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6


 

제 6 장

6

 

의식을 차린 뒤에도 리인묵은 자기가 어디에 와있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다. 자리가 온돌바닥같지 않아 만져보니 따뜻한 구들목이 아니였다. 대신 와삭거리는 나무잎사귀가 손에 잡혔다. 머리맡에 드리운 뻣뻣한 갈색천을 만져보고야 여기가 천막안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간밤 포승을 진채 총멘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산길을 오래 걸었다는 몽롱한 기억이 살아났다.

날이 밝고 기상구령이 울리자 천막안에서 쏟아져나오는 군대들을 보았을 때 리인묵은 정신을 펼쩍 차렸다. 간밤 체포될 때 격하게 울린 강민의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빨찌산숙영지에 와있는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출입문으로 비쳐드는 새벽빛에 어렴풋이 드러나는 제 몰골을 살피며 저린 광대뼈를 만져보았다. 민지주네 집앞에 어푸러질 때 험하게 상채기가 난 얼굴에 누군가 와서 약을 발라주고 가제천을 붙인 자리가 손끝에 알렸다. 당장 처단할 사람을 치료는 왜 했는지 모를 일이였다.

리인묵은 이제 자기가 수많은 유격대원들앞에서 판결을 받고 혁명의 이름으로 처단될 생각을 하니 억이 막혔다. 운명이 왜 이리도 기구한지 그는 또다시 달랠길 없는 비탄속에 잠겨들었다. 하루밤사이에 눈확이 꺼지고 얼굴은 침울한 애수의 그늘속에 움직이지 않았다.

기상구령이 울린지 얼마 안있어 숙영지는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넓은 산판에 꽉 들어찬 유격대원들이 내물에 나가 세수도 하고 무기청소도 하고 숙영지주변을 거두며 마른 나무도 해왔다. 무엇인가 지시하는 소리, 알았다는 챙챙한 대답소리, 노래소리, 웃음소리에 어울려 칼도마소리까지 가락맞게 들려왔다. 밀림속에 이처럼 생활을 펼친 거창한 인간세계가 있을줄은 몰랐다.

천막앞을 끝없이 오가는것은 유격대원들만이 아니였다. 유격대원들처럼 군복을 입은 소년들도 많았다. 전에 윤석찬은 길가에서 준오이야기를 할 때 유격대가 아이들도 수태 끼고다니는것 같다는 말도 하였다. 그때는 윤석찬이도 믿을수 없고 또 있을법한 일도 아니여서 무슨 소린가 하였는데 와보니 사실이였다.

어느새 밥을 지었는지 해가 떠오를무렵에는 벌써 여기저기서 식사모엿구령이 울렸다. 단발머리에 군복을 단정히 입은 애젊은 녀대원이 리인묵이한테 식사를 가져왔다. 수수밥 한그릇과 산나물무침을 그앞에 놓아주며 어서 식사를 하라고 권하였다. 마감까지 그래도 사람대접을 해주는 관용이 고맙게 생각되였으나 리인묵은 가져온 밥그릇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먹고싶지 않았다. 닥쳐올 운명만을 기다리며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한식경이 지났을 때 마침내 처벅처벅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헛기침을 울리며 천막에 들어선 사람은 강민이였다.

그는 리인묵을 호송해올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옆에 밀어놓은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왜 식사를 하지 않소?》 체포할 때는 당장 철알을 안길듯이 서슬이 푸르던 강민이가 무뚝뚝하긴 해도 례의를 갖추어 물어보는 소리에 리인묵은 다소 얼떠름해졌다.

《고맙소만 생각이 없소.》

《나와 같이 갑시다.》

《이디로말이시오?》

《가면 알게 되오.》

(날 끌어다가 어떻게 하자는건가?)

