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3편 9


 

제 3 편

9

 

김주현은 소대들에서 선발된 세명의 대원들과 함께 식량을 운반하려 아침일찍 길을 떠났다.

그들은 경각성을 바짝 높이고 숲을 헤쳐나갔다. 걸음을 한발자국 옮기는 사이에도 사방을 살펴보면서 호상 눈길을 건늬였다. 이따금 걷기 쉬운 오솔길이나 골안같은것이 나타나도 될수록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하여 숲속을 벗어나지 않고 행군하였다. 어떤 동무는 이런 숲속에 웬 사람이 있겠다고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뜻의 말도 하였으나 김주현은 엄하게 타일러서 눌러버렸다.

아니나다를가, 어느 낮은 산발을 에돌던 김주현은 주춤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바람결을 타고 오는 이상한 냄새와 가느다란 소음을 가려냈던것이다. 그것은 보통사람의 후각이나 청각에는 결코 걸려들지 않을 극히 미미하고 아리숭한것이였으나 오랜 산속생활경험에다 경각성을 바싹 높이고있는 김주현의 모든 감각기관은 마치 고도로 정밀하고 성능높은 수신장치 같아서 그 어떤 징후도 그것을 빠져나갈수는 없었다.

뒤를 따르던 대원들이 그의 등뒤에 모여서서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김주현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고 그들에게 긴장한 눈짓을 하였다.

그때부터 그들은 바스락소리도 낼세라 어깨를 한층 낮추고 조심조심 걸었다. 마침내 느슨한 산발밑에 곱새막이 나타났다. 그 곱새막은 병풍처럼 둘러선 으슥한 바위에 의지하여 숨어있었다. 대원들은 놀란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엷은 해살이 떨어지는 곱새막앞에 시꺼먼 동저고리바람에 바지를 입고 역시 시꺼먼 모자를 쓴 사람이 쭈그리고 앉아서 반짝거리는 쇠줄을 드다루고있었다. 그의 앞에서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그옆에는 도끼, 칼 같은 연장과 함께 시꺼먼 덧저고리가 줄망태우에 놓여있었다.

수림을 헤치고 비쳐드는 엷은 해빛아래 그 사람의 전모는 선명히 드러났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야 나이도 직업도 짐작할수 없었고 심지어 그가 조선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조차 가늠할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일행은 더 긴장되였다. 유격대가 그렇게도 엄중경계하는 숙영지주변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나타났다는것자체가 무심히 스쳐보낼 일이 아니였다.

첫눈에 그가 사냥군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적의 밀정들 역시 흔히 사냥을 하러 다닌다는 명목으로 이런 깊은 산속에 숨어서 유격대의 활동을 내탐하는것이다.

김주현이도 방금까지 바로 사냥군으로 가장한 밀정들이 있을수 있기때문에 깊은 산속을 지나면서도 살얼음판을 건느듯 그렇게 조심했던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사령부의 안전과 장기군정학습의 성과적보장을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스쳐지날수 없었다. 우선 그를 정확히 료해해보아야 한다.

문득 보천보전투직후 림강쪽으로 행군해갈 때 장군님께서 몽강지방에도 조국광복회 지하조직을 확대할데 대한 구상을 말씀하시면서 전에 참의장 서리를 하던 사람이 몽강에 숨어 살고있다는데 한번 알아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곱새막앞에 나타난 사람이 십중팔구는 몽강사람일수 있기때문에 적이 아니라는것이 확실하면 그 사람을 찾는 실머리를 잡을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세로 보면 유격대밀영가까이에 나타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가정할 근거는 너무나 적었다.

한참동안이나 곱새막을 살피며 생각하던 김주현은 대원들에게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잠복하라고 눈짓한 다음 어깨에 메고있던 총을 벗어주고 숲속을 벗어났다.

그는 상대방이 놀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먼발치에서부터 먼저 말을 건늬였다.

《사냥이 잘됩니까?》

김주현은 가까이 다가가며 슬쩍 상대방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인기척을 느낀 그 사람은 한참만에야 머리를 들었다. 얼굴에 깊은 주름살이 얼기설기 얽히고 코수염을 기른 늙은이였다. 첫순간에는 무척 놀라는 기색이더니 다음 순간엔 이쪽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말은 태연스럽게 하였다.

