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겨울-제1편 1


 

제 1 편

1

 

밤새 소연하던 바람도 자고 초리끝에서 떨던 마른 잎들과 숲속에서 딩굴던 가랑잎들마저 이슬에 축축하게 젖고보니 오늘 새벽 해돋이를 맞는 가을의 대자연은 마냥 정숙하였다.

백두산주봉에서 서쪽으로 수백리 떨어진 장백, 림강현계에 자리잡은 5호밀영의 깊은 골안에도 고요한 아침볕이 스며들었다.

중강이 멀지 않은 이 밀영은 백두산기슭 수백리 넓은 지경을 덮고있는 수많은 후방밀영들중의 하나로서 그중 서쪽변두리에 치우쳐있었다. 여기서는 백두산이 구름속에 얼굴을 가리운 초생달처럼 간신히 보이건만 밀영에서는 늘 백두산과 함께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내는 심정이였다.

밀영이 들어앉아있는 골안막바지는 해가 퍼그나 솟아올라서야 환해졌다.

좁고 우불구불한 골바닥에는 애기봇나무들이 가지런히 서있는데 그 가운데로 빠져나간 개울물은 맑은 하늘을 보자 잠에서 깬듯 번쩍이기 시작하였다.

골안막바지의 둔덕에는 봇나무껍질을 이은 귀틀집의 하얀 지붕들이 빽빽이 들어찬 나무숲속에서 숨박곡질을 하였다.

하얀 반소매사쯔에 군복치마를 입은 몸매 작은 녀대원이 둔덕아래 치우쳐있는 귀틀집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왔다. 그는 처마밑에 서서 한참동안이나 백두산쪽을 바라다보고나서 군모를 벗고 머리를 손질하였다. 입에 빈침을 물고 낭자를 만지는 그의 몸에서는 힘과 젊음이 약동하고있었으며 이슬을 머금은듯 생동한 두눈은 기쁨에 넘쳐 웃고있었다.

이 밀영지에서 재봉대일을 맡아보며 동무들의 끼니를 끓여주고있는 김윤화였다.

윤화는 바른편 자드락밭에 서있는 귀틀집을 찬찬히 보다가 상긋이 웃으며 처마밑에 걸려있는 군복상의와 다래끼를 벗겨들었다.

그는 다래끼를 끼고 개울을 지나 봇나무숲속으로 들어갔다. 옥돌을 다듬어서 촘촘히 들여세운듯 한 하얀 봇나무그루들사이에는 빨갛고 노란 단풍이 한창이고 얼기설기 뒤엉킨 관목초리끝에는 진주알같은 열매들이 다닥다닥 열려있었다.

윤화는 속새풀끝에 맺혀 해빛에 반짝거리는 이슬방울들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듯 조심히 걸었다.

얼마쯤 걸어들어가자 멍석 댓잎만 한 부대기밭이 나타났다. 윤화는 군복상의를 나무에 걸어놓고 부대기밭을 한이랑 한이랑 더듬으며 짐승들이 기여들었던 흔적이 없는가 깐깐히 살펴보았다.

부대기밭에는 강냉이, 감자, 배추, 고추 등 갖가지 곡식과 남새들이 이랑마다 빈틈없이 차있었다.

