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3편 8


 

제 3 편

8

 

낮부터 강추위가 시작되더니 해질무렵에는 하늬바람이 터지였다. 맵짜고 세찬 바람은 사납게 숲속을 휘몰아치며 웅웅 기승을 부렸다. 높이 솟은 이깔나무들이 풀대처럼 뒤흔들리고 여기저기서 나무가지들이 부러져내렸다.

찬바람과 추위는 사령부방안에도 슴새여들어 책상모서리에 세워놓은 초불이 가늘게 떨고있었다.

오백룡은 기척없이 앉아 책을 읽고계시는 그이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바람벽에 걸려있는 외투를 안아다 어깨에 걸쳐드리였다.

뙤창을 마주하고 앉은 장군님께서는 지금 최근에 발간된 신문과 잡지들을 읽고계시였다.

신문들에는 큰 활자로 《상해함락》이니 《이딸리아가 독일과 일본의 방공협정에 가담》했다느니 하는 보도들이 실려있었다.

그이께서는 보던 신문을 한쪽에 밀어놓고나서 경위중대장 오백룡에게 어서 돌아가 쉬라고 말씀하시였다.

처마옆의 바람받이에 드리워진 나무초리 한대가 류달리 앵앵거리며 빨래줄 우는 소리를 내고있었다. 그 애처로운 소리는 장군님의 아픈곳을 사납게 허비며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와 그 가운데서 고생하실 할머님의 생각을 몰아왔다.

장군님께서는 더는 한 자리에 앉아계실수 없어 밖으로 나가시였다.

오백룡은 황황히 털모자를 벗겨들고 따라나섰다.

장군님께서는 마당에 서서 숲을 바라보시였다. 강추위에 달빛마저 얼어붙은듯 싸늘한 빛이 흐릿하게 숲속에 스며들었다.

그이의 눈앞에는 할머님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오르시였다.

《증손아, 달빛이 아무리 밝아도 낮같지 않느니라. 낭떠러지랑 바위부리랑 똑똑히 보고 다녀라. 》

어린시절 할머님께서 자주 타일러주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히 되살아오르시였다. 그 말씀은 달빛에 이끌리여 만경봉이나 칠골로 놀러 다닐 때 할머님께서 사립문밖에까지 따라나오며 타이르군 하시던 말씀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몸부림치는 나무들과 얼어붙은 산봉우리들과 이따금 나타나는 병실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천천히 발자국을 옮기시였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오중흡이 달려와 오백룡의 옆에 다가섰다.

장군님께서 근심에 잠겨있는것을 눈치챈 오중흡은 오백룡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물었다.

《어디로 가시오?》

오백룡은 입을 다물고 도리질을 했다.

장군님께서는 산릉선을 넘자 오중흡을 돌아보며 물으시였다.

《덕산동무한테서는 련락이 오지 않았소?》

그이의 음성은 침중하였다. 오중흡은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였다.

사령부의 의도대로 소부대를 이끌고 백두산과 국경연안일대에서 맹활약을 벌리면서 동시에 적 특무집단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대처하여 지하조직들을 보호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있을 덕산이한테서는 요즘 소식이 끊어졌다.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서니 강바람이 맞받아 불어왔다. 캄캄한 숲속에 반디불같은 빨간 불빛이 나타나 깜박거렸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물으시였다.

《저게 어느 중대병실이요?》

오백룡은 한걸음 다가서며 대답했다.

《련락소초막입니다. 》

《초막에 누가 들었기에 아직 불이 켜져있소? 근무성원들이 들었소?》

《아마 김주현동무가 앉아있을겁니다. 》

《김주현동무가 왜 련락소초막에 와있소?》

이번에는 오중흡이 한걸음 다가서며 보고드리였다.

《김주현동무가 그곳이 조용하다고 하면서 밤마다 거기에 가서 글을 읽습니다. 》

《그렇소?》

장군님께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련락소초막의 밝은 창문을 바라보시였다.

원래 이 귀틀집은 오중흡이네가 선발대로 와서 밀영을 꾸릴 때 짓고 살던 집이였다. 강벼랑을 올라서서 첫탁에 자리잡고있는 이 집에서는 밀영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부대가 도착하고 오중흡이네가 새 병실로 옮겨간 다음 이 집은 밀영내막을 깊이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든가 하루이틀씩 묵고 돌아갈 손님들이 쓰군 하였는데 자연 련락소초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였다.

