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3편 3


 

제 3 편

3

 

김주현은 온 산판을 헤매고서야 구새먹지 않은 아름드리 통나무와 홍두깨만 한 피나무를 구했다. 그는 한쪽 품에 국수공이로 쓸 피나무를 끼고 분틀을 깎을 황철나무는 쇠줄에 매여 자기 중대 병실뒤의 외따름한 숲속까지 가까스로 끌고왔다. 허리에 도끼와 톱을 차고 가지들을 쳐버린 통나무를 낑낑거리며 끌고오는 그의 모습은 영낙없는 채벌군이였다.

김주현은 판을 본격적으로 차려놓고 국수를 한번 본때있게 눌러 마동희를 먼길에 내세우시며 마음을 놓지 못해하시는 장군님의 속을 다소나마 풀어드리리라고 결심했다.

국수분틀을 제대로 만들자니 품이 많이 들었다. 감사리가 변변치 못한데다 까뀌나 대자귀, 논주같은 연장은 하나도 없이 도끼 하나로 깎고 파고 다스리고 하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날씨도 좋지 않아서 자기 중대병실에서 일판을 벌려볼가 하다가 공연히 소문이나 놓을것 같아 아예 숲속 양지받이에 일판을 벌리였다.

김주현은 기장을 재서 잘라온 통나무를 뉘여놓고 한쪽끝에서부터 도끼질을 해나갔다. 도끼날이 빗선을 그으며 나무에 박힐 때마다 손바닥만 한 도끼밥이 튀여나왔다. 오래지 않아 주변에는 하얀 나무밥이 한벌 깔리고 통나무는 먹줄을 긋고 타개낸것처럼 곧게 가로 켜졌다. 일손을 다그치는 김주현의 턱에서는 이따금 굵은 땀방울이 뚝뚝 듣는다.

《여기 계셨습니까?》

안희창이 헐레벌떡거리며 불쑥 숲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오래동안 김주현을 찾아다녔는지 기뻐서 힐쭉벌쭉했다.

《희창이 왔나···》

김주현은 도끼를 통나무에 걸쳐놓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얼굴의 땀을 훔치였다.

《이건 뭘 만들려는것입니까?》

희창이는 절반을 가로 켜고있는 재목과 주변에 널려있는 연장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요. 학습준비는 다 됐소?》

김주현은 워낙 일이 바빠서 손님을 반가와할 형편이 못되였지만 예전과 다름없이 반색을 지으며 희창이를 끌어다 자기옆에 앉히였다.

《뭐 크게 준비할것이 있습니까. 학습장과 연필이면 다더군요.》

《왜? 공부를 잘하자면 이럭저럭 준비할것이 많지. 학습반은 경위중대에 속하였나?》

희창이는 아무 근심없는 밝은 얼굴로 번쩍이는 도끼날을 슬슬 만져보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우리 기관총소대는 중대와 같다고 따로 학습반을 하나 무었습니다. 참 나는 이상합니다. 우리는 국내에 들어가있을적에 사령부에 돌아오면 조국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질줄 알았는데··· 학습을 하게 되였지요. 우리 소대장동지는 눈이 떼꾼했습니다.》

희창이는 고개를 흔들다가 천진하고 맑은 눈으로 김주현을 슬쩍 바라보았다. 김주현은 그 눈길이 자기의 심장을 찌르는것 같아 슬며시 외면하고 담배를 말아물었다.

《글쎄말이요. 사령부에서는 겨울에 학습할 계획을 짜고있을 때 정작 큰 과업을 받고나간 우리는 함부로 불질을 하고 부득불 돌아서게 되였지. 사령부에서 하라는대로 하지 않다간 이 꼴이 되는거요.》

《심심해 죽겠네. 그런데 동희가 며칠째 보이지 않아요.》

희창은 김주현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그는 동희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있지 않나 해서였다.

그러나 마동희의 말이 나오자 김주현은 애당초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그 동무네 중대장동무도 안대줘. 경위중대장동지에게 물어봐두 안대줘, 국화도 모른대···》

희창은 좀더 큰 목소리로 더 뜨적뜨적 말하면서 재빨리 김주현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김주현은 여전히 들은둥만둥하였다.

《비서처에도 가보고 련락소마당에도 가보았는데···》

김주현은 먼 하늘만 바라보고있었다.

안희창은 안타깝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하여 더는 모르쇠를 하지 못하게 그의 무릎이 닿도록 다가앉았다.

《련대장동지도 모르십니까?》

김주현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뭘말이요?》

희창은 어처구니 없이 입을 쩝쩝 다시다가 그의 턱밑에 다가들며 말을 이었다.

《동희 말입니다.》

《동희는 왜 찾소?》

《이렇게 갑갑한 때 동희마저 만나지 못하니 어디 살겠습니까? 그래서 며칠째 밀영안을 휘뚜루 돌아보았는데 그 친구 그림자도 찾을수 없구만요. 나한테 토론두 안하고 나돌아다니는것두 괘씸한데 그 친구가 어데 있는지 안다는 사람도 없으니···》

희창은 세월없이 주절대고있었다. 능청맞은 희창은 어떻게 해서라도 김주현이 입을 열게 하자는것이고 김주현은 꼭 동희의 행처를 안다고 믿는것이였다.

그러나 김주현은 끝내 동희말을 하지 않았다.

마동희는 며칠째 장군님과 함께 생활하고있었다. 식사도 장군님과 함께 하고 잠도 장군님곁에서 잔다.

