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3


 

제 6 장

3

 

제국의 명줄을 건 대본영의 전략이 강력한 배후타격을 받게 되자 각 지구 《토벌》사령부로는 성이 독같이 오르고 극도로 초조해진 우에다대장으로부터 련일 벼락같은 추궁전화가 날아왔다.

그러나 사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일성장군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은 련속 광활한 지역에서 적의 배후를 맹렬히 타격하여 관동군사령부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하였다. 며칠전에도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주력부대의 한개 구분대가 묘령에서 전투를 벌려 수백명의 관동군을 살상하고 박격포 1문, 중기관총 1문, 경기관총 3정, 보총 200여정, 탄약 수만발을 로획하였다.

그러던 9월중순의 어느날, 장백-림강일대에서 과감한 류동전을 벌리던 주력부대가 9도구에서 70리 떨어진 수림속에서 숙영하고있을 때였다. 숙영지로부터 서남방향으로 30리되는 지점에 관동군부대가 금방 도착하여 진을 치고있다는 적정에 대한 보고가 사령부로 들어왔다.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곧 주력부대에 출동준비를 갖출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였다. 그러시고는 사령부안에 걸려있던 전투가방을 메고 행전을 새로 치시였다.

리달경은 그이께서 친히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려고 준비하시는것을 보고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7련대장 김주현이 남긴 부탁이 귀전에 쟁쟁히 살아났다. 지휘원, 병사대회가 있은 직후 소부대를 책임지고 성진, 단천, 함흥 지방에서 활동하고있는 국내조직들과 련계를 맺고 군사정치활동을 벌릴데 대한 임무를 받고 떠나던 날 김주현은 리달경을 붙들고 이렇게 신신당부했던것이다.

《사령부를 부탁하오. 박덕산동무가 련락원을 통해 장군님께 보고올린 내용을 들었는데 지금 적들은 전면<토벌>을 준비하고있소. 그 어느때보다도 경위중대장의 책임이 크오. 이제는 장군님께서 전장에 나가 직접 전투를 지휘하시는 일은 극력 삼가하도록 옆에서 만류해야겠소.》

리달경은 그 절절한 부탁을 잊을수가 없었고 또 이러한 때에 더욱 경각성을 높여야 하는 자기의 본분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행전을 치시는 장군님옆으로 다가서며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가시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행전을 마저 치고나서 목갑총에 만탄창이 되여있는가를 확인해보시였다. 거뿐한 차림으로 일어서시며 바람이라도 쏘이러 나가는듯 한 기분으로 웃으시였다.

《경위중대장동무, 걱정마오. 적들의 총알이 날 피해간다는걸 동문 아직 모르오? 지휘원, 병사대회때 내놓은 방침이 있잖소? 우린 아무리 힘에 겹더라도 더 많은 적을 끌어다가 이 조만국경일대에 얽어매놓고 소탕해야 하오. 그래야 놈들이 중일전선에 병력을 더 투입할수 없소. 그것이 바로 적들의 <속전속결>기도를 파탄시키고 우리 혁명을 전진시키는것이요.》

경위중대장은 더 말씀을 드려봤댔자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나직이 한숨을 쉬며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생각에 잠기신 눈길로 그를 바라보다가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숙영지에 남아야겠소.》

《예?》

《싸움이 헐치 않을것 같애서 소년중대는 데리고가지 않겠소. 그러니 동무네 경위중대는 여기에 있으면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그애들을 지켜야겠소. 보초도 더 늘이고 어느때보다도 경계조직을 잘해야겠소.》

사령부보위만 해오던 경위중대장에게는 전혀 생각지 않던 임무였다. 그러나 리달경은 몸에 밴 습관대로 차렷자세를 취하며 선자리에서 대답하였다.

《알겠습니다.》

해가 떠오르자 장군님께서 주력부대를 거느리고 숙영지를 떠나시였다.

경위중대장은 장군님께서 이르신대로 보초소도 더 늘이고 숙영지두리의 요소요소에 기관총을 세문이나 배치하였다. 그리고나서 방금 장군님을 바래드린 숙영지어구를 나서는데 그이께서 되돌아오시였다.

