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1편 4


 

제 1 편

4

 

사령부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전달받은 김주현과 그 일행은 성진으로 가던 길을 버리고 돌따서서 국경을 향해 북상하였다.

철수하는 걸음은 진군하던 걸음 못지 않게 간고하였다. 더구나 소부대가 방금 중평금광을 기습한 직후여서 적들의 추격과 수색소동은 극도에 달하였다.

보천보전투직후에 취해진 조치에 따라 이미 국경연안에 여러겹의 물샐틈없는 경비진을 친 일제침략군은 제놈들의 깊은 후방이라고 자처하던 중평이 순식간에 녹아나자 생벼락을 맞은듯 대경실색하였다. 국경연안에 몰켜있던 경찰무력은 물론 혜산, 함흥 등지에서 군대들까지 끌고왔다.

오시천줄기를 따라 철길방향으로 나가던 김주현네 일행은 급기야 방향을 돌려꺾어 포태산줄기의 대원시림을 누벼나갔다. 그러나 압록강을 넘어서자면 어차피 숲에서 빠져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처음 중평에서 성진으로 나갈 때 박천수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사령부로 돌아가게 됐을 때도 적의 집요한 추격을 따돌리기 위하여 일부러 행적을 본선철길방향으로 내놓았기때문에 압록강기슭으로 나오면 조용할것으로 타산했었다. 그러나 들리는 토장이나 채벌장마다 무장경찰이 지켜서있고 큰길은 물론 크지 않은 운재로까지 길목마다 파수가 서있었다. 그래도 숲을 끼고 돌아갈 때는 아무리 적이 욱실대도 두려울것이 없었다. 일행이 단출한데다 한사람같이 펄펄나는 싸움군들이라 웬만한 적은 손쉽게 조기고 간단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소백수를 건너 압록강 물비린내가 풍겨오는 강가에 이르고보니 사정은 달라졌다. 강기슭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적들이 철통같은 경비진을 늘이고있었다.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소백산을 대중해서 대체로 곰의골밀영 맞은편 어방이라고 짐작되는 어느 숲가에 이른 김주현일행은 안희창과 정일권을 각각 상류쪽과 하류쪽으로 갈라서 정찰을 보내고 강을 건널 차비를 하였다. 여기서는 이름이 압록강이지 날파람있는 사람이면 훌쩍 건너뛸수도 있을것 같은 개울인데다 가을철이라 물이 줄어서 깊이는 정갱이를 넘는데가 많지 못했다.

그러나 적들도 그런것을 알고있었다. 그러기때문에 월경에 편리한곳이면 그만큼 적의 경비가 심한것이였다.

불도 피우지 못하고 숲속에서 한밤을 새운 대원들은 밤이슬에 축축히 젖은 몸들을 으스러뜨리며 행전도 고쳐매고 신발손질도 하였다. 국내로 들어갈 때도 이런 정황에 여러번 부딪쳤지만 그때는 이슬이 아니라 가을비를 맞고도 모두 기가 펄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행군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였기때문인지 어깨들이 축 처지고 어딘가 휘주군해보였다.

그들은 이따금 김주현의 얼굴을 몰래 훔쳐보군 하였다. 장차 소부대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고 갈 작정인가 하는 의문이 어느 눈길에나 어려있었지만 말은 일체 비치지 않았다.

김주현은 말없는 그 눈길속에서 소부대앞에 가로놓인 난관을 더욱 깊이 느끼였으나 입을 꾹 다물고 바위우에 걸터앉은채 안희창이와 정일권이 떠나간쪽을 주의깊이 살피고있었다.

해가 한발쯤 솟았을 때에야 숲속에서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눈길로 국경쪽을 바라보던 김주현은 성큼 일어나 그쪽으로 맞받아나갔다.

숲속에서는 온몸이 물주머니가 된 안희창이가 나타났다.