그는 모든것을 단념해버리자 이제는 그 어떤 강한 자극을 받아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강민이가 여전히 푸접없이 몇발자욱 앞서 걸으며 그를 안내해갔다.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다음 일과를 준비하고있던 유격대원들이 밤사이에 나타난 사민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리인묵이 안내하는대로 몇개 천막앞을 지나 커다란 장풍가까이 이르렀을 때 강민은 옷깃을 바로잡았다. 모자를 바로썼는지 군모채양까지 만져보고 장풍안으로 먼저 들어갔다가 나와서 무뚝뚝이 말하였다.

《들어가시오.》

리인묵은 여기가 유격대 취조실쯤 되는줄로 알았다. 차라리 어서빨리 다가오기를 바라던 최후의 시각이 박두했음을 의식하며 그는 장풍안으로 들어섰다. 밖에서 들어와 처음에는 장풍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탁상우에 큼직한 지도를 펼쳐놓고 앉았던분이 자리를 이시는것 같았다. 리인묵은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지 못하여 그분의 눈길을 륙감으로 느꼈지만 마주보지는 못하였다. 그저 마땅한 심판이 내려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지막기원으로 몸을 지탱하며 눈을 감은채 서있있다.

그분은 죄인처럼 얼굴을 숙이고있는 리인묵을 잠시 바라보시다가 가까이 앞으로 나오시였다.

《리성묵동무의 형입니까?》

리인묵은 어딘가없이 무게가 느껴지는 그분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리듯이 눈길을 들어보였다.

앞에 와선분은 20대의 젊으신분으로 안광에 류달리 예지와 영채가 번쩍이였다. 첫인상에 벌써 어딘가 범상치 않으면서도 인자한 기품이 안겨왔다. 옆에 목갑총을 찼는데 군복은 수수하고 평범하였다.

그분은 리인묵을 옆에 있는 통나무걸상에 앉히며 말씀하시였다.

《원로에 오시느라고 수고했습니다. 내 김일성입니다.》

순간 리인묵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통나무의자우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앞의 일을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이전에 강민이가 장사군행색을 하고 나타나서 김일성장군님께서 준오형제를 찾으신다고 했을 때에도 리인묵은 일본 백만대군과 맞서 싸우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는 유격대의 령수가 아무러면 철부지들때문에 일부러 사람을 띄웠을가고 생각하였다. 자기가 조카애들을 집에서 내보낸 사실을 알고 와서 엄포를 놓는 소리들뿐이여서 장사군청년이 김일성장군의 령을 받고 다닌다는것 자체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거덜이 난지 오랜 양조업을 붙잡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다가 적들의 손아귀에 들어 목숨을 내던지기로 작정한 자기가 오늘은 만백성이 전설적인 영웅으로 우러르는 김일성장군의앞에 서있는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 들은게 아닌가?)

리인묵이 어쩔바를 모르며 넋나간 사람처럼 장군님을 바라보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역시 옆구리에 목갑총을 찬 지휘관이 들어왔다.

그는 어디서 났는지 일본군수비대장교처럼 번쩍거리는 뻘건색 장화를 신었다. 리인묵은 굉장히 높은 지휘관이 들어온줄 알았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지휘관이 장화뒤축을 소리가 나게 가져다붙이며 보고를 하였다.

《사령관동지, 명령하신대로 저의 8련대에서 나갔던 정찰대가 돌아왔습니다.》

《알겠소. 돌아가보오. 련대장동무의 보고는 좀 있다가 들읍시다.》

《알았습니다!》

장화신은 지휘관은 손을 군모채양옆으로 끌어올려 경례를 하고 지체없이 돌아서 나갔다.

리인묵은 소스라쳐 놀랐다. 자기앞에 서계시는분은 김일성장군이 분명하였다.

그러니 김일성장군께서 준오형제를 찾으셨다는것도 사실이 아닌가?

순간 성묵이와 준오때문에 번민하던 일이며 적들의 박해로 고통스럽게 보낸 나날이 떠올라 리인묵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였다. 장군님께서 집 한채 없는 산속에 계시면서도 관심을 두고 찾으신 제 혈육을 돌봐주지 못한 량심의 가책과 죄의식, 그리고 왜놈의 손에 어지럽혀진 지금의 처지가 용서를 바랄수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만민이 나라의 존망을 의탁하고 우러르는 장군님앞에서는 설사 목숨이 끊긴다 해도 여한이 없을것 같은 생각이 들며 눈물을 자아낸것이였다.

