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4편 14


 

제 4 편

14

 

화창한 봄날이였다. 따뜻한 봄볕에 삭정이같던 가로수에도 록음이 짙게 어리였다. 봄을 맞는 대자연과 인간은 역시 희망에 넘쳤다. 어디엔가 숨어있던 헐벗은 사람들이 벌창하듯 길에 쏟아져나와 붐비였다. 마차와 인력거는 줄지어흐르고 고아대는 목소리와 종소리, 꽹과리소리는 귀청을 때렸다.

승용차는 혼잡속을 누비며 달려갔다.

리보익녀사께서는 슬픈 표정으로 창밖의 넝마천지를 내다보시였다. 사람은 그리도 많은데 밝은 얼굴과 사람다운 모습을 갖춘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디 가나 가난과 불행의 도가니였다.

승용차는 헐벗은 사람들이 시꺼먼 바다처럼 몰려선 크지 않은 광장변두리에 머물러섰다. 역전광장이였다.

얼마전에 녀사께서는 왜놈들에게 만경대에 돌아가야 하겠다고 되게 다그어대시였다. 농사철이 된것을 못보느냐, 그런데 그냥 붙잡아두면 어쩔셈이냐? 왜놈들은 왜놈들대로 조모님을 노엽히는것을 삼가하였다. 그리하여 오늘 만경대고향집으로 돌아가시게 된것이였다.

녀사께서는 승용차에서 내리자 돌따서서 되돌아걸으시였다. 군복을 입은 운전수는 무슨 일이 있을게라고 생각하였을뿐 감히 만류하지 못했다.

복작복작하는 길가에는 빌어먹는 거지아이들이 주런이 서있었다.

녀사께서는 서너살 될가말가한 총각애가 동냥을 달라고 앙상하게 여윈 두손을 내밀고있는것을 보시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녀사께서는 반년가까운 세월 그 고생스럽던 나날에도 보이지 않으신 눈물을 흘리시였다.

《하늘도 무심하지··· 그래서 우리 장군이 혁명을 하겠다고 결심한거야. 우리 장군이 물러서면 우리 동포가 다 이렇게 된다는걸 알고있거던. 그러니까 힘겨워도 싸우는거지.》

녀사께서는 손자를 만나면 목에 감아주려고 손수 만경대에서 농사지은 목화로 실을 내여 한코한코 뜬 폭신한 목도리를 활 헤쳐 툭툭 턴 다음 웬일인가 해서 눈이 올롱해진 소년의 온몸에 포근하게 감아주시였다.

《아, 빨리 밝은 세상이 와야겠다. 이대로는 사람들이 숨막혀 살지 못하겠다! 따뜻한 해볕이라도 거치른 땅우에 어서 흠뻑 비치여라.》

녀사께서는 그리운 손자분이 몸가까이에 서계시는듯 가슴속의 괴로움을 터놓으며 길게 탄식하시였다.

정거장구내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야모도가 승차장에서 기다리고있었다.

미야모도는 아담한 트렁크를 기차안의 앉을 자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에 옷감과 도중에 드실 음식이 들어있습니다. 조모님께서 고생많으셨는데 받아서 쓰시오.》

트렁크는 묵직하였다. 녀사께서는 겨우 그것을 들어 차창밖으로 내던지시였다. 승차장 콩크리트바닥에 떨어진 트렁크는 쾅하고 소리를 내며 한귀가 이지러졌다. 녀사께서는 겨우내 온몸을 휘감고있던 철쇄를 벗어던진것처럼 통쾌하시였다.

기차는 차체를 부르르 떨다가 복마전같은 컴컴한 도시를 벗어났다.

기차는 점차 웅글은 소리를 울리며 달리기 시작하였다. 해빛은 차창으로 더욱더 밝게 비쳐들었다.

녀사께서는 조용히 눈을 감으시였다. 그 순간 문득 인민혁명군에게 호되게 얻어맞아 만신창이 된 놈들의 시체를 보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 그날은 대한추위를 하느라고 독한 칼바람이 불어닥친 날이였다.

마차는 눈보라를 헤치며 큰 거리들을 지나 심심산골로 달리였다.

