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4편 5


 

제 4 편

5

 

정대처럼 툭한 쇠장대를 세로 지른 감방의 창문으로는 소담한 눈송이가 날아들고있었다. 깨끗한 눈송이는 답답하고 피비린내나는 공기를 이겨낼수 없는듯 감방안에 날아들자마자 자취없이 녹아내렸다.

차거운 세멘트바닥우에 쓰러져있던 마동희는 의식이 회복되자마자 고개를 들고 손바닥만 한 그 쇠창살창문을 찾아보았다. 감방에 갇힌지 며칠 되지도 않는데 마동희에게는 어느새 정신만 들면 창문부터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한쪼각의 하늘이 비끼고 깨끗한 공기와 바깥의 소음이 흘러드는 쇠창살창문은 마동희가 자신의 정신상태를 비춰볼수 있는 마음의 거울이기도 하였다.

(날이 밝았는가, 눈이 오는가?)

마동희는 쇠창살문을 바라보며 지독한 고문때문에 일시 활동이 중단되였던 자기의 의식상태를 깐깐히 살펴보았다.

그에게는 감방의 창문을 마음의 거울로 삼게 되면서 어떤 현상, 어떤 사색을 두고도 여러번 곱씹어보고 거듭 생각하는 버릇도 함께 생겨났다. 적들의 고문으로 몸이 만신창이 되고보니 기름이 말라든 등잔불처럼 정신이 가물거리면서 현실이 환영같아 보이기도 하고 환영이 현실같아보이기도 하여 곱씹어 생각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가 없었다.

새날이 찾아오고 함박눈이 내린다는것을 알게 된 마동희의 마음속에는 반갑고 즐거운 생각이 일어났으며 그 깨끗하고 산뜻한 눈송이를 볼에 대고 비벼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눈으로 얼굴을 씻으면 정신도 깨끗해지고 기운이 용솟음칠것 갈았다.

그는 팔굽을 세멘트바닥에 짚고 창문밑으로 기여갔다. 온몸의 뼈가 부스러지는것처럼 결렸으나 안깐힘을 쓰며 쇠창살문밑까지 기어이 기여갔다.

그러나 정작 눈송이는 감방안으로 날아들지도 않았고 어쩌다 한두송이 날려들어왔다 해도 바닥에까지 내려올새 없이 녹아버렸다. 마동희는 자기 욕심이 헛된것이라는것을 깨닫고 벽에 기대여 눈을 감아버리였다.

눈을 감자마자 목화송이만 한 눈이 화끈 단 이마와 두볼에 펑펑 쏟아져내리는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속에는 하얗게 눈을 들쓴 은세계가 그려졌다.

마동희는 무릎마디까지 잠기도록 깊이 쌓인 눈을 헤치며 눈으로 빚어세운듯 눈덮인 나무사이를 걷고있었다. 나무가지끝에 실려있는 눈덩이를 움켜쥐여 입에 넣어보기도 하고 볼에 비벼보기도 하면서 하얀 대지와 새파란 하늘을 번갈아보며 걸음을 옮겨갔다.

안해 용금이가 그윽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눈동산같은 참나무밑에 서있던 안해의 새까만 머루눈에는 은근한 걱정의 빛도 어려있었다.

동희는 손을 저으며 달려갔다.

눈처럼 하얀 털모자를 쓴 용금이는 눈섭이 더 짙어보이고 두볼이 빨갰다. 줄맞추어 누비여 만든 솜군복을 입은 그의 몸은 집에서 토스레저고리를 입었을 때에 비할수 없이 실하고도 탐탁하였다. 용금이는 군복천을 물들일 물감을 만들려고 참나무껍질을 벗기고있었다.

용금은 입대전과 마찬가지로 말기가 없었다.

지난밤 늦도록 안해와 함께 강냉이망질을 하면서 동희는 안해에게 말을 시켜보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해 꼬드겨보았지만 안해는 그저 시무룩하고 웃을뿐이였다.

동희가 다가들자 용금이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좀 쉬지 왜 나왔어요. 지난밤도 늦도록 자지 못했는데.》

동희는 안해의 손에서 총창을 빼앗아들고 참나무껍질을 벗겼다.

