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2편 1


 

제 2 편

1

 

넙적넙적한 황기와추녀를 드리운 동방식건물들 사이에 들어앉은 일제관동군사령부 청사앞마당에는 오늘도 아침부터 가지각색의 승용차들이 모여들었다.

청사현관으로는 그칠새없이 장성들이 들어가고있었다. 만명의 군인속에 하나씩 있다는 장성이 여기서는 현관문이 메일 지경으로 득실댔다. 장성들은 하얀 장갑을 낀 바른손을 금단추가 박힌 모자채양옆에 올렸다내렸다하면서 묵묵히 복도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화려한 주단이 깔린 복도를 지나 휴단을 거쳐 2층 북쪽에 있는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사령관의 집무실에 잇달려있는 이 회의실은 사령부청사가 준공된후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성들은 문턱앞에 대기하고있는 병사들에게 모자를 벗어주고 벽을 등지게 놓인 쏘파들을 향해 서두르지 않고 다가갔다. 쏘파와 그 앞에 놓인 응접탁에는 아무러한 표식이 없었지만 그들은 지체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결국 앉은 자리는 곧 장성의 직무와 직급을 견장의 별처럼 똑똑히 나타냈다.

회의실의 좌석이 거의 빈틈없이 찼을 때 출입문에는 30대의 젊은 중좌가 나타났다. 중좌는 얼핏 보면 누구의 시중을 들기 위해 나타난 사람같아보였다. 회의실안에는 장성들이 대부분이고 얼마되지 않는 좌관도 대체로는 대좌였다.

출입문앞에 선 중좌는 방안을 향해 차렷자세를 취한 다음 고개를 숙여 묵례를 하고나서 장성들이 주런이 앉아있는 쏘파앞을 지나갔다. 그는 쏘파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그들의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사람에 대하여 제나름의 평정을 내리면서 기계적으로 머리를 까딱거리군 하였다.

언제나 분주해서 출입문을 멀리 떠나지 못하는 정보부장의 앞을 지나며 중좌는 머리를 숙였다.

정보부장과 멀어지기만 하면 안절부절 못하는 특무부장쪽에 대고도 머리를 까딱했다.

제낯을 내고 출세할 기회가 생겼다고 우쭐대며 군정부최고고문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제1군관구 수석고문인 동변도치안숙정위원회 책임자 가와사끼대좌의 앞을 지나면서도 역시 머리를 숙였다.

그다음에는 관동군군관구 사령관들과 병종사령관과 숱한 《만주국》군관구 수석고문들이 위엄있게 늘어앉아있었다. 그리고 회의실정면의 맞은쪽 벽에는 오늘도 《만주국》군정부최고고문으로서 《토벌사령관》을 겸임하고있는 《토벌장군》 사사끼가 팔을 쭉 펴고 발을 뻗치고 앉아있었다.

중좌는 그를 보기가 혐오스러웠으나 역시 머리를 한층 깊이 숙여보이고나서 그 앞을 지나 한쪽끝, 이 회의실의 모서리에 가서 다시금 누구에게라 없이 좌중을 향해 머리를 숙여보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창문쪽과 복도쪽의 두 익측벽에는 참모부 과장들과 주임참모들, 관동군의 여러 군관구사령관들과 사단장들, 비행대 대장들, 땅크려단장들이 눈을 번뜩이며 앉아있었다. 그러니 이 방안에는 《만주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들이 다 모인셈이였다.

회의실안을 말없이 휘둘러본 중좌는 엄숙한 얼굴로 잔등을 등받이에 대고 두팔을 쭉 펴면서 눈을 감았다.

(흥, 놀라기도 잘하고 허장성세도 잘하는 비지항아리들!)

얼마전 이 회의실에서 있었던 모임에서도 그는 저 무능한 장성들이 군수선을 떠는것을 보고 실망과 환멸을 느꼈었다.

