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7


 

제 5 장

7

 

이날저녁 강민은 사령관동지를 만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하였다. 강민이가 찾아들어갈 사이도 없이 사령부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칠줄 몰랐다. 8월 12일에 열기로 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 및 병사대회가 당장 박두하였던것이다.

밤이 늦어서도 종시 사령관동지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 강민은 경위중대장 리달경이를 통해 말씀드리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령부로 가보았으나 그를 만나는것도 헐치 않았다. 그렇다고 준오의 책벌을 다음날로 미룰수는 없었다. 다음날로 미루고 어쩌고 하느라면 강민이자신도 마음이 약해져 책벌문제는 유야무야해지고말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갓 조직된 중대의 규률은 어떻게 세우겠는가? 절대로 다음날로 미룰수 없다고 재삼 결심하며 그는 전령병에게 리달경의 행처를 물었다.

전령병은 왜 그를 찾는가고 묻듯이 강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지금 8련대에 가있다고 알려주었다.

강민이 8련대숙영지로 달려가보니 거기에는 8련대장과 리달경이도 있었고 송순이와 봉석이도 무슨 일때문인지 와있었다.

강민은 8련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리달경을 조용히 끌어냈다.

그는 리달경에게 오늘 전투가 끝난 다음 준오가 규률을 위반한 경위와 그 후과를 간단히 설명하고나서 책벌을 주기로 한 자기의 결심을 기회를 봐서 장군님께 말씀드려줄것을 부탁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 어린것한테 책벌을 준단 말이요?》

《어리지만 유격대원이 아니요?》

《여보, 난 못하겠소. 동무가 직접 말씀드리오. 지금 사령관동지께서 얼마나 바쁘신가 하는걸 동무는 모르오? 그런데 그 문제를 말씀드려서 사령관동지를 괴롭힐수는 없소.》

《나도 사령관동지께서 바쁘시다는건 알고있소. 또 사령관동지께서 괴로와하시리라는것도 알고있소. 그러나 이 문제는 뒤로 미룰수는 없소.》

리달경은 한동안 강민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결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정 그렇다면 8련대장동지도 있고 마침 동무네 중대사람들도 와있으니까 한번 토론해보고 말씀드리는게 어떻소?》

강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8련대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송순이와 봉석이를 불렀다. 그는 경위중대장에게 한 말을 그들에게 다시 곱씹어 설명하고 자기의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책벌을 주자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중대를 직접 책임진 사람으로서 의견을 철수할수는 없습니다. 준오의 행동을 묵인다면 다른 대원들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줄수 있습니다. 저마끔 본을 따서 그렇게 하면 중대가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저는 당자는 물론 대원들을 교양하기 위해 준오한테서 무기를 회수하고 근신처벌을 적용할 생각입니다.》

강민이 드팀없는 자세로 결심을 다시 말했을 때 준오네 소대장인 봉석이가 고개를 기웃하였다. 봉석은 자기가 금방 입대했을 때 있은 일을 회상했다. 그때 봉석이도 준오와 같이 행동했다. 전투가 끝난 후 적들이 버린 기관총을 먼저 손에 쥐게 되자 한번 쏘아보고싶다고 제멋대로 한참 휘둘러대여 숱한 총탄을 날려보냈다. 그러나 봉석은 책벌은커녕 한마디 추궁조차 받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조용히 부르시여 아무리 기관총을 쏘고싶더라도 그렇게 규률없이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남모르게 깨우쳐주시였을뿐이였다.

준오에게 책벌을 주는데는 8련대장도 찬성하지 않는것 같았다.

《준오의 행위로 보아서는 책벌을 줄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점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소? 준오의 정상과 전사한 성묵동무를 생각해서두 우리가 그애한테 책벌이야 어떻게 주겠소?》

강민은 8련대장까지 이렇게 나오자 난처해하며 미처 대답을 못하였다. 침묵이 흐르는 공간을 타고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송순이도 한마디 조심히 의향을 비쳤다.