《간밤 우리 사람들이 포승을 지워왔는데 노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올시다. 제 인륜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면목이 없지만 저지른 죄까지 잊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번뇌와 고통의 흔적처럼 멍들고 상처입은 리인묵의 얼굴을 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셨다. 길숨한 얼굴륜곽과 의젓한 몸가짐이 신통히 동생과 비슷한데가 있었다. 전사한 그의 동생 성묵이를 보시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는 희생된 전사를 생각하며 아픈 추억에 잠겨계시다가 리인묵이와 마주앉으시였다.

《이렇게 만나고보니 성묵동무생각이 납니다. 동생이 전사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까?》

《예, 집에 들렸던 유격대원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렇지, 강민동무가 전하고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였다.

조금후 그이께서는 방안의 서먹한 공기를 가시듯이 출입문을 열어놓으시였다.

《듣자니 이전에 동생하고 사상문제를 가지고 자주 언쟁을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리인묵은 얼굴이 화끈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예, 저는 그때 동생이 왜놈들과 싸우러 가겠다는걸 극력 반대했더랬습니다.》

《허,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집에 뛰여든 성묵의 동지들은 도와주었단 말이지요?》

《제가 뭘 도와줄수 있었겠습니까.》

《최춘국이란 사람을 압니까? 내 듣기에는 그 사람이 경찰에 쫓겨 죽을 고비에 들었을 때 감춰준 일이 있다던데.》

《예- 전 또, 그런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믿구 뛰여들어온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리인묵은 그 일을 잊어버린지 오랜지라 지난 생활의 쪼각처럼 심상하게 추억하였다. 지금 그가 처한 처지로 보아서는 그만한 일에라도 매여달려 자신을 분칠할듯도싶었지만 조금도 그런 기색이 없었다.

《인묵씨, 지금 거리에는 당신이 조카애들을 공산당씨라고 내쫓았다는 소문이 돈다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인묵은 고개를 떨구었다.

《장군님, 전 그보다 더한 소문이 돌아도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인생이 각박하다보니 조카녀석들을 쫓고 장군님앞에 이렇게 죄인으로 나서게 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리인묵의 컴컴해진 낯빛을 지켜보면서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지러진 그의 얼굴에 괴로움은 비꼈지만 눈물은 없었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허무에 잠겨 사실이상으로 죄과를 과장하면서도 리인묵의 말에서는 고통받는 인간의 진심이 어느정도 느껴졌다. 그것은 리인묵의 고백과는 다른 방향으로 장군님의 생각을 끌어갔다.

《인묵씨, 내 딱히 모르긴 하겠는데 혹시 이렇게 된 일이 아닙니까? 준오가 댁에 와있다가 뭔가 노염을 타고 큰아버지 모르게 나가버릴수도 있었을것 같아서 그럽니다.》

리인묵은 그이의 물음에 놀란듯 얼굴을 들었다가 도로 숙이였다.

《어서 마음놓고 말씀하십시오. 오래동안 맘고생을 했던 문제인데 나와 마주앉아 풀면 찾아온 보람도 있지 않습니까.》

《장군님, 고맙습니다. 아무튼 그애들이 내 집에 있다가 나갔으니 내가 쫓은거지요. 놈들의 감시가 하도 심하다보니 량주간에 걱정스러운 소리를 했더랬는데 글쎄···》

《알만합니다. 준오 그녀석이 눈치가 지내 역고 팩한데가 있습니다.》

리인묵은 오늘까지 누구도 알아주려고 하지 않던 자기의 마음속고민을 장군님께서 그처럼 리해해주시자 갑자기 없던 설음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장군님께서는 드디여 자리를 일어 천막안을 조용히 거닐다가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렇다면 놈들한텐 왜 불리워다녔습니까?》