그날 부참모장이 《열하원정》에 대한 정보조회보고를 하였었다. 말은 《열하원정》이라고 불리우지만 실상 이것은 《만주국》과 관동군에 대한 전면적대결전쟁의 선포를 의미하는것이였다. 관내에서는 방대한 반일무력이 북상하여 열하방면으로 쳐들어오며 때를 같이하여 만주땅에서는 산악수림지대에서 유격전선을 펼치고있던 항일련군부대들이 반달형의 정규전선을 형성하고 《만주국》의 수도 신경(장춘)을 포위공격하리라는것이였다. 《만주국》만 잃고보면 9. 18사변이후 10년가까운 세월 닦아온 제국의 대륙제패를 위한 발진기지−생명선은 졸지에 허물어지게 될것이며 그와 동시에 지금 승승장구하고있는 관내작전(북지사변)은 스스로 끈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되고말것이였다.

말하자면 《열하원정》은 일본제국의 대륙제페전략의 생명선을 단절하고 급소를 찌르려는 작전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국제당이 《열하원정》방침을 취했다는 정보는 동경에서 물의를 일으켰으며 당사자들인 신경의 관동군사령부에 지급 대응책을 취하도록 지령이 하달되였던것이다.

협의회는 종일 계속되였었다.

현재 열하전선과 만주의 각 유격지구들에 배치된 무력만으로는 도저히 이 총공세를 막을수 없다. 지체없이 만쏘, 만몽 국경선으로부터 일정한 무력을 떼내여 장춘과 열하계선방위에 배치하여야 한다고 한쪽에서 열을 올리는가 하면 다른편에서는 그것은 바로 국제당의 계책에 넘어가는 망동이라고 소리를 쳤다. 만쏘, 만몽 국경을 비우면 붉은군대가 쳐나오리라는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편에서 이것도 저것도 부정하고 관동군에 대한 절대적인 증강설을 들고나왔다.

일본내지로부터 사단들을 지급 증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동군 증강에 무관심한 군부중앙과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고 시급히 관동군무력장비를 배가할 근본책을 세워야 한다고 기염을 올렸다.

그러자 또 다른 편에서는 당장 죽을병에 보약은 쓸모없다, 그러니 근본책은 근본책이고 당장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그러자면 반도와 내지에 있는 일본군사단들과 예비병들을 지체없이 인입하는것이 가장 합당한 지급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소리에 한편에서 누군가가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껄껄 웃으며 천치같은 소리를 말라고 하였다. 백두산호랑이가 압록강, 두만강기슭을 떠나지 않고 무엇을 노리는지 아는가? 아마도 조선주둔군이 장춘에 당도할무렵이면 조선인민혁명군은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조선의 모든 산악들을 차지할것이라고 하면서 또 한바탕 웃어댔다.

론쟁은 밤이 깊을 때까지 계속되였으나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져 갈피를 잡을수 없게 되였으며 나중에는 궁리가 막힌데다가 허기까지 져서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었다.

이때 우울한 표정으로 앉았던 관동군사령관이 말석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고개짓을 해보이자 한 장교가 일어섰는데 그것은 온종일 한쪽구석에 앉아 느슨한 웃음을 입귀에 띄우고 일언반구 없이 구경만 하고있던 젊은 중좌였다.

《제3인터(국제공산당)의 <열하원정>은 우리 관동군과 제국의 대륙전략앞에 불어온 가미가제(하느님이 일으킨 바람이라는 뜻- 옛날 원나라 함대가 일본을 치기 위하여 현해탄을 건너가다 태풍을 만난 고사로부터 나온 말)로서 그야말로 놓쳐서는 안될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중좌는 뜻밖에 이런 희떠운 소리로 허두를 떼여 좌중을 놀라게 하였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자기의 론거를 설명하였다. 오늘까지 5∼6년간 관동군이 수량상으로 보나 장비로 보나 대비라는 말조차 성립되지 않는 항일유격대들과의 대결에서 수세에 몰려온것은 유격대들이 이름그대로 유격전술을 적용하여왔기때문이다. 유격대는 만주대륙의 험악한 산악과 밀림에 의거하여 보이지 않는 전선을 전개하고있다. 관동군은 정예의 사단들을 가지고있지만 그것을 전개할 전선이 없으며 대포가 있어도 쏠 목표가 보이지 않고 땅크와 장갑차가 있지만 끌고 들어갈 기동로가 없으며 비행대를 날리려고 해도 폭탄을 던질 목표를 찾을수 없었다. 유격대와의 전쟁은 비유하면 소경이 칼부림하는 격이였다.