《8련대장동지 말씀대로 좀 생각해보시는게 어떻겠어요?》

《생각해보다니?》

《지내 모진 처벌이 아닐가요?》

《모진것과 규률을 혼돈하는것이 아니요?》

《저 준오는말이예요. 누구보다도 몸이 약하고 또 아버지가 전사한것을 모르고 지금도 가끔 아버지를 찾군 해서 장군님의 가슴을 아프게 해드리는 애가 아니예요.》

《옳소. 준오한테 총을 회수하고 책벌까지 주면 장군님 심정이 어떻겠소. 괴로와하실 장군님의 심정도 생각해드려야지.》

8련대장은 여전히 묵직한 자세로 틀고앉아 송순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이럴 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장군님께서 오시였다. 모두 황급히 자리를 일었다.

《여기서 뭣들 하고있소?》

장군님께서는 당황해하는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물으시였다. 누구도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강민동무가 나를 만나러 왔댔다면서?··· 무슨일로 왔댔소?》

장군님께서 물으시자 강민은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였다. 8련대장이 아마 준오의 책벌문제때문이였을게라고 하며 방금전까지 론의된 문제를 강민이대신 말씀드렸다.

《그게 사실이요?》

장군님께서 똑바로 강민을 바라보시였다.

강민은 어깨를 떨구며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제 잘못으로···》

《동무 잘못을 묻는게 아니요.》

장군님께서 생각에 잠겨 그들옆을 묵묵히 오가시다가 고개를 숙이고있는 강민이앞에 서시였다.

《그래 준오한테 책벌을 줘야겠단 말이지···》

강민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있다가 눈길을 들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야 할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불쌍한 준오한테 책벌은 무슨 책벌인가, 그런 공론은 당장 그만두라고 밀막고싶으시였다. 그만큼 누가 조금이라도 다칠세라 품어주고 편들어주고싶은 준오였다. 더구나 요사이는 준오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것을 보고 기뻐하던 터여서 그의 얼굴에 조금이라도 그늘이 지게 하는 일은 허락하고싶지 않으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책벌문제를 누구도 아닌 중대장 강민이가 제기하였다는것을 생각하시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까지 준오를 어떻게 보살펴준 강민인가. 장군님께서는 그가 준오를 생각해서 구해들인 율무와 그것을 찧을 절구를 파겠다고 배낭속에 넣고 다녔다는 피나무토막을 생각하시였다. 진심이 없이는 그렇게 할수가 없다.

장군님께서는 강민이가 지나쳐서 설사 결심을 잘못 내렸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그의 의견을 지지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사람들앞에서 중대장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그의 본심을 믿기때문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인제는 준오네한테도 강한 규률을 요구할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는 장군님이시였다.

《난 강민동무 의견대로 책벌을 주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아다싶이 처음에는 우리가 그애들을 어루만졌습니다. 애처롭기도 하고 또 주눅이 들가봐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눈감아주면서 응석을 다 받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인제는 그들도 총을 메였습니다. 그러니만큼 요구성을 높여 그들도 강한 규률속에서 단련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봉석동무.》

봉석은 뒤덜미로 손을 가져가며 눈을 꿈벅거렸다.

《예··· 그런데 저는 개별적으로 깨우쳐줄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 그전에 제가 기관총을 함부로 휘둘러댔을 때 장군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신것처럼···》

《심정은 알만한데, 사정이 지금은 그때와 다르지. 그때는 부대에 봉석동무처럼 어린 소년이 불과 몇명밖에 없지 않았나. 그러나 지금은 백여명이나 있소. 준오를 교양하면서 백을 다같이 교양해야 하오. 책벌을 줍시다.》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8련대장은 준오를 봐서 한번만 용서해주자고 말씀올리고싶었으나 그 말을 입밖에 낼수가 없었다. 그자신이 장군님께서 말씀은 이렇게 하시지만 누구보다도 괴로와하시리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강민이가 중대로 돌아갈 차비로 말씀드렸다.

《장군님, 그럼 집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오.》

장군님께서는 결론을 주고 사령부로 돌아왔으나 여느때없이 마음이 뒤숭숭하시였다. 무엇인가 꼭 못할 일을 하신것 같은 심정이였다. 처음 그렇게 모진 결론을 하신것만 같았다.

준오가 책벌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지 걱정이 되고 자꾸만 측은한 생각이 드시였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시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어룽거리는 등불을 바라보시다가 심지를 돋구고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원 및 병사대회에서 하실 연설의 요지를 적으시였다.

