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16


 

제 2 편

16

 

장군님께서는 숲속으로 자꾸만 깊이 들어가시였다. 혼자서 착잡하게 뒤엉클어지는 생각을 정리해보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정작 생각의 실머리를 잡자고 하면 쉽게 잡히지도 않으시였다.

어쩐지 할머님께서 그놈들에게 련행되여 백두산기슭으로 돌고계신다는 사실자체가 현실의 일같이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닭털깃이 꽂힌채로 있는 가방속의 통신에 손을 가져가보군 하시였다.

그러나 따져보면 이것은 엄연히 현실적으로 벌어진 일일뿐아니라 진작 예견했어야 할 일이기도 하였다. 왜놈들의 악랄성과 비렬성 그리고 최근에 조선인민혁명군과의 대결에서 련속적으로 맛본 쓰라린 패전의 고배 등을 생각할 때 놈들이 이런 너절한 음모를 꾸밀수 있다는것은 충분히 예견할수 있는 일이였다.

그러나 쉼없는 전투와 행군속에서 시간은 걷잡을수 없이 흘러갔다. 전인류와 온 겨레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침략의 검은 구름과 온갖 좌우경이 빚어내는 파멸적인 후과를 꿰뚫어보고 대책을 세우며 또다시 밀려드는 이런저런 정세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순시도 멈추어세울수 없었던 사색속에서 사랑하는 만경대식구들에게 바쳐진 시간은 너무나 적었었다. 지금 다시 저 카륜으로부터 안도, 왕청으로, 두차례의 북만원정과 남호두, 동강을 거쳐 백두산근거지를 건설하고 보천보전투에 이어 중일전쟁발발과 《열하원정》로선에 대처한 오늘의 행군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새롭게 되풀이하고 새롭게 전략전술을 구상한다 해도 역시 고향집식구들이나 할머님에게 바칠수 있는 시간은 결코 더 많아지지 않을것이다.

이것이 효성이 부족한때문인가, 그래서 그리도 다정하던 할머님은 마침내 저놈들의 악독한 손아귀에 들고만것인가.

장군님께서는 명치끝을 허비고드는것 같은 아픔에 자신도 모르시는사이 고개를 번쩍 들고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분명 조국땅우에 펼쳐졌을 그 하늘 한끝에 할머님의 머리수건같은 구름송이가 보이더니 그 아래로 다정한 할머님의 모습이 우렷이 그려졌다.

언제나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근심을 놓지 못하여 애태우시는 모습이였다. 누가 어디 나가 잠시만 곁에 없어도 무시로 문밖을 내다보고 밤이 깊으면 참지 못하여 동구밖까지 나가 서성거리던 할머님이시였다. 그런 다심한 할머님께서 낳아키우신 자손들은 모두 범상치가 않아서 남의 집 자식들이 아직 밥투정을 할 나이부터 나라를 찾겠다고 험난한 싸움의 길을 떠나갔다. 맏아들, 맏며느리, 셋째아들이 이미 그 길에서 피를 휘뿌리며 쓰러졌고 이제는 벌써 손자들이 그 피로 얼룩진 광복의 길에서 목숨을 바치고있는것이다.

평생을 남리의 척박한 땅을 허비며 무시로 손에 쥔 호미자루는 잊어버리고 자손들이 떠나간 길을 그리움에 차서 바라보시는 할머님께 그 비보가 하나하나 전해졌을 때 가슴아픔을 참으시고 건강치 못한 몸으로 억척같이 땅을 쪼아나가셨을 할머님의 늙음을 어떻게 자연의 소위라 할것인가. 할머님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다름아닌 그런 슬픔이 할켜놓은 흠집이 아닐것인가.

갖은 풍파 다 겪으시고 갖은 설음 다 맛보신 할머님께서 오늘은 바람사나운 만주광야에까지 나서게 되셨다고 생각하시니 흉벽이 이물리는듯 가슴이 아프시였다.

