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5


 

제 2 편

5

 

양목정자를 떠난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는 날에 날을 이어 일제침략군을 찾아 행군을 계속하고있었다. 적들이 있는곳이 곧 목적지였고 적들을 부시는 싸움터가 곧 도착지였다. 부대들은 멀고 험한 행군길을 거쳐 구름처럼 나타나 원쑤들을 쳐부시고는 다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일제침략군은 《장춘포위작전》에 나선 항일련군부대들을 포위섬멸할 기도밑에 중요통로들과 유리한 자연요새를 차지하려고 대대적으로 기동했다.

조선인민혁명군관하부대들은 초인간적인 속도로 기동하면서 일제침략군을 앞질러 매복소탕하는 전투들을 련이어 벌리였다. 《7. 7사변》이래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회수는 최고에 이르렀으며 매복전의 회수는 전례없이 높아졌다. 항일련군부대들과의 대결에 집중하고있는 일제침략군의 력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는 《7. 7사변》이후 군사작전범위를 몽강, 휘남, 반석, 흥경, 집안 일대로 급격히 확대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해 된타격을 입은 일제침략군은 중일전쟁의 기본전선인 북부전선에서도 헐떡이기 시작하였다.

정세는 급속히 변화되고 앞길은 더욱 준엄해졌으나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진행한 수많은 전투들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해온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은 환희와 신심에 넘쳐있었다.

장군님을 모신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는 지난밤에도 나무밑에서 락엽을 깔고 한지잠을 자고난후 해빛이 퍼지기전에 다시금 행군을 시작하였다. 해가 퍼그나 솟아올라서야 강산을 덮었던 눈같은 된서리가 사라지고 대오에는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밤새 얼어붙었던 오금이 풀리고 군모채양밑에서는 뜬김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얼음장같은 하늘은 푸르딩딩 독을 뿜는데 밀림에서는 황이 들고 구멍난 락엽들이 대지를 덮어버렸다.

관목덤불속에는 불덩이같이 빨간 아가위나무열매가 주렁져있었다. 땀을 흘리듯 반지르르 윤택이 도는 열매는 저절로 뚝 소리를 내며 락엽우에 떨어진다. 그러면 기다리고있기라도 한듯 락엽들이 밀려와 순식간에 열매를 묻어버렸다.

이깔나무숲에서는 가볍고 작은 털같은 락엽이 사태지듯 쏟아져내렸다. 곧고 높은 나무줄기들이 치뻗은 숲의 공간에는 황금빛 달빛이 쏟아지고있는것 같았다. 굵은 줄기사이로 빛발처럼 가닥가닥 쏟아지는 이깔잎이 앙상한 땅거죽을 매질했다. 단풍나무씨가 날아들고 가지각색 풀씨들이 흩날리였다. 솜털같은 이깔나무잎은 그것들을 고르롭고 일매지게 덮어준다.

여름철에 깨여나 자란 송사리무리까지 마지막 물줄기를 따라 대하를 찾아떠나버리고나니 시내물의 다정하고 줄기찬 노래소리마저 끊어진 개울바닥에는 휘뚜루 너겁이 깔린 메부수수한 모래밭과 거치른 돌서덜이 드러나있었다.

하늘과 땅, 숲과 강 자연의 그 어느 품속에도 겨울이 비꼈지만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의 군모채양밑에는 뜬김이 서리였으며 군복잔등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행군대렬이 자작나무숲을 지나 이깔나무원시림속으로 들어섰을 때 안희창은 신발을 손질하는척 하고 대렬에서 물러났다.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김주현련대장을 한번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5호밀영을 떠난 이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것이 자신의 불찰같아 마음이 괴로왔다.

벌써 대렬은 어지간히 앞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김주현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마선제네 중대가 분명 행군대렬을 따라섰을것인데 이상하였다. 신발을 몇번이나 벗었다신었다 하면서 한참이나 케를 보던 안희창은 그냥 신발만 손질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 대렬을 따라가자니 섭섭하고 안타까왔다.

그러나 단념하는수밖에 없었다. 그가 막 대렬에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이깔나무원시림초입에 한개중대대렬이 들어서는데 맨뒤에 하얀 도리풍에 가마를 싸서 멘 작식대원이 홀로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우리 련대장동지가 아닌가?)

안희창은 가마를 멘 그 대원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군복은 허여스름하게 색이 날았고 지하족은 칡으로 동여매여있었다. 가슴노리의 군복앞주머니와 바지주머니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불룩하게 처져있었다. 영자밑을 둘러친 하얀 수건과 채양을 제껴쓴 군모도 몸에 어울리지 않고 어덴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그 대원은 소중한것을 흘려버리기라도 한듯 허리를 굽히고 풀밭을 살펴보며 이따금 발걸음을 멈추군 하였다.

