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4편 8


 

제 4 편

8

 

아닌게아니라 그 승용차안에는 마동희를 굴복시켜볼가 하고 혜산경찰서로 달려가는 특무일당이 타고있었다.

승용차는 오끼가 직접 몰고있었다. 오끼는 경주에 나선듯 전조등을 환히 켜고 이미 몇번이나 다닌적이 있는 낯익은 길을 따라 차를 세차게 몰아댔다.

뒤자리의 무장특무옆에는 지치고 맥빠진 박차석이 물자루처럼 앉아서 승용차가 들까불 때마다 대가리를 건덩거리고있었다.

박차석은 지금 공포와 절망에 잠겨있었다. 할머니를 굴복시키는 일이 순조롭게 안되자 미야모도는 악이 나서 박차석에게 밤마다 매질을 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을러멨다.

바로 이러한 때 오끼가 차를 몰고 몽강으로 달려왔으며 아무말없이 박차석을 집어싣고 그달음으로 차를 몰아댔다.

할머니의 기상이 꺾이기는 커녕 점점 서슬푸르러져가자 특무기관에서 더는 자기에게 기대를 걸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있던 박차석은 오끼가 어느 산골에서 자기를 내려놓고 쏘아죽이자는것은 아닌가하고 속으로 우들우들 떨었다.

그러나 승용차는 200리, 300리 그냥 동쪽으로 달리였다. 박차석은 어제저녁 차창밖으로 백두산이 나타나보이고 조국땅이 가까와졌다는것을 알자 혹시 오끼가 자기를 서대문형무소에 다시 걷어넣으려는게 아닌가 하는 왕청같은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때 오끼가 생각하고있는것은 전혀 딴것이였다. 그는 뜨거운 열망속에 가슴을 불태우며 전속으로 차를 몰아댔다. 이번만은 자기의 소원이 성취된것 같았다.

우에다와 일제조선총독 미나미의 공모결탁으로 수천명을 체포검거한 《혜산사건》은 오끼가 예견한것과 큰 차이 없이 인민들의 혁명적진출을 막아보려던 타산은 실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제국을 더욱더 위협하는 뚜렷한 징후들을 나타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흙을 파다가 금을 얻은것처럼 권영벽이같은 거물을 들추어낸것만은 예상밖의 소득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러나 권영벽은 정작 잡아놓고보니 자기들이 바라는바를 성취시켜주기에는 지나치게 큰 존재였다.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것은 다음문제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제는 망하고 김일성장군님의 광복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력설하는데 그것이 대단한 설득력과 선동력을 가지고있어서 일단 굴복한 전향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었다. 권영벽을 상대로 한 공작은 부득불 장기성을 띠게 되였다.

박차석은 헝겊막대기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것이 드러났다. 미야모도가 죽여버리겠다고 전화를 걸어온것도 무리가 아니였다.

오끼는 궁여지책으로 선우제와 족제비사냥군에게 매달리는수밖에 없었다.

이러던차에 인민혁명군에서 최근에 파견되여온 마동희라는 정치공작원을 체포했다는 혜산경찰서의 보고를 받게 되였다.

오끼는 대상인물자료를 깊이 연구한 결과 마동희야말로 자기가 마음대로 주무를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지식정도, 유격대와 관계한 년한, 온순하고 내성적인 개성, 특히 부모들이 가까이 있다는 조건들을 고려할 때 오끼는 마동희가 권영벽이처럼 억셀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사람을 괴롭히는데서 솜씨있는 최경부의 고문과 박차석의 회유를 잘 배합하고 여기에 가까이 있는 부모들까지 심리작전에 인입하면 아직은 뼈가 노근노근할 마동희쯤 얼마든지 굽혀낼수 있으리라고 타산했던것이다.

오끼일행은 밤새 자동차를 달려 이튿날 새벽무렵에야 혜장교를 건너 괘궁정기슭을 에돌아 혜산경찰서로 달려들었다.

경찰서 담장안은 불난 집처럼 뒤숭숭하였다.

한번 만나본 일이 있는 최경부가 차렷자세로 서있는 웬 젊은 순사를 칼자루로 조겨대고있는데 오고가는 말을 들어보니 제복을 입은채 죄수처럼 매를 겪고있는 경찰은 지난밤 구류장경비를 잘 서지 못하여 사고를 낸것이였다.

오끼는 자기를 알아보는 최경부에게 다가가 간단한 사유를 듣고

《자, 자, 그까짓 매질은 차차 하고 우선 마동희부터 만나봅시다.》하고 웨치며 한걸음 앞서 현관안에 들어섰다.

