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1편 13


 

제 1 편

13

 

밤하늘에는 쪼각달이 높이 떠있었다. 은은한 달빛이 귀뚜라미가 우는 사령부의 귀틀집창가에 나무그림자를 던지고있다. 설레이는 이깔나무사이로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어른거리였다. 사방은 고요하다. 사령부귀틀집 통나무책상우에 지도를 펼쳐놓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한참동안 방안을 거니시였다. 권총을 풀어 벽에 거시고 군복 목단추도 드텨놓으시였다. 깊은 사색이 사령관동지의 안광에 어리였다.

부대의 이동로정을 어디로 정하겠는가, 적들이 몰려있는곳은 어디며 어느 통로를 타고 이동하겠는가. 그이께서는 군용지도에 허리를 굽히시고 무송, 림강, 몽강현 일대를 더듬으며 부대의 행군로정과 적배후타격지점들을 하나하나 정해나가시였다. 그것은 부대의 지금 형편으로 보아 힘에 겨운 전투이며 아름찬 로정이였으나 반드시 걸어야만 할 길이였다.

그이께서는 지도를 들여다보시다가 전령병에게 박덕산정치위원을 부르라고 하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덕산이 방안에 들어섰다. 그의 어깨며 모자채양에 노랗게 황이 든 이깔나무잎이 앉아있었다.

《갑자기 불러 안됐소. 자리에 눕지 않았댔소?》

《보초소를 돌아보던중입니다.》

박덕산은 책상앞에 다가서며 그이께서 보시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부대의 행군로정을 토론해보자고 불렀소. 우리는 래일아침 여기서 떠나 무송, 림강, 몽강 일대를 돌면서 적배후타격전을 벌려야 하겠소. 이쪽으로 오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도우에 표식된 부대의 행군로정을 가리키시였다. 적의 배후타격을 위한 간고한 전투와 이동, 분산과 집중의 각이한 전법들을 설명하시며 그이께서는 이해 겨울이 우리들에게는 아주 간고한 시련의 나날로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도를 가운데 두시고 한동안 묵묵히 서계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발표한 9월호소문은 국내인민들의 반일투쟁기세를 한층 앙양시켰소. 지하조직들의 통보를 보면 본궁화학공장, 허천강발전소, 해주세멘트공장, 청진항 로동자들의 파업이 아주 대단했던것 같소. 이런 파업이 도처에서 일어나고있소. 평양, 신의주, 라진, 원산, 서울, 인천, 부산, 진주 등 전국의 모든 도시들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투쟁이 일어나고있소.》

박덕산은 흔들리는 초불을 앞에 두고 서계시는 사령관동지의 안광에 엄숙한 빛이 어리는것을 지켜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긴장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박덕산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이런 조건에서 국내인민들에 대한 적들의 탄압이 앞으로 급격히 강화될것 같지 않소?》

박덕산은 이미 권영벽을 통하여 국내실정을 다소 알고있었다.

《적들은 중일전쟁을 급히 결속하려고 서두르고있는 형편이므로 후방의 안전을 바랄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국내인민들의 반일기세가 높아지는것을 적들이 제일 두려워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옳소. 탄압은 분명 강화될것이요. 적들이 벌써 발악하기 시작했소. 적들은 <7.7사변>이후부터 특히 장백일대와 국경연안의 우리 혁명조직에 대해 탄압을 강화해왔지만 이 겨울은 전례없이 악랄해질것이요.》

창문으로 흘러드는 바람결에 초불이 흔들거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참동안 초불을 바라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권영벽동무랑 지하사업을 하는 동무들이 더 수고를 하게 됐소. 모두들 발편잠을 못잘거요. 권영벽동무가 무사히 도착했는지 모르겠소.》

《사령관동지, 래일아침에는 통신이 와닿을것입니다. 통신을 래일아침전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고나서 말씀하시였다.

《덕산동무, 대원들속에서 정치사업을 잘해야 하겠소. 지금 혁명위업에 충직하려는 우리 대원들의 각오는 그 어느때보다도 굳세오. 그들은 사령부가 하라는대로 하면 혁명이 승리할수 있다는 신심을 품고있소.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혁명동지들이 실수하거나 탈선하는 일이 없이 오직 혁명의 옳바른 한길로 달려나아가게 책임적으로 이끌어주어야 하오. 그러자면 그들에게 혁명관을 튼튼히 세워주어야 하겠는데 지금 대내외정세는 대단히 복잡하오. 자료들을 보니 독일놈들이 이딸리아와 방공협정을 맺으려고 날뛰고있소. 그렇게 되면 쏘련에 대한 파쑈동맹국들의 위협이 더 커지지 않겠소. 이것은 국제혁명운동에서 하나의 시련이 아닐수 없소. 어디 그뿐인가?》

하고 사령관동지께서는 고개를 번쩍 쳐드시였다.