《어떻소?》

김주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개새끼들이 어찌나 지랄을 치는지 벌둥지를 쑤셔놓은것 같습니다.》

희창이는 선채로 숨을 톺아쉬며 자기가 보고들은것을 두서없이 내리엮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미 국경은 빈틈없이 봉쇄되여있다는것이였다.

《맞으니까 아프다는거겠지.》

김주현은 적들이 덤벼치는것이 과연 우습다는듯 빙그레 웃더니 희창이의 어깨를 툭툭 쳐서 마동희쪽으로 떠밀었다.

《어서 요기를 좀 하오. 동무말대로 하면 아무래도 육신을 좀 놀려야 강을 건늘것 같구만.》

너무나 태연한 김주현의 말에 긴장되여있던 소부대성원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안희창이는 어쩐지 자기의 보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것 같아서 뭔가 더 부언하려고 하였으나 김주현은 다 알만하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길량식이 든 마동희의 멍구럭배낭쪽을 가리켰다.

얼마후에 정일권이 돌아왔다. 그는 원래 경험있는 지휘원인것만큼 안희창이처럼 덤비지 않았고 처서군차림의 옷주제도 그럴듯 해 보였지만 긴장된 표정만은 다 감추지 못했다.

그는 무엇인가 꺼리는 사람처럼 김주현의 귀에 대고 숙덕숙덕 말했다. 그러나 신경이 날카로와진 소부대성원들의 귀에도 그의 말이 다 들리였다.

《아래로 한 5리 내려가면 토장이 있고 거기서 댓마장 더 내려가면 포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10리어간에 단속초소가 세군데나 있고 순찰이 다닙니다. 순찰하는 놈들은 모두 군복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이 어방은 국경경비대나 경찰에만 맡겨둘수 없다고 봐서 군대를 끌어온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쪽은 그럭저럭 빠져나가겠는데 강 저쪽이 문젭니다. 한 5리씩 사이를 두고 세군데서 잠복해봤는데 저쪽은 이쪽보다 더 많이 널려있습니다. 곰의골밀영이 가까운곳이니까 <토벌대>를 있는대로 다 내푼것 같습니다.》

《그야 뻔하지 않소. 얻어맞고 국경을 봉쇄하는것은 우물고누 첫수와 같은거요. 그래 더 내려가보지는 않았소?》

김주현은 부시럭부시럭 마라초를 말며 물었다.

《왜요. 한 10리 더 내려갔지요. 그런데 갈수록 더 소란스럽습니다. 그래 웃쪽이 좀 나을것 같아서 돌아왔습니다.》

정일권은 김주현의 퉁명스러운 말투를 듣자 좀 마음이 풀리는지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웬걸. 웃쪽은 더 한심하다오. 그러나저러나 동무가 굉장한 행군을 했구만. 식전에 그만큼 돌아가자니 꽤 출출하겠소. 어서 아침식사를 하고 푹 좀 쉬오.》

김주현은 정일권이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물러나자 팔베개를 하고 벌렁 나가누웠다.

갈데올데없이 앞뒤가 꽉 막혀버린 정황임을 느낀 소부대성원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깃들었다.

마동희는 그저께 일건의 조직원집에서 삶아가지고 떠난 감자와 소금주머니를 멍구럭우에 꺼내놓고 말없이 안희창이와 정일권이를 끌어당겼다. 어쩐지 말을 하는것이 경우에 어울리는것 같지 않아 조심스러웠다.

일행중 아무 꺼림낌없이 말하고 행동하는것은 김주현이밖에 없었다.

그는 팔베개를 했던 팔을 그대로 일으켜서 그우에 볼을 올려놓고 모로 돌아누우며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우리가 간밤에 얼마나 걸었던가?》

《에돌고 내뛰고 한걸 두루두루 합치면 한 100리 잘되겠지요.》

한초남이가 별걸 다 묻는다는듯이 심드렁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 한 100리 되겠지. 밤에 숲속길을 100리씩 걷는다는게 간단치를 않소. 게다가 저 동무들은 또 정찰하느라고 몇십리씩 돌아다니다왔단말이요. 지금은 날이 환히 밝았으니 날개가 있다 해도 강을 건늘 형편이 못되오. 여러 혁명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때는 푹 한숨씩 잠을 자는게 제일이요. 그러면 머리가 거뜬해져서 좋은 궁리가 떠오를거란말이요.》

김주현의 말이 아니라 해도 지금 숲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배포유하게 잠을 청하게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입들을 봉한채 나무밑둥을 하나씩 차지하고 새파랗게 개여오르는 가을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데 어느새 김주현의 코고는 소리가 드렁드렁 들려왔다.

