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1편 8


 

제 1 편

8

 

사령관동지께서 중평광산을 친것을 좋게 보시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은 안희창은 골이 뗑해졌다. 그런것도 모르고 전투가 멋이 있게 되였다고 떠들어올린 자기 일이 어처구니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그는 마동희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마동희는 무엇인가 들은 말이 있거나 느낀것이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귀띔이라도 해야 할게 아닌가.

그런데 마동희는 허울만 남은 사람처럼 장군님께서 넘어가신 싸리밭언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안희창의 존재는 잊어버린듯 자기 중대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버렸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번에는 같은 질문을 자기자신에게 해놓고 한참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암만 생각해봐야 광산습격전투는 멋이 있게 된것 같았다. 그만한 력량으로 그 절반쯤되는 전과만 거두어도 표창을 받군했다.

암만해도 모를 일이였다. 한참 생각하니 골만 뻐개져왔다. 누군가 붙잡고 속시원히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련대장은 회의에 참가했고 마동희는 저보다 더 머리가 아픈 상인데다 지금은 아무청이든 받아줄 잡도리가 아니였다.

자세를 좀 고쳐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가 해서 진대통에 비스듬히 기대여보았다. 그러자 천성이 태평가인 안희창의 눈에는 온갖 근심걱정대신 푸르른 하늘이 확 안겨왔으며 재미있는 일거리들이 련속 떠올랐다.

그는 서둘러 병실로 달려가서 배낭을 뒤졌다. 밑창까지 몇번이나 저어서야 가까스로 접이칼을 찾아냈다. 그는 칼날을 몇번 폈다 접었다 해보고나서 그것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밀영이나 좀 돌아보고 오겠소!》

안희창은 직일당번에게 점잖게 소리친 다음 성큼성큼 숙영지를 떠났다. 재봉대에 가서 윤화에게 인사도 할겸 조국땅에 들어가서 구해온 손칼을 종철에게 주고 좀 놀다 올 계획이였다.

마가을 해빛은 밝고도 따뜻하였다. 가느다란 흰구름이 지나간 푸르른 하늘도 다양한 빛갈로 밝게 물든 숲도 산뜻한 대기도 지끈지끈하던 머리속을 시원히 가셔주었다.

안희창은 가벼운 걸음으로 개울물을 따라 골안막장을 톺아올라갔다.

이 밀영에 와본 일이 없는 그는 어디에 재봉대귀틀집이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물어볼 생각도 않고 자신있게 걸어갔다. 재봉대병실은 빨래나 작식에 유리하도록 시내물을 끼고 제일 구석지고 외따른곳에 자리잡고있을것이였다. 중평광산습격전투와는 달리 이런 문제에서 그의 판단은 대단히 정확했다.

시내를 거슬러 골안막바지로 들어가니 과연 내가에 빨래돌로 쓴 너럭바위가 나타났으며 방금 씻어낸 푸성귀쪼각들이 물우에 떠있었다. 안희창은 어렵지 않게 멀지 않은 언덕밑에 외따로 서있는 귀틀집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데 유격대병실이 왜 이처럼 조용한가. 귀틀집주변은 물을 뿌린듯 조용하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야 병실안에서도 사람의 동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귀틀집처마밑의 좁은 마당에 웬 녀대원이 짧은 기병총을 어깨에 걸메고 앉아서 보우에 펴놓은 기장쌀을 뒤적이고있다. 그 녀대원은 재빠른 솜씨로 얄팍하게 깔려있는 기장쌀을 이쪽저쪽으로 번져놓으면서 이따금 티검불같은것이 눈에 띄면 골라내고있는데 그 일에 얼마나 골몰했는지 희창이가 바투 다가서도록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가만 보니 물이 날지 않은 새 군복이며 몸에 잘 붙지 않은 기병총이며 어디라없이 신대원이라는것이 알렸다.

(그렇다면 혹시···)

희창이의 가슴속에는 순간 호기심이 동했다. 엇비듬히 나무사이를 돌아가서 수그린 얼굴의 옆모습을 살펴보니 그럴사해서 그런지 마동희와 비슷한것도 같았다.

안희창은 이리저리 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처녀가 인기척을 느끼도록 발걸음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갔다.

《수고하오. 다들 어데 갔소?》

국화는 깜짝 놀라며 머리를 들고 크고 억실억실한 눈으로 난데없이 나타난 틀스러운 유격대원을 바라보았다.