나무가지들은 태질하며 회파람소리를 질렀고 삭정이들이 부러져 딩굴었다. 아직 날은 밝지 않아 어둑시그레한데 어디선가 콩볶는것 같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오고있었다.

날이 환하게 밝자 마차는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그 길로 수십대의 마차들이 줄지어 맞받아 달려나오고있었다. 미야모도는 마차에 오를 사이 없이 특별증명서를 내보이기까지 하면서 마차통행을 보장할것을 요구했으나 전투에서 쫓기여 돌아오는 패잔병들의 행악을 당해낼수 없었다.

리보익녀사께서는 길이 메게 몰려오는 놈들의 마차를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무엇인가를 듬뿍하게 실었는데 그우에 군용모포가 씌워져있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무슨 짐짝인지 짐작하실수 없었다. 량식섬이나 탄알상자같지도 않았다.

《저건 무엇인가?》

녀사께서는 박차석의 눈길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박차석의 눈길은 불안에 떨고있었다. 그는 녀사께서 물으시자 얼핏 길에 내려선 미야모도를 곁눈질해보고나서 딴데를 보는체하며 넌지시 말했다.

《큰 싸움이 터졌어요. 장군님께서 왜병을 삼대베듯 쓸어눕힙니다. 할머님, 저 마차에 실린것이 뭔지 모르겠습니까?》

녀사께서는 박차석의 말을 듣고 마차를 더욱 꼼꼼히 살펴보시였다. 과연 마차 뒤쪽에는 모포속에서 삐여져나온 군화신은 발목들이 장작단같이 쌓여있었다.

《악착스럽게 사람잡이를 하더니 네놈들이 여기서 우리 겨레의 보복을 받는구나.》

녀사께서는 한참동안 시체마대를 쏘아보시였다.

형편을 보니 장군이 근방에 있는지는 몰라도 왜놈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장군의 군대들이 가까이에 있는것만은 확실한것 같았다.

조모님께서는 줄지어 선 마차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으시였다.

《우리 장군한테 왜놈들이 벌을 받는구나. 조선의 장군이 정말 장하다.》

녀사께서는 적들의 패망상과 혼비백산한 모습을 보실수록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차차 속이 든든해지면서 마음이 누굿하게 가라앉았다. 통쾌하고 자랑스러운 생각을 어디다 터놓을데가 없는것이 유감스러우실뿐이였다. 녀사께서는 시체를 실은 마차수를 세기 시작하시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고마시였다.

《조선말 잘 아는 일본량반.》

녀사께서는 앞자리에 앉아있는 미야모도를 부르시여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하나 물어보세. 저 마차에 실린것이 뭔가?》

미야모도는 몸을 뒤로 돌리였다. 녀사께서는 마침 옆을 어기쳐 지나가는 패잔병의 마차를 가리키시였다.

《저게 뭔가말이요?》

패잔병의 시체마차는 할머님의 물음에는 자기가 대답한다는듯 장작단처럼 차곡차곡 쌓여진 군화신은 종다리들을 조모님과 미야모도의 눈길앞에 돌려대고 흔들거리며 지나가고있었다.

순간 미야모도의 작고 새까만 눈은 덫에 치인 승냥이눈처럼 살기를 뿜었고 안으로 옥아든 가지런한 이를 사납게 옥다물었다.

녀사께서는 그놈이 아무 소리도 못하자 마음속에 승리자의 자부심이 안겨들어 누굿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공연히 독을 피우는군···》

그놈은 녀사의 말씀을 못들은척 하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코를 풀었다. 그때 놈의 토끼눈깔에서는 눈물이 튀여나왔다. 아마 약이 받쳐 울고싶은 모양이였다.

녀사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놈의 상통에 침을 뱉고싶은것을 겨우 참으시였다. 그놈은 녀사께서 허리를 굽히는것을 볼가해서 갖은 악착한짓을 다하였다.

지난 설에는 남방과일을 한바구니 들고와서 갑삭거리며 설인사를 하는척 하더니 생뚱같이 길림성장의 아버지가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있는 유명한 김일성장군의 할머니를 보고싶다고 하면서 세배하러 가자고 말했다.

《길림성장은 왜놈과 단짝이라더라. 내가 갈곳이 못되니 장군의 할머니한테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세배하라고 하여라.》

녀사께서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며 추상같이 소리치시였다.