언제나 살뜰하고 다정한 할머님, 가슴에 매달리면 자그마한 몸집이 통채로 웃는것 같던 할머님.

장군님의 눈앞에는 잊을수 없는 추억들이 연줄연줄 떠올랐다.

어린시절 어느 여름날 장군님께서는 기어이 들메나무에 오르려고 하시였다. 비끝에 떠오른 오색령롱한 무지개를 잡아보고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조모님께서는 서둘러 안마당으로 달려가더니 할아버님께서 쓰던 자귀를 가지고오시였다. 할머님께서는 그 자귀로 들메나무그루를 콕콕 쪼아서 홈타구를 촘촘하게 파주시였다.

《이 홈타구를 딛고 오르면 떨어지지 않을라. 실컷 높은 나무를 타보아라!》

그이의 눈앞에는 치마자락을 감싸두르고 들메나무에 올라 암팡지게 자귀질을 하던 할머님의 모습이 어제일처럼 또렷이 새겨지시였다. 그때부터 어언간 스무해라는 세월이 흘러갔지만 어느 한순간도 할머님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고향집의 그 들메나무밑에 서계시기라도 한듯 때마침 걸음을 멈추신 참나무두리를 천천히 거니시며 할머님을 그려보시였다.

할머님을 만나보신지도 이미 1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문득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이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였다는 비보를 받고 만경대에서 림강으로 떠나시던 날이 회상되시였다. 그때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동구에까지 나오시였다. 할아버님은 밤새껏 지은 짚신을 들려주고 할머님은 길을 가면서 배가 고프거던 먹으라면서 자그마한 베보자기를 들려주시였다. 그이께서 무거운 걸음을 떼자 할머님도 따라걸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시였다. 그때 벌써 깊은 주름이 패였던 할머님의 두볼로 눈물이 번쩍거리며 타고내리였다. 토목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어서 가라고 손저어 바래주던 할머님의 모습을 지금도 장군님께서는 그대로 기억하고계시였다.

생각하면 그후에도 조모님을 뵈울수 있는 기회가 한번 더 있었다. 할머님께서는 증손이를 보고싶어 견딜수 없다며 작은삼촌을 따라 무송에까지 오셨었다. 그런데 그때 자신께서는 감옥에 갇힌 몸이시였다.

증손이를 보겠다고 멀고먼 이역땅에까지 찾아오셨던 할머님께서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신채 돌아가게 되였으니 그때 할머님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후에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면 할머님께서는 련일 눈물로 밤을 보내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할머님은 사랑에 주려 눈물만 흘리는 세속늙은이가 아니라 뜻이 깊고 강직한분이였다.

《내가 여기까지 왔다가 성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우리 성주가 조상들의 뜻을 따라 나라 찾는길에 들어선것을 알고 가니 마음이 떳떳하네. 증손이가 출옥하면 할머니가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면서 나라를 광복할 때까지 고향집 사립문안에서 기다리고있겠다고 말해주게.》

장군님께서는 지금도 그때 어머님께서 전해주시던 할머님의 그 말씀이 가슴깊이 간직되여있었다. 농촌에서 태여나 농사로 한생을 늙어오신 할머님이였지만 대대로 물려오는 애국혈통과 자손들의 피어린 투쟁을 목격하시면서 나라를 찾는 일이 사람의 으뜸가는 도리라는것을 굽힐수 없는 신념으로 지니고계신다. 할머님께는 나라를 광복하기 위한 투쟁이 곧 사랑하는 자식들이였으며 자신의 삶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할머님의 광복신념은 절대적인것이며 그만큼 억세고 움직일줄 모른다. 할머님은 어느 한순간도 조국이 광복되고야말리라는 희망을 버린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평생의 고역에 지치고 슬픔에 터갈린 그 실하지 못한 몸으로 악착한 일제특무기관의 손아귀에 들었으니 그 과중한 시련을 어떻게 견디실것인가.

