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1


 

제 7 장

1

 

어찌보면 그것은 너무도 례사롭고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수 있을것이다. 조카가 큰아버지를 큰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다르게는 부를수 없다. 그러나 리인묵은 준오가 뛰여오면서 찾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슴이 저릿하였다.

《큰아버지!》

어쩐지 그 한마디 부름은 잃었던 조카를 내가 틀림없이 다시 찾았다는 의식과 함께 오랜 세월 신상에서 흩어지고 사라졌던 모든것을 되찾아 인제는 만사가 제대로 되였음을 느끼게 하였다.

《준오냐?》

《큰아버지, 춘국아저씨가 오셨어요!》

《춘국이라니?》

비서처에 와있던 리인묵은 급히 천막밖으로 나가보았다.

그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전부터 잘 아는 동생의 전우였다. 언젠가 동생과 같이 집에 뛰여들어 몸을 숨기고는 이제부터 숨겨준 값을 물어야겠다고 웃으면서 빨찌산하는 사람의 형님답지 않게 사상이 글러먹었다고 온밤 자기를 공격하던 최춘국이였다.

최춘국려단장은 방금 한시간전에 사령부에 도착하였다. 지금 여기 5도구밀영으로는 조선인민혁명군산하 각 부대장들이 속속 도착하고있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부대장들을 부르신것이였다.

려단장과 리인묵은 일순 우뚝 서서 상대방을 바라보고는 서로 마주달려왔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상봉이였다.

최춘국은 경찰의 추격으로 죽을 고비에 들었을 때 리인묵이네 집에 준오아버지와 같이 뛰여들어 살아난 일을 회억하며 희생된 전우의 형을 깍듯이 형님으로 대접하였다.

《인묵형님, 이렇게 만날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되여 형님이 우리 사령부의 손님으로 되였습니까?》

《그 사연을 어떻게 선자리에서 다 이야기하겠소.》

《형님, 오늘밤 마주앉아 회포를 나눕시다. 그때 하다 만 론쟁의 아퀴도 지읍시다.》

하고 려단장은 저녁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있었다. 부대활동과 관련하여 사령관동지께 올릴 보고자료를 작성해야 하였다.

서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최춘국은 이 밤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 와야 할 부대장들이 전원 도착하여 초저녁부터 사령부에서 모임이 있었다. 모임은 다음날 오전에도 계속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모임에서 여러 부대장들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 및 병사대회이후 부대활동정형을 보고받고 총화를 지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정세가 엄혹한 어려운 시기에 모든 부대가 사령부의 방침대로 중일전쟁을 《속결》하려던 일제침략자들에게 강력한 배후타격을 가하여 적들의 전략적기도를 파탄시키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무장투쟁을 가일층 확대강화한것은 거대한 승리라고 지적하시였다.

부대장모임이 끝난 뒤에도 최춘국려단장은 리인묵이와 조용히 마주앉을 틈을 얻지 못하였다. 오후에는 적들과 어려운 싸움을 하다가 사령부에 온 부대장들과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한 리인묵을 환영하는 사격경기가 있었다.

경기를 하기에는 더 바랄나위없이 쾌청한 날씨였다. 바람은 자고 공기는 맑았으며 하늘은 쪽빛으로 높이 푸르렀다.

장군님께서 여러 부대장들과 함께 통나무걸상을 만들어놓은 관람석에 나오시였다. 준오의 큰아버지 리인묵이도 최춘국이와 같이 관람석에 나왔다. 그뒤로는 대원들이 산비탈에 중대별로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화선은 관람석 십오m앞에 있었고 사격목표는 맞은편 산기슭에 번호를 달고 주런이 서있었다.

경기조건은 간단치 않았다. 우선 사격거리가 3백m가 넘고 과녁중심에 엽전만 한 흑점을 넣고 둘레로 아홉개의 검은선을 차례로 그린것이 목표여서 화선에서는 가물거리는 중점에 열발중 일곱발이상을 명중시켜야 등수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수 있다.

