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8


 

제 6 장

8

 

반돌격해나가던 대원들은 적들을 한키로이상은 추격하지 않았다. 빨리 제 위치를 차지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였다.

대원들은 숨돌릴새없이 릉선으로 급히 돌아왔다. 준오는 그 복새통에도 이악스럽게 자기가 사로잡은 고바야시를 릉선까지 끌고왔다.

쫓기던 적들은 대렬을 수습해가지고 다시 달려들었다. 여간 독종들이 아니였다. 그러나 혁명군이 차지한 릉선으로 돌격해올 엄두는 못내고 골짜기를 사이에 둔 맞은편 산등을 차지하고 위협사격을 했다. 증원부대가 올 때까지 상대방의 행적을 놓치지 않자고 악을 쓰는것 같았다.

아군쪽에서는 적들의 기도를 알아차리고 자기의 위치를 로출시키며 일부러 맞총질을 하였다.

그사이 부대의 기본력량은 바람같이 릉선에서 사라져버렸다. 귀청을 찢어대는 총소리를 리용하여 신속히 릉선좌측으로 해서 물줄기를 건너 익측에 있는 고지로 옮겨앉았다. 릉선에는 사령관동지로부터 임무를 받은 7련대 4중대, 하나같이 펄펄 나는 오중흡이네 중대만 남아 맞총질을 계속하였다.

얼마 안있어 이시하라부대가 차지한 맞은편에서 변화가 생겼다. 산병선이 갑자기 길어지고 새로 나타난 십여정의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혁명군사령부가 있다는 급보를 받고 가까이 있던 증원부대가 달려온것이였다. 놈들은 한참 맹렬히 위협사격을 하다가 드디여 공격하려고 골짜기로 내려와붙었다. 거의 때를 같이하여 오중흡이네가 차지한 릉선후면으로도 적들이 달려들었다. 후면에 나타난 적은 급보를 받고온것이 아니였다. 사냥개가 꿩을 일구듯이 포위속을 여기저기 찔러볼 임무를 받고 야간행군을 하다가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적들이였다.

릉선후면은 비탈이 완만하고 나무도 성깃했다. 크지 않은 바위돌들만이 널려있는 언덕이였다. 사계가 환히 트인데다가 달이 어찌 밝은지 멀리서 산개하는 적들의 움직임을 육안으로도 볼수 있었다.

미리 생길수 있는 정황을 예견하고 장군님께서 이르신대로 오중흡이네 중대는 릉선 량켠에 붙은 적을 동시에 사격했다. 맞은편 적들한테는 총탄을 머리우로 날려 릉선가까이에 와서 붙을수 있는 틈을 주고 후면에 전개한 적들쪽에는 강력한 명중사격으로 머리를 못들게 하였다.

이처럼 면밀히 짜고든 사격을 총신이 달도록 하다가 앞에서 공격하는 적들이 턱밑까지 다가왔을 때 중대는 감쪽같이 릉선옆으로 빠져나갔다.

릉선에서 총소리가 갑자기 멎자 턱밑까지 다가든 적들은 잠시 사격을 멈추었다. 그러다가 혁명군이 퇴각한 기미를 채고 일제히 돌격하여 릉선을 점령했다. 적들은 기세가 올라 퇴각하는 혁명군을 추격하기 위해 릉선후면을 덮으며 달려내려갔다. 후면에서 마주쏘는 제편의 사격을 혁명군이 퇴각하며 쏘는 엄호사격으로 착각한것이 틀림없었다.

한편 후면으로 공격하던 적들은 릉선에서 불시에 달려내려오는 제편을 반돌격하는 혁명군인줄 알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리하여 앞뒤로 달려들던 적들이 제편끼리 쏘고 죽이는 맞싸움이 붙었다.

밋밋하고 넓은 비탈을 한벌 뒤덮은 적들은 서로 바위돌과 관목뒤에 몸을 숨긴채 삼사백m사이를 두고 보총, 기관총, 척탄통 있는 화력을 전부 동원하여 무섭게 쏘아대였다.

