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1편 12


 

제 1 편

12

 

땅이 꺼져내릴가봐 겁이라도 나는듯 김주현은 조심스럽게 자드락머리의 풀밭에 주저앉았다. 머리는 말할수 없이 무겁고 눈앞은 어두웠으나 이상하게도 허리어방이 허전하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더듬었다. 늘 차고다니던 목갑권총이 만져지지 않았다.

이제는 몸의 한부분이나 다름없이 된 권총이 없어진것이다. 김주현은 가슴이 철렁하여 권총을 찾아보려는듯 풀밭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김주현은 권총을 회수당했으며 자기가 지금 새로운 직무를 맡고 중대로 내려가고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것은 일생 처음 당해보는, 전혀 상상해보지도 못한 느낌이였다. 그는 대원으로부터 련대장으로 활동하는 오랜 기간 어느때이건 혁명이 요구하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망각한 일이 없었다. 전투에서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설사 죽는다고 해도 괴롭게 모대길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지금 김주현은 철직당한 자기를 보는것이 죽음보다 더 괴롭다는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애지중지 사랑하던 권총이 없다는 자각은 자기의 과오에 대한 현실적인 느낌을 강하게 안겨주었다. 권총이 없다? 그리고 작식대원이다. 그것은 자신이 돌격의 진두에 설 자격이 없으며 가장 격렬한 싸움판에 언제든지 뛰여들수 있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며 온 정신과 힘과 사색의 모든것을 단지 원쑤와의 싸움에만 쏟아야 하던 지난날의 자기가 아니라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그는 어쩐지 대렬에 있으면서도 대렬밖 멀리에 나앉은것만 같았다. 이 밀영에 도착했을 때 그렇게도 다정하게 속삭이던 바람소리도 잦아버리고 가랑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한정없이 깊은 정적이 깃들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눈앞은 캄캄하고 귀에서는 윙윙소리가 났다. 입술은 마를대로 말라 물집이 잡혔으나 김주현은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한참 우두커니 앉아있던 그는 문득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다.

당회의에서 책벌이 결정된후 괴로움을 참아가시며 나직하나 무게있는 음성으로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김주현동무에게 중요한 혁명임무를 주어 국내에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주현동무는 자신이 련대장의 직책에 있는 지휘원이라는것을 망각하고 자의로 임무를 포기했으며 임무와는 상관없는 금광을 쳤습니다.

··· 결국 분산되여 활동하는 국내공산주의자들에게 통일적인 투쟁방침을 제시해주고 그들을 항일성전에로 결속하며 우리 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올리려던 사령부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명령에 대한 위반이며 혁명앞에서의 범죄행동입니다.》

김주현은 자신을 수습하고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장군님의 명령을 어긴 사람이 되였구나.)

김주현은 다시한번 그 말씀을 되새겨보았다. 그는 자신을 저주하였다.

그는 오열을 참으려고 말라터진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날에는 몸에 몇군데씩 관통상을 입고도 주저앉지 않고 기관총을 안고 비호처럼 진격해나가던 김주현이였으나 지금은 기력이 빠져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손가락하나 까딱할수 없었다. 그는 넋을 잃고 풀밭에 주저앉아서 시간이 흐르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아직도 여게 앉아있습니까?》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가 울렸으나 김주현은 그쪽을 보지도 않았다. 그 누구도 자기를 향해 말을 걸어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누가 말을 걸어주는것도 달갑지 않았다. 그저 홀로 앉아있고만싶었다.

《우리 중대에 배치되였다지요? 가보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김주현은 얼굴을 들고 앞에 선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몸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말쑥한 젊은 사람이 서있었다. 허리에는 방금전까지 자기도 차고있던 권총이 가볍게 매달려있다.

김주현이가 힘없는 눈길로 한참동안 바라보니 젊은 지휘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안의 소리로 말했다.

《제가 중대장입니다. 마선제라고 불러주십시오. 우리 중대에 가서 같이 일해봅시다.》

김주현은 아무말없이 허리를 숙인채 천천히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비청하며 권총찼던 자리가 띠끔했다. 그는 한손으로 가죽혁띠를 잡고 습관대로 옷을 바로잡았다. 말주변이 없고 고지식한 마선제는 김주현을 어떻게 대했으면 좋을지 몰라 오히려 제편에서 더 어색해하였다.