윤화는 해토가 되자마자 틈틈히 양지바른 이 자드락에 나와 나무뿌리며 풀들을 뽑아버리고 밭을 일구었다. 땅은 시꺼멓고 푸실푸실해서 감사리가 좋았다. 그는 세이랑에 감자눈을 박고 두이랑에는 강냉이씨를 묻었으며 한이랑에는 콩을 심었다. 널직널직한 고랑바닥에는 무우와 배추, 근대씨들을 뿌리고 이랑사래 가운데 따로 둔덕을 짓고 고추씨도 뿌려놓았다. 손에 쥘수 있는 남새씨앗은 다 뿌렸다.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틈만 생기면 밭에 달라붙어 김을 잡고 북을 돋궈주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개자리에 돋아난 능쟁이처럼 좀체로 기를 펴지 못하였다. 땅은 비옥한것 같지만 령북땅 이북에서는 되지 않는 남새들이라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그래도 날이 더워지고 비가 내리자 고추포기에는 구기자열매만 한 꼬투리가 몇개씩 열리였고 애기손가락마디만 한 당콩꼬투리도 줄기마다 한둘씩 달리였다. 부지깽이만 한 키에 개꼬리가 솟아난 강냉이는 가벼운 바람에도 와시락거리는데 하나씩 차고있는 강냉이이삭 정수리에는 잘망스럽게 몇오리의 노란 수염이 늘이워져 오사리끝에서 한들거리고있었다. 윤화는 그 강냉이이삭을 볼 때마다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감자농사가 그중 착실하였다. 푸실푸실한 땅을 파내면 닭알만 한것들이 포기마다 하나씩 둘씩 달려있었다. 무우는 냉이만 했고 배추는 길장구만 했다. 그래도 근대가 푸르싱싱했으나 역시 크게 자라지는 못했다.

윤화는 어느때고 자기들의 밀영에 장군님께서 들리실 날이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변변치 않은것이나마 조금도 축내지 않고 지켜왔다.

어제 밀영에 마침내 반가운 소식이 왔다. 오늘 오후나 저녁쯤 장군님께서 오신다는것이였다. 밀영에 있는 동무들이 모두 들썩하며 장군님 맞을 차비를 하였지만 그중에도 윤화의 기쁨은 남다른것이였다. 산속에서 메돼지나 노루를 잡아서 대접하는 경우는 있지만 구색맞게 남새로 찬을 만들어 대접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밭에 들어섰다. 당콩꼬투리는 따서 다래끼에 넣고 고추는 포기채 뽑아 뿌리의 흙을 털어버린 다음 풀밭에 차곡차곡 쌓았다. 여적 아껴오던 붓자루만 한 강냉이자루를 따서 오사리를 헤치니 진주같은 강냉이알이 다문다문 배겨있었다.

다래끼안을 들여다보던 윤화는 저도모르게 손등을 입에 대고 버릇처럼 웃었다. 모든 열매들이 아이들 소꿉놀이 찬감처럼 작고 깜찍스러운게 볼적마다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감자도 모두 캤다. 새알만 한 감자알이라도 잃을가 보아 포기마다 동이가 들어앉게 파헤쳤다.

한밭의 소출이 고작 서너다래끼밖에 되지 않았으나 윤화에게는 더할나위없이 크고 소중한것이였다.

윤화는 마음이 흐뭇하여 묵직한 다래끼를 들고 밭을 나섰다.

그가 방금 밭머리를 나서는데 오솔길 맞은편에서 산뜻한 새 군복을 입은 녀대원이 마주왔다. 몸집이 크고 희멀쑥한 얼굴에 눈섭이 짙은 그 녀대원은 허리를 숙일사하고 앞을 막아서는 나무가지들을 헤치느라고 연송 팔을 휘젓고있었다. 신입대원들이 새 군복을 타입으면 의례 그러하듯이 그도 군복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저렇게 왼심을 쓰는것이였다.

저도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의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를 바라보던 윤화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입대한지 달포가 된다지만 군복은 맞춤한것이 없어서 며칠전에야 타입은 마국화였다.

그사이 국화는 윤화의 곁을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오래동안 유격대생활을 해온 윤화에게서 밥을 짓고 군복을 누비는 재봉대일로부터 총을 다루는 일까지 모두 새롭게 배우겠다는 은근한 심정이 담겨져있었다.

더구나 자기 오빠가 윤화의 남편인 김주현련대장과 함께 국내공작을 나간것을 안 다음부터는 친언니처럼 따르며 마음을 의지하려고 했다.

오늘새벽 윤화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곤하게 자는 국화를 깨우기가 애처로와 혼자 일어나 밥을 지었고 설겆이를 끝내자마자 밭에 나왔던것이다.

마침내 윤화를 띠여본 국화는 허리를 펴며 걸음을 멈추고 반가운 웃음을 짓더니 군복을 마칠가봐 조심스럽게 걷던것도 다 잊어버리고 달려왔다.

