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3편 6


 

제 3 편

6

 

마국화는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왜 잠들지 못하는지 알수 없었다.

(정말 안희창동문 옳지 않아, 공부를 안하다니···)

국화는 벌써 몇번이나 이렇게 생각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내가 만나서 꼭 공부를 하라고 말해도 안할가?)

하는 생각을 품기도 하였다.

자기가 말하면 고분고분하게 들을것 같아서 마음이 좀 안정되기도 하였으나 꼭 그렇게 되지도 않을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다시 안타까와졌다.

국화는 자기 공부나 부지런히 하면 그만이지 다른 소대동무가 공부 안한다고 속을 태울건 뭐냐고 안희창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자고 결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국화는 사람이 꼭 자기가 생각하고싶은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아직 모르고있었다. 그는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그의 얼굴은 밤사이에 헐끔해졌다.

방금 첫강의를 끝내고 흩어져 앉아있는데 경성이 고향인 녀대원이

《저기 우리 병실을 빙빙 에도는게 뉘긴가?》하고 말하였다.

재봉대원들의 눈길은 열어놓은 뙤창으로 쏠리였다. 창문으로는 락엽진 숲이 앙상하게 보일뿐 사람의 자태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대원들은 창문에 다가서서 마당을 내다보기도 하였다.

《안희창동무군요!》

누군가 속삭이듯 조심스런 어조로 말했다.

마국화는 누구보다 먼저 안희창의 모습을 띄여보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아무것도 모르는척 하였다. 희창이가 분명 자기를 찾아왔을것이라는것을 느끼자 그의 가슴은 옥죄여들었다.

《저 총각이 누굴 찾아왔겠는데 애간장 말리우지 말고 얼핏 나가보오!》

장철구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였다. 그러자 마국화는 더구나 몸둘바를 몰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안희창은 병실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더 바투 다가서서 맴돌고있었다. 머리를 푹 숙인 마국화는 마당쪽을 보지 않는체하였지만 안희창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살피고있었다.

(내가 어제 할말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 저 동무가 할말이 무어냐고 눈치없이 물으면 어떻게 할가?)

마국화가 겁에 질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안희창은 점점 가깝게 다가들었다. 금시 창문에 대고 소리라도 칠것 같았다.

국화는 갑자기 김윤화가 생각났다. 그 언니만 있으면 자기가 이렇게 옹색하지 않게 무슨 수라도 써줄것이였다.

누구인가가 창문쪽에 다가서며 바깥에 대고 말을 걸었다. 희창이가 마침내 창문에 다가선것이였다.

《어디 가는 길입니까? 우리 병실에 좀 들리시지요. 방안이 따뜻하답니다.》

재봉대원들은 안희창의 모습이 창문앞에 나타나자 반색을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좀 들어와요. 기관총수동무!》

안희창은 경례를 하고나서 대꾸했다.

《수고들하십니다. 놀러는 후날 오지요.》

그는 동무들의 눈길이 자기한테 쏠린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국화에게 눈을 끔벅이며 나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마국화는 얼굴이 화끈했으나 태연한체하고 시무룩 웃으며 재빨리 마당으로 나갔다.

안희창은 어제 자기가 겪은 수치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 다짜고짜로 국화의 팔을 잡고 병실마당밖으로 이끌었다.

《잠간 나 좀 만나오. 날 좀 도와주오.》

영문을 모르는 마국화는 안희창의 손에 이끌리여 병실옆을 멀리 벗어났다.

《국화동무는 늘 내게 힘든 일이 생기면 도와주었지. 난 세상사람들이 다 나를 따돌려도 동무가 있으니 겁나는게 없소. 눈이 오면 소나무를 알아보고 바람이 불면 대나무를 알아본다지만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벗이 누구인가를 알아볼수 있단말요.》

안희창은 그의 뒤를 따라 이쪽저쪽 맴돌며 어디서 얻어들은 유식한 문자까지 섞어가면서 처음부터 바빠맞은 소리를 주어섬기기 시작했다.

《난 총알이 100알이 있으면 한 50알씩은 총알 없는 사람들에게 갈라주는 사람이요. 내게 글이 있다면 글을 가지고싶어하는 사람에게 몽땅이라도 주겠소. 총알을 주면서 글을 아끼겠소?》

마국화는 돌아서서 말없이 안희창의 눈을 살펴보았다.

(정말 나한테 글을 배우려고 찾아온것일가?)

국화는 이렇게 생각하며 희창이를 힐끔 바라보았는데 그의 표정은 진지하고도 겁에 질려있었다. 그가 이전처럼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면 얼마나 자연스러웠으랴!

마국화는 도대체 안희창이가 이처럼 헤덤비며 빌붙는 까닭이 선뜻 리해되지 않아서 말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였다.

안희창은 숲언저리에 단 둘이 서게 되자 주변을 휘 살펴보고나서 품안에서 봉투를 꺼내여 쑥 내밀었다.