《사람이란 기쁠 때는 일을 해야 하는거요. 나는 장군님께서 부후물치기후방밀영에 들려 준비를 잘 갖추라고 하시니 그런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와서보니 당신과 이렇게 만나는것이 그 준비였단 말이요. 그러니 허망 시간을 보낼수 있소.》

총창으로 돌처럼 언 나무껍질을 벗기는것은 상상밖으로 어려웠다. 동희는 안해에게 본때를 보여주고싶었지만 일손이 서툴러 은근히 창피한 감이 들었다.

《당신은 참 성격도 활발해지고 우스운 소리도 잘하는군요. 몇달사이에 딴사람이 된것 같아요.》

남편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용금이가 정답게 속삭이였다. 돌미륵같던 안해에게서 처음으로 들어보는것 같은 살뜰한 말이였다.

《저는 어떻구···》

마동희는 허리를 펴고 쾌활하게 응수했다.

《제가 뭐 어쨌어요?》

안해는 방금까지 시름겨운 그늘이 깃들어있던 얼굴에 숫색시같은 홍조를 피워올리며 웃었다. 안해의 붉게 상기된 환한 얼굴을 보는 동희의 가슴도 밀물처럼 차오르는 행복감으로 그득해졌다.

용금이는 깨끗한 설경의 절반을 가리우고 앞에 다가서서 소매끝에서 꺼낸 하얀 수건으로 남편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찍어주었다.

《나도 이번에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이 새사람으로 되였다는것을 믿지 않았을게요. 우리 부부, 우리 남매가 군복입고 총쥔 혁명군이 되였단말이요. 나도 그것을 생각하면 힘이 우쩍우쩍 솟소.》

《정말 세상에 사람으로 태여난 보람이 있어요. 당장 죽어도 원이 없겠어요. 하지만 적구에 나가시면 조심하세요. 장군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도 생각이 있소. 내가 조심하는것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부모님들이나 당신을 생각해서라도 조심해야 할것 아니요.》

동희는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안해를 위로했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장군님의 뜻을 관철하고 돌아오겠다는 결의를 다시 다지였다.

용금이는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남편이 꼭 일을 훌륭히 끝내고 돌아와서 반갑게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믿고있으며 그 믿음은 오늘도 래일도 흔들리지 않을것이였다.

깨끗하게 눈으로 단장한 부후물치기후방밀영의 숫눈판에서 안해와 함께 즐기던 그날의 정경, 그때의 인상은 생동한 현실처림 동희의 눈앞에, 가슴속에 그대로 펼쳐졌다. 그때 두사람의 군모우에, 후덥게 달아오른 두볼에 축복처럼 내리던 함박눈의 신선한 감각조차 그대로 느껴지는듯 하였다. 동희의 입가에는 히죽이 웃음이 피여났다. 그 웃음 역시 안해앞에 큼직하게 벗겨낸 참나무껍질을 보란듯이 내밀던 그때의 웃음이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송이의 눈도 그의 피덕지가 앉은 이마와 두볼에 미쳐오지 못했다.

왱가당, 철렁하고 쇠붙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와서야 마동희는 자기가 습하고 어둡고 컴컴한 감방속에 갇혀있다는 현실적인 감각을 되찾았다.

《마동희, 나오라! 서장님이 부르신다!》

경찰놈이 고함쳤다.

마동희는 두억시니같은 경찰놈한테 부축을 받고싶지 않아 혼자서 운신해보려고 애썼으나 허사였다. 성급한 경찰놈은 그가 세걸음도 가기전에 달려들어 손에 고랑쇠를 채우고 끌고나갔다.

(음, 마침내 네놈이 내앞에 상판을 내놓겠다는 수작이지···)

마동희는 놈에게 끌려가며 경찰서장에 대해 생각했다. 경부인 최령이란놈은 북관지방에서 소문난 교형리이며 인간쓰레기였다. 북관사람들은 그놈의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최령은 수없이 많은 애국동포를 붙잡아 죽인 《공로》로 일제의 충견이 되였고 제가 거느린 숱한 처첩한테는 료리집을 맡겨놓아 술도 팔고 웃음도 팔고 몸도 팔게 하는 한편 왜놈상전을 섬기는 노리개로 쓰고 반일투사들을 렴탐해내는 밀정으로도 쓰면서 재산을 늘이고 경부까지 출세해온 매국노이며 패덕한이였다.