사수들로는 중대에서 각각 한명씩 선발되여 도합 19명이 나왔다. 이 19명의 사수들중 관람석의 눈길을 누구보다도 끈것은 소년중대선수 준오였다. 중대의 명예와 관련되니만큼 강민은 원체 준오보다 총을 더 잘 쏘는 2소대장 주용길이를 내보낼 생각이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 준오의 큰아버지도 오시였는데 준오가 쏘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귀띔을 해주시여서 생각을 달리하였다.

준오를 내놓고 다른 선수들은 너나없이 내노라 하는 명사수로 날아가는 뻐꾸기도 겨누지 않고 단방에 떨군다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준오는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중대원들쪽에 손을 흔들어보이고 《음― 음―》 하고 목다듬는 소리를 내였다. 사격할 때 기침을 할가봐 그러는것 같아 소대장 봉석이가 양철주전자를 들고나와 솔잎물을 한고뿌 따라주었다. 준오는 고맙다고 묵례를 하며 솔잎물로 목을 추긴 후 가슴을 쭉 펴고 팔운동을 하면서 화선앞을 한바퀴 휘 돌았다. 긴장은 되였지만 경기벽두부터 상대들을 압도하려드는 자신만만한 거동을 보고 관람석에 있는 구대원들은 눈을 끔적거리며 웃기도 하고 수군거리며 점도 쳐보았다. 저 준오가 기세를 올리며 멋은 도맡아내는데 도대체 몇발이나 맞힐것 같은가? 목표변두리라도 맞히면 다행이고 만일 엽전만 한 가운데점을 한발이라도 명중시키면 그것은 대단한 성과로 3등권안에는 넣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원도 있었다.

드디여 나팔소리로 주의신호가 오르고 사격지휘관인 서진국소대장이 삼각기를 들고 사수들을 정렬시켰다. 준오는 그때 자기 위치로 들어가 서면서 관람석에 앉아계시는 장군님을돌아다보았다. 장군님께서 《잘 쏴야 해.》 하듯이 고개를 끄덕여보이실 때 사격지휘관의 맵짠 구령이 울렸다.

《화선앞으로 갓!》

준오는 다른 중대선수들과 함께 총과 출발선에서 공급받은 탄알 열발을 가지고 화선앞으로 나갔다.

《엎드려 사격준비!》

구령이 떨어지기바쁘게 사수들은 일제히 땅에 엎드려 약통실에 먼저 다섯발을 밀어넣고 절컥절컥 장탄을 하며 사격자세를 바로잡고는 돌개바람이 일게 보고했다.

《1번 사격준비 끝!》

《7번 사격준비 끝!》

《13번 사격준비 끝!》

《5번 사격준비 끌!》

마감으로 준오가 챙챙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19번 사격준비 끝!―》

사격지휘관은 삼각기발로 목표를 제시하며 마침내 사격구령을 내렸는데 총소리는 《쐈!》 소리와 함께 기발이 떨어지는 순간에 일시에 터져올랐다.

순간 방아쇠를 못당긴 사수로는 단한명 19번 준오밖에 없었다. 준오는 그렇게 예비운동을 하고 자신있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지내 번개같이 쏘는통에 그만 첫 순간에 넋을 잃고말았다. 가슴이 풀가마처럼 활랑거리고 총구쪽이 자꾸 오르내려 조준점을 정확히 잡을수가 없었다.

그러는사이 다른 선수들은 한본새로 방아쇠를 계속 당겨 벌써 두세발씩 사격했다. 준오는 더욱 당황하여 조준점이 어지간히 잡혔다고 짐작되자 한방 놓고보자는 조급한 생각에 자신없이 첫발을 발사했다. 그리고는 총알이 어디가 맞았는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아 뒤를 돌아다보았다. 사격지휘관이 큰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19번, 어디를 보는가?》

준오는 조문앞으로 눈을 다시 가져갔으나 좌우 기세에 시력마저 얼쳐 과녁의 어렴풋한 형체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옆에서는 계속 쏘고 뒤에서는 장군님과 큰아버지, 여러 부대장들, 수백명 구대원들과 중대동무들이 지켜보는데 조준만 하고있을수도 없었다. 순 체면에 잡혀 아니다 하면서도 또한번 자신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과녁밑에서 흙먼지가 풀썩 이는것이 보였다. 목표에 들어가기는커녕 변두리도 스치지 못한것이 헨둥하였다.

