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3편 11


 

제 3 편

11

 

겨울날치고는 드물게 포근한 날씨였다. 재봉대가 자리잡고있는 밀영의 산골짜기에 이른아침부터 재봉기소리와 녀대원들의 코노래가 간간이 울리였다. 정안툰전투에서 승리한 기쁜 소식을 들은 그들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천으로 인민들에게 보낼 설빔을 짓고있었다.

한길복군수관이 김윤화가 일하고있는 병실에 찾아왔다. 김윤화는 출입문이 여닫기는것도 모르고 앉아서 부지런히 재봉기를 돌리고있었다. 바쁜 고비는 일단 넘기였지만 그래도 윤화는 천성그대로 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재빠른 손끝에서 군복이 제모양을 갖추어나가는것을 처음으로 보기라도 하듯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한길복은 느닷없이 가슴이 아리였다. 그 재봉기옆에 언제나 실처럼 묻어다니던 종철이가 없었다. 어머니의 일손을 돕는다고 재봉기바늘에 실도 꿰고 흘러내리는 가위밥도 줏군 하며 맴돌던 그애가 없으니 밀영의 어느 한구석이 빈것만 같아 허전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김윤화는 전과 같이 일에 파묻혀 모든것을 잊은것만 같았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말수가 적어지고 전보다 좀 수척해보일뿐이였다.

한길복은 지방조직에서 실, 바늘을 받아오기 위한 운반인원들을 선발하려고 뛰여다니던중이였다. 천은 많은데 실과 바늘이 발랐다. 운반조성원은 전부 남자들로 조직하였는데 한길복은 그속에 윤화를 포함시키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김윤화를 가까이에 불러세우고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매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윤화동무가 좀 수고를 해야겠소. 후방물자를 운반하러 떠나는데 인차 차비를 하시오. 시간이 없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김윤화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한길복의 찌프린 얼굴올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녀대원들을 망라시키지 않던 후방물자운반에 자기를 망라시키는것이 좀 이상하였다.

《어서 준비를 하오. 천과 재봉기바늘도 있고 실토리도 많다는데 동무가 가봐야지 남자들은 뭘 모른단말이요. 잘 살펴보고 필요한것들을 날라와야겠소. 요즘 날씨가 좋아서 행군하기는 괜찮을거요. 좀 멀기는 하지만···》

한길복은 왜 그렇게 서있느냐고 책망하는듯 한 시선으로 김윤화를 쳐다보았다. 윤화가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만 돌아서서 덧옷이 걸려있는 벽쪽으로 나가는데 한길복이 《가만 윤화동무.》 하고 다시 불렀다.

그의 얼굴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은근하고 인정깊은 동정의 빛이 어려있었다. 한길복은 윤화에게 이번 걸음에 종철이를 만나보고 여차하면 데리고 오라고, 그래서 동무를 보낸다고 말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한길복은 생각을 고쳐하였다. 그 일때문에 떠나보내려는것을 윤화가 알면 안가겠다고 뻗칠지 모를 일이였다.

한길복은 의아해하는 윤화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였다.

《차림을 단단히 해야 하겠소. 신발도 바꿔신고 덧옷도 두툼한걸 입고··· 좋소. 어서 준비를 하오. 곧 떠나야 하니까.》

윤화는 보총을 소제하고 알쌈에 총알을 한알한알 끼우면서 생각에 잠겼다. 한길복군수관이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황급히 그만두는것이라든가 재봉일이 바쁜 때에 자기를 보내는것이 다 별스러웠다.

일행은 길을 떠났다. 한겻이 되여 윤화는 다른 남대원들과 함께 해빛이 비치는 산기슭에서 휴식하게 되였다. 북청이 고향이라고 하여 《북청동무》라고 부르는, 말씨가 빠르고 덤비기를 잘하는 동무가 윤화옆에 다가와 앉았다. 성격이 걸걸하고 우스개를 잘하던 그가 오늘은 웬일인지 말이 없고 침울한 얼굴이여서 그러지 않아도 윤화는 유심히 그의 거동을 살피던중이였다.

윤화곁에 다가와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있던 《북청동무》는 밑도끝도없이 이번 걸음에 종철이를 데리고가자고 불쑥 말했다. 윤화는 그가 실없는 롱담을 한다고 가볍게 나무람을 하였다. 《북청동무》는 한길복군수관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꼭 그래야 한다고 덤비며 내우겼다. 그제야 윤화는 자기가 뜻밖에도 이번 후방물자운반조에 망라된 원인을 알게 되였으며 우연히 휴식하기로 된 이 주변이 낯익은곳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윤화는 자기를 위하여 그렇듯 마음을 쓰고 보살펴주는 한길복이와 혁명동지들에 대한 고마운 생각을 금할수가 없었으나 아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결심이 서지 않았다.

아이를 떼놓고보니 자신이 괴로운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옆동무들이 더 안타까와하고 걱정을 했다.

박덕산은 장백에 나가는 길에 들렸다가 한길복을 호되게 추궁하면서 당장 종철의 행처를 알아보라고 하였다.

