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6


 

제 2 편

6

 

오늘은 새벽에 작식터를 꾸려야 했다.

김주현은 여느날보다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새벽대기는 겨울날처럼 차거웠다. 성에불린 풀잎들은 칼날같이 손등을 긁어댔다.

김주현은 해뜨기전에 나무를 해서 메다놓고 작식터를 꾸리기 시작했다. 큰 풀대들을 뽑아서 나무단옆에 모아놓은 다음 그 자리에 푸실푸실한 흙을 펴고 다시 꽁꽁 밟아서 다지였다.

이렇게 다진 땅우에 생나무기둥을 둬뽐 간격이 되게 가지런히 뉘여놓고 그 량끝에 작시미만 한 몽둥이로 삼발이덕대를 세웠다. 그 두 삼발이덕대에 바지랑대만 한 생나무대를 걸쳐지르니《부뚜막》이 다된셈이였다.

김주현은 가지런히 놓인 생나무기둥우에 장작가치를 촘촘하게 쌓고 불을 피웠다. 그다음 배낭에서 강낭쌀을 퍼내여 소랭이에 담아가지고 샘터를 찾아갔다.

밥을 끓이는 일은 언제나 분주했다. 짧은 시간에 나무를 해들이고 불자리를 만들어 불을 피우고 쌀을 씻어안쳐야 했다. 그래서 행군중에 밥을 끓일 때는 온 중대가 떨쳐나서군 했다.

그러나 김주현은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했다. 신입대원들의 일솜씨가 서투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주어 전투준비도 하고 휴식도 하게 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개바닥이 드러난 개울웃머리에는 샘물이 솟고있었다. 샘물에는 밤새에 내려앉은 락엽이 한벌 덮여있었다.

김주현은 허리를 굽히고 락엽을 걷어냈다. 오늘따라 별로 손이 시리고 온몸이 오싹하면서 보슴털이 까시시 내돋았다.

밤새 정화된 샘물은 거울같았다. 그 수면우에는 마음이 편치 못한듯 이지러진 자기의 얼굴이 비쳐있었다. 어느새 수염이 검시르하게 자라났고 눈에는 뻘건 피발이 섰다. 그 얼굴은 자기가 보아도 낯이 설었다.

(허, 수염을 밀어야겠는걸!)

그는 무거운 쌀소랭이를 첨벙 물우에 담그었다. 순간 물결이 출렁이면서 수염이 꺼칠하게 자라난 그의 얼굴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날밤부터 그는 열이 나고 골이 지끈거리는것을 느꼈다. 그러자구 물이 그렇게 차보였던지도 모른다. 그저 그러다말겠거니 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오금이 부서지는것 같았다.

병이라고는 알지도 못하던 자기가 하필 이런 때 앓을건 뭐란말인가! 그는 군의라도 찾아볼가 했으나 소문이 날것이 두려웠다. 그는 칡뿌리가 해열과 진통에 좋다는 말이 떠올라 칡뿌리를 캐여 토막쳐가지고 다니면서 남몰래 씹었다. 어떻게 하든 쓰러지지 않고 버티여내려고 결심한것이였다.

그러나 병세는 덜리지 않았다. 김주현은 오늘도 숙영명령이 떨어지자 온몸이 못견디게 쑤셔나는걸 참아내며 일을 시작했다. 간신히 나무를 한단 해지고 중대숙영지를 찾아가던 그는 남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은곳에서 좀 쉬려고 나무단을 내려놓고 기대여 앉았다. 앉자마자 눈이 스르르 감기였다.

《또 나무하러 왔댔습니까?》

바로 눈앞에서 누구인가가 소리를 친 다음에야 주현은 눈을 버쩍 떴다.

희창이가 떡 버티고 서서 자기를 찬찬히 살펴보고있었다.

《어디 불편하지는 않습니까?》

희창이는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들었다. 김주현은 눈을 다시 감고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희창인가? 볕이 좋구만, 따뜻한 볕을 쪼여서 그런지 졸음이 오는구만···》

그는 검질기고 데설궂은 희창이가 자기 몸에 손을 대보지 못하게 하고 비칠거리는 모습을 보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너무 지쳐서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신입대원들에게 시켜도 되지 않습니까?》

김주현은 그의 말을 들은척도 안하고 딴전을 부렸다.

《휴식시간이요?》

그는 눈을 감은채 물었다. 희창이는 약간 스스러워진 말투로 대답했다.

《예. 》

희창은 아직 자기가 앓는다는것을 눈치채지 못한것이 분명한데 자기곁에 기대고 앉을 잡도리였다.

《나무단이나 좀 메다주오. 》

김주현은 옆으로 비켜앉았다. 희창이는 좋아하며 나무단을 우쩍하고 둘러메였다.

《먼저 가오. 내 천천히 따라가겠소.》

희창이는 한걸음도 앞서려고 하지 않았다.

김주현은 잠시 생각해보고나서 말했다.