《할머님!》

그이께서는 부지불식간에 신음하시듯 목메인 음성으로 부르시였다. 그 어떤 애로와 난관속에서도 꺼질줄 모르고 빛나던 그이의 눈가에 어느덧 침침한 그늘이 비끼였다. 그이께서는 옆에 서있는 참나무에 한손을 짚으시고 머리를 드시였다. 촘촘히 들어선 참나무우듬지우에는 물기에 젖은 푸른 하늘이 비껴있었다.

(이것저것 돌아다보지 말고 얼핏 달려가 적들을 쳐부시고 할머님을 구출해낼것인가?)

장군님께서는 안타까운 나머지 이런 생각도 해보시였다.

그이께서 이런 생각을 하신것은 이번 행군길에서만도 처음이 아니시였다.

얼마전 양목정자에서 떠날 때 그이께서는 장철구를 통하여 윤화가 로상에서 아이를 남의 집에 맡겼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였다. 그 순간 장군님께서 느끼신 고통도 지금만 결코 못지 않았다.

《조선혁명을 한다고 하면서 그 어린것 하나 내가 건사 못하는가!》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르신 그이께서는 군정학습을 잠시 뒤로 미루더라도 당장 종철이를 찾아올 대책을 세우자고 하시였다.

그때 마침 마동희 오누이가 그이앞을 걸어가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시였다.

생각하면 자식과 가슴아픈 리별을 한것이 김윤화 한사람만이 아니였다.

늙은 나이에 기둥같은 아들 며느리와 딸자식마저 유격대에 보낸것도 마동희의 어머니만이 아니였다.

김윤화가 어린 자식을 남의 집 문전에 떨구어둘 때, 마동희의 어머니가 아들 딸 며느리를 한꺼번에 싸움의 길로 떠나보낼 때 그들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겠는가. 자식들에게는 효성이 모자라서 늙은 부모의 외로운 슬하를 하직하고 바람사납고 날마다 시간마다 죽음이 목을 지키는 싸움의 길에 나섰겠는가.

자식에 대한 사랑도 부모에 대한 효성도 나라가 있고야 락으로 되고 행복으로 된다는 철리에 눈떴기에 이 땅의 녀인들이 피눈물을 가슴속에 깊이깊이 묻으며 자식들을 흔연히 광복성전에 내보내는것이며 자식들 또한 지척에 부모를 두고도 곁눈 한번 팔지 않고 혁명의 한길로만 줄달음쳐가는것이 아닌가.

물론 전투를 하는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필요한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정세는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우리 혁명의 기본원리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키는것을 사활적인 과업으로 제기하고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류례없이 간고하고 복잡한 정세하에서 반년 가까운 장기적인 군정학습을 벌릴 대용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 초입에서 벌써 길을 돌려꺾는단말인가. 멀고 험한 혁명의 길을 과학적인 전략전술적원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시로 제기되는 곡절과 외면하기 어려운 인정사정에 따라 이끌고나간다면 과연 우리 자식들이 진정한 효도를 할수 있는 조국광복의 저 기슭에 언제 가닿아볼것인가.

아니다, 우리 할머님께서 바라시는 효도는 그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열네살에 광복의 길을 떠날 그때 벌써 앞을 막아나섰을것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할머님의 자그마한 몸에 깊이깊이 아로새겨진 만경대일가의 드놀지 않는 신념을 가슴쓰린 추억속에 더듬어내자 결연히 머리를 쳐드시고 사령부자리로 발걸음을 돌리시였다.

거기서는 박덕산이, 오중흡이, 오백룡이들이 아직 헤여지지 않고 토론을 하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흥분한 얼굴과 격렬한 말투가 수상쩍게 생각되시여 물끄러미 건너다보시였다.