《언니, 왜 혼자 나왔어요?》

정말 성이라도 난듯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따지고드는 국화의 길숨한 얼굴과 짙은 눈섭은 바라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저도모르게 윤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용서해요. 다음부턴 안그러겠어요.》

《다시 그렇게 하면 용서 안할래요.》

노여움이 풀린듯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며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피던 국화의 눈이 반짝 하고 빛을 뿌리였다.

《아이 숲속에 터밭이 있구만요!》

국화는 윤화의 손에서 다래끼를 빼앗아들었다.

윤화는 국화의 군복자락에 붙어있는 조뱅이가시를 뜯어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별로 일이랄게 없어요. 공연히 옷이나 마추겠어요.》

《저녁에 정말 장군님께서 오시면···》

국화는 나직이 속삭이다가 말을 끊었다. 그는 장군님앞에 주름살 하나 없는 군복차림으로 나서고싶었고 장군님의 때식을 같이 준비하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럼 다래끼안에 있는것을 부엌에 쏟아놓고 오세요.》

국화는 윤화가 넘겨주는 다래끼를 안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말없이 손을 넣고 푸성귀들을 헤쳐보던 그의 입술이 마침내 방싯 들리더니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 이것들은 왜 모두 이렇게 작아요?》

윤화는 한손으로 입을 싸쥐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잠시후 윤화와 국화는 잔잔히 흐르는 시내가에 나란히 앉아 감자를 씻고 푸성귀들을 다듬었다.

《작아도 맛은 제맛이예요. 깨끗이 다듬고 씻어서 저녁찬거리를 만들자요.》

윤화는 국화가 앉은 자리옆에 고추포기를 옮겨주고 푸성귀들을 씻었다.

국화는 군복저고리를 벗어 나무가지에 단정히 걸어놓은 다음 적삼소매를 접어올리고 고추포기를 집어들었다.

《고추잎자반을 만들어보았어요?》

윤화의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국화는 왼손에 고추포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잎을 똑똑 따고있을뿐 생각에 잠겨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국화는 한참동안 묵묵히 있다가 생각에 잠긴 얼굴을 들고 말했다.

《언니, 저녁찬거리를 차비한다, 고추잎자반을 만든다 하는 말을 들으니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있는것만 같아요.》

국화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집생각에서 벗어나려는듯 익숙한 솜씨로 고추잎을 따서 보자기우에 척척 가려놓았다. 총을 다룰 때는 어물어물하던 그가 고추잎을 따는데는 손끝이 여간만 재지 않았다.

윤화는 당콩꼬투리를 말끔히 씻어낸 다음 그중에서 한개를 골라들고 끄트머리를 씹어보았다. 좀 쇤감은 있지만 감자와 함께 장을 끓이면 제맛이 날것 같았다. 채반우에는 배추, 무우, 근대들이 한웅큼씩 차곡차곡 놓여있었으며 채반 복판에는 깨끗이 씻긴 감자알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잰 솜씨로 고추잎을 따서 보자기우에 가리던 국화는 이따금 동쪽 산봉우리를 바라보군하였다. 산봉우리에는 이깔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고 그뒤로는 푸르른 가을하늘이 비껴있었다.

《국화동무, 집생각이 나는게지요?》

윤화는 다정히 웃었다. 국화는 아무말없이 군모를 쓴 머리를 두어번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추억의 빛이 짙게 어려있었다. 그는 잠시후에야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가 공연스레 걱정할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지내는걸 보시면 걱정이 없겠는데···》

윤화는 어머니에 대한 그의 지극한 심정을 짐작할수 있었다.

마국화의 가족은 다섯이였다. 그런데 국화의 오빠 마동희가 입대하고 달포전에는 국화와 올케마저 입대하고보니 집에는 늙은 부모만이 남아있다. 그러니 집떠난 자식들이 오히려 부모걱정을 하게 되는것이였다.

《부모들의 마음이란 모두 그렇지요. 아마 국화동무의 어머니도 마음씨가 무던하고 어진분일거예요. 세상에 어머니마음처럼 부드러운것이 어디 있겠어요.》

윤화는 당콩꼬투리의 실과 껍질을 발라내며 말하였다.