련락소초막은 비는 날이 많았다. 이것을 알아챈 김주현은 중대에서 일을 끝내고는 조용한 이 초막에 와서 밤새워가며 글을 읽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집을 《김주현의 글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오중흡이 그 사실을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흥미있는듯 그 말을 반복해보시였다.

《김주현의 글방이라···》

장군님께서는 가벼운 걸음으로 련락소초막으로 다가가시였다.

숲은 웅-웅- 설레이고 마당에 몰려든 마른나무잎은 낮은 처마밑의 바람벽이며 문짝에 부딪쳐 사뭇 소란스러웠다.

회초리로 문살을 대고 창호지를 바른 환한 방문에는 마주앉은 두사람의 그림자가 얼비치였다. 방안에 켠 불자루가 움직일 때마다 그 그림자는 물우에 비친 그림자처럼 흔들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또 한사람은 누구요?》

오중흡과 오백룡은 방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방안에서는 웅얼웅얼하는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러나 바람소리때문에 그 말을 제대로 가려들을수가 없었다.

《안희창동무입니다. 》

오백룡이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흥미있는듯 방안에 그려진 그림자를 살펴보시였다. 오백룡의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니 정말 방안에 비낀 두 그림자는 김주현과 안희창의 모습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해서 잠시 귀를 기울이시였다.

《수많은 우리 동포들은 일제의 학정밑에서 견딜래야 견딜수 없어···》

문득 조용한 방안의 정적을 깨뜨리며 안희창의 글읽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아마 그는 엎디여 글을 쓰다가 흥이 나서 소리내여 읽는 모양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날마다 안희창이가 글을 읽는것을 들었으나 이 밤은 류달리 의젓하고 대견해보이시였다.

《<견딜래야 견딜수 없어···> 좀 봐주십시오. 이렇게 쓰면 됩니까?》

공책을 주현의 턱밑에 받쳐든 안희창의 모습이 창문가에 비쳤다. 공책을 받은 김주현이 안희창이 쓴 글을 꼼꼼히 읽어보느라고 그러는지 방안에서는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김주현의 조용하면서도 무게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글자인지 알아볼수는 있겠소. 그러나 더 잘 써야 되겠소. 동무가 한자한자 쓴 글을 래일아침 장군님께서 보시겠는데 글이 똑똑치 못하면 되겠소?》

김주현의 목소리는 여유있게 울리였다. 그것은 마음의 안정을 가지고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금시 생기를 띤 그의 얼굴을 보는것 같아 밝은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이시였다.

희창이의 글읽는 소리가 계속되였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류랑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안희창은 지금 《조국광복회창립선언》을 옮겨베끼는 모양이였다.

김주현은 그가 큰소리로 읽는것이 성가신듯 말했다.

《글을 쓸 때에는 머리속으로 뜻을 새기며 써야 하오. 그렇게 소리내여 읽으며 쓰다나면 뜻은 언제 새기겠소? 그 문장의 내용을 두고 생각해보오. 얼마나 뜻깊은 문장인가? 그게 바로 희창동무의 지난날 처지였소. 》

안희창은 연필그루로 목덜미를 벅벅 긁으며 자기가 쓴 글을 더듬어보고있었다.

김주현은 책읽기를 잊어버린듯 희창에게 다가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희창동무는 누구보다 왜놈과의 싸움을 잘해야 하구 싸움을 잘하자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단말이요. 》

장군님께서는 방안에 들어가서 그들이 학습하는 모습도 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같이 나누고싶었으나 분초를 아껴가며 공부를 하는 그들에게 방해가 될것 같아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문쪽에서 물러나 마당안을 거니시였다.

그이께서는 찬바람부는 봄철에 거친 땅을 갈아엎고 심어놓은 씨앗들에서 생생한 움이 솟아나는것을 보는 심정이시였다. 그이의 구상과 희망은 이 추운 겨울 깊은 밤에도 줄기차게 꽃피고있었다.

회초리로 문살을 물린 방문에 나타난 두사람의 그림자를 보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수 없으시였다. 뜻밖의 과오를 저지르고 실망락담해있던 전날의 련대장에게 주겠다고 담배를 구해가지고 갔었다는 안희창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사령부에 와서 공부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안희창은 학습열이 높아져 공책들도 일매지게 깨끗하고 연필도 곱게 깎아가지고 오군 했다. 숙제장을 받아보면 구김살 하나 없이 단정했고 글줄이 바르고 글자가 또박또박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마다 안희창이한테 엄격한 《학부형》이 붙어있다는것을 짐작하시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엄격한 《학부형》은 다름아닌 김주현이였다.