(혹시 계획을 변경시키신것이 아닌가?)

경위중대장은 그래주셨으면 하는 기대를 안고 마주 달려갔다.

《달경동무, 이제 며칠 있으면 추석이지?》

《예?》

뜻밖의 물음에 리달경은 어리둥절한 빛을 띠웠다. 그는 음력으로 오늘이 며칠이던지 인차 생각나지 않았다. 간밤에 떴던 달이 둥그래가던 모양을 상기하고서야 추석이 정말 며칠밖에 안남았다는것을 깨달았다.

《동무도 보았겠지. 소년중대원들이 전에도 고향생각을 하던데 이제 보름달을 보면 더할거요. 그들이 섭섭해하지 않게 추석쇨 준비를 좀 해야겠소. 군수처에만 맡기지 말고 잘 도와주시오.》

《사령관동지,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오.》

경위중대장은 발길을 돌리신 장군님께서 멀리 산굽이를 돌아가실 때까지 움직일줄 모르고 서있었다. 큰 싸움을 앞에 두고 떠나시던 장군님께서 순 그 일때문에 되돌아오시였단 말인가? 전령병을 보내여 전해도 될 일을 자신께서 직접 되돌아오시여 간곡하게 부탁하신 장군님의 심정을 생각하니 눈굽이 젖어들어 그길로 달려가 로상권이와 마주앉았다.

로상권은 밤알같은 수판알을 한참 뚜꺽거리더니 부대가 지금 가지고있는 식량으로도 그때까지 대고 추석을 쇨수 있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식량공작은 더 안해도 되겠지만 다른 준비가 좀 있어야겠다고 하면서 생각을 터놓았다.

《아이들을 위해 각별히 마련하는것이니만큼 색다른것이 있어야겠는데··· 그건 우리 군수처에 맡기십시오.》

《그러지 말고 무엇을 더 구해오고싶은지 그것만 우리한테 알려주시오.》

장군님으로부터 직접 부탁을 받은 리달경은 그 일을 군수처에 양보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로상권의 승벽은 여간 아니였다.

《경위중대야 그애들을 잘 지키면 됐지 혼자 다 걷어안겠습니까? 욕심두 너무합니다. 추석준비는 응당 군수처가 맡아할 일인데 주인은 손털고 구경만 하란 말인가요?》

《허 참.》

리달경은 몸을 뒤로 제치며 머리를 저었다.

색다른 물품을 구해오는 일은 끝내 로상권이가 떼여맡았다. 50리만 나가면 12도구가 있는터여서 기름, 설탕도 사들이고 조미료도 구해오기로 작정하였다.

로상권은 군수처성원들을 몇명 데리고 이른새벽에 출발하였다. 부지런히 걸은탓에 일행은 한낮이 되기전에 벌써 12도구에 들어섰다. 적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제각기 분담을 맡고 헤여져서 콩기름도 한초롱 사고 설탕 이십여근과 식초, 고추가루 같은 조미료도 사들였다.

한낮이 기울무렵 약속한 장소에 모여 가늠해보니 그만하면 아이들한테 충분하지는 못해도 섭섭치 않게 추석음식을 차려줄수 있을것 같았다.

로상권은 대원들에게 짐을 지워 먼저 보내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왔던길에 윤석찬의 도움을 받아 공책도 백여권 구해가지고갈 생각이였다.

로상권이 공책을 구입하기로 마음먹게 된것은 요사이 자기네 중대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밤마다 자지 않고 짬짬이 황로지로 공책을 매는 강민의 모습을 띄여본 후부터였다.

군대야 싸움만 잘하면 되지 공부는 해서 뭣하느냐고, 나라를 찾은 다음 허리띠를 풀어놓고 한꺼번에 하겠다고 하면서 공부라면 도리머리부터 젓던 강민이였다. 그러던 사람이 장군님으로부터 글자를 배워 까막눈을 뜨고 기관총소대장으로 자라났으며 오늘은 중대원들을 공부시키겠다고 밤마다 공책을 매는것을 보았을 때 로상권은 여간 놀라지 않았다.

