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1편 7


 

제 1 편

7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이 돌아간 다음 무거운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인차 기관총소대로 나오시였다. 김주현이가 혹시 책임감에 눌리여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하지 못할수도 있지 않는가,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으며 결과가 잘못되였으면 동기나 과정은 어떻든 무조건 책임진다는것이 김주현의 몸에 배인 사업자세이다. 차라리 같이 데리고 갔던 소박한 젊은 대원들의 말을 들어보는것이 더 나을수도 있다. 아무렴 김주현이 그럴수야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회의시작까지 시간이 빠듯하였지만 우선 이번 공작과정에 부상을 당했다는 안희창이를 만나보고 그길로 마동희네 중대로 넘어가실 작정이시였다.

그런데 마침 재봉대에서 돌아오는 마동희가 기관총소대앞을 지나치고있었기때문에 그를 안희창이와 함께 부르시였다. 봇나무밑에 누워있는 길다란 진대통에 두사람을 나란히 앉히신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도 그들의 사이에 끼여앉으시였다.

《부상을 어떻게 당했기에 붕대도 보이지 않소? 벌써 풀어버렸소?》

사령관동지께서는 한손으로 마동희의 어깨를 쓰다듬으시며 군복을 멀끔하게 갈아입고 붉은색 도는 가죽탄띠까지 엇갈아멘 희창의 름름한 모습을 아래우로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련대장동지가 그런것까지 다 보고했습니까? 기관총탄알이 공중으로 날아가다가 옆구리를 좀 할퀸건데··· 벌써 더께가 다 앉았습니다.》

《기관총탄알을 맞았단말이요?》

장군님께서는 놀라시여 희창이가 짚어보이는 상처자리를 더듬어보시였다.

《아, 아, 아야.》

안희창은 몸을 비꼬며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오? 몹시 아프오?》

《아, 아닙니다. 근질근질해서 그럽니다.》

《하하하.》

장군님께서는 비로소 마음이 놓이시여 소박하면서도 활달한 전사에 대해 새삼스러운 사랑을 느끼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마동희는 시종 시무룩이 웃으며 장군님앞에서도 한점 구김살없이 정차게 구는 동무의 모양을 약간 부러움이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그래 마동무는 이번 행군길에도 고생을 했겠구만. 동무네 련대장동무가 보통 다그쳐대지 않았겠는데···》

사령관동지께서는 수굿하게 앉아있는 마동희의 어깨에 다시 한손을 얹으시며 아직도 어딘가 몸에 잘 붙지 않는것 같은 그의 군복차림을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마동희는 장군님의 눈길이 자기의 말썽많던 발에 이르자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하루 백리길쯤은 그닥 어렵지 않습니다. 발도 좀 단련된것 같습니다.》

《그러니 동희동무에게도 이제는 날개가 생긴셈이구만.》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조용하면서도 마음의 깊은 구석에서 울려나오는것 같은 성실한 목소리에 귀를 강구시였다.

한낮의 다양한 가을해빛이 두 대원을 량옆에 끼고앉으신 장군님의 얼굴을 환하게 비치였다.

홀로 선 봇나무밑에 놓인 길쭉한 진대통뒤에는 싸리나무들이 그쯘하게 깔려있었고 장군님께서 앉아계시는 그 진대나무앞의 넓지 않은 반반한 공지에는 네문의 기관총이 금시 불을 토할듯 반달형을 짓고 서있었다. 그것은 안희창이가 소대에 돌아오자마자 하나씩 살펴보고 손질하여 세워놓은것이였다.

《내가 방금 련대장동무한테서 기본적으로 보고를 들었소. 이번 소부대활동에서 동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고 찾았소.》

안희창은 장군님의 말씀이 선뜻 리해되지 않아 눈을 껌벅껌벅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자기가 역할을 놀았다고 할만한것은 없었다. 그래서 장군님 가슴너머로 마동희를 슬쩍 돌아보니 웬일인지 그는 목덜미가 벌개서 고개를 푹 떨구고있다. 그제야 안희창은 알만하다는듯이 고개를 한번 끄떡거리고나서 그로서도 매우 신중한 어조로 말씀올렸다.