《야, 과연 배짱이 세긴 세군.》

안희창이 감탄하여 중얼거렸다. 김주현의 코소리는 강력한 전염력을 가지고있는것 같았다. 소부대성원들이 여태 감감 잊어버리고있던 피곤이 되살아나면서 참을수 없이 졸음기가 엄습해왔다.

모두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보니 해는 중천에 높이 솟았는데 김주현은 온데간데 없고 경계근무를 서고있는 마동희 혼자 깨여나서 주변을 오락가락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그는 여태 김주현이가 차리고있던 무슨 목재판의 감독같은 양복바지저고리에 창이 휘여든 중절모를 쓰고있었다.

《련대장동지는 어데 갔소?》

목덜미로 기여드는 개미를 때려잡다가 눈을 먼저 뜬 안희창이 놀라서 물었다.

《토장에 내려간것 같소.》

《토장에는 왜?》

《모르겠소. 가만 보니 무슨 수를 쓰자는것 같소. 련대장동지는 수가 깊으니까 우리야 영문을 알겠소. 아까도 보니까 코를 드릉드릉 골길래 진짜 자는가 했더니 우리를 재우느라고 수를 피웠더구만.》

《그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눈이 둥그래서 모여들었다. 련대장이 속이 편해서 잠을 자는가 했더니 실상 누구보다도 궁리가 복잡하다는것을 느끼자 모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토장은 아까 정동무가 가본데 아니요?》

한초남이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하고 마동희가 심상한 어조로 대답했다.《그런데 나보고 그 어방 지형과 토장형편을 캐묻더군. 나도 오래전에 몇번 다녀본것뿐이니 구체적인거야 알수 없지 않소. 그러니까 답답해서 그런지 내 옷과 바꿔입고 처서군차림으로 훌 떠나더군. 감시를 잘하고 경각성을 높이며 절대로 숲밖으로 벗어지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갔소.》

《또 토장을 치자는게 아닌가?》

정일권은 고개를 기웃하며 중얼거렸다.

《전투야 무슨 전투를 또 하겠소. 사령부에서 부르는데 한시바삐 가야지.》

마동희가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시바삐 가자니까 전투를 하자는것 아니요. 어디 가만히 빠져나갈데가 있는줄 아오.》

안희창이 전투라는 말에 벌써부터 기가 올라서 말참녜를 하였다.

《그러니까 광산을 칠 때처럼 또 친다는거겠소?》

정일권이 어쩐지 시까스르는듯 한 어조로 물었다.

《그야 모르지요. 그렇지만 난 전투를 안하고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보우다.》

안희창은 옆차기에서 만탄창한 모제르권총을 꺼내더니 손질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은 너무나 곧은 막대기같아서 얼핏 들으면 억지스럽게 느껴졌지만 어쩐지 피할수 없는 진실을 일깨워주는듯도 하였다. 사실 다른 길은 없지 않는가.

그래서 모두 입을 다물고 제마끔 무기손질을 시작하였다.

무기청소를 아무리 오래 끌며 꼼꼼히 해도 시간은 축나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이번에는 신발손질을 하고 그것도 끝나버리자 이번에는 장군님께 보고드릴 정찰자료를 종합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별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희창이는 저만치 따로 떨어져나가서 묘준훈련을 하였다. 그는 이번 광산습격전투때 로획한 큼직한 접이칼로 맞춤한 나무가지를 쳐서 총을 만들었다. 당콩알만 한 돌멩이를 한줌 주어다가 그것을 하나씩 막대기우에 올려놓고 풀밭에 엎드려서 조준을 하는데 목표물이 가상적인 조문안에 들어가면 혀바닥을 입천정에 댔다가 딱하고 혀소리를 내며 방아쇠 당기는 시늉을 하는것이다.

