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4


 

제 2 편

4

 

한길복은 아침부터 길떠날 준비를 서둘러댔다. 여름과 가을을 무사히 지낸 5호밀영을 떠나 양목정자로 행군해가야 했다.

평상시에는 느리다가도 이럴 때엔 덤빌사한 성미인 한길복은 행군준비를 돌보느라고 병실을 드나들며 잔소리도 하고 짐을 꾸리는 녀대원들의 일손도 도와주면서 날파람있게 뛰여다니였다.

이런 급한 행군이 처음이고 더구나 짐을 꾸리는데 경험이 없는 국화는 한손에는 배낭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재봉기를 쌀 보자기를 든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고있었다. 그의 눈빛은 당황하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침울한 그늘이 어려있었다. 김윤화는 국화의 손에서 보자기를 받아들고 재봉기부터 싸기 시작하였다.

《국화동무, 짐은 될수록이면 간편하게 꾸려요. 재봉기는 배낭우에 얹어야지 이고는 가지 못해요. 산길인데다가 적들과 접전도 할수 있어요.》

국화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김윤화가 하는대로 그의 일손을 돕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언니 종철이가 며칠째 통 말이 없군요. 웬일일가요?》

윤화는 그의 말에 대해 별로 대수로와하는 기색이 아니였다.

《아저씨들이 다 떠나고 없으니 그 애도 섭섭해서 그러겠지. 일없어요. 국화동무가 너무 어루만지기만 하니 그애 버릇이 궂힌가봐요.》

《아니 버릇은 무슨···》

김윤화는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장군님께서 계시는 사령부와 떨어져 생활하게 되고 오빠와도 작별하게 된 국화는 누구보다 마음속이 허전할것이지만 그런 기색은 감추고 오히려 윤화의 가정일을 걱정하고있었다.

윤화는 그런 국화가 한층 의젓해보이고 대견스러웠다.

국화의 짐을 꾸려준 윤화는 처마밑에 달아매놓은 남새씨앗주머니를 조심스럽게 풀어내려 배낭안에 넣었다.

때마침 분주히 앞을 지나가던 한길복이 걸음을 멈추고 배낭안을 들여다보며 한마디 하였다.

《씨앗을 잘 건사하오. 양목정자에 가서 봄이 되면 또 심었다가 장군님께 대접합시다.》

늦은아침이 되여 대렬은 떠났다. 얼마되지 않는 대렬이지만 적들의 경계가 심할것이 예견되기때문에 재봉대녀대원들은 모두가 무기를 메였다. 대렬앞뒤에는 일행을 호위하라고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경위중대의 끌끌한 대원 다섯명이 척후와 방차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첫날행군은 유쾌하였다. 종철이도 잘 걸었고 한길복군수관이 우스개소리도 하여 한결 발걸음들이 가벼웠다. 그러나 행군이 삼일째 되는 날에는 종철이가 발탈이 나서 전혀 걷지 못했다. 손목에 끌려 얼마쯤 가다가는 주저앉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행군대오가 멈춰서고 한길복군수관이 자기의 커다란 배낭우에다 종철이를 올려놓기도 하였다. 다른 남대원들도 종철이를 번갈아 업어야 했다. 윤화는 어지간히 속이 타서 중간에 떨어졌다가 홀로 떠날가 하는 생각도 했다.

행군 나흘째 되는 날에는 예견했던대로 적들과 불의에 조우하였다.

척후로 나갔던 대원 두명이 야산릉선을 넘다가 매복하고있는 적《토벌대》무리와 맞다들어 전투가 시작되였다.

한길복이 총을 비껴들고 윤화한테로 다급히 달려왔다.

《아이를 데리고 먼저 빠지시오.》

윤화는 메였던 보총을 벗어 장탄을 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일없어요.》

《이러지 말고 떠나오. 아이생각을 해야지, 어서···》

총소리가 울리고 대렬은 흩어져 제각기 사격을 시작했다. 윤화는 전투경험이 없는 국화에게 종철이를 데리고 떠나라고 할가하다가 그렇게도 할수가 없어서 잣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종철이를 옆에 앉힌채 사격준비를 하였다.

