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10


 

제 2 편

10

 

승용차안에는 기름내가 짙게 어려있었고 차창밖으로는 전선대며 가로수들이 휙휙 지나갔다.

녀사께서는 어지럼증이 나고 속이 메슥메슥하시였다. 게다가 원쑤놈들과 함께 바구니속같은 차안에 앉아계시자니 머리가 쑤시였다.

차는 어디로 해서 어디로 달려가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다만 만경대를 떠나자부터 고향집과 멀어진다는 생각만이 지꿎게 갈마들어 차차 마음조차 서글퍼지시였다.

녀사께서는 지금 차가 어느 지경을 지나고있는지 궁금하시였지만 옆에 앉아있는자들에게 묻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키지 않은 걸음을 떠났지만 정신만은 똑똑히 차려야 하겠다고 녀사께서는 생각하시였다.

차는 해가 진 다음에도 그냥 달리였다.

녀사께서는 분이 치밀어오르는것을 참으며 그놈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으시였다.

《할머님, 피곤하시겠습니다. 산골길이 되여서 차가 몹시 들춥니다. 이젠 내려서 하루밤 쉽시다. 》

녀사께서는 박차석이가 하는 말소리를 들으시고서야 눈을 뜨시였다.

캄캄한 밤이였다. 차는 크지 않은 양옥집의 외등불이 달린 현관앞에 서있었다. 녀사께서는 보자기를 드시고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여기가 어딘가? 바깥바람이 만경대보다 찬걸보니 북쪽으로 퍼그나 온 모양이구나. )

지칠대로 지치신 녀사께서는 낯선 방에 안내되시여 홀로 벽을 기대고 앉으시였다. 빨간 전등불빛은 며칠새 잠을 잊으신 녀사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남색 긴치마에 연두색 반회장을 붙인 흰저고리를 입은 려관접대부가 두터운 이부자리를 안고 들어왔다.

《할머니는 어떻게 먼길을 떠나셨는가요? 만주에 가시나요?》

손님들을 겪는데 이골이 난 접대부는 푸접좋게 말을 걸어왔다. 아마 그 녀자는 촌늙은이가 자동차를 타고와서 려관에 든것이 괴이쩍은 모양이였다.

녀사께서는 사람이 반가우시였다. 여기가 어디쯤 되며 만경대와는 얼마나 떨어진곳인지 알고싶으시였다. 게다가 젊은 녀인이 례절바르고 친절하게 대하여주니 초면이지만 서먹서먹한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녀사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애당초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신듯 전등불을 피해 컴컴한 창문만 바라보시였다.

의아심과 동정심이 섞인 눈으로 녀사를 한참동안 바라보던 젊은 녀인은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갔다.

녀사께서는 문소리를 들으신 다음에야 방바닥에 놓인 이부자리를 깔고 누우시였다. 문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나자 팔짱을 끼시고 눈을 꾹 감으시였다. 누가 들여다보아도 주무시는것으로 알게 하고싶으시였던것이다. 녀사께서는 자신께서 김일성장군의 할머니라는것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싶지 않으시였다.

누구의 할머니가 왜놈들한테 끌려다니며 고역을 겪고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세상사람들의 기를 꺾어놓게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그런 소문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산에서 왜놈들과 싸우고있는 맏손자에게 들어간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러니 소문이 나더라도 누구나 기가 꺾이지 않게 적들앞에서 굳세고 도도한 기상을 보여야 한다. 적들에게 련행되여 다니기는 하지만 이 할머니는 변함없이 맏손자를 믿고있으며 굴함없이 싸우고있으니 절대로 할머니때문에 마음을 쓰지 말라는 소문만이 나게 해야 했다.

옆방에서는 쿵덩쿵덩 발장단소리가 들려왔다. 술판이 벌어진것이다.

아침에 박차석은 조모님을 뵙자 지난밤과는 딴 사람이 된듯 곰상스럽게 인사했다.