물론 로상권은 강민이가 중대원들을 공부시키기로 한것이 제손으로 제강을 짜서 중대정치상학에 출연하면서부터 생긴 결심이라는것까지는 모르고있었다. 그때 강민은 장군님으로부터과업을 받고 몸살을 하다싶이 한주일이상 신고하여 《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 제목으로 제강을 만들었다. 장군님께서 한줄한줄 짚어가며 손질을 해주신덕에 상학은 지휘관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지휘관들은 강민이가 소년중대로 파견되여가서 정치지도원을 겸하더니 사람이 판 달라진다고 여간 감탄하지 않았다.

그날 지휘관들과 같이 상학을 친히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제강을 제손으로 짜서 들고나가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앞으로 상학할 때 쓰라고 자신께서 사용하던 회중시계를 강민이한테 주시였다.

그후부터 강민은 자신이 공부를 꾸준히 할뿐아니라 뼈심을 들여 중대원들을 공부시키기로 결심하였던것이다.

로상권은 윤석찬에게 백바위골아지트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아지트로 갔다.

윤석찬은 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하기 바쁘게 무작정 아지트안으로 잡아끌었다.

로상권은 만나자바람 서두르는 그의 초조한 행동에 어정쩡해서 이끄는대로 아지트안으로 들어갔다.

《잘 왔소. 상권동무, 제때에 잘 왔소!》

윤석찬은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로상권을 급히 등불앞에 앉혔다. 침착하고 행동이 온유한 편인 윤석찬의 거동이 전같지 않은것을 느낀 로상권은 그의 안색을 살폈다. 윤석찬의 얼굴에는 분명 뜻밖에 동지를 만난 기쁨만이 아닌 초조와 불안에 가까운 흥분과 그 어떤 번민의 그늘이 비껴있었다.

로상권은 들리게 된 사연을 간단히 말하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윤동무,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에두를 시간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윤석찬은 숨기지 않고 터놓았다.

《상권동무, 그때 내가 동무네한테 무슨 부탁을 했었소? 그 부탁에 귀를 기울였으면 일이 이렇게까지는 엄중하게 되지 않았을거요.》

로상권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요?》

《그때 내가 뭐라구 했소? 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에 부대로 돌아가면 그 소년들문제를 장군님께 잘 말씀올리라고 했었지요. 그만큼 신신당부했는데 후에 들려오는 소식을 보니 내 부탁은 전하지도 않았더군요.》

《원, 그럴수가 있소. 그건 오해요. 왜 전하지 않았겠소.》

《모를 소리요. 말씀을 올렸는데 일이 그렇게 되였단 말이요? 그애들을 오히려 사령부로 전부 데려다가 중대까지 무어주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일이 그렇게 되는통에 지금 적들이 어떤 모략을 꾸미고있는지 알기나 하오?》

윤석찬은 이 며칠사이 줄곧 신경을 긴장시켜온 불안과 지체할수 없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우미야마의 생일잔치에서 알아낸 적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말해주고 자기 생각을 덧붙이였다.

《그전에 아이들이 있던 그 후방밀영 있지 않소. 적들은 그 밀영만 찾아내도 사령부를 찾는 줄을 잡을수 있다고, 그 줄만 잡으면 큰 작전을 벌릴수 있다고 열을 올렸소. 그러니 일이 이렇게 된 오늘이야 더 말할게 있소. 지금 적들은 짐밖에 될수 없는 술한 어린이들을 사령부가 직접 끼고다닌다는것을 알아내고 이때를 다시 올수 없는 기회로 보고있소. 상권동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수습하겠소?》

로상권은 가슴이 얼어드는것 같았다.

《여보, 윤동무, 놈들이 무슨 새로운 기동이라도 있소?》

《지금 혜산쪽에서 넘어온 적들, 이도강쪽에 있던 적들이 전부 이쪽으로 밀려오고있소. 우리 사령부가 이 근방에 있다는걸 알아차리구 군사를 집중하는것 같소. 글쎄 당신들이 내 부탁을 제대로 전해드리지 않은 결과가 지금 어떻게 되고있소?》

윤석찬은 아직도 로상권이네가 그때 자신이 부탁한것을 사령부에 그대로 전하지 못한탓에 일이 이렇게 되였다고 노여움을 터뜨렸다.

