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4


 

제 6 장

4

 

숙영지주변을 돌아보던 정찰대가 포수차림인 특무 한놈을 체포해온것은 로상권이를 묻은 그날 낮이였다. 심문결과 특무는 동만유격근거지에서 처단당한 악질주구의 아들로서 관동군선무공작반에 흡수되여 지금 숙영지로부터 20리밖에 진을 친 이시하라부대에 적을 두고있다는것들이 판명되였다.

특무의 진술에 의하면 관동군사령부는 최근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하강구일대에 진출한것을 알아차리고 대병력을 이동시키고있으며 이미 도착한 병력들을 곳곳에 배치하였을뿐아니라 수많은 특무들을 사방에 풀어놓았다는것이다. 이렇게 그물을 치고 길목을 지키다가 어디서든 혁명군사령부와 주력부대를 포착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부대호상간 긴밀한 련합으로 공격할 계획이므로 빠져나갈길이 막혔다는것이였다.

특무의 진술내용은 로상권이가 사령부에 급히 보고해달라던 자료와 상통하여 리달경은 날이 어둡기바쁘게 망원초로 올라갔다. 적들이 포위진을 쳤다면 혹시 불무지라도 발견할수 있기때문이였다.

망원초에서 사방을 둘러보던 리달경은 너무도 놀라운 광경에 부딪쳐 움직이지도 못하고 선자리에 굳어졌다. 눈에 보이는 불무지만 해도 한두개가 아니였다. 하늘이 흐리여 서쪽 수림우에 비껴있던 잔광이 사라지고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지자 사방 수십리안팎에 있는 불무지가 전부 위치를 드러내였다. 육안으로 셀수 있는 불무지만 해도 수십개나 되였다. 로상권이 적정을 알릴 때까지도 특무의 진술을 들을 때까지도 그는 적들이 이렇게 많은 병력을 집결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령부가 나가있는 서남쪽에는 불무지가 더 빼곡이 들어앉은것 같았다.

리달경은 정황이 급변한이상 사령부를 보위해야 할 자기가 속수무책으로 숙영지에만 박혀있을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망원초에서 돌아온 리달경은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경위중대를 이끌고 사령부를 찾아나가기로 결심하였다. 숙영지가까이에는 아직 별다른 적정이 없었으므로 경위중대 한개 소대만 떨궈놓기로 했다. 리달경이 여느때보다도 심사숙고하여 세운 행동계획을 강민이한테 말했을 때 그 역시 생각이 많던차여서 다른 의견이 없었다. 숙영지에 남아있는 성원들은 형세를 지켜보다가 어떻게 하든 빠져나갈수 있으니 마음놓고 어서 떠나라고 등을 떠밀었다.

리달경은 밤중에 중대를 인솔하고 출발하였다. 처음부터 수림을 곧추 꿰질러서 서남쪽으로 강행군해갔다. 사령부와 떨어져있은 시간은 이틀밖에 안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한세기가 지나간것 같이 길어보였다. 최현부대장이 이 사실을 알면 굵은 장미를 화살처럼 뻗치고 당장 몸에서 권총을 떼겠다고 달려올것만 같았다. 그것을 생각할수록 마음같이 달리지 못하는 더딘 걸음을 재촉하며 경위중대장은 회중시계를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때 리달경은 주력부대가 사령부와 같이 급히 숙영지로 돌아오고있다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서남쪽으로 뻗은 물줄기를 따라 앞서가던 경위중대척후가 물줄기를 끼고 올라오던 주력부대척후대와 갑자기 맞다들린것은 얼마후였다. 척후로부터 주력부대를 만났다는 보고를 받자바람 리달경은 급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주력부대의 척후대장은 서진국소대장이였다. 땀으로 미역을 감다싶이한 리달경은 달빛에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고 서진국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진국동무, 어떻게 된 일이요? 부대가 어디로 가고있소?》

《숙영지로 돌아오는길입니다.》

《뭐요? 그게 무슨 소리요?》

《아니, 왜 그럽니까?》

리달경은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말을 재촉했다.