최경부는 아직까지는 동희를 직접 고문하거나 심문하지 않고 뒤에 틀고앉아서 졸개들을 조종하고있었다.

마동희는 곧장 넓다란 서장실로 끌려갔다.

눈이 묻히게 살이 찌고 코밑수염을 그쯘하게 기른자가 자못 정중한 자세로 앉아서 비청거리며 끌려들어오는 마동희를 쏘아보고있었다.

《마선생, 그동안 고생이 막심하였소. 오늘은 나와 허심탄회하게 말을 나누어봅시다.》

벽을 등에 지고 걸상에 앉은 마동희는 은연중 놀랍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간악한 교형리이며 더러운 패덕한도 여느 사람처럼 옷을 입고 말을 하며 점잔과 거드름을 피우는것이 선뜻 리해되지 않았다.

최가는 눈짓으로 감방순사를 내보낸 다음 기분이 좋은듯 오른쪽 다리를 왼쪽다리우에 올려놓으며 담배를 꼬나물었다. 놈의 살찐 상판과 배포유한 거동에는 큰 짐승을 잡은 사냥군처럼 만족감과 쾌감이 넘쳐있었다.

《유격대사령부에서는 아주 능청스럽게 당신을 백암에 파견했소. 만약 우리가 제때에 손을 쓰지 못했더라면 백암등판은 언땅이 녹기전에 새빨개질번 했거던. 우리는 백암언저리가 들썽거리길래 웬일인가 해서 뒤져보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유격대공작원이 지하에 깊숙이 배겨있더란말이요. 그런데 참 일이 우습게 됐소. 우리는 별로 기대를 걸지 않은 그런 함정에 당신같은 거물이 걸려들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현시기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에서 직접 밀파한 공작원이면 대단하지. 그리고보면 당신네나 우리나 흔히 제국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있는 사람들도 인간의 도리와 애국심보다도 우선 자기부터 살고보자는 본능이 더 강하다는것을 덜 중시하는것 같단말이요. 그런 결과에 우리는 뜻밖의 횡재를 했고 당신은 다시는 솟아날수 없는 함정에 빠졌는데 어찌겠소. 피차 여기서 교훈을 찾고 인생을 고쳐 생각해봐야지.》

최가는 유쾌하게 씨벌여댔다.

마동희는 어데서 먼데 개가 짖느냐 하는듯 방심한 태도로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속에서는 맹렬한 추리가 진행되고있었다. 최가가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자기가 걸려들었다고 말하는 그 함정이란 무엇을 말하는것일가. 일제에게 불만을 품고있으면서도 저부터 살고봐야 한다고 생각한 인간은 과연 누구를 념두에 둔것인가.

마동희는 체포된이래 사람으로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무수한 고문을 겪었으나 정신이 들었을 때 가장 아프게 엄습해오는 고통은 터지고 으깨여진 육체의 아픔이 아니라 어떤놈이 변절자인가 하는것을 짚어내기 어려운데서 오는 초조와 불안이였다. 비슷한 짐작은 갔다. 그러나 짐작만 가지고 조직을 지킬 대책을 세울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 내쳐둔다면 앞으로 조직이 그 밀고자때문에 얼마나 더 피해를 입을지 알수 없었다. 마동희에게는 방금 최가가 한 말이 자기의 기연가미연가하는 인상을 확정하는 좋은 실머리로 되였다. 마동희는 안주사의 대상을 치른 다음 조직을 정비하는 일을 내밀면서 한편으로 사람들을 교양하고 투쟁에 인입하는 일에 달라붙었었다.

그사이 적지 않은 사람과 은밀히 접촉하였는데 그중 미타하게 생각되는 사람은 전날 마동희가 입대하기전에 청년회를 발동하여 집을 지어주고 돈과 식량을 모아주어 간신히 살림을 꾸려나가도록 도와준 재선이라는 사람이였다. 이번에 사령부에서 나와보니 그 사람에 대한 조직원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빨리 그 사람을 료해확인하지 않고서는 지하조직이 자유롭게 활동할수 없었다.

