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4편 6


 

제 4 편

6

 

김주현과 안희창은 철길부설공사장을 떠난 다음날 어뜩새벽에 압록강기슭에 이르렀다.

강은 아직 얼어붙어있었으나 겉이 푸석푸석하고 어디선가는 물흐르는 소리까지 들리였다. 그들은 긴 장대를 하나씩 해들고 얼음판을 쪼아가며 강을 건넜다. 조국땅연안의 산기슭에 올라붙은후 김주현은 잠시 다리쉼을 하면서 안희창에게 주의를 주었다.

《희창동무, 명심하오. 우리의 임무는 정찰이지 전투가 아니요. 나의 지시가 있기전에는 어떤 경우에도 총을 쏴서는 안되겠소.》

안희창은 김주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의 눈섭에 성에가 짙게 어려있는것을 보고 자기 눈두덩을 문대였다.

《압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많이 가야 합니까?》

김주현은 앞으로 다시 쓸수 있도록 장대기를 표나는 바위밑에 뉘여놓고나서 정말 이제 얼마나 더 걸어야 하겠는가를 가늠해보았다.

그는 희창이 황소힘을 쓴다고 하지만 지금 매우 지쳐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철길공사장에서 수리바위굴까지는 근 60리길인데 길을 다그치기 위해서 희창이는 내내 영수를 업고오다싶이 하였다. 그리하여 그날밤 자정무렵에는 성냥불을 켜들고 울퉁불퉁한 돌바위벽을 어루만지며 낯익은 수리바위굴에 들어가서 조복례를 만날수 있었다. 조복례는 검거선풍이 지나간 다음 조직의 지시로 집에 돌아와 살면서 백두산의 첫 관문인 샘골련락소를 맡아보고있었다.

주대순은 그날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풍편으로 들려오는 백암지방의 흉흉한 소식을 듣고 불안에 잠긴 조복례도 주대순을 안타깝게 기다릴뿐 그때까지도 사건의 내막은 똑똑히 모르고있었다.

《며칠만 기다려보세요. 련락은 꼭 옵니다. 마동희동지가 체포되였다지만 조직은 살아있을것이고 조직이 살아있는 한 어김없이 련락은 올거예요. 저는 방금 영수가 왔을 때도 심포에서 사람이 왔는가 했어요. 저는 믿어요. 꼭 옵니다.》

복례는 오늘 아니면 래일쯤은 소식이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있었다.

김주현은 무작정 앉아서 주대순을 기다릴수 없었다. 그렇다고 백암지구에 엄중한 비상사태가 생겼다는것을 뻔히 알면서 속수무책으로 되돌아설수도 없었다. 지금 자기가 사령부에 있다고 해도 이런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일부러라도 나올 형편이 아닌가. 마동희의 체포와 관련된 사건을 정확히 알아보는것은 비단 백암지구의 지하조직을 끄떡없이 꾸려나가는 문제만이 아니라 사령부의 안전과 사령부의 춘기작전을 드팀없이 보장하기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였다. 김주현은 오직 사업상의 중요성에서뿐만아니라 혁명동지에 대한 의리로 보아도 그대로 돌아설수 없었다.

김주현은 조복례가 어느새 꿍져가지고 온 감자엿을 입안에 넣고 녹이며 깊이 생각해보고나서 강건너 조국땅연안에 있는, 지난해에 지하사업을 벌리는 과정에 사귄 조직원들을 찾아가서라도 사태의 진상을 해명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조복례에게 몇번이나 심포까지의 통로에 대하여 깐깐히 확인하고나서 자기 결심에 대해 인차 사령부에 보고를 띄울것을 지시하고 그밤으로 수리바위굴을 떠나온길이였다.

김주현은 낮익은 산골길의 리수들을 대충 세여보고나서 희창에게 대답했다.

