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4편 12


 

제 4 편

12

 

불섬에서 공방전이 시작되던 날 아침 몽강쪽에서는 윤기가 자르르한 밤빛군마 다섯필이 꼬리를 빳빳이 쳐들고 날듯이 달려오고있었다. 군마등우에 올라탄 일본장교들이 만또를 펄럭이며 연방 등자로 말의 배허벅을 질렀다.

좁고 오불꼬불한 돌투성이길에는 몽강에서 나가는 증원병부대들이 물흐르듯 하여 좀체로 길을 낼수 없었다. 그래서 오끼와 련대참모장교들은 길에 들어설념도 못하고 산가탕을 달리고있었다.

오끼는 말갈기에 골이 묻히도록 허리를 굽히고 고삐를 챘다. 그는 최근 련일 분주했다.

매번 자신있게 모략을 꾸미였으나 그때마다 실패했고 실패하고 나서는 또다시 새로운 모략을 꾸며온 오끼였다.

리보익녀사의 강의한 기상과 송죽같은 절개앞에 첫 모략이 깨여져나갔다. 실패후의 그의 얼굴에는 절망과 탄식이 흘렀으나 다시금 이를 사려물고 새 모략에 달라붙었다.

그는 10여년 길들인 선우제를 유격대와 접선시키는데 겨우 성공하였으나 그것도 종당에는 실패하고말았다.

수천명의 장백현주민들을 무차별 검거한 결과 권영벽과 같은 거물을 잡아낸것은 마치 쇠치네반두로 잉어를 떠낸것과 같은 엄청난 성과였으며 나아가서 우연히 마동희를 체포한것은 마치 벌에 쏘이다가 꿀통과 맞다들린것 같은 횡재였다. 그러나 팔자에 없는 잉어도 꿀통도 오끼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권영벽은 류치장에서는 순사, 간수, 재판정에 나서면 검사, 판사들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 다닥친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일성장군의 위대성에 대해 선전하는것이여서 회유나 전향은 고사하고 숫제 사람을 접근시키기가 두려웠으며 마동희는 애당초 자기와는 무슨 흥정을 걸어볼 생각을 말라는듯 스스로 혀를 끊고 그나마 가슴에 찍힌 락인처럼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웃음을 남기였다.

마지막으로 오끼는 박차석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박차석은 오랜 연구끝에 만들어낸 《최후통첩문》을 가지고 몽강땅에서 헤매다가 유격대와 접촉하는데 성공했으나 4월에 회답을 주겠다는 수수께끼같은 말 한마디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조선인민혁명군측의 대답은 김일성장군의 의사를 반영한것이 확실하였다. 그러다보니 《토벌》사령부에서도 대단히 중시되였고 신중하게 연구되였다. 각이한 견해들이 나왔는데 오끼가 놀란것은 4월에 주겠다는 그 대답에 크게 기대를 걸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뜻밖에 많은것이였다. 특히 유격대와의 싸움에 경험이 많은 사사끼소장이하 많은 《토벌대》의 고급지휘관들이 불섬을 든든히 포위한 조건에서는 4월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고 우기는것이였다.

오끼는 그들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고 보았다. 불섬에서 군사적압력을 강화하면 4월에 주겠다는 그 대답의 내용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것이였다. 오끼는 책략가로서 칼부림밖에 할줄 모르는 《토벌사령관》들의 눈이 희뜩 뒤집히게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고 김일성장군의 대답을 받아내고싶었으나 굳이 군사작전을 반대하지 않은것은 앞으로 받게 될 유격대측의 대답이라는것이 그가 감질나도록 애타게 바라는 그런 달콤한 내용이 아닐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기때문이다.

오끼는 포위를 압축하고 공격을 들이대야 한다는 사사끼소장의 주장에 이틀이나 난색을 짓고 까박을 붙이며 끌어오다가 마지못한척 하고 동의하였다. 만일의 경우 책임을 그들에게 넘겨씌우기 위한 방패막이를 미리 장만해두는것이였다. 그러나 실상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있었다. 4월에 주겠다는 대답이 불길이라면 불섬포위공격전은 바람이다. 바람결이 세차면 세찰수록 불은 더 잘 붙을것이다.