동희는 깊이 생각해본 끝에 자기가 직접 그를 만나볼것을 결심하고 어슬막에 그 집에 찾아갔었다. 그가 그 집에 도착한지 한시간도 되나마나해서 경찰들이 와르르 덮쳐들어 동희는 체포되였다. 지금 경부놈이 씨벌이는 수작도 바로 그 재선이를 념두에 둔것이 분명하였다. 재선이는 그날 누구보다도 당황해하고 어서 피하라고 등을 떠밀었으며 경찰에게 접어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날 마동희가 그 집에 간것을 아는 사람은 부모들뿐아니라 조직원들속에도 없었다. 사실 마동희는 우연히 집앞을 지나다가 슬쩍 들린것처럼 하고 동향을 살펴보려고 했던것이다. 사달은 분명 그자에게서 일어난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재선이가 좋은 사람의 너울을 쓰고 계속 마을에 엎디여있는 이상 지하조직이 통채로 파괴될 위험도 없지 않는것이다. 이제 하나의 사실을 밝혀내고보니 새로운 불안과 초조감이 가슴을 조이고 들었다. 재선이는 여전히 마을사람들속에 버젓이 돌아다니며 어느놈이 마동희를 고발했는가 하고 흰목을 뽑아댈것이다. 아직 그를 의심스럽게 보지 않는 조직원이 과반수가 넘는다. 어떻게 하면 그자의 정체를 조직에 알릴것인가.

이런 초조감에 볶이울수록 최가의 수작이 어떤 고문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들려왔다.

(네놈은 조선사람이 모두 그런 벌레인가 해서 너덜거리는데 어디 두고보자. 사람은 결코 그렇게 너절한것이 아니다.)

동희는 속으로 이를 앙다물고 겉으로는 태연한체 하면서 치욕스러운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당신은 아직 생각이 짧소. 당신은 유격대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고 앞길이 양양한 젊은이요. 젊은 혈기에 반일광복이라는 그럴듯 한 말에 일시 현혹될수도 있는거지. 그리고 이번에 백암에 나와서는 별로 한 일도 없소. 우리가 당신한테 요구한것이 큰것도 아니였소. 사령부의 소재지와 지하조직망을 알자는것뿐인데 당신은 공연한 고집을 부리거던.》

마동희는 놈의 수작이 너무나 진절머리가 나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만하오. 내 입에서 당신의 비위에 맞을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게 좋겠소. 마동희의 입은 하나요. 마동희는 벌레도 아니고 재선이 같은 개돼지도 아니요. 판박은 소리는 그만하고 할 말이나 하오.》

마동희가 말끝에 재선이의 이름을 거든것은 최가의 반응을 보자고 일부러 던져본 낚시였다.

최경부는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제야 무슨 짐작이 가서 중을 떠보자는건데 우리로서는 별로 감출것도 없소. 당신이 여기서 나간다는것은 제국과 화해를 하는것이니 결국 재선이와도 앞으로 화목하게 지내게 될게요. 당신도 고집을 부리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한줌의 흙이 되겠지만 그렇지않으면 재선이와 함께 우리의 각별한 보호밑에 먹을것 입을것 근심없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오래오래 잘살게 될거요.

당신은 나의 형도 동생도 아니니까 나로서는 더 권고할수도 없소. 다만 한번 마지막기회를 더 주자는거요.

지금 당신의 건강은 말이 아니요. 원래 나는 담당형사들에게 당신의 머리카락 한오리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했댔소. 그러나 우리 형사들은 매우 사납고 우직스럽소. 량해하오.

그래서 내 상급과 진지하게 의논한 끝에 당신을 병보석으로 석방하기로 하였소. 몸이 완쾌할 때까지 집에 나가있소. 물론 동의하겠지?》

최경부는 어물어물 주어섬기면서 마동희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마동희는 바짝 정신을 차리였다. 그것은 적들에게서 기대할수 없었던 뜻밖의 선심이였다. 자기가 집에 돌아가면 여러가지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갈수 있었다. 적들의 감시는 물론 엄밀하겠지만 감방속보다는 자유롭고 그만큼 활동할 가능성이 생긴다. 다른것은 몰라도 조직들에 재선이가 밀정이라는것을 알려주고 사령부와의 련계를 계속할수 있는 대책만 세워도 대단한 일이다. 동희는 체포된후 자기의 말 한마디라도 바깥세상에 알리기 위해 구류자들이나 심지어 어수룩한 감방순사라도 쟁취해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 허사였다.