《동희동무가 이해 겨울 한서고의 책을 다 읽겠다고 계획했는데 이 포부를 실현할수 없게 되였으니 우선 우리가 이해 겨울 학습시키려고 하는 내용부터 잘 가르쳐줍시다.》

장군님께서는 벼랑밑의 강기슭에서 마동희에게 친히 집중적인 학습을 조직지도하겠다고 말씀하시였었다.

장군님께서는 바쁜 시간을 모두 마동희의 학습지도에 기울이신다. 그러니 건들거리며 찾아다니는 희창이가 어떻게 마동희를 볼수 있겠는가.

《어데 깊이 숨어서 공부하겠지. 동희가 시간이 있다고 놀러다닐 사람인가. 중대장들이 모른다고 하면 구태여 알아보겠다고 싸돌아다닐 필요없소!》

김주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안희창이 마동희말을 꺼낸 다음부터는 안타깝고 쓰거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김주현은 장군님께서 아직 신입대원티도 채 벗지 못한 마동희를 어려운 길로 내보낼것을 결심하실 때 자기들의 소부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얼마나 분하게 생각하셨을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고개가 숙어졌다. 어느모로 보나 응당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동희가 가게 하고 자신은 편안히 앉아서 작식일이나 하게 된것도, 장군님께 그러한 심려를 끼쳐드린것도 모두가 자기의 과오에서 시작된것이 아닌가!

김주현은 얼굴이 컴컴해져서 시름없이 담배만 빨았다.

《에, 어떻게 새봄까지 공부를 하겠는지. 다섯달동안 엉치를 붙이고 앉아있을것을 생각하면 까마득해요!》

안희창이는 두주먹을 높이 쳐들고 입이 째지게 하품을 하며 기껏 기지개를 켰다. 뜻밖에 학습을 한다는 말을 듣고 속이 클클해서 마동희의 행처도 알아보고 련대장과 이야기도 나누려고 찾아왔던 안희창은 과거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김주현의 얼굴에 수심이 낀것을 눈치채고 흥이 깨져버렸다.

김주현은 희창이의 따분해하는 그 기색을 보자 새로운 불안을 감촉하였다. 저 희창이나 그의 소대장 강철룡이 모두 학습의 중요성을 똑바로 깨닫고 성실히 공부할것 같지 못했다.

자기도 장군님께서 벼랑밑의 강변을 거니시며 차근차근 타일러주신 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게 되지 않았던가!

만약 그들이 생각을 바로하지 못하고 외지밭으로 빗나간다면 어차피 장군님께 다시금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리게 될것이다.

김주현은 아무때고 빨리 강철룡부터 만나 단단히 오금을 박아놓으리라고 결심하였다.

안희창이는 한참동안 주변을 살펴보고나서 히쭉 웃었다.

《이젠 알았습니다. 국수분틀이군요.》

그는 말릴사이도 없이 통나무에 다가서서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도 갑갑하더라니 분틀이라도 만들어볼가 해서 손질을 하댔소. 어서 가서 공부나 하오.》

김주현은 공연히 소문이 날것 같아 도끼를 빼앗으려고 하였으나 희창이는 몸을 피하면서 도끼질을 계속했다.

《제가 감사리를 망칠것 같아 그럽니까. 저는 워낙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에서는 남한테 지지 않습니다. 제가 제꺽 분통을 깎아드리지요. 지금 우리는 시간이 좀 있습니다.》

김주현은 희창이를 걷잡아낼수 없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쫓아보낼 방법이 없으니 그대로 두는수밖에 없었다.

김주현은 댓걸음 떨어진곳에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줄칼끝으로 철판에 구멍을 뚫기 시작하였다.

그는 줄칼자루를 철판에 대고 나무몽둥이로 톡톡 내리쳐서 철판에 구멍을 뚫으면서도 희창이가 분틀감사리를 망쳐버릴것 같아 자주 그쪽에 눈길을 보냈다.

희창이는 아름드리나무를 가로 켜는 일을 불이 번쩍나게 해치웠다. 그 솜씨가 얼마나 재치있고 쟀던지 칼로 흙을 깎아내는것 같았다.

《나무를 가로 켜는 일은 대충대충 해도 돼요. 기본은 공이를 잘 깎고 공이집을 잘 우벼내서 딱 들어맞게 하는거지요···》

희창이는 저혼자 중얼거리며 총창을 빼들고 반쪽으로 타개진 나무복판에 구멍을 파기 시작하였다.

《이젠 그만하오. 공이집은 내가 파야 되오.》

김주현은 굳이 말리였으나 희창이가 물러설리 없다.

《구멍을 뙈칠것 같아 그럽니까. 제가 다섯살때는 손칼로 숟갈을 깎았고 열살때는 우비칼로 온 식구의 나무밥사발을 팠다는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글을 깨치라면 몰라도 나무로 물건을 깎아 만들라면야 훌 날지요. 걱정 말고 어서 담배나 태우십시오.》

희창이는 옛날의 자기 련대장이 가슴아픈 추억에 빠질것 같아 입심을 다해 군수선을 떨면서 신바람나게 일손을 다그쳤다.

안희창은 어느새 곧게 깎은 공이를 공이집에 맞추어보았다. 김주현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공이가 홀가분하게 공이집에 들이박히였다. 김주현은 마음속으로 희창이의 드팀없는 잰솜씨에 탄복하는데 희창이는 공이를 막았다뽑았다하며 자신있게 말했다.

《공이가 처음엔 이처럼 훌렁훌렁해야 좋습니다. 이제 국수가마우에 걸쳐놓고 불을 때고 물을 끓이면 공이는 굵어지고 공이집은 조여들거던요.》

《맞춤하오. 잘됐소.》

김주현은 공이를 쓸어만져보고 공이집에 손을 넣어보면서 대견스럽게 말했다.