《놈들이 조카애들을 어디다 빼여돌렸는가고 협박하기에 집에서 내보냈다고 둘러쳤는데 그만 말꼬리에 잡혀 하루아침에 신세를 망쳤습니다. 제가 바보구실을 했습니다. 놈들이 제국신민의 표본이라면서 반공연설을 강요했지만 목숨이 귀한줄밖에 모르는 무지렁이다보니 딱 자르질 못하고 번민속을 헤매다가 여기까지 끌려오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주구라는 소문이 돌았군요.》

《아마 그런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장군님, 제가 왜놈의 주구로야 되겠습니까.》

리인묵은 비관과 절망에 빠져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는 오직 진실을 말하려는 결곡한 량심의 호소가 울리였다.

《나는 그 말을 믿습니다. 성묵동무는 언젠가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 형님은 완고하지만 나쁜짓은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묵동무가 제 형을 잘못보지 않았습니다.

다 원쑤놈들탓이지. 그동안 혼자서 마음고생을 하자니 얼마나 괴로왔겠습니까.

인묵씨, 재삼 말씀드리지만 세상이 인묵씨를 비난해도 우린 성묵동무 말을 믿고싶습니다. 인묵씨는 금방 우리한테 끌려온것처럼 말했는데 사실은 내가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인묵씨가 원쑤놈들의 함정에 빠져 생명이 위태롭게 되였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겠습니까. 간밤 우리 동무들이 체포형식을 취한데 대해서는 량해하여주시오.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자니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리인묵이가 너무나 뜻밖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하여 멍청한 눈길로 지켜보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신 표정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거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리해해주셔야겠습니다. 그리구 우린 지난 여름에 행군을 하다가 성묵동무의 묘옆을 지나왔더랬습니다. 주인이 없어 풀대만 무성했을 전사의 묘에 들리지 못하고 지나치자니 아픈 마음을 달랠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도 난 인묵씨 생각을 하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생의 묘도 알려줄겸 한번 마주앉아 이야기라도 나누고싶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풀대가 무성해지고 평토가 되여버리면 그때는 일부러 찾자고 해도 성묵동무의 묘를 찾아내지 못할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린 성묵동무마저 무주고혼으로 만들고싶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 광야에는 많은 동무들이 무주고혼으로 잠들어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 조선사람들이 이역에 와서 원한의 피를 뿌리고 쓸쓸한 황야에 묻히였습니까. 난 그 아픔이 늘 가슴에서 내려가질 않습니다.》

리인묵의 주름잡힌 얼굴로는 어느새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장군님께서 자기를 체포해온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친히 대원들까지 보내시였다는것을 깨달은 그는 엎드려 절을 드리고싶었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은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고 눈물만이 앞을 가리웠다. 어떻게 되여 세상천지를 굽어보는 장군님께서 땅바닥에 기여다니는 이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을 위해 친히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실수가 있단 말인가? 장군님의 시야에서 볼 때 내라는 인간이 도대체 뭐기에, 내 인생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이런 관심과 은정을 돌려주실수 있단 말인가?

제 한몸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아름차서 리인묵은 이 하해같은 은혜가 바로 자기한테 베풀어졌다는것을 어떻게 리해하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이것이 다 죽은 성묵이를 잊지 못하고 성묵의 자식들을 잊지 못하시는 장군님의 의리에시 나온 사랑이란것만은 똑똑히 의식하였다. 희생된 전사들과 그 자식들에게 돌려주시는 장군님의 사랑이 이 미욱하고 보잘것 없는 인간마저도 사지에서 건져낸것이였다.

