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15


 

제 2 편

15

 

밀림속은 밝고 유쾌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얇게 깔렸던 흰눈을 밀어버리고 포근한 락엽층우에 모여앉아 총과 배낭, 신발과 군복을 손질하면서 끝없이 신바람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터뜨리는 대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대원들은 동심에 잠겨 많지도 못한 눈을 움켜쥐고 눈싸움을 벌리기도 하고 또 어떤 대원들은 시간을 아껴가며 신입대원들의 조준련습을 도와주고있었다.

간고한 전투와 오랜 행군끝에 차례진 휴식이라 누구의 얼굴에나 웃음이 어리였고 노래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오랜 행군끝에는 의례히 뒤따르게 마련인 관습화된 유격대의 생활풍경이라고도 말할수 있었다. 그러나 련락소에서 권영벽의 비상통신을 받아쥐고 달려오는 박덕산에게는 수림속에 차고넘친 이 밝은 분위기가 너무나 뜻밖이였다. 그의 가슴에서는 삽시에 어떤 격분에 가까운 감정이 서슬덩이처럼 굳어졌다.

수림속의 흥겨운 분위기속에 들어선 박덕산은 컴컴하게 질린 얼굴을 푹 숙이고 덤불이건 눈더미건 가리지 않고 와삭와삭 밟으며 걸음을 마구 옮겨놓았다. 그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경황도 없이 곧바로 사령부를 찾아가고있었다.

장군님을 모시고 즐거운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는 대원들은 몸집이 큰 박덕산이 전에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황황히 걸어오는 모습에 그닥 주의도 돌리지 않았다.

그의 류다른 기색을 처음으로 띄워본 사람은 오백룡이였다. 그는 머리우에서 수류탄이 터진다고 해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을 박덕산이 무엇때문에 이처럼 경황없는 기색이 되였을가 하고 생각하며 천천히 그를 맞받아나갔다.

《정치위원동지.》

박덕산은 오백룡이 코앞에까지 다가선 다음에야 그를 알아보았다. 박덕산은 만나지 못할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듯 못마땅한 눈으로 한참동안이나 바라보고나서야 퉁명스럽게 물었다.

《사령부는 어디 있소?》

《저쪽에 기관총소대동무들이 보이지요? 그옆에 커다란 봇나무가 한그루 서있는데 이쪽으로 좀 나서면 곧장 보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금 거기에 계시는것 같습니다.》

오백룡은 박덕산의 눈빛이 아무래도 심상찮게 생각되여 될수록 친절하게 하느라고 사령부의 위치가 잘 보일 자리로 그의 손을 잡아 이끌며 곰살궂은 말투로 설명하였으나 박덕산은 손을 뿌리치고 오백룡이 끄는 자리로 가지도 않았다.

《아니 왜 그럽니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오백룡은 박덕산의 거동을 보고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의 상징처럼 통해있는 박덕산이 이쯤 나오는것을 보니 일이 생겨도 이만저만한 일이 생긴것 같지 않았다.

문득 그가 기본대오와 떨어져서 련락소에 다녀오느라고 이제야 도착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박덕산이만 결코 못지않게 성미가 유하고 태평인 오백룡이였지만 덤비기 시작하였다.

《노래랑 부르고 갈갬질이랑 하는걸 보니 모두 마음들이 편한 모양이군. 내 사령부에 갔다오겠으니 좀 기다리오.》

박덕산은 입이 쓰거워 긴말할 재미가 없다는듯 눈더미채 락엽을 걷어차며 사령부쪽으로 걸어갔다.

오백룡은 뗑해서 마치 돌진하듯 마구 걸어가는 박덕산의 커다란 허우대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한번 기웃하고나서 저도 슬금슬금 뒤를 따라갔다.

걸음을 옮겨놓으며 휴식장소를 살펴봐야 잘못됐다고 볼만한것은 하나도 없었다. 늘 사령관동지를 모신 친솔부대의 체모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강조하군 하는 박덕산의 눈에 혹시 여기저기 널린 휴식장소들이 산만하게 보인것이나 아닐가, 그러면 그렇다고 말할것이지 공연히 노래를 부른다고 생트집을 걸건 뭔가, 아니다. 일은 분명 바깥에서 벌어졌다. 이렇게 판단한 오백룡은 결단성있게 걸음을 다우쳤다. 혹시 박덕산의 보고를 받으신 사령관동지께서 어떤 급한 조치를 취하시게 될지 가늠할수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백룡이 가리킨 바로 그 봇나무밑둥에 앉으시여 오중흡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내속이 복잡한 전령병의 기관단총을 손질하고계시였다.