로상권은 변명할수 없었다. 소년중대를 무을 때도 이런것을 예견 못한것은 아니지만 정작 사태가 이렇게 되고보니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난감하였다.

《윤동무, 잘 알겠소. 빨리 사령부에 가서 진상을 그대로 보고드리겠소. 다른 일은 없소?》

《기본은 그게요.》

로상권은 심각해진 눈길을 들어보였다.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있단 말이요?》

《뭐라구 할지, 그건 내 개인과 관련된 문제여서···》

윤석찬은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기 힘들어하였다. 로상권은 스쳐지날수 없었다. 지하공작원인 윤석찬이에게 있어서 자기자신과 관련된 일로 번민하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벌써 개인문제로만 될수 없다. 또 그에게 번민이 있다는것을 안이상 동지적인 의리로 보아서도 알아보지 않을수 없다.

《도대체 무슨 문제요? 내가 알아서는 안될 일이요?》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하기 힘들어하오?》

《사실은··· 너무 난처해서··· 너무도 해결책이 묘연해서 그러오.》

윤석찬은 땀이 나서 번들거리는 이마로 손을 가져갔다. 로상권은 입술이 말라드는것을 느꼈다. 윤석찬의 신상에 무엇인가 대단히 좋지 않은 일이 생긴것이 분명하였다.

《상권동무도 리인묵이 그 사람을 알지요?》

《우리 준오의 큰아버지말이요? 그 사람이 경찰서출입이 잦다더니 어떻게 됐소?》

《경찰서에서 회유하자고 자주 불러간것 같은데 인제는 그 사람도 굴복한것 같은 눈치요. 지금 거리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여론이 여간 나쁘지 않소. 왜놈의 주구라는거지요.》

로상권은 저도모르게 한숨을 쉬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리성묵의 형이 주구가 되다니?··· 헌데 그 사람문제와 윤동무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거요?》

윤석찬은 번민으로 시달리는 가슴에 무겁게 차있던 납덩이를 쏟아놓듯이 말을 꺼내자 죄다 털어놓았다.

《글쎄 들어보오. 내가 <협화회> 리사라구 날더러 그 사람을 직접 끌고다니면서 혁명을 반대하는 선전을 하라는거요. 그한테 연설문도 만들어주면서 유격대에 간 동생과 결별하고 집에 찾아온 동생의 자식들까지 내쫓고 <량민>이 된 리인묵이처럼 제국에 순종하구 협력하는 길만이 살길이라는것을 크게 선전하라는거요. 못하겠다고 물러서면 저놈들은 아마 당장 날 잡아다가 죽이자구 할거요. 그렇다고 제 한몸이 아까와 적들의 요구에 응해야겠소? <리사>로 공작을 계속하겠다구 그런 요구까지 들어줘야 하오? 아무리 공작이 중요해도 그런 요구야 어떻게 들어주겠소? 상권동무,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옳소?》

로상권은 입을 꾹 다문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일이여서 무엇이라고 조언을 줄수가 없었다. 곤경에 처한 윤석찬의 번민이 리해되고도 남았다. 해결책이 묘연하다는 말도 백번 수긍이 되였다.

《윤동무, 여기서는 어떻게 하기로 했소? 그렇다구 걱정만 하구 있을수야 없지 않소. 어느쪽을 택하든 무슨 대책이 서야 할게 아니요.》

윤석찬은 신음소리에 가까운 탄식을 하며 더욱 억이 막히는 대답을 하였다.