지금 생각해보시니 안희창의 학습장겉에 쓴 큰 붓글씨도 김주현의 글씨가 분명하였다. 전번 단문짓기에서 안희창이가 1등을 하였는데 그때도 장군님께서는 그가 어떻게 이런 급격한 발전을 보일가 하고 기특히 여기시였다.

두메산골에서 부대기를 파먹던 가난한 빈농의 아들인 희창이의 손목을 이끌고 김주현이 부대에 들어서던 일이 눈에 삼삼하시였다. 자동차나 기차를 만나면 신기해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멍청히 바라보군 하던 희창이였다. 입대초기 전투때 경찰서바람벽에 걸려있는 체경에 자기의 모습이 비치자 딴사람이 맞받아나오는줄 알고 사격을 들이댄 일도 있었다.

열두살때인가는 겹겹이 둘러싼 높은 산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싶어 누이동생을 업고 열댓길이나 될 이깔나무초리에까지 올라갔었다는 희창이였다.

그러한 그가 오래지 않아 책도 읽고 편지도 쓸수 있게 되였고 전날의 지휘원이 책벌중에 있지만 변함없이 따르고 존경하는 훌륭한 유격대원으로 자라나고있다. 안희창이나 김주현의 경우만 보아도 군정학습에 들어선후 대원들의 급격한 성장과 변화를 가늠하실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마당끝에 서시여 그곳으로 다가온 오백룡과 오중흡에게 말씀하시였다.

《김주현동무가 광솔불밑에서 공부를 하는게 아니요? 방이 춥지 않는지 모르겠소. 》

오중흡이 조용한 어조로 대답했다.

《주현동무는 늘 광솔불을 켭니다. 자주 방안에 성에가 끼는것도 모르고 책에 열중하지만 희창동무와 함께 있을 때는 아궁에 불을 넣군 합니다. 》

새벽이 가까와오자 바람이 불고 성에가 불리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눈을 들쓴듯 하얘지고 땅우에도 눈같은 무서리가 깔리였다. 삼면이 강이다보니 안개가 자주 끼고 성에가 짙었다.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오중흡이며 오백룡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령부로 돌아오는 그이의 머리에서는 김주현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으시였다. 중대작식일도 지금 밀영에서는 그를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학습에서도 그는 모범이였다.

그가 중대병실을 떠나 초막에까지 나와서 밤을 밝히며 학습에 전념하는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것이 아니라 사령부의 사상과 의도를 남먼저 알고 그 뜻대로 행동하려는 굳은 결심을 내렸다는것을 말한다.

그이께서 사령부에 들어서시자 전령병이 초에 불을 달았다.

장군님께서는 밝은 방안을 둘러보다가 전령병에게 조용히 물으시였다.

《초를 여분으로 가지고있는게 없소?》

장군님께서는 난감한 표정을 하고 서있는 전령병을 쳐다보며 거듭 물으시였다.

《있으면 좀 내놓소. 내 쓸데가 있소. 》

전령병은 여전히 한 자리에 서있었다.

《사령관동지, 사령부에서 쓸것만 여분으로 몇대 가지고있습니다. 경위중대장동지도 절대 초를 다른데 내놓으면 안된다고 지시하였습니다. 》

《사령부에서 쓸것이라면 내가 써도 일은 없겠군. 경위중대장동무한테 내가 이야기할테니 좀 내놓소. 》

장군님께서 다시 간절히 부탁하시였다.

전령병은 안타까운듯 입술을 감빨고 그냥 서있었다.

전령병은 한참동안 머뭇거리다가 아래방에 내려가서 초 두봉지를 들고 올라왔다.

《김주현동무가 요즘 건강도 좋지 못한데 밤마다 광솔불을 켜놓고 공부를 하고있소. 그러다간 주현동무의 눈이 상할수 있소.

우선 이걸 먼저 김주현동무에게 가져다주시오.》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에게 조용히 이르시였다.

 

×

 

오백룡은 전령병의 손에서 초를 달래가지고 련락소초막으로 달려갔다.