희창이는 일을 끝내자마자 벗어놓았던 솜옷을 입으며 바삐 돌아갈 눈치였다.

《나 대신 수고많았소.》

이렇게 치하를 한 김주현은 희창이를 멈춰세워놓고 준절하게 말했다.

《소대장동무에게 내가 한번 찾아가겠다더라고 말하오. 희창이도 이제는 딴 일에 정신을 팔지 말고 학습에 전념해야 하겠소.》

희창이는 똑똑한 대답이 없이 곧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데면데면한 모습을 본 김주현은 마음이 더욱 켕기였다. 공부를 잘하라는 말을 깊이 새겨듣지 않고 건성으로 스쳐보내는것이 확연했던것이다.

김주현은 생각에 잠겨 별로 서두르지 않고 다 된 분틀을 알뜰히 다듬고 손질하였다.

그런데 그날은 뜻밖에도 빨리 다가왔다.

국수분틀을 다 만든 다음날 아침 국수를 누르라는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은 김주현은 온몸이 굳어지도록 생각에 잠기였다.

(래일쯤에는 마동희가 국내로 떠나게 되는 모양이구나.)

그는 마치 이 사실을 처음 알기라도 한듯 심장이 세차게 뛰였다. 마동희가 국내에 간다는 사실이 상기될 때마다 온몸이 가위에 눌린듯 힘을 쓸수 없었으며 생각마저 외곬에 막혀 굳어지고말았다. 그에게는 마동희가 국내로 간다는 사실이 자기 일신상의 가장 큰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지는것이였다.

국수는 경위중대병실에서 누르는것이 좋겠다고 오백룡이 말해서 김주현은 그와 함께 국수분틀을 나누어메고 경위중대로 올라갔다.

중대원들이 근무와 훈련에 다 나가버린 병실에는 장철구와 마국화가 와있었다. 그들도 이미 내막을 눈치채고있는지 명랑한 말소리와 밝은 웃음속에도 어디라없이 석별의 정을 풍기였다.

김주현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사람처럼 묵묵히 가마우에 국수분틀을 차려놓으며 철구와 국화가 마주앉아서 반죽을 하고있는 국수감을 힐끔힐끔 건너다보았다.

《전 어려서부터 감자만 먹어서 그런지 감자음식은 모두 질색이예요. 오래동안 먹어보지 못해서 지금은 먹고싶은 생각도 좀은 있지만··· 그런데 우리 오빠는 농마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국화가 소곤소곤 철구에게 하는 말이였다. 철구는 손에 힘을 모두고 웃몸을 키질하며 국수감을 이겨댔다.

《장군님께서는 메밀국수가 제일 좋다고 하시지만 국수라면 무슨 국수나 다 좋아하신다오. 반죽을 되게 하자요. 그래야 국수오리가 질겨요.》

분틀을 다 차린 김주현은 부뚜막끝에 얹혀있는 큰 소랭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물은 다 길어다놓았어요.》

장철구가 눈치를 채고 소리쳤으나 그는 못들은척 하고 샘터로 갔다. 자기 손으로 맑고 차거운 샘물을 길어다 국수를 씻고 육수도 만들고싶었다.

어디 나갔던 오백룡이 너덧마리나 될 꿩을 들고 들어와 부엌구석에 내치였다. 샘물을 한드무 긷고난 김주현은 좋아서 그것들을 들고 병실밖의 눈깔린 숲가장자리에 들어갔다.

김주현이 꿩을 깨끗이 손질해가지고 돌아오니 철구와 국화가 한꺼번에 손벽을 쳤다. 국화는 국수꾸미가 생겨서 좋다고 하고 철구는 육수를 달게 할수 있게 되였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김주현은 국수맛은 자기가 새로 길어온 샘물이 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국수반죽을 살펴본 다음 오백룡에게 이제는 물만 끓이면 국수를 누를수 있게 다 준비되였다고 알리였다. 장군님께서 건너오실 시간을 알아두었다가 그 시간에 맞게 국수를 눌러 그이께 풀어지지 않은 국수를 대접하고싶었던 그는 오백룡이더러 사령부에 가서 언제 시간을 내실지 알아보라고 부탁했던것이다.

이윽하여 돌아온 오백룡은 지체 말고 제꺽 누르라고 숨가쁘게 말했다. 김주현은 솥안의 물을 살펴본 다음 아궁에 불을 지피였다.

해가 기울자 부엌안은 어슬어슬했다.

백룡이는 병실안에서 방안을 정돈하느라고 덜거덕거리고 노끈으로 만든 조리와 회초리를 든 철구는 물솥을 지켜보고 국화는 반죽한 국수감을 함지에 굴리고있었다.

아궁앞에 앉아있는 김주현의 얼굴에는 빨간 불빛이 비치였다. 넓지 않은 이마며 억세게 솟겨진 관지뼈며 단단한 턱이 차돌로 쪼아놓은것처럼 보이였다. 다만 쪼프린 가는 눈시울사이로 드러나보이는 영민한 눈동자는 깊은 사색에 잠긴채 슴뻑거리고있었다.

아궁에서 불이 이글거리고 가마에서 김이 솟구치며 물이 끓어번지자 회오와 자책에 잠긴 그의 가슴도 번거롭게 끓어번지는것 같았다. 그러나 물끓는 소리를 듣고 오백룡이 내려오고 장철구가 다가서자 김주현은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장군님과 동무들 앞에 웃는 얼굴로 나서야 한다.)

그는 강심을 품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젠 눌러야 되겠어요.》

물솥을 지켜보던 철구가 떡반죽을 공이집에 밀어넣고 공이를 맞추었다.

