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14


 

제 2 편

14

 

천고의 밀림에는 벌써 여러차례의 눈이 내리였다.

사령관동지를 모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깊은 눈을 피해 양지쪽을 골라가며 부지런히 행군해가고있던 어느날이였다. 첫 휴식도 하기전에 선두대렬이 술렁이였다. 알고보니 오중흡중대가 도착한것이였다.

《오중흡동무가 도착했소?》

장군님께서는 반가움과 기쁨이 어린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빨리 가봅시다. 오중흡동무가 그새 고생이 많았을거요.》

장군님께서는 전달장에게 휴식명령을 내릴것을 지시하신 다음 앞장서 걸으시였다.

류량한 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대원들은 시간이 되기전에 휴식명령이 떨어지자 앉아서 쉴 생각은 안하고 모두 선채 궁금한 눈길로 대렬앞을 살펴보고있었다.

《쉬시오. 쉬염쉬염 가도 되겠소.》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팔을 저어보이시면서 대렬앞으로 걸으시였다.

대원들이 길을 비켜선 가운데로 오중흡이 달려오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의 얼굴과 차림새를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오중흡의 몸에는 힘과 자신심이 흘러넘치고있었다.

오중흡은 허리를 쭉 펴고 두팔을 힘있게 저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다가 마침내 뛰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한량없는 반가움과 기쁨이 어려있었다. 장군님앞에 이른 그는 엄숙히 서서 경례하였다.

《사령관동지, 중대는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임무를 끝내고 도착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손을 들어 답례하시고 치하하시였다.

《수고많았소. 기다리던중이요.》

장군님께서는 눈이 꺼지고 살이 빠져 여위여보이는 얼굴과 입술이 말라터진 오중흡의 모습을 보시다가 그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몸이 축갔구만···》

장군님의 음성은 갈리시였다.

《사령관동지! 우리는 모두 건강합니다. 》

《임무를 꼭 수행하리라고 믿었소. 매우 요긴한 목을 한모퉁이 풀었소. 동무들을 축하하오.》

그러시고는 밀영이 어디쯤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사령관동지, 밀영은 여기서 한 60리 되나마나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물으시였다.

《구체적으로 어디요? 오면서 보니 우리가 장소는 잘 택한것 같소. 》

오중흡은 사령관동지께서 무척 궁금해하시는것을 눈치채고 둔덕우로 모시였다.

《사령관동지! 저 명주실오리같이 번뜩이는것이 송화강의 지류입니다. 그 강과 이도송화강이 합쳐지는 삼각점안에 둥실한 산이 도드라져있습니다. 그곳이 이 지방사람들이 불섬이라고 부르는 산입니다. 불섬은 삼면이 높은 벼랑이고 그 벼랑밑으로는 강물이 흐르고있습니다. 강물은 묘하게 그 산의 세쪽면을 감돌아흘러 남쪽코숭이앞에서 합수됩니다. 며칠전부터 강기슭이 얼기 시작했습니다.》

오중흡은 손으로 가리키면서 설명하여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쌍안경으로 불섬을 살펴보시였다.

불섬주변에는 가느다란 모시같은 안개가 끼여있었다. 그 모시같은 안개속으로 산의 음향과 굴곡과 색조가 은근히 나타나고있었다.

《저곳이요? 불섬이라···》

장군님께서는 뜻깊게 속삭이시며 관찰을 계속하시였다.

먼곳에서 보시느라니 첩첩산중에 묻혀있는 그곳에 왜 불섬이라는 괴이한 이름이 붙게 되였는지 흥미있게 생각되시였다. 밀영이 자리잡은 산은 옆에 파도치며 밀려오는듯 한 여러 산과 별로 더 높거나 웅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들썩한 령마루가 담장같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갔는데 그앞에 삿갓 겹치듯 세일수 없이 많이 깔린 어슷비슷한 산봉우리중의 하나가 불섬이였다. 불섬이 주변 산들과 구별되는것이 있다면 그 위치가 중심복판에 있는것이며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것이다. 북쪽은 높고 험한 산과 잇닿이고 동쪽과 남쪽, 서쪽은 강물이 둘러쳤는데 기이하게도 그 강의 불섬쪽 대안은 모두 열길이나 넘을 벼랑이 병풍처럼 배겨있었다. 벼랑갈피에 간신히 낸 벼루길이 외부와 통할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장군님께서는 흡족하시였다.