이때 주력부대는 장군님을 모시고 거기서부터 5리밖에 안되는 산우에서 적들이 눈이 뒤집혀 서로 제편끼리 맞불질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손님인 리인묵은 어찌 흥분했는지 그놈들 잘 녹아난다고 연방 무릎을 쳤다. 수천의 불줄기가 부딪치고 교차되는 광경을 보고 《저런, 저런.》 하면서 장군님의 신출귀몰한 전법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흡족한 가슴을 쓸어만지며 무심결에 담배쌈지를 꺼내다가 장군님께서 다가오시는것을 보고 도로 넣었다. 한대 붙여물고싶었지만 장군님앞이여서 감히 쌈지를 꺼낼수가 없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시지 않는줄로 알았던 장군님께서 《한대 얻읍시다.》 하며 리인묵이앞으로 손을 내미시였다. 리인묵은 머뭇거렸다.

《저는 독한것을 피워버릇해서 써래기를 넣고다닙니다.》

《좋지요. 구수한게, 어서 꺼내십시오.》

리인묵은 할수없이 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내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시퍼런 써래기를 말지에 꾹꾹 눌러 굵직하게 말아서 리인묵이한테 먼저 권하며 미안해하시였다.

《저놈들은 참 인사불성입니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기를 쓰고 달려드누만요. 그동안 불편한 점이 많았지요?》

《뭘요. 저는 그저 이번에 와서 제 눈으로 직접 많은것을 보고 알게 되였습니다. 오늘 전투도 판이 너무 커서 놀랍기만 합니다. 저는 이때까지 우리 혁명군이 이렇게 큰 전쟁을 하는줄은 몰랐습니다.》

《나라를 찾는 싸움이 간단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마라초를 받아쥐고도 피울념을 못하는 리인묵이한테 성냥불을 그어주시고나서 자신께서도 마라초를 같이 태우시였다. 제편끼리 맞붙어싸우는 적들의 총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열이 오르며 더욱 격렬해졌다.

장군님께서는 화약연기가 밤안개처럼 뽀얗게 떠오르는 전장과 달빛에 드러나는 주위의 지형을 쌍안경으로 살펴보시다가 7련대와 8련대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시키시였다.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며 피투성이가 되도록 온밤 맞총질을 하던 적들은 동틀녘에 가서야 제놈들끼리 싸웠다는것을 알았다. 눈깔이 멀었는가고 서로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 부대장들의 호통소리가 죽어자빠진놈들의 시취와 함께 골안을 진동하였다.

한시간이 지나서 대렬을 수습한 적들의 증원부대와 후면으로 달려들던 부대는 지형판단을 한 후 사령부가 있는쪽으로 달려왔다. 변두가 찢어지고 부리가 상해가지고도 그냥 달려드는 수탉과도 같은 미욱한 발악이였다.

그러나 그놈들도 보기 좋게 불벼락을 맞았다. 장군님 명령에 따라 미리 나가서 매복하고있던 7련대와 8련대가 이번에는 적들의 뒤통수를 쳤던것이다.

살아남은 적들은 완전히 혼이 빠져 퇴각하고말았다.

지휘관들이 때를 놓칠세라 장군님앞으로 뛰여왔다. 그들은 적들이 세개 부대가 달려들었다가 녹아났으니만큼 포위환에 휑하게 구멍이 났을수 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사령관동지. 인젠 빨리 포위를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련대장이 번쩍거리는 장화뒤축을 소리나게 모두어붙이며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초조히 서두르는 8련대장과 지휘관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마음을 늦구어주시였다.

《빨리 벗어나야지. 이제 마음놓고 빠질수 있는 길이 열릴거요. 동무들이 걱정하다싶이 아이들도 많은데 자신있는 길을 타야지 어방대고 모험을 해서야 되겠소?》

《여기에 눌러있기가 너무 급해서 그럽니다.》

《이거 8련대장동무가 싸움을 이겨놓고 되겐 바빠하누만. 우리가 당장 빠져나가면 종일 행군을 해야겠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길바닥에서 추석을 쇠겠소? 그럴것없이 아이들한테 추석이나 쇠주고 떠납시다.》

8련대장과 지휘관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경위중대장쪽을 바라보았다. 사령부가 빨리 적들의 포위에서 벗어나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경위중대장이 목깃단추를 끌러놓으며 장군님옆으로 다가섰다.