《내가 한번 눌러보겠소.》

백룡이가 성큼 틀우에 올라가 기운을 쓰자 분통이 쩌개지는듯 한 소리를 내였다. 김주현은 철구의 손에서 조리와 회초리를 빼앗아들고 부뚜막에 다가서서 나직이 말했다.

《천천히 누르오.》

솥안에서는 물이 솟구치고 분통에서는 뿌지직뿌지직 번철에 기름닦는 소리가 났다.

김주현이 허리를 굽히고 분통밑을 살펴보니 고르로운 국수발이 꼿꼿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김주현의 마음은 어느 정도 진정되는것 같았다. 그는 회초리로 국수발을 휘여감아 끓는 물속에 골고루 펴서 익힌 다음 조리에 퍼담았다.

장철구가 재빠른 솜씨로 조리를 받아 물함지에 국수살을 쏟아서 초벌 식힌 다음 두번째, 세번째 물함지에 옮기고 마지막에는 가쯘하게 사리를 지었다. 국화는 주현이와 철구의 눈치를 보아가며 물을 갈고 그릇들을 옮겨놓는 등 잔심부름을 들었다.

《경위중대병실이 오늘은 대사집같소!》

국수가 제대로 된것을 본 다음부터 시종 문밖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김주현은 장군님의 음성이 들리자 무척 반가왔다. 국수도 잘되였는데 장군님께서 때맞추어 오신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장군님의 뒤로 마동희가 좀 서먹서먹해하는 표정으로 들어오다가 김주현을 보더니 주춤하고 멎어섰다. 얼핏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김주현은 그가 벌써 중대한 임무를 받고 몹시 흥분되였다는것과 장군님께서 이끄시는대로 따라왔다가 뜻밖의 장면에 부딪치고 그런우에 경위중대병실에서 만나리라고 생각할수 없었던 옛 련대장 김주현이 직접 국수를 누르느라고 분주히 돌아치는것을 보자 저으기 당황해한다는것을 알아보았다. 김주현은 어쩐지 이런 상봉을 마련해주신 장군님의 어버이심정이 눈물겨웁게 가슴에 마쳐왔다. 그는 철구며 국화를 쭉 밀어버리고 온갖 일을 자기가 직접 주관해서 했다.

《환하게 불도 켰구만.》

이렇게 말씀하시며 병실에 들어오신 장군님께서는 방안을 살펴보시였다. 방복판에는 네모난 책상과 그 주위에 너덧개의 걸상이 놓여있었다.

아늑하고 오붓한 방안을 둘러보신 장군님께서는 문쪽에 자리를 정한 다음 두개의 걸상이 놓여있는 맞은편 안쪽으로 마동희의 손을 이끌고 가시였다.

《동희동무는 여기에 앉고 이 옆자리에는 국화동무가 앉소.》

장군님께서는 웃목쪽에 오백룡을 끌어다앉히고 김이 서린 부엌쪽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국화동무, 주현동무, 다들 방에 올라오시오.》

그 말씀을 들은 부엌에서는 한참동안 숭얼숭얼하는 말소리들이 오고갔다. 철구는 주현이와 국화더러 방안에 들어가라고 권하고 주현이는 국화와 철구의 등을 방안으로 떠밀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방안에 들어서지 않고 그 대신 철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 이제 상을 다 차린 다음 들어가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부엌쪽을 향하여 물으시였다.

《아직 멀었소?》

철구와 국화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네, 이제 곧 올라갑니다.》

장군님께서는 웬 영문인지 몰라서 안절부절 못하는 마동희를 바라보며 채근하시였다.

《좀 빨리빨리 하오. 동희동무가 배고프다고 하오.》

부엌에서는 국화의 웃음소리와 함께 철구의 웃음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동희동무, 조금만 참아요.》

동희는 정색해서 우뚤 일어서며 대답했다.

《철구어머니, 아닙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동희에게 손가락을 펴보이며 책망하듯 말씀하시였다.

《원, 이렇게 눈치가 무디다구야. 내가 빨리 먹고싶어서 그렇게 말했는데 동무가 그렇게 말하다니. 음 쯔쯔···》

부엌에서도 방안에서도 화기에 넘친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철구가 저가락을 한줌 들고 들어와 식탁우에 쌍쌍이 갈라놓으면서 동희를 눈짓하며 빈정댔다.

《장군님, 저는 동희동무가 갓 입대하여 행군할 때는 벌벌 기는 사람이 어떻게 학습토론은 그렇게 청산류수로 잘하는가 생각했댔습니다. 그런데 오늘 알고보니 동희동무가 국수를 잘먹으니까 그 입에서 말도 술술 잘 나오는것 같습니다.》

마동희는 얼굴이 벌개서 시물시물 웃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철구의 말에 맞장구를 치신다.

《국수를 먹으면 명이 길어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 소리는 처음이요.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그런 말을 퍼뜨리는것은 재미가 없을것 같소. 중대정치지도원동무들이 학습기간에 대원들을 공부시킬 생각은 안하고 국수만 눌러먹이자고 하면 랑패가 아니요.》

철구는 너무나 우스워 입을 싸쥐고 바람벽으로 돌아서서 허리를 잡고 웃는데 백룡이와 동희는 식탁을 팔로 짚고 큰소리로 웃었다.

식탁가운데 세워진 초불은 웃음소리에 흔들리며 밝게 춤추고있었다.

마국화가 평짜다반에 국수 한그릇을 담아들고 와서 장군님앞에 놓아드리였다.