장군님께서 내 동생, 내 조카애들을 이렇게 생각해주시는데 한피줄을 나눈 나는 이제 무슨 면목으로 여생을 살아갈수 있단 말인가? 원쑤놈들의 손아귀에 잡혀 몸부림속에 그처럼 애착을 느꼈던 나의 생명이 이런것이였다면 왜 진작 떳떳이 버릴 생각을 못했던가 하는 가책에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장군님, 우리 성묵이는 이 형을 믿었지만 저는 형구실을 못했습니다. 여기 와서 부대에 있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부끄러워 뭐라고 말씀을 올릴수가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큰 군사를 이끌고 산에서 왜놈들과 전쟁을 하면서도 그 숱한 아이들을 품어 키우시는데 저는 제집 쓰고 등덥게 자면서 피를 나눈 조카애들 하나 거두어주질 못했습니다.》

리인묵은 아픈 가슴을 짚고 말을 잇지 못하였다.

장군님께서 오열을 참으며 끅끅거리는 리인묵의 손을 따뜻이 잡으시였다.

《인묵씨, 그러자니 마음의 고통인들 오죽했겠습니까. 그게 어디 인묵씨탓입니까. 다 세월탓이지. 인묵씨가 부대에 와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나한테는 그런 고충이 없은줄 압니까. 나도 한때는 사정이 정 딱해서 그애들을 떼여놓고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자기를 리성묵의 형으로 대해주실뿐만아니라 흉금을 터놓고 자신에게 있있던 고충까지 솔직히 말씀하시는것을 보고 리인묵은 어느덧 그이의 소탈하고 인자한 인품과도량에 끌리며 자기의 죄의식마저 잊어버리고 이름할수 없는 감격이 가슴에 무둑히 서려드는것을 느꼈다.

《예, 말씀을 듣고 장군님께서 딱한 경우를 한두번만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갑니다. 제 살아보니 이 세상은 정만 가지고는 못살 세상입니다. 인간질을 하자면 죽어야 하고 살자면 개가 되여야 하는 세상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뼈에 사무친 인생체험을 피를 짜듯이 괴롭게 이야기하는 리인묵의 그 한마디에서 이때까지 그가 겪은 고통과 번민을 백마디의 설토보다 절절히 느끼실수가 있었다.

《장군님, 제 이때까지 인간답게 살지 못했습니다만 한가지 소청이 있습니다. 전 이전에 강민씨한테서 우리 성묵의 자식들을 장군님께서 찾으신다는 말을 전해들은 일이 있는데 그애들이 집을 나간 후로는 아직 소식을 모릅니다.···》

장군님께서는 리인묵의 심정을 리해하고 걸음을 문뜩 멈추시였다.

《그럼 준오소식을 아직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예, 윤석찬이란 사람한테서 그애들이 유격대를 따라갔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믿을만 한 소리가 못되였습니다. <협화회> 리사가 저한테 바른말을 해주었을리 있습니까?》

《인묵씨, 그건 사실입니다. 준오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

리인묵은 너무도 놀라 통나무의자에서 떨어질번 하였다. 산같은 격동의 파도가 밀려드는 그 세찬 충격을 감당해낼수가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뒤이어 준오가 부대로 업혀들어오게 된 사연을 차근차근 들려주시였다. 그리고는 리인묵이가 안절부절 못하는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인묵씨, 조금 기다리십시오. 내 준오를 데려오겠습니다.》

장군님께서 차차 만나겠다는 리인묵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이시였다.

리인묵은 자기가 나가서 만나겠다고 말씀올리고싶었으나 장군께서는 벌써 천막을 나서시였다.

사령부가까이에서 서성거리던 강민이가 장군님앞으로 달려나왔다.

그는 자기가 체포해온 리인묵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몹시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장군님, 그 양조업자를 민지주놈의 집에서 처단하고말걸 괜히 데려왔습니다. 준오가 가긍해서 보지 못하겠습니다.》

《처단하다니? 동문 무슨 소리를 하고있소?》

《예?》

《준오를 큰아버지와 만나게 해야겠는데 어서 가서 그애나 데려오오.》

강민은 분명 리인묵을 체포해올 임무를 받았던것만큼 얼떠름해서 쳐다보았다.

장군님께시는 강민의 당황해하는 심정을 눈치채고 준오 있는데로 함께 발길을 옮겨가시였다.