《심포까지 가자면 질러가도 30리길폭이 되겠소. 그러나 거기까지 꽤 나가내겠는지 모르겠소. 우선 저 등성이를 넘고보기요. 거기 우리 조직원의 집이 있는데 형편을 알아보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야겠소.》

이제부터 적들의 경계가 더욱 삼엄해지리라는것을 타산한 김주현은 희창에게 여러가지 주의할 점들을 깨우쳐주고 행동방법을 약속하였다.

그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딴길을 타고 어둠속에 륜곽만 희미하게 떠오르는 등성이를 향하여 조심조심 걸어갔다.

김주현은 골짜기의 왼쪽산발을 타고 푸름푸름 밝아오는 하늘밑에 드러나보이는 산봉우리들을 둘러보며 앞서 걸었고 안희창은 골짜기의 바른쪽 산발을 타고 자주 김주현을 바라보면서 따라오고있었다.

사람의 발자취가 미쳐보지 못한 산골짜기에는 초겨울부터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어서 눈층이 낮은 바람받이만 골라디디자고 해도 무릎까지 깊이 빠지군 하였다.

검시르한 허리를 드러내고 꾸덕꾸덕한 눈속에 누워있는 너럭바위들은 발길을 옮길수 없게 미끄러웠다.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얼어붙은 숲속에서는 이따금 맹수들의 울부짖음소리가 일어나 골안을 울리였다.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소리없이 걸음을 옮겨가던 김주현은 눈깔린 산골짜기끝에서 희엿한 하나의 점이 가물가물 움직여오는것을 띠여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본능적으로 나무뒤에 숨어서서 골짜기와 주변의 산들을 살펴보았으나 다른 정황은 없는것 같았다. 안희창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그가 하는대로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옆차기에 찌른 권총을 거머쥐였다.

숫눈길을 헤치며 하얀 저고리에 하얀 치마를 입은 사람이 조그마한 보따리를 이고 황황히 걸어오고있었다. 그 녀인은 걸음이 성차지 않는듯 두팔을 앞뒤로 크게 휘젓는데 발이 눈속에 깊이 빠지니 먼눈에 보기에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이는것 같았다. 김주현은 때가 때인것만큼 로상에서 행인과 만나는것이 썩 달갑지 않아서 피해버리고싶었으나 웬일인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만물이 얼어붙어 귀신도 숨을 죽인것 같은 이런 새벽 이런 후미진곳에 나타난것이 하얀 옷을 입은 안늙은이고보니 무언가 심상치 않은것이 느껴져서 그냥 모른체 하고 스쳐지난다는것이 어쩐지 가슴에 걸렸던것이다. 하기는 등성이너머에 외따로 있는 조직원의 집형편을 물어보는것도 필요한 일이였다. 상대가 산골늙은이가 분명하니 길을 물어보는척 하고 말을 걸면 별의심을 사지 않을것이고 그런 과정에 늙은이의 형편도 알아보고 도와줄만 한것이 있으면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김주현은 슬금슬금 길쪽으로 내려섰다.

인기척을 느낀 늙은이는 주춤하며 수건으로 감싼 얼굴을 돌리고 김주현이쪽을 얼핏 바라보았으나 사람을 만나는것이 겁이 나는듯 더욱 세차게 두팔을 저으며 걸음을 다그쳤다.

김주현은 의례 그러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던만큼 별로 덤비지 않고 같은 속도로 늙은이에게 다가가며 그의 옷차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발에는 헌 지하족을 신고 두손에는 버선을 끼고 얄팍한 뜨개천포단으로 굽을사한 허리를 둘러친 늙은이는 추위가 아무리 심해도 만리라도 걸어갈 굳건한 차비였다.

김주현은 문득 어렸을 때 자기 어머니가 동지섣달 추운 날에 산으로 나무하러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 이 추운 날에 어딜 가십니까?》

김주현은 골짜기바닥에 내려서며 말을 걸었다.

늙은이는 그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돌아다보지도 않고 그냥 내처 걷다가 한참이나 지나서 퉁명스레 대답했다.