이런 견지에서 《열하원정》과 《장춘포위작전》을 고찰해본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공산군이 종전의 유격전술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넘어가며 산악도 수림도 버리고 들판에 나온다는것을 의미한다.

중좌는 한쪽벽에 걸려있는 《만주국》전도에 다가가 옆에 세워놓은 지시봉으로 장춘을 짚으며 말하였었다.

《장춘으로 나오는데 벌판을 지나지 않을수 있으며, 장춘을 포위하는데 전선을 전개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중좌, 자네 견해에 일리는 있지만 일면적이야. 수량으로 보나 장비로 보나 공산군도 옛날의 공산군이 아니란말일세. 그들이라고 타산이 없이 쳐나오겠는가?》

까까중이머리를 한 40대의 장성이 앉은채 한마디 던졌다. 그러나 중좌는 돌아다보지도 않고 자기 말을 계속하였다. 그는 지도를 짚어가며 남, 북, 동만 각 지구 항일련군부대들의 활동지구와 그 부대들의 편성인원, 장비들 그리고 장차 장춘포위를 위하여 그들이 선택하리라고 예견되는 기동로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그들을 포착 섬멸하는데 적합한 요소들과 그에 필요한 무력에 대해서까지도 자세한 설명을 하였다. 제 할 소리 다하고 중좌는 자리에 돌아가 종일 앉았던 그 자세대로 한쪽으로 기울떡하게 걸터앉아 비웃는것인지 흡족해 하는것인지 알수 없는 그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관동군사령관 우에다대장은 장내를 향하여 의견을 물었다. 그제야 모두 중좌가 사령관의 심복부하라는것을 알아차렸다. 몇사람이 조심스럽게 비행기와 장갑차, 자동차, 포부대들의 증강이 필요하다는것을 제기하였을뿐 다른 의견이 없었다. 우에다사령관은 중좌가 제기한 안에 립각하여 각 지구《토벌》사령부와 련관이 있는 군관구들에서 작전안을 세우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날 협의회를 마쳤으며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오늘 최종적으로 확정된 작전명령을 시달하기 위한 모임을 소집한것이다.

방금 회의실에 들어와 말석에 앉은 중좌가 바로 그날의 그 장교였다. 그는 자는지 조는지 그날보다 퍽 수척하고 지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회의장에 둘러앉은 장성들이 모두 그를 힐끔힐끔 살피며 수군덕거렸다. 전번 협의회이후 문제의 인물로 등장한 중좌에 대한 화제가 돌아가고있었다.

젊은 중좌는 본국에 있을 때 참모본부산하 어느 부서에서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수걱수걱 붓대질이나 하고있었지만 실상 《3월사건》이요 《2. 26사건》이요 하는 대신을 죽이는 음산한 음모에는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던 인물로서 누구의 연줄로인지 만주에 건너온 다음에는 비밀리에 특수기관을 꾸려놓고 만주의 공산당지하조직 특히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대결하는 모략을 꾸미고있는 수수께끼의 인물이였다.

성은 오끼인데 그가 실지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장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기관이 틀고앉아있는 남령거리 유측의 집은 봉건제왕들에게도 과남할 정도로 요란한것인데 넓게 둘러친 벽돌담안에는 크지 않은 동산과 백조가 헤염치는 호수와 사슴떼 뛰노는 푸른 잔디밭이 있었다. 그가 상종하는 사람들은 관동군사령관과 얼마전에 참모장이 된 도죠, 《만주국》군정부 최고고문, 헌병사령관 같은 만주와 관동군의 거물급 통치자들이였다.

얼마후 하얀 장갑을 낀 참모가 문안에 들어서서 말없이 좌중에 눈짓을 보냈다. 장성들은 일시에 방안복판에 놓여있는 작전탁앞으로 모여갔다. 졸고있던 중좌도 벌떡 일어났다.