《나를 좀 도와주오. 이 일만 도와주면 난 일생 은혜를 잊지 않겠소. 동무들도 많고 지휘원도 많지만 어째선지 이 일만은 도와주지 않는구만. 뭐 남의 일이라면 오뉴월에도 손이 시리다더니 남은 어디까지나 남이요. 자 빨리 이 봉투안의 편지를 큰소리로 읽어주오. 이 편지는···》

마국화는 정말 그를 도와줄 일이 생긴것을 알자 마음이 진정되면서 웃음까지 떠올랐다. 그는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이번에 공부를 꼭 하라고 단단히 타일러주리라고 생각했다.

《난말이요. 봉투편지를 받았을 때 글을 몰라 어쩌나 하는 근심은 생기지도 않았소.》

안희창은 주저없이 넙적한 손바닥안에 쥐고있던 봉투를 한번 흔들어보이더니 그것을 다짜고짜 국화에게 안겨주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안희창은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국화의 손에 넘겨준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동무한테서 온 편지인가요?》

마국화는 물러서는척 하고 봉투를 들고 보았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서 한걸음 물러섰다.

《이건, 이 명령서는···》

안희창은 고개를 옆으로 기웃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장군님께서 나에게 주신 전투명령이요! 알만하오? 소대장동지한테 근신처벌을 받았지만 장군님께서는 나에게 친히 전투임무를 내리셨단말이요!》

《아이참··· 동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요?》

국화가 놀란 목소리로 말하자 안희창은 얼굴이 시꺼매졌다.

《왜 그러오? 응?》

그는 마국화의 손에 들린 편지를 장님같은 눈으로 펀히 건너다보고있었다.

마국화는 눈물이 글썽해서 부르짖었다.

《동무는 옳지 않아요. 왜 공부하기를 싫어해요? 이 편지를 아무도 읽어주지 못하게 되여있으니 어쩔셈이예요?》

안희창은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서 수십번 들은 말이 국화에게서도 나올것 같아 절망적으로 부르짖었다.

《동무도 안읽어주겠단말이요?》

국화는 너무도 안타까와 눈물이 핑 돌지경이였다.

겉봉투에는 장군님께서 친히 쓰신 글이 적혀있었다.

《이 명령서는 누구도 대신 읽어줄수 없음.》

이러니까 밀영의 병실마다 찾아다니며 부탁을 했다지만 읽어줄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였다.

그때까지 곰살궂게 사정하던 안희창은 국화의 표정에서 자기의 요구에 응할수 없다는 기색을 눈치채자 성을 냈다.

《국화도 역시 남이란 말이지?》

국화는 안타까와 그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희창이는 두걸음이나 물러섰다.

그래도 국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희창동무, 이 명령서는 누구도 대신 읽어줄수 없어요. 정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왜 진작 공부하지 않고···》

《그만두오!》

희창이는 그의 말을 밀막았다.

《내가 동무를 믿은게 잘못이였소.》

희창이는 오히려 제편에서 억울해하였다. 그러나 국화는 이제 그가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굽어들수 없었다.

《동무는 정말 옳지 않아요. 혁명군에서 공부를 안한다고 처벌을 받은 사람이 동무밖에 있어요?》

《걷어치우오.》

안희창은 격분해서 부르짖었다. 그의 억실억실한 눈에는 눈물이 핑 어려있었다.

《내가 공부를 안한다고··· 흥, 남의 일이니 말이야 쉽지.》

이렇게 중얼거리듯 하던 희창은 국화가 그를 사귄후 처음 보는 진중한 기색이 되여 혼자말처럼 말하였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누이동생밖에 다른 사람이란 볼수 없는 심심산골에서 자랐소. 글은 고사하고 사람도 보지 못했단말이요.

나도 동무처럼 글을 배울만 한 집에서 자랐다면 벌써 글을 배웠을거요. 너무 깔보지 마오. 남들이 배우는데 나라고 아주 못깨칠줄 아오? 》

그 모습을 본 국화는 랭담해졌던 가슴속에 다시금 동정과 련민의 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국화는 희창이가 고생스럽게 자라났을 일이 떠올라 슬픈 감정에 휩싸이였다.

그는 희창에게 다가서며 절절히 말했다.

《이렇게 해요. 더 다니지 말고 곧장 장군님께 가요. 가서 아직 글을 못배웠다고 솔직히 말씀올리고 앞으로는 꼭 글을 배우겠다고 맹세해요. 아마 그렇게 하면 장군님께서는 용서해주실거예요. 그러면 저와 함께 글을 깨쳐요. 열흘이면 우리 나라 글자를 다 배울수 있어요. 제가 힘껏 도와주겠어요. 예?》

안희창의 얼굴에는 아직도 원망과 경원의 기색이 가셔지지 않았으나 국화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마국화한테마저 퉁을 맞은 안희창은 하는수없이 봉투를 헤쳐보지도 못한채 그대로 들고 사령부로 갔다.

