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3편 5


 

제 3 편

5

 

날이 밝은 다음부터 빈틈없이 물린 오전일과를 전심전력으로 집행하신 장군님께서는 오후 휴식시간이 되자 설핏한 해빛이 가로누운 조용한 숲속을 거니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묵묵히 홀로 거닐며 부대가 밀영에 도착한 이후 분주하게 보낸 며칠동안의 사업을 총화해보시였다. 부대들이 도착한후 며칠되지 않으나 병실을 꾸리고 월동준비를 하여 대원들이 안착할수 있게 되였으며 학습준비도 대체로 끝내고 학습반별로 학습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력부대가 백두산에서 떠나온 환경에 맞게 박덕산을 파견하고 국내혁명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마동희를 파견하였다.

시간을 어기지 않고 제때에 처리해야할 일들은 대체로 일단락지은셈이다.

이제는 그야말로 모든 힘을 정치학습과 군사훈련에 집중할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였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사나흘동안 진행한 학습정형을 분석해보시였다. 대부분의 동무들은 학습에 관심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공부하는것 같지만 아직 학습기풍이 서지 못한 현상들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련대장들과 중대장들, 학습강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도 일부 대원들속에는 정말 다섯달동안 공부하겠는가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는 동무가 있는가 하면 학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전투만큼이야 중요하겠는가 하면서 학습에 열을 내지 않는 현상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장군님께서는 만사 젖혀놓고라도 우선 학습관점과 학습기풍을 똑바로 세워야 하겠다고 결심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퍼그나 흐른 다음에야 오백룡이 먼발치에서 기척없이 따라오는것을 감촉하시였다. 숲속에 드러나보이는 오백룡의 얼굴에는 말할수 없는 괴로움이 비껴있었다.

오중흡이나 오백룡이는 자신께서 생각에 깊이 잠긴 모습을 보면 대뜸 할머님때문에 걱정한다고 짐작하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앞으로는 그들이 보이는데서는 생각에 깊이 잠기는것조차 삼가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시며 허구픈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선뜻 안색을 고치고 돌아서며 오백룡이에게 말씀하시였다.

《백룡동무, 날씨가 좋으니 자꾸 걷고싶지만 그만 돌아갑시다. 이제 오후일과를 시작해야겠으니 곧 중대장이상 지휘원들을 사령부에 부르시오.》

오백룡은 사령부에 돌아오자마자 전령병들을 병실에 띄웠다.

반시간도 되기전에 지휘원들이 모두 사령부에 모여왔다.

장군님께서는 모여온 사람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낮으나 힘있는 음성으로 말씀을 떼시였다.

《지금 우리는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새로운 혁명적구호를 내걸고 학습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일부 동무들이 사상적으로 동원되지 않은 결과 아직 혁명적학습기풍이 서지 못한 현상들이 이모저모에서 나타나고있습니다. 학습을 할바에는 조준련습이나 하겠다고 하면서 태공하는 현상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지휘원동무들은 대원들이 학습에 재미를 붙이고 열성을 내도록 잘 교양하고 설복할 대신 안하면 책벌을 주겠다고 대원들을 위협하고있습니다.

이제부터 자기 부대에 나타나고있는 혁명적학습기풍이 서지 않은 현상들을 내놓고 대책문제를 토론해봅시다. 》

모임은 조용히 시작되였다. 토론도 처음에는 일반적경향문제가 많이 론의되였다. 그러나 분석이 심화돼들어가자 토론은 차차 열을 띠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치렬한 사상투쟁으로 번져갔다.

장군님께서는 지휘원들의 토론에서 안희창이가 말썽을 부려 근신처벌을 받았다는 말을 듣자 그들의 토론을 잠시 중단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어제저녁에 오백룡이로부터 그런 보고를 받으실 때도 매우 의아해하시였다.

(희창이가 공부를 하기 싫어하다니? 그게 무슨 일인가?)

장군님께서는 쾌활하고도 정열적이고 헌신적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안희창이의 모습을 그려보며 오래도록 생각해보시였다.