《사냥군들이 모여든다는것은 큰 짐승이 있다는걸 말하는것인데 한번도 맞다들리지 않았다니 이상하지 않소. 사냥군에 대해서는 더 말할것도 없지만 짐승들에 대해서도 경각성을 높여야겠소. 혹시 그놈들이 저네 보금자리를 빼앗았다고 접어들지 알겠소.》

《제가 지휘원동무들한테 설명을 하겠습니다. 사실 큼직한 짐승을 몇놈 잡기만 하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겠는데 그놈들이 감히 유격대한테 접어들기야 하겠습니까.》

오중흡은 웃음의 소리를 하면서도 시종 단정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하기는 안도의 곰은 유격대를 알아보고 꼭꼭 <토벌대>만 해쳤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말만 믿다가는 랑패를 보기 쉽소.》

사령관동지께서는 기관단총의 기관부를 결합하시고나서 껄껄 웃으시였다. 오중흡이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늑하고 화기로운 분위기를 깨뜨리며 박덕산의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다가왔다.

장군님께서는 박덕산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띄워보시자 기관단총을 전령병에게 넘겨주시고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벌써 왔소? 무던히 걸음을 다우쳤구만. 200리 가까이 에돌았겠는데···》

장군님께서는 짤막한 도착보고를 하고는 웬 까닭인지 손을 모자채양에 갖다댄채 차렷자세로 그냥 서있을뿐 좀체로 입을 벌리지 못하는 박덕산의 전에없는 거동을 보시고 짐짓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벌써 불안한 예감이 그이의 가슴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권영벽이와 련결되여있는 그 련락소에 박덕산의 표정을 저쯤 변모시킬만 한 소식이 들어왔다면 그건 벌써 어떤 개별적조직의 개별적정황이나 사소한 일일수가 없는것이였다.

박덕산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갑자르니 방금까지 장군님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오중흡이며 박덕산의 뒤를 따라온 오백룡이도 몸둘바를 몰라했다.

《사령관동지!》

박덕산은 목을 비틀어짜내듯 가까스로 한마디 불렀으나 곧 잇대일 힘이 진해서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

《말하시오. 무슨 일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머리속에는 장백과 국경 일대에서 있을수 있는 좋지 못한 이런저런 징후들이 한꺼번에 수십장면이나 떠올랐다.

박덕산은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쭈밋거리더니 품안에서 닭깃이 꽂힌 봉투를 꺼내였다. 봉투의 한쪽귀를 어이고 닭의 깃을 꽂는것은 장군님께 한시바삐 가닿아야 할 비상통신임을 표시하는것이였다.

그것을 본 오중흡이와 오백룡의 표정은 굳어졌다.

《계모신이군.》

장군님께서도 내심 긴장되시였으나 심상한 어조로 말씀하시고 봉투를 받아드시여 앞뒤면을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그이의 앞에는 참혹할만큼 비통한 표정을 짓고있는 박덕산과 불안에 침묵해버린 오중흡, 오백룡이 서있었다.

장군님께서 봉투를 뜯으시고 속지를 꺼내여 읽으시는동안 박덕산은 차마 장군님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오중흡과 오백룡이도 지금은 박덕산의 본을 딸수밖에 없었다.

통신문을 읽으시는 장군님의 눈에는 한순간 번개같은 섬광이 벙긋하고 지나갔다. 고개를 떨구고있으면서도 그 섬광이 정수리를 지지는것 같은 예리한 감촉을 받은 세 지휘원은 거의 동시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항용 장군님의 눈빛에 그런 섬광이 번쩍일 때면 금시 강산을 진동시킬 분노가 터져오름을 잘 알고있는 그들은 당장 그 어떤 전투명령이 떨어질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그냥 편지를 읽어나가시였다. 다만 한쪽손에 쥐고계시던 닭깃이 꽂힌채로 있는 봉투가 어느새 그이의 줌안에서 비틀리우고있는것을 본 세 지휘원은 방금 장군님의 눈빛에 어린 그 섬광이 우연한것도, 빗본것도 아니였음을 알게 되였다.