 

- 국제정세의 중요특징

·일제가 종국적으로 패망하고 조중인민이 반드시 승리할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우리의 과업

·혁명의 주도적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대오를 끊임없이 확대강화하며 대륙침략에 광분하는 일제의 배후에서 무장투쟁을 과감히 벌려 적들에게 보다 강력한 군사정치적타격을 줄데 대하여

·국내에 진출하여 반일민족통일전선사업을 가일층 강화할데 대하여

·일제의 리간책동을 짓부시고 조중인민의 통일단결을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

 

수첩을 접으신 장군님께서는 보풀이 인 군용지도를 탁상우에 펼치시였다. 지휘원, 병사대회가 끝난 후 사령부산하 주력부대와 l사, 2사, 4사, 독립려단을 포함한 각 부대의 작전지역과 활동방향을 미리 확정해주어야 했으며 김주현을 책임자로 하는 소부대를 국내에 파견하여 정치군사활동을 벌리도록 하는 사업도 조직해야 했다. 그러나 준오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려 지도우의 강줄기, 산줄기, 지명들을 제대로 들여다보실수가 없었다. 무기를 바치고 지금 혼자서 책벌을 받고있을 준오의 정상을 생각하면 찌르는것 같이 가슴이 아프시였다. 종시 색연필을 군용지도우에 놓고 사령부를 나서시는데 봉석이가 달려왔다.

《장군님, 암만해두··· 준오에 대한 책벌이 효과가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왜?》

《그애는 자꾸 울기만 합니다. 그냥 아버지를 찾는데···》

《아버지를?》

장군님께서는 무춤 서시며 안색을 흐리시였다. 준오는 지금 외로와하며 아버지를 찾고있다. 그러나 준오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장군님께서는 이 사실이 지금처럼 현실적으로 아프게 느껴지신적은 없었다.

칠석이 지난 하늘로는 은하수가 내물처럼 남으로 흐르고 아득한 공간속에 떠있는 반달은 물기를 머금고 안개가 서린 밀림을 어설프게 비쳤다. 어쩐지 이 밤에는 은하수도 달빛도 뭇별도 조국을 위한 성전에 피뿌리며 쓰러진 한 전사의 령전에 경의를 표하며 애도의 눈물을 머금고있는것만 같았다.

달빛에 그림자를 던진 저수리나무밑에 풀이 죽은 준오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우에서 푸드득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바늘같은 저수리잎이 장군님의 어깨에 소리없이 내려앉았다. 하루밤 나무아지에 외롭게 깃을 맡긴 메새가 잠자리가 편치 못해 자리를 옮기는 모양이였다. 그이께서 어깨에 내린 저수리잎을 만져보며 준오에게로 다가가시자 뒤따라온 봉석이가 귀띔해주었다.

《준오동무, 장군님께서 오셨소!》

준오는 지척에 다가서신 장군님을 보더니 일어서서 몸가짐을 바로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달빛에 창백하게 드러나는 준오의 얼굴과 그가 나오지 못하게 땅에 그어놓은 금을 점도록 내려다보시였다. 원체 살집이 없는 갱핏한 얼굴이 몇시간사이에 반쪽이 된것 같았다.

《식사는 했겠지?》

준오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옆에 서있던 봉석이가 식사를 하지 않아 가져왔던 밥그릇을 그대로 돌려보냈다고 말씀드렸다.

《식사를 해야지, 그러면 되나.》

장군님께서 준오를 자리에 앉히고 자신께서도 옆에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준오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갈리는 음성으로 부르시였다.

《준오야.》

《예.》

《내 말을 들어라··· 네가 이렇게 외로와하는것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은 너에게 이야기해줘야겠다. 네가 이 밤도 그렇게 찾는 너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은 들려줘야겠다.》

준오는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머리를 쳐들었다. 불안이 섞인 애절한 기원이 두눈에 가득 실렸다. 그래서 더욱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꺼내기가 힘드시였다.