《종철아, 말을 하거나 소리쳐서는 안돼. 왜놈들이 달려들고있다.》

종철이는 눈을 흡뜨고 입술을 감쳐물더니 머리를 끄덕이였다.

남대원들이 앞에서 적을 견지할 때 한길복은 녀대원들을 인솔하고 뒤로 빠졌다. 대오는 컴컴한 원시림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달려오던 종철이가 앞을 가로막는 나무덤불과 무릎까지 빠지는 진펄때문에 더는 걷지 못했다. 윤화는 종철이의 손목을 잡고 그런대로 뛰느라고 애를 썼다.

대오는 그날밤 나무잎을 깔고 숙영을 하였고 이튿날은 예정한 로정을 멀리 에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행군이 뜻하지 않게 오래 끌고 늘어남에 따라 윤화는 종철이때문에 애를 먹었다.

휴식참에 윤화는 한길복을 찾아갔다.

《군수관동지, 저는 좀 떨어졌다가 후에 가면 안되겠습니까? 양목정자는 제가 잘 알아요. 아이때문에 어쩔수 없구만요.》

《쓸데없는 소릴 마오. 아무렴 우리가 종철이 하나를 데리고 가내지 못하겠소? 그걸 말이라고 하오?》

한길복은 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래도 윤화는 나직이 설복하기 시작하였다.

《군수관동지, 제가 신입대원도 아닌데 찾아가지 못할것 같아 걱정스럽습니까? 이삼일후면 뒤따라갑니다. 믿어주세요.》

《그만하오. 승인할수 없소. 우리가 살아있는 한 동무를 떨구어두고 갈수 없소.》

윤화는 더 간청하지 못한채 그날도 힘에 겨운 행군을 하였다. 동무들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다. 종철이때문에 늘 마음을 쓰다나니 전투도 행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담만 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숙영의 밤이였다. 윤화는 국화와 나란히 림시 지은 초막안에 누웠다. 종철이는 깊은 잠에 빠졌으나 그들만은 오래동안 생각에 잠겨 잠들지 못했다. 이윽하여 윤화가 국화쪽으로 돌아누워 모포를 덮어주며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자는줄 알았던 국화가 윤화의 손을 잡았다.

《언니 힘들지요? 양목정자는 아직 멀었어요?》

《아직 멀었어요! 이제부터는 산이 험해서 적들과 조우할 일은 별로 없겠지만 행군은 더 힘들거예요. 그런데 왜 자지 않고?》

《래일부터는 제가 종철이를 업겠어요.》

윤화는 서글픈 미소를 짓고 국화의 손을 쓰다듬었다. 이런 행군을 처음해보는 국화가 어려운 고비를 용하게 이겨내는것이 대견스러웠다. 게다가 종철이 걱정까지 하고···

《국화동무의 어머님은 아들딸 며느리까지 유격대에 보내고 홀로 계신다는데 얼마나 강직한 어머님이야. 난 말만 듣고도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는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그런 훌륭한 결심을 하셨을가···》

국화는 조용히 누운채로 말을 듣고있었다.

《국화동무, 내 한가지 의논할게 있어요. 우리 종철이말이예요. 남의 집에 맡기자고 해요.》

국화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눈으로 종철이를 찾아보며 부르짖었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저 골바닥에 집이 세채가 있대요. 왜놈들이 보기싫다고 산속깊이 숨어사는 집들인데 그중 한집에는 마음착한 할머니가 살고있대요. 우리 동무들의 일을 여러번 도와주었다는 늙은이라지 않아요. 기왕 그런 집을 만난김에 맡기는것이 옳을것 같아요.》

《아니 장군님께서 아시면 어떻게 해요? 종철이 아버지도 그렇고···》

윤화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국화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혼자 알고있으라요. 다른 동무들한테 절대 말하지 말아요.》

국화는 눈을 크게 뜬채 윤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윤화의 얼굴은 창백하였으나 눈빛은 침착하였는데 이미 모든것을 각오한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그런 눈빛이였다.