그제야 무엇인가 눈치챈듯 서진국은 사령관동지의 명령으로 부대가 지금 숙영지로 돌아가는길이라고 대답하였다. 부대는 계획대로 관동군련대를 유인해다가 치고 12도구쪽으로 진출하던중 박덕산이 사령부에 파견한 련락원을 만났다. 박덕산은 장군님께 사령부가 포위된것 같다는 매우 심중한 보고를 해왔다.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적들의 병력과 기동방향에 대하여 상세히 적은 박덕산의 서면보고를 받아보고 장군님께서는 적들이 지금 혁명군사령부가 이 어방에 나와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멀리서부터 포위환을 형성하고있다는것을 직감적으로 느끼시였다. 적들의 기도를 미리 알게 된 이상 서두르면 놈들의 린접사이 공간을 타고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갈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적들이 포위환을 형성하고있는 숙영지로 행군을 명령하시였다.

추석을 이틀 앞둔 둥그런 달이 구름속에서 빠져나오자 물줄기를 따라 5리가까이 늘어선 행군대렬이 거뭇하게 드러났다.

그 긴 대오옆을 지나 장군님께서 앞으로 걸어나오시였다. 리달경은 멀리서부터 걸어오시는 장군님을 륙감으로 알아보고 달려갔다.

군복소매를 걷어올리신 장군님께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경위중대장을 의아쩍게 바라보시였다.

《웬일이요? 왜 이렇게 밤중에 떠났소?》

《사령관동지, 적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적정이야 이미 사람들을 띄워 보고하지 않았소?》

《그때보다 사태가 더 험해졌습니다. 사방에 온통 불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여 달려오는길이요?》

《···》

《수고했소. 그런데 경위중대장동무, 소년중대가 왜 보이질 않소?》

장군님께서 중대장뒤에 다가선 경위대원들을 둘러보며 물으시였다.

《그들은 숙영지에 있습니다.》 하고 리달경은 데리고올 형편이 못되여 대책을 취해놓고 급히 떠나온 사정을 서둘러 말씀드렸다. 부대지휘관들이 장군님옆으로 모여왔다.

그들은 리달경이 사령부가 걱정되여 밤중에 달려오는길임을 알고 반갑게 맞으려다가 안색이 근엄해지신 장군님을 보고 열려던 입을 다물었다.

《무슨 소리요? 떨궈두고오다니?》

리달경은 장군님 음성이 어딘가 준절히 울린것 같아 긴장을 느끼며 재삼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마음을 놓으십시오.》

《여보 달경동무, 어떻게 마음을 놓겠소? 동무도 적정을 알고있지 않소? 동무들이 우리한테 오려면 그들도 다 데리고와야지 떨궈두고오면 어떻게 하오? 우리만 살구 그애들이 잘못되면 도대체 우리가 살아서는 무엇하겠소?》

그이의 음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마디마디 아픔을 담고 절통하게 울렸다.

《빨리 갑시다!》 하고 짤막하게 행군명령을 내리신 장군님께서는 묵묵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목적대로 적을 치고 오는길이지만 장군님의 걸음은 가볍지 못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무겁던 그이시였다. 사실 박덕산이 장군님께 올린 보고는 여간 심중한것이 아니였다. 그가 보내온 서면보고에는 적들의 기동상황에 대한 정보자료만 적혀있지 않았다. 무심히 대할수 없는 한 인간의 운명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전사한 리성묵의 형이며 준오의 큰아버지인 리인묵에 대한 문제였다.

부대는 자정이 훨씬 지나서 숙영지에 당도하였다. 도착하는 그길로 장군님께서는 소년중대천막을 찾으시였다. 그이께서 지휘관들과 같이 강민이를 앞세우고 먼저 들리신데는 3소대천막이였다. 잠든 대원들의 얼굴을 전지불로 하나하나 비쳐보시였다. 자는 모습들이 여느때같지 않았다. 배낭을 머리에 베고 총은 꼭 그러안고 잤다.

