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3편 2


 

제 3 편

2

 

김주현은 버섯이 담긴 소랭이를 옆구리에 끼고 마당을 지나 이깔나무숲속으로 들어섰다. 숲속에는 그가 며칠째 벼랑밑의 강가로 오고가면서 남겨놓은 발자취가 가느다란 오솔길을 이루고있었다.

숲을 벗어나면 곧 벼랑이였다. 열댓길이나 될 돌벼랑은 사람이 발을 붙일수 없이 가파로왔다. 요행 벼랑갈피에는 밭고랑만 한 틈바구니가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는 저절로 생겨나 모여든 자갈이 쌓여있어서 잘못 건드리면 사태가 일어날 지경이였지만 이곳은 강에 면한 동쪽, 남쪽, 서쪽의 삼면에서 사람이 벼랑에 오를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다. 오중흡이가 이곳에 통로를 내기 위하여 산을 하나 허물어낼만큼 많은 돌을 춰냈다고 말한것이 우연하지 않았다.

불섬복판에는 샘터가 세군데나 발견되였으나 중대에서 퍼그나 멀리 떨어져있는데다가 물은 적고 모여드는 사람은 많았다.

김주현은 부엌에서 쓸 물만 샘터에서 길어오고 허드레물은 강가에 나가 강물을 퍼서 썼다.

강기슭에는 하얀 얼음이 얼고 가운데로는 시퍼런 물이 태없이 흐르고있었다. 그쪽에서는 슴슴한 물비린내가 풍겨왔다. 눈이 녹은 풀밭에서는 매캐한 흙내와 함께 향긋한 건초향기가 코끝을 건드렸다. 후미진 강가의 봇나무에서는 새 한마리가 푸르릉 날아 김주현의 머리우로 지나갔다.

김주현은 문득 고향의 정든 시내물가에 앉아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포근한 구름이 얕게 낀 하늘가는 그 시내물의 끝머리에 펼쳐진 고향의 정든 바다같았다. 고향의 여름정경이 떠올랐다.

거섶을 지른 후미진 시내물우에는 기름도치, 소금장사, 물매미가 떠돌고 앙금이 가라앉은 개바닥물속에는 뱀장어, 가물치, 메기, 빠가사리들이 득실댔다. 해볕에 새까맣게 탄 소년이 자맥질을 하며 고기를 잡아 개장변의 잔디밭에 내던지고있었다. 온몸이 물에 젖어 번질거리는 그 소년은 바로 자기였다. 늘 굶주림을 면할수 없었던 그는 시내가와 바다기슭에 붙어서 먹을것을 건져내야 했다. 만약 김일성장군님께서 혁명을 일으키시고 자기들을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자기는 이제껏 먹을것을 찾아헤매는 한낱 말하는 벌레에 불과했을것이다. 그러던 자기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보람있게 살수 있는 혁명의 길에 들어섰으니 사람으로서 그 이상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호박넝쿨은 덕대만큼 오르고 사람은 깨우치는만큼 자란다. 그는 땅바닥을 기다가 짓밟히고말 의지가지없는 인생으로 태여났으나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혁명대오에 들어선 다음에는 끝없이 억세고 앞길이 창창한 떳떳한 인간으로 되였다.

자신의 반생을 돌이켜보며 인생의 가치와 보람에 대하여 생각하는 그는 몇백년 자랐을 이깔나무며 수만년 변함없이 땅에 뿌리를 박고있는 바위벼랑이며 눈에 뜨이는 모든것을 무심히 바라볼수 없었다.

워낙 평범한 인간도 정당한 혁명위업에 몸바쳐 싸울 때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억세여지는것이다. 그러나 자기 겨레와 자기계급의 의사와 념원을 망각할 때 사람은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로 되여버린다.

김주현은 자기가 바로 그 지경에 빠졌다는것을 생각하자 가슴속에서 산이 허물어지는것 같았다.

그는 손에서 일감이 떨어지지 않는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작식일은 그에게서 유일한 마음의 의지였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거기에 모든 정력을 쏟아부었다.