안희창이 나무깎는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여서 대충 가지를 툭툭 쳐내고 돌멩이 놓일 끄트머리를 좀 따냈을뿐인데 형태가 총비슷해보일뿐아니라 그의 진지한 태도가 진짜총을 들고있는것 같았다.

그것을 구경하고 론평하느라고 또 한식경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인차 물리고 다시 련대장이 어떻게 됐을가 하는 공론들을 벌리였다.

김주현은 해가 어슬어슬 기울어갈무렵에야 돌아왔다.

그의 표정이나 걸음걸이는 너무나 태연해서 한나절이나 사람들의 애간장을 말리우며 먼곳을 다녀온 사람같은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정황은 없었소?》

김주현은 송진이 게발린 손바닥을 탁탁 털며 물었다.

《없습니다.》

모두 함께 대답하였다.

《그럼 됐군. 마동무, 뭘 좀 먹을게 남아있소?》

《감자가 아직 좀 있습니다.》

《점심들을 안했소? 하기는 내가 시간을 너무 끌었지. 그놈들 경계가 어찌 심한지 도무지 일판에 붙을수가 있어야지. 자, 우선 감자를 먹어치우고 출발준비를 합시다. 날이 어두워지면 곧 떠나야겠소.》

일행은 김주현이 뭘 어떻게 하고 왔는지 저으기 궁금하였으나 소부대가 떠날 때부터 정해진 규률이 있기때문에 캐묻지 못하고 감자로 저녁요기를 시작하였다.

김주현은 몹시 시장했던지 껍질을 한절반 벗긴 감자에 소금을 몇알 뿌리고는 먹음직스럽게 베여먹었다.

그는 두개째 감자껍질을 벗기면서 고담이라도 하듯 주근주근 입을 벌렸다.

《저아래 있다는 토장이 편벌토장이더구만. 소백수 떼들을 다시 크게 무어서 압록강으로 내보내는데 요즘은 채벌장도 가까이 와서 돈벌이가 괜찮다는게요. 나도 한반나절 둔장질을 해서 전표를 두장이나 받았소.》

《아니 어느새?》

모두 놀란 소리를 질렀다.

《왜? 내가 처서판 일은 괜찮게 하오. 거기 물동지기령감하고 친했지. 우리 인민은 아무데 가나 좋단말이요. 내가 담배랑 권하면서 말을 붙이니까 처음에는 딱딱하게 나오더니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내 옆구리를 슬쩍 더듬더군. 이 권총말이요.》

하고 김주현은 허리안쪽에 깊숙이 찔러넣은 권총을 툭툭 건드렸다.

《물동막에 바투 붙어앉았더니 아마 그 령감 허리춤에 총자루가 미쳤던 모양이지··· 그 령감이 대뜸 중평에서 오지 않았는가고 묻지 않겠소. 눈치를 채고 물어보는데 하는수 있더라구. 다 터놓았지. 그랬더니 둔장대를 들려주면서 편벌부 한사람한테 붙여주더구만. 알고보니 그 편벌부가 또 괜찮은 젊은이야. 제 입으로 권영벽동무의 연설을 들은적이 있다고 하면서 요즘 세상일을 론평하는데 모르는게 없더란말이요. 날파람은 또 우리 희창동무 찜쪄먹겠더군. 제꺼덕 세동갱이짜리 떼를 하나 무어놓고 타고 가라는게 아니겠소. 밤중에 떼를 띄우면 경비서는놈들이 한창 졸릴 때쯤 해서 칼바위어방에 가닿게 되는데 그쯤 가면 맨 여울목이라 가만두어도 파벌되기가 쉬우니 저쪽 기슭의 바위벼랑에 붙이든가 여울을 헤여가든가 하라는거요. 그 어방은 벼랑이 너무 험해서 짐승들도 발을 못붙인다누만. 자, 차비가 다 됐으면 담배나 한대씩 피우고 곧 떠나보기요.》