한길복이자신이 윤화에게 그런 추궁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박덕산의 욕을 먹고는 종철이를 남의 집에 떼놓은것이 자기가 저지른 불찰처럼 그 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괴로와하였다.

윤화는 재봉일을 할 때나 부엌아궁앞에서 불을 땔 때나 언제나 종철이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당장 그애를 찾아온다는것은 옳은 처사같지 않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찾아오지는 않더라도 잠간 만나보는것이야 일없지 않겠는가?)

그의 마음은 종철이를 만날수 있다는 생각만 하여도 벌써 뒤설레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잠시후에는 스스로 도리질을 하였다.

한번 헤여지기도 뼈가 부스러지는것 같은데 또다시 그 무서운 작별을 하자고 아이를 만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성의 목소리였고 감정은 좀체로 굽어들려 하지 않았다.

윤화는 똑똑한 결심을 내리지 못한채 《북청동무》가 마구 끄는대로 세채의 키낮은 귀틀집이 옹기종기 눌러앉아있던 산기슭을 찾아갔다. 그는 마음만 조급해지고 걸음걸이가 휘청거려 도무지 길을 축내지 못했다.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어쩐 일인지 눈앞이 자꾸 흐려져 길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몇번이나 자신을 다잡았으나 안떨어지겠다고 떼질을 쓰던 종철이가 뜻밖에도 순순히 자기곁을 물러서던 일과 꼭 자기를 데리러 와야 한다고 당부하던 일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가. 앓지나 않았을가. 그 집 인정많은 할머니는 여전하신지··· 정말 친정어머니처럼 인자하고 너그러운 할머니였다. 머리 흰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자 문득 등에 진 배낭에 손이 갔다. 종철이보다도 그 할머니한테 빈손으로 간다는 생각이 가슴에 걸리였다. 자기가 여기로 오는줄 알았더라면 치마저고리라도 한벌 마련했을것이였다.

원쑤놈들이 살판치는속에서 지금같이 각박한 세월에 유격대원의 아들을 맡아키운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것을 윤화는 깊이 느끼고있었다.

유격대원의 아들을 키우는것이 드러나기만 하면 목숨을 바쳐야 하는것이다. 그래서 살밭은 일가친지도 덥석 손을 내밀지 않는것이다. 생각할수록 드문 인정이였다. 그렇게 깨끗하고 마음씨 어진 할머니를 빈손으로 찾아갈 생각을 하니 맥이 탁 풀리였다.

윤화는 허둥지둥 눈속을 헤치고 다급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산골짜기에 들어섰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눈속에 묻힌 귀틀집의 거밋거밋한 굴뚝이 어설핀 나무가지사이로 내다보이였다. 한낮이 기울어서 그런지 주위는 조용하고 연기내도 느낄수가 없없다. 조금 더 가까이에 다가간 윤화는 종철이를 맡긴 그 귀틀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문도 굴뚝도 이전 그대로 있고 마당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장작더미도 전대로였으나 어쩐 일인지 사람의 기척을 전혀 느낄수가 없었다.

윤화는 가슴에 두손을 얹고 조심조심 마당가에 들어서서 한참동안 집안의 동정을 살피다가 《할머니 계셔요-》 하고 나직이 불렀다. 두번, 세번, 거듭 불렀으나 안에서는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윤화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떨리는 손으로 부엌문을 슬며시 잡아당기였다. 썰렁한 찬바람이 확 얼굴에 끼얹어졌다. 부엌에서 모이를 쫏던 새들이 열려진 뙤창으로 황급히 날아갔다. 부엌에는 타다남은 장작개비가 널려있고 자그마한 나무절구, 닳아떨어진 몽당비가 댕그랗게 남아있었다. 집은 비여있었다.

윤화는 눈앞이 캄캄했다. 어데로 갔을가, 원쑤놈들이 들이닥쳤을가, 윤화는 황급히 마당으로 뛰쳐나와 다시 골짜기아래로 내달리였다. 그러나 골바닥을 따라 총총히 앉았던 다른 귀틀집들에도 사람은 없었다. 분명 어데로 이사를 간것이였다. 어디서나 사람사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윤화는 그만 맥이 탁 풀리여 눈우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것만 같았다. 불현듯 눈물이 핑 돌았다. 종철이는 윤화에게 있어 희망이였고 미래였고 기쁨이였다. 종철이때문에 윤화는 녀성으로서는 이겨내기 어려운 시련을 용케 이겨냈었다.

종철이가 이렇게 졸지에 간곳없이 사라지고보니 그애는 자기의 희망이고 미래이고 기쁨이였을뿐아니라 자기의 모든것이였다는것을 통감하게 되였다. 자기에게서 속은 다 비여버리고 너울만 남은것 같았다.

윤화는 넋나간 사람처럼 눈덮인 토방우에 세월없이 주저앉아있었다.

《참 뜻밖입니다.》

소리없이 다가선 《북청동무》가 맥빠진 소리로 말했다. 윤화는 당황한 표정을 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다급히 낯빛을 고치며 아무 뜻없이 그의 말을 되풀이하였다.