《너절한놈들!》

장군님께서는 편지를 다 읽으시자 찬찬히 구겨진 봉투를 펴시여 속지를 밀어넣으며 웅글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그것은 지심깊이에서 끓는 용암이 굳고 두꺼운 지각을 뚫고 가까스로 삐여져나오듯 장군님의 억세인 마음의 문을 테고 새여나온 한마디말씀에 지나지 않았으나 벌써 그밑에 깔린 엄청난 열과 힘을 충분히 드러내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더는 한자리에 서계시기가 힘드시여 몇걸음 거니시였다. 그러다가 손에 쥐신채로 있는 깃털편지를 철문속에 간직하듯 전투가방속에 깊숙이 밀어넣고 뚜껑을 꾹 눌러닫은 다음 고리를 바싹 조여서 채우시였다.

《덕산동무.》

하고 세 지휘원들쪽으로 돌아서시였을 때 그이의 목소리는 이미 여느때의 그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고르롭게 울려나왔다.

《동무는 이미 토론된대로 소부대를 이끌고 백두산쪽으로 떠나야 하겠으니 푹 쉬오. 오중흡동무와 오백룡동무도 자기 중대로 가서 대원들의 휴식을 잘 조직하면서 출발준비를 갖추시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치 소풍이라도 하듯 숲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면서 차츰 대원들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시였다. 전령병이 무슨 일인가 해서 고개를 기웃거리며 그이의 뒤를 멀찍이 따라섰다.

장군님의 모습이 숲속에 사라지자 오중흡과 오백룡은 일시에 박덕산에게로 죄여들며 한꺼번에 물었다.

《무슨 일이요?》

박덕산은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고 돌부리에 주저앉아 눈이 녹아 번지르르해진 락엽들을 두손으로 와락와락 밀어헤치더니 짧다란 꼬챙이로 땅을 벅벅 파헤치며 지도를 그렸다.

《자, 여기를 똑똑히 좀 보오.》

박덕산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두사람을 번갈아 쏘아보더니 나무꼬챙이로 방금 자기가 그려놓은 지도의 한곳을 쿡쿡 찍으며 전투장에서처럼 소리쳤다.

《여기가 백두산이고 여기 이것은 압록강이요.》

그러나 오중흡이도 오백룡이도 영문을 몰라 숨을 씩씩거리는 박덕산을 어색하게 바라볼뿐 시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 멍청해들 있는거요.》

박덕산은 버럭 소리지르더니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신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왜놈의 특무들이 만경대할머님을 강제련행해가지고 이 백두산주변을 돌아치고있단말이요. 장군님께서 제놈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할머님을 해치겠다고 위협하면서말이요. 무슨 소린지 알만하오?》

《뭐요? 그게 똑똑한 소리요?》

오백룡이 펄쩍 뛰며 락엽과 진흙이 게발린채로 있는 덕산의 손을 움켜잡고 흔들었다.

오중흡은 입술을 떨뿐 입을 벌리지도 못했다. 그는 앞뒤에 오고간 심상치 않은 말들과 분위기로 보아 벌써 그 엄청난 소식이 사실이라는것을 직감하였다.

오중흡의 눈길은 박덕산이 벅벅 그어놓은 지도를 더듬고있었다. 늘 조용하고 부드럽게 가라앉아있던 그 눈에는 어느새 류황불같은것이 펄펄 타고있었다.

오백룡이 흔드는대로 손을 내맡기고있던 박덕산은 불시에 딴사람이 된듯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때늦은 대답을 중얼거리듯 하였다.

《사실이구 뭐구 따질 필요도 없소. 권영벽이 보낸 통신이요. 동무들, 어떻게 하면 좋소?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를 거느린 우리 사령관동지의 조모님께서 놈들에게 수모를 받으며 우리 세상이나 같은 백두산줄기를 타고돈단말이요. 그래 이 일을 어쩌면 좋소!》

박덕산의 목소리는 다시금 슬픈 여운을 띠고 저렁저렁 울려나왔다.