관동군사령관이 위엄있게 눈길 한번 움직이지 않고 문안으로 들어섰다. 책상앞에 다가선 사령관은 지친듯 눈을 몇번 끔벅이고나서 부관이 들고있는 지시봉을 넘겨받았다.

《본국 사령부는 만주국령내외에 산개했던 공산, 반만계렬의 련합부대들이 수도 신경을 포위함락하려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주제국 대륙정략수행의 암을 일거에 소멸해버리려고 한다.》

사령관은 지시봉으로 벽을 한가득 채운 작전지도를 짚으며 설명했다.

그의 명령시달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각 방면 항일련군부대들의 최근 동향을 개괄하고 예상되는 그들의 진출경로를 밝힌 다음 각 군관구련합 《토벌》부대들의 임무를 밝히였으며 증강배속할 비행대와 장갑차, 자동차 등으로 장비된 기동부대와 포부대들을 지적하였다.

명령시달이 끝나자 사령관은 선채로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참모장이 따라서다가 돌아보며 말하였다.

《속히 돌아가 임무수행에 착수하라. 군정부 최고고문과 1군관구 수석고문, 부참모장과 주임참모 그리고 오끼중좌는 사령관실로 오라.》

지명당한자들은 잠시 무거운 표정으로 참모장을 쳐다보다가 그의 뒤를 따랐다.

휑하니 넓은 사령관실 한쪽 구석에 원탁을 중심으로 둘러놓은 쏘파에 젖히고 앉아있던 우에다대장은 방안에 들어선 사람들을 보자 피곤에 몰린 얼굴을 쳐들고 무표정하게 의자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한마디 하였다.

《모두 앉으라.》

참모장이하 다섯사람은 조심스럽게 둘러앉았다. 우에다는 좌중을 둘러보다가 오끼에게 물었다.

《다녀왔는가?》

오끼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대답했다.

《예, 아침차에 도착했습니다.》

우에다는 고개만 끄덕이고나서 다시 좌중을 둘러보며 계속하였다.

《부른 까닭을 짐작들 하겠지만 오늘 작전명령을 시달은 하였으나 실은 이번 작전의 가장 요진통, 말하자면 김일성공산군에 대한 대응책은 뚜렷한것이 없다. 이것이 이번 작전의 가장 우려되는 약점이다. 우리가 설사 벌판에 뛰여나온 항일련군을 일거에 소탕해버린다고 하더라도 백두산의김일성공산군을 그대로 둔다면 이는 가지를 치고 뿌리를 남기는것과 같은 허망한짓이다.

우리가 김일성공산군과의 대결책을 결정하는데 골치거리는 <열하원정>, <장춘포위작전>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도무지 확정할수 없는것이다. 그렇지만 확정할수 없다고 해서 이대로 전반적작전을 내밀지 않을수 없는만큼 오늘 이 자리에서 충분한 론의를 거쳐 잠정적인 대응책이라도 세우자는것이다. 의견들을 말해보라.》

우에다의 눈길이 먼저 간것은 주임참모였다. 주임참모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고나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북지사변이후 공산군사령부의 동정을 일거일동 면밀하게 분석해보았으나 아직은 <장춘포위작전>참가여부에 대한 그들의 뚜렷한 지향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전제하고나서 그는 《북지사변》이후 조선인민혁명군의 동향에 대한 지루한 설명을 하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산군이 사변후 초기에 백두산지구를 떠나 림강쪽으로 서진하다가 급속히 북진태세를 취할 때에는 <장춘포위>에 진출할 기세가 보였으나 최근에는 백두산일경에서 정체류동하므로 그 지향은 다시 모호한것으로 되여버렸습니다. 저의 의견을 말씀드린다면···》

주임참모는 돌처럼 표정이 굳어진 사령관을 힐끔 쳐다보고나서 계속하였다.