《조직에서 토론을 했는데 그 대책이라는것이 주구로 된 리인묵이를 처단하자는거요. 그길밖에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겁니다.》

《여보, 준오의 큰아버지를 우리가 처단한단 말이요?》

《내가 한몸을 내댈셈치고 놈들의 요구를 거절할 결심도 말해봤지요. 하지만 동지들의 의견이 이 문제는 내 한몸을 내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거요. 내가 그 일을 거절한다고 해도 리인묵이가 살아있는 이상에는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인다는거지요. 더우기 리인묵의 선전이 미칠 후과를 생각해도 그렇구 공작상 필요로 봐도 그렇고 혁명의 근본리익과 관련되는 문제이기때문에 여기서는 주저가 있을수 없다는겁니다.》

윤석찬은 괴로움을 털어놓은것이 무슨 변명처럼 느껴져서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로상권은 그것을 변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듣고보니 그길밖에 딴도리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로상권은 무겁게 입을 열며 물었다.

《그래 이 문제를 박덕산동무도 알고있소?》

《알고있지요. 내가 <토벌>사령부에서 알게 된 적들의 움직임과 리인묵이에 대한 문제도 다 보고했소.》

《박덕산동무는 어떻게 하자고 합디까?》

《그도 매우 난처해하면서 신중히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했는데 아직 결론이 없군요.》

진중한 성미처럼 신중한 사고력으로 사태의 본질을 깊이 꿰뚫어볼줄 알며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에는 우유부단을 모르고 과단성있게 움직이는 박덕산이까지 결론을 못내리고있다는 사실은 문제의 난점과 심각성을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로상권은 한시바삐 돌아가고싶은 조바심을 느꼈다.

밤 2시경에 윤석찬의 안내를 받아 12도구 뒤산으로 갔을 때 거기에는 로상권이가 지고갈 짐이 벌써 준비되여있었다. 한짐에 꾸린것은 포장한 백여권의 공책과 두말의 찹쌀이였다. 찹쌀은 부녀회조직에서 장군님께 보내드리겠다고 각별한 성의로 마련해두었던 지성품이였다.

로상권은 이른새벽에 윤석찬의 바래움을 받으며 귀로에 올랐다. 짐은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짐보다 더 무거운것은 불안을 안고가는 로상권의 마음이였다. 적들이 이 일대로 계속 집결하고있다면 큰 싸움이 붙을것은 틀림없다. 지름길을 타기 위해 별을 보고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그는 부지런히 산판을 헤쳐나갔다. 사령부에서 미리 대책을 취하게 하자면 빨리 돌아가 보고하여야 했다.

한걸음이 새로운것만큼 적들과 조우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십리도 못가서 길이 막힐줄은 그도 미처 예견하지 못하였다. 그가 처음 들은것은 말울음소리였다.

그는 말울음소리가 난 방향으로 귀를 기울이고 서있다가 가로막은 관목숲을 헤치고 앞을 바라보았다. 불무지와 천막이 보이고 류동보초가 움직이는 모습이 지척에 바라보였다. 누런 군복, 혁띠우에 찬 탄갑, 일본군병사다. 《토벌대》숙영지다.

불무지는 한둘이 아니였다. 수림사이로 볼수 있는 불무지만 해도 스무개가 넘었다. 적들이 산속에 꽉 들어찼다.

로상권은 에돌아가기 위해 방향을 꺾어 북동쪽으로 나갔다.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등마루가 길게 보이는 산발이 나타났다. 산발을 넘어야 안전한 길을 탈것 같았다.

그러나 무거운 짐에 눌리워 비탈길에 넘어지고 굴고 하며 숨이 턱에 닿아 산마루에 올라섰을 때 그는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길바닥이 대낮같이 환하였다. 꼬리를 문 군대차들이 전조등을 켜고 새벽길을 질주하였다. 어디서 오는 적들인지 12도구옆을 지나 북쪽으로 대이동을 하고있었다.

(벌써 작전이 시작되였단 말인가?)

판을 크게 벌리며 덤벼드는 적들의 움직임을 부대에 알리기전에 무슨 일이 생길것 같아 로상권은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었다.

산마루를 타고 서북쪽으로 달리던 그가 등성이가 끝나는 곳에 이르러 비탈길을 내려섰을 때 날이 희붐히 밝았다.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고 갈증까지 나서 한숨 돌리고싶었지만 그럴 경황이 못되였다. 로상권은 무거운 짐을 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길을 축내지 못하는 자신을 저주했다.