국화는 비로소 윤화가 며칠째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군하던 까닭을 알수 있었다. 이러한 놀라운 결심을 하려고 그토록 생각을 곱씹어가며 한것이였다.

윤화에게는 종철이가 기쁨이며 행복이며 마음의 의지이기도 하였다. 유격근거지시기부터 포연탄우속에서 업어키웠다는 아들을 이런 후미진 산속에 홀로 떨구어두고 가자니 윤화가 얼마나 모진 마음을 먹었을가. 그가 별안간 자기 어머니이야기를 꺼낸 까닭도 이제는 리해되였다.

윤화는 국화의 놀라고도 의아해하는 눈길을 띄워보자

(다른 동지들도 모두 그러한 눈길로 대할거야. 하지만 그들도 내 심정을 리해해주겠지. 그들도 모두 나보다 더한 불행을 체험하고 이겨나가는 동지들이니까···)하고 생각하며 입을 감쳐물고 조용히 말했다.

《국화동무, 온 나라 온 민족이 서로 갈라져 살고있지 않아요. 거기에 비하면 국화동무나 나는 행복하지요. 손에 총을 잡고 싸우고있으니말이예요.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피눈물을 흘리고있는 동포들을 생각해보세요. 종철이를 데리고다니는것이 곧 그애를 사랑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

윤화는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러나 말마디들은 별로 국화의 귀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제살보다도 더한 철없는 자식을 떼놓겠다는 어머니의 몸부림치는 고통과 절절한 심정이 가슴에 마쳐 눈물을 흘리였다.

그날 새벽 일찍 윤화는 종철이를 데리고 산골짜기아래로 몰래 내려갔다. 군수관 한길복은 밤새 보초소에 나가있다가 잠이 들었고 작식을 하느라고 국화와 윤화만이 먼저 일어났을 때였다. 윤화는 국화에게 작식을 맡긴후 종철이를 데리고 마을을 찾아 내려갔다. 국화는 떠나는 종철이를 힘껏 껴안으며 오빠에게서 받아두었던 하모니카를 종철의 손에 쥐여주고나서 언뜻 돌아서더니 눈물을 훔치였다. 무엇을 느끼였는지 종철이는 묵묵히 국화한테 꾸벅하고 인사를 하였다.

윤화는 골짜기아래 세채의 귀틀집을 살펴보다가 맨우에 외따로선 귀틀집앞에서 멈추어섰다. 처마끝에 빨간 고추가 매달려있고 동기와를 올린 지붕우에는 아직 따지 않은 하얀 박이 두개 얹혀있었다. 이른새벽이여서 집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조금있더니 정지간 뙤창에 희미한 불빛이 어렸다. 윤화는 한동안 종철의 손목을 꼭 쥐고 누구든 부엌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종철이는 일상 부드럽고 따뜻하던 어머니의 표정이 여느때없이 굳어진것을 보고 기가 질려 한동안 잠자코 있었으나 역시 아이라 한자리에 그렇게 손을 붙잡힌채 서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제손을 뽑아낸 그는 옆에 선 자작나무밑둥에 매달리더니 곧 재미있는 장난거리를 찾아낸듯 주머니에서 접이칼을 꺼내여 뿌리를 후비기 시작하였다.

윤화는 그런것 저런것 느끼지 못하고 마당앞에 방심한것처럼 서있는데 손에 함지를 든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처음에는 놀라는 빛을 띠우고 윤화와 종철이를 바라보다가 주름이 가득 덮인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담고 그를 반갑게 대해주었다. 사람이 귀한 늙은이였다.

윤화는 그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갑자기 꽉 잠겨버린 목소리로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안되는 딱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전해들은대로 인정깊은 할머니였다. 윤화는 다시한번 할머니의 얼굴과 귀틀집을 눈에 익히려는듯 오래동안 살펴보다가 아직도 놀음에 정신이 팔려있는 종철이를 불러 품에 와락 그러안았다.