수림속이 환해지자 맑은 시내물에는 빨갛고 노란 단풍빛이 비껴들었다. 국화는 물결에 실려 노란 단풍잎이 떠내려오는것을 보자 손에 잡히는대로 건져내여 돌판우에 가지런히 놓았다.

《우리 어머니는 부드럽지만 않아요. 마음이 억센분이예요. 형님과 내가 유격대에 입대하겠다고 했을 때 오빠는 마음이 내키지 않아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찬성했거던요.》

윤화는 물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남새잎을 씻어내면서 국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오빠가 아직 국화동무랑 자기 안해가 입대했다는걸 모르고있겠군요?》

국화는 고추잎을 따며 고개를 끄떡이였다.

《오빠 생각에는 나나 형님이 마을에 남아서 부녀회사업을 하재도 힘이 딸릴게라는거지요. 입대해도 유격대원구실을 똑똑히 하지 못할것 같아 그랬겠지요. 오빠의 마음을 어떻게 다 알겠어요? 늙은 부모님만 남겨두는게 걱정스러워 그랬는지··· 그런걸 우리 어머니가 떠밀어주었어요. 혁명에 나설바에야 총을 잡고 싸울수 있는 장군님의 군대에 들어가야 한다는거죠. 아마 오빠가 있었대도 어머니의 뜻을 굽히지 못했을거예요.》

윤화는 한번도 본일이 없지만 그의 어머니를 그려보려는듯 국화의 얼굴모습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참 좋은 어머니군요. 그런 어머니를 둔 국화동무는 얼마나 행복해요. 부럽군요.》

《아니예요. 난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국화는 시름겹게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성격이 억셀 때는 억세지만 자식들때문에 늘 잔근심을 놓지 못하는분이예요. 어머니는 부대생활을 잘 모르니까 그저 고생스러우리라고만 생각하고있을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는 몸이 약한 오빠가 꽤 견딜가 늘 걱정했어요. 입대전에 보약을 먹여보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

국화의 얼굴에는 쓸쓸한 빛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아무리 애썼지만 구차한 살림형편에서 록용이나 산삼같은 값비싼 보약을 장만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옹노를 놓아 노루나 메돼지라도 한마리 잡아오라고 하였다.

며칠동안 아버지는 산속을 헤매며 짐승들이 다니는 길목에 옹노를 놓고 목을 지켰지만 짐승은 끝내 잡히지 않고 오빠는 약속된 날 집을 떠나고말았다. 오빠에게 아무것도 먹여보내지 못한것을 두고 가슴을 앓던 어머니는 오빠가 떠난후 며칠이 지나서 노루 한마리가 걸려들자 더욱 가슴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국화는 혼자말처럼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윤화는 국화의 모습에 한없이 정이 끌리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어머니는 아마 록용을 먹여서 보냈다해도 자식들 걱정을 놓지 못할거예요. 어머니의 마음이란 그런거니까요. 그러니 오빠랑 국화동무네 올케가 장군님품에서 어엿한 유격대원이 되여 잘 싸우고있다는 소식을 빨리 보내드려야 해요.》

《그런데 그게 될가요? 오빠도 신대원이나 같고 난 또 이렇게 덩지만 커다란 맹물단지인데···》

국화는 고추잎을 따던 축축한 손으로 윤화의 무릎을 잡아흔들며 안타깝게 물었다.

《아니 국화동무가 왜 맹물단지예요? 호호호.》

윤화는 파란 고추잎쪼박이 점점이 묻은 국화의 실팍한 손등을 다정하게 쓸며 말했다.

《나처럼 어린것이 달린 녀자도 동무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렇게 따라다니지 않아요. 아이를 끼고 유격대를 따라다닌다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예요. 그래도 장군님께서 관심을 돌려주시고 조직에서 돌봐주니 아무 걱정도 없어요. 그런데 동희동무나 국화동무야 기운이 모자라서 혁명을 못하겠어요.》

국화는 이슬맺힌 얼굴에 갑자기 생기를 띠우며 그의 곁으로 다가앉았다.

