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1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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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찬은 워낙 거울앞에 오래 서있는 성미가 아니였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벽에 걸린 체경앞에 오래도록 품을 놓고 서서 외모를 깐깐히 살폈다. 철에 맞는 흰 양복에 시계줄을 드리우고나서 넥타이도 바로잡고 기름을 발라 재운 머리를 다시 빗질하였다.

윤석찬은 자기를 신사로 만드는데 미립이 터서 인제는 거울속으로 들여다보이는 자기의 미끈한 외관에도 익숙이 된듯 하였다. 하지만 단정한 반면에 텁텁할만큼 소박한 그는 본래의 자기 모습을 가리워버린 거울속의 신사를 딴사람처럼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적구에서 지하공작임무를 수행하자니 자연히 이런 거북한 차림새에도 습관되여야만 했다. 그가 안해의 화장대우에 있는 향수까지 몇방울 적당히 뿌리고 어디 미흡한 구석이 없는지 몸차림을 꼼꼼히 살피며 깨끗이 면도한 턱을 쓸어보고있을 때 거리의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계숙이가 여느날보다 일찍 들어왔다. 계숙은 공책을 싼 연두색보자기를 안고 들어서는 길로 거울앞에 서있는 남편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없이 한쪽구석에 놓인 책상앞으로 다가갔다. 늘 긴장속에 일하는 남편의 마음을 밝게 해주려고 언제나 웃으며 들어서던 안해가 오늘은 웬일인지 낮색이 좋지 않았다. 윤석찬은 안해의 전같지 않은 기분을 감촉하고 흘끔 뒤를 돌아다보았다. 미간을 찌프리고 앉은 계숙의 얼굴에는 노여움과 시름이 실려있었다.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생겼는가? 혹시 남편의 사치한 차림새와 방안에 풍기는 향수냄새때문에 그런다면 계숙이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며 윤석찬은 빙그레 웃어보였다.

《여보, 왜 그러우?》

계숙은 거울을 통해 남편의 기름한 얼굴을 쳐다보고나서 오늘 학교에서 있은 일을 이야기했다. 아침조회때 담임한 학생 세명이 몇분 지각을 했는데 일본인교장이 자기가 말하는도중에 들어섰다고 그들에게 운동장을 기게 하는 벌을 주어 학생들과 교원들을 격분케 한 일이 있었다. 계숙은 이번 기회에 교원들을 발동하여 교장의 횡포를 반대하는 항의를 들이댈 결심이라고 하였다.

(그렇단 말이지.)

윤석찬은 상기된 계숙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안해이며 지금은 혁명동지이기도 한 계숙이기때문에 애먹던 일이 언뜻 상기되였다.

처음은 처녀시절에 퍼그나도 코가 높던 《신녀성》형의 이 녀고보졸업생을 휘여잡을 때 애를 먹었고 결혼후에는 소시민적인 관습에 젖어 안온한 생활을 꿈꾸던 감상적인 가정부인을 혁명에 인입할 때 톡톡히 값을 치렀다. 그러나 일단 혁명이라는 신성하고 준엄한 세계와 인연을 맺자 안해는 성미도 매차지고 담차져서 어느덧 남편의 성실한 방조자가 되였다. 그는 교원들과 부형들에게 영향을 주어 십여명을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키우고 많은 사람들을 혁명의 적극적인 후원자로 만들었을뿐아니라 직업상 유리한 점을 리용하여 유격대원호사업에서도 한몫하고있다. 최근에만 하여도 잡화상을 운영하는 학부형들을 통해 당목, 소금, 성냥과 같은 통제품들을 여러차례 구입하여 원호물자로 보냈다.

윤석찬은 계숙이에게 이번 기회를 통해 교원들과 학생들속에 반일의식을 더욱 고취하되 경각성을 높여 전면에는 나서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한마디 조언을 주었다. 그런뒤 양복조끼에서 은줄이 달린 회중시계를 꺼내보고는 체경앞으로 돌아서서 다시금 차림새가 흐트러지지 않았는가를 살펴보았다.

계숙은 남편이 공작상 필요로 지금처럼 차리고나서는것을 한두번만 보아오지 않았으나 오늘은 특별히 외모에 신경을 쓰는것 같아서 한마디 조심히 물었다.

《어딜 가시기에 그렇게···》

《왜? 딴눈을 팔가봐 걱정이 되오?》

《원, 못하시는 말씀이 없네.》

《어디 한번 맞춰보우. 이 멋쟁이남편이 어딜 찾아가는것 같소?》

《그런건 내외간이래두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허, 이제는 제법인걸. 실은 그 고바야시라는 일본인기자 있지 않소. 그사람이 날더러 우미야마사령관의 생일연회에 같이 가자는군. 오늘이 그자가 쉰살을 먹는 생일날인데 축하를 해주자는거요. 무슨 소린지 우미야마가 함께 오라고 했다질 않소.》

《왜 그랬을가요?》

《그야 알수 없지.》

계숙은 불안한 눈길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협화회》 리사로 우미야마와 몇번 상면한적이 있기는 하지만 고바야시의 줄을 타고 그의 생일연회에까지 참가하게 될줄은 몰랐다. 계숙은 자기의 불안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남편의 넥타이를 만져보았다.