《정말 그렇습니다. 마동무가 이번에 큰 수고를 했습니다. 우리 소부대에서 국경이나 국내사정이 제일 밝은 사람이 마동희동무니까 련대장동지도 마동무에게 전적으로 의거했습니다. 일제놈들의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어떻게 국경을 넘겠는가, 어느 지점으로 몇시에 어떻게 강을 건느겠는가, 이런 문제들이 나설 때마다 동희동무가 좋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동희동무의 의견대로 행동해서 한번도 랑패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안희창은 성수가 나서 손짓 몸짓을 섞어가며 자랑한다. 그는 점점 옹색해져서 머리도 들지 못하고있는 마동희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장군님께서만은 희창이의 자랑스러운 보고를 기꺼이 들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희창이의 말에 심취되신듯 그의 손짓과 몸세를 자신도 모르시게 따라하시며 기쁨에 넘치신 눈길로 희창이를 바라보시다가는 동희의 어깨를 다독이시였다.

《마동희동무가 소부대의 길잡이를 썩 잘하였구만. 발탈도 나지 않고···》

마동희의 고개는 더욱더 숙어지는데 안희창은 점점 더 성수를 냈다.

《국내에 들어가서도말입니다. 련대장동지가 옛날 다니던 길이 없어진것 같다고 머리를 기웃거리면 동희동무가 자신있게 앞장섰습니다. 중평금광을 정찰한것도 동희동무입니다.

사실 이번 중평광산전투에서 마동희동무가 큰일을 했습니다. 정찰임무를 맡고나가서 광산은 말할것 없고 거리형편이랑 돌아가는 소문이랑 어느 옛날에 있었던 일까지 샅샅이 알아왔는데 모두 입을 딱 벌렸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열번 죽었다 깨여나도 그렇게 샅샅이 캐여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같으면 틀림없이 전투를 하는데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캘 필요까지 있는가 하고 대강대강 돌아보고 왔을것입니다. 그런데 마동무의 보고를 들으니 치가 떨리더군요. 왜놈들이 얼마나 악착하게 구는가 하는것이 눈에 환히 떠오르는게 가슴에서 피가 막 끓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련대장동지도 앞으로 정찰을 나가면 누구든지 전투일면만 생각할것이 아니라 우리 소부대의 사명이 조국인민들과 깊이 련계를 맺는데 있는것만큼 이렇게 구체적이고 또 말하자면 중요한···》

안희창은 그때 김주현이가 오금을 박아서 강조하던 말마디가 잘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 갑자르더니 불시에 눈을 반짝거리며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중요한>이 아니라 말하자면 <절박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에- 우리 소부대성원들은 이런 절박한 문제를 포착할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련대장동지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밤에 광산을 들이쳤는데 마동무가 안내를 했습니다. 뭐 낮에 보고한것과 딱딱 맞아떨어지는게 정말 신통합니다. 그러나 제 보기에 역시 기본은 련대장동지가 결심을 잘하고 제때에 들이쳤기때문에 그런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동무들 말대로 조금만 우물쭈물했다면 몇명 안되는 소부대성원으로 국경경비초소와 주재소를 요정내고 광산에 씨글씨글하는 왜병들을 단꺼번에 쓸어버리지 못했을것입니다. 사실 저는 련대장동지가 직접 지휘하는 전투에는 처음 참가해봤는데 뭐 어떻게 펄펄 나는지 우리같은것은 맨발벗고도 못따라가겠어요.》

안희창이가 정신없이 엮어대니 장군님께서는 입가에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고 점점 고개를 깊이 숙이는 마동희의 마음을 쓰다듬으시듯 조용히 어깨를 쓸어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안희창동무도 용감하게 싸웠다던데···》

《저말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욕만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공로에 대해 그처럼 열을 올려 말하던 이 용감한 기관총수는 별안간 주눅이 들어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였다.