《그럼 나하고 같이 가다가 우리 중대숙영지가 가까와지면 나무단을 나한테 주오.》

안희창은 그 말을 듣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서 걸어갔다.

《워낙 그 중대동무들이 옳지 않아요!》

희창이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실없는 소릴! 중대는 왜 건드리오?》

그는 나무기둥과 나무가지를 엇바꿔가며 희창이를 따라갔다. 희창이는 와삭와삭 락엽 짓밟는 소리를 내며 중대숙영지를 찾아갔다.

《희창이, 이젠 되였소. 짐을 벗어놓소.》

희창이는 들은척도 안했다.

김주현은 안희창을 다잡으려고 안깐힘을 쓰며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나 걸음이 잘 안되였다. 희창이는 중대성원들이 보이자 나무짐을 벗어던지며 불만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어디론가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또다시 행군은 계속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윤화가 종철이를 남의 집에 떼놓은 일이 생각되여 마음이 언짢으시였다. 주현은 아직 그것을 모르고있었다.

김주현의 걸음새가 이상한데가 있는것 같았고 어덴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데가 있어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한참만에야 그 까닭을 짐작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가시였다. 김주현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낮게 드리운 봇나무가지들을 뚝뚝 꺾으시여 왼팔에 걷어안으시였다. 한아름되는 봇나무가지를 안으신 그이께서는 김주현의 등뒤로 다가서시였다.

(딴 사람이 이렇게 표나는 짐을 멘것을 보면 큰변 났다고 할 동무가···)

장군님께서는 등짐을 찬찬히 바라보시다가 푸른 나무가지를 갈라쥐시고 멜빵에 꽂으시였다. 그바람에 커다란 가마솥이 기우뚱했으나 김주현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짐이 나무가지에 걸린줄 알았던지 고개를 들고 옆에 서있는 이깔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장군님을 발견하고 멈칫 서버리였다. 그는 지팽이를 놓고 황황히 돌아서며 자기도모르게 목메여 웨치듯 말했다.

《사령관동지!》

김주현의 수척한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과 함께 기쁨이 한데 어울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나무가지를 오른손에 갈라쥐시며 범연하게 말씀하시였다.

《돌아서오. 위장을 해야지. 이렇게 눈에 잘 띄울 짐을 지고있으면 적들에게 과녁을 만들어줄수 있소.》

순간 김주현의 입술과 눈언저리에 경련이 지나갔다.

그는 묵묵히 돌아섰다. 장군님께서는 나무가지를 솥을 싼 흰보우에도 고르롭게 찔러넣으시였다.

《이젠 됐소. 어서 걸으시오. 》

장군님께서는 풀밭에 뉘여있는 지팽이를 집으시여 그의 손에 들려주시였다.

김주현은 지체없이 등짐을 뚱기적거리며 중대를 따라갔다.

장군님께서는 손에 묻은 송진을 풀잎에 훔치시며 스적스적 걸으시였다.

앞에는 새로운 벼랑이 나타났다. 그닥 높지는 않지만 나무 한대 붙지 못하게 가파로왔다. 벼랑앞에서는 젊은 대원들의 우렁찬 함성소리가 터지였다. 물결이 바위에 부딪치듯 대오는 사기충천해서 벼랑을 넘어서고있었다.

미끄러운 벼랑에는 발을 붙일수 없고 팔을 뻗치여도 잡을것이 없었다. 게다가 무시로 구적이 무너져 흘렀다.

장군님께서는 대원들과 함께 간신히 구적돌이 밀리우는 벼랑우에 올라서시였다.

벼랑끝에 서신 그이께서는 수건으로 땀을 씻으시며 밑을 내려다보시였다.

커다란 짐을 진 김주현의 모습이 나타났다. 젊은 대원들이 짐을 벗어달라고 말하였으나 김주현은 듣지 않았다.

오백룡이가 김주현을 끌어올리자고 소곤거리자 중대원들이 와르르 그의 곁에 다가섰다. 장군님께서는 중대원들의 마음이 기특하게 생각되시였으나 그들에게 나직이 이르시였다.

《동무들은 주현동무 걱정을 말고 먼저 걷소.》

그이께서는 자신이 있는 이상 김주현이가 젊은 대원들의 신세를 지게 하고싶지 않으시였다.

김주현은 벼랑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허우적이였다. 간신히 둬길 올려붙다가는 쭈르르 미끄러져내려갔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망설이시다가 마침 곧게 솟아올라간 어린 참나무를 발견하시였다. 그 참나무는 벼랑머리에 홀로 서있었다.

그이께서는 참나무그루를 잡으시고 아래쪽으로 휘여보시였다.

아직 밑둥의 껍질도 트지 않고 매끈한 어린 참나무는 활등처럼 휘여도 휘청휘청하였다.