마동희는 자기도모르게 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다. 자기가 이미 다시 볼수 없다고 생각했던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얼마나 반가와하겠는가!

마동희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고있던 최경부는 벌써 그에게서 응답을 받아낸 기분이였다.

《수속도 다했으니 집으로 돌아가면 되오. 병보석의 담보는 간단하오.》

최경부는 빼람에서 서너장의 백지를 꺼내여 책상우에 놓았다.

《여기에다 마동희는 공산당에서 떨어져나왔다, 마동희는 장차 적색소요에 참여하지 않겠다. 이렇게 두어줄 쓰고 지장만 치면 되오. 비밀을 대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소. 눅거리흥정이요!》

마동희는 저도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비로소 놈들의 흉계를 알아차린것이였다. 당장은 자기의 입에서 비밀을 뽑아내지 못할것 같으니까 마동희가 전향했다는 소문을 내여 우선 불길같이 일떠서는 인민들의 투쟁열의에 물을 끼얹자는 수작이였다. 그 불길은 사실 동희가 더욱 세차게 일으킨것이 아니였던가! 자기를 믿고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고 세상에 참된 사람은 없다는 허무감에 빠져 투쟁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게 하자는것이였다. 결국 이것은 재선이나 박차석이 같이 신념도 의리도 저버린 벌레나 개돼지가 되는 길이며 제 목숨을 위해서 나라와 겨레를 배반하는 길이였다. 감방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똑똑히 보이군 하는 그런 환상의 세계에서 재선이와 박차석이가 징그러운 알몸을 잠그고 끝없이 허우적거리며 짐승같은 비명을 질러대는 악취풍기는 인생의 밑창모를 진펄이 선명히 떠올랐다. 온몸에 감탕을 게바르고 입과 코구멍으로 쓸어드는 치욕과 모멸의 진창을 내뱉으며 숨가쁘게 울부짖는 그 아비규환의 목소리-그러한것이 신성한 혁명을 배반하고 그네들이 벌어들인 목숨이며 행복인것이다.

마동희의 심각한 침묵을 제나름으로 해석한 최경부는 책상다리에 설치된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소리를 듣고 방안에 들어선 경관이 경부놈의 눈짓에 따라 마동희에게로 다가와 수갑자물쇠구멍에 열쇠를 끼웠다.

《어쩌자는거요?》

마동희는 은연중 놀라며 소리쳤다.

최경부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갑을 벗겨주자고 그러는거요. 수갑을 벗고 집으로 가야 하지 않겠소?》

마동희는 경찰의 손에 쥐여진 수갑을 왈칵 잡아당겼다. 좌르르 하고 쇠사슬 우는 소리가 났다. 최경부와 경관은 제놈들이 얻어맞기라도 한듯 뒤걸음질쳤다.

《나는 집으로 나가지 않겠소.》

최경부는 눈이 퀭해서 되물었다.

《병보석이 싫다는거요? 그대로 여기에 있다간 며칠 살지 못하오.》

마동희는 빙그레 웃었다.

《함경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요! 대장부는 한입으로 두말을 하지 않소!》

마동희의 태연자약한 모습을 본 경부놈은 상판이 하얘지도록 독이 올랐다. 놈은 더는 자기 말이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올 똑똑히 깨달았다.

《좋다. 감방이 그렇게 좋으면 실컷 앉아있어보아라. 나는 네놈을 오래오래 살려두고 온갖 쓴맛을 다 보게 할테다! 나한테 찾아와 빨리 죽여달라고 비는 꼴을 보고야말겠다!》

마동희는 자기 몸에 최경부놈의 따귀 한번 때릴수 있는 힘마저 없는것이 한스러웠다.