《어서 오시유. 여기 좋은 모닥불이 있수다.》

김주현이도 자연스럽게 응수하며 아닌보살하고 그의 거동을 살피였다.

《참 반갑습니다. 그럼 불을 좀 쪼입시다. 사냥을 떠났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꼴이 되였습니다.》

김주현은 허리를 구붓한채 두손바닥을 불에 대고 벅벅 비비였다.

《그래요? 거 안됐군. 허지만 고생이 없이야 산짐승의 가죽을 바랄수 없지요. 생각이 없는가요?》

늙은이는 저만치 떨어진곳에 놓여있는 시뻘건 고기를 눈짓하며 물었다.

김주현은 이 늙은이가 간단치 않은 사람이라는것을 인차 눈치챘다. 사냥군은 김주현이 말을 건늴적마다 태연자약하게 응수하면서도 재빠른 눈길로 주현의 표정과 몸매를 살펴보았다. 사람들과 상종하는품이 저만큼 능란하자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김주현은 벌써 이상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는것을 느끼였다.

《년로하신분을 도와야 할 처지에 먹을것까지 축내면 되겠습니까?》

김주현은 로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말하였다.

늙은이의 주름살 덮인 눈가장자리에는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소금이 동나면 동났지 먹을것이 동나겠소? 사냥군에게는 산속이 고방인걸요. 기다리는 사위는 안오고 참빗장사가 뛰여든다고 걸리라는 족제비는 안걸리고 새끼 메돛이 걸렸수다. 돈 나갈 가죽은 못얻고 살덩이만 벌어놨으니 실컷 자셔도 되겠수다. 좀 앉아계시우. 내 얼핏 고기를 저며오지요.》

사냥군은 땅우에 놓여있는 한뽐이나 될 칼을 들고 일어나 곱새막쪽으로 갔다.

(저 늙은이는 어떤 사람이겠는가?)

김주현은 잠착히 앉아서 불을 쪼이며 생각을 굴리였다.

잠시후 사냥군로인은 칼끝에 시뻘건 고기덩이를 꿰들고 돌아왔다. 그는 싸리꼬챙이에 토막낸 고기를 한덩이씩 꿰면서 말했다.

《자 불에 그슬려서 드시우. 지내 익으면 질기고 냄새가 나지요. 슬쩍 피비린내나 가시면 되우다.》

사냥군로인은 품속에서 쌈지만한 쥐자루를 꺼내여 담배말지에 하얀 가루를 갈라냈다. 소금인 모양이였다.

《로인장, 그래 내가 사냥군같아보이지 않습니까?》

김주현은 한층 깊이 료해할 타산에서 슬그머니 말을 붙여보았다.

《허허, 사냥은 손바닥으로 하는것이 아니지요. 사냥군이 아닌 사람이라면 혹 그댁을 사냥군으로 믿을수도 있겠지만···》

로인은 시무룩해서 중얼거리였다.

《그럼 내가 어떤 사람 같습니까?》

로인은 한참후에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사냥군 비슷하긴 하우다.》

로인도 김주현도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인차 어색한 침묵이 깃들었다.

로인은 잠시후 정색해서 물었다.

《손님은 정말 길을 잘못든게 아니요? 이런 외진데 볼일이 있을상싶지 않은데요. 당신은 왜놈과 싸우는 사람이지요?》

사냥군은 오히려 선수를 썼다.

(결국 내가 유격대라는것을 알아보았구나.)

김주현은 다시 사냥군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냥군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빛이 어렸는데 마음이 퍽 안정된 기색이였다. 특무라면 이런 표정을 짓지는 못할것이다. 김주현은 사냥군의 물음에는 적당히 웃는것으로 대답하고 새 화제를 꺼내였다.

《여기서 몽강이 몇리나 됩니까? 몽강에도 왜놈군대가 많겠지요?》

우등불에서는 탁탁 광솔이 튀는 소리와 함께 향긋한 냄새와 연한 연기가 피여올랐다. 싸리꼬챙이끝에 꿴 고기덩이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그슬러졌다.