《사령관동지, 주위에 온통 적인데 이판에 앉아 그애들한테 추석을 쇠준단 말입니까?》

장군님께서 여느때없이 커다래진 리달경의 눈을 보고 껄껄 웃으시였다.

《여보 달경동무, 마음을 푹 놓소. 일본관동군이 백만이라니까 여기 장백땅에 뒤덮인줄 아오? 적들이 어떻게든 보복해보려고 증윈부대를 부를수 있는데 그놈들이 날아온다고 해도 여기에 당도하자면 하루는 걸릴거요. 그렇다면 저 패잔병들을 옆에 두고 뭐가 무서워서 추석을 못쇠겠소. 달경동무, 경위중대에 찹쌀이 두어말 있지?》

《예, 로상권동무가 저한테 맡기고간것이 있습니다.》

중대장이 코멘소리로 대답했다.

《대두 두말이면 얼마요? 그걸로 떡을 치면 그애들한테 많이는 못돌아가도 서너조박씩은 풍길수 있지 않겠소? 달경동무, 그 찹쌀은 강민동무네 중대에 넘기시오. 아이들한테 오래간만에 떡이나 쳐줍시다.》

경위중대장이 또 시원히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였다.

《장군님, 그 쌀은···》

《왜 그러오?》

《그 쌀은···》

장군님께서는 경위중대장이 순순히 내놓을 잡도리가 아닌것을 보고 명령조로 이르시였다.

《달경동무, 내가 시키는대로 하시오. 인민들의 지성이야 잊지 않으면 되는거지 꼭 먹어야 맛이요? 아이들한테 떡을 쳐주시오.》

그러나 경위중대장은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그런데 떡을 치다가 적정이 생기면 몽땅 버릴수 있는데···》

《경위중대장동무가 쌀걱정을 하는걸 보니 이제는 배심이 생긴게로군. 마음 푹 놓고 떡을 치오. 오늘은 달려들지 못하오.》

사실 적들은 너무 혼이 나서 혁명군사령부가 있는 위치를 뻔히 알면서도 또 무슨 된벼락을 맞을지 몰라 달려들 엄두를 못내였다.

장군님의 말씀에 따라 군수처에서 공포한 식사표에 의하여 모든 작식터들에서는 밀가루포대를 터쳐놓고 만두를 빚었다. 추석음식으로 어른들에게는 만두를 해주고 소년중대원들한테는 떡을 한가지 더 놓아주기로 락착이 된것이였다.

떡치는 분공은 경위중대가 맡았다.

장군님께 한끼 대접도 못해보고 찹쌀을 통채로 떼웠다고 흘흘하던 경위중대장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나섰다.

서쪽하늘에 진하던 자주빛노을이 희벗한 여광을 끄을고 지평선너머로 잦아버리자 사위가 어둑해지는듯 하였다. 그러더니 미구에 동이만한 달덩이가 다른켠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그때 강민이네 중대원들은 한군데 모여 무릎까기를 하고있었는데 달을 먼저 본 관식이가 희한스러워 소리쳤다.

《저게 무슨 달이냐?》

무릎을 잡고 돌아가던 중대원들은 둥근달을 일시에 바라보았다.

《추석달이다―!》

광호가 웨치자 《추석달, 추석달》 하고 저마다 탄성을 지르며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관식이는 둔덕우에 올라서서 차츰 은빛을 띠기 시작하는 불그스름한 추석달을 홀린듯이 지켜보았다.