《이건 나 먹으라는것이요?》

장군님께서 밝은 초불에 비쳐진 국수를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국화는 혹시 장군님께서 무슨 말씀이 계실가 하여 다반을 안은채 잠시 기다리였다. 주현이도 철구도 새문에 다가서서 장군님께서 국수를 받으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있었다.

국수는 말캉하게 사리도 잘 지었고 꾸미나 육수가 다 제격을 갖추고있어서 나무랄데가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얼굴에 만족하신 빛을 띠우고 국수그릇을 보시다가 슬쩍 마동희앞으로 옮겨놓으시였다.

《국수가 참 잘된것 같소. 이 국수는 동희동무가 받는것이 좋겠소.》

장군님께서 첫그릇을 동희에게 사양하시는것을 본 국화는 큰일이 난듯 달려가 국수그릇을 쥐려고 하였고 새문에 서있던 철구와 주현이도 황황한 빛을 띠고 안절부절 못하였다. 마동희는 너무나 황송하여 걸상에서 일어나 입을 하 벌리고 장군님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오늘 국수는 김주현동무가 나 대신 마동희동무를 위해서 누른것이요. 그러니 응당 동무가 먼저 받아야 내 마음도 좋고 주현동무의 마음도 좋지 않겠소?》

김주현은 참지 못하고 새문을 한발자국 넘어서며 말했다.

《장군님, 국수는 온 중대를 겪을수 있게 푼푼히 눌렀습니다. 똑같이 만 국수인데 어서 먼저 드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인자하게 웃으시며 김주현에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도 마동희동무처럼 눈치가 무디구만. 이러다간 국수가 풀어지겠소. 말은 후에 하고 어서 빨리 국수를 들여보내오.》

김주현은 입맛을 다시며 김이 서리고 불빛이 번뜩이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장군님께서는 두번째로 국수그릇을 들고 온 국화를 자기 오빠옆에 앉히시고 그에게 국수그릇을 옮겨주시였다.

《옛 련대장이 먼길 떠나는 마동희동무를 생각해서 누른 국순데 응당 누이동생도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지.》

장군님께서는 국화를 동희옆자리에 앉힌 다음 부엌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자, 이젠 부엌에서도 한그릇씩 들고 들어와 앉으시오.》

국화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장군님을 모시고 자기 남매가 저녁을 같이 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국화였다. 그는 너무나 황송하여 부엌으로 뛰여내려가고싶었으나 장군님께서 계신 앞에서 그럴수도 없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 오빠의 귀에 대고 뜨겁게 속삭이였다.

《오빠, 전 국수를 못먹는다고 말씀드리고 부엌으로 나가겠어요. 오빠도 제가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것을 알지 않아요. 좀 말씀드려주세요. 》

동희는 누이동생이 안할 말을 한듯 펄쩍 놀라며 식탁밑으로 손을 붙잡았다.

《네가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것을 아시면 장군님께서 섭섭해하신다.》

오빠의 말을 들은 국화는 문득 음식을 달게 먹어야 흐뭇해하던 어머니생각이 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었다.

장군님께서는 백룡이에게도 국수가 올라오자 부엌에 대고 채근하시였다.

《주현동무, 국수가 풀어지겠소. 빨리 들어오시오.》

김주현은 저가락을 꽂은 국수그릇을 들고 들어와 오백룡이옆에 가앉았다.

장군님께서는 동희남매와 오백룡이, 장철구, 김주현이들이 둘러앉은 식탁을 바라보며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어려서 온 집안이 한상에 모여앉아서 식사하던 때가 생각나오. 여기는 이미 눈이 쌓였지만 우리 조국땅은 아직 가을이지. 아마 논밭에서 곡식을 걷어들이고 집에서는 김장을 담그고있을게요.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도 이런 가을에는 우리같이 이렇게 한집안이 상두리에 둘러앉아볼수도 있을게요.》

장군님께서 향수에 잠기시자 단란한 방안에는 일시 정숙이 깃들었다.

《나는 국수를 먹을 때마다 집생각, 부모생각, 고향생각이 나오. 국수는 우리 나라의 고유한 음식이니까 그런것 같소. 자, 다 모여앉았으니 어서 식사를 시작합시다.》

장군님께서는 전사들로 하여금 빨리 식사를 시작하도록 하시기 위해 먼저 저를 드시였다. 동희도 백룡이도 주현이도 모두 묵묵히 저로 국수사리를 육수물에 풀고있었다.

이때 문이 방싯 열리고 초불이 꿈틀했다. 백룡이옆에 앉았던 김주현은 대번에 문밖에 다가선 사람을 알아보고 황급히 일어나 문쪽으로 갔다.

문을 등지시고 앉으신 장군님께서는

《누가 왔소?》

하고 범상하게 물으시였다.

《예, 어서 드십시오. 중대동무가···》

김주현은 말을 얼버무리며 문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다음 오백룡이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안희창동무가 왔습니다.》

《안희창이라··· 그럼 들어오라고 하지 왜 맞받아나가오?》

《이제 딴 일이 없으면 주현동무가 데리고 들어올겁니다.》

오백룡이 조용히 말씀드렸다.

《그 동무가 마침 잘 왔소. 마동희동무와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요. 어서 들어오라고 하오. 원래 잘하자면 동희동무를 위해서도 그 동무를 미리 초청했어야 할걸 그랬소.》

오백룡은 저가락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김주현과 안희창은 벌써 멀찌감치에 물러가 나무밑에서 수군거리고있었다.

희창이는 아직도 집안쪽으로 목을 길게 뽑아보며 검질기게 캐고있었다.