《욕을 먹다니? 그렇게 번개치듯 하는 전투속에서도 욕을 먹을 짬이 다 있었소?》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흥미를 느끼시고 바싹 뒤를 조이시였다.

《전투할 때는 마동무의 정찰에 기초해서 처음부터 다 짜고 들어갔기때문에 별로 잘못할것도 없었는데 철수해나오다가···》

《음, 로획한 기관총을 메고 나섰다는것말이요?》

장군님께서는 뒤를 잇지 못하는 안희창을 고무하시듯 말귀를 튕겨주시였다.

그러자 안희창은 활기가 되살아나서 또다시 손세를 써가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련대장동지한테서 욕을 먹기는 했지만 지금도 속이 알알합니다. 기관총이 세자루면 어딥니까? 거기다가 보총이 열여덟자루, 수류탄과 탄약상자는 셀수 없이 많았는데 그걸 싹 불태워버렸습니다. 련대장동지가 조국깊이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고 어찌나 성이 나서 소리치는지 고스란히 불태웠지 별수 있습니까. 이렇게 곧 부대로 돌아올줄 알았더라면 기관총만이라도 메고 오겠는걸···》

안희창은 무기들을 불태울 때 느꼈던 아쉬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듯 섭섭한 기색을 짓고있었다. 안희창은 그때 기관총을 건사해보려고 어물거리다가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희창이의 실한 무릎을 툭툭 쳐주시며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무기를 로획할 과업을 받은것도 아닌데 불태웠으면 잘되였소. 련대장동무의 결심이 정확한거요. 동무들은 곧 적들의 추격을 받았는데 로획한 무기들을 메고있었더라면 어떻게 될번했소?》

《그렇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날이 밝으니까 사방에서 왜놈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습니다. 련대장동지는 적들의 그 꼴을 보자 <비겁한 자식들, 총소리 몇방 울리니 저렇게 비명이군!> 이렇게 말하며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안희창이는 또다시 자기 련대장자랑을 늘어놓았다.

《사령관동지, 우리가 적들을 제압해버리자마자 광산로동자들과 마을인민들이 몽땅 모여왔습니다. 련대장동지는 모자를 벗어쥐고 연설을 하고 유격대신문과 잡지를 들려주었습니다. 야, 불길이 치솟는 캄캄한 밤이였지만 인민들은 우리를 그러안고 <김일성장군님께서 조국을 광복하시는 날까지 억세게 싸워나가겠소!> 모두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희창은 걷잡을수 없는 감격에 휩싸여 두팔을 높이 쳐들었다. 금시 그때처럼 만세라도 부를 기세였다.

아버지의 잔등에 업혀 살길을 찾아 이국땅에 와서 자라며 말로만 들어오던 조국땅에 들어가 동포들의 원한을 풀어준 희창이의 감격과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는것은 가히 짐작할만 한 일이였다.

장군님께서는 희창이로부터 불같이 뜨거운 기쁨을 옮겨받으신듯 밝게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아닌게아니라 일제침략군놈들이 혼뜨검이 났겠소. 놈들의 그 꼴을 본 우리 인민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소! 동무들이 크지 않은 소부대로써도 그만큼 인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는데 우리가 랑림산맥줄기를 타고앉아 유격전을 벌리게 되면 그 영향이 얼마나 굉장하겠는가 한번 상상해보오.》

《야, 정말 그렇게만 되면 온조선이 몽땅 들고일어나자고 할것입니다.》

《그런데 동무들은 돌아왔지···》

《예?》

안희창은 눈이 둥그래서 저도모르게 반문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에 대해서 더는 부언을 안하시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있는 마동희쪽을 돌아보시였다.