《왜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째 식사를 안하십니까?》

녀사께서는 박차석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시였다.

또다시 차는 바쁜 일이 있는듯 서리도 녹기전에 떠났다. 차창으로는 높고 험한 산들이 흘러갔다.

얼마 지나서 차는 넓다란 강기슭을 따라 달리였다.

녀사께서 강을 바라보시자 박차석이가 눈치빠르게 설명했다.

《할머님, 저 강이 바로 압록강입니다. 》

녀사께서는 눈을 번쩍 뜨시였다. 잊으실수 없는 강이였다.

녀사께서는 오래동안 압록강물을 살펴보고나서야 차가 달리는 방향을 알아보시였다. 차는 해를 마주하고 압록강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있었다.

(이 어방 어디에 백두산이 있겠구나. 우리 증손이가 지금도 백두산에서 싸우고있겠지···)

녀사께서는 차창에 눈길을 돌리시고 줄곧 길옆과 먼산을 살펴보시였다. 지치신 녀사의 눈에는 희망의 빛이 은은히 타올라 빛나고있었다.

(내가 차라리 잘 떠났다. 백두산어방에만 와도 너를 만나본것 같구나. 저 험한 산속에서 네가 얼마나 고생하랴 하는것도 더 똑똑히 알것 같구나. )

녀사께서는 백두산을 보시자 장손에 대한 그리움이 절박해지시는것이였다.

박차석은 쿨쿨 코를 골며 자고있었다. 목을 떨구고 기우뚱거리며 깊이 잠든 그자의 얼굴에는 고통과 불안의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밤새 실컷 술추렴을 하더니 곯아떨어진 모양이였다. 그 모습은 박차석의 처지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저것이 무슨 사람인가? 장님 시집가듯 아무데라도 곰살궂게 따라다니고 무슨짓도 마다하지 않을놈이 아닌가? 사람이 저 꼴이 되면 짐승보다 더 못해지기 마련이다. 티끌만치라도 사람다운데가 남아있으면 압록강물소리가 들리는 백두산기슭에 들어서면서 굳잠에 빠질수 없으련만. 저도 한때는 압록강물을 넘나들며 뜻을 품고 싸운다고 하지 않았는가!)

눈을 뜨고 입을 벌리면 좋은 말만 하던 박차석이와는 판판 달랐다. 그가 이제 살아서 무슨 좋은 일을 할수 있겠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일본놈들한테 끌려다니면서도 아무런 괴로움도 없이 먹을 때면 먹고 잘 때면 자는것이 인생인가? 녀사께서는 박차석의 일거일동이 혐오스러우시였다.

그날은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는데 차를 세우고 묵어가자고 하였다. 녀사께서는 웬 초가집마당으로 들어서시였다.

멀지 않은 강기슭에서는 떼군들이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떼를 뭇고있었고 길건너쪽에는 토성을 둘러치고 망루를 세운 경찰서가 바라보였다.

녀사께서 주변을 살펴보시는것을 눈치챈 박차석은 가까이에 다가서며 말했다.

《할머님, 여기는 구읍입니다. 》

녀사께서는 듣는둥마는둥 하시였다. 평생처음 들으시는 지명이여서 어디가 어딘지 갈피를 잡을수 없으시였다.

《임자에게 한마디 할 말이 있네. 》

녀사께서는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박차석은 두손을 맞잡고 머리를 숙이며 어서 말씀하시라는 기색을 짓는다.

《오늘밤부터는 내 방옆에서 아예 술판을 벌리지 말게. 》

순간 박차석은 머리를 조아리며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벌써 할머님앞에서 삼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량반들이···》

《나는 그런 행실을 좋아하지 않네. 임자도 거기에 끼여있었지?》

녀사의 음성은 낮으나 맵짰다. 녀사의 얼굴에 비낀 추상같은 빛을 띠여본 박차석은 당황해하였다.