《강민동무, 웬일이요?》

《적들이 달려들면 피값이라도 하겠다구···》

장군님께서 전지불을 끄고 말없이 어둠속에 한동안 서계시였다.

이어 그이께서 들리신 곳은 옆에 있는 군수처천막이였다. 등잔불이 꺼불거리는 어설픈 천막안에 로상권이가 지고온 부피 큰 짐이 덩실하게 그대로 놓여있었다.

《웬 공책이요?》

장군님께서는 포장한채로 있는 공책짐부터 내려다보시였다. 짐옆을 뜨지 못하고 여태 슬픔에 잠겨있던 군수처의 한 대원이 뜨직뜨직 말씀드렸다.

《로상권동지가 12도구에 나갔다가··· 소년중대원들에게 한권씩 나누어주겠다고 구해온 공책입니다··· 찹쌀도 지고왔습니다. 12도구 부녀회원들이 장군님께 대접하라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짐을 지고온 주인은 어디 갔소? 상권동무가 왜 보이지 않소?》

대원은 고개를 떨구며 더 말씀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장군님께서 옆에 서있는 강민을 돌아다보시였다. 강민이도 말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왜들 그러오? 상권동무가 어디 있소?》

장군님께서는 그가 가까이에 있기라도 하듯 천막안을 여기저기 살피시였다. 경위중대장이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장군님옆으로 다가섰다. 그는 진작 숙영지로 돌아오는길에장군님께 보고를 올리려고 했지만 그이의 마음이 여느때없이 무거우신것 같아 미처 말씀드리지 못하였다.

《사령관동지··· 상권동무는··· 희생되였습니다.》

《뭐요?》

순간 장군님의 안광이 번쩍하고 빛을 뿜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뒤에 서있는 지휘관들도 그 말이 곧이들리지 않아 놀라운 빛으로 리달경을 바라보았다. 방금이라도 로상권이가 《날 가마에 넣으소.》 하며 웃는 얼굴을 쑥 내밀것만 같았다.

경위중대장은 큰죄를 지은 사람처럼 해쓱한 얼굴로 로상권이 12도구에 다녀오다가 적들과 조우하여 중상을 당하고 숙영지에 업혀들어와서 숨진 전말을 더듬거리며 가까스로 말씀드렸다.

《그래 공책만 남기고 상권동무는 영영 우리의 곁을 떠나가버렸단 말이요?》

장군님께서는 절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고 말씀하시였다. 힘겨운 싸움속에서도 쉴줄 모르던 그이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쉬여버린것 같았다.

무거운 정적에 천막안은 고요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움직일줄 모르고 로상권이 지고온 짐을 묵묵히 내려다보시였다. 문밖에서 소리없이 타는 우등불이 컴컴한 수림을 어룽어룽 비쳤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천막을 나서서 우중충 솟은 이깔나무밑을 괴롭게 한참 거니시였다.

지휘관들과 경위중대장이 장군님을 위로라도 할듯이 조용히 옆으로 다가섰을 때 비애에 젖은 그이의 목소리가 침중히 울렸다.

《동무들, 우리가 어떤 동지를 잃었소? 이제는 누가 살림살이 잔걱정과 시름을 맡아안는단 말이요?》

《사령관동지···》

장군님께서는 비통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며 손을 얹은 이깔나무끝을 올려다보시였다.

경위중대장이 그이께로 다가가 로상권이 묻힌 곳을 나직이 알려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알았다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고 리달경이 안내하는 곳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리달경은 자꾸만 어디엔가 걸채여 엎어질번 하면서 장군님을 언덕길로 안내하였다. 로상권의 오랜 전우들인 지휘관들이 군모를 벗어쥐고 장군님뒤를 따라왔다.