사람의 힘으로 이러한 요새를 건설하자면 여러 세기를 바쳐야 할것이다.

오중흡은 설명을 계속했다.

《우리 일행이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불섬은 그야말로 천고의 처녀지였습니다. 마구 넘어져 썩고있는 진대들이 틈없이 깔리여 몸뺄곳이 없고 쌓이고쌓인 락엽때문에 한줌의 흙도 쉽게 구할수 없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망원경을 드신채 머리를 끄덕이시며 불섬주변을 살피시였다. 불섬은 그옆에 깔린 산봉우리들과 구별되는것들이 전혀 없는것도 아니였다. 다른 산들에 비하여 어둠침침하지 않고 누랬으며 지금까지 행군해오면서 보던 산들에 비하여 활엽수의 비률이 많았다. 그래서 색조가 검푸른 침엽림에 대조되여 누렇게 보이며 불그스레하게까지 보였다. 아마 그래서 불섬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모른다. 활엽수가 많아진데는 까닭이 있겠는데 먼 옛날에 산불이 일었던게나 아닌지? 그래서 불섬이라고 했는지? 불이 지나갔다면 침엽수가 녹아나고 활엽수들이 성할수 있는것이다.

오중흡은 보고를 계속했다.

《사령관동지, 정말 지세가 아주 묘합니다. 불섬에 들어서면 주변이 멀리까지 잘 보이지만 불섬밖에서는 그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지형을 타고앉아서 경비순찰을 잘하면 그 어떤 적이 달려들어도 바쁠게 없을것 같습니다.》

《대체로 알만하오. 지형적특징이 지도와 같소. 우리가 괜찮은 자리를 잡은것 같소. 주변의 적정은 어떻소?》

장군님께서는 쌍안경을 거두시며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시였다.

오중흡은 사령관동지 곁에 바투 서서 대답올렸다.

《특무밀정들이 어디에나 씨글대고있습니다. 그러나 불섬근방은 안전합니다.》

오중흡의 보고는 짧았으나 확신에 차있었다. 사실 비밀이 보장되지 못하면 일껏 힘들여 해놓은 일이 아무런 쓸모도 없어지기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적들이 모르게 수많은 월동물자를 확보하는것도 어려운 일이였지만 그것을 비밀리에 운반하는 일도 간단치 않았다. 그들은 밀정들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10리를 걸으면 될것도 수십리씩 걸었으며 체포한 밀정, 특무들을 한곳에서 처단하면 적들의 눈길이 집중될수 있기때문에 먼곳에 끌어다 처단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같은 일도 열곱절이나 힘들었다. 다행히 불섬주변까지는 놈들의 마수가 뻗치지 못했다.

그러나 오중흡은 이 모든 사실을 그저 《불섬주변은 안전합니다.》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오중흡의 성미로 보아 그 한마디 말이 가지는 깊은 뜻과 엄청난 사업량을 헤아려보시고 심중한 안색을 지으시였다. 그리고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며 오중흡이 품안에서 꺼내올리는 종이두루말이를 받아 쭉 펴시였다. 송진내를 밀어버리며 짙은 인쇄잉크냄새가 풍기였다.

장군님께서는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양목정자에서 신문을 벌써 다 날라왔소?》

그것은 장군님께서 양목정자에서 집필하시여 발표하신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전문이 게재된 대내신문 《서광》 1937년 11월 10일호였다. 오중흡은 비서처일군들이 가져온 그 신문이 하도 반가와 가슴에 품고 달려온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제목과 소제목을 훑어보시고 론문의 결속부분을 재빨리 몇줄 읽어보시였다.