《우리는 부득불 그들이 <장춘작전>에 진출할수도 있고 안할수도 있다는 두가지 경우를 다같이 타산하고 그에 대처할 작전을 세우는것이 상책인줄로 생각합니다.》

관동군사령관은 쓰거운듯 입귀를 찡그리였다.

《흥, 배안의 애가 사내애 아니면 계집애라는 격이군.》

그는 자기 말이 지나치게 야비스러워진것을 느끼였던지 이그러진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그리고 부참모장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부참모장의 생각은 어떤가?》

부참모장은 갱핏한 얼굴을 바로세우고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하였다.

《저는 김일성공산군이 <장춘작전>에 가담하는것은 피할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놀라움과 호기심과 기대에 넘친 눈으로 부참모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가운데도 몹시 놀란 표정을 지은것은 오끼중좌였다. 부참모장은 사람들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령관의 낯색을 지켜보며 말을 계속했다.

《공산당들은 국제당의 명령을 어길수 없는 강력한 중앙집권적규률에 매여있습니다. 그러므로 김일성이 그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는것입니다. 이렇게 놓고보면 조선인민혁명군의 <장춘작전>참전은 불을 보듯 명백한것인데 다만 그가 지금 압록강류역을 떠나지 않고 이리저리 선회하는것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려놓고 빠져나가려는 술책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는 동의를 바라는듯 좌중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멍청히 그를 쳐다볼뿐이였다.

《허!···》

대머리 참모장 도죠는 감탄한것인지 어이없다는것인지 이렇게 허파 빈 소리를 쳤다. 우에다대장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중얼거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무리 김일성공산군이라도 벌판에만 나오면야 죽지부러진 수리개지. 하지만 당신의 그 예측을 믿고 10만대군을 움직일수야 없지 않는가? 그 예측을 확증할만 한 증거가 필요하단말이야. 오끼.》

우에다는 중좌에게 시선을 돌렸다.

《현지에 다녀왔으니 뭐 좀 내놓을게 없는가?》

오끼는 천천히 돌아앉아 우에다를 건너다보며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저는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나오지 않을것으로 예견하고 작전을 세우는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무슨 소린가?》

우에다는 표정이 굳어졌다.

《저로서는 그렇게 주장할만 한 근거도 가지고있습니다만 만약의 경우, 저의 예측이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한것은 사령관각하께서 말씀하시다싶이 벌판에 나온 공산군은 그가 아무리 김일성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건 그래, 하지만 백두산에서 나오지 않으리라는 자네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

오끼는 대답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군복저고리 웃주머니에서 접은 종이장을 꺼내여 우에다앞에 내밀었다.

《제가 현지에서 입수한 김일성이 최근 조선민중에게 보낸 호소문입니다.》

우에다의 눈에 벙끗 빛이 떠올랐다. 그는 종이장을 나꾸채여 훑어보았다.

《호소문은 <지나사변>과 <열하원정>방침에 대한 그들의 립장을 잘 말하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성의 관심은 장춘이 아니라 조선에로 쏠리고있습니다. 보천보습격으로써 절정에 끌어올린 조선의 반일운동을 <지나사변>이라는 정세의 큰 파동을 배경으로 한단계 더 높이 끌어올리기 위한 투쟁에로 국내 민중을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호소문의 발표를 전후하여 압록강과 국내 깊은 지대에로 공산군 별동대, 소조, 공작원들이 대대적으로 침투하고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게다가 일시 련합부대를 형성하고 북상하여 장춘작전에 나설듯이 보이던 김일성휘하의 부대들도 휘남현성을 친 다음에는 뿔뿔이 갈라져 되돌아 압록강과 두만강쪽으로 남하의 추세를 보이고있습니다. 국내에로 진출한 한개 소부대는 며칠전 함남도 삼수군의 금광을 습격하였습니다.》

간신히 점잔을 빼고있던 관동군사령관은 끝내 울화를 터뜨리고야말았다.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탕 하고 치고나서 투덜거렸다.

《천치들, 밥통들···》

그는 갑자기 지난번 도문회담때 세상이 창피하도록 요란하게 꾸려준 조선반도의 방위무력이 생각나서 화가 더 치밀었다.