《강건너 아재네 집에 빚내러 가우다. 당장 사람이 죽게 되여 약을 써야겠는데 돈이 어디 있어얍지···》

늙은이의 말은 입이 얼어 알아듣지 못할 지경으로 굳었으나 미리 준비해가지고있었던듯 거침이 없었다. 김주현은 말뜻보다 말소리에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 말소리는 늙은이의 옷차림처럼 김주현에게 친근한 감을 불러일으키는 귀익은것이였다. 그는 성큼성큼 큰 걸음을 떼여 될수록 낯선 길손과 마주치지 말자고 서둘러 걸음을 다우치는 늙은이의 앞을 막아섰다.

꿋꿋이 앞만 보며 걸어가는 늙은이의 퍼렇게 언 얼굴과 성에불린 눈섭과 꾹 다물린 입을 본 김주현은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휘몰아쳤다. 눈덮인 강기슭의 외진 산골짜기에서 마주친 이 늙은이는 마동희의 어머니 장길부였던것이다.

《어머니, 이게 웬일입니까?》

김주현은 애써 자제하며 늙은이가 놀라지 않도록 낮으나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알아듣지 모한 장길부는 외진 산골짜기에서 불쑥 나타난 길손이 보나마나 신통치 않다는듯 좀체로 곁을 주지 않았다.

《오죽 바쁘면 늙은이가 이 추위에 길을 떠났겠소? 저리 물러나서 제 갈길이나 날래 가오. 내 길이 지체되면 내 아들 죽소.》

원쑤놈들의 취조와 문초에 넌덜머리가 난 장길부는 일부러 늙은티를 더 내가며 소리쳤다.

《어머니, 접니다. 저를 모르겠습니까?》

김주현은 하는수없이 장길부의 버선낀 손목을 그러잡고 얼굴을 바투 내댔다. 장길부는 손을 뿌리치려다가 입을 하 벌리였다.

《이게 뉘기요?》

김주현을 알아본 장길부의 눈에는 세찬 섬광이 일더니 인차 꺼지고 그대신 입가에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경련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세찬 충격의 한순간이 지나가자 차츰 부드러운 미소로 바뀌였다. 아들딸 며느리들을 인민혁명군에 입대시키기 위하여 잠시 이사가 살던 강건너의 신흥촌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간 김주현을 살뜰히 맞아주던 지난해 여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김주현은 어머니의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이 피여나자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어쩐지 어머니앞에 떳떳하게 서있을수 없는 자기임을 통감하게 되는것이였다. 자기를 만나자 아들을 만난듯이 반가와서 어쩔줄 몰라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실상 지금 아들에 대한 근심걱정때문에 얼마나 심한 아픔을 겪고있을것인가.

《련대장, 련대장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소? 실루 꿈같소!》

장길부는 입이 얼어서 미처 말을 못하고 버선 낀 두손으로 김주현의 가슴을 어루만지였다. 이때 긴장이 풀리고 안도의 빛이 어린 어머니의 몸에서는 허물이 벗어지듯 온몸에 두텁게 불리였던 성에가 부실부실 무너져내렸다.

《저도 어머니생각을 하면서 오던길입니다. 그런데 어찌자구 이 추운 날 먼길을 떠났습니까.》

김주현은 장길부의 언손을 버선채 감싸쥐고 주물러주었다.

《련대장, 동희가 저놈들에게 붙잡혔소. 그 소식 못듣고 떠났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급한 길을 떠났습니다.》

김주현은 어머니의 당황한 마음을 달래듯 꼭 감싸쥔 그의 두손을 어루만졌다. 어머니는 후-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시름없이 말했다.