신문의 내용을 곁눈질해본 대원들의 얼굴에는 흥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호기심만도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신문을 넘겨주시였다.

《우리 신문 <서광> 새 호가 벌써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있소. 그만하면 신문의 문화성도 있고 괜찮소.》

바람을 맞은 백학처럼 하얀 신문지는 발깍발깍 소리를 내며 대원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갔다.

《<서광>···》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장군님께서 쓰신 글이 실렸소.》

대원들속에는 환성이 그치지 않았다.

장군님께서는 한그루의 단풍나무가 뿌리를 박고 서있는 바위코숭이끝에 서시여 밀영쪽을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흥분을 눅잦히시며 다시한번 자신의 결심과 계획을 랭철하게 따져보시였다.

그리고 초수탄군정간부회의와 그 이후의 여러 회의들에서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여 전군을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켜야 한다는 과업을 초미의 문제로 제시하였지만 그것이 벌써 이런 형태로 구체화되고있다는것을 많은 대원들이 모르고있는 조건에서 그들이 이 불섬에서 반년가까이나 붙박여서 군정훈련을 하게 된다는것을 안다면 어떤 반향을 보일것인가 하고 주변에 모여선 사람들을 둘러보시였다.

대원들은 대체로 기쁘고 반갑게 사령부의 결심을 지지할것 같으시였다. 그런데 인민혁명군의 장기군정학습에 대하여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기웃거릴 사람들도 없지 않을것이였다. 아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또 이런 장기적인 군정학습을 해본 일이 없다는데서 생기는 감정만도 아니다.

밀영을 향해 서신 그이의 눈에 보이는것은 비단 눈무지와 눈보라뿐만이 아니였다.

전군의 장기적인 군정학습을 계획한대로 관철한다는것이 커다란 작전들에도 비할수 없을만큼 간고하고 어려울것이 벌써부터 예상되시였다.

옆에 선 나어린 전령병은 쌍안경으로 불섬이 어디인가를 열심히 살펴보고있었다. 그는 아마 자기들이 가닿게 될 앞길을 똑똑히 보고싶은 모양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발돋움을 하고 서성대는 그의 어깨에 팔을 얹으시였다.

《무엇이 좀 보이오?》

전령병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말씀올리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산뿐입니다. 구석구석에 눈이 쌓여있을뿐 그외에는 하늘밖에 없습니다. 》

《그래? 동무 눈엔 왜 아무것도 안보이는지 모르겠군. ··· 나한테는 그것들이 다 똑똑히 보이는데···》

전령병은 다시금 쌍안경을 살펴보다가 옆동무에게 옮겨주었다.

《암만해도 안보입니다. 사령관동지! 어디에 무엇이 있습니까?》

전령병은 웃으며 장군님의 군복자락을 붙잡고 응석을 부렸다. 겹겹이 모여선 대원들은 공연히 키돋움을 하는가 하면 이마우에 손채양을 해붙이고 몸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이제 무엇인가 굉장한 사변이 벌어질것 같은 그 불섬이라는데를 똑똑히 살펴보겠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저 강에 둘러싸여있는 깊은 산을 자세히 보오. 그곳에 병실도 있고 훈련장도 있지 않소? 군수처도 있고 비서처도 있고 출판소도 있는데 왜 하나도 보이지 않소?》

장군님의 이 말씀은 대원들은 물론 중대장들까지도 의아하게 했다. 그들은 전혀 뜻밖이였다. 대원들과 지휘원들은 장군님께 눈길을 모두었다. 그이께서 웃으시자 말기없는 오중흡도 따라 웃었다.