안희창은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 련대장동지가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었다. 김주현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풀밭을 헤치면서 무슨 풀인가 손으로 뜯어서 살펴보군 하였다. 줌안에 든 어떤 풀은 던지고 어떤 풀은 군복주머니안에 찔러넣었다. 김주현은 성실한 작식대원들이 그러하듯이 행군을 하면서도 식량보탬을 할 나물을 뜯고있었던것이다.

도리풍에 싸인 가마는 김주현이 걸음을 옮기는데 따라 쉼없이 오르내리고있었다. 안희창은 그의 얼굴을 어떻게 보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련대장동지!》

김주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듣지도 못한 모양이였다. 안희창은 좀 더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그제야 김주현은 안희창이쪽을 돌아보았다. 생각과는 달리 그 얼굴에는 반가와하는 기색이 어려있을뿐 놀라움도 민망함도 나타나지 않았다. 안희창은 예전이나 다름없는 련대장의 모습을 보자 한결 마음이 놓이였다.

때마침 대오에 휴식명령이 내렸다.

《퍽 오래간만에 만나는것 같구만. 한숨 쉬고 갈가. 》

김주현은 멜빵을 벗으려 했다. 무엇이든 그를 도와주고싶었던 안희창은 재빨리 짐을 받아주었다. 가마안에는 무엇인가 잔뜩 담긴 배낭이 들어있어 돌짐처럼 무거웠다.

《일없소, 일없소. 》

김주현은 중얼거리며 짐을 안희창에게서 빼앗았다. 그리고는 짐옆에 무릎을 세우고 풀밭에 앉았다.

《동무도 여기 앉소. 힘들지?》

그는 자기옆의 풀밭을 손으로 가리켰다. 안희창은 그의 앞에 다가서서 말없이 은종이꾸레미를 내밀었다. 김주현은 번쩍이는 은종이꾸레미를 보다가 눈이 둥그래져서 희창이를 쳐다보았다.

《이게 뭔가? 나 주려고 얻어왔나보구만?》

김주현은 날카로운 눈길로 희창의 기색을 한번 살펴보며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련대장동지소식을 들은지가 오래지만 이제야···》

김주현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소대장동무한테서 동무이야기를 들었소. 그새 동무네 소대도 전투를 많이 했다지?》

《예, 한대 피우십시오!》

희창이는 담배갑을 그의 무릎우에 놓았다.

《이렇게 많이?》

김주현은 가치담배와 갑담배를 까끈히 살펴보고나서 도로 은지에 쌌다.

《그런데 기관총은 어따두고 빈몸으로 다니오?》

《잠간 딴동무에게 맡겨두고 왔습니다. 》

김주현은 그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이마살을 찌프렸다.

《무기를 남에게 맡기다니, 누구에게 맡겼단말이요?》

《근심마십시오. 믿을만 한 동무에게 맡겼습니다. 그 동무는 갓 배치되여왔으니까 련대장동지는 모르실겁니다. 》

안희창은 우물우물해서 옹색한 모퉁이를 빠져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김주현은 전이나 다름없이 검질겼다.

《누구에게 기관총을 맡겼소?》

《야, 참 그렇게 믿지 못하겠습니까, 믿을만 한 녀성동무가 한 동무 새로 왔습니다.》

김주현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국화한테 맡긴 모양이구만!》

《그건 어떻게 아십니까?》

안희창은 얼굴에 당황해하는 기색을 나타내며 물었다.

김주현은 양목정자를 떠난 얼마후에야 국화도 주력부대에 속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국화는 어느날 쉴참에 찾아와 인사도 하였지만 바빠서 그런지 말은 얼마 하지 않고 돌아갔다.

김주현은 국화가 후방밀영에 있는것보다는 힘들수 있겠지만 자기 오빠와 같이 있게 된것이 잘되였다고 생각하였다.

안희창은 담배갑을 헤치여 가치담배를 하나 꺼내서 김주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어서 한대 피우십시오. 》

김주현은 그가 쥐여준 담배가치를 들고 찬찬히 바라보다가 다시 놓고 안주머니에서 납작한 쥐쌈지를 꺼내들었다.

《한대 피워볼가?》

김주현은 쥐쌈지에서 써레기를 집어 말지에 놓았다.

《가치담배를 피우십시오.》

안희창은 참아내지 못하고 불만기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나? 좀 한가한때는 써레기도 일없소.》

《그래도 이걸 한대 피우십시오.》

안희창의 고집도 여간이 아니였다.