《참말 그래요. 장군님께 이 말씀을 올렸더니 깊은 생각에 잠기시며 자식들에게 록용을 먹여 내보내지 못해 가슴아파하는 부모님들을 생각해서라도 동무들은 반드시 억센 혁명전사로 자라나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들은 한동안 묵묵히 일손을 다그쳤다.

《언니!》

문득 국화가 침묵을 깨뜨리며 윤화를 불렀다.

《련대장동진 늘 지하공작에 나가군하세요?》

그는 자기의 물음이 애매해보였던지 덧붙여 물었다.

《언니는 늘 밀영에 있고요?》

윤화는 그의 말뜻을 새겨보려는듯 잠시 생각에 잠겨 남편이 떠나간 동남쪽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남편인 련대장 김주현은 한 스무날전에 중요한 지하정치사업임무를 받고 국내의 북부산악지대로 떠나갔다. 마동희도 그 소부대에 망라되여 함께 떠났다.

소부대는 다음해 여름까지 그곳에서 공작하게 되여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떠난지가 겨우 20일 되나마나하니 그들이 돌아오려면 아직 까마득하였다.

윤화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행군할 때나 전투할 때는 같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늘 밀영에 있게 되고 남편이나 오빠들은 늘 싸움터에 나가있게 되니 한달에 한번씩 만나기도 쉽지 않아요. 오빠가 그립지요?》

국화는 어린애처럼 천진스럽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밝고도 익살스러운 구석이 엿보이였다.

《형님과 내가 입대한것을 알면 오빠가 뭐라고 할가? 빨리 한번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더해지는군요.》

《뭐라겠어요. 잘했다고 하지.》

《그건 몰라요. 우리 오빠가 부모님앞에서는 곰상스럽지만 형님과 나한테는 아주 엄하거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빠와 만날 날을 생각하는 국화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짙게 어려있었다.

맞은편 숲속에서 갑자기 산짐승이 달음박질치는것 같은 와실렁거리는 소리가 일어났다. 국화와 윤화는 웬일인가 해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바지만 입은 벌거숭이 소년이 풀숲을 차며 달려오고있었다. 소년은 짐승에게 쫓기우듯 종주먹을 틀어쥐고 첨벙첨벙 시내물을 건너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종철아! 웬일이야?》

윤화가 놀란 눈길로 숲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종철이는 느닷없이 개장변에 올라붙어 노랗고 빨간 단풍잎들이 주런이 널려있는 국화옆으로 달려가 그것들을 덥적덥적 집어보았다. 소년은 별것이 아니라는듯 단풍잎들을 휘뿌려던지고서는 채반우에 깨끗이 씻어놓은 감자를 집어 입에 넣고 우적 하고 씹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입안에 물었던 감자를 푸 뱉어버리고나서 손에 들려있던 감자쪽을 멀리 팔매질하였다.

종철이가 방안에 날아든 새처럼 돌아치는 바람에 윤화도 국화도 정신이 떨떨해있는데 방금 그애가 나타난 숲속에서 한손에 번쩍이는 쇠붙이를 든 녀대원이 달려나왔다. 군모채양을 눈두덩까지 내리쓴 그의 예쁘장한 얼굴은 성이 났다는것을 보여주려는듯 찡그려져있었다.

《언니, 그애 좀 꼭 붙잡고있으라요.》

개장변에까지 따라온 그 녀대원은 시내물을 건늘수 없게 되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윤화는 엄한 목소리로 아들애를 꾸짖었다.

《종철아, 너 왜 아지미말 안듣니?》

종철이는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을 매만지고있었다. 종철이가 자기 어머니의 말에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본 국화는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종철이를 쫓아오던 녀대원은 마음을 놓은듯 윤화에게 말했다.

《머리를 깎아주겠다니까 따끔따끔 하다고 도망을 치는게 아니겠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종철을 향해 손에 들고있던 번쩍이는 쇠붙이를 절컥거리며 을러멨다.