장군님께서는 지휘원들을 앞에 부르시고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시며 엄숙히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이제부터 조선인민혁명군관하 모든 부대들은 초수탄군정간부회의와 최근 사령부당위원회에서 결정한대로 새해 봄까지 장기적인 군정학습을 하게 됩니다.》

설레이고 흥성이던 대원들은 숨소리를 죽여가며 장군님을 우러렀다. 너무나 뜻밖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침묵과 정숙을 통해 이 새로운 과업이 대원들에게 얼마나 강한 충격과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는가 하는것을 짐작하시였다. 아마 이제 당장 싸움터에 들어선다면 저들은 환성을 올릴것이였다. 그러나 근 반년동안이나 학습을 한다니 저렇게 놀라는 표정들을 짓고있는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눈이 둥그래서 지켜보는 대원들을 바라보시며 지휘원들에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이미 여러번 강조하였지만 혁명하는 모든 사람들이 혁명의 원리와 자기 나라 혁명의 전략전술적원칙들을 똑똑히 알지 못하고서는 복잡하고 준엄한 정세하에서 혁명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없으며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할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혁명적구호를 제시하고 전군이 학습을 벌리려고 합니다.》

대원들은 저마다 장군님께서 새로 제시하신 혁명적인 구호를 조용히 외워본다. 조용한 그 속삭임속에 《반년》, 《학습》이라는 낱말들이 도드라졌다.

《모든 부대들은 이제 지시받게 될 과업을 수행한 다음 그달음으로 신속민활하게 그리고 극비밀리에 밀영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명령을 내리시자 오백룡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에, 차라리 잘되였다. 한 반년 짐을 풀고 밀영에 틀고앉아있노라면 장군님께서 휴식하실 틈도 좀 있겠지. 10여년세월 하루처럼 계속 행군길에 서계시는 장군님께서 다소나마 로고를 푸셔야지!)

오백룡은 이 한가지 희망만으로도 이번의 새 조치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멀지않은곳에 서있는 강철룡을 띄여보았다.

안희창이가 큰변이 난듯 눈이 둥그래서 강철룡에게 물었다.

《반년동안 공부만 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헛소문이지요?》

강철룡은 먼산보기를 하며 대꾸했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총을 다락에 얹어놓고있다가는 돌멩이를 들고 싸움터에 나가게 될줄 아오. 동쪽을 치는체 하며 서쪽을 치는수도 있고 벌판으로 내려가면서 산으로 올라간다고 소리칠수도 있는거니까! 동무, 유격대전법을 좀 알기나 하오? 성동격서는 장군님께서 자주 쓰시는 전법이고 또한 일부러 거짓 소문을 내는 전술도 있소.》

강철룡은 군정학습이 시작된다는 말을 들은후 얼핏 떠올랐던 자기나름의 판단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진국으로 대하는 희창에게 똑똑한 말을 해줄 자신은 없었다. 속이 켕기운 강철룡은 왼고개를 틀며 흰소리를 치는데 희창이는 누구보다 날쌔게 손을 내밀어 신문을 쥐였다.

이때 마국화가 그곳으로 왔다. 유격대에서 학습을 한다든가, 신문을 낸다는 말이 그에게는 모두 놀랍고 신기한 일이였다. 그는 심심산골에서 찍어낸다는 신문을 보고싶었다.

신문은 마침 희창이가 들고있었다. 희창이는 두손으로 신문을 펴들고 멋지게 허리를 뒤로 젖히고 읽고있었다.

며칠째 희창이와 함께 걷다싶이 한 국화였으나 동무들이 겹겹이 둘러선 복판에 들어서서 희창이와 이러구저러구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국화는 정말 희창이가 한 약속을 받아내려는듯 자주 그의 기관총에 매여달리고 희창이는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없이 국화를 친절하게 대해주군 해서 어떤 동무들은 벌써부터 그들의 사이가 보통사이 같지 않다고 고개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게다가 마동희까지 국화에게 희창이는 사람이 무던하고 싸움에서는 용맹한 좋은 동무라고 은근히 귀띔하였다.

국화는 희창이한테 은근히 마음이 끌리였지만 저쪽에서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해주는것이 남들앞에서는 딱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국화는 희창이한테 다가서지 못하고 동무들과 함께 그가 신문을 다 보고 넘겨줄 때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희창이가 신문은 읽지 않고 거꾸로 들었다 모로 들었다 하고있는것이였다. 이때 희창에게 다가선 웬 대원이 팔을 쑥 내밀며 신문을 붙잡았다.