《아까운 고기를 다 태우겠수다. 어서 한점 맛보시우. 몽강은 여기서 남쪽으로 100리길폭인데 그곳까지 가는데는 작은 마을도 서넛 있지요. 몽강도 사람사는곳인데 왜놈군대가 왜 없겠소? 철길은 없지만 왜놈들이 까맣게 밀려들어와 덮여있지요.》

사냥군은 마음놓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올해 자기 나이는 58살이고 10여년전부터 몽강에 이사와 산다고 했다. 그전에는 두만강연안에서 7∼8년 살았다고 하면서 이름은 렴형로이며 늘그막에 할일은 없고 아이들을 먹여살리긴 해야 하겠기에 겨울마다 덫과 옹노를 놓아 이 지방에 많은 족제비를 사냥한다는것이였다. 그는 족제비가죽시세에도 밝았다. 이즈막에는 산짐승들의 가죽값이 올라가서 올겨울은 돈벌이가 괜찮을것 같다는 말도 하였다. 대체로 그의 말은 진실하게 느껴졌다.

김주현은 그가 몽강에 산다는 말을 듣자 입맛이 동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감추고 심상한 어조로 물었다.

《이 산중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듭니까?》

사냥군로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산중에 왜놈이 없으니 유격대도 밀려들지 않고 인가가 지내 머니 토비도 끓이지 않지요. 겨울마다 사냥군들이 모여들지만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저 산세를 좀 보시우. 죽으려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감히 깊이 들어설곳이요? 오죽하면 왜놈군대가 없는 땅이겠소? 나도 겨울마다 오지만 매번 이 산속에 발길을 들여놓을 때는 살아서 돌아갈 장담은 못하지요. 》

사냥군은 이 산골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눈은 깊이 쌓이고 바람질이 험하여 메돼지나 곰도 눈속에서 얼어죽기가 일쑤라는것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산이 깊은데 비하면 큰 짐승이 번성하지 못한다고도 하였다.

김주현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아직 경력과 사상동향은 알수 없지만 사람은 진실한것 같고 우선 적의 밀정이나 특무같지는 않았다. 이 늙은이를 사업에 인입시킬수 있지 않을가. 지하조직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나선 환경에서 좋은 사람을 하나 얻는다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이 사냥군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것인가 하는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김주현이가 어떤 예감으로 느끼는것처럼 이 늙은이가 설사 특무나 밀정은 아니라고 해도 몽강에 돌아가면 적들이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이 늙은이의 입에서 여기에 인민혁명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려고 할것이니 대책없이 그대로 보낼수도 없었다. 지금 형편에서는 족제비사냥군을 이 자리에서 내보내여도 안심치 않고 더 들여놓을수도 없었다.

김주현은 나무꼬챙이로 모닥불을 일쿠며 한걸음 더 깊은데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듣자니 왜놈들이 사냥군들을 모두 등록하고 사냥하러 떠날 때는 승인을 받도록 통제를 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늙은이는 허허 웃고나서 뜨직뜨직 말했다.

《그렇게 하지요. 어디에 가서 며칠이나 있겠는가 하는것을 장부책에다 적어놓고 사냥도구들을 죄다 검사하지요. 그리고 사냥갔다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곧 고발하라고 하지요. 그것을 고발하면 겨우내 사냥해서 번 돈보다 많은 상금을 준다나요. 사냥을 끝내고 돌아가면 그날로 돌아왔다고 신고해야 합니다. 올해 겨울에는 별의별 법이 다 생겨서 성가스러워 죽겠수다.》

로인의 말을 듣고보니 문제는 더욱 엄중했다. 더 물어볼것도 없이 이 로인도 불섬주변에 사냥온다는것을 경찰에 등록했을것이며 돌아가면 보고할것이다. 만약 이 늙은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적들은 불섬주변에서 무슨 변고가 생겼다고 추정하게 될것이다.