《여보, 이러다간 당신이 관동군사령부까지 드나들지 않겠어요. 조심하세요. 전 늘 당신이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가서 실수라도 할가봐 걱정이 되요. 술은 절대로 많이 하지 말어요.》

《맘놓소. 박덕산동무가 뭐라구 했소. 그런 자리를 두려워해서야 지하공작을 하우.》

윤석찬은 헌헌한 소리로 안심을 시키고 선반우에서 중절모를 내리워 먼지를 털었다. 그 차림에 중절모까지 쓰니 갈데 없는 《협화회》 리사였다.

벽시계가 콩알만 한 쇠마치로 지르륵 땡 지르륵 땡 하며 저녁 7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고바야시는 7시반까지 《토벌》사령부정문으로 오라고 하였다. 《토벌》사령부는 그전 목재상이 있던 거리의 유축에 자리잡고있었다. 경찰을 업고 관동군에 군수용 목재를 대주면서 폭리를 취하던 목재상은 늘 명줄을 위협하는 주위의 소란한 총포소리도 피할겸 대도회지로 나가 장사를 더 크게 벌릴 욕심이 생겨 간봄에 장춘으로 이사해버렸다.

《토벌》사령부주위로는 철조망이 둘러쳐있었고 네귀에는 기관총을 걸어놓은 포대와 망루가 우뚝 솟아있었다. 이 철조망안에 《ㄷ》자형 목조건물이 컴컴하고 음산한 빛을 띠고 들어앉았다.

우미야마가 숙소로 거처하는 집은 이 건물에서 한옆으로 얼마간 떨어져있는 별채였다. 이 별채는 목재상의 젊은 첩이 거처하던 집으로 널직한 방이 다섯칸이나 되였다. 우미야마 혼자 있기에는 너무 덩실하게 커서 늘 빈집같이 보이던 집이였으나 요사이는 참모장보다 더한 권한을 쓰며 귀빈대접을 받고있는 고바야시가 그 집 절반을 쓰고있어 비여있는감은 주지 않았다.

윤석찬이 침착하고 당당해보이는 걸음으로 《토벌》사령부정문에 다가가자 철갑모를 눌러쓴 보초가 벙어리처럼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출입증을 보자는것이였다. 윤석찬은 서둘지 않고 점잖게 호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출입증대신 리사의 명함을 꺼내보일 생각이였다.

이때 정문으로 나오던 고바야시가 보초에게 눈총을 쏘며 핀잔을 주었다.

《여보, 그분은 내가 청한 리사선생이요.》

보초는 대번에 꼿꼿해져서 손님을 통과시켰다. 윤석찬은 은근히 놀랐다. 고바야시의 말이 이처럼 보초에게 날이 설줄은 몰랐다. 고바야시가 지금 우미야마한테서 어떤 대접을 받고있는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윤선생, 어서 들어갑시다. 우미야마소장님도 기다리시오.》

고바야시는 윤석찬을 곧장 우미야마의 숙소로 안내하였다. 현관복도에 들어서자 윤석찬은 가슴이 두근거리는것을 느꼈다.

그가 고바야시의 뒤를 따라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 쏘파에 몸을 묻고 장교와 이야기를 나누던 우미야마가 반색을 하며 일어섰다. 소장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걸음으로 문까지 나와 윤석찬을 깍듯이 맞이했다.

《윤리사, 와주어서 감사하오.》

평생을 전쟁에 바쳐 화약내와 피비린내가 뼈속까지 밴 그에게서 이렇게 례의를 갖춘 부드러운 말이 나올수 있다는것이 윤석찬이한테는 기이하게 생각되였다.

《어서 들어갑시다. 기다리던 참인데.》

우미야마는 훈패가 가득 실린 앞가슴을 내밀고 옆방으로 통하는 큰문을 열며 손님의 왕림을 방안에 알렸다. 윤석찬이 중절모를 옷걸이에 걸고 우미야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보니 벌써 지구《토벌》사령부관하 부대장들, 수비대장들 10여명이 모여와서 이미 준비된 연회탁앞에 앉아있었다. 통나무를 깎아세운듯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던 부대장들은 소장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는 새 손님을 차거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윤석찬은 그들에게 묵례를 해보이며 우미야마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소장은 자기의 한쪽옆에 참모장을 앉히고 다른 한쪽에는 군인이 아닌 고바야시와 윤석찬이를 앉혔다.