《희창이, 신문을 이리 내놓게. 남들이 보면 바루 글깨나 아는줄 알겠네!》

희창이는 얼결에 국화를 띄여보고 얼굴이 벌개지면서 눈꼬리가 치켜올라갔다. 국화는 이때에야 자기가 그처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던 희창이가 아직 글을 깨치지 못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였다.

국화는 비록 좀 놀라기는 했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이 그닥 큰 문제같지 않았으며 그것때문에 희창이가 숙보이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 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자기처럼 글귀나 좀 안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희창이는 비록 글을 못깨쳤다 해도 이름난 기관총수이고 왜놈들을 벌벌 떨게 하는 호랑이다. 자기같은것은 백번 글을 깨쳤다 해도 희창이에 비하면 큰 언덕밑에 깔린 조약돌에 불과했다.

그런데 동무들은 희창이가 글을 모른다고 해서 어쩐지 몰아주는것 같고 희창이는 그때문에 기가 꺾여서 눈길을 어디다 겨누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동무는 모르면서도 아는체 하는게 탈이거던. 그러니까 공부를 못한단말이야. 글을 깨치기전에는 머리를 수그리고 배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석수쟁이처럼 눈은 왜 끔벅거려?》

누구인가가 암팡지게 말했다. 아마 이전부터 희창이한테 공불하라고 타일러오던 동무인 모양이였다. 동무들이 악의없이 웃자 희창이는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몸둘바를 몰라했다.

(참 별걸 다 웃지. 기관총명사수가 되기 힘들지 글깨치는것이 힘들가!)

국화는 희창이가 애매하게 몰리우는것 같아 속이 알알해서 이렇게 생각하였으나 어째선지 자기도 무안한 감이 들어 동무들속에서 슬그머니 도망쳐나오고말았다.

전군이 류례없이 장기적인 군정학습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놀란 사람은 김주현이였다.

기다리던 휴식명령이 떨어지자 김주현은 가마를 벗어놓고 걸어온 길을 더듬으며 되돌아갔다. 거기에는 산나물이 한벌 깔려있었던것이다. 며칠전부터 그는 자주 이런 횡재를 하군 하였다.

지금 대오가 행군하는곳은 백두산주변보다 산세가 유순했고 활엽수림이 현저하게 잦아졌다. 나무밑의 풀도 더 배여졌는데 그속에는 산채가 많았다. 김주현은 달라지는 산세와 식물상을 보고도 대오가 몽강땅 깊이까지 들어선다고 짐작했다. 이러한 서쪽으로의 행군은 항일련군 남만부대들에게 쏠려지는 일제침략군부대들을 징벌하기 위한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돌연 전군이 학습에 들어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도라지가 많은곳을 찾아가려던 김주현은 돌아서서 사령부쪽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전번 사령부당위원회때 군정훈련을 강화할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였는데 그무렵에 벌써 실천에 옮기고계셨다는 말이 아닌가.)

그는 반신반의하면서 박덕산이와 오백룡에게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자고 했다.

박덕산은 보이지 않고 오백룡이가 장군님곁에 서있었다. 김주현은 멀찌감치에 서서 오백룡의 눈길이 자기에게 미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만나자는 뜻으로 팔을 저어보이였다. 오백룡은 곧 눈치를 채고 그에게로 다가왔다.

《박덕산동무는 어데 갔소?》

그는 다짜고짜로 물었다.

오백룡은 김주현의 덤벼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련락소에서 통신원을 기다리고있지요. 이제 따라올겁니다. 왜 그러오?》

김주현은 박덕산을 기다리고있을수 없었다. 그는 당장 궁금한것부터 물었다.

《그럼 중대장동무한테 물어봅시다. 전군이 겨우내 군정학습을 한다는게 정말이요?》

김주현은 비밀을 말하듯 목소리를 낮추고 바투 다가섰다. 오백룡은 그 모습이 우스웠다.