불섬주변에서는 이미 적잖은 특무들이 체포되여 제 소굴로 돌아가지 못했다. 놈들이 불섬주변에 기수없이 들이민 특무들이 하나도 되돌아오지 못한 사실에 대하여 호랑이나 곰이 삼켜버린탓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족제비사냥군을 처리하는 문제는 더욱더 까다로와졌다. 김주현은 족제비사냥군이 어느 정도 솔직하고 대바르다는것을 느끼고 그의 말을 더 듣기로 하였다.

《여기 몽강땅은 그래도 딴데 비하면 잠잠한축입니다. 현성에서는 근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있습니까?》

《잠잠하다니요, 모르는 말씀이요.》

족제비사냥군은 김주현이가 세상일에 너무나 깜깜이라는듯 코웃음을 쳤다.

그는 한숨을 길게 쉬고나서 김주현에게 다가앉으며 재빨리 말했다.

김일성장군님의 조모님을 왜놈들이 차에 태우고 장백, 무송, 통화, 몽강 지경으로 다니며 장군님더러 산에서 내려오라고 쓴 방문을 휘뚜루 뿌리고있답니다. 이 한가지 사실만 놓고봐도 몽강땅이 잠잠한 세상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

김주현은 입가에 어설프게 그려보이던 웃음을 말끔히 날려보내며 눈을 흡떴다. 족제비사냥군이 어떤 사람인가 해서 흥얼흥얼하며 말을 시켜본것인데 나중에는 세상 괴이한 소리까지 튀여나온다. 족제비사냥군의 말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한 김주현은 그때까지 받았던 좋은 인상까지 흐려버리였다.

김일성장군님의 조모님이라니··· 로인장이 정신이 온전하오.》

김주현의 격한 말에 사냥군은 기가 찬듯이 입을 다시며 말했다.

《듣는 사람마다 처음에는 다 그러지요. 그러니 답답한 일 아니웨까?》

《아니 그럼 로인장이 보기라도 하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시오?》

김주현은 처음으로 족제비사냥군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 령감이 허름한 옷을 뒤집어쓰고 이따위 나쁜 소문이나 퍼뜨리려고 산속을 헤매다니는 특무놈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떠올랐다.

사냥군은 김주현의 얼굴에 나타난 의혹과 격분의 빛을 보고도 별로 움츠러들지 않고 주근주근히 말했다.

《제눈으로 보지 않고는 아무도 믿을수 없는 일인것은 사실이지요. 바른대로 말하면 나도 직접 본건 아니우다만 몽강사람들가운데 할머님을 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우다.》

그의 말은 진실하고 절절하게 울려왔다.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사실로 선뜻 인정하게 되지도 않았다. 다만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있어서 가장 중대하고도 불길한 비상사건이 생긴것만은 엄연한 사실이였다.

김주현은 가슴에서 화산이 터지는것 같았다. 그는 무심결에 꼬챙이의 고기를 불속에 구겨박아버렸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다니···)

그는 쌀짐을 지러 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지는것을 느꼈다.

고기타는 냄새가 역한 냄새를 풍기였다. 사냥군로인은 안절부절 못하는 김주현을 못보는척 하며 긴 부지깽이로 새까맣게 숯이 된 고기점을 꺼내여 멀리 팽개쳐버렸다.

이윽고 김주현은 낯선 사냥군앞에서 지나치게 흥분했다는것을 깨닫고 낯빛을 고쳤다.

《로인장, 너무나 뜻밖의 소문을 들어서 내가 좀 과하게 행동한것 같수다. 량해하시우.》

《뭐 길손만 그런것도 아니니 량해고 말고 할것도 없수다.》

사냥군은 김주현의 눙치는 말에 심상하게 대하였다.

김주현은 그 길로 잠복하고있는 젊은 대원들에게 돌아가 족제비사냥군을 밀영에 호송하고 돌아오도록 두 대원에게 임무를 주었다.