《중좌님, 잠간 본관의 말을 들으시고···》

최경부는 두손을 맞비비며 황송한 목소리로 아뢰였다.

《내가 혜산경찰서 이야기나 들어서 무엇하겠소? 나는 마동희를 보러 왔소. 다른 이야기는 다음에 들읍시다. 그래 마동희가 누구요?》

최경부는 하는수없이 그를 데리고 복도를 지나 구류장쪽으로 앞서걸었다.

《중좌님, 죄송합니다. 실은 그 마동희때문에 지금 이렇게 떠들고있는것입니다.》

최경부는 구종처럼 오끼의 옆에 따라서며 수군수군 말했다.

오끼는 그의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구류장안으로 들어가서 감방들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마동희가 어쨌다는거요?》

《저걸 보십시오.》

최경부는 바로 오끼가 멎어선 맞은편 감방을 가리켰다.

전등불이 희미하게 내리비치는 세멘트바닥에는 질퍽하게 흘러내린 피가 검붉게 번쩍거리고 그 피못이 된 한복판에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청년이 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의 두입귀로는 아직도 붉은피가 흘러내리는데 조용히 누워서 이쪽을 바라보는 령롱한 눈에는 분명 조소가 담겨있었다.

《혹 자살이라도 기도할것 같아서 순경을 따로 붙여 엄중감시하게 조처하였는데 어느새 혀를 깨물어 잘라버렸습니다.》

오끼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사람이 자기 혀를 자기가 끊어? 누가, 누가 혀를 끊었단말인가?》

최경부는 맥빠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동희가 말입니다. 저게 바로 마동희입니다. 》

오끼는 마치도 자기가 몰던 차가 벼랑기슭으로 밀리는것 같은 전률감을 느끼였다.

《죽었는가? 어서 가봐!》

그는 얼굴이 까맣게 질려 범 본 개처럼 우들우들 떨고있는 박차석의 목덜미를 거머쥐여 확 밀어버리며 최경부를 쏘아보았다.

《숨은 아직 붙어있습니다. 지혈을 시키면 살수 있을것입니다.》

오끼는 마치도 혜산경찰서장이 자기 애비의 뺨이라도 갈긴것처럼 사납게 접어들었다.

《왜 아직 지혈처치를 안했는가? 무슨 심뽄가? 밥통들, 유격대사령부에서 금시 나온 공작원을 마구 다루다니··· 답답한 친구들이군.》

오끼는 입술을 짓씹으며 좁은 감방복도를 분주히 오고갔다. 그러다가는 얼이 빠진것처럼 멎어서서 쓰러진 마동희를 쏘아보기도 하였다.

이번에 차례진 행운마저 놓칠수 없었다. 스스로 혀를 끊은 사나이의 입을 쉽게 열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팔짱끼고 구경할 형편도 못되였다. 그 순간 번개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살미수자는 자살기도가 실패한 그 순간부터 정상보다 몇배 생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는것을 범죄심리학은 가르치고있다!)

오끼는 마지막 수를 써보리라고 결심하고 최경부에게 소리쳤다.

《부모를 즉시 붙잡아오시오! 그리고 연필과 종이도 가져오시오!》

경관들이 곧 오끼의 뜻을 알아차리고 마동희의 부모를 잡으러 뛰여갔으며 의사를 부르려 달려갔다. 약삭바른자들은 어느새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달려왔다.

《동희, 전도가 양양한 청년의 생각이 왜 그렇게 옹졸한가? 당신도 지금은 후회할줄 아네. 오끼중좌의 분부대로 곧 지혈처치를 해서 죽지 않게 하겠으니 우선 이 종이에 유격대사령부의 위치를 쓰게. 사령부련락소, 상면암호도··· 그것을 대지 않으면 당신의 부모들을 이자리에서 처형하겠네.》

최경부는 큰 배를 붙안고 엎디여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마동희는 그 말을 듣자 팔다리를 움직이더니 가슴으로 바닥을 깔고 엎디였다. 최경부는 서둘러 그의 손에 연필을 쥐여주었다.