《저, 누구를 찾는지···》

국화는 차렷자세를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희창이는 자신의 언행이 지내 돌발적이였다는것을 느끼였으나 내친김이라 그대로 가슴을 툭 내밀고 점잔을 뺐다.

《윤화아주머니가 이 집에 있지 않소? 난 종철이를 찾아왔소.》

《예, 여기 있어요. 종철이도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좀 기다리면 곧 올거예요. 잘 아시는 사인가요?》

《그렇소. 내가 돌아온줄 알면 기다리겠는데 어디 갔나?》

국화는 여전히 상급앞에 서있을 때처럼 차렷자세를 취하고있었다.

(나도 신입대원시절에는 저러했지···)

희창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녀대원을 한번 곁눈질해보고나서 마동희의 누이동생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였다. 신대원이 아니고 밀영에 이처럼 고운 처녀가 여태 소문없이 배겨있을수가 없는것이다. 입이 무거운 마동희가 은근히 뽐낼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무는 오빠를 만나보았소?》

그 말을 들은 국화는 은연중 놀라며 낯선 젊은이를 다시 뜯어보았다. 좀 데면데면하고 희떠울사한 사람이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있는데 오빠이야기를 들으니 별안간 서먹서먹한 마음이 사라졌다.

《네, 조금전에···그런데 동무는 누구예요?》

어마어마한 탄띠랑 엇갈아멘 낯선 구대원앞에서 주눅이 들어있던 국화의 눈에는 밝은 생기가 피여올랐다.

《이제 다 알게 될게요. 우리는 친형제나 같소. 동무는 국화지?》

국화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외로 꼬며 숙였다.

그러면서도 물어볼것은 놓치지 않았다.

《그럼 오빠와 함께 국내공작을 갔댔어요?》

《아, 그쯤합시다. 동무가 입대한것은 잘한 일이요. 우리 함께 모든것을 다바쳐 일제침략자들과 싸웁시다. 나도 동무가 훌륭한 유격대원이 되도록 적극 도와주겠소. 뭐니뭐니해도 유격대에서는 기관총수를 제일로 치는데 동무도 혹시 기관총수가 되고싶거든 서슴없이 찾아오시오.》

국화는 부러움에 찬 눈길로 희창이를 바라보며 (아, 기관총수였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전 아직 보총도 제대로 못다루는데 어떻게 기관총까지···》

국화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처녀는 어느새 엄엄하게 점잔을 빼는 희창이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소박하고 락천적이고 친절한 성품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자기의 속마음도 한끄트머리 두끄트머리 열어보이는것이였다.

《물론 보총 다루는것부터 배워야지. 그러나 열성만 있으면 인차 배울수 있소. 우리 혁명군에 이름난 녀성기관총수들이 많소!》

국화는 발깃한 가죽탄띠를 바라보며 부러움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기관총수는 모두 그런 탄띠를···》

희창이는 입귀를 처뜨리며 도리질을 했다.

《탐나오? 탐나면 하나 주겠소!》

국화는 흠칫 놀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그는 낯선 사람에게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섰다는것을 느끼였다. 탄띠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무안을 당한 국화의 얼굴은 처음에 희창이를 만났을 때처럼 랭담하고 낯선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잠자코 제자리에 돌아가 일을 계속했다.

안희창은 처녀가 갑자기 새침해진것이 이상하여 멍청히 지켜볼뿐이였다.

이때 가까운곳에서 락엽이 사각사각 밟히우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희창이의 얼굴에는 차차 웃음이 떠올랐다. 자기 가까이에 다람쥐가 맴돌고있다는것을 눈치챈것이다.

그는 주머니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들고 소리없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람쥐는 열댓걸음밖에 누워있는 진대통복판에 앉아있었다. 그놈은 소담스러운 꼬리를 머리우에 솟귀도록 사리고 앞발로 불록한 볼을 감싸쥐고있었다.

희창이는 주위를 경각성있게 살피고있는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을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다시 돌아섰다.

그는 국화쪽을 향하여 팔을 휘저으면서 소리를 내지 말고 자기에게로 오라고 온갖 시늉을 다했다.

국화는 한참후에야 희창이의 분주한 손짓, 몸짓을 바라보았다. 그는 소리내지 말고 빨리 자기한테 가까이 오라는 뜻을 겨우 알아챘다.

국화는 긴장되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가? 정황이 있는 모양이구나.)