(내 한몸을 다해 우리 중대동무들이 좋은 조건에서 공부에 전념하도록 해주자. 장군님께서는 중대살림살이를 깐지고 알뜰하게 하라고 늘 가르치신다. 주근주근 말없이 이 일이나 잘해주자.)

김주현은 이런 생각을 하며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일을 시작하였다.

물속에 잠겨있는 불룩한 자루를 끌어내고 그안에서 손더듬으로 만문한것을 한소랭이 갈라냈다. 버섯을 자루안에 넣고 아구리를 오무린 다음 도로 물속에 밀어넣고 그우에 큼직한 돌을 지질렀다.

김주현은 소랭이에서 이미 우린 평풍잎을 하나 뜯어 입안에 넣고 씹어보았는데 뿌드드한 맛도 없어지고 먹을만 하였다.

김주현은 착잡한 생각때문인지 물소리때문인지 자기 등뒤에 오백룡이 다가온것도 알지 못하였다.

《여기 있었소?》

오백룡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김주현은 몸을 돌렸다.

《경위중대장동무가 어떻게?》

김주현은 놀라며 벼랑길을 쳐다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 동무네 중대에 가셨다가 여기로 오시오.》

김주현은 몸을 일으키며 벼랑을 올려다보았으나 눈에 물기가 고여 잘 보이지 않았다.

오백룡은 좋은 일이 있는듯 그저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이는 벼랑길을 오르내리지 않도록 해야 하겠소!》

장군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은 밝고 다정했다.

김주현은 가까이 다가오신 장군님을 뵈옵자 정중히 차렷자세를 지었다.

《주현동무를 만나보기가 힘드오. 》

장군님께서는 김주현의 손을 잡으시고 그의 온몸을 살펴보시였다.

《살림살이를 잘 꾸렸더구만. 동무가 꾸린 부엌과 방안을 다 돌아보았소.》

《아직 변변치 못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의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시다가 강가에 다가서시여 흐르는 물을 오래도록 굽어보시였다.

《산골물치고는 깊구만. 인차 얼어붙지는 않겠소. 물고기가 많을것 같지 않소?》

오백룡이 한걸음 다가서며 대답했다.

《물밑에는 물고기가 씨글씨글합니다. 그런데 오중흡동무가 밀영위치를 로출시키지 않기 위하여 일체 사냥과 고기잡이를 금지시켰습니다. 》

사령관동지께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며 오백룡이를 바라보시더니 혼자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밀영을 경비하는 중대장의 명령이라면 준수해야지.》

그이께서는 김주현을 돌아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 강이 얼어붙으면 산채를 어떻게 우리겠소?》

《강이 얼어붙기전에 대강 우린 다음 끓는 물에 데쳐서 줴기를 만들어 건사해두면 겨우내 먹을수 있습니다. 》

장군님께서는 그럴듯 한 생각이라는듯 머리를 끄덕이시며 강기슭에 놓여있는 산채소랭이를 바라보시였다. 여기서도 그의 고밀고밀한 일솜씨를 느끼실수 있었다.

김주현은 끌끌한 군사지휘원이면서도 궁냥이 있는 후방일군이였으며 알뜰한 살림군이고 훌륭한 료리사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는 자기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중대원들을 보살펴주고있었다. 그것을 느끼실수록 그이께서는 기쁘시였다.

그러나 김주현은 작식일을 잘하는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사람이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령부가 제시한 학습강령이 힘에 부칠수 있으나 주현에게는 그것이 문제로 되지도 않는다. 며칠이면 학습강령을 줄줄 외울수도 있고 가장 유능한 학습강사로도 될수 있는 사람이다.

김주현에게는 인식과정이 급한것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정세하에서 우리 혁명의 근본원칙을 옳게 구현할 립장과 자세를 굳건히 세우는것이 필요하며 실천활동과 결부된 학습토론과 사상투쟁과정에 자기 사업을 구체적으로 총화하고 분석해보는것이 중요하다.