가문비가 드문드문 서있는 비탈길을 오르자 둔덕이 나타나고 구름속에 든 달빛이 생흙내나는 로상권의 묘를 희미하게 비쳤다. 방울지는 송진이 눈물처럼 흐르는 표말앞에 장군님께서 군모를 벗어쥐고 서시였다. 아픈 추억을 남기고간 전사의 생애를 돌이켜보듯 오래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계시였다.

장군님께서 눈길을 드시였을 때 지휘관들은 그이의 눈에 물기가 번쩍이는것을 보았다.

《동무들, 잊지 맙시다. 부대의 어려운 살림을 맡아가지고 군소리 한마디없이 우리를 위해, 혁명을 위해 일신을 묵묵히 바쳐온 성실한 혁명가를 영원히 잊지 맙시다.》

장군님께서는 쓰러진 전사를 고이 잠재우시려는듯 묘앞에 세운 표말을 쓰다듬으시였다. 사랑하는 전사를 잃을 때마다 받아안는 상실의 아픔이 혈전의 만리길에 멍울이 든 그이의 가슴에 또하나의 씻어버릴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때 경위중대장은 로상권의 묘가까이 있는 망원초에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한발자국 물러섰다. 대화재의 불길같은 충천하는 불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던것이다. 처음은 잘못본줄 알고 다시 살펴보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적들의 불무지였다. 동서남북 어디나 불이였다.

경위중대장은 장군님옆에 다가가 초저녁보다 불무지가 오륙십개는 더 많아졌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그 말을 듣지 못한듯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그처럼 성실하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잊을수 없는 자국을 남기고간 전사를 하루밤이라도 조용히 추모하고싶으시였다. 다른 일거리를 생각하고싶지 않으시였다.

밤이 지샌 아침에야 장군님께서 주력부대안의 지휘관들을 전부 사령부로 부르시였다.

망원초에서는 날이 밝자부터 연방 보고가 들어왔다. 간밤에 보이던 불무지대신 사방에 연기가 오른다는 보고였다. 그것은 적들이 밥짓는 연기였다. 적들은 자기네 위치를 숨기지 않고 공공연히 드러내고있었다. 이쪽에 포위되였다는것을 일부러 알림으로써 사기를 꺾으려는 심리전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대병력이 사방에 전개하였다는것만은 명백하였다.

《사령관동지, 빨리 이곳을 떠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의 행동방향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장군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8련대장이 말씀드렸다.

《옳습니다. 떠야 합니다. 그렇지만 동무들, 하루만 참읍시다. 바삐 처리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초조한 빛이 어린 지휘관들쪽에 지시가 아니라 량해를 구하듯 말씀하시였다.

지휘관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부대가 적의 대포위에 들어 당장 여기를 뜨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촉급한 시각에 이보다 더 바쁜 일이 있다는것이 놀라왔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박덕산이 보내온 서면보고를 꺼내놓고 지휘관들에게 읽어주라고 전달장에게 이르시였다.

박덕산은 보고에서 적들의 기동상황에 대하여 먼저 적고나서 준오의 큰아버지 리인묵이 문제에 대하여 상세히 언급하였다. 그는 리인묵이가 어떤 사람이며 그를 추악한 목적에 리용하기 위한 경찰당국과 《토벌》사령부의 모략에 대하여 보고하면서 아래와 같은 제기를 하였다.

《사령관동지, 적들은 지금 혁명을 반대하는 악선전에 리인묵을 끌어들이려고 책동하고있습니다. <협화회>에 들어가있는 우리 공작원 윤석찬동무에게 책임지워 그를 <대일본제국>에 충실한 <량민>의 표본으로 내세우자는것입니다. 적들은 어떻게 되여 유격대에 간 동생과 리념상으로 결별하고 집에 찾아온 조카애들까지 쫓아버렸으며 <제국>에 충실한 량민이 되기로 작정하였는가를 인민들앞에 이야기하라고 리인묵에게 강요하고있습니다. 거기에 <협화회> 리사로 공작하고있는 윤석찬동무까지 말려들게 되였습니다. 윤석찬동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막다른 처지에 빠지게 되였습니다. 적들의 위협과 강요에 못이겨 리인묵은 굴복하고만것 같습니다. 리인묵은 어느 하루도 경찰서에 드나들지 않는 날이 없으며 지금 거리에서는 그를 왜놈들의 주구라고 내놓고 손가락질하고있습니다.