해빛이 밝게 비치는 사령부앞마당에는 지휘원들이 한가득 모여서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안희창은 그들속에 강철룡이며 김주현이들이 있는것을 띄여보자 온몸이 옥죄여드는것을 느끼였다.

장군님께서는 희창이가 언덕을 올라선것을 보시자 몇걸음 마주 나오시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 벌써 임무를 다 수행했소?》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방금전에 명령을 받으러 왔을 때는 참배내를 풍기던 안희창의 입술에는 소금꽃이 피고 걱정에 잠긴 눈에서는 한줄기의 생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실망에 잠겨있는 그의 모습만 보아도 얼마나 검질기게 온 밀영을 돌아쳤는지 짐작이 가시였다.

안희창은 편지를 소중히 가슴에 붙안고 한마디한마디 말했다.

《사령관동지··· 누구도 편지를 읽어주지 않아서···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안타까움과 울음이 실린 그의 얼굴을 보시자 이제는 빨리 그를 절망속에서 벗어나게 해주고싶으시였다.

《아직도 글을 못깨우쳤나? 공부에 열성이 없은게로구만. 글배우기가 싫은가?》

안희창은 머리를 바로 들지 못하고 자기의 심정을 곧이곧대로 말씀올렸다.

《사령관동지, 저는 다른 일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하겠지만 공부는 해낼것 같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배우느라고 애쓰는 시간에 사격련습이나 더 해서 일제놈을 잡는게 저에게는 맞춤할것 같았습니다.》

안희창은 솔직한 대원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그의 어깨우에 얹으시고 말씀하시였다.

《보시오. 공부를 하지 않고 글을 모르면 눈뜬 장님과 같소. 동무가 아무리 기관총을 잘 쏜다고 해도 지금같이 사령부의 명령서를 해득하지 못하여 행동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쓸데가 없소. 그러니 글을 모르면 혁명사업을 잘할수 없지 않소?》

《장군님, 정말 저는 오늘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였습니다.》

안희창은 머리를 번쩍 쳐들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침 앞에 서있는 호리호리한 가느다란 나무를 가리키시면서 물으시였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요?》

안희창은 눈을 번쩍 뜨더니 서슴없이 대답했다.

《고로쇠나무입니다.》

《이 나무를 무엇에 쓰면 좋을것 같소?》

두메산속에서 태여나 부대기농사로 잔뼈가 굳은 안희창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도끼자루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만족스럽게 웃으시였다.

《옳소. 이 나무는 도끼자루를 했으면 좋겠소··· 혁명을 하는것도 바로 그런것이요. 무엇이 어디에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아는 사람이래야 혁명을 할수 있소.》

안희창은 마음속에 다져지는 굳은 결심을 빨리 말씀올리고싶었다.

《사령관동지, 이제부터는 머리를 싸매고 꼭 공부하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그의 가슴에 밝은 희망을 안겨주시려는듯 해빛이 비치는 마당기슭으로 그를 이끌고 나가시였다.

《혁명하는 사람은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하오. 사람의 일생이란 험한 산속을 헤쳐가는것과도 같은데 글을 모르면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한 골짜기안에서 헤매게 되오. 그러나 글을 배우고 세상물정에 눈이 트면 높은 산마루에 올라섰을 때처럼 앞길을 환히 내다볼수 있소. 더구나 글을 모르고서는 혁명전사의 초보적인 본분도 다할수 없소. 동무가 만일 적후에 파견되였을 때 지휘부에서 보내는 편지를 읽지 못하여 그 내용에 적혀있는 과업을 제때에 수행 못하면 어떻게 되겠소? 두말할것 없이 혁명에 큰 손실을 주게 될것이요.》

《사령관동지, 명심하고 꼭 학습하겠습니다.》

《그래야 하오.》

사령관동지께서는 안희창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한참동안 생각하시였다. 안희창의 학습을 강철룡에게 맡기는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다. 그가 공부를 시킨다고 하면서 떡떡거리면 식자반동무들이 주눅이 들것이다.

안희창이같은 목매지들이 중대마다 몇명씩 있는 조건에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이 직접 가르치시기로 결심하시였다.

《래일부터 동무는 사령부에 와서 공부하오. 당분간 식자반학습을 내가 직접 지도하겠소. 여러 중대에서 많은 동무들이 모여올것이니 재미있을게요.》

장군님께서는 봉투를 드시고 앞뒤를 살펴보시다가 희창에게 쥐여주시였다.

《이 봉서는 동무에게 주겠소. 가지고있다가 후날 글을 읽을수 있게 되면 그때 한번 뜯어보오.》

안희창은 꼭 그렇게 해볼 결심이 있었던지라 봉서를 받아 옷섶안에 깊이 간수하였다.

장군님의 두리에 서있던 지휘원들이 모두 희창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고무했다. 다만 강철룡만이 안희창이보다 더 심각한 표정이 되여 고개를 푹 숙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