오끼는 이랬건저랬건 이번에야말로 자기가 최후의 웃음을 웃게 되리라 확신하고 직접 싸움터에 달려나오는길이였다.

오끼일행은 정오무렵에야 불섬이 마주보이는 야산허리에 도착했다. 그때 강의 량안에서는 호상 치렬한 사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강변에 늘어선 《토벌》부대들은 무릎을 꺾고앉아서 벼랑꼭대기를 향해 총을 쏘아대고있었다.

벼랑에서도 드세찬 사격이 계속되고있었다. 기관총의 짧은 련발사격과 산발적인 보총사격의 의도는 명백하였다. 유격대는 《토벌대》들처럼 하늘중천에 대고 쏘는 눈먼 사격이 아니라 벼랑턱에 기여오르는 돌격대를 노린것이였다.

늘 참모부에 앉아서 음모나 꾸미던 오끼는 직접 총포탄이 오가는 전장에 나서면 겁이 많았으나 그래도 군복을 입은것만큼 산허리의 숲속에 서서 싸움을 관망할만 한 배짱은 있었다. 유격대의 탄알이 벼랑턱에 붙은 돌격대만 겨눈다는것을 누구나 쉽게 가려볼수 있었기때문이다.

오끼는 속새풀대를 꺾어들고 장딴지며 장화를 툭툭 치면서 그리고 아직도 은근한 향기를 풍기는 묵은 풀의 마른 잎을 씹으며 강변과 평행이 되게 산릉선을 오르내리였다. 군사에 무식한 오끼는 처음 한동안은 싸움이 어떻게 돼가는지 판단이 잘 가지 않아서 막연하게 불섬을 겹겹이 포위하고 공격을 들이대는 《토벌대》가 이길것은 틀림없는데 다만 지휘관들의 능력에 따라 그 시간이 얼마나 끌것인가 하는것만이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차츰 의혹이 떠올랐고 마감에는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하였다.

벼랑꼭대기에는 몇그루의 상록수가 서있고 그뒤에 보이는 푸른하늘에는 얇은 구름이 비꼈을뿐 사람의 움직임이라든가 대포의 포신이며 기관총좌지같은것은 드러나보이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맵짜고도 위혁적인 총알이 날아와 벼랑에 오르는 돌격선을 무너뜨리고있을뿐이였다.

그런데 《토벌대》쪽은 암만 봐야 속수무책이였다.

《토벌》사령관은 여기에 만여명이라는 요란한 무력을 들이밀었다고 큰 소리를 치고있지만 실지 유격대와의 전투가 벌어지고있는 벼랑밑의 강변은 련대급의 무력도 전개하기 어려운 지형이였다.

《토벌대》는 천신만고하여 간신히 천여명의 병력을 벼랑밑에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그나마 절반도 못되는 무력이 강을 건너 겨우 벼랑턱에 기여오른데 불과했다. 유격대는 유리한 지세를 타고 《토벌대》를 손쉽게 소멸하고있었다.

오끼는 《토벌부대》들이 전혀 승산없는 싸움을 벌리고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인민혁명군의 소재지를 알기만하면 큰일을 낼수 있다고 굳게 믿어온 자기자신과 관동군수뇌부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이였던가? 인민혁명군의 소재지를 알아도 별수가 없으며 큰 무력을 붙여도 소용이 없었다.

오끼의 입가에 차거운 랭소가 피여올랐다.

(결국 제국으로 하여금 동양평화의 공을 이룩하게 하는것은 모사들의 잔꾀가 아니라 천황페하께 충성스러운 병사들의 과감무쌍한 돌격이라고? 사사끼소장, 그래 당신은 저 꼴을 보고도 아직 그런 천진란만한 주장을 고집하겠소?)