경관놈들은 그날 마동희를 실겅같은데 거꾸로 달아매고 코구멍으로 고추가루물을 퍼붓는 악착한 고문을 들이댔다. 마동희는 다시 의식을 잃고 어둡고 괴로운 환각의 나락에 깊이 빠지였다, 다음날아침 형사놈들은 차거운 물을 마동희의 얼굴에 들씌웠다. 그바람에 정신을 차린 마동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쳐들고 쇠창살 달린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은 휘연히 밝았으나 그것이 최경부를 만난 날 저녁빛인지 그다음날의 아침빛인지 짐작할수 없었다. 그가 아직 혼미해진 정신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하여 흐리멍텅한 눈길을 초점없이 겨누고있는데 그럴 때마다 까마귀처럼 다가붙어 맴돌아치군 하던 나많은 감방순사놈이 징그러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안희창이는 어데 갔기에 그렇게 찾소?》

마동희는 놈들이 물을 끼얹을 때보다 더 깜짝 놀랐다. 그 까마귀같은놈의 입에서 어떻게 안희창이의 이름이 나오는가? 아무려면 사령부측근에 있던 사람이 또 체포되기라도 했단달인가?

놈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인정이 없구만. 처남매부지간에 면회 한번 안오다니 말이 됐소? 혹시 당신이 아직 체포된것을 모르지 않소? 뭣하면 내가 기별을 해달라오?》

감방순사놈은 열쇠묶음을 절렁거리머 가장 은밀한 밀담이라도 하듯이 마동희의 귀전에 대고 수군거렸다. 마동희는 대번에 사태를 짐작하였다. 자기가 헛소리를 친것이였다. 안희창이의 이름만이라면 몰라도 처남매부소리까지 나왔다는것은 오직 자기만이 할수 있는 말이였다. 그러니 이 까마귀같은놈은 꿈결에 치는 헛소리를 듣고 그것을 실머리로 해서 무엇인가 그러쥐여보려고 같잖은 잔꾀를 부리고있는것이다.

마동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기가 고문끝에는 늘 정신을 잃고 정신을 잃으면 꿈같은 환각에 잠긴다는것은 이미전부터 알고있었다. 꿈도 생시같고 생시도 꿈같은 경우가 많았다.

감방순사의 말을 듣고보니 희창이와 처남이요, 매부요 하면서 즐겁게 휴식하던 일을 간밤 꿈에 본것 같기도 하고 전날에 있었던 그 일이 방금 이자의 말을 듣는 순간에 생각난것 같기도 하여 전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이제보니 자기가 까무라치거나 잠든 다음에 이 까마귀같은놈이 자기옆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이친것이 다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저놈이 들은것이 안희창의 이름만인가? 그밖에 또 무슨 소리를 들은것은 없는가? 마동희의 가슴은 불안으로 서늘하게 식어들었다.

멀찌감치 서서 아닌보살하고 마동희의 반응을 지켜보고있던 형사놈이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까마귀같은 감방순사를 밀어 던져버리고 꿱 소리쳤다.

《무슨 쑥덕질인가? 너는 가자! 서장님이 너한테 각별한 호의를 베푸시였다.》

마동희는 놈에게 끌려가면서도 늙은 감방순사놈의 수작을 두고 생각을 곱씹었다. 그놈은 자기의 헛소리를 듣고 희창이와 주고받은 롱담내용까지 알아내였다. 그러니 그놈은 자기의 헛소리속에서 장차 사령부의 위치까지 알아낼수도 있지 않을가? 사람이 잠꼬대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구나 자기는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환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까마귀같은 늙은 순사를 희창이나 김주현이로 잘못 보고 그가 묻는대로 속을 털어놓을수도 있지 않는가.

마동희는 자신에 대한 의혹을 뿌리칠수 없었다. 지금 자기 몸에서 온전한것은 오직 혀 하나뿐이였다. 그런데 혀는 어떻게 온몸이 성한데없이 터지고 째졌는데도 변함없이 말을 할수 있을가. 근심에 질린 마동희는 형사놈이 눈부신 방안에 떠밀어넣고 문을 닫은 다음에야 고개를 들고 별생각없이 앞을 살펴보았다.