국화는 총자루를 거머쥐고 잔뜩 조심해서 희창이에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희창이는 봇나무기둥에 기대여있는 싸리나무회초리를 가져오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국화는 그까짓 회초리보다는 자기 총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총을 벗어 들어보이였다. 희창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리질을 하였다. 국화는 할수없이 총을 다시 메고 회초리를 들고 희창이에게로 소리없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예요?》

《쉿!》

희창이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한 다음 국화의 손에 손거울을 들려주고 그가 가져온 싸리회초리를 받아쥐였다. 국화는 절간에 업혀간 사람처럼 희창이가 하는대로 싸리회초리를 내주고 손거울을 받아들었다.

《이 거울빛을 저놈의 눈에 비치오. 내가 짝지발을 만들어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희창이는 국화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국화는 잔뜩 긴장해서 희창이의 눈길을 따라 진대나무쪽을 살펴보았다. 그 복판에 다람쥐가 앉아있는것을 발견하고서야 희창이가 어째서 자기더러 회초리를 가져오라고 했으며 손거울은 왜 들려주었는지 알아차렸다. 숲속에 원쑤놈이 기여든줄 알고 긴장되여 달려온 국화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초면인 낯선 청년이 설마 다람쥐사냥을 하자고 그처럼 다급히 불러댈줄이야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는가!

《왜 이러오? 내 손이 둘밖에 없어서 손신세를 좀 지자는건데··· 저 고운것을 잡아 종철이한테 주자구. 응? 거울을 들고있지 않겠으면 이 회초리끝을 짜개서 짝지발을 만들어주오. 빨리, 꾸물거리다간 다람쥐 놓치겠소!》

희창이는 애타게 사정했다.

국화는 입을 비쭉 내밀었다. 그는 무안을 당한듯 눈을 내리뜨고 돌아서버리였다.

국화도 다람쥐를 잡아 종철에게 주고싶은 마음이 정 없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미 소녀시절처럼 제 마음 내키는대로 마구 처신할수 없었다. 오빠와 함께라면 몰라도 판판 낯선 사람과 어떻게 만나자부터 놀음놀이를 하겠는가. 그는 희창이가 두번다시 말을 못하게 바람소리가 나도록 돌아서서 가버리였다.

《이거 꽤 맵짠데···》

국화가 되돌아오지 않으리라는것을 눈치챈 희창이는 혼자서라도 다람쥐를 잡으리라 결심했다. 그는 한손으로는 거울로 다람쥐의 눈을 비치고 한손으로는 싸리대를 들고 끝을 씹어서 짜개였다.

(흥, 이제 내가 잡은 다람쥐가 재롱을 부릴 때 구경만 해봐라!)

그는 은근히 애가 났으나 국화를 더 어쩔수도 없었다.

다람쥐는 종시 놓치고말았다. 짝지발을 만드느라고 꾸물거리는사이 손거울의 반사광이 눈에서 빗나가자 다람쥐는 그짬에 숲속으로 재빨리 도망쳐버리고만것이다.

안희창은 오만상을 찌프리고 국화를 바라보았다. 국화는 자기 혼자 있을 때처럼 다소곳이 앉아서 일만 하고있었다. 국화의 태연한 모습을 보니 희창이는 점점 약이 올랐다.

그는 주머니에서 노란 구리로 만든 나팔꼭지를 꺼내서 후후 불어본 다음 입술에 가져다댔다.

노래를 좋아하는 희창이가 어느때나 몸에 지니고다니는 그 나팔꼭지는 휴식때는 하모니카를 찜쪄먹는 악기가 되고 나팔수가 없을 때는 신호나팔이 되기도 하였다.

나팔소리를 내여 종철이를 부르려던 희창이는 멀지 않은곳에 사령부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도로 주머니안에 넣어버리고 숲을 향해 돌아섰다. 그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입김을 내불었다. 그러자 《호루루쪽쪽》하는 맑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일어났다.

국화는 난데없이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고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있는 희창이를 띄여보고 고개를 숙이며 웃어버렸다.

새소리가 몇번 울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숲속에서는 분주한 발자취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종철이가 뛰여나왔다.

《아저씨!》

종철이는 숲속을 뛰여나오며 숨가쁘게 부르짖었다.

개장변의 바위불에 앉아있던 희창이가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거려보이자 종철이는 바람처럼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여 목을 그러안았다.

《아저씨, 언제 왔어요? 난 새소리 듣고 막 뛰여왔다!》

종철이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랑랑하게 울려퍼지였다.

국화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일손을 놀리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엿듣고있었다.