내물이 나타나자 갈증에 타는 목을 추기려고 물가로 다가갔다.

그런데 아래쪽에서 별안간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서랏!》

로상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런 군복에 철갑모를 눌러쓴 적병 십여명이 로상권이쪽으로 달려오고있었다. 저희네 부대 숙영지주변으로 정찰을 나왔거나 아니면 수색대로 나온 놈들같았다.

로상권은 물을 걷어차며 다급히 내물을 건넜다. 내가의 버들숲에 몸을 감추고 얼마간 웃쪽으로 달리다가 옆으로 잇달린 산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등뒤에서 날아온 총탄이 픽픽 나무에 박히며 아츠러운 소리를 질렀다. 생포하려고 위협사격을 하는것 같았다.

《서라!》

또다시 고함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번에는 겨누어쏘는지 총알이 귀뿌리를 스쳤다.

《네놈들이 나를 어째보겠다구? 흠···》

그는 피끗 뒤를 돌아보았다. 놈들은 발뒤꿈치를 물려고 점점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등뒤에서 또다시 총소리가 터졌다.

순간 거대한 물체가 허벅다리를 후려치듯 하는바람에 그는 억새와 가시나무가 얽힌 덤불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적들은 덤불옆을 지나 숲이 무성한 웃쪽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추격은 면하였으나 몸을 일으킬수가 없었다. 부상은 치명적이였다. 적탄이 왼쪽 허벅다리를 뚫고나가며 동맥을 끊어버린것 같았다. 적삼을 찢어 상처부위를 졸라맸지만 흐르는 피는 멎지 않았다.

부대숙영지까지는 아직 30리가 남아있었다. 중상당한 몸으로는 도저히 가낼것 같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가 가지 않으면 사령부에 이 적정을, 이 엄중한 사태를 알릴 사람이 없다. 윤석찬이한테로 되돌아가 다른 사람을 띄울 생각도 해보았으나 단념하고말았다. 그래도 이 길로 곧장 가는편이 빠를것 같았다. 일신에 받는 고통이 아무리 참기 어려워도 한걸음이라도 빨리 갈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하였다.

그는 굵직한 싸리나무를 잘라 지팽이를 만들었다. 지팽이에 곱절 무거워진 몸을 실으며 걷기 시작했다. 쇠꼬치로 쿡쿡 찌르는것 같이 상처가 쏘고 무서운 동통에 뼈가 쪼각이 나서 부서져나가는것 같았다. 초인간적인 의지와 힘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이겨낼수 없는 고통이였다.

십리, 또 십리, 수림속에 피방울을 뚝뚝 흘리며 한걸음 한걸음 걷던 그는 마침내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수가 없었다.

 

마중나오던 부대동무들이 숲속에서 무거운 짐을 진채 쓰러져있는 로상권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숨결이 경각에 달한 사람이였다. 오는길에 얼마나 피를 흘리였는지 얼굴이 백지장같이 하얗고 말도 하지 못하였다. 기기는 또 얼마나 기였는지 팔굽이 나간 군복은 땀과 피에 젖어있었다.

로상권은 의식이 몽롱한채 동지들의 등에 업혀 숙영지로 들어왔다.

군의처에서 구급처치를 받고 정신을 차리자 그는 옆에 지켜앉은 경위중대장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경위중대장동무, 날 사령부로 데려다주시오. 장군님께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사방에 온통 적인데···》

로상권은 숨이 차서 혈떡거리며 적정을 서둘러 이야기했다. 당장 장군님한테로 달려가서 보고드릴것을 요구했다.

경위중대장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사령부가 걱정되였다. 당장 달려가고싶었지만 숙영지를 뜰수 없었다. 그는 질정을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중대로 달려가 걸음이 빠른 대원 세명을 불러서 사령부에 적정을 보고드릴데 대한 임무를 주어 급히 떠나보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군의처로 뛰여갔다. 군의는 벌써 로상권이한테로 가고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맥박이 희미해지며 로상권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였다. 머리맡에는 그가 쓰러지는 순간까지 피를 흘리며 지고온 공책과 찹쌀자루가 놓여있었다.