《동무들은 아직 여기 있소?》

장군님께서 갈리신 음성으로 나직이 말씀하시자 세 지휘원은 깜짝 놀란듯 그이의 얼굴에 눈길을 모두며 일어섰다. 이때 장군님의 안색은 퍼그나 안정되여있었지만 세 지휘원들의 눈에는 그렇게 봐서 그런지 전같지 않게 생각되였다.

박덕산은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다는듯 솔직하게 보고드리였다.

《사령관동지, 저희들은 방금 작전토론을 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두운 밤에 홍두깨같은 그의 말을 들으시고도 곧 그들의 심정을 눈치채시였다. 그러나 짐짓 모르쇠를 하시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사령부에서는 불섬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했는데 전투는 무슨 전투요?》

그러나 박덕산은 장군님의 못마땅해하시는 기색은 전혀 못느낀듯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단숨에 말씀드리였다.

《사령관동지, 우리는 왜놈의 특무들을 가장 준엄하게 처단하고 박차석을 붙잡아 군중심판에 넘기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모님은 적들의 손탁에서 구원하여 지하조직에서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불을 뿜는듯 한 박덕산의 말에 또다시 견디기 힘든 충격을 받으시며 세 지휘원을 번갈아 바라보시였다. 박덕산은 그이께서 자기들의 소청을 귀담아들어주시는줄 알고 방금까지 결심한 내용들을 죄다 보고드리였다.

《전투는 간단히 해치울수 있습니다. 지금 전투의 규모를 어떻게 잡을것인가 하는것때문에 좀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이러나저러나 매복기습으로 조모님을 구원해내고 박차석을 비롯한 특무놈들을 붙잡아다 군중심판에 붙이는데로 모두 합의하였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결론을 주시면 곧 출발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더는 모르는척 하고 수수방관하실수 없었다. 오중흡이, 오백룡이, 박덕산이들의 얼굴에는 기어코 이 전투를 하여 억울함을 풀려는 드팀없는 결심이 어려있었다. 단단히 설복하지 않는다면 그들중 어느 누가 혼자서라도 전투를 벌릴수 있다. 더구나 박덕산은 방금 소부대를 이끌고 백두산에 가게 되는데 그들의 관점과 립장을 똑똑히 세워주지 않는다면 불집을 일굴것이 틀림없다.

장군님께서는 묵묵히 그들을 향해 진대통우에 앉으시였다.

《동무들, 거기에 앉아서 이야기를 좀 합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랜 혁명투쟁속에서 단련된 동무들이 일의 경중을 갈라보지 못하는게 안타깝소. 대원들이 지금 동무들의 얼굴을 지켜보고있다는것을 잊지 마오.》

장군님께서는 나무라시듯 말씀하시였으나 그 목소리에는 제발 그러지들 말라는 안타까운 호소가 깃들어있었다.

오백룡은 장군님의 그런 심정을 남보다 먼저 감촉하고 불안을 느끼며 황황히 앞질러 말했다.

《사령관동지, 조모님을 구출하고 안전하게 모시는 일은 우리 전사들의 한결같은 소원입니다. 우리 전사들속에서 이런 고통과 모욕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사령관동지께서 가만 계시지 못하실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달갑지 않으신듯 그만하라는 뜻으로 손을 드시였다. 그러자 그옆에 앉아있던 오중흡이 불쑥 일어났다.

《사령관동지, 일제침략군은 우리들의 가장 아픈곳을 건드리였습니다. 사령관동지, 이것은 결코 사령관동지 개인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분노를 그냥은 도저히 묵새길수 없습니다.》

박덕산이 기회를 놓칠세라 다시 일어났다.

《이 전투는 인민들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위신과 명예를 고수하기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한 전투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실로 난처한 일을 당하신듯 잠시 누구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시고 세사람을 번갈아보시였다. 분노와 보복의 일념에 리성을 잃어버리다싶이 한 세 지휘원의 절박한 표정을 굽어보시는 장군님의 가슴도 징하니 젖어드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엄하게 고개를 외로 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여태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왜 관례에 없는 일을 하는지 모르겠소. 전투가 필요하다면 응당 사령부에서 토론되여야 할것 아니요.》

오백룡은 눈치가 무뎌진것처럼 약간 억지스럽게 말했다.