《정말 뜻밖이예요.》

《아마 왜놈들의 <집단부락>책동때문에 이 집도 해를 입은것 같습니다.》

《예, 왜놈들이 이 집도 <집단부락>안으로 밀어넣었겠지요.》

《너무 상심 마십시오. 어렵긴 해도 어디에 잘 있겠지요. 음력설을 계기로 설빔을 나누어주러 가는 동무들에게 종철이를 찾아보도록 과업을 주고 지하조직을 통해서도 알아볼수 있으니까 어디선가 나지겠지요.》

《그럼요, 설마하니 우리 종철이가···》

김윤화는 얼없이 중얼거리였다. 정말 실성해버릴것 같았다.

《북청동무》도 어지간히 당황해서 한참 빈집들을 돌아다니다가 맥빠진 소리로 중얼거렸다.

《에참, 권영벽동지만 체포되지 않아도 제꺽 손을 써볼수 있는건데···》

순간 절망에 잠겼던 윤화의 눈에 불꽃이 튕겼다.

《예? 그게 무슨 말이예요? 권영벽동무가 체포되다니?》

《북청동무》는 그제야 공연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났으나 이미 해놓은 말을 주어담을수도 없었다. 그는 격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윤화동무, 지금 왜놈들이 장백땅에 널려있는 조선사람들의 부락을 몽땅 불태워버리고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했습니다. 그 사품에 권영벽동지도 체포되였다지 않습니까?》

《그게 언제 일인가요? 확실한 소식인가요?》

윤화는 다급하게 《북청동무》의 팔목을 잡아흔들었다.

《모두 사실입니다.》

하고 《북청동무》는 윤화가 흔드는대로 팔을 내맡기고 남쪽하늘을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 우리가 마련하고있는 설선물이 바로 그래서 준비되고있는것입니다. 상처입은 인민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주시려는 장군님의 어버이사랑이지요. 마음을 굳게 먹읍시다.》

김윤화는 바싹 마른 입술을 바르르 떨며 슬그머니 손을 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을 더 다잡겠어요. 난 그런것을 전혀 모르고 여기까지 허둥지둥 왔군요, 어서 바늘과 실을 가지고 밀영에 가서 인민들에게 보내시려는 장군님의 선물을 마저 짓자요. 우리 종철이야 어린 아이인데 어디에 가서든 잘 있겠지요. 허지만 권영벽동무는 어떻게 지낼가요?》

《권영벽동지는 아마 지금쯤은 장군님께서 친히 조직하신 정안툰전투소식을 듣고 용기백배해서 싸우고있을겁니다. 바로 정안툰전투가 권영벽동지를 비롯한 장백지구 지하조직과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기 위해 장군님께서 친히 발기하시고 지휘하신 전투랍니다. 김주현동지도 그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답니다. 》

《그래요?!》

뜻밖의 소식에 접한 윤화는 한동안 넋을 잃고 멍하니 《북청동무》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불행을 겪고있는 인민들을 생각하시고 혁명동지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 친히 전투를 조직하고 많은 로획물자까지 보내주신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을 생각하면 할수록 잠시나마 나약한 생각에 잠겨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윤화는 비로소 자기가 행군길을 늦추고있다는것을 깨닫고 눈우에서 일어섰다. 휘-하고 눈앞이 돌아갔다. 한손으로 이마를 짚고 가까스로 기둥에 의지하여 중심을 잡은 윤화는 곧 고개를 내젓고 축축히 젖은 눈굽을 훔치였다. 차거운 눈가루는 돌처럼 굳어진 그의 이마에 떨어졌으나 그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채 걸음을 옮겨놓았다. 얼마 못가서 어깨에 멘 총신이 나무가지에 걸려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총을 벗겨 다시 메였다. 어쩐 일인지 총이 전에없이 무거웠다. 앞가슴을 더듬던 그의 손에는 탄알이 박혀있는 탄띠가 감촉되였다. 그제서야 윤화는 자신이 단순히 어머니가 아니라 총을 잡은 유격대원이며 장군님의 전사라는 자각이 머리를 쳤다.

윤화는 입술을 감쳐물고 모두숨을 내쉬였다. 보다 더 큰 비애, 나라를 잃은 민족의 슬픔, 착취받고 압박받고 짓밟힌 이 나라 어머니들의 처참한 정상이 눈앞에 떠올랐다. 윤화는 머리를 떨구었으나 걸음에는 힘이 있었다. 어깨에 멘 총이 가볍게 흔들리자 윤화는 총부혁을 꽉 틀어잡았다. 골짜기를 벗어났을 때 뒤에서 《어머니-》 하고 부르는 종철의 소리가 들리였다. 윤화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나무우듬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리고 주위는 여전히 고요했다.

윤화는 두번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입술을 깨문채 걸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어머니로서 겪을수 있는 불행을 다 겪었지만 참된 인간이 가야 할 길에서 주저앉을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