준오는 피가 말짱 거꾸로 흐르는것 같았다. 자기가 지금 장군님과 중대 망신을 시킨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다. 그럴수록 옆에서는 준오의 얼을 아예 송두리채 뽑아버릴듯이 지끈지끈 사격속도를 높이기만 하였다. 준오는 눈앞이 깜깜해져서 과녁판마저 보이지 않았다. 주먹으로 총탁을 내리치며 울음이라도 터칠것 같았다.

저절로 눈길이 뒤로 돌아갔다. 장군님께서 침착하라고 격려의 미소를 보내시며 힘을 주듯 고개를 끄덕여보이시였다.

준오는 자기도 모르게 눈정기가 살아남을 느껴 침착히 숨을 돌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불을 뿜는 동자만이 아닌 수백대의 눈섭마저 불심지가 되여 목표를 겨냥하고 쏘아보았다. 활랑거리던 가슴을 가라앉히며 과녁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드디여 가물거리던 목표가 길이 들어 고분고분 조성우에 올라앉더니 순간에 확대되며 눈앞으로 육박해왔다. 발사했다.

《그렇지!》

흡족해하시는 장군님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준오는 지금 장군님께서 쌍안경으로 자기 목표를 지켜보고계신다는것을 알았다. 그는 엽전만 하던 과녁이 갑자기 몇배로 커지기라도 한듯 더욱 똑똑히 보여 자신을 가지고 연거퍼 발사했다.

《잘 들어간다. 침착해라!》

장군님께서 흥분에 들뜨는 그의 가슴을 지그시 눌러주시였다.

준오가 다섯방을 쐈을 때 좌우에서 총소리가 즘즘해졌다. 어느새 대부분 선수들이 정한 열발을 다 쏘고 사격을 끝낸것이였다.

준오는 다시 조급해나서 여섯번째 탄알이 빗나갔다.

《아깝다. 우로 올라간다.》

장군님께서 화선에 엎드린 준오가 똑똑히 듣도록 목소리를 높여 알려주셨다. 그이께서 이토록 왼심을 쓰시는것을 보고 부대장들, 지휘관들, 대원들이 준오의 과녁을 전부 지켜보았다. 준오가 방아쇠를 당길적마다 관람석이 들썽들썽 설레이였다. 중대동무들은 손바닥이 깨지게 박수를 치며 환성을 올렸다. 준오는 신심을 가지고 침착히 쏘고 또 쏘았다. 총탄이 목표판에 들어가맞는것이 사수의 륙감에도 알렸다.

드디여 열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준오의 사격이 끝나는것으로 선수들의 사격이 끝났다. 세명의 판정원이 신호기를 들고 목표판앞으로 달려갔다.

밭은 기침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는 가운데 뭇시선이 초조히 목표판을 바라보았다.

판정원들이 피탄자리를 차례로 검사하며 신호기를 들어 성적을 알려왔다. 열발중 열발 명중 세명, 아홉발 명중 열한명, 여덟발 명중이 네명이였다.

준오는 열발중 다섯발을 목표판중심에 명중시켰다.

장군님께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담고 화선으로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곧장 준오있는데로 가시였다.

《준오동무가 용소. 우리 준오가 장해. 좀더 침착히 쐈으면 두발은 더 맞히는건데 여섯번째 탄알은 발뒤꿈치를 드는통에 그만 훌 날아갔단 말이요.》

《제가 그랬습니까?》

《그럼, 그래두 대단해. 다섯발이 어디야. 이담엔 문제없겠소. 첫 경기니까 덤볐거던, 동무네 이담 다시 보자구. 이번에는 좀 덤볐소.》

그이께서는 아쉬운것을 느끼시면서도 못내 기특해하며 준오의 등을 두드려주시였다.