김주현이 식자반에 속해서 학습한다는것은 결국 착실한 작식대원구실이나 하면서 우리 혁명의 운명을 건거나 다름없는 이번 군정학습기간을 어물어물 보내게 된다는것을 의미하게 될것이다.

《강변에 나오니 돌아가고싶은 생각이 없소. 나왔던김에 같이 걸으면서 구경이나 좀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소풍이나 나오신듯 이렇게 말씀하시며 속새풀과 쑥대가 섞여있는 자갈밭을 걸으시였다. 김주현은 정중한 자세로 그이의 옆을 따라걸었다.

강변은 조용하였다. 이따금 발밑에서 자갈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뿐 하늘도 강물도 대기도 얼어붙은듯 고요하였다.

이 짙은 정적은 김주현의 심장을 옥죄였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신듯 오래도록 침묵을 지키시였다. 그이께서는 정말 강구경을 나오신듯 강물과 강변을 살펴보시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주현동무, 내 한가지 묻겠소.》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동무가 식자반에 망라된것을 알고있었소?》

《예. 》

《알고있었단말이지··· 그래서 겨우내 식자반에서 글을 깨치는 동무들과 같이 공부하기로 했소?》

김주현은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것은 자신도 좀 석연치 못해하던 일이였다. 중대장이 대원들과 함께 식자반에서 공부하는것이 어떤가 하고 물어왔을 때 그는 지금 처지에 지휘원들속에 끼여들겠다고 요구하기도 거북해서 적당히 하라고 대답하였었다.

《식자반에 속해도 큰일없습니다. 부지런히 동무들의 시중이나 들어주겠습니다. 》

김주현은 자기의 복잡한 생각과 미타한 구석을 감추며 될수록 간명하게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놀라신듯 한참동안 김주현을 바라보시였다. 김주현은 이때 그이의 마음속에 세찬 충격이 일어나신것을 감촉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 충격을 누르시며 아무런 일도 없은듯이 걸음을 옮기시였다.

《놀라운 일이요. 동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수 있는지 리해가 안되오.》

말씀은 부드럽고도 은근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자기가 식자반에 속해있는 사실로 하여 크게 왼심을 쓰신다는것을 알아차린 김주현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급급히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사령관동지, 저는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습반에 속해서 공부하고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굳이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글을 적게 읽어서 이 지경이 되였겠습니까? 가마를 메고 중대원들의 때식을 끓여주면서 대오를 따라다니는것만 해도 과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어처구니가 없으신듯 시퍼린 겨울하늘을 바라보시며 웃으시였다.

《동무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것 같아서 찾아왔소. 동무는 확실히 나약해졌소. 옳지 않소. 내가 알고있던 김주현동무답지 않단말이요. 동무가 그러면 되오?》

장군님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시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신채 걸음을 옮기시였다.

물론 김주현은 장군님의 이 말씀속에 담겨있는 깊은 뜻을 다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가장 호된 추궁을 받아야 할 지금같은 때에조차 그이께서는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돌려주시며 자기의 옹졸한 생각을 깨우쳐주신다고 생각하니 차겁게 옥죄여들던 심장이 차차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장군님께서는 다정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신을 다잡아야 하오. 괴로와하고 나약해지고 주저앉을 때가 아니요. 동무는 아직 무엇때문에 동무에게 책벌을 주었으며 지금 동무에게 무엇을 바라고있는가 하는것을 잘 모르고있는것 같소.》

김주현은 뜨거운 격정이 차넘치는 가슴을 억누르며 장군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였다.

《주현동무는 인민혁명군에서 제일 오랜 기간 싸운 동무요. 동무는 우리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였으며 어떤 곡절과 진통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소. 우리는 자신의 뼈저린 체험을 통하여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승리는 오직 우리 인민의 힘에 의거할 때만 쟁취할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소. 이것은 그대로 우리 혁명의 기본원칙이며 전략과 전술의 사상적기초로 되고있소. 때문에 우리는 무장투쟁을 기본으로 끌고나가면서도 그 자체가 인민들을 각성시키고 인민들을 묶어세우는 조직정치활동으로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소.》

장군님의 말씀은 한마디한마디 김주현의 심장속으로 흘러들었다. 고개를 떨구고 두손을 앞으로 포갠채 온 정신을 집중하고있던 김주현은 그이께서 말씀을 중단하시자 부지불식간에 그이를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이윽히 자기를 바라보고계시였다. 그이의 눈에는 부드러운 웃음이 어려있었다. 김주현은 자기의 마음속깊이를 바라보시듯 움직일줄 모르는 그이의 인자하신 눈길을 느낀 순간 송구한 생각에 그만 식은땀이 솟았다.