오끼는 마음속으로 사사끼소장과 끝없는 론쟁을 되풀이하면서 이제는 별수없이 4월에 주겠다는 유격대의 회답에 기대를 걸수밖에 없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전장과 퍼그나 동떨어진 산속 솔밭에 보호색천막을 치게 하고 그곳에서 하루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말을 타고 하루종일 달려온 퉁퉁 부은 두발은 불로 지지는것처럼 쏘았다.

신발만 벗어도 발이 한결 시원할것 같았다. 그래 신발을 벗으려고 장화의 뒤꿈치를 감싸쥐던 오끼는 문득 손을 멈추고말았다.

그는 얼마전에 유격대를 깊이 료해해볼 목적으로 륙군병원에서 치료받고있는 젊은 소위 한사람을 만나본 일이 있었다. 그 젊은소위는 작년 2월에 유격대를 《토벌》하기 위하여 홍두산에 출동했던 련대의 소대장이였다. 그때 홍두산에서는 유격대와 치렬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젊은 소위가 속한 련대에서만도 500명이 출동하였다. 그외에도 그 전투에는 위만군 수천과 일군포부대까지 동원되였다. 그런데 500명이나 되던 련대는 불과 2명, 그 젊은 소위와 다른 한사람이 살아남고 모두 전멸되였다.

오끼는 소위에게서 들은 많은 이야기가운데서 그가 살아남게 된 《비결》이 문득 떠올랐던것이다.

그 젊은 소위가 그날밤 방금 초소들을 순찰하고 천막에 돌아와 아직 군화를 벗지 못했을 때 유격대의 습격이 시작되였다. 젊은 소위가 500명이 다 죽은 싸움터에서 살아남을수 있은것은 신발을 벗지 않았을 때 싸움이 일어나 지체없이 도망친 덕분이였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신발을 벗은 다음에 전투가 시작되였다면 자기 역시 저승길에 올랐을것은 틀림없다는것이였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렇게도 중대한 죽고사는 문제도 결국은 그처럼 사소한 원인에 의해 결정되는것이다. 오끼는 그때 그 소위의 고백이 사실인가, 그 어떤 떳떳치 못한 행동으로 사지에서 뛰여나와 꾸며낸 소리가 아닐가 하는 의심도 가져보았었다.

그러나 이곳 싸움터에 와서 신출귀몰하다는 유격대를 눈앞에서 보니 그 소위의 말이 의심할나위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되였다.

오끼는 장화목다리를 끄당겨 든든히 신고 만또를 입고 군모를 쓴 다음 푹신한 야전침구로 몸을 덮고 마드라스우에 누웠다. 눕자마자 잠이 달려들고 온몸이 나른해졌다.

비몽사몽간에 수류탄 터지는 소리와 기관총련발소리가 들려왔다. 오끼는 몸을 뒤채면서 불편한 잠자리를 타발질하며 혀를 찼다. 그는 자기가 꿈결에 전투를 겪고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눈앞에서 빨간 불줄기들이 흐르고 하늘이 훤해지도록 불길이 치솟았다. 아무래도 꿈같지 않아 눈을 버쩍 뜨니 천막주변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였다.

신발을 벗지 않고 자던 오끼는 벌떡 일어나 지체없이 권총을 뽑아들고 천막밖으로 뛰여나갔다. 불무지는 빈틈없이 널리고 화광은 하늘에 넘치는데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은 뜨나마나하고 귀청은 금시 터져나갈것 같았다. 그런 형편에서는 발끝이 벼랑끝같아서 단 한걸음도 내디딜수 없었다.

오래지 않아 절반 넋이 나간 졸병들이 도망쳐오기 시작했다.

《야, 야! 왜 도망치는가? 비겁한놈들같으니!》

오끼는 이를 갈며 사납게 소리쳤다.