중대에서는 광호가 미리 준비했던 꽃목걸이를 준오에게 걸어주고 화선앞을 한바퀴 빙 돌리고는 여럿이 달려들어 공중높이 띄워올렸다. 그런 다음은 《우리 가슴 붙는 불로 낡은 사회 태우고》 이렇게 혁명가요까지 부르며 숙영지를 들었다놓았다. 부대장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선수로 나갔던 준오를 에워쌌다. 그들은 준오를 통해 래일의 유격대원으로 준비되고있는 소년중대원들의 슬기로운 모습만 본것이 아니였다. 이들이 일으키는 생신한 바람을 자기네 부대에도 실어가고싶은 욕망을 누를수 없었다.

《준오야, 수고했다.》

인수가 관람석에 이미 빛을 보인 양철주전자를 들고 다가왔다. 고뿌에 넘치게 물을 따라주며 어서 마시라고 권하였다.

《인수, 고맙다.》

준오는 중대원들쪽에 고뿌를 들어보이고 인수가 따라준 물을 단숨에 달게 마셨다.

《요구되시는분이 없습니까? 우리 중대 송순누나랑 만든 솔잎물인데요···》

인수는 부리가 긴 주전자를 부대장들쪽에 들어보이며 중대의 물맛을 선전했다. 최춘국려단장이 먼저 청하여 맛을 보았고 인수는 아낌없이 턱을 내며 감상을 물어보았다.

《우리 중대 물맛이 어떻습니까?》

려단장은 속이 후련하여 가슴을 벌리며 만장에 울리게 대답했다.

《씨원한것이 별맛이요!》

인수는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왼쪽눈을 내놓고는 온 얼굴이 웃었다. 왼눈이 웃지 못하는것은 눈두덩이 부어있기때문이였다. 며칠전에 벌둥지를 수색하다가 반격을 당했다.

(저 눈두덩만 온전하면 얼마나 보기 좋을텐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만큼 그것은 중대에 아직 남아있는 허물자리같이 보였다. 사실 요사이 그 눈두덩을 볼적마다 구대원들은 《녀석들이 어른이 다 된줄 알았더니.》 하고 웃는 말로 아쉬운 소리를 한마디씩 하군 하였다.

인수의 눈두덩을 보실적이면 장군님께서도 걱정을 하시였다.

-언제면 저녀석이 어른이 될가?-

인수는 지금도 장군님께서 자기 눈두덩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시는것을 모르고 요구되시는분은 나오라고 계속 주전자를 흔들어보였다.

옆에서는 준오를 목마태우고 돌아가던 중대원들이 발을 구르며 무장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그것은 부대의 오락회로 넘어가서 군의처의 퉁소독주가 고향산천의 정취를 불러왔고 선실이가 그 체구에는 있을상싶지 않은 꾀꼬리청으로 《어머니리별가》를 불러 청중을 황홀케 하였다. 그런 다음은 특기가 나와 비서처의 정인갑이 《물초롱 굴러가는 소리》로 한바탕 대원들의 웃음주머니를 흔들어놓았다.

대원들은 준오가 사격선수로 뽑혀 장군님의 칭찬을 받는것을 보고 몹시 감동되여있는 리인묵이더러 한마디 불러줄것을 요청했다. 리인묵은 정중히 일어서서 손을 모두어잡고 눈물이 글썽하여 장군님쪽을 바라보았다. 그이께서는 어서 한마디 부르라는듯 따뜻이 미소를 보내주시였다.

리인묵은 과연 줄난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완고한데는 있어도 옹졸하지 않았으며 유생같이 점잖으면서도 몰취미하지 않았다. 엊그제는 비록 회오에 잠겨 통곡을 했지만 오늘은 기쁨에 젖어 가슴을 열어놓고 《노래가락》 한마디를 불렀다.

다음은 차례가 어제날의 머슴군소년 덕만이한테로 넘어갔다. 그는 언젠가 비오고 바람 불던 날 장군님께서 우등불앞에서 배워주신 《압록강의 노래》를 불렀다.

썩 류창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어디서 그렇게 불같은 목소리가 나와 하늘을 찌르는지 그가 두손으로 마지막구절을 들어올릴 때는 청중의 가슴이 동시에 끓어올랐다.