《급히 서둘러야 하기때문에 사령관동지께서 생각하시는 사이 미리 안을 세워보았습니다. 전투는 아무래도 피치 못할 전투가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는 부지불식간에 머리를 저으시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시였다. 그들의 의견에 대하여 한마디로 잘라버리실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는것은 그들의 성의를 몰라주는것으로 되기도 하겠지만 문제가 해결될것 같지도 않으시였다.

《동무들, 그러지 마오. 조선혁명의 한모퉁이를 막아나서야 할 동무들이 외곬으로만 생각하면 되겠소? 우리가 지금 고통스러운것은 사실이나 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형편에 나라를 찾기 위한 투쟁에 전심전력하는것보다 더 중대한 일이 어데 있겠소?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도 전군을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단련시켜야 할 절박한 과업앞에 서있소. 모든 지휘원들은 이 사업을 어떻게 성과적으로 보장하겠는가 하는데 머리를 써야 하오.》

그러자 세 지휘원이 한꺼번에 앞으로 나서며 저마끔 격렬하게 한마디씩 하였다.

《조모님을 적들의 손탁안에 그대로 두고는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도 인간인이상 사령관동지의 조모님을 적들이 마음대로 괴롭히라고 묵인해둘수 없습니다.》

《이런 때 우리 혁명군에 간악무도한 원쑤들을 징벌할 힘이 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인민들도 사기가 올라서 더 잘 싸울겁니다.》

누구 하나 머리를 숙이고 물러설 기색이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은연중 걱정스러우시였다.

《내가 동무들의 고마운 마음을 왜 모르겠소.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오. 우리 할머님은 록록치 않은분이요. 그 할머님의 품에서 자라난 아들들이 모두 혁명의 길에 나섰고 오늘은 손자들이 싸움의 길에 나섰소. 우리 일가가 모두 집생각을 잊어버리고 마음놓고 싸울수 있는것도 할머님의 든든한 뒤받침이 있었기때문이요. 우리 할머님은 결코 원쑤놈들앞에서 허리를 굽힐 늙은이가 아니요. 그리고 동무들은 이 사건뒤에서 적들이 노리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것도 생각해보아야 하오. 놈들이 우리가 손을 들고 산에서 내려올것이라고 믿겠는가? 아니요. 우리의 위치라도 알아내려는 야심이요. 만일 그렇게 되는 날이면 우리가 그렇게도 큰 의의를 부여한 군정학습은 못하게 되오. 동무들이 기분에 사로잡혀 리성을 잃고 행동하다가는 적들의 모략에 말려들수 있소.》

《할머님께서 그렇게 강의하시기때문에 놈들은 더 괴롭힐것입니다. 그리고 그놈들의 음모란 뻔한것입니다. 권영벽동무도 그런것을 다 예견하고 의견을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그걸 다 예견하고 대책을 세운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박덕산은 그 천성대로 끈덕지게 나왔다. 그것이 장대한 몸집과 처참해보일만큼 컴컴하게 질린 표정과 어울려 이 사람을 설복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강한 인상을 자아냈다.

장군님께서는 응원을 청하시듯 오중흡이와 오백룡이쪽을 돌아보시였다. 오중흡의 눈은 끌날같이 날이 서있었고 오백룡은 금시 울음이라도 터칠것 같은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이처럼 억척같이 막아서는 인정의 장벽앞에서 그렇게도 억세게 다진 마음의 탕개가 풀리려는것을 느끼시자 세차게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리고 엄한 어조로 부르시였다.