도망쳐오던자들은 늑대무리처럼 흠칠 놀라 서너걸음 물러섰다가 총을 내대고 겨냥하며 대들었다. 오끼는 미친자들이 컴컴한데서 함부로 총을 쏠수 있다는것을 느끼자 오싹 소름이 끼치였다. 소리한번 못쳐보고 귀신몰래 죽을수 있는것이였다. 그는 재빨리 땅에 엎디고 말았다.

어둠속에서는 실날같은 탄도가 날며 아츠러운 소리를 냈다. 어느 총알에 맞을지 모를 지경이였다.

웬 녀석이 황급히 도망치며 잔등을 짓밟았다. 오끼는 정신없이 도망치는자를 놀래웠다가는 그놈한테 맞아죽을것 같아 아프다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상판을 땅에 댄채 입술을 깨물었다.

(과연 헐치 않구나. 이러니까 100만대군으로도 당해낼수 없다는게지. 이들을 그냥둔다면··· 아!)

온몸이 떨리고 이미 흘려본지 오랜 눈물이 흘렀다.

해가 뜰무렵에야 강도 벼랑도 잠잠해졌다. 밤새 아무 일도 없었던것 같았다. 불무지에서 그물그물 연기가 솟아오르고있을뿐이였다.

죽음을 면한 일종의 자부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인민혁명군과 접전해보았으며 그 싸움터에서 죽지 않았다는것이 자기에서는 모두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는 다시 지난밤의 후회와 절망속에서 벗어나 자기의 직무를 계속할수 있었다.

날이 밝았으나 참모들은 부대를 벼랑에 오르라고 명령하지 못했다. 케를 보아가며 행동하겠다는 속심이였다. 그런데 이쪽에서 사격하지 않으니 유격대에서도 총 한방 쏘지 않았다. 결국 접전이 시작된 이튿날에는 어느쪽에서도 총 한방 쏘지 않았다. 전투없이 날을 보내고 밤이 되자 참모장교들은 열을 띠고 언쟁을 했다. 유격대에 공격을 들이대지 않은것을 잘못이라고 고아대는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3일만인 다음날에는 다시금 총공격을 들이대기로 락착지었다.

다음날 《토벌대》는 벼랑을 향해 다시금 총공격을 단행하였다. 벼랑우에서는 벼랑을 기여오르는 돌격대를 향해 총을 쏘지 않았다. 그날 《토벌대》는 아무런 저항없이 벼랑을 점령하고 불섬에 들어섰다.

오끼는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무섬증을 이겨가며 결사의 각오를 품고 불섬에 올라섰다.

불섬의 갈피갈피에는 깨끗이 정돈된 아담한 반토굴식병실들이 방금 주인이 밖에 나간것처럼 비여있었고 겨우내 유격대원들이 힘을 키웠을 운동장은 발땀이 들어 대리석처럼 딴딴했다.

오끼는 인민혁명군이 자기들을 실컷 골탕먹이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는것을 알자 새싹이 움트는 풀밭에 풀썩 주저앉아 주먹으로 땅을 쳤다.

《유격대는 소멸된것이 아니라 포위망을 헤치고 새여나갔구나! 어제까지는 심산속에 갇혀있었지만 래일부터는 대륙이 불바다가 될것이다. 화산은 드디여 터지고 용암은 마침내 온 대륙을 휩쓸것이다. 누가 이 힘을 막아낼수 있는가! 당신들은 오늘 우리의 형편이 얼마나 불우한지 짐작이나 하는가?》

그는 울음이라도 터치고싶은 비통한 심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묵은 잡초를 정신없이 문질러뜯었다. 지나가던 장교들과 병사들이 흘끔흘끔 그의 눈을 곁눈질해보았다. 그들은 오끼도 많은 장교나 병사처럼 실성해버린것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중좌님! 중좌님!》

시중드는 젊은 참모장교가 다급히 찾으며 뛰여왔다. 오끼의 몰골이 장교답지 못해서 그런지 그자는 마당에 펄썩 주저앉아있는 오끼앞에 와서도 소리를 질렀다.