덕만이가 자리에 앉자 구대원들은 그동안 수고를 같이해온 강민이와 송순이가 한마디 함께 불러줄것올 요청하였다.

깅민은 얼굴이 벌개지면서도 응해나섰으나 송순은 일어서지 못하였다. 청중들이 빨리 나오라고 박수를 치자 송순은 얼굴을 싸쥐며 달아나버렸다. 오락회는 날이 저물 때까지 환희의 열풍속에 계속되였다.

오락회가 끝나는 길로 강민은 못나게 노래 한마디 못부르고 달아난 송순이를 찾아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송순은 우등불이 소리없이 타는 작식터앞 호젓한 곳에 조용히 혼자 나와앉아있었다. 불빛에 드러나는 어깨가 가볍게 흔들리는것 같았다.

강민은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다가 인기척을 내며 옆으로 가앉았다. 송순은 흠칫하고 조금 비켜앉더니 눈언저리를 닦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에는 그들 두사람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대한 생활을 안은채 들레이던 밀영지가 고요해지고 먼데서 외쏙독이소리만 들려왔다.

《송순동무, 그만큼 동무들이 한마디 부르라고 청하는데 왜 달아났소?》

십분 짐작은 되면서도 찾아나온 까닭을 알리듯이 강민은 물어보았다.

송순은 고개를 숙인채 잠자코 있다가 눈길을 들며 이런 말을 하였다.

《전 오늘 준오가 사격을 잘했다고 장군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시는것을 볼 때부터 눈물이 나오는걸 참았어요. 결의문을 쓸 때 주먹을 그려바친 덕만이가 가슴을 펴고 그렇게 노래를 부를 때 전··· 그애들이 뉘 덕분에 그렇게 자랐는지 그걸 다 알가요? 강민동무, 어때요? 그애들은 참말 모두 딴사람이 되지 않았어요?》

물기이린 송순의 눈을 쳐다보다가 강민은 젖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딴사람이 된것이 어찌 그들뿐이겠소.》

《옳아요. 아마 그런가봐요.》

강민은 일부러 찾아나온 사람같지 않게 말이 없었다.

옆에 앉은 송순이가 거북함을 느낄만큼 한참 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는 지금 송순의 말을 듣게 되자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자기가 아이들 책임자가 된 후 책벌을 받았다고 락심해다니던 일도 떠오르고 그들을 위해 한몸을 아끼지 않을 각오를 하면서도 그것을 더 큰일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것으로 생각하던 일도 상기되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나?》

《참, 요사인 모두들 강민동무가 생각이 많아졌다고들 해요.》

《생각을 안할수 없게 됐지. 난 요사이 줄곧 혁명의 참뜻에 대해서 생각하고있소.》

《네?》

송순은 생소하게 들리는지 살며시 눈길을 들며 강민을 올려다보았다.

《송순동문 처음 입대했을 때 혁명을 어떻게 리해했소?》

《혁명이요?··· 전 그때 혁명이 무언지 몰랐어요. 그저 혁명 하면 무언가 두들겨엎는것으로만 생각했지요.》

《하긴 그것도 대체로는 맞는 생각이지. 난말이요, 처음에 총을 한자루 받아메자 세상이 녹두알만 하게 보여 혁명을 하루아침에 다 할것 같았소. 하지만 몇년이 가도 그날은 오지 않았소. 오히려 더 간고해졌지. 그것을 이겨내자면 힘을 더 내야겠는데 힘이 더 날데가 있어야지. 그저 혁명을 시작할 때와 꼭 같았소. 혁명은 날이 갈수록 더 간고해지는데. 그러니 내가 힘겨워 안할수가 있소? 그런데 나는 요즘에 와서 그 어떤 변화가 내 몸에서 일어난것 같단 말이요. 우선 힘든줄을 모르겠고, 눈은 전보다 밝아지고, 무슨 일이든 자신이 붙소. 그전의 나는 허울만 남고 누군가 나를 밀어내고 딴사람이 내 허울속에 들어앉은것 같단 말이요. 헌데 따져보면 이런 변화는 내가 처음에 그처럼 실뚱해서 접수한 그 일을 맡아하면서 생긴것이요. 그만하면 <책벌>받은 보람이 있지 않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내가 우리 혁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된거요. 불길속에 어린이들을 안고다니는 혁명, 이보다 더 뜻이 깊은 혁명이 어디 있겠소. 난 이 몇달사이에 미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지 못한 심장은 뜨겁게 계속 타오를수 없다는것을 깊이 깨달았소!》

강민은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힘껏 펴고 무성한 숲을 바라보았다.