《파쑈들은 이처럼 국제적규모에서 결탁을 강화하고 침략을 조직화하고있는데 그에 대처하여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아직 수십억을 헤아리는 방대한 인민대중의 힘을 반제전선에 조직동원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고 볼수 없소. 그런데도 국제당에 앉아있는 일부 좌경모험주의자들은 앙양된 인민대중의 반일기세에 어지럼증이 나서 일제를 하루아침에 소멸할것처럼 생각하고 동북에 있는 항일련군부대들에게 장춘을 반달형으로 포위하라고 요구하고있소. 중일전쟁의 현실태도 유격전의 원칙도 다 무시해버린 이러한 요구가 어떤 결과를 빚어내리라는것은 불을 보는것보다 더 명백한거요.》

장군님의 말씀을 곰곰히 새기는 박덕산의 눈앞에는 세계적판도에서 휩쓰는 거대한 동란이 펼쳐졌다. 부대관리와 당면한 전투행동에만 머리를 쓰고있던 그는 정치위원으로서의 임무가 더욱 무거워짐을 느끼였다.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 방금 지도에서 가르치신 행군로정이 단순한 부대이동이 아니라 그것이 세계혁명과 밀접히 련결된 가장 절박하고 필요불가결한 요구를 반영한 로정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쳤다. 박덕산은 자기가 근시안적으로 사업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깊이 깨달았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정세에 대처하여 우리가 해야 할것이 무엇이겠소? 그것은 우리 인민혁명군대원들에게 어떤 역경에서도 드놀지 않는 확고한 혁명적신념을 키워주는것이요. 전체 인민혁명군대원들이 우리의 혁명사상과 혁명리론, 우리의 전략과 전술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우리 혁명은 승리의 한길로 줄기차게 전진해나갈수 있소. 혁명적신념을 간직하지 못한 사람은 사실상 혁명전사라는 숭고한 이름을 지닐수 없소. 열렬하고 철저한 혁명전사란 본래의 의미에서 혁명적신념이 억세고 투철한 사람들인것이요. 당면하게 우리 유격대원들과 지하조직 동무들에게 변천하는 현정세에 따르는 우리의 립장을 명백히 알려주고 그들로 하여금 조선공산주의자로서의 임무를 똑똑히 알게 하여야 하겠소. 그래서 지체없이 큰 품을 들여 본격적인 학습을 벌리자는거요. 이런 각도에서 우선 정치일군들을 무장시켜 정치사업을 벌리도록 해당한 대책을 취하는것이 좋겠소. 승리에 자만도취하여 갈길은 보지 않고 하늘에 둥둥 뜬 기분에 젖어있는 현상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소.》

장군님의 어조는 근엄하고 준절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박덕산이 구체적인 과업을 받고 돌아간 이후에도 부대의 행군로정을 그려보시며 한동안 지도를 바라보시다가 간고한 전투와 행군의 나날에 틈틈이 론문을 완성하자면 지금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여 한길복이 가져온 종이를 꺼내시였다. 그리고는 야전가방에 들어갈수 있을만 한 규격으로 접으시고 손칼로 도전을 하시였다. 예리한 칼끝이 생나무를 깎아만든 자막대기를 따라 달릴 때마다 두툼한 백지가장자리에서는 뽀얀 종이가루와 함께 실오리처럼 가느다란 국지오리가 겹겹이 솟구쳐나왔다. 장군님께서는 그 모양이 신기하신듯 상반신을 기울이시며 칼끝에 힘을 모두시였다.

이윽고 도전을 끝낸 네모반듯한 흰 용지를 책상우에 탁탁 그루를 박으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종이의 가장자리를 네모반듯하게 도려내신 그이께서는 책상우에 엉킨 국지오리를 하나하나 거두신 다음 마지막오리로 천천히 종이노를 꼬시였다. 꼿꼿한 종이노가 되였을 때 그것으로 책상모서리에 쌓여있는 종이오리뭉테기의 허리를 동여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서둘러 야전가방안에서 두툼한 용지철을 꺼내시였다. 그것을 한장두장 번져보시던 그이께서는 좀체로 차례를 가릴수 없으신듯 한장씩 확인해보신 다음 책상우에 벌려놓으시였다. 책상이 차고넘치자 백포를 덮은 침상우에 종이장들을 가지런히 펴시였다. 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 및 병사대회 이후부터 착상하시고 틈틈이 상을 적어놓으신 론문의 체계인 동시에 자료집이기도 하였다.