안희창은 동무들한테서 김주현을 위하여 한가치 두가치 모아가지고 온 그 담배를 그가 피우는것을 꼭 보고싶은 심정이였다.

김주현은 그의 권고가 하도 절절하여 가치담배에 불을 붙이였다. 그는 파릇파릇한 긴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00가지 풀을 다 먹을수 있다는데 이 지경에서는 먹는 나물을 찾아보기가 영 힘드오. 진대밭을 몇번 만났는데 버섯도 시원치 않거던···》

《식찬감을 마련하려면 중대에 분공을 주어 모두가 뜯게 하지 않구 어째서 혼자 헤매고있습니까? 혼자서 그러면 중대동무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

김주현은 높은 산봉우리를 쳐다보며 애당초 그의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먼곳을 꿰뚫어보는 그의 눈길은 전날처럼 근엄하였다.

《여기가 어디쯤 되는지 당초 짐작이 안간단말이야. 몽강땅에 들어선것 같기두 하구 림강땅 같기두 한데 똑똑치 않거던.》

김주현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고나서 후유 숨을 내쉬였다.

안희창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남침이 없이도 방향을 갈라보고 지도가 없이도 거침없이 대오를 이끌던 전날의 련대장이 오늘은 자기가 가는곳도 짐작하지 못할뿐더러 자기가 어디에 서있는지조차도 모르고있지 않는가!

김주현은 궁금한것이 많은듯 머리를 기웃거렸다. 안희창은 그가 똑똑한 위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사령부의 작전의도를 잘 몰라 궁금해한다는것을 눈치챘다.

김주현은 공연한 말을 꺼냈다는듯 기분을 바꾸며 안희창의 군복자락밑으로 손을 넣어 허리를 더듬었다.

《일없습니다. 상처더께가 깨끗이 떨어진걸요.》

안희창은 비켜앉으며 황황히 말했다.

김주현은 전번 국내에 나갔다가 입은 상처가 아직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그는 핀잔도 아니고 롱도 아닌 어중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제깍 엎댔기에 한알만 맞았지 계속 기관총을 끌어내겠다고 우물거렸다면 이 모퉁이가 아주 벌둥지처럼 될번하지 않았소?》

안희창은 김주현의 손이 자기 몸에 닿자 고개를 옆으로 돌리였다. 그의 손은 조심스럽게 상처자리를 어루만지고있었다.

상처자리에서 손을 뗀 김주현은 마음이 놓였던지 얼굴에 부드러운 빛을 띠우며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담배는 잘 피우겠소. 그러나 다음에는 이런짓을 마오. 담배도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동냥을 하면 남들이 웃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전 정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

《왜? 동무는 내가 가마를 메고 산나물을 뜯는것이 못마땅하오?》

김주현은 한동안 그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건 옳지 않은 생각이요. 련대장도 작식대원도 다 같이 장군님의 혁명전사요. 》

《허지만 련대장동지는···》

김주현은 그 말을 듣자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었다.

《일을 똑똑히 하지 못하여 혁명에 해를 끼치거나 명령을 어길 때는 처벌받을것을 각오해야 하오. 엄중한 과오를 범하고도 이렇게 전날이나 다름없이 장군님의 혁명전사로 남아있는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요. 지금 내가 괴로운것은 동무들이 모두 용감하게 싸웠는데 내가 결심을 잘못해서 그것이 아무 빛도 안나게 만든거요.》

김주현의 말투는 준절하였고 또 원칙적이여서 안희창은 딴말을 할수 없었다.

김주현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먼산을 바라보며 나직나직 말하였다.

《장군님의 의도를 제일 잘 알고 그것을 언제 어디서나 철저히 관철하여야 할 내가 오히려 장군님께 괴로움을 끼쳐드린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를 않소. 그러나 나때문에 걱정마오. 난 씻을수 없는 과오를 범했지만 장군님을 가까이에 모시고 동무들과 함께 있지 않소? 나는 이 속에서 꼭 과오를 씻겠소.》

안희창은 바투 앉으며 진중하게 말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김주현은 슬며시 일어나 짐옆에 늘어져있는 멜빵을 손질하였다.

《희창이, 이 짐을 좀 받들어주오!》

안희창은 벌떡 일어나 김주현이가 멜빵을 어깨에 멜 때까지 짐을 받들어주었다.

《딴데 정신을 팔지 말고 소대장곁에서 떨어지지 마오. 기관총수는 사령부를 지키는 호위병이요. 잠시도 손에서 무기를 놓지 마오.》

가마를 멘 김주현이 허리를 수굿이 숙이고 걸어갔다.

안희창은 생각깊은 얼굴로 김주현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