사냥군을 오중흡이나 오백룡에게 맡기되 자기가 돌아가기전에는 사냥군이 밀영내막을 알지 못하도록 련락소초막에 있게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사령부로 접근시키지 말것이며 그가 한 모든 말이 밀영에 퍼지지 않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김주현이 대원들과 의논을 하고 다시 곱새막으로 돌아오니 사냥군은 변변치도 못한 사냥도구들을 노끈에 동여매고있었다. 그는 벌써 자기가 곱새막을 떠나야 한다는것을 눈치챈것이였다.

《달리 생각지 마시오. 잠간 알아볼것이 있습니다.》

사냥군은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달리 생각할것 있습니까? 산속을 헤매며 사는 사람에게는 종종 이런 일이 있지요. 사냥도구나 한데 모아 곱새막안에 넣고 가도록 시간을 좀 주시우. 다른 사람이라도 쓰라구···》

족제비사냥군은 이젠 사냥도구조차 필요치 않게 된줄 알고 혀아래소리로 말했다.

《사냥도구를 왜 두고가겠습니까? 건사했다가 또 사냥을 해야지요. 》

김주현은 사냥도구를 꽁꽁 묶어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사냥군은 처량한 미소를 띠우고 사냥도구를 받아들었다. 하라는대로 하겠다는 태도였다.

두 대원이 그를 호송해갔다.

 

×

 

사나흘동안 많은 눈이 내리였지만 김주현일행은 식량을 순조롭게 운반해가지고 밀영에 돌아왔다.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와 오중흡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오중흡을 보는 순간 김주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무작정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중흡은 김주현의 전에 없는 행동이 놀라와 눈이 둥그래졌다.

《중대장동무는 그 이야기를 들었겠지? 족제비사냥군한테서···》

오중흡은 그의 물음은 못들은척 하고 짐을 받아주려고 했다.

《짐을 벗어주시오. 힘들터인데 이야기는 병실에 가서 합시다.》

김주현은 오중흡의 뜨뜨미지근한 말에 역정이 나서 따지고들었다.

《들었소, 못들었소?》

오중흡은 여전히 똑똑한 대답을 피하고 흥심없이 말했다.

《주현동무 부탁대로 족제비사냥군을 련락소초막에 두고 일체 접촉을 시키지 않았지요.》

그의 말을 가만히 새겨보면 자기도 사냥군의 말을 듣기는 들었다는 소리 같은데 그 어조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김주현은 자기짐을 받들고 벼랑길로 떠밀어주는 오중흡이를 날카롭게 돌아다보며 떡 뻗치고 섰다.

《그게 사실인것 같소? 사령관동지께 보고를 드리였소?》

오중흡은 이번에도 아예 못들은척 하고 사람채 짐을 안아옮기듯 김주현을 더욱 힘차게 떠밀기만 했다. 김주현은 울컥해서 돌아섰다. 먼길에 무거운 쌀짐을 지고 오느라고 어지간히 지친 그는 갑작스럽게 돌아서다가 몸의 균형을 잃고 눈깔린 비탈길에서 비척했다. 오중흡이 짐을 떠받들어주지 않았더라면 공중제비로 넘어질번하였다.

《왜 말이 없소? 내 말이 말같지 않아서 그러오?》

오중흡은 아무 대척없이 김주현의 어깨에서 멜방을 벗기고 쌀짐을 자기 등에 옮겨메였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사령관동지께서 이미 밀영으로 들어올 때 보고를 받으셨지요.》

오중흡은 침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다음 반응은 기다리지도 않고 쌀짐을 지고 성큼성큼 벼랑길을 올리걸었다. 김주현은 빈몸으로도 그를 따라잡을수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김주현은 한동안 말뜻을 새길수 없어서 너무나 태연한것 같은 오중흡의 뒤모습을 멍청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는 보다 강력한 충격이 화산처럼 터져올랐다. 그는 달려가 오중흡의 어깨를 잡아채며 소리쳤다.

《벌써부터 알고있었다? 그렇다면 왜 여태 가만있었소? 왜 즉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조모님을 지금까지 고생하시게 하는가 말이요?》

오중흡은 나무가지를 뚝뚝 꺾어 눈우에 깔고 그우에 쌀짐을 벗어놓았다. 김주현은 더는 몸을 가눌수 없어 쌀짐우에 풍덩 주저앉았다. 오중흡은 덤덤히 일어나서 한동안이나 주위를 맴돌다가 말을 시작했다.