그이께서는 순차를 따라 용지들을 가지런히 펴놓으신 다음 첫페지부터 걷어쥐시였다. 용지는 규격도 질도 색갈도 다 다른데다가 땀에 절기도 하고 비방울에 젖기도 하여 얼럭덜럭하였다. 그러나 그것이나마 있으니 참고할수 있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하시였다.

새 론문의 전반사상과 체계를 상기하시며 자료들을 갈피갈피 들춰보시는 사이 장군님의 머리에는 오래동안 무르익히고 대원들앞에서 여러번 강의도 하신 론문의 체계와 명제들이 떠오르시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지체없이 만년필을 드시였다.

이때 끼륵끼륵하는 기러기소리와 바람을 일쿠는 날개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는 만년필을 놓으시고 창문을 열어놓으시였다.

어스름달은 서편에 기울었는데 구름한점 없는 별바다 하늘중천에서 얼른거리는 기러기떼가 희미하게 움직이고있었다.

(벌써 기러기떼가 남으로 가는구나.)

장군님께서는 멀리 사라지는 기러기떼를 유정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남쪽으로 날아가는 저 기러기떼들은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올것이다. 그 봄에는 모든것이 달라질것이다. 이해 겨울 조선의 모든 공산주의자들과 혁명전사들은 혁명의 시련을 거쳐 더 높은 언덕에 올라설것이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오백룡이 들어왔다. 그는 발자국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와 책상모서리에 사발과 담배곽을 놓았다. 사발안에는 깎아서 쪼갠 얼음쪽같은 무우가 담겨있었다.

《어데서 이런게 다 생겼소? 글을 쓴다고 특전을 베푸는구만.》

장군님께서는 희한하신듯 사발안을 들여다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오백룡은 멍하니 장군님의 안색을 지켜보다가 괴로운듯 외면한채 뜨직뜨직 말했다.

《사령관동지 신색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화동무도 밤잠을 못자고 걱정하다가 무우를 가지고 왔습니다.》

《윤화동무가 찾아왔단말이요?》

장군님께서는 며칠전에 그를 만났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윤화동무는 지금 경위중대에 와있는데 래일 떠나기전에 장군님을 꼭 만났으면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전번에 윤화더러 주력부대를 따라가든지 안전한 후방밀영에 있든지 생각해보고 좋을대로 결심하라고 말씀하셨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그때 윤화는 성큼 주력부대와 함께 있게 해달라고 했었다.

장군님께서는 군복단추를 채우시며 말씀하시였다.

《가서 데리고 오시오.》

장군님께서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종이들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눌러놓으신 다음 문쪽으로 마주가시였다.

《사령관동지!》

김윤화는 문안에 들어서며 단정하게 인사를 올리였다.

《어서 들어와 앉소. 나도 떠나기전에 윤화동무를 한번 더 만나보려고 했는데 마침 잘 왔소.》

김윤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걸음 다가섰다.

장군님의 책상에는 많은 일감이 쌓여있었다. 그는 빨리 말씀드릴것을 말씀드리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군님, 제가 저번에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주력부대를 따라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후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주력부대를 따라가면 저와 종철이는 더 바랄것이 없이 좋겠지만···》

윤화는 장군님께서 짐작하신대로 래일행동방향을 의논하려고 찾아온것이였다.

《왜 생각이 달라졌소? 나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이미 지시들을 주었는데.》

그이께서는 윤화가 어째서 결심을 달리하였는지 그 심정을 알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윤화는 자기의 속생각을 구구하게 다 말씀드려 장군님의 마음을 번거롭게 해드리는것이 너무나 죄송하였다.

《아이가 부대에 부담이 될것 같아 그러는게 아니요?》

장군님께서는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는 윤화를 이윽히 바라보시며 물으시였다.

윤화는 그닥 석연치 않게 《예》하고 말하고서는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대답이 윤화의 심정전부가 아니라는것을 느끼시였다.

윤화는 사실 며칠전에 장군님께서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의향을 물으시였을 때 사령부와 떨어져서는 못살것 같아 주력부대를 따라가겠다고 선뜻 말씀올렸었다.