《그만해도 다행이요. 내 아들이 붙잡혀가고 온 마을이 뒤숭숭하니 장차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소. 당장 기별을 띄워야겠는데 젊은이들은 문전출입도 마음대로 못하는 형편이요. 그러니 어찌겠소. 나라도 이 형편을 부대에 알려야 하지 않겠소.》

김주현은 안깐힘을 써가며 마음의 충격을 다잡았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아들의 혁명사업을 뒤받침해주기 위해 억센 모습으로 이 험한 길에 오른것이였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련히 손을 쓰지 않을라구 이렇게 힘든 걸음을 하십니까?》

장길부는 조용한 눈매로 김주현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지었다.

《고맙긴 내가 정말 고맙소. 모두들 우리 동희를 생각하고있었구만. 허지만 우리 동네에는 아무도 범접을 못하오. 내가 마침 길을 떠났으니 이렇게 만났지 련대장이 형편을 모르고 심포에 왔더라면 어쩔번했소. 거기에는 맨 경찰놈들의 함정이요. 게다가 특무놈이 우리곁에 깊숙이 박혀있다오.》

《특무요? 그게 어떤놈입니까?》

김주현은 황황히 부르짖다가 장길부의 표정이 긴장되는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저쪽 비탈쪽에서 사람의 기척이 났던것이다.

《일없습니다. 우리 동뭅니다.》

김주현은 이렇게 말하며 골짜기 맞은편에서 내려올가말가 망설이는 안희창을 돌아보았다.

안희창은 목을 빼들고 이쪽을 살펴보며 한발을 내짚다가 김주현의 시선을 느끼고 멎어섰다.

김주현은 곧 그를 불러다 어머니에게 인사시키고싶은 생각이 떠올랐으나 지금 형편이 그럴 계제가 못되였다. 김주현은 손짓으로 감시를 잘하라고 알린 다음 바위곁에 엎디여 눈을 파헤치고 락엽과 삭정이를 끌어내다가 한곳에 무둑히 쌓았다. 장길부는 한참동안 물끄러미 김주현을 바라보다가 바위곁에 수북하게 쌓인 락엽과 삭정이를 손짓하며 물었다.

《련대장, 손을 얼구겠소. 이건 뭣하려구 뫃소?》

《큰일날번 했습니다. 이 추위에 몸이 견디여내겠습니까. 불이라도 놓고 쪼입시다.》

장길부는 김주현의 손을 황황히 거머쥐며 말하였다.

《불을 놓다니! 저 산굽이뒤에도 특무놈들이 지켜서있소. 내 할 말은 많지도 않으니 여기서 얼핏 듣고 돌따서 가는게 좋겠소. 난 춥지 않소.》

어머니의 말은 드팀이 없었다. 등성이너머 조직원의 집도 감시를 받고있다는것을 확인한 김주현은 사태의 엄중성을 다시한번 통감하며 묵묵히 락엽우에 삭정이가지를 걸쳐놓고 장길부를 그우에 앉히였다.

김주현이 옆에 다가와 앉으니 장길부는 에돌지 않고 자기가 하려던 말을 시작하였다.

《이제 특무가 누군가고 물었지? 그러지 않아도 내 그때문에 부랴부랴 길을 떠났다오. 동희 말이 재선이라는놈이 밀정이 아닌지 똑똑히 알아보라구 하더구만. 그래서 주대순이가 조직성원들을 통해 감시를 붙였는데 재선이가 깊은 밤에 료리집에서 최경부와 술을 처먹더라오. 최경부가 커다란 돈뭉치를 재선의 손에 쥐여주는것도 보았다오. 동희가 붙잡혔으니 지금은 그놈이 주대순이곁에 잔뜩 붙어돌아가는데 내가 그 사람한테도 마음놓고 말을 못하고 겨우 안깐을 만나 요긴한 말만 전하군 한다오.》