《100리를 걸어가도 사람 하나 만날가말가한 무인지경에 5리마다 중무장한 주재소를 내오고 늙은이, 아이 할것없이 통털어 주민 500명당 순경을 한명씩 널어놓았는데 사태를 걷잡지 못한단말이다. 시내물만 한 압록강, 두만강에 경비정을 띄우고 비행기가 늘 순찰하고있는데도 그 꼴이란말이다. 전쟁상태도 아닌 반도에 군대만 해도 얼마인지 아는가? 무엇이 부족한가? 무엇을 더 놓아야 하는가?》

사령관은 자기의 말이 빗나간것을 알고 잠시 중단했다가 갈앉은 소리로 계속하였다.

《그런데 인민혁명군은 거침없이 마음대로 우리를 치고 때린다. 며칠전에는 묘령을 치는가 하면 두개 련대가 휘남현성을 무너뜨리더니 이번엔 수명의 소부대가 조선국내 깊은곳을 치고··· 종횡무진이란말이다! 누가 감히 조선인민혁명군의 의사를 짐작하는가?》

사령관은 골치가 아픈지 두손으로 이마를 싸쥐고 마음의 충격을 짓누르고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마음을 다잡고나서 오끼에게 눈길을 보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끼는 까딱하고 고개를 숙여보이고나서 중단됐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비록 국제당의 지시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규률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김일성이 그만한 문제를 처리 못할 사람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의 지략으로써 <장춘작전>의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겠는가 하는것도 의문시됩니다. 이렇게 놓고보면 김일성이 백두산지구에 더욱 완강하게 틀고앉아 활동하리라는 예측이 거의 확정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고 대응책을 세우는것이 우리로서는 상지상책이 아닐수 없습니다.》

《흐음···》

우에다는 오끼의 정연한 론거에 얻어맞기라도 한듯 신음소리를 지르며 쏘파에 등을 젖히고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결국 이번 절호의 기회에도 백두산에 박힌 뿌리는 뽑지 못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장춘작전>은 공산사령부와의 대결에서도 역시 우리에게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주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린가?》

《각하, 그들은 백두산지구에서 고립무원한 상태에 빠지지 않았습니까?》

오끼는 버릇이 된 그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우에다는 쏘파에서 등을 세웠다.

《동, 남만과 북만의 린접을 잃었단말이지!》

오끼는 고개만 끄떡하였다. 우에다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뚜벅뚜벅 구두발을 옮겨 창문가로 걸어갔다. 둘러앉았던 부하들도 모두 일어섰다.

《오끼, 지금 김일성사령부의 거처를 알수 있는가?》

우에다가 문득 돌아보며 묻는 소리였다.

《알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개의 부대들이 부단한 류동상태에 있는데 어느게 그의 친솔부대인지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알아내려면 못알아낼것도 없지요.》

《그렇다면···》

우에다는 돌아서서 오끼에게 다가섰다.

《남만과 동만 일경의 토벌무력을 지급 기동시켜 포위진을 치고 소탕작전을 벌려야 할게 아닌가?》

《각하, 허물없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오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에다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말하게, 기탄없이.》

《천재일우의 기회인만큼 우린 절대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김일성은 우리보다 언제나 한두수 더 넘겨짚는다고 봐야 합니다.》

《중좌의 의견을 말해보라.》

오끼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을 가다듬는듯싶더니 계속하였다.

《드팀없이 한걸음한걸음 김일성의 사령부에로 조여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가을이 가기전에 무력으로 백두산지구에 대한 포위봉쇄선을 형성해야 할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급선무는 백두산지구 백성들속에 뿌리뻗어간 그의 조직선, 사상적영향력을 소탕해버리는것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백성들과 피줄이 통해 있는 한 우리는 그를 소탕해버릴수 없습니다. 주민들이 정보를 제공해주고있는 한 우리는 신출귀몰한 그들의 종적을 따라잡을수 없으며 주민들이 먹을것, 입을것을 공급하는 한 그들을 굶겨죽이고 얼궈죽일수도 없는것입니다. 항일련군과의 련계가 끊어진 기회에 주민들과 접촉할 기회마저 뚝 잘라버리고보면 조선인민혁명군의 숨줄기는 기본적으로 끊어진거나 다름없이 될것입니다.》

둘러선 장성, 장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계속하라구.》

우에다는 눈에 생기를 띠우며 재촉하였다.