그러나 윤화는 그후 오래동안 궁리해보고나서 결심을 고쳐먹었다. 자기 모자가 주력부대와 함께 있으면 남편과도 함께 있게 된다. 남편이 가까이 있으면 윤화는 남편의 작식일도 거들어줄수 있고 일을 저질러놓고 고민하고있는 남편을 도와주고 이래저래 힘을 줄수도 있을것이였다. 그리고 종철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를 오가면서 재롱을 부릴것이였다. 이것은 자기의 소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남편에게 과연 좋겠는가, 혁명앞에 큰 죄를 지어놓고 모대기고있는 남편의 눈앞에 안해가 얼씬거리고 자식이 매달리는것이 그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겠는가.

그는 오직 자기의 잘못을 씻기 위해서만 일심전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 일시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한것이 혁명가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게다가 대오에는 자기들처럼 가족을 거느리고있는 동무들이 거의나 없다. 대부분이 부모처자와 형제들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을 이겨내며 오직 투쟁에 전심하고있다.

그런데 자기 모자가 남편가까이에서 맴돈다는것도 마음에 걸리였다.

그러나 윤화는 이러한 심정을 장군님께 다 말씀드릴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그 이야기를 죄다 들으셔서 기뻐하실 일이 하나도 없을것 같았다.

《주현동무와는 의논해보았소?》

장군님께서 거듭 물으시자 윤화는 머리를 들며 말씀드렸다.

《네, 종철이 아버지는··· 이전에도 늘 저와 종철이는 자기 가까이에 있지 않도록 사업조직을 하군했습니다. 저는 그이가 어째서 사업조직을 그렇게 했는지 알고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그이도 저도 분발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장군님, 저는 후방밀영으로 가겠습니다. 그곳에 가면 제가 할수 있는 일감이 많고 종철이도 마음을 놓을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자세한 설명을 더 듣지 않고도 윤화가 결심을 바꾼 심정이 짐작되시였다. 윤화는 역시 생각이 깊고 랭철한 녀성이였다.

그의 생각이 어딘가 너무 외곬인듯 한 느낌도 있었으나 사랑하는 안해와 철없는 아들에게 가마를 메고다니는 자기를 보여주는것이 김주현에게도 더 정신적부담을 줄것 같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렇다고 그들을 주력부대에서 떼놓는것은 역시 후회할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장차 부대활동과 련관시켜 연구해보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관하 부대들은 약 1개월간 전투를 벌린 다음 모두 후방밀영으로 사라지게 된다. 결국 사령부도 종철이도 다 안전한 생활에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양목정자까지 무사히 가는것이 제일중요했다. 사령부도 주력부대와 함께 그곳으로 갈것이다.

김윤화가 양목정자까지야 종철이를 건사하지 못하겠는가?

윤화는 장군님께서 인츰 승인하지 않으시리라는 예감에 휩싸여 더욱 절절하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저의 소원입니다. 깊이 생각해보았···》

《간단한 문제가 아니요. 종철이는 내곁에 두어야 마음이 놓이오.》

장군님께서 신중한 기색으로 말씀하시였다.

《바로 그것때문에··· 장군님께서 총알이 비발치는 가렬한 전투마당에서 아이에게 잡히워··· 장군님, 저의 소원을···》

장군님께서는 마음이 미타하였으나 윤화의 끌날같은 결심을 돌려세우기가 어렵다는것을 깨닫자 타협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당분간만 종철이는 후방밀영에 보냅시다. 이번에 주력부대는 전투도 많이 하고 행군도 많이 해야겠는데 당분간만이라도 안전한데 가있도록 하면 내 마음이 놓이겠소. 그럼 여기 밀영동무들과 같이 행동하도록 하시오.》

장군님께서는 이제 윤화와 종철이가 속하게 될 한길복을 책임자로 하는 밀영일군들의 행동일정에 대해서도 곰곰히 상기해보시였다.

전투부대들은 래일 아침에 모두 떠나가고 밀영일군들만 남게 된다. 밀영일군들은 밀영에서 해야 할 뒤거두매를 하고나서 며칠후 양목정자밀영으로 옮겨간다. 양목정자에는 전투부대들뿐아니라 군수처일군들, 비서처일군들, 출판소일군들이 다 집결될것이며 주력부대도 거기에 가서 부대편성을 다시 하고 새 임무를 받게 될것이다.

《윤화동무, 그러나 옹졸한 생각은 하지 마오. 내가 윤화동무 마음속을 대강은 짐작하는데 내 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철없는 종철이가 아버지한테 권총을 어쨌느냐고 물을가봐 제일 걱정스럽소.》

《장군님, 저희들이 장군님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섭섭하게 해드리고 무슨 면목으로 살아가겠습니까.···》

윤화는 마침내 흐느껴 울었다.