등불은 꺼져가는 숨결을 이어주듯이 천막안을 소연히 얼비치고있었으나 로상권의 육체는 각일각 닥쳐오는 죽음에 대한 저항력을 잃고있었다. 비상약을 쓰며 로상권의 모습을 지켜보는 군의의 얼굴은 점점 컴컴해졌다.

로상권은 자기의 생명이 사선에서 헤매고있음을 깨닫고 옆에 앉은 강민이와 송순의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자꾸만 흐리여지는 눈정기를 모으며 그는 걱정하였다.

《내가 죽으면 안되겠는데, 내가 죽으면 그애들때문에 장군님께서 더 고생하시겠는데···》

송순이가 눈물이 글썽하여 조용히 꿇어앉았다.

《아바이, 죽다니요? 무슨 말씀을···》

로상권의 꺼져드는 목소리가 다정히 울렸다.

《강민동무, 송순이는 참 좋은 처녀지요. 내 꼭 동무네 약혼술을 받아들자구 했는데··· 이제는 글렀나봅니다.》

로상권은 한쪽에 매달려 그물거리는 등불을 쓸쓸히 쳐다보았다. 심지끝에 빨간 불찌가 앉아 등불은 금시 꺼질듯이 불안스레 떨고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밖에서 줄곧 오락가락하던 경위중대장이 들어왔다.

로상권은 그를 보자 화를 내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등만 조금 떼였다가 붙이며 무섭게 나무리였다.

《경위중대장동무, 왜 아직 안갔습니까? 장군님께 빨리···》

리달경은 급히 로상권에게 다가가 손을 쥐고 진정시켰다.

《련락을 띄웠으니 안심하십시오.》

로상권은 마음을 다소 놓으며 손을 머리맡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그러나 인제는 손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맡에는 그가 피를 흘리며 지고온 귀중한 짐이 놓여있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으나 고개도 움직일수 없었다. 그는 단념하고 리달경을 바라보았다.

《경위중대장동무, 강민동무, 그동안 이 <도감>한테 원망이 많았지요. 더구나 그애들이 사령부로 온 후 난 참 일을 쓰게 못했습니다. 그애들한테 욕만 하다가 갑니다. 잘 먹이지두 못하구 잘 입히지두 못하구 늘 잔소리만 했지요. 그애들한테 언제 한번 웃는 얼굴로 너그럽게 대해준적이 있는것 같질 않습니다. 밥 한숟갈이라도 더 먹일 생각은 못하구 그저 주머니끈을 조이면서 바들바들 떨기만 했으니 에이참, <도감>이란 사람이 사령부작식일은 어떻게 도왔습니까? 도운게 없지요,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늘 대원들과 꼭같이 숙식하시는걸 보면서도 따끈한 별식 한번 대접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가슴이 아파 이번에는 꼭 인민들의 부탁대로 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그만···

경위중대장동무, 머리맡에 찹쌀이 있지요. 이 찹쌀은 미시가루를 잘 만들어 요긴할 때 장군님께 대접하라고 인민들이 보내온 지성품인데 맡으십시오.》

경위중대장은 말없이 로상권의 머리맡에 있는 찹쌀자루와 공책을 내려다보았다. 중상을 당하고 수십리길에 피를 방울방울 떨구면서도 그것을 벗어놓지 않고 기어이 지고온 로상권의 심정이 가슴에 마쳐와 고개를 숙였다.

로상권은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마지막시각이 다가왔다. 가까스로 그는 경위중대장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아··· 왜 이리 숨이 찬지.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언제부터 난 경위중대장동무한테 걱정되는바를 한가지··· 말해주고싶었는데, 짐작이 갑니까?》

경위중대장은 미처 새겨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보시오, 경위중대장, 이건 동지로서만이 아니라 자식을 키워온 년장자로서 하는 이야기요. 세상에 우리 장군님처럼 비범하고 용맹하신분은 없지요.