넓지 않은 공지를 지나서 얼마쯤 걸어가니 배낭들을 주런이 걸어놓은 봇나무가 나타났다.

《여기가 우리 중대 숙영지입니다. 동무들과 낯을 익히고 작식일을 인계받으시지요. 인계할 동무가 곧 돌아올겁니다. 저녁쌀을 가지러 갔습니다.》

중대장의 말을 듣고 그는 눈길을 쳐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몇개의 나무걸상이 봇나무밑에 놓여있고 봇나무 저편으로 치우쳐 도리풍을 둘러친 작식터가 바라보였다. 다행히도 중대원들속에 낯이 익은 대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휘원다운 관찰로 그들이 대부분 신입대원들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이때 방금 김주현이가 걸어온 길로 웬 대원이 커다란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달려왔다. 7련대장 련락병이였다.

그는 김주현의 앞에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늦어서 안됐습니다. 지시는 아까 받았는데 회의때문에 이제야 가져왔습니다. 어서 옷을 갈아입으십시오.》

나어린 련락병은 김주현의 처지를 애당초 모르는듯 천진하게 말했다.

마선제는 련락병이 가지고온 보따리를 헤치였다. 거기에는 새로 지은 군복이 차곡차곡 개여져있었다. 그것은 지휘원복이였다. 김주현이 책벌을 받기전에 군수처에서 장만했던것을 그대로 보내준 모양이였다.

《군수관이 보낸 옷이니까 몸에 맞을겁니다.》

마선제가 어서 입으라고 권했다. 그제서야 김주현은 자기가 지금까지 사민복을 입은채로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김주현은 중대장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군복을 받아서 활개며 섶을 펴보고 다시 차곡차곡 싸서 중대장에게 돌려주었다.

《이것은 내가 입을 옷이 아니요. 중대장동무, 이 군복은 새로 올 련대장에게 주게 하고 아무거나 중대에 있는것으로 주오.》

말소리는 순하였으나 누구도 막을수 없이 단호하였다.

《군수관이 보낸것이니 입어도 일없지 않겠습니까?》

중대장은 망설이다가 김주현이 고집하자 하는수 없이 군복을 돌려보내고 몇번 빤 색날은 군복을 가져다주었다.

김주현이 나무등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웬 대원이 헐레벌떡이며 달려왔다.

《우리 중대에 새 작식대원이 왔다지요?》

그는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대원이 다름아닌 이 중대의 작식대원이였다. 아마 그는 자기가 하던 작식대일을 넘겨받을 사람이 배치되여왔다는것을 알고 기뻐서 달려온 모양이였다. 작식대원은 중대장의 눈치를 보고나서 묵묵히 서있는 김주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바이였군요! 이 아바이가 꽤 가마를 메고 벼랑을 올라가낼가요? 아무튼 수고하게 되였수다!》

그는 다가서서 김주현의 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정색해서 제법 훈시를 하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중대에 내려오실 때마다 먼저 작식대에 들리시여 우리 작식대원들부터 만나주시지요. 산에 살며 싸우는 혁명동지들이 고향의 부모처자를 그리워하지 않게 정성을 쏟아부어 식사를 대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작식대원이 영예감을 갖지 못하고 불만을 말하기 시작하면 중대원들이 밥맛을 잃게 되고 밥맛을 잃으면 중대의 화목이 깨여질뿐아니라 전투에서 기운을 잃게 됩니다. 작식대원임무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닥 뼈심이 드는 일은 아니니까 아바이도 마음만 바로 먹으면 착실히 일할수 있겠수다. 얼마동안 말없이 일을 잘하면 나처럼 전투원으로 보내줄겁니다. 우리 중대동무들은 다 인심이 후해서 아바이를 잘 도와줄거우다. 나도 중대에 같이 있는한 틈틈이 도와드리지요.》

작식일에서 벗어난것이 기뻐서 자기가 입고있는 옷이라도 벗어줄 심정인 그는 어디론가 바람처럼 달려가더니 잠시후에 전이 벌렁한 가마를 안고 돌아왔다. 당장 작식도구들을 인계해주고 그 일에서 손을 털 욕심이였다.