미야모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여 도망빼더니 얼마후 소고기냄새를 풍기는 남비를 하인에게 들리여가지고 들어왔다.

《이 소고기는 방금 산에서 가져온거요. 김일성장군이 설날에 먹으려고 끓이는것을 황군이 빼앗아왔소다. 김일성장군은 소고기도 못먹고 해빛도 볼수 없게 되였소다!》

속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오로지 혈육의 가슴에 아픈 못을 치기 위하여 놈은 이따위 연극을 꾸미였다. 녀사께서는 속아서가 아니라 가장 불길하고 방종맞은 소리를 새해벽두에 듣게 되는것이 가슴아파 화가 치밀었다.

《기왕이면 술도 한대포 곁들일일이지. 내가 여기 앉아 소고기를 먹겠으니 임자는 걱정말고 목욕탕이나 깨끗이 청결하오. 목욕탕이라는게 돼지우리보다 더 어지러워서 발도 못씻겠소!》

녀사께서는 눈시울을 내리드리우고 슬쩍 그놈의 상통을 쳐다보시였다. 바로 그때도 왜국을 대신해서 녀사와 대결해나섰던 미야모도놈은 너무나 약이 올라 새빨간 눈에서 눈물을 뿌리였다. 녀사께서는 바람소리에 귀를 귀울이시며 손자의 신상을 근심한 일은 많았지만 총칼로 모략으로 나서는 왜놈들에게 약한 기색을 지어보신적은 한번도 없었다.

···녀사께서는 그때 일이 방불히 그려지자 입가에 미소를 띠우시였다.

봄철에 접어들자 그러한 싸움은 거의 날마다 벌어졌다. 손자분의 억센 숨결같은 원쑤치는 총소리는 녀사의 귀전에 끊임없이 울려왔다. 왜놈들은 어떻게나 그 급한 고비를 넘겨볼가 해서 만경대까지 굽신거리며 찾아왔던것이였다.

기차는 시원하게 긴 기적소리를 울리며 질풍처럼 달리였다.

녀사께서는 이마에 따뜻하게 비쳐드는 봄볕을 느끼시며 이 순간 일제침략자를 더욱 호되게 족치고있을 손자분의 모습을 그려보시다가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멎어서자 눈을 뜨시였다.

차창앞으로 기차가 어기쳐 지나고있었다.

그 기차방통안에는 왜놈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이 타있었다.

(저놈들이 어디로 조급히 가는가?)

녀사께서는 왜놈들이 손자분과 싸우러 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시자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지시였다.

장군이 왜병 대무력을 다 물리치자면 장차 얼마나 고생을 더 해야 할가? 걱정을 하자면 끝이 없었다.

《모두들 장군을 받들고 도와야 하겠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일어나 싸워야 해!》

겨레가 다 일떠서서 장군을 받들고 싸운다면 왜병이 아무리 많아도 싸워 이길것 같으시였다. 왜놈들이 군대가 많다고 세상을 제마음대로 할수 있다면 하필 만경대에 찾아와 이 늙은이한테까지 허리를 굽히고 비락질을 할가?

녀사께서는 뜻깊은 웃음을 지으시였다.

(성주는 반드시 조국광복을 이룩하고야 고향집 문안으로 돌아올것이다. 아무리 왜놈들이 드세고 만주의 눈보라가 모질다해도 우리 장군의 억센 마음은 꺾지 못한다. 내 그날까지 꿋꿋이 만경대집을 지켜내겠다.)

기차는 씨붙임하는 대지를 구르며 아지랑이 비낀 남쪽으로 달리고있었다. 시꺼먼 대지에는 연록색이 점점 짙어져갔다. 신록이 든 버들방천과 산기슭이 반겨맞았다.

할머님의 눈앞에는 만경대가족들과 고향사람들의 얼굴모습이 언뜻언뜻 다가와 이따금 눈을 떠보군 하시였다.

《우리 장군님이 건강하십데까?》

《우리 장군님이 싸움을 계속하겠지요? 이제 얼마쯤 기다리면 조국이 광복될것 같습데까?》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물을것이다.

녀사께서는 미소하시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소식을 안겨주실수 있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