《사령부에서 전화로 중좌님을 찾습니다. 빨리 가서 전화를 받으십시오.》

《사령부? 무슨 사령부? 많고많은것이 사령부인데 어느 사령부에서 나를 찾는단말인가?》

젊은 참모장교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글쎄요. 가서 받아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지금 유격대가 국경대안을 답새겨대기 시작했다는가봅니다.》

《뭐야?》

오끼는 벌떡 일어섰다. 마침내 그가 제일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것이였다.

《똑똑히 말해! 들은 말을 다 하란말이다!》

《뭐 별로 들은 말은 없는데 며칠사이에 가재수와 12도구 등 여러곳에 일제히 유격대가 나타났답니다.》

오끼는 맹수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아, 이것이 대답이였구나! 그래 이것이 그들의 대답이다.)

오끼는 벼랑을 내려서서 전화기가 놓여있는 지휘부천막으로 달렸다. 몇번이나 엎어진 그의 손바닥에서는 피가 흐르고 째진 군복이 너펄거렸다.

《오끼중좌입니다. 오끼가 전화받습니다.》

그는 다짜고짜로 소리쳤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미야모도였다.

《미야모도, 일이 어떻게 되였다구?》

오끼는 뱀처럼 독을 쓰며 소리쳤다.

《길게 말할수 없습니다. 인민혁명군사령부는 그곳에 없으니 빨리 돌아오십시오.》

《그럼 지금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가 어데있는지 알아냈는가?》

미야모도가 셈평좋게 주어섬기였다.

《예, 짐작되는데가 있습니다. 인민혁명군이 장백, 림강, 무송, 몽강, 화전, 집안일대에서 일시에 춘기공세를 단행했으니까 아마 사령부는 그 지역안에 있을것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오끼는 그만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야전용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날새도 새여나갈수 없게 포위환을 쳤는데 유격대는 어디로 해서 포위를 뚫고나갔단말인가. 하늘로 날아올랐는가, 땅속을 헤쳤는가.)

오끼는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 이제는 모든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래 여직껏 실패한 그 모략을 또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그것이 성공한다는 담보가 있는가. 오끼는 그 모략을 다시 시작할 힘도 없으며 성공할 전망도 없다는것을 이제와서 절절히 느끼였다. 그러면 자기는 이제 여기 이 땅에서 할일이 없지 않는가.

오끼는 절망과 전률을 느끼였다. 그리고 온몸이 싸늘히 식어지는것을 의식하였다.

오끼는 인민혁명군의 맹렬한 군사활동으로 자주 길이 막히군 하여 장춘까지 가대는데 여러날이 걸리였다.

관동군사령부의 높다란 청사가 오늘따라 그를 위압하는것 같았다. 청사마당에는 군용승용차들이 모여있었다.

(흠, 군사재판이라도 벌릴 모양이군.)

이렇게 생각하며 철책밖의 나무기둥에 말을 매는데 정문에서 낯익은 참모장교가 야유조로 힐쭉거리며 달려왔다.

《중좌는 모임에 참가하기전에 참모장각하께 잠시 들리라는군요.》

오끼는 젊은 참모장교를 흘깃흘깃 바라볼뿐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젊은 장교도 그 이상 내막은 알수 없다는듯 씁쓸해서 돌아섰다.

그는 여러날 신을 신은채로 지내여 발에서 불쾌한 내가 나는데 어쩔가 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관동군참모장실로 갔다. 의자에 깊숙이 앉아있던 참모장 도죠는 번들이마우에 안경을 치그어올리고 찌프린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좀 앉게.》

참모장은 그를 작전탁앞으로 불러다앉히였다. 흥분된 오끼는 비청거리며 작전탁우에 펼쳐놓은 지도를 살펴보았다.

참모장은 안경을 바로놓으며 똑바로 오끼를 쳐다보았다.

《술을 좀 마셨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구 해서?》

오끼는 술을 입에 댄 일이 없으나 그저 묵묵히 중장의 마음속을 점치고있었다. 중장은 아량있게 불쾌한 마음을 걷잡으며 순탄하게 말했다.