《주현동무가 이번에 금광을 습격하고 국내깊이에로 뚫고들어갈수 없게 된것이 무엇때문인가? 세상에 김주현을 알고있는 사람이면 그 누가 김주현련대장이 사령부의 의도를 잘 모른다고 말하며 또 그 누가 김주현련대장이 사령부의 명령을 고의로 위반했다고 생각하겠소?》

장군님께서는 어처구니가 없으신듯 한번 웃으시고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정세변동은 심하지, 전쟁은 단숨에 끝날것 같지. 사령부에서도 가만히 있을것 같지 않지. 이러니까 우리가 동무와 함께 <원쑤들의 배속에 포대를 뭇자>고 하면서 늘 귀에 못이 박히게 강조하던 국내정치사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의혹이 생기고··· 그래서 그만 헛눈을 팔았단말이요. 말하자면 남의 장단에 춤을 추었소. 그런 사상적탈선을 보통사람도 아닌 조선인민혁명군의 중요간부가 했기때문에 후과는 말할수 없이 크단말이요.》

장군님께서는 괴로우신듯 가볍게 숨을 내쉬시고 오솔길어구에 들어서시였다. 그늘진 얼굴에 입술을 깨문 김주현이 옆에 있었고 그뒤로 경위중대장이 따랐다. 장군님께서는 조국이 있는 남쪽산봉우리 저멀리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이번 군정학습과정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오. 우리 혁명이 이렇게 복잡하지 않다면 동무는 실무적으로 여전히 유능한 지휘원으로 남아있을수 있겠지만 우리 형편에서는 그렇게 될수 없소. 우리에게는 무엇이나 막힐데없이 잘 아는 사람보다는 우리 혁명의 근본원칙에서 절대로 탈선하지 않는 그런 견결한 혁명가가 절실히 필요하단말이요.》

사령관동지의 음성은 단호하게 울리였다. 신심과 락관에 찬 힘있는 음성이였다.

그이께서는 생각에 잠겨 걷고있는 김주현을 바라보시였다.

《이번 기회가 주현동무에게는 특히 좋은 기회라고 볼수 있소. 그러니 동무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또 동무들한테서 배우기도 하면서 부지런히 공부하오. 지금 부대에는 신입대원들이 많은데 그들을 우리 혁명의 근본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데도 주현동무가 한몫을 해야겠소.》

김주현은 고개를 푹 숙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전군을 이끄시여 이 복잡하게 뒤엉켜 태질하며 뒤설레이는 혁명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물결에 따라 향방없이 떠내려갈것이 아니라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한 저 기슭으로 드팀없이 헤여나갈수 있도록 한사람한사람을 튼튼히 준비시키시려는것이다. 그 웅대한 구상속에 자기에 대한 배려도 특별히 큰자리를 차지하고있다고 생각할 때 김주현은 장군님과 같으신 위대한 사령관을 모시기에는 너무나 옹졸한 자기임을 새삼스럽게 통감하는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자기를 아직도 어엿한 지휘원으로 키워내실 생각을 품고계시는데 자기는 고작 심중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도달한 결심이 작식일을 성심성의 잘해서 중대의 학습을 지장없이 보장하자는것이였다.

《아무리 바빠도 혁명가는 학습을 해야 하오. 우리 겨우내 학습을 잘하고나서 다시한번 우리 혁명의 일대앙양을 불러일으킵시다. 전진하고 투쟁하는 혁명의 한길에서 부족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곧 자신을 참된 혁명가로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할수 있소. 옛말에도 한번 앓고나면 더 지혜로와진다는 말이 있지 않소!》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부드러운 눈길로 김주현을 바라보시였다.