김주현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해서 듣고있던 소부대성원들은 말이 미처 끝나기도전에 떠나자는바람에 어리둥절해서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 토장은 나도 아침에 가봤는데 처서군들도 많고 경비도 심하던데 일없을가요?》

정일권이 미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는 일을 뗄 때요. 그래도 경비랑 더러 남아있겠지만 돌아가는 길을 다 봐두었소.》

《그럼 떼는 어디서 탑니까?》

마동희 역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떼는 그 편벌부가 집에 가는길에 압록강본류로 내다주겠다고 했소. 물동지기령감하고도 다 짰소. 령감이 수라를 열면 떼는 제꺽 빠져나와서 본류에 들어설판이지. 시간맞추어서 살창을 닫아버리면 우리가 내릴 자리에 떼를 맞춤하게 댈수 있다는거요.》

더 물어보고싶은 말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느새 날이 어슬어슬해진데다 김주현이 벌써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한것이였다.

하기는 더 물어봐야 궁금증이 풀릴것 같지도 않았다. 생소한 편벌토장에 가서 어느새 전표 두장을 벌만큼 일을 하고 이런 때 유격대를 도와줄 용기를 가진 사람을 두사람씩이나 찾아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침에 정일권이가 다녀온 길을 버리고 멀리 편벌토장을 에돈 일행은 여윈 실개천같던 압록강의 상류가 소백수물을 받아서 꽤 폭이 넓어진 여울에 나섰다.

《저쪽에 운재로가 난걸 보니 여기 어디 있겠는데···》

강기슭을 따라 걸으며 때마침 떠오른 얼레같은 반달의 희미한 빛아래 채양버들숲을 살피던 김주현이 중얼거렸다.

《저게 뭡니까? 저거 떼같군요.》

연신 안경을 고쳐 써가며 김주현이보다 몇걸음 앞서 걷던 마동희가 강가에 외따로 껑충 선 황철나무밑을 가리켰다. 파벌을 막기 위하여 앞동갱이를 흐름과 거슬리게 매놓은 세동갱이짜리 떼가 거뭇하게 떠올랐다.

《옳소. 외따로 선 황철나무밑에 매두겠다고 했소. 내려가보오. 짚을대랑 뭐 다 제대로 있는지···》

김주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희창이 달려내려갔다.

《덤비지 마오. 그러다가 물에 빠지겠소. 지금부터 옷을 적셔놓으면 밤길 몇십리를 떼우에서 떨어야겠는데 견디겠소.》

김주현은 별로 목소리를 삼가는 빛도 없이 주의를 주며 강기슭의 흙벼랑을 지쳐내려갔다.

채양버들짬에 숨겨놓은 크지 않은 떼에는 놀대도 짚을대도 제대로 다 있을뿐아니라 보따리를 걸어놓을 작대기도 박아놓았고 그밑에 가마니장들과 바줄까지 한퉁구리 사려놓았다.

김주현은 그 축축하게 젖은 바줄퉁구리에 턱 걸터앉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안희창동무가 떼를 좀 타봤으니 놀대를 잡소. 정일권동무는 짚을대를 잡고··· 우선 꺼꾸로 매놓은 떼를 돌려야 되겠소. 시에미소라는게 있다는데 그때는 졸지 말고 정신을 바싹 차려야겠소. 그리고 번번한데를 지날 때는 적의 초소나 순찰이 있을수 있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앞뒤동갱이에 나누어타고 좀 척척하더라도 엎드려야 하오. 자 그럼 가봅시다. 한초남동무, 그 짚을대로 그쪽을 좀 드티오.》

힘들게 머리를 돌린 떼는 마침내 본류에 들어섰다. 달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물결우에서 잠시 흥떡거리던 떼는 천천히 물결을 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돛을 단듯 몸체를 쭉 펴며 유유히 미끄러져갔다.