《다 알고있으면서도 아무 손도 쓰지 못했지요. 경위중대장동무랑 8련대정치위원동무랑 구체적인 작전계획까지 다 짜놓고도 결국 아무 손도 못쓰고 나앉아버렸지요.》

약간 갈린듯 한 잔잔한 목소리로 허두를 떼던 오중흡은 별안간 두손으로 털모자채 머리를 움켜쥐더니 무엇인가를 삼키듯이 말을 뚝 그쳐버렸다.

《그건 뭐요? 왜 나앉았다는거요. 작전계획을 짜놓았다는것은 무슨 변명이요?》

쌀짐우에 웅크리고 앉아 이글이글 불타는 두눈으로 오중흡을 지켜보고있던 김주현은 마치 맹수의 울부짖음 같은 목소리로 뒤를 다그쳤다.

그래도 오중흡은 귀라도 먹은듯이 골만 싸쥐고있더니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야 먼곳에서 울리는 약한 메아리처럼 중얼거렸다.

《사령관동지께서 못하게 지시하시였소.》

《뭐요?》

하고 김주현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성급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그럼 조모님을 구출하기 위한 전투를 사령관동지께서 조직해주시기를 바랐단말이요? 그래 당신들이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요. 혁명가의 량심이 있소? 사령관동지께서 못하게 하셨다고? 허참, 당신들의 량심이 그런줄을 나는 몰랐구만. 그래도 오중흡이 이 소식을 들으면 지내 펄펄 뛸가봐 오히려 걱정했더니···》

《걷어치우시오!》

오중흡이 머리를 싸쥐고있던 모자를 움켜쥐고 눈구뎅이에 집어팽개치며 소리쳤다.

《우리 장군님의 심정을 알기나 하고 그런 소리요? 우리가 당장 전투를 하러 떠나겠다고 제기했을 때 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말리셨는지 알기나 하오. 우리한테 사정사정하다싶이하시였소. 그리고··· 그리고···》

오중흡은 격해서 말을 더듬다가 너무 억이 막혀 눈구뎅이에 풀썩 무너져앉으며 주먹으로 눈무지를 내리쳤다.

고개를 떨구고 한참이나 숨가쁘게 씩씩거리던 오중흡은 이윽고 아주 쉬여버린듯 끅끅 갈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말씀하셨소. 조선의 불쌍한 어머니들을 다 구원하기전에는 나는 내 할머니 한분을 구원하기 위한 전투를 할수 없다, 나는 조선을 구원하자고 혁명하러 나섰지 내 가족을 구원하려고 나선 사람이 아니다. 지금 놈들에게 짓밟히고 고생하는 사람이 우리 할머니 한분만인가, 그러면서 마동희동무의 어머니이야기도 하시고 윤화동무 이야기도 하셨소.》

오중흡이 마치 억울한 사연이라도 하소연하듯 끅끅 갈리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말하는동안 분노가 이글거리던 김주현의 눈엔 차츰 어두운 고뇌의 그늘이 비껴들기 시작했다.

오중흡은 그런것저런것 다 못느끼고 마치 모든것에 해탈해버린듯 한 자세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정 말을 안들으니 장군님께서는 노하셨소. 그리고는 군사명령으로 마당거우에로 행군할것을 요구하시였소. 지금 혁명은 우리 인민혁명군전사들에게 한시바삐 우리 혁명의 근본사상과 원칙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군사기술적으로 단련시킬것을 요구하고있다, 그래서 장기군정학습을 진행할것을 결심했는데 사령부의 의도를 모르고 제 생각대로 하려는것은 혁명에 충실한 태도가 아니며 혁명가가 아니다고 엄하게 비판하셨소.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를 달래시고 비판하시고 그다음 명령으로 마당거우로 행군시키시면서 우리에게 위안삼아 말씀해주신것은 우리 할머니도 그렇게 록록한 분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두 아들과 며느리가 목숨을 바친 혁명의 길에 오늘 손자들까지 서슴없이 다 내보내셨겠는가고 하시였소.》

오중흡은 그 말씀을 들을 때의 아픔이 또다시 우비고드는듯 가슴을 웅크리고 온몸을 비틀었다.