《야, 저 달을 보니 집생각이 나는구나. 우리 어머닌 추석날이면 귀밀떡을 만들어주군 했는데.》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별치 않은 귀밀떡을 그처럼 못 잊어하며 관식이가 고향생각을 하는것을 보고 광호가 옆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광호는 그전에 제고장 특산물을 한가지씩 내댈 때 귀밀떡도 떡이냐고 무안을 주던 광호가 아니였다.

《우리 어머니두 그랬어. 죽을 쑤면서도 추석날이면 꼭 떡을 쳐주군 했지. 내가 맛있게 먹으면 돌아서서 눈굽을 찍군 했더랬어. 아마 내가 불쌍해서 그랬을거야.》

《참, 어머니는 살뜰했어. 그렇게 살뜰한 어머니들이 살아서 우리가 이렇게 총까지 멘걸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그들이 전화속에서 혁명가로 자라는 자부심을 안고 눈물많던 어머니와 고향집생각을 하는것을 보고 주위에 있던 동무들도 제나름의 추억속에 잠겼다.

추석날 지주집 선산에 몰려가서 왕밤을 털다가 매맞던 일도 생각하고 달빛이 좋아서 온밤 마을돌이를 하며 쏘다니던 일도 회상했다.

구름 한점 없는 좋은 밤이였다. 단풍이 드는 잎사귀들은 달빛에 색채를 바꾸며 바람결에 흐느적이고 아릿한 회포를 자아내며 쉬임없이 주절거리는 내물은 은구슬처럼 번쩍이였다. 가까이에서 온밤 처절한 싸움이 있었건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싶게 밀림은 푸근한 정서를 안고 부드럽게 숨쉬였다.

《식사 모엿-!》

중대작식터쪽에서 봉석의 쨋쨋한 구령이 울렸다. 넋없이 달구경을 하던 중대원들은 발길을 돌리기 아쉬워하며 작식터로 모여갔다.

언제 나오셨는지 장군님께서 작식터옆을 묵묵히 오가시는 모습이 달빛에 보였다.

기다리던 봉석이가 대원들을 작식터옆에 있는 넓은 풀밭으로 인솔해갔다. 중대원들은 풀밭에 차려놓은 저녁식사를 보자 너무 희한하여 서로 얼굴만 마주쳐다보았다. 전에는 둘러앉으면 작식대원들이 다니며 배식을 하였다. 대원들이 차례로 가서 타오기도 하고 여러 사람몫을 대야에 타다놓고 분대가 빙 둘러앉아 공기에 갈라먹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저녁은 여느때없이 중대전원식사를 미리 한곳에 차려놓았다. 매 사람앞으로 만두와 세개의 찰떡이 차례졌다.

대원들은 웅성거리며 예상치 못했던 별식을 놀랍게 내려다보았다.

군수처성원들속에 끼여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분주히 돌아가던 강민이가 중대원들이 모여오자 조용히 귀띔해주었다.

《왜 보기만하오? 오늘이야 추석이 아니요. 장군님께서 인민들이 사령부에 보내온 찹쌀로 떡까지 쳐주셨는데 맛있게 먹어야지. 미리 말해두지만 곱배기는 없소.》

강민이가 무뚝뚝한 성미에 어울리지 않게 명절분위기를 돋구느라 했지만 중대원들은 물론 송순이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울먹일뿐 누구도 풀판에 앉지 못하였다.

가까이 나와계시던 장군님께서 옆으로 다가오시여 눈물이 그렁해있는 중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누군가가 먼저 그이께서 옆에 오신것을 보고 《장군님!》 하고 목메인 소리를 했다. 그러자 앞뒤에서 눈을 슴벅이며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자, 오라구. 왜 우두커니 서서 구경만 하고있소?》

장군님께서 앞에 있는 관식이부터 앉히며 모두 앉으라고 손짓을 하시였다. 중대원들은 풀판에 둘러앉아서도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로 볼을 적시며 저가락을 쥐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 그들의 얼굴을 측은하게 내려다보시다가 젖어드는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였다.