중대장이 량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동무, 새 작식대원이 실정을 료해할 때까지 사날동안 작식대일을 계속하시오. 동무는 규정도 모르오?》

그사이에 10여명의 젊은 중대원들이 모여와 중대장과 김주현의 두리에 빙 둘러섰다. 그들은 먼발치에 선채 호기심어린 눈길로 새 작식대원을 바라보았다.

《마흔살이나 됐겠소, 곡절이 있는 사람같다!》

《저 아바이가 모젤총을 찬걸 본것 같은데?》

김주현의 귀에는 속삭임소리가 토막토막 들려왔다.

김주현은 발밑에 놓여있는 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제부터 총대신 자기의 무기가 되여야 할 솥은 재가 새까맣게 불려있고 안은 끼니를 끓여낸 다음 아직 가시기전이여서 지저분했다. 그것은 마치도 정돈되지 않은 자기의 머리속같았다.

이때 젊은 대원이 정치위원이 온다고 모두에게 알리였다.

김주현은 그 소리에도 별다른 자극을 받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련대정치위원이 박덕산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행군준비를 다 했소?》

김주현은 말소리를 듣고야 박덕산이 왔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몽롱한 가운데 박덕산에 대한 여러가지 회상이 떠올랐다.

근래에는 서로 다른 련대에 갈라져 김주현은 련대장일을 보았고 박덕산은 련대정치위원일을 맡아하지만 그들 두사람은 투쟁의 첫걸음을 한시기 한지역에서 떼였다. 그때 김주현은 한 지구의 유격대책임자였고 박덕산은 그 지구의 정치책임자였다.

덕산은 김주현이보다 나이가 댓살 아래였지만 김주현은 늘 정치일군인 그와 흉금을 터놓고 사업을 토론했으며 어려울 때마다 그에게 의거했다. 김주현은 사업면에서뿐만아니라 생활에서도 늘 박덕산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도움을 받았다. 부대에 흔치 않은 일이지만 자기가 처자를 거느리고 부대생활을 하게 된것도 박덕산의 우정과 의리에 넘치는 뒤받침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김주현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것을 박덕산이 나서서 김윤화를 입대시키고 종철이를 데리고 다니도록 돌봐주었다. 그들사이의 이러한 각별한 우정과 의리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큰독의 물이 함부로 출렁거리지 않듯이 박덕산의 감정은 조만해서는 격하지 않는다. 또한 깨끗한 그릇에 담긴 물빛처럼 조만해서는 얼굴빛이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과 늘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정치위원이지만 언제 한번 모질고 험한 말을 하거나 거칠게 구는 일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서는 그도 날카롭게 자기를 비판했다.

멀지 않은곳에서 박덕산이 마선제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어려워하지 마오.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요.》

마선제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눈치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허물없이 의논하오. 앞으로 중대장동무가 도움을 받게 되는 때가 적지 않을것이요. 그 대신 중대동무들이 잘 도와주도록 하오.》

마선제와 이야기를 나눈 박덕산은 말없이 묵묵히 서있는 김주현에게로 천천히 다가와서 나직이 말했다.

《어째 몸에 맞는 군복을 보냈는데 안입고 돌려보냈소?》

김주현은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멍청한 눈길로 자기 군복을 살펴보았다. 소매와 바지기장이 짧아 손목발목이 건듯 드러나있었다. 김주현은 제모습을 보고나서야 박덕산의 말을 알아들었다.

《이것이면 됐소. 새 군복은 해서 뭘하겠소.》

김주현은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말씀들을 나누십시오.》

마선제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

박덕산은 김주현의 낡은 군복을 깐깐히 살펴보다가 손을 들어 바위부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김주현은 그대로 서있다가 박덕산이 앉은 다음에야 그옆에 나란히 앉았다.

김주현은 한숨을 쉬고나서 잦아드는 음성으로 말했다.

《박동무 볼 면목이 없소. 정말 안됐소.》

박덕산은 김주현의 얼굴을 힐끔 보고나서 담배를 꺼내주었다. 김주현은 담배 피울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받아들었다.