김주현은 어쩐지 가슴이 꽉 메여와서 선뜻 입을 열수 없었다. 서뿔리 입을 벌리면 그 어떤 슬픔과도 같은 회오와 감회가 그대로 눈물이 되여 넘쳐날것만 같았다.

그는 두주먹을 움켜쥐고 입귀를 바르르 떨었다. 말을 하려 해도 자기의 그런 심정을 드러낼 말마디가 떠오르지도 않고 설사 말이 떠올랐다 해도 조리있게 옮길것 같지 못하였다.

김주현은 다시 고개를 푹 떨구며 갑자기 진연기에 쐬인듯 갈린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사령관동지 뜻을··· 성의껏 받들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김주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가슴에 넘치는 격정에 비하면 말은 얼마나 초라하고 무미건조한가.

이번만은 장군님의 높은 신임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해드리리라··· 이런 결심이 잠못드는 긴긴 밤들에 터갈라진 그의 가슴깊은곳에 묵중하게 자리잡는것이였다.

강쪽에서는 솨 ─ 철썩하고 물결치는 소리가 땅을 흔들며 울려왔다. 강물은 흐름을 걷잡지 못해 물갈기를 날리며 아우성치고있었다. 김주현은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충격을 걷잡으며 자기가 해야 할 일들과 밝은 앞날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아, 장엄한 원시림이요!》

김주현은 장군님께서 탄복하시며 하시는 말씀을 듣고야 생각에서 깨여나 주위를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신비경에 들어서신듯 두손을 허리에 짚으시고 수림속을 살펴보고계시였다. 김주현은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깊은 숲속에 서있다는것을 발견하고 장군님께서 탄복의 눈길로 살펴보시는 숲속을 둘러보았다.

원시림속은 장중하고 숙연한 정서를 빚어냈다. 댓아름이나 될 대부등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은 해빛도 바람도 마음대로 넘나들지 못했다.

아름드리나무사이의 고르로운 공간속에는 은은한 송진내가 갈피없이 흩날릴뿐 짙은 정적이 깃들어있었으며 노란 이깔나무잎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깃털처럼 서서히 떨어졌다.

이 깊은 숲속 한복판에는 밑둥이 잘리워 넘어져있는 한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다섯아름이나 될 그런 대부등이 어째서 밑둥을 잘리우고 몸을 뺄수 없이 빽빽한 수림속에 어떻게 누울 자리를 얻어냈는지는 누구도 쉽게 알아맞힐수 없었다. 그리하여 호기심이 많고 숲에 대해 조예가 깊은 김주현이도 그럴사한 까닭을 생각해낼수 없었다.

넘어져있는 나무우듬지쪽에서 주둥이를 호물거리며 삵만 한 족제비가 나무기둥을 따라 살금살금 기여오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족제비를 지켜보시다가 통쾌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나무들이 모두 실하오. 모두 이삼백년씩은 자랐겠소. 곧고 실하게 높이 솟아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믿음직해보이오.》

장군님의 말씀은 한갖 나무에 대한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빽빽이 들어찬 거목들을 바라보는 김주현의 귀에는 몸부림치는 물흐름소리가 더욱더 세차게 들려왔다.

《우리가 너무 내려왔구만. 그만 돌아섭시다. 돌아가면서 따로 좀 의논할 일이 있소.》

장군님께서는 숲언저리에서 장엄한 수림속을 다시한번 돌아보신 다음 날파람있게 마구 널려있는 바위등들을 건너뛰시며 모래불까지 나오시였다.

《주현동무는 백암지구의 지형지세를 제일 잘 아는 동무가 누구라고 생각되오?》

김주현은 눈이 둥그래지며 그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 별안간 백암지구에 대해 물으시는 의도를 알아차릴수 없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김주현의 의아해하는 심정을 엿보시고 설명하시였다.

《동무도 아다싶이 백두산서남부인 장백일대와 압록강연안의 혜산, 갑산 지방들은 우리 지하조직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일제의 통치가 완전히 마비된 우리의 근거지로 되였소.