《할머님께서는 저를 오해하십니다. 저는 그렇게 나쁜놈이 아니올시다. 》

박차석은 집요하게 떠벌이며 방안에까지 따라들어왔다.

《어서 물러가게. 귀찮네. 내 눈앞에 나타나지도 말게. 》

박차석은 물러가기는커녕 무릎을 꿇고앉아서 녀사의 눈길을 따라가며 긴 허리를 굽석이였다. 녀사께서는 성화에 견딜수 없으시였다.

《할머님, 할머님의 아드님과 손자분을 생각해서라도 저를 나쁘게만 생각지 말아주십시오. 저를 정말 가엾게 여겨주십시오.》

녀사께서는 비위를 부리는 박차석을 당해낼 기력이 없으시였다. 하는수없이 해빛이 드는 방문을 향해 비켜앉고 참대바늘에 무명실을 매고 뜨개코를 잡기 시작하시였다.

(제풀에 맥이 빠지면 물러가겠지···)

박차석은 녀사의 등뒤에서 넉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할머님께서 무송에 다녀가신 이듬해에 저는 김형권선생과 함께 장군님의 명령을 받들고 먼길을 걸어 풍산땅에 들어섰습니다. 저희는 오빠시놈을 처단해치우고 리원으로 나오던중 왜경들에게 체포되여 한날한시에 족쇄를 차게 되였지요.

서대문형무소에 갇힌후 저희가 겪은 고초를 어떻게 다 형용할수 있겠습니까? 아마 김형록선생은 면회하러 오셨댔으니까 그때 저의 험상한 몰골을 똑똑히 보았을것입니다. 》

녀사께서는 일손을 놓고 문창살이 또렷이 그려진 문을 바라보시였다. 녀사의 머리에는 이미 둘째아들이 서대문형무소에 갔다와서 하던 말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박차석은 녀사께서 깊은 생각에 잠기신것을 보자 더 절절하게 말했다.

《형권선생은 왜놈들에게 체포된 다음날부터 마지막순간까지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군복천을 불태워버리구 기념일 때마다 집단적인 단식투쟁, 형무소내 시위투쟁, 파업, 태업을 조직했지요. 저도 김형권선생이 생존해계실 때는 그 투쟁에 빠짐없이 참가했습니다. 그러니 왜놈들의 박해와 구박이 오죽했겠습니까? 보짱에 매달고 몽둥이질을 하지, 밥을 굶기지, 소대한목에 물을 들씌워놓고 밖에 묶어두지, 못으로 만든 상자안에 가두지···》

박차석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김형권선생에 대한 말이 박차석의 입에서 나오자 녀사께서는 못견디게 가슴이 아프시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셋째아들을 녀사께서는 언제나 장하게생각하고계시였다. 저놈이 감히 내 아들의 이름을 그 더러운 입으로 옮기다니··· 녀사께서는 살을 떠시며 가까스로 분노를 묵새기시였다.

박차석은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아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할머님, 저는 그 지옥속에서 살아난 몸입니다. 저도 꼭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예?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생인데 왜들 다 밉다고만 합니까? 한때 의로운 사람들과 함께 나라를 찾겠다고 나섰던것이 오히려 지금에는 화단이 돼야 합니까? 제가 원하지 않는 일에 강제로 끌려다닌다는거야 누구나 알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을 내가 싫다면 안할수 있습니까?》

녀사께서는 예리한 눈길로 박차석을 쏘아보시였다.