《지금 방안에서는 뭘 합니까? 학습중입니까, 회의중입니까?》

김주현은 당황하여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이요? 우리 중대에 갔다가 없으면 말것이지, 무슨 급한 일이 있겠다구 여기까지 찾아왔소?》

희창이는 주현이가 오늘따라 별스럽게 논다는듯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경위중대에서도 메돼지를 잡았습니까? 방안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깁니다.》

《그따위 철없는 소리 작작하구 왜 왔는지나 말하오!》

《소대장동무가 메돼지를 잡았다구 련대장동지 청해다 대접하자구 해서···》

희창이는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보고있었다.

《누가 메돼지를 잡으라고 했소? 총소리를 냈겠지? 흥, 동무는 방안에 누가 계시는지도 몰라? 눈치없이···》

희창이는 밝은 불빛이 내비치는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제 한 둬시간 있다가 다시 오라구. 여기로말이요. 그러면 내가 한턱 내겠으니 그쯤 알고 빨리 돌아가오.》

안희창이는 김주현이가 전날같지 않다고 생각했던지 섭섭한 기색을 짓고 돌아섰다.

이때 어둠속에서 오백룡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있다 올것 있소? 희창동무, 빨리 이리 오오!》

마지 못해 돌아가려던 희창이는 날개를 뻗친듯 단숨에 병실문앞으로 뛰여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오백룡에게 다가서자마자 묻기부터 하였다.

《장군님께서 안희창동무를 부르시오. 빨리 갑시다. 》

오백룡이 이렇게 말하며 희창이의 손목을 잡아끌자 희창이는 대번에 눈이 휘둥그래져서 문턱에 떡 버티고 섰다.

《그 방에 장군님께서 계셨습니까? 그럼 전··· 벌써 멀리 갔다고 말씀드리고 전···》

그는 울상이 되여 오백룡의 손목을 잡고 늘어졌다.

《어서 가기요. 장군님께서 식사를 하시다가 동무가 왔다는것을 아시고 찾아오라고 하시였소.》

안희창이는 자기가 이미 피할수 없게 된것을 알자 김주현에게 지청구를 댔다.

《장군님께서 식사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들어갑니까? 제창 그렇게 일러줄것이지. 엥히···》

방안에 들어선 희창이는 그야말로 얼음우에 소탄것처럼 눈도 변변히 뜨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밝은 초불에 눈이 부신데다 장군님께서 저를 드신채 자기를 기다리고계신다는것을 느끼자 눈길을 어디다 주어야 할지 세상 반죽좋은 안희창이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정말 희창동무가 때마침 왔소. 자 어서 여기 앉소. 빈자리도 하나 있었구만!》

철구가 희창이를 이끌어다 자기옆의 빈자리에 앉히고 제꺽 국수를 한그릇 말아다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군님, 저는 사실 김주현동지를 찾아다니다가···》

하고 자기가 여기 오게 된 과정을 말하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볼우물이 패이도록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드시였다.

《그만하오. 어서 국수를 드오. 주현동무를 따라다니면 맛있는 국수를 종종 먹게 되오. 그런데 희창동무가 국수 한그릇으로 배가 차겠소?》

《장군님, 방금 저녁을 먹은 뒤입니다. 배고플 때는 좀 많이 먹는축이지만 식사후에는···》

이때 장철구가 희창이의 저를 뽑아들고 국화의 국수그릇을 갈라넣었다. 국화는 자기 혼자서 그 국수를 다 먹을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먹을만큼 남기고 딴 그릇에 갈라놓은 다음에야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아직 저가락도 대지 않고있었다.

《마침 잘되였어요. 국화동무가 자기 국수를 좀 갈라낸 다음에야 먹겠다고 미루어오던 참인데··· 희창동무가 국화동무의 국수를 대신 감당해주려고 이렇게 불쑥 나타났군요.》

희창이는 철구가 국수를 더 얹어주자

《아, 이러지 마십시오.》

하고 당황한 소리를 지르다가 자기옆에 국화가 머리를 소곳이 하고 앉아있는것을 보자 온몸을 가드라뜨리며 숨결소리조차 없이 주저앉고말았다.

《원, 사양말아요. 총각이라구 내우를 해요. 희창동무가 국수 한두그릇을 축내지 못한다는거야 말이 돼요?》

장철구가 아예 두말 못하게 저가락으로 국수발을 저어주며 말하였다.

희창이는 죽었수다 하고 아무말없이 국수를 량껏 절에 휘감아 입안에 쓸어넣었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빨리 먹고 빨리 자리를 뜨자는 속심이였다.

《희창동무, 목이 메겠소. 천천히 먹소. 이야기랑 하면서···》

장군님께서는 근심스럽게 희창이를 보며 타이르시였다.

희창이가 나타나자 숨소리를 죽이고 온몸을 가드라뜨린 사람이 또하나 있었다. 그것은 국화였다. 국화는 미운 사람이 자기옆에 앉기라도 한듯 자기 오빠쪽으로 약간 돌아앉아 희창이쪽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장철구는 국화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이였다.

《바로 앉아서 노냥노냥 먹어요. 왜 이렇게 덤벼쳐요?》

김주현과 오백룡의 점잖고 틀진 얼굴에도 기쁨이 어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희창이나 국화가 모두 새파란 젊은이들인데다 년장자들앞이라 어색해할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화제를 딴데로 돌리시였다.