벼랑끝에 나서신 그이께서는 온 몸을 참나무에 실으시며 웃초리를 아래쪽으로 휘이시였다. 참나무우듬지는 기여올라오는 김주현의 정수리까지 내려갔다.

《주현동무, 나무가지를 잡소!》

장군님의 등뒤에 바투 다가선 박덕산이 벼랑밑을 향해 소리쳤다. 김주현은 벼랑탁을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참나무우듬지를 끌어쥐였다.

마치 우물에 빠졌던 사람이 바줄을 잡은것처럼 나무가지를 두손으로 붙잡고서야 김주현은 벼랑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자기를 굽어보시며 한몸을 허궁에 맡기신 사령관동지를 발견한 그는 돌처럼 굳어져버리였다.

《빨리 올라오오.》

두팔로 나무그루를 깊이 휘이신 그이께서는 근엄한 얼굴로 김주현을 내려다보시였다. 김주현은 자기가 우물거리다가는 큰일을 칠것 같아 두손으로 나무가지를 꼭 쥐고 몸의 균형을 잡으며 두발로 바람벽같은 돌벼랑을 재빨리 옮겨디디였다. 봇나무가지로 위장한 커다란 등짐이 이 순간 날개라도 된듯 그의 동작은 날랬다.

김주현이 벼랑끝에 거의 올라섰을 때 장군님께서는 가슴을 활짝 벌리시며 두팔을 쭉 내미시였다.

《됐소. 이젠 손을 잡소!》

김주현은 주저할새없이 두팔을 그이의 손에 맡기였다.

장군님의 손에도 땀이 내배여 축축하였다.

마침내 벼랑우에 올라선 김주현은 멀미가 났던지 구원의 바줄처럼 자기 손에 드리워졌던 얘리얘리한 참나무에 다가서서 눈을 감았다. 돌짐같은 그의 등짐이 부르르 떨고있는데 그의 주머니에는 바줄마디만 한 무슨 나무뿌리토막이 삐죽이 내밀려있었다.

장군님께서 유심히 살펴보시니 그것은 굵다란 칡뿌리였다. 껍질을 벗기고 하얗게 씻은 칡뿌리에는 주현이가 씹어먹은 흔적이 완연하게 나타났다.

순간 장군님께서는 칡뿌리가 해열제로 쓰이던것이 생각나시였다.

슬그머니 그의 손을 잡아보시니 과연 열이 높았다. 김주현은 칡뿌리를 씹어삼키며 병마와 싸우면서 대오를 따라오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저리였으나 범상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동무들의 방조를 받을줄도 알아야지. 좀 쉬오. 중대동무들이 다 올라올 때까지.》

김주현은 마른기침을 몇번 깇더니 눈길을 떨구고 묵묵히 자기 중대가 올라오는곳을 바라보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마선제가 올라와서 중대점검을 하는것을 보시고 그쪽으로 다가가시였다. 박덕산과 오백룡이 따라나섰다.

《떨어진 사람은 없소?》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중대장의 대답을 들으시며 대원들을 살펴보시였다. 모두 얼굴이나 몇번 보신적이 있는 신입대원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잠간 도간을 두신 다음 마선제에게 말씀하시였다.

《중대에 앓는 동무는 없소?》

마선제는 그제서야 눈짐작으로 매개 대원들의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에게 군의를 불러오라고 이르신 다음 중대원들과 떨어진곳으로 몇걸음 옮겨서시였다. 마선제가 불안한 기색으로 따라걸었다.

장군님께서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지휘원들에게 말씀하시였다.

《김주현동무를 잘 도와주어야 하겠소. 중대장동무는 중대에 환자가 없다는데 김주현동무의 눈을 보고도 모르겠소. 주현동무에게 열이 있소.》

박덕산과 오백룡은 물론 마선제는 당황한 눈길로 김주현을 찾아보았다. 멀지 않은곳으로는 다른 중대들이 계속 지나가고있었다.

지휘원들의 당황한 모습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엄한 빛을 띠우고 말씀하시였다.

《애초부터 완성된 혁명가란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혁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혁명의 세찬 폭풍속에서 자신을 더욱 단련하고 혁명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것입니다.

혁명하는 과정에 일시적으로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뜨거운 혁명적동지애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벼랑우에는 쌀쌀한 마가을바람이 설레였다. 노랗게 마른 락엽이 휘날렸다. 그러나 해빛은 아직 자글자글 끓듯이 산봉우리를 비쳐주고있었다.

《김주현동무는 자기가 아프다고 소문낼 사람이 아니요. 그러니 동무들이 함께 있으면서 앓는것도 모르면 되겠소?》

장군님께서는 마선제를 타일러보내면서 김주현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짐을 벗기우고 사령관동지에게로 다가온 김주현은 너무나 송구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야기나 나누면서 걸읍시다. 》

사령관동지께서는 부탁하시듯 말씀하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때 마침 군의가 달려왔다.

장군님께서는 군의에게 김주현을 진찰해보고 치료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