당장 대책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제 그가 적들이 요구하는대로 악선전을 하면 혁명이 입는 손실은 헤아릴수 없이 클것입니다.

이곳 조직에서는 주구가 된 리인묵을 지체없이 당장 처단하자고 주장하고있습니다. 리인묵이로 말하면 우리의 전우인 리성묵의 형입니다. 그 사람을 우리 손으로 처단한다는것은 하나의 비극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처단하지 않으면 혁명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책이 묘연한 신중한 문제이므로 사령관동지의 결론을 받아 처리하려 합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잠시 지휘관들을 둘러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무겁게 한숨을 쉬며 눈을 지그시 감으시였다.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적구에서 일하기가 그처럼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신의 애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비치지 않던 박덕산이 생각다 못해 사령부에 보고를 드린데서 벌써 장군님께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시였다. 리인묵이에 대해서는 생각할수록 분하시였다.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혁명의 성실한 후원자가 되여야 할 준오의 큰아버지가 거리에서 주구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량민의 표본》으로 적들의 선전공세에 끌려다니게 된것이 무엇보다도 통분하시였다. 사람이 어떻게 살았으면 인간으로서 자기를 버리는 그 추악한 세계에 빠져들게 되였는지 리해하실수 없었다. 용서할수 없는 본인의 행위로 보나 당장 대책을 취하지 않을수 없는 막다른 경우로 보나 지하조직에서 그를 처단하는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주장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시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전사한 리성묵이를 봐서도 앉은자리에서 경솔하게 결론을 내릴수가 없는 문제였다.

《동무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장군님께서 지휘관들의 의견을 물으시였으나 누구도 선뜻 말씀올리지 못하였다. 입을 꾹 다물고 앉아있는 지휘관들의 얼굴에 긴장한 빛이 어려있었다. 한 인간의 운명에 판결을 내리는 시각이였다.

《왜 말들이 없소?》

장군님께서 대답을 재촉하며 지휘관들을 돌아보시였으나 어느 누구도 침묵을 깨뜨리지 못하였다. 이런 때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누구에게나 명백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난처한 기색을 지으시며 리인묵이에 대하여 어느정도 리해가 깊은 강민이를 바라보시였다,

《강민동무가 좀 말해보우. 동무도 처단하자는 의견이요?》

고개를 숙이고있던 강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사령관동지···》

한마디한마디를 천길나락에서 끌어올리듯이 갑자르며 그는 말씀드렸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판결은 지어진듯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서신 장군님께서 침통한 안색으로 사령부안을 거니시였다. 지휘관들도 앉아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장군님께서 내리실 결론을 기다렸다.

그이께서는 잠시 더 생각해보시다가 강민이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좋소. 그럼 강민동무한테 한가지 임무를 주겠소. 오늘중으로 동무가 나가서 리인묵이를 체포해오시오.》

《사령관동지··· 아무래도 처단할자를 여기까지 끌고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을 하나 처단하는데 똑똑히 알아보지도 않고 할수는 없습니다. 체포해오되 유격대에서 붙잡아간것을 적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윤석찬동무가 안전하게 공작할수 있습니다.》

강민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지금 준오의 큰아버지 리인묵의 문제가 당장 판결을 요하는 긴박한 일이라는것을 그도 절감하고있었지만 적들이 대포위진을 시시각각으로 좁히고있는것만큼 한시바삐 여기를 떠야 하는 부대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