《강민동무, 지금 왜놈들은 우리 조선사람들을 피줄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는 <제국>의 노예로 만들려고 획책하고있소.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준오 큰아버지처럼 죄없는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도 서슴질 않소. 이런 때 우리까지 그를 함정에 들어가라고 내버려둬야 하겠소? 내가 보기엔 준오 큰아버지가 량심은 있는 사람이요. 놈들의 강요에 순순히 응할 생각은 아니였단 말이요.

우리는 세월이 아무리 험해도 우리 인민이 지니고있는 조선사람의 넋, 조선사람의 얼굴, 그들이 가지고있는 인간적인 모든것을 원쑤들이 짓밟고 유린하지 못하도록 찾아주고 지켜주고 키워주어야 하오. 왜놈들한테 나라는 빼앗겼지만 조선사람의 넋까지 뺏길수는 없소. 인간을 지켜야 하오.》

장군님의 음성은 나직이 울리였다. 그러나 마디마디 자애가 담긴 간곡한 말씀에서는 자기 인민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인간존엄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가 가슴을 흔들며 절절히 안겨왔다.

강민은 비로소 리인묵을 체포해오게 하신 장군님의 심정과 의도를 알아차리고 뜨거워진 가슴을 안고 준오한테로 뛰여갔다.

준오는 천막구석에 박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간밤에 큰아버지를 체포해왔다는 말을 덕만이한테서 듣고 줄창 원망과 불안속에 잠겨있었다. 동무들 보기가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 준오는 큰아버지가 반역행위를 하고 불잡혀와서 당장 처단당하는줄로 알고있었다.

강민이가 천막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준오를 겨우 끌어내자 장군님께서 구겨진 그의 옷깃을 바로잡아주며 말씀하시였다.

《준오야, 너 큰아버지가 오신걸 알고있니?》

《예.》

《지금 사령부에 계신다. 어서 가서 만나보아라.》

준오는 말없이 잠자코 서있더니 눈물이 글썽해지며 말씀드렸다.

《만나고싶지 않습니다.》

《왜?》

준오는 고개를 떨구고 대답이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준오가 큰아버지에 대한 뜬소문을 들은것 같은 짐작이 가시였다.

《준오야, 너 누구한테서 큰아버지에 대한 말을 들은게 아니냐? 큰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어서 가서 만나봐라.》

《싫습니다.》

《아니, 인제는 철이 다 든줄 알았더니 너 그게 무슨 소리냐?》

준오는 발길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큰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함께 어린 순애를 데리고 한지잠을 자며 고생하던 일, 그애를 살려보려고 발버둥치다가 땅속에 묻던 일이 떠오르며 설음이 울컥 북받쳐올랐다.

장군님께서 어느새 눈물방울이 굴러떨어진 준오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이시였다.

《준오야, 큰아버지가 널 만나보려고 왔는데 이러면 되느냐? 큰아버지가 너희들이 집에서 나간 뒤에 맘고생하신 일을 생각해야지. 너희들때문에 큰아버지가 이때까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알기나 하구 이러느냐. 넌 큰아버지를 원망할게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훌쩍 떠나온데 대해서 잘못했다고 사죄를 해야 한다. 아무러문 너의 큰아버지가 너 하나 거두어주질 못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이래선 못쓴다. 너의 큰아버지는 네가 알고있는것보다 훨씬 좋은분이다.》

장군님께서 한참 타일러서야 준오는 만나보겠다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준오야, 너 조금이라도 큰아버지를 섭섭하게 해드려서는 안된다.》

그이께서는 사령부문앞까지 데려다주시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귀에 대고 가만히 타이르시였다.

준오는 그때야 마음을 다잡고 군복깃을 다시 바로세우며 사령부안으로 들어갔다.

큰아버지와 준오의 눈길이 마주쳤다.

순간 리인묵은 환각을 일으켰다. 네가 성묵이 아니냐고 자칫하면 죽은 동생이름을 부를번 하였다. 군복입은 준오가 어쩌면 그리도 제 아버지를 닮았는지 동생의 얼굴을 보는것만 같았다.