《이게 어디바루 된다는겁니까? 장소를 좀 똑똑히 그려넣소다.》

오중흡이 더 길게 론의해볼것도 없다는듯 박덕산이 꼬챙이로 찍어놓은 장소를 손가락으로 다시 쿡쿡 찌르며 매몰차게 말했다.

《치자는거요?》

박덕산이 오중흡의 딴사람처럼 표표해진 기상을 보고 물었다.

《그럼 어쩌자는겁니까? 왜놈들이 전투를 해서는 못견디겠으니 그따위 너절하고 치사한 놀음을 벌렸는데 가만있을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소. 그러나 전투를 한다 하면 심중히 타산해야 하오. 그놈들 손아귀에 조모님께서 계신다는것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지 않소.》

박덕산이 이렇게 말하니 오백룡이 안타깝다는듯이 지도가 그려진 습기찬 땅을 소라같은 주먹으로 내리쳤다.

《야 참 답답하게 이러지 말고 구체적인걸 좀 내놓소. 뭘 알구야 타산도 있지. 아까 통신을 읽으실 때 사령관동지의 안색을 보지 못했소. 이제 생각하니 사령관동지의 심중이 짐작되오. 그래 장군님의 전사가 이럴 때 무맥하게 공론이나 하고있겠소.》

눈물이 핑 도는 오백룡의 순박한 눈에 죽음도 서슴지 않을 결의가 어린것을 확인한 박덕산은 비로소 침착성을 회복하고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소리치지 마오. 다른 동무들이 다 알면 수습하기 힘드오. 우선 우리끼리 면밀히 짠 다음에 알릴만 한 동무들에게 알려야겠소.》

이렇게 두사람의 흥분을 눌러놓은 박덕산은 아까 집어팽개친 꼬챙이를 다시 집어들고 땅바닥에 그려놓은 지도를 짚었다.

《여기쯤 동흥진이 있고 이게 림강이라고 보잔말이요. 지금 놈들이 할머님을 련행해다 억류한곳이 여기 신정촌이요. 신정촌에 <압강루>라는 려관이 있는데 그 아래층에 억류해두고 려관 전체를 특무들이 차지하고있소. 물론 거리에도 특무들을 꽉 채워놓고··· 그리고는 매일같이 차를 갈아대면서 백두산줄기를 타고 조모님을 련행해다닌다는거요.》

《그게 뭘 하는 놈들입니까? 경찰입니까? <토벌대>입니까?》

오중흡이 따지고 들었다.

《경찰도 <토벌대>도 아니요. 관동군사령부의 오끼중좌라는놈이 직접 조직해가지고 끌고다니는 특무기관이요. 박차석이란놈이 그놈들의 앞잡이노릇을 하고있소.》

《뭐요, 박차석이?》

두 사람이 한꺼번에 부르짖었다.

박덕산은 차마 자기 입으로 진실을 말하기가 역겨운듯 외면하며 씹어뱉듯이 말하였다.

《그놈이 만경대에 드나들면서 할머님을 끌어내는 길잡이노릇을 했고 지금도 그놈이 옆에 붙어앉아서 할머님께 어떻게 하나 장군님을 설복하라고 혀바닥을 놀리고있다오.》

《개같은놈! 천하에 둘도 없는 배신자! 그래 정치위원동무는 어떻게 하자는겁니까?》

오백룡이 익은 대추빛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숨가쁘게 울부짖었다.

《내 생각은 이렇소.》

박덕산이 아까와는 딴판으로 침착하게 말했다. 이제는 세사람이 다 사태를 알고 끓어번지는 비분의 소용돌이속에 잠기고보니 아까 그렇게도 경황없이 날치는것 같던 박덕산이가 역시 남달리 침착한 사람이라는것이 뚜렷이 나타났다.