(아마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한 모양이군.)

오백룡은 빙긋 웃고나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방금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의무이다!>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시하시고 우리가 다섯달가량 군정학습을 벌리게 된다고 말씀하시였소. 마선제동무가 알려주지 않습디까?》

김주현은 몸자세를 바로하며 눈을 크게 떴다.

《참, 뜻밖의 소식이지요. 그것때문에 정치위원동무를 찾는가요?》

《아니 겸사겸사해서 그저···》

김주현은 생각에 잠겨 입안의 소리로 중얼거리였다.

가까운데서는 강철룡, 안희창들이 무엇이 그리 좋은지 철없는 아이들처럼 희희닥거리고있었다. 김주현은 강철룡의 말소리가 들리자 그가 전날 풀막안에서 박격포를 손질하던 일이며 그것을 보고 때를 만났다고 좋아했던 자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령관동지의 옆에는 오중흡이 단정히 서있었다. 남들이 큰 전투임무를 받고 좋아할 때 톱과 도끼를 구하려고 뛰여다니던 오중흡이였다.

《오중흡동무는 톱과 도끼를 가지고도 아주 큰일을 해놓았지요.》

김주현이가 오중흡을 생각깊은 눈매로 지켜보자 오백룡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주현은 아무 말도 안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강한 자책과 충격이 일어났다.

(오중흡동무가 사령부의 구상을 관철하기 위해 얼마나 큰 수고를 했는가. 그런데 나는 가마나 지고 다닐뿐 사령관동지의 구상을 실현하는 길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했구나. 사령관동지의 의도는 곧 우리 혁명의 근본원리이고 전략전술적원칙이다. 아! 나는 사령관동지를 가깝게 모시고 싸운다고 했지만 그것을 잘 몰랐다. 그러니까 정세가 복잡해지고 환경이 달라지면 주인집아이를 해치는 미련한 곰처럼 행동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김주현은 사령관동지께서 자기가 장철구문제를 잘못처리했을 때 해주신 말씀이 자자구구 떠올랐다. 전번 사령부당위원회에서 자기 문제가 토론될 때는 사령부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집행하지 않는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면서 문제가 규률위반, 명령위반에 한하지 않는다고도 말씀하셨었다. 장군님께서는 벌써 그때 자기가 혁명의 원리도, 전략전술의 원칙도 모르고 곰처럼 놀고있다는것을 간파하신것이였다. 사실이 그처럼 엄중했으나 자기자신은 아직도 국내에 나가 범한 과오의 본질을 똑똑히 찾아내지 못한채 가마를 메고 대오를 따라가는데만 급급해있었다.

김주현은 비로소 자기의 텅 빈 머리속을 비쳐보는것 같았다.

(사실이였구나! 혁명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내 생각, 내 판단은 전부 빗나가고 뒤집어진것이였다. 왜놈들이 당장 무슨 일이나 칠것처럼 떠들어대고 거기에 국제당에서까지 《열하원정》이요 뭐요 해서 부산을 피우니 나같은 곰이 다시 안나온다고 장담할 근거는 없지, 게다가 우리가 해야 할 과업은 얼마나 아름찬것인가. 그래서 만사를 제쳐놓고 이 엄혹한 시기에 류례없이 장기적인 군정학습을 벌리게 된것이다. 치렬한 전투환경에서 근 반년이나 전군이 공부한다는것은 그 누구도 감히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설사 정규군이라 해도 이런 일을 계획하지 못할것이다.

장군님의 뜻은 이렇듯 원대한것인데 내가 생각하는것은 늘 우둔한 곰같으니 어떻게 그이의 의도에 맞겠는가.)

김주현은 앙상하게 드러난 자기 사상의 황무지를 눈앞에 보는듯 하여 차마 얼굴을 들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온몸에는 강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오백룡은 김주현이가 많은 사람들앞에서 책벌을 받고 권총을 떼울 때보다 더 심한 고통속에 잠겨있는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