송순이도 비켜앉았던 자세를 풀고 강민이쪽으로 돌아앉으며 심정을 조용히 이야기했다.

《저 역시 그래요. 제가 달라졌다는걸 느껴요. 하지만 전 아직 멀었어요. 전 그동안 마음뿐이였지 아직 그애들의 누나가 되지 못했어요. 성의와 노력이 모자랐어요. 저··· 강민동무, 앞으로 저를 잘 이끌어주어요. 전 강민동무가 주는 지적이라면 언제든지 달게 받겠어요.》

강민은 뒤더수기로 손을 가져가며 열적게 웃어보였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겠소. 나야 송순동무한테서 원망만 사온 사람인데.》

《아이참, 제가 언제 그랬어요. 부탁이예요. 앞으로도 많이 도와줘요. 전 꼭 중대의 누나가 되고싶어요.》

《중대의 누나, 말이 아주 구수하오. 동무가 그런 말을 하게 되나니, 사람발전이란 모르겠거든. 동무가 내 등에 업혀올 때는 부처님 가운데토막처럼 얌전하기만 했는데.》

《못하는 소리도 없네. 제가 언제 업혀왔어요? 발구 타고 왔지.》

《그랬던가?》

《그때 이야기는 그만해요. 누가 듣겠어요.》

송순은 얼굴이 익은 복숭아처럼 빨개졌다. 거기에는 부드럽게 숨쉬는 이 밀영지의 공기처럼 순결하고 열정에 타는 송순의 마음이 그대로 티없이 내비낀듯 하였다. 강민은 서로 심정을 리해 못해준다고 은근히 원망하던 일이 언제 있었던가싶게 빙그레 웃으며 자리를 일었다.

송순이도 눈굽을 닦고 말없이 따라 일어섰다. 그들은 서로 숨결을 느낄만큼 나란히 서서 단풍이 짙은 숲속을 천천히 걸어나갔다. 숙영지에는 청신한 밤의 훈기가 어디에나 흐르고있어 강민은 훈향에 취한듯이 생각에 잠겨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참 생각하면 할수록 꿈같은 일이요! 이 백두밀림에서 혁명의 미래까지 안아키우는줄을 그 누가 알겠소.》

강민은 고개를 젖히고 검푸른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정같은 그 무변한 하늘에 야광주처럼 박혀 자기들을 내려다보는 뭇별을 세여보며 송순이도 속삭이였다.

《그래요··· 우리 장군님이 아니고야 누가 그런 생각이나 하겠어요. 전 벌써 장군님께서 그리시는 그 미래에 가서 사는 심정이예요.》

《동무는 그때는 아마 큰 녀성일군이 될지도 몰라.》

《아니예요.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요? 전 그저 나라를 찾으면 어느 자그마한 촌학교에 가서 저 윤석찬동지의 부인처럼 어린이들을 가르치고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복을 다 받아안을 그애들앞에서 그 행복이 어떻게 마련된것인가를 끝없이 이야기해주고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송순의 눈길에는 마음을 주는 가까운 사람앞에 자기 심정을 토로하게 된 환희의 빛이 어렸다.

강민은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달빛에 드러나는 송순의 얼굴을 미덥게 내려다보았다. 그는 송순의 소박하고 진실한 꿈에 공감이 갈수록 이때까지 자기들사이에는 그 어떤 간격이나 달리하는 생각이 없었으며 설혹 또 그런것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자기들의 마음과 마음이 하나의 숨결을 타고 이어지는것만 같았다.

두사람은 별빛을 온몸에 받으며 명상에 잠긴듯 한 숲속길을 말없이 그냥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