《지금 우리 일이 말이 아니야. 재미없어. 뭐 밀영에 있던 유격대가 장백, 림강일대에서 춘기작전을 시작했다면서?》

오끼는 차렷하고 머리를 까딱했다.

《흠, 재미없어, 우리 장교들은 행여나 해서 멍청히 기다리고있었단말이야. 그들이 작전준비를 다 갖추고 약속한 4월에 우리 후방을 공격할 때까지 감나무밑에서 입을 벌리고 물렁물렁해진 감이 떨어져서 제 입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듯이말이야··· 이 소문이 만주땅은 물론 내지에까지 퍼져갔어! 흥, 그래 병사들의 주검으로 성을 쌓고 밀영을 점령하고보니 밀영에는 이미 쥐한마리도 없었다면서? 정말인가?》

오끼는 두번째로 차렷자세를 취하고 고개를 숙였다.

《날새도 날아 새여나갈수 없고 연기도 샐수 없이 포위환을 쳤다더니 유격대는 어디로 해서 포위환을 새여나갔는가? 포위환이 틈새없이 꼼꼼했다는것은 사실인가?》

오끼는 차렷자세를 취하였으나 약간 불만스럽다는듯 고개를 까딱할 대신 변명했다.

《그건 토벌사령관인 군정부 최고고문각하의 직분에 속하는 일로 알고있습니다.》

중장의 번대이마가 새빨개졌다.

《허풍쟁이들, 거짓말쟁이들, 집단부락이 모두 난공불락의 요새로 금성철벽이라고 하더니 모래성이란말이다. 숱한 군경이 두겹세겹 늘어서서 보초를 서고 순찰을 돌지만 한갖 딱따구리부적이고 나무거울에 불과하단말이야. 그까짓것들 천이 있으면 뭘하고 만이 있으면 뭘하는가? 이 지도를 좀 보란말이다.》

중장은 자기가 보던 작전지도를 와락 쥐여 활 내밀었다. 그바람에 확대경이 띠그르 굴러 방바닥에 떨렁 떨어졌다. 오끼는 자기발밑에서 수류탄이 터지는것 같아 등골이 서늘했다. 관동군참모장은 손가락끝으로 작전지도를 쭉 그었는데 그의 손가락끝에서 지도우에 빨간연필을 밀어댄 자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이미 오끼자신도 그려본것이였다.

《그 기세가 파죽지세고 용암분출이다. 의주대안으로부터 백두산까지가 벌써 불길에 휩싸였다. 가재수, 12도구, 6도구와 쌍산자에서 녹아나던 일을 가지고 활동사진을 만들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흥, 흥.》

관동군참모장은 아무래도 참고 견딜수 없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6도구에서는 인민혁명군이 쳐들어오겠다고 편지까지 써보내고 쳐들어왔는데도 막아내지 못했다. 왜들 이 모양인가?》

오끼는 몸이 돌같이 굳어졌으나 그 경황에도 창자를 게워내는듯 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관동군참모장은 얼굴에 독기를 품고 오끼를 쏘아보았다. 그러다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새된 소리를 질렀다.

《누가 이 모든 책임을 지겠는가? 무엇으로 이 책임을 질수 있는가?》

《모든것을 각오합니다.》

오끼는 이미 죽어버린것 같았다. 중장은 온몸이 막대기처럼 빳빳해지고 얼굴이 백랍처럼 된 오끼를 보자 측은한 감이 들었다. 그래도 오끼가 《반공》열이 제일 강하고 씨먹은 소리를 하군 했다.