《됐소, 그만두오, 마음을 굳게 먹고 떠나야 하오. 이제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나겠는데 뭘 그러오. 래일 주력부대가 멀리 떠나기는 하지만 가면서 전투를 해야 하니 양목정자에 우리가 먼저 갈지, 동무네가 먼저 갈지 알수 없소. 그곳에서 다시 만나면 또 토론해보기요.》

김윤화는 장군님께서도 가슴아파하시는것을 보자 지체없이 인사를 올리고 돌아섰다. 장군님께서는 전령병에게 윤화를 귀틀집까지 데려다주고 오라고 지시하시였다.

윤화가 돌아간 다음 장군님께서는 한참동안 윤화를 생각하시였다.

이해 겨울 남편과 아이때문에 남다른 부담을 안고있는 윤화는 그 어느 겨울보다 어려운 시련에 부딪치게 된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저처럼 강직하고 웅숭깊고 깨끗하니 그는 대오안의 모든 전사들과 같이 꿋꿋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리라고 굳게 믿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으시였다. 시간이 아까와 인차 집필을 시작하려고 만년필을 집어드시다가 아직 글제목을 결정짓지 못한것이 생각나시였다.

본문을 다 쓴 다음에 달자고 하셨는데 내용의 구상과 체계가 다 무르익고보니 이미 예정하고계신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론문의 제목은 글의 얼굴이니 평이하면서도 내용의 알맹이를 드러내는것이 좋다고 생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보다 알맞는 제목을 달기 위하여 다시금 론문의 내용과 서술체계를 더듬어보시였다.

론문의 기본사상은 인민혁명군대원들을 비롯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와 국제정세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혁명의 성격을 똑바로 알게 하자는데 있다.

혁명의 성격을 똑바로 알자면 우리 나라의 사회, 경제, 계급관계의 실태를 력사적으로 잘 알게 하여야 하며 혁명의 대상과 동력을 똑똑히 규정지어주어야 한다.

글에서는 조선인민의 운명을 책임질 사람은 오직 조선공산주의자들이며 자기 인민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어떤 전망적목표밑에 현시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과업을 명확히 제시하여야 한다.

이 글은 우리 나라 혁명을 책임진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본분과 결심을 또다시 내외에 밝히는것으로 될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제목이 떠오르신것이다.

그이께서는 용지의 웃머리중심에 만년필을 대시였다. 힘있게 달리는 그이의 손끝에서는 살아움직이는듯 한 글자들이 흘러내렸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이렇게 제목을 다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충격과 열정을 걷잡기 어려운듯 거침없이 본문을 써나가시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을 강점한지도 벌써 30여년이나 된다. 이 기간에 일제는 우리 조국을 자기들의 원료원천지로, 로동력공급지로, 상품판매시장으로 만들었으며 대륙침략을 위한 군사기지로 전변시켰다.

조선인민은 포악무도한 일제의 식민지정책으로 말미암아 민족적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하고 망국노의 쓰라린 설음을 겪고있다. 우리 인민은 일제와 그 주구들로부터 이중삼중의 중세기적압박과 착취를 당하고있을뿐아니라 아름다운 자기 말과 민족의 글마저 빼앗길 위험에 처하고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중일전쟁은 우리 인민을 더욱 무서운 도탄속에 몰아넣고있다.》

 

장군님의 고요하던 안광은 이 세상의 불의와 어두움을 헤쳐내시려는듯 강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만년필을 달리고 달리여도 조국의 암담상과 민족의 불행상의 전모를 다 그려낼수 없는것이 유감스러우신듯 잠시 손을 멈추고 군복단추를 터놓은 다음 근엄하신 안광으로 다시 힘있게 써나가시였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이름높은 우리 인민은 지금 생사존망의 기로에 놓여있으며 우리의 조국땅은 민족비운의 암운으로 뒤덮여있다.

이 준엄한 민족수난의 시기에 민족개량주의자, 좌우경기회주의자, 종파사대주의자 등 온갖 혁명의 배신자들은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일제침략자들과 공공연히 결탁하는 길로 나가고있다.

시대는 우리들, 공산주의자들만이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질수 있는 혁명의 중추적력량이라는것을 증명하고있으며 우리들에게 더욱 어렵고도 무거운 임무를 부과하고있다.》

 

심오한 사상과 빛나는 예지, 깊은 철학적사색이 종이우에 옮겨지고있었다.

밀영의 깊은 밤이 지새고 창밖의 별들이 사라진 다음에도 사령부뙤창에는 불빛이 오래도록 가물거리고있었다.

이른아침 장군님께서는 채 끝내지 못한 론문원고를 야전가방에 넣으시고 싸움터를 향해 행군길에 오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