밝은 방이였다. 방복판에는 어머니가 조용히 앉아있었다. 마동희는 너무나 뜻밖이여서 눈을 번쩍 떴다. 이것도 환영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어머니 역시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니의 정다운 모습과 놀란 표정을 본 마동희는 비로소 이것이 환영도 꿈도 아닌 현실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놈들이 청하지도 않은 면회를 시켰을 때에는 형사놈이 말하듯 《서장의 각별한 호의》는 아닐것이지만 어쨌든 당장은 눈앞에 현실적으로 앉아있는 어머니를 본다는것이 가슴이 짜릿해지도록 기쁘고 반가왔다.

《어머니!》

마동희는 어제밤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기라도 하듯 천연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도 입을 꼭 다물면서 눈에 정기를 모두고 마치도 첫걸음마를 뗀 때처럼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애써 마음을 눅잦히며 아들의 상처투성이 몸을 어루만지였다.

《몸이 왜 이 꼴이냐. 어른이 될 때까지 몸에 종처하나 없던 네가··· 에미는 네 몸이 어떻게 이 꼴이 되였는지 까닭을 알수 없구나··· 얼마나 아프냐?》

어머니는 아들의 가슴에 토스레수건을 쓴 머리를 가볍게 기대이고 울음을 참고있었다. 동희도 자기 몸이 어머니앞에 드러내기는 너무나 끔찍스럽게 됐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놈들은 동희를 살려둔채 고통을 가하여 입을 열어볼가 해서 압록강얼음장을 깨고 그속에 잠갔다가 꺼내군 하였다. 그러니 온몸이 퉁퉁 붓고 진물이 흘렀으며 그우에 성급한 자들이 매질을 하여 살덩이가 문질러지고 온몸에 굴뱀이 칭칭 감겨있었다.

동희는 동정과 고름을 뜯기운 저고리자락으로 가슴을 감싸며 다정히 말했다.

《어머니, 바깥날씨가 차지요?》

어머니는 눈물이 고인 눈에 억센 빛을 보이며 수갑의 쇠사슬을 쓸어만지였다.

《감옥안도 추운 모양이구나.》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에 난 상처들을 어루쓰다듬기도 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골라주기도 했다. 자기의 손이 닿으면 불로 지지는것처럼 아픈 얼굴이였으나 어머니가 어루만질 때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네가 집을 떠나간 날 국수를 눌러놓고 밤새도록 기다렸구나. 눈보라가 세차서 아침에 오려나 했는데 아주 안오더구나.》

마동희는 어머니앞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눈길을 떨구었다.

《저도 체포되는 때 어머니가 기다리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재선이네 집에 들어선지 얼마 안되여 경찰들이 달려들더군요.》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어머니의 슬픔에 질렸던 얼굴에는 서리발같은 증오심이 어리였다. 자기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고발자가 누구인가를 짐작한것이였다.

마동희는 자기가 바깥세상에 대고 그중 하고싶었던 말이 어머니에게 면바로 가닿았다는것을 깨닫자 마음속이 편안해졌다.

그는 어머니의 손을 가슴에 대고 어리광부리듯 말했다.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몰라요. 참 잘 오셨어요. 아버지랑 작은 아버지랑 다 편안하신가요?》

《그럼 아무 탈없이 잘 지낸다. 걱정이 있다면 네 걱정뿐이다. 그런데 여기 서장이 부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겠니. 너를 만나서 집에 나가자고 권하라는게다. 네가 오라는 사람이 없어서 여기에 앉아있겠니? 그래도 사정을 하면 병피탈대고 내보내준다고 하더구나.》

마동희는 얼굴에 웃음을 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아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섰다.

《아버지랑 삼촌이랑 이웃사람들도 그런 짐작들을 하더라. 네가 그리 쉽게 나올것 같지 않다고말이다. 그렇게 나오지 못할바에는 이 에미가 따끈한 밥이라도 한끼 끓여먹였으면 얼마나 좋겠니.》

《어머니, 불초자식을 용서하세요.》

어머니는 손을 저으며 황망히 말머리를 돌리였다.