《동시에 우리는 김일성의 사령부에 대한 참을성있고 완강하고 집요한 공세, 추격전을 벌려야 합니다.》

《추격전이라니? 토벌대를 들이밀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옳습니다. 각하, 그런 조급하고 저돌적인 토벌작전으로 우리는 이미 10년가까운 세월 참패의 쓴 고배를 마실대로 마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비록 이해에 유리한 정세를 타서 조선인민혁명군을 고립무원하게 만들어놓고 그 유생력량을 깡그리 소멸해버린다고 하더라도 김일성의 사령부만 놓치고보면 만사 수포로 돌아가고맙니다.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 민족재생의 상징으로 되였습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김일성사령부를 집요하게 포착하고 추적하면서 참을성있게 공세를 들이대야 합니다.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심리적으로 막다른 지경에로 몰고 들어가 결판을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종국에 군사작전으로 결속짓게 되겠는지 사상정신적대결로 되겠는지는 예측할수 없어도 어쨌건 우리의 이러한 작전은 장차 우리 제국이 <지나사변>에서와 <열하원정>분쇄작전에서 승리하고 우리 제국에 의한 아시아대륙의 제패가 확실한것처럼 거의 의심할나위 없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잘만하면 우리는 총소리 한방 없이 김일성을 고이 산에서 내려오게 할수도 있을것입니다.》

오끼는 말을 맺고 둘러선 사람들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말이 없었다. 우에다사령관은 뒤짐을 지고 방안을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한바퀴 돌자 쏘파에 가서 앉았다.

우에다는 젊은 중좌의 말이 마음에 들었으나 쏘파에 앉으면서 보니 사사끼의 얼굴이 독이 올라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금시 폭언을 던질 기세이다.

오끼와 사사끼 두사람은 다같이 인민혁명군과 대결하는 사업을 맡아보고있는데 둘다 열성이 짝지지 않았다. 그런데 대결방안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고집했다.

모든 정치를 총과 검으로 할수 있다고 여기는 무단통치파인 사사끼는 이번 《열하원정》과 관련한 대응책도 무력으로써만 해결할수 있다고 하면서 백두산주변의 모든 인가를 불살라버리고 모든 주민을 몽땅 쏘아죽이면 그만이라고 외곬으로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우에다사령관이 명령만 하면 100여대의 자동차에 련대들을 끌고가서 백두산주변에 풀 한대 남지 않게 포격을 하고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끼는 그렇게 해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더 드센 반항을 일으키게 될것이라고 하면서 인민혁명군사령부에 대한 파괴 또는 회유공작을 들이대여 뿌리를 뽑아 나무를 죽이고 샘구멍을 막아 대하의 흐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에다는 사사끼의 제안을 일축하지는 않았으나 가능하면 오끼의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했으면 했다. 다만 그것이 성공될수 있을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끼의 말을 이리저리 캐게 되는데 사사끼는 그것을 자기에 대한 홀시로 생각하고 심술을 부리고있다. 사실상 지금처럼 오끼의 말에만 일방적으로 관심을 표시한다면 오끼의 까마득한 상급인 사사끼를 무시하는것으로 될뿐아니라 한가지 사업을 두고 합심해야 할 두사람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것으로도 될것이였다. 우에다는 사사끼의 체면도 지켜줄겸 오끼에 대한 반발심도 눅잦히려고 그에게 말을 시키였다.

《토벌사령관은 이의가 없는가?》

사사끼는 가슴속에 큰 울분을 품고있은듯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거쉰 소리로 말했다.