《재선이라는것은 저 갑산쪽으로 난 길가집에 살던 어디선가 흘러들었다는 뜨내기가 아닙니까?》

《련대장도 아는구만. 그놈이 작년까지만 해도 입에 풀칠할길이 없어 온 식솔이 눈구뎅이를 헤매며 풀뿌리를 캐는것을 우리 동희가 마을 젊은이들과 의논하고 그 빈집이랑 손질해서 거접하게 하고 농량도 장만해주었더니 이렇게 은혜를 원쑤로 갚는구만. 참 세상인심이 어째 이렇소? 사람을 믿고 살겠소?》

김주현은 가슴이 답답해서 꽁꽁 싸맸던 목깃을 터쳐놓았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면 사람이야 변하겠습니까. 그런것들은 다 사람이 아니라 인피를 뒤집어쓴 짐승이지요. 그래 지금 동네가 뒤숭숭하겠습니다?》

장길부는 한숨을 내쉬였다.

《말이 아니요. 온 마을이 초상집같소. 젊은이들이 모이지도 못하구 아이들의 노래소리도 끊어졌소. 동희가 이 꼴을 보면 오죽 가슴아파하겠소.》

김주현은 침착하게 앉아서 어머니가 아들면회를 가서 재선이가 특무라는것을 의심하게 된 경위와 마을사람들의 동향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야말로 동희를 잃은 마을의 생활은 물목이 막힌 개울바닥처럼 일시에 황페화돼버렸다. 동희가 포치했다는 유희회준비도 야학도 계놀이도 다 중단되고 전에는 드러나지 않던 반목질시가 눈에 알리게 두드러졌다. 우선 누가 밀정인지 모르니 이웃끼리도 곁을 안주고 일체 문전출입을 끊어버렸다는것이다. 사람마다 불안속에 달팽이처럼 옹송그리고 동면하는것과 같은 이러한 사태야말로 우려할만 한것이였다.

김주현은 장길부를 앞세우고 마동희네 마을근방에까지라도 가서 일을 바로잡고싶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심사숙고해야 할 때다.

만일 지난해 가을과 같이 자기 주관에 빠져 술덤벙물덤벙 하다나면 백암일대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도 해결하지 못할뿐아니라 잘못 하다가는 사령관동지께 또다시 걱정을 끼쳐드릴수 있다. 더구나 지금 눈앞에 닥친 춘기작전을 위하여 한시바삐 돌아가서 정찰보고를 드려야 한다. 안전하기로 말하면 이달음으로 급히 사령부에 돌아가서 정찰자료와 함께 마동희의 체포에 대해 보고를 드리고 장군님의 결론을 받아서 다시 나오든가 하면 제일 무난할것이였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면 백암조직은 얼마나 더 큰 피해를 입을지 모르고 더구나 위축되여 옹송그린 인심은 가속도로 얼어들것이다. 바로 그것을 위하여 만난을 무릅쓰고 전군을 학습시키면서도 마동희만은 조국인민들속으로 내보내시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번 정찰과업을 주시면서도 지방조직들의 사업을 잘 도와줄데 대해 강조하시였고 마동희의 공작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마동희와의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그냥 발길을 돌릴수는 없었다. 만일 작년가을에 자기가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깊이 파악하고 정확하게 행동했더라면 그가 무엇때문에 다시 나올것이며 오늘과 같은 시련을 겪게 되였겠는가.

마동희를 떠나보내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 국수상을 마주하고 거듭거듭 살펴보시던 장군님의 인자하신 눈길이 떠올랐다. 그에게 설피를 신겨보내지 못해서 허둥거리며 달리던 자기 생각도 났다. 지금 당장 그를 구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가 감방에서도 마음을 못놓아하는 조직을 지키며 불안에 떠는 인심에 신념을 안겨주어야 할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령관동지께서 밝히신 우리 혁명의 철칙이다.