《아까 안희창동무 말을 들어보니 광산습격전투를 앞두고 의견이 좀 제기된것 같은데 사전에 토의를 충분히 했댔소?》

《예, 그때는 하느라고 했는데.》 하고 마동희는 장군님께서 그러한 질문을 하시리라고 예견하고있었던듯 고개를 숙인채 침착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이제 돌이켜보면 제가 정찰보고를 할 때 적의 만행에 대해서만 너무 강조하다나니 모두 격분해서 토론이 충분히 된것 같지 못합니다.》

《그때 무슨 의견들이 제기되였소? 누가 어떤 의견들을 제기했소?》

마동희는 고개를 떨군채 무릎우에 맞잡고있는 두손을 끝없이 비비고 움켜쥐고 할뿐 좀체로 입을 벌리지 못했다. 안희창에게는 장군님께 올려야 할 대답이 그 부질없는 손장난때문에 굳어질것처럼 생각되였다. 뭣을 우물쭈물하는가? 장군님께서 물으시는데 사실대로 말씀드려야지. 하기는 그때 마동희자신도 중평광산을 치는데 대해 썩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구나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할것이 아닌가. 유격대원이 량심에 찔리는것이 있으면 툭 털어놓을줄도 알아야지··· 안희창은 안타깝게 생각하며 제가 사실을 다 밝히고도싶었지만 장군님께서는 마동희에게 그 질문을 하시였고 지금도 계속 마동희의 대답을 기다리시는데다 어쩐지 자기가 적극적으로 련대장의 주장을 지지했다는것이며 마동희가 광산습격에 대해 시답잖아했다는것을 마동희앞에서 보고드린다는것이 거북하기도 하였다.

《그래 소부대성원들이 모두 련대장동무의 의견에 찬성했소?》

장군님께서는 기다리시다 못해 다시 물으시였다.

《예, 결국은 그렇게 되여 전투를 하게 되였습니다.》

마동희는 꺼져들어가는듯 한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였다.

《내가 묻는것은 결국이 아니라 토론과정을 이야기하는거요. 련대장동무야 책임자니까 토론을 종합해서 결론을 하고 명령을 했겠지. 그러면 또 무조건 집행하게 되여있는것이고···

그런데 소부대가 국경을 넘어서자마자 중평광산을 치는것이 좋으냐 좋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을 했을게 아니요? 그것이 소부대의 임무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는데 대해 아무런 론의도 없었단말이요?》

《있었습니다. 론쟁까지 했는데요. 말이 좀 있는걸 련대장동지가 꽉 눌러놓았습니다.》

안희창은 저도모르는 사이 입을 벌렸다.

《론쟁까지 있었다? 그러니 사령부의 방침을 가지고 토론들을 했겠구만.》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안희창의 말을 받아외우시면서도 눈길만은 마동희에게서 떼지 않으시였다.

마침내 마동희의 이마와 코등에서는 가는 땀방울이 솟아나더니 점차 굵은 방울로 맺히여 쭈르르하고 터슬터슬 튼 볼편으로 타고내렸다.

그제야 안희창이도 입을 다물었다. 방금전에 소부대가 돌아온데 대해 유감스럽게 말씀하시던것도 더 큰 의문을 자아냈다.

그럼 장군님께서 중평광산을 친것을 잘못된 일로 보시는것이 아닌가. 마동희가 그래서 저렇게 비지땀을 흘리는구나.

안희창은 너무나 기가 막혀 눈만 꺼벅꺼벅할뿐 그처럼 활달하던 몸짓, 손짓은 다 잊어버리고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장군님, 사실을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동희는 고개를 쳐들었다. 도수높은 안경알너머로 그렁그렁하는 눈이 이상한 빛을 뿌렸다.

장군님께서는 무엇인가 결심품고 나선듯 한 그의 표정을 이윽히 지켜보실뿐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사령부의 방침문제까지 들고나온 사람은 없었지만 이제 광산을 쳐놓으면 앞으로 소부대임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겠는가고 걱정하는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사령부의 방침을 이야기하는것이지. 그런 의견을 누가 제기했소?》

《정일권동무도 걱정하고 한초남동무도 걱정하고···》

마동희는 말끝을 어물거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이와 담화하시는 과정에 지방실정을 잘 아는 마동희가 광산습격을 제일 반대해서 애를 먹었다는 사실을 이미 료해하고 계시였기때문에 다그쳐물으시였다.