《오끼중좌의 말이 대체로 일리가 있습니다. 부언하고저하는것은 질질 끌것없이 장백지구에 초토화작전을 벌리자는것입니다. 남의 신주를 없애려면 그 집을 불살라버리는것이 상책이고 소대가리를 삶자면 장작불을 쳐때면 그만입니다. 복잡한 리론이 소용있습니까?》

우에다는 이전부터 사사끼의 이러한 무사다운 결기를 알고있었으나 좀더 온건한 방안을 모색하자는 뜻에서 그의 성급한 제의를 눌러오고있을뿐이였다.

이 복잡한 리론이라는것은 바로 오끼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그것을 늙은 우에다도 느끼는데 오끼 당자가 못느낄리 없었다. 그러나 오끼는 입가에 알릴듯말듯 미소를 짓고 선선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우에다는 저도모르는 사이 한마디 물었다.

《오끼중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오끼는 정중하게 일어나더니 단마디로 잘라서 말했다.

《각하, 저는 쇠화로에 담겨있는 숯불을 끄겠다고 커다란 메로화로를 들부시는것은 량책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불길이 더 넓게 번질것은 자명한 리치입니다.》

사사끼는 대뜸 낯색이 변해서 오끼를 툭 불거진 눈으로 쏘아보며 뇌까렸다.

《밀정 특무배를 아직 적게 밀어넣었다구 륙장 그짓만 하겠는가!》

오끼는 차거운 랭소를 입가에 띄우며 침착하게 앉아버렸다.

늙은 충견과 젊은 충견이 무섭게 으르렁대는것을 본 우에다는 어색한 분위기때문에 눈이 뾰족해진 참모장을 바라보며 격에 어울리지도 않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우리는 상책이건 하책이건 가릴 형편이 못된단말이다. 사사끼소장의 제안은 실수없는 확실한 방안이니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사사끼소장의 제안을 따를수 밖에 없어. 사사끼소장은 동요없이 초토화작전을 준비하라.》

우에다는 우선 사사끼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사사끼의 제안대로 리행한다면 통치를 잘못했다고 자기가 비난받고 말밥에 오를수도 있겠지만 죽는것보다 까무라치는편이 낫다고 그쯤한 말이야 못참을수도 없는것이다. 그러나 우에다가 단마디로 사사끼의 제안을 지지한데는 오끼의 주장을 사사끼도 지나치게 반대하지 말것을 바라는 요구도 담겨있는것이였다.

《오끼가 사사끼소장의 수고를 덜고 무난하게 김일성공산군을 대결해낼수 있다면 그 역시 좋은일이 아닌가?》

우에다는 이렇게 사사끼의 마음을 달래놓고나서 오끼와의 담화를 계속했다.

《공작계획은 짜놓았겠지?》

오끼는 사소한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전이나 다름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예, 대충 륜곽은 세워놓았습니다. 그중에는 이미 실행에 착수한것도 적지 않은데···》

《건 나도 알아. 오늘중으로 공작계획을 완성하여 직접 참모장에게 제출하게.》

《옛.》

오끼는 발을 모두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야기된 특수작전계획은 이 자리에 있는 다섯사람만이 안다는것을 명심하여주기 바란다.》

우에다가 다짐을 놓자 모두들 자세를 바로잡고 고개를 숙였다.

오끼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성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묵례를 하고나서 그들을 앞질러 방을 나섰다. 현관을 나선 그는 잰걸음으로 승용차에 올라탔다.

번화한 거리로 차를 몰아가는 그는 방금 머리속에 차고 넘쳤던 불쾌하고 역겨운것들이 어느 정도 씻겨지는것 같았다. 그리하여 오끼는 혁명군세력을 없애기 위해서 백두산주변의 주민들을 몽땅 죽이고 민가들을 일시에 불태우겠다고 고아대던 사사끼의 우둔한 상판을 상기하며 쓰거운 웃음을 지어보았다. 사시끼의 그 제안이라는것이 신통한것이 못된다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다른 특별한 묘책이 없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사사끼의 그 우둔한 주장에 기울어질수 있는 우에다와 도죠의 모습도 그려보았다. 그러면서 오끼는 이런 정세속에서 자기 직무수행에 박차를 가해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게 가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