《국수는 음식으로서는 더할나위 없는데 한가지 부족점이라고 할가 불편한 점이 있소. 국수는 받자마자 빨리 먹지 않으면 풀어져서 맛이 나지 않고 일단 입을 대면 그릇이 빌 때까지 먹어야 하니 말할 틈이 없소. 국수를 먹을 때는 말을 할수 없으니 슬픔에 잠긴 사람처럼 보인단말이요.》

이 순간 장군님자신께서 석별의 정에 휩싸여있다는것을 알고있는 김주현은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장군님께서 동희의 국수사발을 살펴보시는것을 감촉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대신 국수는 빨리 먹을수 있어 군사행동에는 유리한 때도 있습니다. 밥을 먹자면 10분이 걸려도 국수는 2∼3분에 다 먹을수 있습니다.》

김주현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부엌에 내려가 덧국수를 들고와서 동희곁으로 다가갔다.

《동희, 많이 먹소. 그래야 장군님 마음이 좋지 않겠소.》

동희는 주현이 살뜰하게 권하는 뜻을 짐작할수 있었다. 동희는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많이 먹습니다. 참 오늘 국수맛은 별맛입니다. 이 국수맛을 영원히 잊을것 같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마동희가 국수를 달게 먹는 모습을 보시는것이 그중 기쁘시였다.

《정말 오늘 국수맛이 유별나오. 나도 이 국수맛을 잊지 않겠소.

이제 조국이 광복되면 내가 동무들을 고향집에 초청하여 국수대접을 하겠소. 메밀을 곱게 갈아 국수를 누르고 대동강 맑은 물에 활활 씻어서 쩡한 동치미국에 말아먹으면 그 맛이 아마 갓김치에 농마국수를 만것보다 그닥 짝지지 않을게요.

그때는 내가 부디 김주현동무에게 국수를 눌러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될게요. 철구동무, 어서 희창동무에게 국수를 더 대접하시오.》

희창이는 놀라서 말도 못하고 눈만 더부럭거렸다. 빨리 먹고 이 급한 고비를 넘겨보자고 한 노릇이 더 급한 모퉁이에 몰리게 되였다. 그가 한손을 휘저으며 더는 못먹는다는 의사를 겨우 표현하려 할 때 장철구가 벌써 덧국수를 들고 들어왔다.

희창이는 또다시 국수사리가 불룩하게 솟아오른 국수그릇이 차례지자 혼자서는 다 못먹겠다고 엄살을 피우며 절반쯤 갈라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받아주지 않으니 옆에 소곳이 앉아있는 국화의 빈그릇에 자기 국수그릇을 기울이려고 하였다.

국화는 깜짝 놀라서 빨개진 얼굴로 좌중을 살펴보며 빈그릇을 들고 오빠뒤로 피해버리였다. 희창이는 오빠쪽으로 돌아앉은 국화의 등에 국수사발을 대고 거듭거듭 권하다가 닭 쫓던 개 달을 쳐다보듯 랑패한 표정을 짓고 중얼거렸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군.》

그러자 장군님께서도 웃음을 터치시고 좌중이 모두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었다. 뜻밖에 찾아든 희창이는 귀염둥이 막내처럼 작별의 섭섭한 분위기를 쫓아버리며 흥겨운 기분을 몰아오군 하였다.

그사이 초는 퍼그나 낮아졌으나 장군님을 모신 병실안은 가장을 모신 단란한 가정같은 분위기에 휩싸여 뜨거운 마음과 흥겨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들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강한 인상을 남기며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

 

다음날 아침 해뜰무렵이였다.

김주현이 아침식사를 끝내고 설겆이를 하고있는데 부엌문으로 마동희가 불쑥 뛰여들어왔다. 솜바지저고리에 두툼한 무명목도리를 두른 마동희는 전혀 딴 사람처럼 보이였다. 그는 털모자를 벗어들며 조용히 말했다.

《곧 떠납니다.》

김주현은 아무런 충격도 감회도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준비는 잘되였소?》

김주현은 얼없이 물었다.

《예, 다되였습니다.》

동희는 웃음띤 얼굴로 자신있게 말하며 품속에서 빨간천에 싼 권총을 꺼내여들었다. 김주현은 노란실로 슬가장을 감친 빨간수건을 헤치고 권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장군님께서 애용하시던 소형권총이였다. 김주현은 아직도 그이의 체온과 체취가 그대로 스며있는 권총을 소중히 감싸쥐며 속삭이였다.

《장군님께서 자신의 권총까지 내주셨구만. 낯이 익소···》

마동희는 자랑스럽고 떳떳한 눈길로 권총을 보며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지하사업에서는 사실상 무기라는것이 그닥 소용되지 않지만 생명이 위급할 때는 주저없이 원쑤놈들을 제끼고 몸을 피신할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김주현은 혁명전사에 대한 장군님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가 깃들어있는 호신용권총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채 동희의 손에 넘겨주었다.

《곧바로 강을 건느오?》

김주현은 이제 마동희가 헤쳐가야 할 행군길을 그려보며 주의깊게 물었다.

《장군님께서는 곧바로 강을 건느지 말고 길을 좀 에도는 한이 있어도 부후물치기에 있는 후방밀영에 들려가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부후물치기후방밀영에?》

《예, 그곳에서 며칠 묵으며 지방실정도 알아보고 준비도 더 잘 갖춘 다음 압록강을 건느라고 지시하시였습니다.》

김주현은 잠시 생각해보고나서 되물었다.

《동무는 부후물치기후방밀영에 가본 일이 있소? 그곳 소식은 좀 아오?》

《가보지는 못했지만 안내해가는 동무가 다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무슨 준비를 더 갖출게 있는지 잘 모르겠거던요. 》

마동희는 고개를 기웃하며 김주현이 무엇을 좀 아는게 없는가 떠보려고 하였다.