지난 초가을에만 해도 모든 장령들이 《열하원정》때문에 제국이 망할것처럼 아우성을 쳤으나 오끼만은 결연히 인민혁명군에 대한 대결을 1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오끼가 지력이 못미처 실패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뒤를 받쳐준 자기의 체면까지 깎이울 형편은 아니였다. 실상 조선인민혁명군과의 대결에서 오끼만한 실패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관동군안에는 단 한사람도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도죠는 승벽이 센 이 젊은것을 《반공》모략에 더 써먹고싶은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군인은 적과의 싸움에서 지면 죽음을 각오해야지. 때문에 군인은 칼처럼 무자비하고 대포처럼 무지막지해야 하는거야. 그래 이제 우리에게 무슨 대책이 있을수 있는가?》

오끼는 입이 막히였다. 그러나 이런 때 똑똑한 대답을 못한다면 자기는 끝장날것이 뻔했다.

《각하, 모든것을 실속있게 차근차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치안실황을 살펴보면 제국의 운명이 우려되는 점이 없지도 않습니다.》

눈에 달이 오른 관동군참모장은 자기 혼자 있는줄 알았던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조선사람, 나라도 없고 군대도 없는 가난하고 무력한 민족, 강토도 크지 못하고 민족도 많지 못한 처지에 아직 굴복하지 않겠다는것은 자기들에게 전설화된 김일성장군이 있다는 강한 민족의식때문이야. 김일성장군은 그들에게 있어서 태양이고 하느님이고 기치란말이야. 문제의 요점은 김일성장군에 대한 그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꺾어버리는데 있어!》

중장은 몸을 떨었다. 악에 받친 도죠의 얼굴은 우는것 같았다. 순간 그의 전률은 그대로 오끼에게 전염되였다. 오끼는 어마어마한 관동군참모장의 진면모를 비로소 처음 본것이였다. 겁질린 오끼의 얼굴도 울상이 되였다. 중장은 모든 불쾌한 일들을 그에게 책임지워 아주 쫓아버리려던 생각을 눌러버리고 그에게 바람을 불어넣어주고 날개를 달아주기로 마음먹었다.

《결심이 어떤가?》

뜻밖에도 그의 말소리는 순했다.

《각하, 망극합니다. 제 소견에는 각하의 명석하신 판단에 기초하여 유격대와 주민들을 격리시키는데 힘을 기울이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라!>는 질서를 법화하여 리행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유격대에 대한 치표공작을 더욱 강화하되 일적섬멸주의원칙에서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를 노린 작전에 모든 무력을 동원시키는 완성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민혁명군사령부가 있는 지역이 곧 가장 큰 싸움터로 되여야 하며 우리의 가장 큰 무력을 신속하고도 기민하게 그 위치로 이동시킬수 있는 장거리추격대를 조직하여 상시적으로 전투태세를 갖추고있게 하는 한편 집단화된 모든 군소주민지대에는 유격대의 공격시 자체로 싸워 이겨낼수 있는 무력을 고정시켜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유격대가 험한 자연지리조건을 교모하게 리용하여 무시할수 없는 우월점들을 차지하는데 반해서 우리는 유격대로 하여금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추워도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막대한 효과를 낼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유격대는 절대로 돌아오는 겨울을 이겨내지 못할것이며 따라서 각하의 구상은 자연실현될것으로 내다보입니다.》

도죠는 자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선자리에서 꾸며낸 오끼의 놀랄만큼 체계정연한 의견을 들은둥만둥하고 딴소리를 하였다.

《자네가 끌고다니던 그 복상인지 뭔지 하는 놈팽이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오끼는 대뜸 움이 질리였다. 직접 자기가 벌려놓은 특수공작에 대하여 문책하기 시작한것이였다.