이 류다른 대접에 윤석찬은 저도모르게 더욱 긴장되는것을 느꼈으나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눈길을 돌려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안은 그리 넓지 않은 서향방으로 회칠을 한 벽에는 연미색바탕에 《내선일체》, 《선만일여》라고 한자로 크게 쓴 족자를 걸었고 창문에는 줄무늬가 간 누런색 카텐을 드리웠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미칠하게 자란 오죽화분이 카텐색갈과 대조를 이루며 창옆에 놓여있었다. 연회탁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상우에 오른것들은 모두 쫄쫄하였다. 술도 호화로운 상표가 붙은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고 료리도 중국, 일본, 서양료리를 갖추어 차려놓았다. 더구나 눈길을 끄는것은 총칼을 찬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풍금까지 한쪽벽구석에 놓여있는것이였다.

한때 이 집에서 흥청거리던 목재상이 시앗싸움에 미쳐날뛰는 첩을 위해 끌어들인 풍금이였다. 그러나 그 풍금은 주인이 이사할 때까지 치는 사람이 없어 한쪽구석에서 버림을 받았다. 처음에는 첩이 풍금치는 법을 배우겠다고 이따금 뚱땅거리군 하였으나 네년이 령감을 독차지하려고 이제는 풍금까지 치며 아양을 떨 차비냐고 독을 품고 달려든 본처한테서 얼굴에 멍이 들도록 두들겨맞은 뒤로는 아예 풍금곁에 다가붙지도 못하였다. 목재상은 이사를 갈 때 그리 값나가는 물건도 아닌데다 말썽만 일으키는것이 시끄러워 풍금을 두고갔는데 우미야마의 취미를 알고있는 아래사람들이 집을 수리할 때 주인없는 풍금을 이 방에 가져다놓았던것이다.

손님들이 다 도착하자 참모장이 일어서서 전화속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오늘도 《국책》수행의 일선에 서서 생신날을 맞는 그의 무공을 찬양하며 간단한 축배사를 하였다. 그러자 모두 일어나 우미야마를 향해 축배를 들었다. 그뒤로는 여러 부대장들이 앞을 다투어 우미야마에게 건강을 축수하는 술잔을 권하였다. 우미야마는 감개가 무량한듯 좌중을 둘러보며 답례를 하였다.

《고맙다. 제군들, 군복을 입고 이렇게 나이를 한살 더 먹으니 지나온 한생을 돌이켜보게 된다. 평생 많은 싸움판을 다녔지. 그렇지만 이상하거든. 이 싸움처럼 고되기는 처음이다. 그래 오늘은 그동안 쌓인 심신의 피로도 풀겸 일부러 차렸으니 어려워들 말고 마음껏 들라. 워낙 이런 날은 안주인이 접대를 해야 하는데, 아마 오늘은 오사까의 고향집에서도 처와 자식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생각해서 생일을 쇨지 모르겠다.》

이미 《지나사변》을 앞두고 가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그는 그리운 처자생각을 눌러버리듯 권하는대로 사양없이 잔을 비웠다.

어느덧 좌중에 취기가 돌기 시작하자 부대장들은 굳어졌던 자세를 풀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떠들어대기 시작하였다. 윤석찬은 자기앞으로 오는 잔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마시는 시늉만 하고 옆에 앉은 고바야시에게 권하군 하였다. 고바야시는 술을 무척 달게 마시는 애주가였다. 그는 옆에서 권하는대로 잔을 연방 비우고나서 자기의 상대가 되지 않는 부대장들쪽에 경멸의 시선을 보내다가 윤석찬이를 향해 돌아앉았다.

《난 책을 손에 잡히는대로 읽는 좋지 못한 습벽이 있지요.

요사이도 몇가지 소책자를 들춰봤는데 이렇게 견해를 나누어볼만 한 상대가 있는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간밤에 읽은 책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서술했는데 사람은 태여날 때부터 리기심과 남을 물어뜯고 지배하려는 독한 이발을 가지고 나오기때문에 선천적으로 악할수밖에 없다는거요. 그 주장에 의하면 사람들한테는 다른 인간에 대하여 배려하는 사랑이란 있을수 없고 오직 증오와 악행만이 있다는것인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윤석찬은 고바야시가 왕청같이 꺼내는 화제에 잠시 어리둥절해졌다가 곧 자신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가혹한 공격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지요. 하이데거씨나 니체는 인간은 날 때부터 죽음에로 가는 고독한 존재로 보고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오직 현재밖에 없기때문에 살아있을 때 남을 치고 강탈해서라도 한껏 쾌락을 누려야 한다는것입니다. 전번에 백림에 들렸을 때 보니 독일에서는 이 주장이 대단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모두 니체, 하이데거 하는판이지요.》

《다 인간에 대한 무서운 모독입니다. 철학이란 인간의 존엄을 옹호하기 위해 필요한것이 아닐가요?》

《하지만 어찌겠습니까? 어차피 이 세계는 어디까지나 독한 이발과 독한 기질을 가진자가 지배하게 될것입니다. 헌데 내가 보기엔 우리 대화족한테는 그런 천성적인 독한 기질이 있단 말입니다. 독한 기질이-》

고바야시는 취기가 올라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윤석찬을 마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