김주현은 입을 다물었다. 부후물치기밀영에는 바로 동희의 안해 용금이가 있다. 한시바삐 국내에 나가야 할 마동희가 구태여 그곳을 지나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것을 잘 아는 김주현은 장군님께서 마동희로 하여금 자기 안해와 만나도록 해주시자고 일부러 그렇게 로정을 짜주신것임을 짐작하였다. 그런데 본인은 아무런 딴 기미도 채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김주현은 장군님의 후더운 정과 사랑을 느낄수록 그것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된다는것을 명심하고 딴전을 부렸다.

《전에도 보니까 국내로 나가는 동무들이 그 로정을 거치더구만. 다 중요한 일이 있겠지. 장군님께서 짜주신 로정인데 틀림이 있겠소. 그저 장군님께서 하라는대로, 장군님의 의도대로만 하면 그속에 승리도 있고 영광도 있고 행복도 있단말이요. 국내에 가서도 이걸 명심하오.》

김주현이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마동희는 문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며 그쪽을 곁눈질해보았다.

마동희가 자주 길쪽을 바라보는것을 눈치챈 김주현은 그의 손목을 이끌고 문밖으로 나섰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깊은 감회가 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동희, 나는 정말 기쁘오. 동희동무가 장군님께서 주신 중대한 임무를 받고 전날 우리 소부대가 못다한 일을 하게 되였으니 나는 얼마간이라도 장군님 앞에 죄스러운 마음이 덜릴것 같소.》

동희는 전에없이 엄숙하고 절절한 그의 표정을 지켜보며 뜨겁게 손을 맞잡았다.

《저도 생각이 깊습니다. 장군님께서 우리 오누이를 위하여 련대장동지에게 국수까지 누르게 하신 깊은 뜻과 사랑을 저버린다면 제가 무슨 인간이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량심껏 싸우겠습니다.》

《믿겠소.》

김주현은 마동희의 머리에 털모자틀 씌워주고나서 등을 떠밀었다. 마동희는 서너걸음 밀려나갔다가 돌아서서 기울어진 안경을 바로잡고 김주현을 바라보며 싱긋 웃고나서 두주먹을 부르쥐고 숲속으로 달려갔다.

김주현은 앙상한 관목가지를 헤치며 발볌발볌 산허리에 올라섰다. 단 한순간이라도 동희를 더 보고싶었다.

동희가 달려간 산기슭에는 외투를 걸치신 장군님께서 기다리고계시였다. 김주현은 그때야 장군님께서 동희를 자기에게 보내시였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동희는 잠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장군님께서 서계시는 길쪽을 곁눈질해보았던것이다.

김주현은 장군님을 더욱 똑똑히 보고싶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세상이 안개속에 잠긴것 같았다. 그는 나무가지를 헤치며 더욱더 높이 산허리를 타고 올라갔다.

장군님께서는 동희와 나란히 벼랑쪽으로 걸어나가시였다. 벼랑코숭이에는 오백룡이와 국화 그리고 동희를 안내해갈 사람이 기다리고있었다.

찬바람부는 벼랑코숭이에 서서 잠시 동희와 이야기를 나누시던 장군님께서는 모자를 벗고 깊숙이 허리숙이는 동희의 몸을 그러안으시였다.

인사를 올린 마동희는 가파른 벼랑길을 내리기 시작했다. 국화는 마치 오빠와 한길을 떠나는것처럼 동희를 따라걸었다. 동희는 떨어지지 않는 누이동생을 어쩔 방법이 없는듯 그의 손목을 이끌고 미끄러운 벼랑을 내려가고있었다. 얼고 눈에 덮인 벼랑길은 발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장군님께서는 벼랑코숭이에서 떠나지 못하고 벼랑길을 내리는 동희남매의 모습을 살펴보고 계시였다.

그들은 장군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씩씩하게 걸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자꾸만 미끄러져서 비틀거리군 하였다.

이때 김주현은 문득 마동희에게 설피를 신겨보낼걸 그랬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설피는 자기에게도 있다. 눈이 깊어지고 추위가 시작되자 혹시 필요할것 같아 한컬레 만들어 처마밑에 매달아 두었던것이다. 그는 이제라도 설피를 가져다가 눈깔린 언덕과 얼음판을 수없이 걸어 가야 할 동희에게 신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장군님께서도 동희가 눈길을 걷는데 대한 걱정만은 덜하실것 같았다.

그는 산허리를 내려 중대병실로 뛰여갔다.

그런데 부엌뒤 처마밑에 매달아두었던 설피는 온데간데없었다.

《처마밑에 매달아두었던 설피를 누가 치웠소?》

그는 병실문을 열어젖히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방안은 비여있었다. 아침식사를 끝내자 중대원들은 오늘 일과대로 학습실을 꾸리는데 쓸 나무를 지러 숲속으로 갔을것이다. 필경 누가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서 신고 간 모양인데 이제 중대원들을 찾아 가서 알아보고말고 하느라면 동희는 벌써 몇십리밖에 나가있을것이 아닌가.

기어코 마동희에게 설피를 신겨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김주현은 뻔히 헛일인줄 알면서도 안타까운 나머지 병실안팎을 발칵 뒤져 보았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는 하는수없이 단념하고 다시 벼랑코숭이가 잘 보이는 산허리로 치달아올라갔다.

벼랑에서는 이미 마동희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었고 그가 건너간 얼음강판우에서는 눈보라가 낮게 휘몰아치고있었다. 김주현은 어쩐지 한이 맺혀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는 눈에 깔린 관목덤불의 회초리밭속에 펑덩 주저앉아버리였다. 마치도 오늘 그가 받은 모든 강렬한 충격과 자극은 마동희에게 설피를 신겨보내지 못한 까닭에 생겨난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