《너 이제 또 도망치기만 해봐라. 머리도 안깎아주고 새 옷도 안입히겠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것은 재봉대에서 쓰는 가위였다. 윤화는 그제야 내막을 알아차리고 종철에게 말했다.

《빨리 경신아지미한데 가서 머리를 깎아라. 오늘저녁에 좋은 일이 있다는것을 잊었니?》

종철이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듯 여전히 쭈밋거리였다.

《경신아지미한테 깎지 않으면 어머니가 깎을테다.》

종철이는 그 말을 듣고서야 간신히 수긍하는 빛을 띠웠다. 어머니한테 깎기보다는 그래도 경신이한테 깎는것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종철이는 재봉대에서 일하는 림경신이를 끔찍이 따랐다. 경신이는 어머니 못지않은 살틀한 손길로 종철이를 보살펴주었으며 늘 어려운 행군때에는 도맡아 업군하였다.

언제나 서글서글한 경신이는 종철이의 응석도 곧잘 받아주었다.

《나 이게 뭔지 좀 보구···》

종철이는 능청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채반에 씻어놓은 남새들을 바라보는척 했다. 그래도 어머니의 얼굴에서 엄한 기색이 사라지지 않는것을 느낀 종철이는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개울물을 첨벙첨벙 차며 경신에게로 되돌아갔다. 경신이는 종철의 손목을 꼭 쥔 다음 그의 머리를 싹싹 쓸어주며 소곤소곤 달랬다. 종철이는 하는수없이 아장아장 앞장서 걸어갔다.

경신이가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숲속을 바라보고있던 윤화는 개장변에서 한걸음 물러나며 국화에게 말했다.

《이젠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좀 쉬고 해요. 이리 와요. 내가 머리를 손질해주겠어요.》

국화는 기쁨이 확 피여난 밝은 얼굴로 윤화를 바라보더니 군말없이 군모를 벗어안고 등을 돌려대였다.

윤화는 주머니안에서 빗을 꺼내들고 그의 탐스러운 머리를 빗어주었다. 관자노리옆에 빈침이 꽂혀있는것이 손에 집히자 그것을 뽑아 입에 물고 두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기였다. 며칠전에 군복을 입을 때 머리태를 잘라버린 가위자리가 머리칼끝에 희미하게 나타나있었다. 윤화는 병실에 돌아가서 가위로 다시한번 손질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윤화에게 머리를 맡긴 처녀는 채반을 끌어당겨 구기자알만 한 고추를 들여다보더니 왼쪽관자노리의 머리카락속에 끼워넣었다.

국화는 겉보기에는 숙성하였지만 일거일동이 순진해서 볼수록 정이 갔다.

(국화는 지금 고향의 어머니나 먼곳에 나간 오빠를 생각하고있겠지? 아들딸 며느리가 모두 입대했으니 얼마나 장해.)

혁명대오에 첫걸음을 들여놓은 국화를 생각하는 윤화는 아무런 꺼리낌없이 갓난 종철이를 업고 유격근거지로 성큼성큼 찾아오던 자기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혁명의 길은 준엄했고 참된 혁명전사의 구실을 하는것은 어려웠다.

갓 조직된 유격대가 힘겨운 싸움을 벌리며 한걸음한걸음 톺아오르던 간고한 로정을 숨을 할딱거리며 따라가던 자기에 비해보면 국화는 훨씬 억세보였고 지금의 형편 또한 1933년에 대면 훨씬 유리해진것 같았다.

《이제 장군님께서 군복을 입은 국화동무를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국화동무, 장군님을 만나면 부모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꿋꿋이 싸우겠다고 말씀드려요!》

국화는 온 세상이 황홀하게 보이는지 깨끗이 단장한 머리를 높이 들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억실억실한 눈에는 행복이 넘치고있었다.

《녜, 꼭 말씀드리겠어요!》

윤화는 다정하고 순진한 국화며 그의 일가가 혁명의 한길에서 어엿한 혁명전사로 자라날것을 충심으로 축원하였으며 그것을 굳게 믿고싶었다. 그것은 혁명의 한길에 나선 자기의 가족, 자신과 남편에 대한 기원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