《내가 잘못했소. 무슨 도깨비에게 홀렸는지 나도 모르겠소. 그러나 박동무, 내가 고의로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위반하자고 한것은 결코 아니였소. 이것만은 리해해주오. 내딴에는 사령부에서도 꼭 그런 방침을 내놓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리석었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단순한 규률문제만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소?》

박덕산은 그의 말은 들은둥만둥 하고 정색하고 앉아서 천천히 담배만 피웠다. 그러다가 피우던 담배불을 꺼버리고 마치 처음 보기라도 하는듯 김주현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나서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요?》

박덕산은 다시한번 까근한 눈길로 김주현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김주현은 그가 보내준 군복을 입지 않고 돌려보낸것때문에 기분이 언짢아하는것으로 짐작하고 말했다.

《일없소. 나야 신입대원도 아닌데 새 군복은 해서 뭘하겠소. 이게 좀 작을사하지만 동복을 갈아입을 때까지 대여입을수 있소.》

마음의 안정을 얻은 김주현은 박덕산의 얼굴만 바라보고있었다.

박덕산의 눈앞에는 김주현과 함께 혁명대오에서 생사를 같이하며 싸우던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어렵고 힘든 일에서는 언제나 몸을 아끼지 않고 뛰여들군 하던 김주현을 박덕산은 마음속으로 늘 자랑스럽게 여기였다. 그는 지혜롭고 용감하며 아귀센 지휘원이였다. 박덕산은 그 장점을 늘 부러워했다. 그런데 그 김주현이가 지금은 어떤 몰골이 되였는가. 사령관동지께 그렇듯 크나큰 걱정을 끼쳐드리고도 아직 자기 변명을 하고있지 않는가.

박덕산은 눈두덩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여태까지 별로 비판도 받지 않고 일해왔소. 그것은 우리에게 결함과 부족점이 없어서 그런것이 아니요. 우리가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임무를 매번 원만하게 수행했다고 말할수 있소? 그래도 사령관동지께서는 언제나 너그럽게 리해해주시였소. 동무는 이것을 잘 알거요. 언제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들에게 엄한 책벌을 주신적이 있소? 없소! 그런데 이번에는 용서하지 않으셨소.》

김주현은 가슴이 아픈듯 얼굴을 찌프리며 한숨을 내쉬였다. 그것은 옳은 말이였다. 김주현은 묵묵히 듣고있었다.

《그렇게도 엄숙하고 중대한 명령을 중도에서 줴버리고 금광을 치고 돌아왔으니 사령관동지의 근본사상을 어기지 않았소? 난 그렇게 생각하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래도 동무가 혹시 불가피한 정황이 생겨서 전투를 벌렸을것이라고 믿으셨지. 그런데 사실은 어떻게 되였소? 생명을 바쳐서라도 전투를 피하고 대오를 로출시키지 말았어야 했을 동무가 소부대성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전투를 요란하게 벌렸단말이요. 이것은 결국 우리 인민을 교양하고 묶어세워서 우리 혁명을 수행하자는 사령관동지의 근본사상을 뒤집어엎은거요. 나도 사령관동지의 깊은 뜻을 다야 어떻게 알겠소.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듣고보니 이런 각도에서 동무의 과오를 분석하는것이 옳고 또 이번 기회에 나자신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소.》

박덕산은 말을 중단하고 한참이나 깊은 생각에 잠겨있더니 혼자말처럼 조용히 뒤를 이었다.

《사령관동지의 의도와 구상을 제나름으로 해석하고 일을 망탕해서는 안된다는것은 동무가 더 잘 알지 않소. 사령관동지께서는 <7. 7사변>이 터진 이후에 정세가 어렵고 부대앞에 난관이 있었지만 동무문제가 제기되기전에는 안색이 밝으시였소. 그런데 동무소식이 온 다음부터는 침식을 전페하시고 심려속에서 나날을 보내시오. 그걸 알고있소?》

김주현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였다. 그의 눈은 절망에 잠겨있었다.

박덕산은 사령관동지께서 김주현이때문에 심려하시던 일이 떠오르자 가까스로 참아오던 격분이 깊은 마음속에서 꿈틀했다.