강철룡은 희창이를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희창이가 어떻게 행동했기에 처벌까지 받았는가?

장군님께서는 지난밤에 하신 생각을 되풀이하며 강철룡을 부르시였다.

허우대 큰 강철룡이 눈을 끔뻑이며 슬그머니 일어났다. 천반을 치받을듯 큰 키를 꼿꼿이 일으켜세운 그는 말도 하기전에 추궁을 받은듯 마른 입술을 감빨며 덤덤히 서있었다.

《안희창동무에게 근신처벌을 준것이 사실입니까?》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물으시였다.

강철룡은 희창이에게 근신처벌을 준데 대하여 좀 생각되는것이 있었는지 약간 주저하는 기색으로 대답하였다.

《예, 당초 말을 듣지 않아서 목매지처럼 틀어쥐는수가 없었습니다. 》

《희창동무가 왜 공부를 안하겠다고 하는지 알아는 보았습니까?》

강철룡은 희창이때문에 애먹던 일이 생각나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희창이는 공부를 할바에는 조준련습이나 하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학습실에 붙잡아앉혀놓으면 어느새 빠져달아나 깊은 숲속에서 기관총청소를 하군 하였다.

강철룡은 을러보기도 하고 타일러보기도 하였으며 나중에는 비서처의 김명국에게 군사훈련을 개별지도해주기로 약속하고 안희창의 학습을 도와달라고 데려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희창이는 김명국이가 고학을 하자고 부자놈들에게 장작도 패주고 우유나 신문배달도 했다는 말을 해주자 대뜸 한다는 소리가 글을 못배우면 못배웠지 뭣하러 돈있는놈들한테서 비굴하게 심부름을 했느냐고 퉁명을 부렸던것이다.

《사령관동지, 별수 없습니다. 안희창이같은 동무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하자면 딴 방법이 없습니다.》

강철룡은 문제의 화살이 대원들을 사상적으로 동원시킬 생각을 안하고 손쉽게 처벌을 주는 방법으로 해결하자고 든 자기같은 지휘원들에게 겨누어졌기때문에 바빠나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호소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강철룡의 말이 사실같기는 하였지만 어째서 희창이가 외지밭으로 달려가려고 하는지 도무지 리해하실수 없었다.

《다른 중대들에도 이런 동무들이 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엄숙한 표정으로 지휘원들을 둘러보시였다. 지휘원들은 누구하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대답이 없어도 련대나 중대마다 이런 《목매지》들이 더러 있을수 있다는것을 감촉하시였다.

《공부는 매채를 들고서라도 시켜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령부에서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라고 했으면 응당 공부를 해야지 왜 안하겠다고 하는가?

처벌을 주어서 정신을 차려 공부를 하게 했으면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동무들이 한번 토론해보시오. 왜 안희창이같은 동무들이 나타나는가? 동무들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동무들을 잘 아오. 강철룡동무 생각에는 그 동무가 어째서 학습을 안하겠다고 하는것 같소?》

강철룡은 고개를 숙일사하고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취미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 동무는 혁명군에 참가해서 총을 잘 쏘면 그만이지 글은 구태여 배워서 무엇하랴 하는 배짱입니다. 오늘 아침도 보니까 처벌을 받고 어쩔수없이 상학에 참가하기는 했는데 계속 연필끝을 들고 창문밖에서 흐느적이는 나무가지를 묘준하고있었습니다. 》

안희창이가 공부를 하도록 휘여잡을 자신이 없는 강철룡은 땀을 흘리며 자기의 애로를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큰 사건이 생긴듯 신중하게 말씀하시였다.

《가만보니 강철룡동무가 손을 들고 물러서고말았습니다. 그건 학습에 대한 관점뿐만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대한 관점문제입니다. 공부시킬 자신이 없습니까?》

《시키긴 꼭 시키고야말겠습니다. 》

강철룡이 전혀 자신없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대답만은 힘있게 하는것을 본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왜 우리 동무들속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원인을 알아내야 빨리 대책을 세울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 지휘원들의 관심이 이 한가지 문제에 집중되도록 모임을 이끌어나가시였다. 강철룡은 어쨌으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는듯 량미간을 찌프린채 입을 다물고있었다.