《네가 좀더 자란 다음에 이야기해주려고 했는데 너도 인제는 아버지에 대해 알 때가 되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내 이야기를 들어라.》

《···》

《네가 그렇게 찾는 너의 아버지는··· 희생되였다.》

동안을 두고 하시는 그 마지막말씀과 함께 준오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되묻지도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알겠느냐? 너의 아버지는 한해전에···》

목이 잠겨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어느덧 준오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그이의 손등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준오에게는 장군님께서 괴롭게 하시는 말씀이 뜻밖이 아니였다. 자신도 이때까지 아버지의 생사에 대하여 어렴풋이는 느껴왔다. 우리 아버지가 잘 있는가고 지휘관들에게 물어볼적마다 낯색을 흐리며 당황해하는 눈치를 한두번만 감촉하지 않았다. 이런 감촉은 준오로 하여금 아버지가 혹시 희생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하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마 그런것 같다고 믿는데까지 이르게 되였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려워 스스로 부정해왔을뿐이였다. 그런데 오늘까지 이렇게 부정해올수 있은것은 그래도 한가닥 기대를 품게 하는 희망이 마음속에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인제는 한사코 붙잡고있으려던 실날같던 희망마저 끊어졌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이제는 그렇게도 보고싶던 아버지를 영영 볼수가 없다는것이 부정할수 없는 사실로 되였다.

(아, 아버지···)

준오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장군님의 손등을 그냥 적시는데 아버지를 부르는 슬픈 눈물이 이 밤 자신의 손등에 다 쏟아지기를 바라듯 그이께서는 준오를 달래시지 않았다.

준오는 그렇게 한참 울고나서야 제 설음에만 잠겨있는 자기를 느끼고 가까스로 고개를 들며 말씀드렸다.

《장군님, 인제는 그만 들어가 주무십시오.》

《내 걱정은 말아라. 내가 널 두고 들어가서 잠을 자겠니?》

《장군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알고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준오가 이처럼 어른스런 대답을 하는것이 가슴에 더욱 아프게 마치시였다. 이야기를 꺼내실적만 해도 준오가 이제 아버지소식을 듣고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면 어쩌랴 하는 우려가 없지 않으시였다.

《알고있었단 말이지···》

《예···》

《그렇지만 준오야, 너는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였는지 그것은 다 알지 못할게다.》

준오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는 괴로운 추억에 잠기신채 준오의 손을 잡으며 갈리는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너의 아버지는··· 입대한 첫날부터 혁명을 위해 모든것을 바쳤다. 그런 나날속에 성장하여 평대원으로부터 소대장까지 되였다. 너의 아버지는 언제나 전우들을 사랑했고 혁명규률을 지키는데서도 모범이였고 사령부의 명령관철에서도 물불을 가리지 않은 사람이였다. 그렇게 잘 싸우던 아버지가 지난해 저 이도강부근전투에서 쓰러질줄이야 누가 알았겠니···

너의 아버지는 강민동무 무릎을 베고 내 손을 잡고 숨을 거두었다. 그때부터 우린 너희들의 아버지를 대신해주려고 했다. 허지만 생각뿐이지 그게 어디 마음같이 되느냐.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해 그만 순애는 잃어버리질 않았니··· 난 지금도 세상을 향해 어린 손을 내민채 애처롭게 죽은 그애 생각을 하면 가슴에 피눈물이 맺힌다. 그래 인제는 너만이라도 아버지를 대신해서 키우자고 하는데 우리가 아직 아버지노릇을 못하는구나. 아직 못해···》

준오는 고개를 숙인채 터지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장군님께서도 눈앞이 흐려와서 소리없이 들먹이는 준오의 어깨를 어루쓸듯 더듬어 잡으시였다. 그때 등뒤에서 《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왔는지 준오네 소대원들이 어둑한 나무밑에 입술을 깨물고 서서 장군님과 준오를 바라보고있었다.

《오, 준오네 소대원들이구나.》

장군님께서 모두 가까이로 오라고 손짓을 하시였다. 소대원들은 눈물이 글썽하여 그이옆으로 주춤주춤 다가왔다. 슬픔을 안고 울먹해 서있는 소대원들을 장군님께서 손잡아 불옆에 앉히시였다. 벌건 화광이 준오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 어룽거렸다.

《용타, 너희들이 준오를 생각해서 자지 않고 나온것 같은데 잘 나왔다. 그래야지.》

장군님께서는 불옆에 둘러앉은 소대원들의 얼굴을 대견히 한참 내려다보시였다.

《너희들도 들었지, 준오가 그렇게 찾고 그처럼 보고싶어하던 아버지는 희생되였다. 난 책벌을 받은 준오가 외로와할가봐 자지 않고 이렇게 나와준 너희들의 심정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어쩐지 이처럼 헴이 든 너희들을 보니 오늘밤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구나. 너희들은 오늘밤 준오와 슬픔만 같이 나눌것이 아니라 준오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소대원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자리를 고쳐앉았다,

장군님께서는 사위여가는 모닥불에 나무를 더 놓으려다가 그것을 손에 드신채 말씀을 이으시였다.