일제침략자들은 이 지역들에서 자기들의 통치권을 세우고 지하조직을 탄압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했으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소.

때문에 놈들이 불원간 마지막 술책에 매여달릴수 있다는것을 예견해야 하오.

권영벽동무는 적들이 무차별적인 총검거선풍을 일으킬것을 예견하고 적들이 아직 눈길을 돌리지 않고있는 새로운 지구에, 백두산과 국내를 련결하는데 지리적으로 유리하며 장백, 혜산, 갑산지대와 린접된곳에 사령부와 직접 련결된 강유력한 지하조직을 꾸리고 적들이 총검거를 단행하는 경우에도 국내에서 줄기차게 투쟁을 계속할수 있도록 대책을 미리 세우는것이 좋겠다고 제기해왔소.

나는 권영벽동무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그 대상지역으로 백암지방이 적합하겠다고 보았소. 그런데 그곳에 나가 활동할 적임자가 누구이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하니 인츰 떠오르지 않는구만. 누가 그 지방실정을 잘 알가?》

김주현은 장군님의 구상과 의도를 알아차리자 문득 가슴이 설레였다. 그는 백암지방을 몇번 다녀보기도 했고 작금년간에는 그 지방변두리를 에돌며오래동안 지하사업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장군님께 그 지방실정을 자기도 잘 알고있으며 더구나 그런 어렵고 중요한 사업은 자기가 맡는것이 적합하다고 말씀드릴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마동희가 백암에서 자라났다는것을 인차 상기하였으나 얼마동안은 입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백암지방실정에는 마동희동무만큼 밝은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하였소. 마동희동무는 백암지방에서 20년동안이나 산 동무요. 마동희만큼 그 지방실정에 밝은 사람이 쉽지 않소. 그런데 어떨가, 마동희동무가 그곳에 나가 사업하자면 힘에 부치지 않을가? 마동희동무에 대해서는 주현동무가 제일 잘알지 않겠소?》

김주현은 깊이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마동희동무는 신입대원이고 경험이 어립니다!》

그 말은 김주현이 마동희를 실지 어리게 보기때문이라기보다 제기된 임무가 너무나 크기때문에 걱정스러워 드린 말씀이였다. 그는 잠시후 심중한 목소리로 덧붙이였다.

《그러나 마동희동무는 성품이 깊이가 있고 의지가 강한 동무입니다. 그리고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자기가 해야 할 책임을 망각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하고야마는 완강성과 성실성을 가지고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마음이 놓이는 동무입니다. 보천보전투때 정찰을 나가서도 일을 잘했고 저와 함께 소부대에 나갔을 때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군중들에게 인상이 좋고 어떤 사람하고나 잘 어울리는 푸접이 좋은 동무입니다. 》

장군님께서는 밝은 얼굴로 강물을 바라보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마동희동무가 신입대원이기는 하지만 그사이 군사행동에서도 많이 발전했고 지하사업에도 바이 경험이 없는 축은 아니요. 입대전에는 백암지방에 반일회를 뭇고 싸우던 동무요. 그 동무가 군정학습을 한 뒤라면 주저할것도 없겠는데···》

《하지만 지금 형편에서도 믿을수 있는 동무입니다. 무슨 일을 시켜도 실수하지 않을것입니다.》

김주현은 이제는 아무리 마음이 간절해도 장군님께서 그처럼 큰 의의를 부여하시는 사업에 자진해서 나가겠다는 청조차 드릴수 없게 된 자기 처지가 새삼스럽게 뼈에 사무쳐오는것을 느끼며 그런중에도 자기가 그 엄중한 과오를 범한 소부대성원가운데서 좋은 사람을 천거할수 있게 된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생각하고 어쩐지 가슴젖어드는 감회를 섞어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한참동안이나 묵묵히 강변을 따라 걸으시였다.