(내가 늙은이라 어수룩하게 보이는 모양이군. 불쌍한 말로 동정을 사볼가 해서···)

녀사께서는 화가 났으나 슬픈 추억에 잠기셨던 때이라 시비곡절을 따지기는커녕 애당초 말씀도 하실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박차석은 역시 가련한자이고 그의 말속에 한가닥 진심이 깃들어있다면 어느때에 가서는 개심하고 그 죄를 씻을수도 있으련만···

《고달파서 말도 하기 싫네. 이 늙은이는 형권이와 같은 아들을 둔것을 자랑으로 여기네. 임자는 무슨 렴치로 형권이 말을 하는가?》

녀사의 말씀은 준절하시였지만 부드럽고 너그러우시였다. 박차석은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수건으로 눈언저리를 닦고나서 부시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머님,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두고보십시오만 제가 할머님을···》

박차석은 자기의 굳은 맹세를 다지려는 눈치였다.

녀사께서는 엄엄한 눈길로 박차석을 훑어보시였다.

《자네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건 잘한 말이네. 뜻을 버리지 않은 사람은 어느때건 옳은 일을 하고말것이네. 그래서 자네에게 하고싶은 말이 좀 있지만 후날 하기로 하고 당장 한가지만은 다짐을 두어야 하겠네.》

박차석은 무릎을 꿇고 바른자세로 앉았다. 무슨 분부나 다 듣겠다는 자세였다.

녀사께서는 그를 흘겨보시였다.

《얼림수를 쓰지 말고 늙은이의 말을 명심해듣게. 장군의 할머니가 장군을 만나려고 백두산을 돌고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는 안되겠네. 왜놈들이 장군을 찾아낼수도 없거니와 이런 형편에서는 이 할머니도 장군을 만날 생각이 없네. 장군은 할머니가 보고싶을테고 할머니도 장군이 보고싶지만 나라를 찾기전에는 만나야 무슨 기쁨이 있겠나. 말뜻을 알아들었나?》

박차석은 소매로 눈물을 닦고 할머님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녀사의 늙고 연약한 몸에는 범접할수 없는 기상과 강기가 숨어있었다. 자나깨나 손자를 애타게 그리면서도 손자의 큰일에 사소한 방해라도 끼칠세라 만나보고싶은 절절한 심정마저 감추시는것이였다.

《할머님의 심정을 알만합니다. 그런데 저 하나는 입을 다물수 있지만 왜놈들이 노상 고아대겠는데 그런 소문이 안퍼질수 있을가요.》

박차석은 시름겹게 말하였다.

녀사께서는 안색이 서리발이 일게 엄해지더니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럴수는 없겠지만 만약시 장군이 왜놈손탁에 있는 할머니를 만나겠다고 이 어방에 나서는 날에는 이 할머니는 머리를 방바닥에 쪼아버리고말겠네. 임자가 세상에 소문을 낼 길이 있다면 이런 소문이나 내게!》

《명심하겠습니다. 》

박차석은 가슴이 서늘해져서 다급하게 말하며 허리를 숙이였다.

다음날 이른조반을 치르고나서 자동차는 다시금 달리기 시작하였다.

녀사께서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정신을 가다듬으시고 차창밖의 산들을 살펴보시였다.

그런데 자동차는 한시간도 가지 않아서 강기슭의 선창에서 멈추어섰다. 눈을 감았던 녀사께서는 자동차가 다시 디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눈을 뜨시였다. 그때 자동차는 시퍼런 물이 소용돌이치는 강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자동차가 떼우에 올라타자 이어 사람채로 자동차를 실은 떼가 강을 유유히 건느고있었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땅으로 갑니다. 가만 앉아계셔도 됩니다. 》

박차석은 태연한 기색으로 설명했다.

《압록강을 건너?》

녀사께서는 누구에게라없이 말씀하시며 금시 일어서시려고 몸을 움직이시였다.

《압록강을 건느다니? 가만 좀···》

박차석은 무표정하고 침착하시던 녀사께서 돌연 당황해하시는것을 보자 눈이 떼꾼해졌다.

《고정하십시오. 오늘 건너갔다가 며칠후에는 또 건너옵니다. 앞으로는 압록강을 자주 넘나들게 되시겠는데요.》

녀사께서는 귀중한 순간을 놓칠것 같아 차문을 내밀며 저으기 서두르시였다. 압록강을 무심히 건느실수 없으시였다.