련락소초막에는 아직 불빛이 어려있었다. 그러나 안희창이는 돌아갔는지 주현의 그림자만 어려있고 다감하게 울려나오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백룡은 김주현이 몸을 돌보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는것이 걱정스러웠다. 방안도 퍼그나 식었을것이였다. 방이 작아 삭정이한단만 때도 천정에 불이 달릴듯 달아오르지만 외풍이 세서 한두시간만 지나면 산뜩산뜩하게 식어버리고만다.

오백룡은 불쑥 김윤화생각이 떠올랐다. 윤화가 같이 있다면 주현이를 오죽 잘 도와주랴.

오백룡은 불이라도 한아궁 때주려고 발소리를 죽이며 부엌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은 아닌게아니라 한지나 다름없이 썰렁했다.

그가 들어서는바람에 한뽐이나 되는 광솔불 자루가 꺼풀하고 춤추었다. 그러나 김주현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손에 받쳐든 책을 파고있었다. 솜옷단추는 하나도 빠짐없이 꼭꼭 채워져있었다.

《왜 또 왔소?》

김주현은 책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말했다.

《늦잠을 자거나 강의시간에 졸바에는 늦도록 앉아있을 필요가 없소. 돌아가오. 》

김주현은 희창이가 다시 들어온줄 아는 모양이였다. 오백룡은 속으로 웃으며 방안을 살펴보았다.

바람벽에는 성에가 하얗게 불렸고 문틀과 뙤창에는 두터운 얼음더께가 앉았다. 연기를 풍기는 불자루는 천정 낮은 방안을 빤히 밝히고있었다.

허리를 구붓한채 사색에 여념이 없는 김주현의 그림자가 방안을 가득히 채우고있었다. 얼마나 책에 골몰하였던지 김주현은 책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익숙된 손더듬으로 광솔불가치를 들어다 불을 이어달았다. 등불밑에는 무수한 광솔꽁다리가 널려져있었다. 오백룡에게는 그 무수한 광솔꽁다리들이 그동안 김주현이 쓰다버린 연필꽁다리처럼 생각되였다.

김주현은 저 많은 광솔가치들이 불타는동안 쉼없이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숭고한 진리와 그 진리가 깨우쳐준 자기반성을 뼈속에 쓰고 또 썼을것이였다. 광솔가치가 한가치한가치 불타버릴 때 김주현의 마음속에는 장군님의 사상과 장군님의 뜻이 그만큼 뜨겁게 새겨졌을것이였다.

한쪽구석에 모양이 잡히기 시작한 나무함지가 놓여있었다.

그것은 제법 함지모습으로 변했는데 오래지 않아 그릇구실을 하게 될것 같았다. 어느땐가 물어보니 김주현은 심심할 때나 추위에 오금이 얼어붙어올 때 도끼질을 하면서 함지를 파는것이 좋다고 했다.

그는 끄떡없이 틀고앉아있는 김주현의 눈가장자리에 고통스럽게 얽힌 잔주름과 근엄한 눈동자며 얼굴의 심각한 표정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김주현은 이따금 세차게 굽이치고있는 내심의 충동에 못이겨 무슨 말이라도 할듯 입술을 움직이였다. 절절하고도 뜨거운것이 목안에서 소용돌이치고있는것 같았다.

오백룡의 가슴에는 그에 대한 따뜻한 정이 맑은 샘물처럼 한가득 고여올랐다. 전에도 알지 못했던 김주현의 새로운 모습이였다. 그 결곡한 모습을 이윽토록 보고있던 오백룡은 아궁앞에 다가앉아 삭정이로 불을 지피였다. 아궁에서는 소리없이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나도 곧 중대에 돌아가겠는데 불은 때서 뭘하겠소? 그만두고 가서 좀 자오. 》

김주현은 그냥 책을 든채 성가신듯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오백룡은 아무 대답없이 도끼밥과 나무토막을 골라 아궁이에 넣었다.

문득 오백룡은 김주현이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는 마치 자기를 위해 써주신것처럼 그렇게 자기에게 절실한 로작이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장군님께서는 자주 우리들에게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불을 만났을 때 하늘을 보는 사람은 죽고 땅을 보는 사람은 살아서 집에 돌아오더라는 옛말을 해주셨지,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랑패를 당한다는 뜻이야. 주현동무도 지난 가을에 그만 고개를 제치고 하늘을 보다가 제정신을 잃었댔지. 그러나 이제는 장군님의 혁명사상을 똑똑히 공부했으니 일없어···》

오백룡은 문턱을 넘어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종이에 싸서 품속에 간직하여온 초를 꺼내서 조심스럽게 김주현의 무릎우에 놓았다.