《동무들이 오늘같은 날은 집에 있다면 어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지낼것인데 정말 안되였소. 마음같아서는 동무들을 한껏 즐겁게 해주고 무엇이건 더 해주고싶으나 오늘은 이게 전부요. 군수처에서랑 성의는 다 했지만 어머니가 해주는것만이야 하겠소. 그저 마음뿐이니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처럼 여기고 달게 먹으면 내 마음도 좀 편하겠소.》

백여명이 둘러앉은 자리가 처음 한동안은 숨소리도 없이 조용하였다. 차츰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나는듯 하더니 장군님앞에 앉은 관식이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였다.

《장군님!-》

앞뒤에서 아픈 마음으로 서계시는 장군님을 목메여 불렀다. 장군님께서 울지 말고 어서 식사를 하라고 해도 그칠줄 모르고 그냥 울먹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자신이 옆에 계시면 아이들이 식사를 할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드시였다. 그래 자리를 뜨고는 차려준것이 너무도 약소해보여 허전한 마음으로 숲속길을 혼자 조용히 걸으시였다. 초경계상태에 있는 숙영지를 한바퀴 돌아보고 비서처에 들려 그곳에 거처를 정하고있는 리인묵이를 데리고 사령부천막으로 오시였다.

얼마 안있어 사령부작식대원이 송순이와 같이 식사를 차려가지고 왔다. 그들은 장군님과손님인 리인묵이앞에 떡그릇과 국그릇을 놓아드리고 고개를 숙여보이며 조용히 물러갔다.

《인묵씨, 별로 대접할것은 없지만 끼니라도 한끼 나누고싶어서 여기로 모셔왔습니다.》

장군님께서 두손을 무릎우에 방정히 놓고 마주앉은 리인묵한테 저가락을 들려주시였다.

리인묵은 황송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그런데 이게 차떡이 아닙니까. 산에서 찹쌀을 용케 구했습니다.》

그가 신기해하는것을 보고 장군님께서 안색을 흐리시며 아픈 사연을 이야기하시였다.

《찹쌀은 로상권이라구 식량관계를 맡아보던 동무가 12도구에 나갔다가 지고왔습니다. 그 동무가 아이들때문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우리야 산에서 싸우다보니 부족한게 오죽 많습니까. 그애들을 잘못 먹일 때도 있구 굶길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식량책임을 진 상권동무가 누구보다도 속을 썩였습니다. 잔시중도 많이 하고, 길도 많이 걷고, 아이들 일로 나한테 꾸지람도 여러번 들었지요. 일하는 사람이 말을 듣게 마련이지만 이렇게 옆에 없고보니 후회가 되는군요. 참 성실한 동무였는데 추석날에 아이들한테 뭐 좀 빛다른 음식을 해주겠다고 12도구에 나갔다오다가 중상을 입고 그만 희생되였습니다. 아까운 사람을 잃었습니다.》

장군님의 갈리신 음성에 리인묵은 고개를 수굿한채 말이 없었다.

이번에 그가 사령부에 와서 직접 목격한 장군님의 무쌍한 지략과 슬기, 거대한 여유를 지닌 담력, 아이들에게 기울이시는 사랑··· 하나에서 백까지 그 모든것은 그의 상상과 리해를 초월하여 그 어떤 아득히 먼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각되기만 하였다. 아이들에게 기울이시는 사랑만 해도 그러했다. 그 사랑이 어느 지경에 이르면 적의 포위속에 틀고앉아 그애들을 위해 추석을 쇠주신단 말인가?

금방 장군님께서 추억하신 로상권이라는 사람을 두고서도 생각이 깊어졌다. 그가 부러웠다. 비록 몸은 갔지만 그는 장군님의 추억속에 살아있는 인생이였다.