김주현은 제 가슴에도 바로 그 고통이 예리한 비수처럼 박혀드는것을 느끼고 무너지듯이 쌀짐우에 주저앉았다.

오중흡은 잠시후 숨을 톺더니 마당거우로 들어올 때 권영벽의 계모신을 받던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전말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김주현의 귀에는 이미 아무런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장군님께서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고 하신 혁명적구호가 생가슴을 어이는것 같은 쓰라린 체감속에서 그 어떤 피로 뭉쳐진 절규가 되여 귀전을 쿵쿵 울리는것이였다.

김주현은 새로운 혁명의 진리를 비로소 깨닫는것 같았다. 자신이 10여년 혁명대오에서 싸우면서도 아직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체험이였다. 우리 겨레들의 심정으로 말하면 장군님의 조모님을 구출해내는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것 같지만 장군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가장 가슴아픔을 겪으시면서도 혁명의 요구에만 충실할것을 모든 전사들에게 엄격하게 요구하시고 마당거우에로 행군할것을 단호하게 명령하시였다.

김주현이도 이미 혁명이라는것이 준엄하다는것을 알고있었고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조선인민혁명군이 마당거우밀영을 앞두고 체험한 그 준엄성과 그것을 억세게 헤치며 나가는 위대한 인간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강철의 의지를 생각하니 자기라는 인간의 혁명에 대한 인식과 각오정도가 얼마나 엽쓸한것인가 하는것을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는 왜놈들이 대여섯근의 금덩이를 강탈해가는것을 보고도 분수없이 흥분하여 불질을 함으로써 사령부에서 준 전략적의의를 띤 임무마저 수행할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자기가 그 어떤 신념과 의리에 대해 요란한 말을 입에 올린다는것자체가 주제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김주현은 이를 사려물고 짐을 지고 일어났다. 짐은 갑절이나 무거워져 가슴이 옥죄여들고 아래도리가 후들후들 떨리여 발걸음이 휘친거리였다.

그가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은것을 본 오중흡은

《사령관동지께서 기다리시니 어서 사령부로 가십시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척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게 좋을것입니다.》라고 말하고나서 순찰로정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갔다.

김주현은 아무런 대척도 않고 묵묵히 오솔길을 따라 중대로 향했다.

발은 깊이 쌓인 숫눈판에 푹푹 빠지였다.

김주현은 중대병실에 쌀짐을 벗어놓고 그달음으로 사령부를 향해 떠났다. 그는 마치도 장군님께서 심히 앓으시는것을 여태 모르고있다가 이제야 알게 되기라도 한것같이 초조하고 죄스러운 감정을 품고 오중흡이가 탐탁하게 만들어놓은 층층다리를 올리뛰였다.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밝은 언덕에서는 젊은이들의 랑랑한 글소리가 흘러나오고있었다. 문득 동네의 한끝에 있던 글방에서 저렇게 울려오는 글소리를 듣고 꼴짐을 진채 우두커니 서서 귀를 강구던 소년시절이 생각나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같은 글을 읽어내려가는 구성진 소리는 축축하고도 따뜻한 봄바람처럼 앙상해 진 김주현의 몸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우리들을 공부시키시려고··· 우리모두를 똑똑한 조국의 아들로 키워주시려고··· 사령관동지께서···)

그는 저도 모르게 몸매를 가다듬고 조용히 귀틀집으로 다가갔다. 활짝 열어제친 창문에서는 희망에 넘친 글소리가 울려나오고 밝은 빛이 들이비친 방안 자그마한 흑판앞에는 장군님께서 청강자들을 바라보시며 미소를 짓고 서계시였다.

김주현은 경건한 자세로 서서 난생처음 장군님을 뵈옵듯이 그이의 모습을 우러렀다. 그렇게도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가슴속 깊숙이 묻어두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목매지》나 같은 젊은 전사들에게 글을 가르치시는 그이의 모습이 한없이 숭고하였다.