《덕산동무.》

너무나 절박한 생각에 잠겨 오직 장군님의 허락만 기다리고있던 박덕산은 한참후에야 장군님께서 부르신 엄한 목소리가 자기를 찾으시는것임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동무는 권영벽동무가 보낸 통신내용을 한 측면만 이야기하고 왜 그놈들이 꾸미고있는 다른 음모에 대해서는 모르는척 하고있소?》

박덕산은 장군님께서 물으시는 뜻을 선뜻 리해할수 있었다. 권영벽은 이런 비상통신에서 조모님에 대한 소식과 함께 적들이 장백일대와 혜산, 갑산일대의 지하조직선을 색출하지 못하게 되자 십중팔구 이 지역의 전체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총검거하는 마지막길에 매여달릴수 있다고 하면서 장백, 혜산, 갑산과 지역적으로 린접되고 백두산과의 련락조건이 좋으며 국내 각지와도 손쉽게 련결될수 있는 새로운 지역에 사령부와 직접 련결된 지하조직선을 내오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권영벽은 적들의 주목이 돌려지지 않은 백암을 비롯한 국경가까운 지역에 새로운 지도선을 내옴으로써 적들이 총검거를 단행한다 해도 그에 맞서 힘차게 투쟁해나갈수 있는 대책을 미리 강구해두자는 의도였다.

박덕산은 할머님의 일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마음을 쓸 경황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박덕산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자 타이르시듯 말씀하시였다.

《정세가 긴박하고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까짓 특무 몇놈을 족쳐버린다고 마음이 시원하겠소. 지금 토론을 한다면 이런 실제적인 문제를 토론해야 하오. 요컨대 이것은 사령부에서 우수한 정치공작원을 그 지대에 미리 침투시키자는것인데 지대가 적합한지, 보낸다면 누구를 보낼것인지··· 이런 문제를 연구해야 한단말이요.》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의 옭맺힌 마음을 풀고 팽팽한 분위기를 눙치시려고 일부러 실무적인 문제를 꺼내여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세사람중 아무도 그 문제에는 끌려들지 않았다. 이 문제의 담당자나 다름없는 박덕산이조차 괴로운듯 고개를 비틀며 여전히 조모님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린 목소리로 안타까이 말하였다.

《사령관동지, 우리는 혁명의 길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견디여왔습니까? 그러나 이번 일은 전체 인민혁명군대원들과 온 겨레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것마저 참는다면 우리가 참지 못할 고통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령관동지의 가슴은 터져나갈듯 답답하시였다. 준엄한 싸움의 길을 함께 걸으며 웃어도 함께 웃고 울어도 함께 울던 전사들, 태여난 고장은 비록 달라도 혁명의 한길에서 생사를 같이하기로 운명지어진 전우들의 뜨거운 사랑과 의리가 담긴 부탁을 마다하시기가 이처럼 어려울줄은 상상도 못하시였다.

그러나 아무리 인정이 후더워도 그 눈물속에 혁명의 리익을 용해시킬수 없다고 다시한번 굳게 마음다지시였다.

그 어떤 절절한 호소에도 추호의 움직임도 없는것 같으신 그이의 엄한 안색을 눈물이 그렁해서 지켜보던 오중흡이 울부짖듯이 말하였다.

《사령관동지, 너무하십니다. 전에 권영벽동무의 부친의 시신을 왜놈들이 재벌화형을 했다는 보고를 받으셨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자비한 보복전을 조직하시지 않았습니까. 그전에 정안군놈들이 로흑산의 인민들을 못살게 굴었을 때는 또 어떠했습니까. 그런데 만경대조모님께서 오직 사령관동지의 혈육이라는 리유때문에 적들의 손에 들어 갖은 고생을 다 하셔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단말입니까?》

《그만두시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세 지휘원들도 따라 일어섰다.

그이의 얼굴에는 준엄한 기상이 어리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그이의 안색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와 함께 어조도 가라앉았다.