리인묵은 조용히 일어나 장군님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장군님, 그러니 사람은 가고 이렇게 추석음식만 여기에 놓였구만요. 저같은 보잘것없는 인간을 이런 자리에 청해주시고 따뜻이 대해주시니 고마운 심정을 무엇이라 이루 다 말할수가 없습니다. 그런분들이 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목숨까지 바쳐가며 극진히 보살펴준덕에 우리 준오가 오늘과 같이 자랐다고 생각하니 전 한피줄을 나눈 사람으로서 송구함을 금할수 없습니다. 저는 간밤 준오가 전투에까지 참가해서 용감하게 싸우는걸 보고 혼자 울었습니다. 이 큰아버지가 한지에 버려 의지할데없이 떠돌아다니던 준오가 내앞에 그처럼 장한 모습으로 나타날줄이야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장군님께서 리인묵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히며 가볍게 나무라시였다.

《큰아버지가 돌볼 형편이 못되여 우리가 데려다 키웠으면 됐지요. 이제부터 그렇게 생각해주면 나도 기쁘겠습니다. 준오가 몸이 좀더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큰아버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장군님, 그애는 건강두 퍽 좋아졌습니다.》

《정말 그렇게 보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준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리인묵의 그 한마디가 무척 반가웁게 들려 다시금 물으시였다.

《예, 혈색두 불깃해지구 몸이 몰라보게 든든해졌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말씀이 없다가 고개를 저으시였다.

《아닙니다. 준오가 처음 왔을 때보다 나아진건 사실이지만 아직 다른 애들같지 못합니다. 여느때는 모르겠는데 잘 때 보면 알립니다. 이따금 앓음소리도 치구 얼굴에도 피기가 부족합니다.》

리인묵은 준오때문에 걱정하시는 장군님의 무거운 심정을 덜어드리고싶었으나 그럴수 없는 자신이 안타까와 그만 목이 꽉 잠겼다. 그는 장군님의 어깨에 실린 짐, 내짚으시는 걸음걸음이 어떤것이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어느 가족의 생사도 아니고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고 큰 군사를 이끌어 혈로를 헤쳐나가시는 그이께서 한 아이의 건강이 걱정되여 그토록 마음 못놓고 심려를 하시다니, 생각할수록 눈물이 났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밖을 내다보시다가 자애가 넘치는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몸에 기를 보하고 장기를 실하게 해주는데는 황기가 좋습니다. 우리 나라에 황기야 흔하지 않습니까. 그래 준오한테 황기를 좀 써보려고 길을 걸을적마다 살펴보는데 그것도 정작 찾자니 눈에 뜨이질 않는군요.》

리인묵은 종시 송진내가 올라오는 탁상에 눈물을 떨구고말았다. 장군님께서 어찌하면 준오를 놓고 조카라고 부를수조차 없는 사람과 이토록 허물없이 마주앉아 각근히 의견을 물어보시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실수가 있단 말인가?

《장군님, 저는 지금의 준오를 보는것만도 그저 꿈같기만 합니다. 준오를 제 애비가 한번 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큰아버지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번에 준오의 큰아버지와 이렇게 만나게 된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리인묵은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이처럼 관대하고 이처럼 은정깊고 이처럼 크나큰 도량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지니신 그이품에 일찍 안기지 못하고 혁명과 등진채 오랜 세월 은둔생활을 해온것이 말할수없이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생각되였다. 리성묵의 형으로서, 조선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못지키고 이때까지 헛살아왔다는것을 사무치게 통감하며 자기의 인생을 구원해주신 그이의 품에 안겨 인간으로서 다시 갱생하고싶은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더 젊었으면 이제라도 총을 메고 장군님의 대업에 한몸 서슴없이 바치련만 그럴 나이를 놓치고 헛되이 흘려보낸 인생이 그지없이 슬퍼졌다.

 

이날밤 부대는 적들의 포위를 돌파했다. 먼저 7련대의 오중흡이네 중대가 적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골라잡고 거기에 있는 불무지 십여개를 벼락같이 치며 포위를 뚫고나갔다. 한개 중대쯤은 쥐도새도 모르게 빠져나갈수 있었지만 일부러 총소리를 크게 울리며 돌파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적들은 혁명군사령부가 포위에서 빠져나간줄 알고 《놓쳤다, 놓쳤다-!》 소리를 지르며 전부 오중흡이네 중대를 추격하였다. 그바람에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한 적들의 포위진에는 5리가 넘는 공간이 휑하니 생겼다.