이때 모임에서 자주 말을 하지 않는 오백룡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쳐들고 강철룡을 쏘아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해서 그에게 눈길을 모두었다.

《철룡동무. 동무네 소대에 학습기풍이 서지 않은 원인이 대원들에게만 있소?》

말이 적고 마음이 무른 백룡이가 성이 나서 강철룡을 비판하는것을 본 지휘원들은 신중한 기색을 짓고 강철룡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업상으로나 인간적인 측면에서나 그들 두사람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오백룡이가 이렇게 가차없는 기상으로 나올 때는 필경 그럴만 한 까닭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들었다.

장군님께서는 조만해서는 얼굴을 붉힐줄 모르는 오백룡이가 흥분에 떠는것을 보시고 의아한 생각이 없지 않으시였다.

《공부를 안하려는 동무들에게 처벌을 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현상이 왜 나타났으며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

장군님께서는 오백룡의 과격한 말을 누르시며 강철룡에게 물으시였다. 성질이 호랑이같은 강철룡은 오백룡이가 한마디 소리치자 움이 질리여 말 한마디 못했다. 아마 그도 마음속에 켕긴 구석이 있는 모양이였다.

오백룡이는 강철룡이 미처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자 맵짜고 호되게 말했다.

《안희창동무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원인은 딴데 있는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소대장동무자신에게 있단말입니다. 강철룡동무가 군정학습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였는가?》

얼굴이 벌개져서 오백룡이를 건너다보는 강철룡의 작은 눈에는 원망의 빛이 어려있었다. 너무도 자기를 리해해주지 않는다는 심정이였다.

《안희창동무에게도 결함이 있을것입니다. 나는 안희창동무가 그런 고집쟁이인줄은 아직 모르고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무가 왜 그렇게 나오는가?···》

오백룡에게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듯 눈을 치뜨고 지켜보던 강철룡은 의문표가 희창이한테 쏠려지자 다시 고개를 숙이였다. 철룡은 희창이에게 처벌을 준것을 무척 괴롭게 여기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오백룡이는 오늘 전에없이 흥분해서 마치 강철룡이와 무슨 결판이라도 내려는듯 다몰아쳤다.

《안희창이가 그렇게 된것은 다른데 원인이 있는것이 아니라 자기 소대장을 닮았기때문입니다. 강철룡동무자신이 이번 군정학습에 대해 제일 떨떨한 립장을 취했습니다.

5개월동안 군정학습을 벌린다고했을 때 강철룡동무는 뭐라고 소대원들앞에 말했는가?

밀영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남들은 부지런히 학습준비를 하는데 강철룡동무는 따뜻한 양지받이에 대원들을 모아놓고 씨름판을 벌렸단말입니다. 씨름판을!》

강철룡은 속이 좀 켕기는것이 분명했으나 마주 성을 냈다.

《그건 내가 정말 학습을 하는지 어떤지 잘 모를 때 일이 아닙니까?

군정학습을 벌리는것이 사실이라는것을 안 다음에는 소대원들을 공부시키려고 세괃게 다그어댔단말입니다.》

강철룡은 희창이를 처벌한것이 옹졸한것이라는 자책은 있지만 잘못이 없다는 태도였다.