《그놈을 가지고서는 유격대사령부와 상대할수 없습니다. 유격대에서는 그놈을 개보다 못하게 취급합니다. 그놈은 자기가 이제는 우리에게 아주 쓸모가 없을듯 하니 제발 놓아달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유를 달라는것입니다. 그자가 이제는 우리에게 아무 쓸모없는 존재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반면에 이번 공작과정에 우리 비밀은 적지 않게 알게 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일을 결속짓는 기회에 아예 없애버렸으면 합니다.》

오끼는 말을 마치자 자기의 확고한 결심을 보여주듯 얄팍한 입술을 꽉 앙다물었다.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군.》

도죠는 싸늘한 눈길로 오끼의 창백한 얼굴을 쏘아보더니 외면하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자유를 달라? 빌어먹는 주제에 음식타발을 하는군. 조선인에게는 죽어없어지기전에는 자유가 있을수 없다. 죽는것도 자유로 할수 없다. 그것을 여태 골수에 사무치게 인식시키지 못한것은 전적으로 자네의 직무태만이라고 볼수 있다.》

오끼는 두터운 도수경너머로 쏘아보는 잠자리눈같이 툭 불거진 도죠의 눈빛이 번쩍하고 자기 정수리를 겨누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도죠는 《면도칼》이라는 별명을 직접적으로 련상시키는 그 매섭고 랭랭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자를 죽여서는 안된다. 김일성장군과의 대결이 끝나지 않는 이상 그와 관련된 모든 인물은 무조건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김일성장군의 조모는 륭숭하게 대접해서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라. 그자는 당장 쓸데가 없으면 어디 굴간같은데라도 처박아두라. 감옥에 다시 넣지는 말고 거름통을 메우든 수레를 메우든 까지껏 부려먹다가 필요할 때 어느때든지 끌어낼수 있는곳에 두어야 한다. 살려두되 한쪼박의 자유도 주어서는 안된다. 정 헐어서 누데기로도 쓸모없게 될 때 없애버려도 때가 늦지는 않아.》

《알았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오끼는 도죠의 잔인한 말이 마치 자기 운명에 내려진 선고같이 들려서 다시한번 몸서리를 치며 필요이상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박차석에 대한 문제를 일단락 지은 도죠는 오끼가 다시 눈치를 살피기전에 그를 부른 기본용건을 말하였다.

《군도 예견했겠지만 군이 벌려놓은 사업은 오늘을 기하여 중지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군은 둬서너해 열심히 공부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제어할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연구하는것이 좋겠다. 김일성장군과 대결하려면 우리는 아직 도를 더 닦아야 해. 철직되였다고 락심하지 말고···》

오끼는 칼을 맞은듯 애처롭게 소리쳤다.

《각하! 이 마당에 제 한사람의 운명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점점 강성해지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앞에 두고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는 제국의 전도는 저으기 우려됩니다.》

도죠는 독기어린 눈으로 오끼를 쏘아보았다. 오끼는 입을 다물었다.

《당돌하군. 무슨 말이든 자기 직분에 상응한 말을 하는것이 례절이야. 지난 겨울의 자네들의 실패는 60고령의 현역대장인 우리 사령관의 모가지를 위태하게 해놓았다. 나는 자네를 이 파국수습을 위한 복잡한 인사문제에 개입시키고싶지 않아 한걸음 먼저 손을 쓰자는거야. 내 의도를 알겠거든 구구한 소리를 늘어놓지 말고 다시 입을 벌리게 될 때까지 분초를 다투어가며 실력을 키우라.》

오끼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감사의 뜻을 표시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그는 자기도 관동군도 제국도 다 가련한 처지에 빠졌다는것을 가슴아프게 통감했다.

인민혁명군과 대결하겠다고 나섰던자들은 모두 패배했다. 력사상 전무후무한 《혜산사건》을 조작했던 우에다, 도죠, 미나미들도 끝내는 인민혁명군의 반석같은 지반을 헐어내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더욱 드세찬 반격을 받았을뿐이였다.

우둔한 《토벌》장군 사사끼는 더 말할것도 없고 인민혁명군의 맹렬한 군사활동을 제거시키기 위하여서는 특수작전을 벌리여 그의 사령부를 제거, 소멸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도 결국은 제가 깎은 꼬챙이로 제눈을 찌른 결과밖에 가져온것이 없다. 물론 그 주장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 망상에 지나지 않을뿐 자신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라는것을 오끼는 지금 통절히 느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