주력부대는 그 공간을 리용하여 총 한방 쏘지 않고 포위망에서 유유히 벗어났다.

주력부대가 전후좌우에 척후를 세우고 70여리를 행군하여 새로 숙영지를 정한 곳은 5도구밀영어방의 천암덕기슭이였다.

앞에는 물소리 맑은 5도구하의 지류가 흐르고 강줄기너머로는 무연한 수림이 바라보였다. 숙영지 좌측산기슭에는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결에 시원히 설레이는 밀밭이 있었다.

옆에 맑은 강줄기를 끼고 흐느적이는 밀밭을 본 대원들과 지휘관들은 제 고향의 평화로운 전야에 홀린듯이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간봄에 행군하다가 부대가 하루 머물렀던 곳에 다시 온것이였다. 그때는 늦봄인데도 저 밀밭은 씨를 뿌리지 못한 불모지였다. 어느 화전민이 왜놈들의 눈을 피해 부대기를 일구어먹다가 자리를 옮기며 버리고간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부대기밭이 잡초속에 묻히는것이 아깝게 생각되시여 여기에 씨를 묻고가자고 하시였다. 그때 대원들이 지고다니는 량식가운데서 움터오를 종자로 쓸수 있는것은 밀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대원들과 같이 도끼로 나무후치를 만들어 깊숙이 고랑을 째고는 음달아래서 부식토를 긁어다가 메마른 땅에 밑거름도 듬뿍 주시였다. 그런 다음 손수 밀종자를 뿌리고 소중히 묻어주시였다. 가물에 땅이 터갈라지고 광풍이 불어치는 사나운 날씨였다. 그러나 그때 땀흘리며 뿌린 씨앗이 오늘은 이삭이 시누렇게 익은 밀밭이 되여 설레인다.

련대장들, 련대정치위원들, 경위중대장과 강민이, 주력부대안의 여러 지휘관들이 간봄에 씨뿌리던 일을 감회깊이 회상하며 장군님옆으로 모여왔다.

맑고 푸른 9월의 하늘에는 빨간 고추잠자리가 높이 떴는데 바람결에 밀밭이 설레일적마다 알알이 여문 밀이삭들이 황금색으로 번쩍이였다. 수확의 계절이 바야흐로 다가오고있었다.

지휘관들은 수림이 빚어내는 들큰한 풀향기와 가슴에 스며드는 밀냄새에 취한듯이 밭머리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장군님께서도 그때 일이 생각나서 그칠줄 모르고 굼실거리는 밀밭을 흐뭇이 바라보시였다.

땅에 떨어진 씨앗은 자라올라 열매를 맺기마련이다. 이것은 거대한 자연의 움직일수 없는 생리이다.

이 밀이삭들처럼 설레이는 저 푸른 밀림 역시 대지에 떨어진 무수한 씨앗들이 해빛에 움트고 자라올라 숲을 이룬것이다. 억년을 두고 세월의 비바람에 천만거목이 진대가 되여 쓰러져도 밀림이 자기의 싱싱함을 잃지 않고 영원히 푸른것은 거기에 새 움이 끊임없이 돋아나기때문이다.

장군님께서는 혁명투쟁도 자기 위업을 끝까지 이룩하자면 저 밀림과 같이 자기 주력군의 대오를 언제나 푸르게 하는 후비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색을 이으시였다.

그러자면 혁명은 부단히 자기 대오에 씨앗을 뿌려야 한다.

저 준오와 소년중대원들은 우리 혁명이 준엄한 투쟁속에서 뿌린 귀중한 씨앗들이다.

가꾸고 키우기는 헐치 않았다.