《그래 동무는 어떤 립장을 취했소?》

마동희는 놀란듯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얼핏 보매 투박해보이는 그 얼굴에는 수집은 소녀와 같은 홍조가 피여올랐다.

《저야 신대원인데 무슨 의견을 말했겠습니까? 정찰임무를 맡았기때문에 광산실정을 보고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암만해도 그때 제가 련대장동지의 성격을 잘 모르다나니 붙는 불에 키질을 한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더는 물을 말씀이 없으신듯 고개를 뒤로 젖히시였다. 사태는 더 물어볼 여지도 없이 명백해졌다. 정일권이나 한초남이같은 로숙한 지휘원들은 말할것 없고 마동희같은 신대원조차 반대하는 전투를 김주현이가 직권을 발동하여 강행한것이다. 물론 마동희가 소박하게 표현한대로 그들이 사령부의 방침까지 들고나오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소부대의 차후임무수행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것은 충분히 경고하였다. 그래서 김주현이도 이른바 《급변하는 정세》를 강하게 내세우면서도 한편으로 권영벽에게 비상련락을 띄웠던것이다.

김주현이가 소부대의 차후임무수행이라는것이 단순한 실무적과업이 아니라 사령부의 근본전략과 관련되여있다는것을 판단 못할 사람인가? 결코 그럴수 없다. 그의 눈에는 분명 뭔가 한꺼풀 씌워졌다. 국경으로 나가다가 장춘을 포위하러 가는 부대들을 만나고, 조선에서 일제의 대부대가 중국쪽으로 빠져나가는것도 보고, 그놈들의 어용신문들이 《북지전선》의 전과를 과장하여 대도시들의 함락소식을 주먹같은 특호활자로 매일같이 찍어내고 거기에 중국공산당의 호소에 따라 4억 중국인민이 항일구국의 단일한 기치하에 들고일어나게 됐다는 소식도 듣고··· 그러니 워낙 신문읽기를 좋아하는 김주현의 눈에 《급변하는 정세》라는 투명하지 못한 사막이 드리워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그러자 마동희가 견디기 어려운듯 고개를 외로 비틀며 갈린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새삼스럽게 마동희를 돌아보시였다. 여전히 이마며 코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송구한 나머지 땅속에라도 잦아들듯 옹송그리고 앉아있는 그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그는 벌써 일이 잘못되였다는것을 깨달은것이다. 그때도 반대했다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후과의 엄중성까지도 내다본듯 하다. 그러면서도 그 책임이 전적으로 련대장에게 돌아갈것만 같아 자기가 책임질 몫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갈라내자고 저렇게 비지땀을 흘리며 모대기고있는것이다.

안희창이는 천진하고 용맹한 싸움군이다. 그러나 마동희는 벌써 혁명가의 안목과 자세를 가지고있다.

장군님께서는 커다란 들보감이 넘어진 자리에 비록 어리지만 장차 거목으로 자라날 확실한 새순을 발견한것 같으시여 답답하던 가슴이 한결 트이는것을 느끼시였다.

시계를 꺼내보시니 회의시간이 박두했다. 그이께서는 무겁던 안색을 고치시고 미더운 두 전사의 어깨를 두팔에 그러안으시였다.

《동무들이 수고를 많이 하고 돌아왔는데 푹 쉬지도 못하게 이야기만 시켜서 안됐소. 안희창동무도 마동희동무와 같이 왜 소부대가 그렇게 기뻐하는 인민들을 더 찾아가지 못하고 부랴부랴 돌아오게 됐는가 하는데 대해 생각해보시오. 그럼 난 가겠소. 상처가 다 아물었다고 막 굴어서는 안되오. 마동무는 국화가 재봉대에 있는것을 아오?》

마동희는 그이의 물으심이 반가왔지만 때가 때인것만큼 말을 길게 늘어놓고싶지 않아 그저 《예!》 하고 말씀드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두사람의 손을 번갈아 잡아주시고나서 싸리나무 설레이는 둔덕길로 올라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