《종철아, 엄마 말을 똑똑히 들어라. 아버지도 널더러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지? 너는 오늘부터 이 집에서 살아야 한다. 머지 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를 찾으러 올테니 그동안 참아내야 한다! 누구든지 너에게 말을 시키면 어머니가 대준대로 대답해라. 후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꼭 찾아올테니 이 집을 떠나지 말아라··· 종철아!》

윤화는 자기 말에 스스로 놀랐다. 자기가 지금 무슨짓을 하고있는가? 이것이 과연 아이를 낳아키우는 어머니로서 할수 있는 일인가? 자식은 제살붙이라 죽을 땐 죽더라도 사는 날까지 품고 다니며 키워주어야 할게 아닌가?

종철이는 무슨 말인가 해서 반짝이는 눈으로 어머니를 말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눈길은 비수처럼 윤화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비칠거렸다.

(아니야. 조금이라도 나약해선 안돼.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들의 참된 보호자가 될수 있는 세상이 오기전에는 아이들의 운명이란 매한가지야. 내 너를 빨리 찾아가기 위해서라도 홀가분한 몸이 되여 왜놈과의 싸움에 힘을 보태야 한다!)

얼떨떨해있던 아이는 어머니의 눈에 번쩍거리는 눈물을 보고야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온몸을 흔들었다.

《엄마, 난 싫어, 자지 않구 걷기만 해도 엄마하구 있을래.》

종철이는 웃몸을 휘젓다가 어머니의 허리를 감싸안고 얼굴을 품에 푹 묻었다. 종철이의 손에서 접이칼이 철렁하고 떨어졌다.

윤화는 무슨 말로도 애를 납득시킬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종철아, 네가 어머니의 말을 안들으면 어머니가 운다. 네가 어머니를 떨어지지 않으면 어머니는 장군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여기에 남게 된다. 어머니가 총이랑 배낭이랑 다 버리고 유격대를 그만두는것이 넌 좋아?》

종철이는 그의 몸에서 떨어져 울기 시작했다. 윤화는 난생처음 온몸이 불에 타는것 같은 고통을 맛보았다. 그는 매정하게 아들애의 잔등을 떠밀었다.

적들의 총알이 앞에서 날아오면 잔등에 업고 뒤에서 날아오면 앞가슴에 돌려안으며 여섯살이 다 될 때까지 키워온 종철이를 이시각 컴컴한 남의 집 처마밑에 밀어버리게 된것이였다. 종철이는 흐느끼며 울다가 어쩔수 없는듯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쪽으로 돌아섰다.

어린 종철이는 한발자국을 옮기고는 뒤를 돌아보고 두발자국을 옮기고는 뒤를 돌아보군 하였다.

《빨리 가라, 빨리!》

윤화는 정신없이 아이의 등에 대고 속삭였다.

사람이 이렇게도 모질어질수 있을가? 언제 한번 자기자신이 이렇게 모질게 행동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는 윤화는 큰 죄나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떨구고 못박힌듯 서버렸다. 숲사이를 누비며 엷은 아침해발이 비쳐들었다. 무엇인가 발밑에서 반짝하는것을 본 윤화는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접이칼, 종철이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접이칼이였다. 윤화는 누구에게 빼앗길가 두려워하듯 재빨리 칼을 집어들었다. 종철이가 홀로 남의집에 떨어져있을 때 이 칼이 얼마간이라도 외로운 마음을 달래줄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윤화는 무작정 종철이를 부르며 달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윤화는 손바닥을 입에 갖다대고 목소리를 삼켜버렸다. 이제 다시 아들과 마주서면 다시는 그 애의 등을 떠밀어보낼수도 없고 제혼자 발길을 돌려세울수도 없는 자기임을 너무나 똑똑히 느낀것이였다. 눈물이 그렁해서 번쩍거리는 칼을 들여다보는 윤화는 아들애의 그렇게도 사랑하는 그 칼이 그대로 제가슴을 어이는것 같았다.

윤화는 그 아픔에 몸부림치듯 다리를 비틀거리며 마음속으로 목메여 부르짖었다.

(종철아, 용서해라. 이제 네가 철이 들면 이 엄마가 어째서 이토록 가슴아픈짓을 해야 했는지 알게 될게다.)

윤화는 오로지 밝은 앞날을 믿으며 천근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비틀비틀 옮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