마동희는 연필을 이윽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들고 오끼며 최경부 그리고 직접 대면하기는 처음이지만 말은 많이 들은바 있는 박차석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세사람은 거의 동시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어서 마음놓고 쓰라는듯 턱을 두어번 끄떡거려보였다. 어찌나 긴장되였던지 말이 나가지도 않았지만 혹시 소리를 크게 내면 모처럼 쓰겠다고 연필을 받아쥔 마동희의 마음이 흔들릴가보아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놈들의 안달아하는 모양을 엎딘채로 빙 둘러보는 마동희에 입가에 히죽이 웃음이 떠올랐다. 까마귀도 총에 맞아 죽게 된것을 자각하는 순간 사냥군이 노리는 열집을 미리 녹여없애지 않는가. 그는 정신이 똑똑할 때 원쑤에게 할수 있는 마지막 항거를 단행한것이 통쾌하여 죽음도 웃음으로 막을수 있었다.

오끼는 저도 모르게 한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미소는 분명 좋은 징조같았다. 마동희가 사령부소재지나 련락소만 간단히 적어준다면 실상 그의 혀바닥이 있고없는것이 큰 문제가 될것도 없다. 오끼는 다시한번 마른침을 삼키고 정이 철철 넘치도록 상냥한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마동희는 천천히 엎드리더니 종이를 자기앞으로 끌어당겼다.

최경부가 소매끝에 피가 묻는것도 아랑곳 않고 마동희가 쓰기 편안하게 종이를 바로 펴주고 자세를 잡는것도 거들어주었다. 마동희는 종이 한옆에 팔굽을 짚고 연필을 잠시 바라보더니 마음에 안드는듯 한옆에 집어던지고 방바닥에 질펀한 피를 손가락끝에 묻혔다.

그의 표정은 엄숙해졌다. 종이우를 들여다보는 오끼며 최경부의 얼굴에도 금시 터질것 같은 긴장감이 어리였다. 마침내 종이우에 시뻘건 글자가 새겨지더니 그대로 불꽃인양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커다랗게 확대되여 춤을 추었다.

일제는 망한다!

혁명 만세!

《뭐야!》

오끼는 덫에 치인 승냥이처럼 사납게 이를 갈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동희는 종이를 밀어내놓고 다시 번듯하게 누웠다. 악을 쓰며 날뛰는 원쑤의 비인간적인 상판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조용히 가라앉아있었으며 입가에는 아까와 같이 그윽한 웃음이 어리여있었다. 그것은 승리자의 여유있는 웃음이였다.

오끼는 치명상을 입은듯 숨을 헐떡거렸다. 자기 마음대로 능히 주무를수 있는 뼈마디가 노근노근한 상대라고 생각하고 밤길 수백리를 달려온, 신출내기 유격대원이 바로 이러하다고 생각하니 자기 개인은 더 말할것 없고 제국이 맞서고있는 김일성장군과 그 휘하무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존재인가 하는 현실적인 공포감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의사가 왕진가방을 비껴들고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의사는 마동희를 살릴수 있다고 장담하며 치료에 착수하려고 했다.

오끼는 눈에서 시퍼런 불을 내뿜으며 불룩한 왕진가방을 냅다 차버리였다.

《이런놈을 살려둬 뭘하는가, 죽여버렷!》

열려진채로 있는 감방의 육중한 문을 힘껏 발길로 걷어차고 바깥에 뛰쳐나온 오끼는 증오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무엇을 짓부실것은 없는가 하고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눈에 띄는것은 아까 최경부에게 졸경을 치른 감방순사가 절뚝거리며 제가 맞은 자리를 청소하고있는 궁상맞은 몰골뿐이였다. 밸이 동한김에 감방문을 너무 세게 걷어차서 발끝이 아파났다. 통나무같은 각재로 우둔하게 무은 문을 그렇게까지 걷어찰것이야 있는가. 하기는 그러고보면 마동희가 혀를 끊었다든가 혈서로 무엇을 몇자 썼다든가 하는것을 가지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가 두쪽이 난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덤빌 필요가 있는가.

오끼는 잠시나마 실망에 잠겼던 자신을 다잡으며 마동희 아니면 이 오끼가 헤여나올 구멍이 없을줄 아느냐 하는 반발심이 떠올랐다.

오끼는 최경부에게는 간다온다 말도 없이 박차석과 졸개를 걷어싣고 그길로 몽강을 향해 차를 몰아갔다.

그러나 몽강에 돌아온 오끼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였다. 그사이 선우제가 재선과 똑같은 수법으로 처단되고 족제비사냥군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것이였다.

한편 지혈처치를 받지 못한 마동희는 몸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이 흘러나올 때까지 말짱한 정신으로 만 사흘을 견디고나서 철창밖에 서서 아들을 내놓으라고 웨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뜻깊은 미소를 보이며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