《그런 말을 말아라. 나도 네 마음을 안다. 네 동무들가운데는 든든한 밥벌이탁에 붙어서 먹을것 입을것 걱정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만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 나는 언제나 내 자식들을 자랑한다.》

마동희는 수갑채운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감싸쥐고 자기 얼굴에 가져다댔다.

《웬일이냐?》

어머니는 마침내 아들의 눈가장자리에 이슬이 맺힌것을 발견하고 저으기 놀랐다. 동희는 더는 눈물을 숨기지 않고 어머니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어머니, 고마와요.》

어머니는 아들의 어깨에 두손을 대고 세차게 흔들었다.

《어디 보자. 네가 웬일이냐? 무슨 생각을 하느냐?》

어머니의 눈에는 당황하고 놀란 빛이 어리였다. 이런 아들을 보는것이 처음이였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와도 어머니앞에서 우는법이 없었고 힘든 빛을 보인적없는 아들이였다.

경찰의 악착한 고문에 몸과 마음이 다 약해진때문인가?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을 가지고 아들이 전보다 더 억세여지고 투쟁의욕도 더 세차게 불타고있다는것을 느끼였다. 그렇다면 이 눈물은 어인 눈물인가. 아들은 분명 무엇인가 결심한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머니는 아들의 어깨를 잡아흔들며 왜 그러느냐,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안타까이 물었으나 아들은 그저 따뜻한 웃음을 짓고《이런 때 찾아준 어머니가 너무 고마와서 그래요.》하고 어머니의 손등을 쓰다듬을뿐이였다.

어머니는 찬찬한 눈길로 아들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엄숙하게 물었다.

《너희들이 부모들을 얼마나 떳떳하게 해주었는지 다는 모를게다. 네가 혹시 마음이 약해진것은 아니냐?》

동희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마음이 약해졌다면 어머니와 아버지품으로 기여들지 여기서 억배겨내겠습니까? 저는 산에서 가져온것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늘보다 높은 뜻을 굽힐수 없고 바다보다 깊은 의리를 저버릴수 없어요.》

《오냐 알겠다. 집에서도 네것은 어느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았다. 동희야, 모두들 그러는데 올해봄은 이를것 같다고 하더라.》

마동희는 어머니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가 부모량친에게 맡긴것은 장군님께서 주신 권총만이 아니였다. 수많은 혁명동지들이 어머니, 아버지와 련결되여있으며 자기가 없을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련락을 짓게 되여있었다.

마동희는 안주사의 대상날 멀고 가까운곳의 여러 지방에서 모여온 조직대표들과 련락원들을 만나던 일이 생각나자 마음이 진정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건강하시다는 소식 하나만 듣고도 기운을 내던 동무들이다. 장군님의 의도와 투쟁방침을 전달받자 앞이 환히 열린다고 하며 신심에 넘쳐있던 동무들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더 오래 받들며 싸울수 없는것이 안타까왔으며 장군님을 다시 뵙지 못하게 된것이 슬펐다. 그러나 지금도 안주사네 집에 모였던 혁명동지들이 자기 초소에 돌아가 승리의 신심과 혁명의 불씨를 안겨줄것을 생각하니 자기의 한생이 그닥 허무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설사 자기는 죽을수 있지만 적들의 백색공포분위기속에서 실망과 비관에 잠겼던 수많은 혁명동지들이 더욱 억세게 일떠서서 일제침략자와 싸울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해야 할 말을 다하지 못한듯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거듭 말하였다.

《추위는 박달나무가 터지게 세차지만 네가 마시며 자란 뜨락의 샘물은 여름이나 봄가을처럼 한맥으로 솟구쳐 흐르누나. 네가 그 물이 생각날것 같아 한두루미 떠가지고 왔는데 경찰서사람들이 너를 집에 데리고가서 먹이라고 하면서 못가지고 오게 하더라.》

《그래요? 저도 늘 그 샘이 생각납니다. 저는 ···다 알아요.》

마동희는 미구하여 형사놈에게 끌려 일어났다. 그는 머리를 숙여 어머니에게 절을 하고나서 비청거리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아들을 따라서며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마동희는 문턱을 넘어서며 어머니쪽을 돌아다보았는데 물집이 엉켜붙은 그의 입가에는 평온한 미소가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