《동무들, 정말 이러지 마오. 동무들이 나를 생각해서 이런다는걸 모르지 않소. 그러나 이것은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것으로 되지 못하오. 나는 조선혁명을 하러 나섰지 우리 조모님 한분을 구하자고 나선 사람이 아니요. 겨레를 구하자고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삼촌도, 동생도 다 목숨을 바쳤소. 우리 할머님 역시 그렇소. 자신의 일신이나 편안하자면 무엇때문에 자식들을 모조리 혁명의 길에 내세웠겠소. 그건 동무들도 다 같은 립장이요. 동무들이 자기 집안식구나 배곯지 않게 먹이고 그럭저럭 살아가자면 재간이나 힘이 모자랄 사람들이요? 우리는 혁명을 해야 하오.》

《사령관동지.》

오중흡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웨쳤다.

《조모님을 구원하는것도 우리 혁명을 위한 일이 아닙니까?》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오중흡의 눈물어린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그리고 박덕산과 오백룡이쪽으로 서서히 눈길을 돌리시였다.

《동무들이 이러면 못쓰오!》

그이께서는 준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눈에는 어떤 폭풍속에서도 드놀지 않을 신념이 불타고 입가에는 그 어떤 간난시련도 헤치고갈 강철의 의지가 비끼였다.

장군님께서는 높지 않으나 천만산악을 한손에 움켜쥘것 같은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이 전투를 하지 못한다는 리유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리유는 이 전투로써 조선의 모든 할머니들과 어머니들, 안해들과 아이들의 원한을 다 풀고 그들모두를 구원하지 못하기때문이요. 우리는 조선을 구원해야 하며 조선의 모든 억압받고 착취받는 인민들을 구원해야 하오. 그 결정적인 전투에서 승리할 힘을 마련하기 위하여 지금은 마당거우로 들어가야 하오. 지휘원동무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구호는 어떤 일시적이며 즉흥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로 우리 인민의 사활적인 운명과 관련된 구호라는것을 잊지 마시오.

토론은 끝났소. 모두 자기 위치로 가서 대오를 정렬시키시오. 전군을 즉시 마당거우로 출발시키시오.》

세 지휘원은 한순간에 낯빛이 컴컴하게 죽어버렸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명령앞에 언제나 습관된 군사동작으로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목들은 별안간 잠겨버려서 말이 새여나오지 못했다. 다만 박덕산의 조갈이 든 입술사이로 무엇인가 바람소리같은것이 울려나왔으나 뜻을 가늠할수는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의 낯빛도 눈에 번쩍거리는 이슬도 그 모든것을 더는 보시지 않겠다는듯 몸을 돌려 이제 전대오를 정렬시킬 공지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이윽고 밀림에는 집합나팔소리가 랑랑하게 울려퍼졌다. 웃음소리, 노래소리로 떠들썩하던 숲속에 전류가 흐른듯 순식간에 정적이 깃들었다. 간간이 대렬을 통솔하는 지휘원들의 짧고 엄한 구령소리만 토막토막 울려나와서 갑자기 이 밀림에 깃들인 정적의 엄숙한 의의를 강조하는듯 하였다.

《출발하시오.》

사령관동지께서 한손을 높이 들어 마당거우 불섬쪽을 힘차게 가리키시자 나팔수가 행진곡을 불고 조선인민혁명군은 그쯘한 대오를 짓고 숲속을 누벼나갔다.

이미 소부대성원들과 함께 사령관동지께 작별인사를 올린 박덕산과 자기 중대원들을 출발시킨 오백룡이, 오중흡이 말없이 그 옆에 달려와서 멀어져가는 사령관동지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천년묵은 거목처럼 억척스럽게 서있는 그들 세 사나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없이 샘솟아 비바람에 트고 갈라진 볼을 타고 내리더니 마침내 그 쩝쩔한 소금기가 무쇠같은 심장에까지 배여드는지 큰가슴들을 움켜안고 외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