그러나 우리 장군님만큼 눈물이 많으신분도 없을거요. 싸움에서는 호랑이지만 인정앞에서는··· 그저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옴짝을 못하시니··· 눈을 감으면서도 난 그것이 걱정이 되는구만. 적들은 바로 그걸 리용하여 사령부를 소멸하겠다구 대공세를 시작하고있소.···》

그리고는 누군가를 또 찾았다. 강민이가 옆으로 바투 나앉았다.

《강민동무, 추석에 그애들한테 내 손으로··· 만두를 빚어주고싶었는데··· 내대신 꼭 만두를···》

로상권은 혼신의 힘을 모아 자기대신 만두를 해먹이라는 말을 남기고 잠들듯이 고요히 눈을 감아버렸다.

경위중대장과 강민은 군모를 벗어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로상권의 손을 꼭 쥐고 머리맡에 앉아있던 송순이가 쓰러지듯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며 흐느껴울었다.

로상권이가 희생되였다는 소식이 온 숙영지에 알려지자 군의처로 제일먼저 달려온것은 소년중대원들이였다,

(로상권아바이가 희생되다니?)

처음 한동안 중대원들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군의처앞에 들어서서 목을 빼들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안타깝게 천막주위를 빙빙 맴돌기도 하였다.

잠시후 두손으로 얼굴을 싸쥔 송순이 달려나오고 뒤이어 고개를 떨군 강민이 한손에 군모를 구겨쥔채 비척거리며 중대원들앞에 나타났다.

한순간에 휘주근해진 강민은 자기앞에 모여드는 중대원들을 마치 딴사람을 대하듯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는 무언가 중대원들이 묻고있다는것을 느꼈으나 목이 꽉 잠겨 입도 벌리지 못하였다.

준오며 인수, 관식이들이 땅에 팔싹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안개속에 휩싸인듯 뿌옇게 바라보였다. 그 누구도 울음을 터뜨리는 소년중대원들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저녁무렵에 경위중대장과 강민이를 비롯한 전우들이 로상권의 시신을 메고 둔덕이 진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뒤로는 경위중대원들과 소년중대원들이 뒤따라 올라갔다. 그곳은 조국의 하늘이 아득히 바라보이는 남향받이 언덕이였다.

경위중대장이 로상권이의 시체우에 붉은 기폭을 덮었다. 기폭은 숭엄한 정적에 잠긴 수림에 피빛을 붉게 발산하여 땅도 수목도 붉어보이고 하늘도 붉어보였다. 불쑥 터진 바람에 생나무가지가 부러져내리고 뭇새들이 날아올랐다.

한 전사의 부고를 멀리에 있는 전우들과 고향집에 알리듯이 철늦은 우뢰소리마저 꾸릉꾸릉 울리는 가운데 누가 먼저 선창을 떼였는지 《빨찌산추도가》가 비감에 잠긴 가슴들을 눈물로 적시게 하였다.

 

가슴쥐고 나무밑에 쓰러졌다 혁명군

가슴에서 흐르는 피 푸른 들을 적신다

 

경위중대장과 전우들이 로상권의 시체우에 흙을 덮으며 비방울 같은 눈물을 후두둑 휘뿌렸다.

강민이도 봉석이도 준오도 인수도 다시는 그 다정한 잔소리를 들을수 없는, 다시는 그 텁텁한 얼굴을 볼수 없는 슬픔에 잠겨 로상권의 시체우에 붉은 흙을 뿌렸다. 그를 따라 강민이네 중대원들 전체가 눈물섞인 흙을 한줌씩 뿌리며 추도가를 목매여 불렀다.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보고 울지 말아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있다

 

얼마후 하나의 높지 않은 봉분이 밀림속에 생겨났다. 이제 부대가 여기를 뜨면 천리수해속 바람소리 거치른 이 외진 언덕에 다시 들릴 날이 있을것인가? 그러나 전우들은 비석대신 통나무를 깎아만든 묘비를 봉분앞에 세웠다. 강민이네 중대원들은 잔디를 떠다가 로상권의 묘지에 정성스럽게 입혀나가기 시작했다. 구슬피 호곡하는 바람소리가 수림우를 지나가고 우수수 떨어지는 락엽이 한 인간의 생애에 막을 내리듯이 봉분우에 서서히 떨어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