《어머니.》

김주현은 장길부의 손에 버선을 찬찬히 끼워주고 그우로 손등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믿음성있게 울리였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곧장 심포마을까지 나가서 일을 처리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못되는것 같습니다.》

《원, 련대장이 우리 마을에 들어가다니··· 어림도 없는 소리요.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동희로 알고 시켜주오. 내가 못할 일이면 동희아버지나 삼촌이라도 나서지 않으리.》

《어머니가 못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형편에서는 어머니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김주현은 장길부의 손을 꼭 거머잡고 힘을 주어 말했다.

《그게 무슨 일이기다?》

《지금 제일 급한 일은 심포마을에 박힌 특무를 처단하고 그 소문이 사방에 널리 퍼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의 피해도 미리 막을수 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수 있습니다. 어머니부터가 한이 맺혀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련대장, 에미 마음을 너무 건드리지 말아주오.》

장길부는 목메인 소리를 하며 눈을 들어 희벗하게 동터오는 혜산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김주현은 새벽바람에 날리는 어머니의 머리수건을 꼭꼭 감싸주며 그 한끝으로 눈가에 번져나오는 물기를 훔쳐주었다.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떨구고있던 김주현은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머니, 그놈은 내가 처단하겠습니다.》

《아니 처단하다니? 련대장이 우리 오래에 얼씬하면 못쓰오.》

심란한 생각에 잠겨있던 장길부는 흠칫해서 엄한 눈길로 돌아보았다.

《그것은 걱정마십시오. 어머니는 주대순동무를 만나서 동희동무가 하자고 마음먹었던 일을 그대로 내밀어야 한다고만 전하십시오. 주대순동무가 전처럼 수리바위굴에서 사령부의 지시를 받아가지고 다른고장 조직과도 련계를 맺고 사업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십시오. 오늘 이길로 돌아가서는 가만히 계시다가 저녁때 련계를 취하십시오. 그때는 재선이를 꺼릴 필요가 없습니다. 주대순동무에게 어머니가 만나는길로 수리바위굴로 가야 한다고 알려야겠습니다.》

어머니는 김주현의 어조가 하도 엄숙하고 확신에 차있었기때문에 인차 그것이 조직적인 지시라는것을 느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김주현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동희동무가 체포되였다고 해서 주저앉아서는 안됩니다. 야학에서 글읽는 소리도 변함없이 울려나와야 하고 유희회를 준비하는 노래소리도 전과 같이 계속되여야 합니다. 계모임과 아침체조모임도 동희동무가 있을 때처럼 해야 한다고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어머니는 지하조직에 속한 혁명동지들이나 애국심을 품고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랑스립게 말해주십시오.

인민혁명군이 망했다는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민혁명군 사령부가 잘못됐다는 소리도 개소리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지금 깊은 산속에서 큰 군대를 훈련시키고계시는데 이제 봄이 오면 조국땅으로 쳐들어오신다, 이렇게말입니다. 그러면 비록 동희동무가 붙잡혔지만 인민들은 락심하지 않고 싸움에 일떠설것입니다. 그때면 마동희동무도 구출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동희동무가 견디여내겠는지, 그것만이 걱정스럽습니다.》

장길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김주현의 말을 외우면서 연방 고개를 끄덕이였다.

《련대장이 하라는대로 하겠소. 그렇게 하면 왜놈들이 우리 동희를 잡았다고 좋아할 건덕지도 없겠소. 우리 동희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마오. 동희는 여기 일만 걱정하고있다오. 그리고 마침 련대장을 만났으니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는데···》

장길부는 말끝을 흐리며 곱은 손으로 이고온 보따리를 헤치였다. 밤알만 하게 토막친 태식덩이가 싸여있었다. 어머니는 그속에 손을 넣고 빨간 비단천에 싸여있는 물건을 꺼내서 겉에 묻은 태식보숭이를 훌훌 불었다.