덩지가 커다란 유격대 기관총수와 철없는 소년이 서로 그러안고 쓰다듬고 딩구는것을 본 국화는 까닭없이 그들이 부러운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도 국화는 될수록 린색하게 생각해보는것이였다.

(아이들이 따르는 사람이야 많지. 게다가 놀기 좋아하는 사람같고 또 좀 재간도 있는것 같으니까 종철이같은 철부지가 저렇게 따를만도 하지. 그러나 만나자마자 날더러 다람쥐사냥을 하자고 불러대는것은 나를 종철이처럼 취급하는거야.)

그러나 국화의 눈길은 호기심에 못이겨 그냥 희창이쪽으로 끌리였다.

갑자기 종철이가 환성을 올리며 국화에게로 달려왔다.

《아지미 이것 봐, 아저씨가 준거야!》

종철이는 자그마한 접이칼을 내밀어보였다.

《참, 좋겠구나. 연필을 깎으면 좋겠다.》

종철이는 칼날을 접었다폈다 하면서 우쭐해서 말했다.

《이 칼로 권총을 깎을래!》

종철이는 다시금 희창에게로 달려가서 무릎에 매달려 무언가 졸라댄다.

국화는 깨끗이 골라낸 쌀을 보에 싸서 부엌안으로 들여갔다.

일단 부엌에 들어와 쌀을 제자리에 놓고보니 할일없이 낯선 사람이 있는 마당으로 다시 나가게 되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부엌안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언니는 왜 아직 안올가?)

국화는 윤화가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윤화만 있으면 이처럼 조심스럽고 어색하지 않을것 같았다. 윤화는 지금 한길복이와 함께 깊은 숲속에 감추어둔 군복을 가지러 간것이였다.

(나도 기관총수가 될수 있을가? 정말 저 동무는 나한테 기관총다루기를 배워줄가?)

국화는 다시금 문틈으로 희창이를 바라보았다. 희창이는 무엇인가를 직심스럽게 깎고있는데 그의 무릎에 턱을 고이고 붙어앉은 종철이는 희창이의 군복에 떨어지는 칼밥을 털어주고있었다.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는 국화는 자기도 그속에 끼워보고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는 한참 부엌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드디여 맞춤한 일감을 찾아냈다. 부엌구석에 서있는 도끼를 들고 마당으로 나와 쿵쿵 땅이 울리게 나무모태를 굴려다놓고 통나무들을 끌어왔다. 그리고는 안희창이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쾅쾅 나무를 팼다.

한편 국화가 장작패는것을 본 희창이는 달려가 도와주고싶었으나 지금은 어째선지 국화에게 함부로 접근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손거울을 들고있으라고 해도 잘라매는 국화가 자기에게 도끼를 넘겨줄리 없었다.

국화가 장작을 다 패고나서 이마에 내밴 땀을 씻는척 하며 슬쩍 돌아보니 바위불에는 이미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돌아간 모양이구나.)

까닭없이 서운한 생각이 나서 그가 사라졌을 길쪽을 바라보는데 시내물이 굽이도는 멀지 않은 비탈에서 안희창의 구김살없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내 이제 동희동무와 함께 다시 오겠소!》

안희창이는 귀틀집을 향해 소리치고나서 따라서는 종철이를 눌러세우고 골어귀쪽으로 내려갔다.

국화는 뭔가 대답을 하려고 황황히 처마밑에 나가섰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국화에게로 돌아온 종철이의 손에는 방금 깎은 나무권총이 들려있었다. 종철이는 희창이의 모습이 숲에 가리워 보이지 않자 이사이소리로 《찌륵찌륵》 하는 새소리를 냈다. 그러자 희창이가 사라진쪽에서도 《호루루쪽쪽》 하는 새소리가 화답했다. 다정한 그들은 새소리로 두사람만 아는 말을 주고받는것이였다.

《종철아, 그 아저씨 이름이 뭐지?》

국화는 비밀한 이야기를 나누듯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종철이는 눈을 깜박거릴뿐 대답이 없었다.

《모르니?》

국화가 대답을 재촉하자 종철이는 고개를 제끼며 되물었다.

《아지민 우리 아저씨 이름도 몰라?》

《내가 어떻게 알겠니? 이제 처음 본 사람인걸.》

종철이도 그의 이름을 모르고있었다.

《넌 맹꽁이구나!》

국화는 종철이의 뒤통수를 툭 치고나서 군모와 군복상의를 벗어놓고 맑은물 흐르는 시내가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