로상권은 저애들을 위해 피를 흘렸다. 목숨을 바쳤다. 강민은 또 얼마나 속을 태우며 뛰여다녔던가. 얼마나 많은 대원들과 지휘관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혈육같이 보살펴주었던가. 그 보람이 있어 저애들은 그대로 버려두었으면 십년이 걸려도 배우지 못할 혁명의 진리를 몇달사이에 터득하고 의지를 단련하며 몰라보게 자랐다. 저애들을 사령부로 데려올 때 그처럼 빨리 철들줄이야 그처럼 짧은 기간에 하나같이 끌끌하게 혁명의 전투력으로 성장할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사람이란 키우기에 달렸다. 저 혁명의 씨앗들은 세월과 더불어 전진하는 대오속에 억세게 뿌리를 내리고 우리 혁명의 밀림을 영원히 푸르게 할것이다.

장군님께서 깊은 상념에 잠겨계실 때 저쪽 맞은편 밭머리에서는 강민이네 중대원들이 밀려와서 이런 곳에서 어떻게 밀이삭이 패였을가고 놀라와하며 떠들어대였다. 강민이가 자기 중대원들쪽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장군님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장군님께 무슨 말씀을 올릴듯 하더니 허리굽혀 밀이삭을 안고 거기에 볼을 가져다대였다. 8련대장이 한동안 그를 지켜보다가 은근한 목소리로 나직이 물어보았다.

《여보, 근래에 와서 강민동문 아주 사색적인 인간이 되여가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오?》

강민은 잠자코 있다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예, 무엇이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이 밀밭을 보니 어쩐지 저 밭머리에 서있는 우리 중대원들을 다시 보게 되는군요.》

강민의 의미심장한 대답을 듣고 련대장은 최근 수개월사이 자기 눈앞에서 급격히 성격변화를 일으키고있는 이전의 기관총소대장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금의 강민은 한때 전투를 잘하는 싸움군으로만 소문났던 젊은이가 아니였다. 그의 사색적이고 진중해진 언행에서는 오랜 구대원의 체취와 함께 혁명가의 세련된 기품, 무게가 느껴졌다.

주위에 있던 지휘관들도 그들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고 느끼는바가 커서 묵묵히 서있을 때 장군님께서 깊은 생각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간봄에 여기에 밀종자를 뿌릴 때는 계절이 나빴지. 가물고 바람이 불고 날씨가 사나왔소. 그래서 밀이 자라겠는가 걱정했는데 이렇게 열매가 무르익었소. 동무들이 맨손으로 씨를 묻어준 수고를 땅은 몰라주지 않았소. 그 일은 참 힘이 들었지.··· 그러나 동무들, 그보다 더 힘든것은 혁명의 씨앗을 가꾸는 일이요. 땅에 묻은 종자는 땀으로 가꾸지만 혁명의 씨앗은 피로써 자래워야 하오. 바람은 사납소. 우리는 이때까지 어려운 싸움을 해왔고 현재도 매우 간고한 투쟁을 하고있지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렵고 보람있는 일은 미래를 안아키우는것이요. 앞으로 나라를 찾으면 해방된 조국땅에 태묻은 아이들은 다 학교와 궁전에서 떠받들려 자라겠지만 저애들은 불길을 헤치며 폭풍속에서 키워야 하오. 미래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고통으로 여길수도 있소.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을 락으로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겨야 하오. 인간은 미래에 살아야 하오!》

지휘관들은 아득히 펼쳐진 광막한 수해를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안고 바라보았다. 고산지대의 시원한 바람에 실려 밀림이 파도같은 물결을 일으키며 솨- 솨- 설레이였다. 밀림의 이 장엄한 설레임은 그들의 가슴에 마치도 새로운 높이에서 혁명의 철리를 일깨워주는것만 같았다. 이리하여 그들은 백배로 넓어지는 가슴에 새로운 세계가 들어앉으며 심장이 천배로 뜨거워지고 시야가 만리에 트이는것을 느끼며 이 땅에 영생하는 푸른 밀림에 대하여, 그것을 자래우는 빛과 열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였다. 이러한 빛과 열은 자연계에서는 오직 태양만이 가질수 있으며 인간세상에서는 오직 세계를 덥힐수 있는 심장과 우주를 밝힐수 있는 빛을 가진 위대한 인간만이 지닐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