모임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그만하면 대체로 알만하다는 기색이 떠올랐으나 오백룡이는 그런 정도로 비판해서는 성차지 않는다는듯 더 열을 올리였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그래 안희창동무가 자기 소대장의 말을 잘 안듣는가? 내 보건대는 너무 잘 들어서 오히려 야단입니다. 안희창이가 목매지라 하지만 그는 자기 소대장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 듣고 줄줄 묻어다닙니다. 그런것만큼 강철룡동무는 특별히 안희창동무를 잘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단말입니다. 안희창동무가 김주현동무의 손에 이끌려 부대에 왔을 때 장군님께서는 그가 아직 글을 깨치지 못했다는것을 가슴아프게 여기시고 아무리 바빠도 틈틈이 글을 배워주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런데 강철룡동무는 혁명을 하자면 총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말만 하면서 언제 한번 공부시킬 생각은 안했습니다. 병주고 약준다고 일상생활에서는 글이 소용없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이제부터는 공부하라고 하니까 희창동무가 자기 소대장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단말입니다. 자기네 소대장자체가 학습계획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을 그 동무들이 눈치채고있는이상 어떻게 진심으로 학습하자고 하겠습니까? 강철룡동무는 왜 일상적으로 학습에 무관심했고 이번 군정학습에 대하여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비판하란말이요.》

강철룡은 오백룡이가 자기가 잘못 생각하고있던 점에 대하여 정통을 찌르자 말문이 막히였다. 사실 그의 말이 옳고보니 변명할 말도 빠져나갈 구멍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별로 극성스럽게 구는 오백룡이 원망스러웠다.

장군님께서는 입이 뿌죽해서 고개를 숙이고있는 강철룡을 보시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철룡동무, 접수되오?》

강철룡은 벌개진 얼굴을 들며 성큼 대답했다.

《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그 대답은 오백룡의 비판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볍고 쉬운것이여서 성의가 없어보이였다. 강철룡이 그것을 느끼고 한마디 부언하였다.

《앞으로는 모든 힘을 학습에 돌리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강철룡이 아직 자기 잘못을 똑똑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오늘 자극을 받았으니 달라질것이라고 여기시고 모임을 그만하려고 생각하시였다.

그러나 오백룡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오백룡의 얼굴은 울분에 넘쳐있었다. 그는 한참 갑자르더니 슬픔이 어린 목소리로 절절하게 말했다.

《동무들, 우리가 오늘 장기적인 군정학습을 벌리는데 대해서 그저 공부하고 훈련하는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해서는 학습의 성과를 보장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번 군정학습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가슴아픈 일을 겪으면서 진행하는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강철룡동무도 이것을 모르기때문에 사령부의 조치에 대하여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있습니다.

동무들, 우리가 이 밀영으로 들어올 때 8련대정치위원동무가 권영벽동무의 계모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계모신의 내용이 무엇인지 압니까?》

모임참가자들은 그제야 오백룡이 오늘 전에없이 흥분한데는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숨소리를 죽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다. 얼굴이 벌개서 고개를 푹 떨구고있던 강철룡도 저으기 놀란 기색으로 눈물이 글썽거리는 오백룡이를 바라보았다.

이때 장군님께서 연필그루로 책상을 치시는 소리가 울리였다. 오백룡이는 그 소리를 듣자 말을 중둥무이하고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그만하오. 동무는 말은 학습을 잘하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주의를 어디로 끌고가는거요. 경위중대장이 사령부에 오는 통신내용을 공개해서는 안된다는것을 모른단말이요. 》

장군님의 말씀은 준절하게 울리였다. 오백룡은 눈물이 글썽해서 사령관동지를 한번 바라보더니 그만 밑둥잘린 나무처럼 펄썩 무너져앉고말았다.

장군님께서는 오백룡의 비분에 떠는 모습은 돌아보지도 않으시고 지휘원들을 향하여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지휘원동무들은 언제나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장기적인 군정학습을 벌렸는지 똑똑히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처자들, 2천5백만 우리 겨레가 모두 일제의 발길에 짓밟혀 신음하고있는다는것을 명심한다면 어떻게 한순간인들 덩덩해서 허송세월할수 있겠습니까? 오백룡동무도 이것을 말하자던것이요.》

모임참가자들가운데는 오백룡이가 꼭 하고싶은 말이 있는것 같은데 장군님께서 중단시키셨다는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런데 개의치 않고 모임의 분위기를 돌리기 위하여 일부러 실무적인데로 이야기를 끌고가시였다.