(세상에 우리 장군님 같은 위대한 인간, 진정한 혁명가는 없다!)

김주현의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두줄로 흘러내리였다.

그는 장군님의 강의에 사소한 지장이라도 끼칠세라 기척없이 서서 휴식시간을 기다리고있었다. 창문가에 앉아있는 희창이를 몇번 띠여보았으나 희창이는 학습에 열중한 나머지 창문밖에 눈길도 돌리지 않고 글을 읽고있었다.

학습이 끝나자마자 장군님께서 제일먼저 마당으로 나오시였다. 김주현이 황황히 눈물자국을 지우며 몇걸음 앞으로 나가자 그이께서는 곧 김주현을 알아보고 말씀하시였다.

《수고 많았소. 일이 잘되였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마당끝의 외진곳으로 걸어오시여 김주현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춥지 않소? 방에 들어갑시다. 》

《밖이 더 좋습니다. 》

김주현은 저으기 마음이 진정되였으나 자기 역시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이 그이께서 물으시는대로 태연히 대답하게 되는것이 스스로도 놀랍게 생각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김주현에게 이번에 나갔던길에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긴것이 없는가고 물어보실 때 김주현은 조모님소식을 꺼내지 않기로 이미 마음먹은터이였으나 그 이야기를 빼고보니 다른것은 별로 보고드릴만 한 내용이 없는것 같아 난감한것을 느꼈다.

그래서 전에없이 허둥대고 더듬거리면서 적들의 책동이 더 악랄해지고 그 수법이 교활해진데 대해 사냥군들을 등록하고 단속하는 실례 같은것을 들어 보고드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보고를 들은 다음 잠시 생각하시고나서 궁금하신듯 먼저 물으시였다.

《그 족제비사냥군이 어떤 사람이요? 동무의 부탁도 있다고 하기에 아직 만나지는 않았소.》

김주현은 자기의 료해정형과 인상에 대해 보고드리였다.

《로상에서 갑자기 만나 똑똑히 료해할 길도 없고 옳게 처리할 방법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니 나쁜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무한정 길에서 지체할수는 없고 해서 일단 부대에 들여보냈습니다. 혹시 제가 들여보낸 사람이라고 해서 다 료해파악된 사람으로 여길것 같아 몇가지 부탁의 말을 했던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만족한듯 미소를 지으시였다.

《옳게 처리했소. 나는 족제비사냥군이 몽강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좀 만나보고싶었지만 참고 주현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소.》

그러면서 사령관동지께서는 깊은 추억에 잠기시여 말씀을 이으시였다.

《소문을 들으니 전날 참의부에서 참의장 서리로 있던 사람이 어째서인지 선우제라고 이름을 고치고 젊은 예수교신자를 후처로 맞아 숨어서 살고있다는데 참 모를 일이요. 어째서 그 지경이 되였는지. 내 생각에는 기왕에 영향력이 있던 사람인것만큼 마음만 변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잘 도와주어 조국광복투쟁에 다시 나서게 할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한몫 할수도 있을것 같단말이요. 오백룡동무가 알아본데 의하면 그 족제비사냥군은 구한국시대의 군인인데 독립군에 서너해 따라다닌 일도 있고 선우제가 몽강에 사는것도 알고있다오. 족제비사냥군이 좋은 사람이라면 선우제와 련계를 짓도록 다리를 놓아줄수 있지 않겠소? 족제비사냥군과 같이 지내면서 잘 료해해보시오.》

《알았습니다. 곧 료해해보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하자는 기색으로 먼산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경각성을 높여야 하겠소. 우리 인민혁명군부대들이 종적을 감추자 적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것을 알아내려고 미쳐 날뛰고있소. 장백에서 통신이 두절된지도 오래 되였소. 권영벽동무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는지 잠이 오지 않소.》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며 낮게 얼어붙은 하늘과 눈이 깊이 쌓인 숲속을 애타는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말씀에는 목전에 놓인 족제비사냥군문제만이 아니라 이해겨울 혁명앞에 닥칠 심상치 않은 곡절을 예감하시는듯 한 기색이 완연히 어리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