나가자.》

정기찬은 입이 함지박같이 벌어져 우걱뿔이를 쩌쩌 몰아나갔다. 그리고는 또 들판이 떠나가게 혀뻐드러진 가락을 뽑았다.

 

아래논엔 찰벼 심고

웃논에는 메벼 심고

한숨소리 웬말이냐

에헹 에라 재령강 재령강아

찰벼 베서 찰떡치고

메벼 베서 메떡치고

임당수에 안빠져도

밝은 뉘만 오는구나

에헹 에라 재령강 재령강아

 

노래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흰두루미 한쌍이 복받은 대지를 내려다보며 춤을 추며 돌아간다.

《끼륵 끼륵···》

아지랑이 낀 재령강기슭에서 종다리는 분주히 깃을 치며 날아오른다.

《지종, 지종···》

봄의 서곡인양 노래소리 메아리친다.

아, 봄노래! 영원한 봄노래 울리는속에 천지개벽의 1946년 봄은 새 력사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1986.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