《동무들도 알지만 나는 곧 소부대를 데리고 그쪽으로 나가게 돼있소. 나가는참 그놈들을 답새기겠소. 소부대가 도착할 때쯤이면 권영벽동무가 정찰을 다해놨을게요. 그 동무들도 지하조직을 다 동원해서 치겠다고 야단치는 판이요. 문제는 그놈들을 어디서 어떻게 제끼는가 하는건데, 말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머님을 무사히 모셔내올수 있겠는가 하는거요. 그래서 내 동무들의 의견을 좀 들어보자는거요.》

오백룡은 한절반 듣고는 벌써 마음이 내키지 않는듯 심드렁해지더니 덕산의 말이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거 뭐 소부대나 지하조직원들을 가지고 권총놀음을 하겠소. 소부대를 그렇게 쓰면 다음 임무는 어떻게 하겠소. 그러지말고 내가 강철룡이네와 함께 가겠소. 아예 그놈의 려관에다 기관총탄알을 몇섬 박아넣어서 벌의 둥지를 만들어놓겠소.》

유순하던 오백룡이 격해서 우기고 나서자 박덕산이 기가 막혀 미처 대척을 못하는데 오중흡이 두사람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중대장동무, 그러지 마오. 기관총소대를 끌고간다 어쩐다 하면 공연히 부산스러워지고 사령부호위에도 문제가 있지 않소. 내가 가겠소. 할바엔 큼직하게 해야지 그까짓 려관이나 치고있겠소. 저놈들이 아예 넉살이 훌 빠져서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를 어째보겠다는 생각을 왜 했던가 하고 제 골통을 저주하게끔 만들어놓아야 하오. 왜놈들이 좋아하는 그 초토화라는것을 들이대잔말이요. 그래야 앞으로는 만경대어방에 얼씬하지 못할게요.》

《그러니까 7련대가 몽땅 가자는겁니까?》

오백룡이 반발조로 묻자 오중흡이 정색해서 맞받아쳤다.

《왜 7련대만 가겠소. 여기 8련대 정치위원동지도 있는데 소부대다 뭐다 할게 있소. 몽땅 떨쳐나설판이지. 우리가 사령관동지의 조모님을 원쑤들의 수중에 두어두고 이제 더 재고 따질게 뭐있소?》

평소에 성미가 아련하여 선비처럼 생각해오던 오중흡이까지 이렇게 불이 달린듯이 펄펄 뛰는 바람에 박덕산이 참다 못하여 짜증스럽게 말했다.

《동무들, 정신이 있소. 앞뒤를 가려가며 말을 해야지 그저 탕탕 큰소리나 치면 일이 해결되는가. 할머님께서 계시는 려관에다 기관총을 퍼부어 벌둥지로 만들겠다는것은 뭐요. 대부대를 끌고가서 전투를 벌리는동안에 그놈들은 손발이 붙었다고 가만히 있겠소? 그리고 그런 전투를 벌리겠다면사령관동지의 승인은 받아낼것 같소?》

박덕산의 노기띤 말에 두사람은 잠시 쭝해있었다. 그러나 오중흡이 인차 침착성을 회복하고 고집스럽게 말했다.

《조모님의 안전문제는 물론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전투를 크게 조직한다 해도 할머님을 무사히 모셔오기 위한 전투는 따로 조직하자는겁니다. 나는 그저 기습을 하는것으로 절대 만족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민혁명군사령부의 신성한 권위를 감히 손상시킬 때 어떤 무서운 보복을 당하는가 하는것을 온 천하가 다 알도록 하자는겁니다. 내가 왜 이걸 주장하는가. 정치위원동지,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매복이나 기습을 해서 목적을 달성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놈들이 만경대에 또 달려갈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때문에 아예 그런 생각을 다시는 못하도록 든든히 불찜질을 해야 합니다. 그저 전투만 크게 해서도 안됩니다. 전투가 끝난 다음 그놈들을 군중들앞에 끌어내다놓고 일제침략자들이 다 악독하지만 이놈들이 특히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는것이 무엇때문인가 하는것을 똑똑히 밝혀야 합니다.》

박덕산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나도 그건 좋을것 같소. 헌데 전투를 그렇게 크게 벌리는것을 장군님께서 승인하시겠는가 하는것이 나도 걱정스럽소.》

《어쨌든 우리가 합의를 본 다음에는 강하게 제기를 하잔말이요. 그런데 오중흡동무의 생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거요. 찬찬히 설명해보오.》

이렇게 그들은 오랜시간 의논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