《내가 면회를 갔다가 놈들이 우리 동희를 물에 삶아냈는지 불에 구워냈는지 온몸에 피와 진물이 흐르고 살이 문적문적하는것을 내 눈으로 보고나니 내 손에 총이 없는것이 한이 되였소. 그래서 이번에 길을 떠나면서 이것을 꺼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건 장군님께서 그애한테 주신거라고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건데 이제는 그애한테 아무래도 소용이 닿지 않을것 같소.》

김주현은 장길부가 넘겨준 든짓한 물건을 손에 쥐자 그때까기 참고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것은 장군님께서 동희에게 주신 권총이였다.

《동희동무!》

그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장길부는 김주현이 괴로와하는 모습을 보자 오히려 위안해주려는듯 힘있게 말했다.

《그 총을 어찌 헛간속에 묻어두겠소. 동희는 갇혔지만 이 총까지 녹쓸게 하겠소? 우리 혁명군한테 주어 원쑤들을 한놈이라도 더 잡게 하는것이 좋지 않겠소?》

김주현은 권총을 어머니의 손과 함께 굳게 틀어잡았다.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은 참말로 굳셉니다. 그런 어머니를 둔 동희동무가 쉽사리 굴복하겠습니까. 저도 어머니를 보니 더 힘이 생깁니다. 제 이 총을 장군님께 전하고 어머니의 말씀도 전하겠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니 고맙소. 장군님께 우리 걱정은 아예 마시고 옥체건강하시여 우리 백성들의 한만 풀어줍시사고 전하여주시오.》

장길부는 치마자락으로 눈굽을 몇번 찍어내더니 말을 이었다.

《련대장이 우리 동희때문에 예까지 찾아왔는데 에미라는게 따뜻한 물 한모금 대접하지 못하고 돌따세우자니 가슴이 아프오. 우리 며느리와 국화더러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잘 싸우라고 말해주오. 나는 이젠 가겠소.》

김주현은 목이 터져올라 입을 열지 못하고 머리만 끄떡이였다.

《어머니···》

《어서 떠나오. 날이 밝으면 강을 넘기가 힘들다오.》

어머니는 뒤돌아보고 어서 가라는 뜻으로 손짓을 한번 하고는 치마자락을 펄럭이며 산골짜기의 눈길을 걸어갔다.

희창이가 뛰여왔다.

《누굽니까. 웬 늙은이가 어뜩새벽에 이런데 나타났습니까?》

김주현은 장길부가 사라진 골짜기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속삭이였다.

《마동희동무의 어머니요. 주대순이를 대신해서 샘골로 련락을 오던길이였소.》

《예?!》

안희창은 한길이나 뛰여오르더니 깔끔한 눈길로 김주현을 바라보았다.

《동희의 어머니라구요? 동희의 어머니를 길에서 만나보고 혼자서 돌따세웠습니까?》

안희창은 대답을 기다릴 생각도 안하고 장길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희창이, 돌아서오. 우리에게는 급한 임무가 있소.》

김주현은 낮으나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희창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골짜기를 바라보며 한동안이나 망연히 서있었다.

김주현은 아무것도 못본척 하고 발길을 돌려 수걱수걱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마동희의 어머니가 불러일으킨 충격이 세찬 열풍이 되여 뒤설레이고있었다.

지난 여름 랑림산줄기로 가야 했던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혁명의 준엄한 진리를 통감하게 되는것이였다. 이러한 어머니, 이러한 우리 인민들이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나갈 때 그 거세찬 흐름을 막을 힘이 과연 어데 있을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혁명의 철칙이며 오늘 비록 피투성이 되여 싸우지만 최후승리가 약속되여있는 우리 혁명의 참모습이 아닐것인가. 그것을 깊이 새기지 못했기때문에 대하우에 떠도는 물거품같은 현상들을 보고 지레 놀라서 인민의 장강을 버리고 군사모험주의의 수렁판에 뛰여들었던것이다.

얼음밑을 흐르는 압록강 여울물소리가 들려왔다.

김주현은 걸음을 멈추고 맥없이 덜썩덜썩 따라오는 안희창을 기다렸다. 오늘 행동계획을 면밀히 짜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