《안희창동무처럼 학습의 의의와 중요성을 잘 모르고 열성을 내지 않는 동무들이 다른 중대에는 없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학습반명단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나가며 련대장과 중대장들의 의견을 들으시였다. 구체적으로 따지고드니 과연 안희창이 같은 목매지가 한둘이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목매지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도록 하는것이 이번 군정학습의 성과를 담보하는 중요한 고리의 하나라고 판단하시였다.

모임을 끝내며 장군님께서는 지휘원들이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대원들의 학습을 잘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다음 군정학습기간에 이와 같은 사상투쟁을 자주 진행하는것이 필요하다고 결론하시였다.

회의가 필한뒤 강철룡은 머리를 푹 숙이고 사령부주변을 맴돌고있었다.

오늘 모임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오백룡이의 유난스러운 비판도, 그가 하려다가 못한 이야기도 모두 그에게는 커다란 자극이 되였다.

얼마후에야 오백룡이 사령부에서 나왔다. 강철룡이 우울한 얼굴로 나무밑을 맴돌고있는것을 본 오백룡이는 차라리 잘되였다는듯 성큼성큼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소?》

백룡이는 먼저 말을 걸었다. 강철룡은 도리질을 하고나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좀 만나고가자고 그러오.》

《나도 동무를 찾아가려던 참이요.》

오백룡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눈으로 기가 죽어있는 강철룡을 바라보았다.

《비판은 옳게 했소. 다 접수하겠소. 그런데 한가지 물어보기요.》

그들은 자기들이 아직 회의분위기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것을 알아차리고 잠시 숨을 태우듯 침묵했다.

강철룡이 작은 눈으로 백룡이의 눈치를 살펴보니 그의 얼굴에는 아직 울분이 다 가셔지지 않았다는것이 확연하였다. 강철룡은 어줍게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모임에서 하려던 말이 무엇이요? 권영벽동무의 계모신이 왔다구 하던 그것말이요.》

입을 꾹 다물고 강철룡의 표정을 지켜보던 오백룡은 한팔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숲속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강동무. 지금 밀영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아오? 적들이 사령관동지의 조모님을 련행하여 백두산을 돌아치면서 못된짓을 하고있소.》

강철룡은 너무나 뜻밖이여서 걸음을 멈추었다. 오백룡은 숲속으로 걸어가면서 말을 계속했다.

《권영벽동무가 이 사실을 비상통신으로 날렸단말이요. 그걸 마당거우턱밑에서 받았지. 우리는 특수부대놈들을 징벌하고 조모님을 구출해오려고 단단히 짜고들었소.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혁명이 요구하는 길에서는 티끌만치도 물러설수 없다고 하시며 마당거우에로의 행군을 계속하게 하시였소. 지금 우리가 벌리고있는 학습이 단순한 학습이 아니요. 피눈물어린 사연이 깃들어있는 혁명이란말이요. 사령관동지께서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라는 구호를 어떤 심정으로 제기하셨는지 모르겠소? 그런데 우리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할 대신 덩덩해서 허송세월하면 결국 장군님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린단말이요.》

오백룡은 투박한 손으로 멍해있는 강철룡의 실팍한 잔등을 철썩하고 때리였다.

눈복판에 찔러선 강철룡은 불꽃이 튀는 눈길로 오백룡을 바라보다가 넋없이 부르짖었다.

《백룡이, 옳지 않소. 당신이 내 친구요? 어째서 그 일을 이제야 이야기하오? 가오, 돌아가오. 나혼자 있게 해달란말이요!》

오백룡은 위압에 쫓기듯 한숨을 쉬며 허덕허덕 걸어갔다. 그는 자기의 말뜻을 강철룡이 알아들었으며 두번다시는 그처럼 높은 값을 치르고 벌리는 군정학습에 대해 소흘히 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믿었던것이다.

강철룡은 오래동안 혼자서 눈덮인 숲속을 거닐고있었다. 깊은 사색에 잠겨 묵묵히 홀로 걷는 심각한 모습은 강철룡에게서 처음 보는 새로운 모습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