준오는 장군님께서 이르신 말씀을 생각하고 군모를 벗으며 인사를 차렸다.

《큰아버지, 먼길에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오냐··· 준오로구나, 네가 준오가 옳구나!》

리인묵은 마중나와 준오의 두팔을 그러안듯이 붙잡고는 군복을 입은 그의 름름한 차림새와 해볕에 탄 얼굴이며 다부져보이는 어깨를 뜯어보고 쓸어보았다.

《음, 정말 몰라보겠구나. 군복은 언제 입었느냐.》

《예, 지난 7월에 입었습니다. 큰아버지,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나야 무슨 고생···》

리인묵은 준오의 의젓하고 어른스러워진 모습이 놀랍기만 하여 보고 또 보았다. 자기앞에 서있는 지금의 준오는 그전날의 목이 길고 허약하던 소년, 설음과 노여움 많고 성미가 메마르던 괴퍅한 준오가 아니였다.

큰아버지가 울먹하여 자기를 끝없이 쳐다보는것을 느끼자 어느덧 준오의 눈에도 차츰 눈물이 글썽하니 고였다. 준오는 감격과 괴로움이 한데 섞인 큰아버지의 눈물어린 얼굴을 마주보느라니 이분이 자기에게는 세상에서 그중 밭은 피줄, 아버지의 형님이라는 혈친의 감정이 되살아났던것이다.

《큰어머니도 몸성히 계십니까?》

준오는 큰아버지앞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을 슴벅이며 큰어머니와 여러 4촌들의 안부를 물었다.

《오냐, 잘 있다. 네 이야기를 자주 한단다.》

《누나, 동생들도 잘 있어요?》

리인묵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네가 죽을 고비에 들어 나를 찾아왔을 때 큰아버지구실을 못하구 내보냈는데 네가 이젠 내 안부를 묻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목이 메였다. 준오가 다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애야, 그런데 왜 순애가 보이지 않느냐?》

《···》

《순애가 왜 오질 않느냐?》

《···》

《이애, 왜 대답이 없니? 순애가 어디 있느냐?》

《큰아버지··· 순애는··· 그애는 죽었어요.》

《으응?》

《그애는··· 제가 건사를 잘못해서 죽었습니다.》

준오는 어린 순애를 죽도 변변히 못먹이고 끌고다니다가 왜놈들의 손에 죽인 이야기를 눈물을 흘리며 들려주었다. 리인묵은 마치 넋나간 사람처럼 준오의 머리우 어딘가를 초점없이 바라보며 꽉 다문 입귀를 실룩거렸다. 그러던 리인묵은 갑자기 헉― 소리를 내며 준오를 붙안고 어깨를 들먹이며 꺽꺽거리다가 마침내는 소리를 내여 울음을 터뜨렸다.

《준오야 그애는 내가 죽였다. 이 큰아버지가 죽였다.―》

준오는 큰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슬퍼하는것을 보니 불쌍하게 죽은 순애생각이 나서 더욱 눈물이 나왔다. 그러나 준오는 강잉히 울음을 참으며 큰아버지를 위로했다.

《큰아버지, 그만하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오냐, 네가 있으니 됐다.》

리인묵은 쓰린 가슴에 준오를 붙안으며 오열을 그치지 못하였다. 순애는 비록 잃었지만 제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준오를 보니 동생 성묵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 죽어있은 목숨은 리인묵이 바로 자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하루밤사이에 자기 신상에서 일어난 변화에 도저히 익숙될수가 없어 자꾸만 눈을 슴벅거리였다.

간밤까지만 해도 나갈데 없고 물러설데 없는 인생의 마지막기슭에 불우한 운명을 붙이고 고통에 몸부림친 자기가 가슴에 지울수 없는 멍울을 남긴채 눈앞에서 영영 사라진줄로 알았던 준오를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사령부에서 만나고있다.

그러나 리인묵은 이자리가 어떻게 마련되였으며 한 인간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해 여기에 하루를 더 머무른다는것이 부대가 처한 지금의 형편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하여 미처 다 알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