김주현은 그때야 오백룡임을 알아보고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경위중대장동무였소? 난 또 안희창동무라고··· 추운데 뭘하러왔소?》

김주현은 무척 반가와하는 눈길로 오백룡과 불길이 넘쳐나는 아궁을 번갈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함부로 사령부를 떠나서는 안될 동무가··· 빨리 돌아가오.》

김주현은 오백룡이가 잠시 사령부를 떠난것을 가지고도 마음을 놓지 못해하였다.

오백룡은 저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공부를 착실히 하는것은 좋지만 몸도 좀 돌보오. 동무때문에 늘 심려하시는 장군님 생각도 좀 해야 하지 않겠소.》

오백룡은 김주현의 무릎우에 놓인 초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김주현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가 주는 초를 받아쥐면서 대답했다.

《래일은 식량을 지러 나가야 하오. 며칠동안 밀영밖에 나가있겠는데 그전에 몇줄이라도 더 읽고싶어서 그러오. 》

《식량 지러 가다니? 그 중대에서는 벌써 식량이 떨어졌소?》

《아니요. 눈이 깊이 쌓이기전에 날라들이는것이 좋을것 같아서 내가 중대장동무한테 제기했소.》

김주현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야 손에 들려진것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요? 초가 아니요?》

《밤마다 광솔불밑에서 글을 읽으니 눈이 견디여내겠소?》

오백룡은 장군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상기하며 김주현에게 말했다.

《초는 사령부에 필요한게 아니요? 내가 초를 해서는 뭘하겠소?》

김주현은 초를 오백룡쪽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받아두오. 》

오백룡은 초를 한자루 기울여 불을 달고 광솔불을 꺼버리였다.

《난 일없소. 사령부에 초가 떨어지면 장군님께서 광솔불밑에서 일을 보시게 되오. 어서 이 초를 가져다두었다가 사령부에서 쓰도록 하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김주현의 사령부에 대한 관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진정으로 사정을 하며 이미 불이 달린 초까지 돌려주려는 김주현의 손을 잡고 오백룡은 뜨겁게 말했다.

《이 초는 사령관동지께서 동무가 광솔불밑에서 공부하는걸 보고 보내주신거요. 동무는 사령관동지께서 오래동안 이 초막앞에 서계시다가 가신것도 몰랐지? 주현동무의 눈이 상하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사령부에도 흔치 않은 초를 보내주시였소. 》

《아니, 사령관동지께서 오셨댔단말이요?》

김주현은 눈을 번쩍 뜨고 문을 바라보았다. 마당에서는 여전히 바람소리, 락엽소리가 소연했다.

그는 얼마전에 문밖에서 나는 인기척소리를 들었지만 이 마당을 자주 지나는 순찰병들이라고 생각했을뿐 장군님께서 오셨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하오? 이런 법이 어데 있소.》

김주현은 깊은 충격에 저도 모르게 자리를 고쳐앉으며 오백룡의 팔목을 꽉 잡아끌었다.

《장군님께서 밖에 계셨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방안에 앉아있다니 이런 무례한 일이 어데 있소?》

김주현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리였고 놀란 눈에는 눈물이 어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공부하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참동안 밖에 서계시다가 조용히 돌아서시였소. 사령관동지께서도 주현동무를 퍽 만나고싶으신것 같았소. 그러나 방해된다고 하시면서··· 그냥 돌아서시였소.》

어쩐 일인지 오백룡도 목소리가 갈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내가 이 초막에 숨어 공부를 하는것까지 헤아리시고···》

김주현은 초불을 들고 처마밑으로 나갔다. 그는 아직도 장군님께서 그 마당가에 그대로 서계시는것만 같아 마당쪽을 향해 초불을 비치였다.

어두운 대기속에서 흩날리고있던 성에가루는 무지개빛을 띠면서 자오록이 불빛으로 모여들었다. 깨끗한 흰눈이 덮인 마당에는 큰 발자욱이 뚜렷하게 찍혀있었다. 그것은 고목처럼 말라버렸던 자기의 몸에 꽃을 다시 피워주시려는 어버이사랑의 자취였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의 폭넓고 심원한 사상을 받아안은 김주현은 천리준마와 보검을 틀어쥔것 같아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싸움터에서라도 백전백승할 신심과 뜨거운 정열이 넘치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