목에는 땀배인 토목수건이 걸려있고 구리빛 배허벅이 드러나게 웃옷단추들을 터쳐놓은 대원들의 모습은 갈데없는 떼군이였다. 그들은 앞뒤동갱이에 나누어서 떼가장자리를 거닐며 물길도 살펴보고 물역도 살펴보면서 배포유하게 긴요치 않은 잔손질들을 하고있었다. 정다운 물소리가 가볍게 철썩이는 압록강은 아무 일도 없는듯 그리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은듯 깊은 정적에 휩싸여있었다.

《필요없이 흩어져 웅성거리지 말고 조용히 기슭을 살피오.》

김주현은 물길을 내다보며 주의를 주었다.

은백색수면우에는 얼레같은 반달이 둥실 떠있었다.

떼가 강굽이에 들어서자 그들의 머리에는 나무가지들이 낮게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소부대성원들은 오래지 않아 다시금 긴장되였다. 멀지 않은 강기슭에서 황황히 불타오르는 모닥불을 발견한것이였다.

(적들이 길목을 지키고있구나.)

대원들은 저마다 총을 꺼내들었다.

《총이랑 잘 건사하고 떼우에 엎뎌있소.》

김주현이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잠시후 모닥불옆에는 총창을 비껴들고 서있는 철갑모들이 나타났다.

김주현은 유심히 불무지주변을 살펴보고나서 갈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초소는 이번 전투직후에 림시로 만든것 같소. 보초막도 없는걸 보면 극상해야 둬서너놈 있겠소. 들켰다고 해도 덤빌 필요가 없소. 놈들은 뭍에 있고 우리는 떼를 타고 지나가니까 정 급하면 한참 내려가다가 산으로 올리뛰면 그만이요.》

김주현의 말을 듣고보니 모두 배심이 든든해졌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죽자구 그러는가?》

떼가 불을 피운 기슭을 지나는데 보초소쪽에서 거친 소리가 울려왔다.

《늦고싶어 늦었겠소다? 시에미소에 떼를 구겨박았더라면 해커녕 반달도 못볼번했소. 젖지 않은 담배나 있으면 한대 던져주오!》

놀대를 잡고 선 희창이가 맞받아쳤다.

《마, 유격대는 보지 못했는가?》

보초소에서 다시 물어왔다.

《유벌대라구요? 나리들은 어째 우리 떼군을 유벌대라고 하시우?》

어둠속에서는 키득키득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벌대? 체, 어서 가기나 해! 쫀바위같은것들, 우물거리다간 깜장콩알 먹는다!》

김주현은 안희창의 기지에 웃음집이 흔들거리는것을 겨우 참고 떼바닥에 엎디여 키득거리는 한초남의 옆구리를 쿡 쥐여박았다.

떼는 새로운 강굽이에 들어서고 달은 시샘하듯 숲가지에 얼굴을 가리운다.

적들의 첫 초소를 무사히 지나친 소부대성원들의 사기는 부쩍 높아졌다.

물방울을 잔뜩 들쓴 김주현의 번들거리는 얼굴을 바라보던 안희창은 마동희의 옆구리를 건드리며 눈짓했다.

《마동무, 우리 련대장동지가 멋이 있지?》

마동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자기 지휘원에 대한 이러한 존경과 믿음은 유독 그들만 품고있는 감정이 아니였다.

얼레같은 반달이 가리운 자정에 칼바위어방의 여울에서 떼목을 내린 소부대성원들은 지내놓고보니 아슬아슬했던 하루밤의 떼목려행이 너무나 일찍 끝난것 같은 아쉬움을 느끼며 김주현의 뒤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밤새 흐르다보니 곰의골밀영은 이미 동쪽으로 몇십리 잘되게 멀어졌지만 산을 주름잡고 달리는 그들에게는 그쯤한 길은 토장찌개 끓이는 사이면 가댈수 있는것으로 생각되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