《동무가 얼마나 많은 일을 망쳐놓았는지 똑똑히 알고있는것이 좋겠소. 동무가 개척한 통로를 따라 국내로 나가기로 했던 수많은 다른 동무들도 이제는 어쩔수 없게 되였소. 제일 좋은 통로와 우리의 의도가 적들에게 로출되고 적들의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소. 이렇게 혁명사업을 망친건 더 말할것도 없고 만약 사령관동지께서 제때에 동무를 불러들이지 않으셨다면 동무가 아직까지 살아있기나 하겠소?》

사실 박덕산은 김주현을 조용히 따로 만나 허심하고 동지적인 비판을 하려고 별렀었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에 빠져 간신히 몸을 가누고있는 전우의 모습을 대하자 그럴 생각이 없어졌다. 지금 김주현의 몸에는 다만 숨결이 남아있을뿐이였다. 그러나 박덕산은 애써 약해지려는 자기 마음을 다잡으며 준절하게 말을 이었다.

《동무는 우선 장군님을 받들고 싸워나가는 혁명전사의 본분과 자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혁명적신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겠소. 싸움터에서 싸움터에로 드바삐 뛰여다니다보니 생각을 깊이하고 행동하는 버릇이 약해졌소. 동무는 사령관동지를 받드는 지휘원이 아니요? 그런데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하는 버릇이 언제 생겼소? 자기의 경험과 투쟁년조를 정면에 내걸고 우쭐거리면서 어느새 개인영웅심에 빠져버렸단말이요. 무엇이든 자기만이 다 잘 안다고 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서슴없이 행동하는 버릇이 생겼단말이요. 이것은 하나의 기치밑에 단합되고 조직된 혁명대오에 서있는 전사에게 있어서는 용서할수 없는 행위요. 사령관동지께서는 동무의 이러한 사상상태를 간파하시고 동무를 구하기 위하여 이번과 같은 조치를 취하셨다고 믿어야 할거요.》

김주현은 손에 든 담배만 내려다볼뿐 여전히 말이 없었다. 눈빛은 컴컴하고 거친 볼편이 경련을 일으키며 떨리였다. 어깨가 처지고 등이 굽어보이는 김주현은 팔목이 드러난 손을 무릎우에 드리우고 앉아서 박덕산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고있었다.

박덕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김주현을 언뜻 곁눈으로 바라보았다. 좀 따뜻하면서도 침착하게 말을 하려고 했으나 생각과는 다르게 여전히 어성이 거칠어지고 숨결조차 높아지는것이 이상하였다. 그는 한동안 마음을 다잡고나서 말했다.

《나는 이번에 다시금 공산주의자들이 간직해야 할 혁명적신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였소.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신념이란 뭐겠소? 그것은 우리 장군님의 로선을 지키고 장군님을 받들어 변함없이 싸워나가는것이 아니겠소? 이것이 우리 혁명전사들의 혁명적신념이며 인생의 좌우명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또한 이것은 장군님앞에 지닌 혁명전사들의 의리이기도 하오. 그런데 다름아닌 김주현동무가 이 신념과 의리를 저버렸단말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주현은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한층 떨어뜨리였다. 이윽하여 무엇인가 생각난듯 얼굴을 들었으나 말한마디 못하고 다시 숙이였다. 그가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을 겪고있는것을 알고있는 박덕산은 돌처럼 굳어진 자기주먹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였다.

《그렇다고 락심해있는것은 더욱 좋지 못하오. 이럴 때일수록 자기보다 장군님을 생각하오. 책벌받은것만 생각하면서 맥을 놓고 앉아있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고 기운을 내오!》

박덕산이가 사라진후 한참만에야 김주현은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손더듬으로 솥을 가슴에 안았다.

솥은 천근바위같이 무거웠다. 그는 비칠거리며 개울가를 찾아갔다.

여울목이 나타나자 솥을 내려놓고 자갈을 한웅큼 움켜쥐였다. 어지러운 가마속과 거치른 자갈을 한참 들여다보던 김주현은 입을 지그시 다물고 자갈을 몇줌 가마안에 집어넣고 벅벅 닦기 시작했다. 솥안에서는 돌과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귀따갑게 울리였다.