김주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이의 뒤를 따라걸으며 자기 과오의 후과가 지금 국경일대에 자기의 사진과 이름을 박은 공시가 도처에 나붙어 다른 공작원들도 침투하기 어려운 소란한 분위기를 빚어놓은데만 있지 않다는것을 소태를 씹는것 같은 쓰거운 회오속에 통감하였다. 바로 그때문에 이제 마동희나 혹은 다른 그 누가 사령관동지의 과업을 받고 국내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고생을 하게 되고 위험에 처할수도 있는것이다. 만일 그때 중평광산에서 조금만 더 사령관동지의 사상과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였더라면 소부대는 이미 성진이나 더 깊은곳에 자리를 잡았을것이고 장군님께서 지금 이런 심려를 하시지 않아도 될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수록 그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장군님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그냥 생각에 잠겨 걸으시였다. 분명 마동희의 모든 장점들을 남다른 눈길로 찾아보시고도 그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메워 먼곳에 내보내는것이 애처로와 망설이시는것이였다. 동희의 어머니가 자기 자식들을 산에 보내면서는 그러한 망설임에 시달리지 않았을것인가.

장군님께서는 문득 까마득한 회리봉을 바라보시며 김주현에게 물으시였다.

《주현동무, 그 동무가 뭘 제일 좋아하오?》

《저 음식말입니까?》

김주현은 장군님께서 마침내 마동희를 국내에 파견하기로 결심하셨다는것을 직감하고 물었다.

《그래, 음식말이요. 동희동무 어머니가 아들을 유격대에 보내면서 보약을 먹여 보내지 못해서 속을 앓았다는 말이 생각나는구만. 》

김주현은 부지불식간에 코허리가 매워와서 잠시 외면했다가 겨우 대답했다.

《그 동무는 감자바우니까 농마국수를 좋아하는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부대로 나가면서 같이 국수를 먹어보니 휘딱합니다. 뭘 잘먹던 이야기를 한다는것은 언제 들어봐야 국수이야깁니다. 》

《그래, 그 동무가 국수이야기를 하는것을 나도 몇번 들은것 같소. 나처럼 국수를 즐기는 모양이요. 나는 지금도 홍두산밀영에서 주현동무가 눌러준 국수를 먹던 일이 잊혀지지 않소. 그때 국수맛이 참 좋았소. 우리는 밝게 웃으며 련대장이 눌러준 국수를 맛있게 먹었지···》

김주현은 저도 모르게 긴장되였던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띠웠다.

《저도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 국수를 달게 드시고 동무들이 좋아하던 그런 모습을 언제면 다시 보게 될가 하고 자주 생각합니다.》

《그건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게 아니요?》

장군님께서는 돌아서시여 미심쩍은 눈매로 김주현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아닙니다. 지금 저로서는 필사적인 노력으로써 그런 날을 앞당겨오리라는 결심을 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소.》

장군님께서는 한팔로 김주현의 가슴을 뜨겁게 그러안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다른것은 몰라도 국수추렴이야 못하겠소? 어떻소. 주현동무, 여기서도 국수를 누를수 있겠소?》

김주현은 가슴이 뭉클했다. 장군님께서 먼길을 떠나보내시기에 앞서 마동희가 좋아하는 국수를 눌러먹이시려는것이였다.

《있습니다. 홍두산밀영에 비하면 여기는 대처나 같습니다.》

《그럼 됐소. 며칠후 내가 알려주는 날 주현동무가 나 대신 국수를 한번 잘 눌러주오. 소문을 내지 말고 오붓하게 몇사람이 먹을수 있게 해야겠소. 누가 물어보면 내가 먹고싶어해서 누른다고 말하오.》

《알았습니다. 제 성의껏 눌러보겠습니다.》

김주현은 큰 전투과업이라도 받은것처럼 가슴이 뿌듯해지는것을 느끼며 정말 전날 무거운 전투임무를 받았을 때처럼 듬직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김주현의 심중을 꿰뚫어보신 장군님께서도 흡족하신듯 그러안으신 그의 두어깨를 다독이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고맙소.》

강건너쪽의 우중충한 산봉우리사이에는 따뜻하고 포근해보이는 옅은 저녁노을이 비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