《문 좀 열어주게. 》

녀사의 음성은 단호하시였다. 박차석은 상전에게 사정사정해서야 승인을 받고 차문을 열었다.

척척하고 미끄러운 떼우에 내려서시는 녀사의 몸은 비칠하였다.

녀사께서는 몸을 다잡으시고 한걸음 두걸음 떼가장자리에 다가서시였다. 차거운 물결이 떼목에 구슬프게 철썩이고 강바람이 녀사의 옷자락을 휘날리였다.

돌들이 깔린 강기슭에는 알지 못할 새들이 무리지어 앉아 강건너 산을 바라보며 머리를 기웃거리고있었다.

녀사께서는 마음이 후두두 뛰며 눈물이 핑 도시였다. 철써덕철써덕 바위불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녀사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였다.

녀사께서는 만경대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은 압록강 푸른 물에서 자손들의 얼굴이라도 찾아보시려는듯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시였다.

맏아들 내외가 어린 자식들의 손목을 이끌고 건너간 물이였다. 그뒤를 이어 셋째아들이 따라간 길이였다. 가족과 고향과 제 나라를 그토록 사랑한 까닭에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을 찾아간 몸들이였다. 그들이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이 강물에 휘뿌렸겠는가.

자손들은 반드시 왜놈을 무찌르고 조국을 광복한 다음 다시 이 강을 건너온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녀사께서는 이역땅에 떨어져있는 자손들이 못견디게 그리우시였다. 자손들이 돌아올 때까지 사립문안에서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으시였다.

녀사께서는 자손들을 보시고싶어 이 강을 건너가시였다. 그때는 강을 건느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시였다. 그때만 해도 며느리도 있고 손자들도 있고 셋째아들도 있었다. 비록 맏아들은 잃었으나 그의 형제들과 자식들이 뜻을 지켜 싸움을 계속하고있었다.

그러나 막상 며느리에게 찾아가보니 새로운 근심이 기다리고있었다. 그처럼 보고싶던 장손이 감옥에 갇혀있어 얼굴도 못보고 돌아서게 되시였던것이다. 그러면서도 조국이 꼭 광복된다는 신념만은 더욱 굳어져 녀사께서는 돌아오실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였다. 끌끌하고 미더운 청년들이 밤마다 한구들씩 모여들어 장손의 뜻을 받들어 투쟁을 벌리고있었다. 그때는 저 박차석이도 그 의젓하고 끌끌한 청년들속에 끼여있었다.

그러나 오늘 압록강을 건느시는 녀사께서는 비분강개한 마음을 이길수 없었다. 그사이에 맏며느리를 잃고 둘째손자를 잃고 셋째아들까지 잃은 몸이였다.

조국을 광복하고 돌아오마하던 자식들이 희생되고 이제 저 땅에 남은것은 장손뿐인데 왜놈들은 하나 남은 장손마저 해치지 못해 늙은 할머니까지 끌고 나선다.

녀사께서는 가슴이 후두두 뛰시였다. 원쑤들에게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아 허리를 굽히시고 압록강물을 떠서 얼굴을 씻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소매안에서 수건을 꺼내시여 얼굴을 닦으시며 마음속으로 말씀하시였다.

(증손아, 집안에는 이제 너혼자 남았다. 너마저 쓰러지면 대가 끊어지고 광복대업이 막막해진다. 너를 만나 이 한마디 말이라도 해준다면 이 할머니는 이역땅에서 무주고혼이 되여도 원이 없겠다. 너만은 꼭 이기고 이 강을 건너와야 한다!)

차거운 물갈기에 휩싸인 떼는 부르르 떨었다.

녀사께서는 슬픔과 고통을 벋디디고 몸을 일으키시였다.

강을 건넌 승용차는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박차석은 오래지 않아 신정촌에 들어서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