박덕산의 말이 옳았다. 생각했던것보다 문제는 더욱 엄중한것이였다. 회의에서 여러 동무들이 날카롭게 비판할 때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것이 있는것 같기도 했고 또 마음에 거슬리는것도 더러 있었다. 그때는 너무 뜻밖이고 너무도 충격이 커서 진실을 가려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박덕산의 충고를 들으니 회의에서 한 동무들의 비판도 자기가 받은 처벌도 다 정당하고 옳은것이였다. 그러자 더 괴로왔고 더 가슴이 쓰리였다. 그는 제 머리속을 문대는 심정이 되여 일부러 자갈을 거칠게 굴리며 사정없이 가마를 닦았다. 가마가 비명을 지르는것 같은 귀따가운 소리는 오히려 그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듯 하였다.

어느쪽에선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인기척이 났다.

김주현은 그것을 느끼였으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군모뒤에 낭자가 솟아난 녀대원이 앞에 살며시 비켜앉아 개버들을 뚝뚝 꺾었다.

그래도 김주현은 아무런 감촉도 느끼지 못했다.

그 녀대원은 개버들가지로 수세미를 만들어쥐고 마주앉더니 그의 손목을 꼭 쥐였다. 김주현은 비로소 얼굴을 쳐들었다. 솥바닥에서 움켜쥔 자갈이 절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안해 김윤화였다.

윤화는 작은 손으로 모래바닥을 옴폭하니 파헤치고 그 안에 솥을 들이앉히였다. 그 다음 소매를 걷어붙이고 솥에 다가붙어 개버들가지로 만든 솔로 솥안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왱강댕강하고 아츠러운 소리가 터져나오던 솥안에서는 서걱서걱하는 순한 소리가 울리였다.

《당신 왔소?》

김주현은 들릴듯말듯 낮은 소리로 말하고나서 주머니안에서 담배를 꺼내물었다. 그는 안해앞에서 태연한체해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김주현은 아직 누구와도 가슴헤치고 이야기하지 못한 가슴아픈 심정에 대하여 안해에게 다 쏟아놓고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안해만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기의 마음을 리해해줄것 같았다. 안해는 자기가 어떤 과오를 저질렀다고 해도 본심이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것이다. 지금 김주현에게는 그것이면 족하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자기가 여전히 사령관동지에 대한 충성심만은 변함없이 가슴깊이 간직하고있다는것을 안해에겐들 어떻게 납득시킨단말인가. 김주현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나서 사방을 휘 둘러보며 물었다.

《종철이는 어데 있소?》

윤화는 아무런 대꾸없이 시내물웃쪽을 살펴보았다. 시내물 량옆에 깔린 버들방천에서는 새들이 놀라 푸륵푸륵 날고있었다. 그것을 본 윤화는 일을 계속하며 말했다.

《이제 아버지를 찾아올거예요.》

주현은 웬일인가 해서 새들이 놀라서 날아오르는 버들방천에 눈길을 보냈다.

그쪽에서는 첨벙첨벙하는 물소리가 울려왔다. 누가 물속에 들어가 고기잡이라도 하는것 같았다.

노을진 하늘이 비낀 잔잔한 내물에는 파문이 그려지고있었다. 김주현은 잠시후 그 시내물우에 쌍돛을 메운 배가 떠오는것을 발견하였다. 자그마한 놀이감배가 잔잔한 물결을 따라 천천히 소리없이 미끄러져내리고있었다. 배가 나타난지 얼마 되지 않아 바지가랭이를 무릎까지 걷어올린 소년이 허리를 굽히고 배를 보며 시내가를 따라내려온다. 놀란 새들이 소년의 머리우에서 낮게 날며 맴돌이치고있다.

주현의 마음속에는 뜨거운것이 차올랐다.

《저게 종철이가 아니요?》

김주현은 소년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나직이 물었다.

김윤화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는 열심히 솥만 닦아댔다. 대답하지 않아도 남편은 이제 모든것을 다 알게 될것이고 새 힘을 얻게 되리라는것을 윤화는 믿고있었다. 남들도 자기처럼 그것을 믿어주지 않을것 같아서 괴로울따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