《준오의 아버지는 혁명을 위해 목숨보다 더 귀중한 조국을 찾기 위해 한몸을 바쳤다.

준오아버지는 눈을 감으며 조국땅의 흙냄새를 한번 맡아보고싶다고 했다. 왜 그랬겠니? 조국이란 바로 어머니품과 같은것이기때문이다. 허지만 그 조국땅이 어떻게 되였니?

왜놈들은 우리 조국땅의 모든것을 참혹하게 짓밟고 략탈하며 조선사람을 어느때든 부려먹고 어느때든 죽일수 있는 노예로 만들고있다.

그러니 어찌 참을수 있겠느냐. 인민들은 그 치욕을 당한 때로부터 잃어버린 나라를 찾자고 의병도 일으켜보고 독립군운동도 해보고 3. 1만세도 불러보았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안되겠기에 우리가 새로운 로선을 내놓고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은 조국을 찾고 모든 인민이 다 나라의 주인이 되여 행복하게 잘 사는 새 사회를 세우자는데 있다. 그러자면 혁명을 해야 한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혁명이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가장 영광스러운 투쟁이다. 혁명은 피와 땀을 흘리지 않고 저절로 되지 않는다. 수많은 혁명선렬들이 이 혁명의 길에서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교수대에 오르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떳떳이 머리를 들고 웃으면서 생을 마쳤다. 준오 아버지처럼 내 손을 잡고 숨진 동지들도 있다.》

장군님께서는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누르며 소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그들이 왜 혁명에 목숨을 서슴없이 바쳤겠니. 숨지는 순간에도 어떻게 웃으며 눈을 감을수 있었겠니, 그것은 혁명의 승리를 믿고 밝아오는 조국의 미래를 바라보았기때문이다. 알겠니, 너희들은 선렬들이 최후순간에도 그렇게 웃으며 바라본 미래의 주인들이다. 처음에 너희들로 소년중대를 무어줄 때 사실은 론의가 많았다. 너희들도 알고있겠지만 사정이야 오죽 어렵니. 그러나 우리는 너희들이 부모의 뜻을 잇게 하자구 너희들에게 총을 메웠다. 그런데 총을 메였다고 저절로 아버지처럼 혁명가가 되는것이 아니다. 혁명가가 되자면 준오 아버지처럼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 조국을 열렬히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참된 혁명가가 될수 없다. 왜냐하면 혁명도 나라를 찾고 조국땅우에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는것이기때문이다.

너희들이 열렬한 애국자가 되자면 우리 조국을 잘 알아야 한다. 비록 혁명을 하다가 쓰러져도 조국과 함께 영생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

혁명가가 되자면 또한 꾸준히 배우고 단련하여 무산계급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만들고 강의한 의지와 동지애, 집단주의정신, 용감성, 어느 면에서나 다 준비되여야 한다. 요구는 이러한데 들어오는 보고를 들어보면 너희들속에서는 아직 혁명가답지 못한 행동들이 적지 않다.》

부모가 자식을 타이를 때만 쓰는 부드럽고 절절하고 자애가 넘치는 어조로 하나하나 깨우쳐주시는 장군님의 말씀에 대원들은 차츰 눈길을 떨구었다.

《너희들속에는 아직 행군끝에 숙영지를 정하구 천막을 칠 때도 구대원들의 손을 바라는 대원들이 있다는데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어렵더라도 무슨 일이든 제힘으로 해버릇해야 한다. 혁명을 하자면 제힘을 믿을줄 알아야 해. 너희들속엔 아직 서로 다투는 일도 있다는데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다같이 총을 메고 한 대오속에 서있으니만큼 너희들사이의 관계는 혁명동지들사이의 관계로 되여야 한다.》

장군님과 눈길이 마주친 몇몇 대원들이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문득 고개를 숙인채 일어서는 한 대원이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인수였다.

《장군님!》

《왜 그러느냐?》

《장군님, 잘못했습니다. 전 이때까지 준오동무를···》

인수는 울음섞인 목소리를 얼버무리며 팔소매로 눈굽을 씻었다. 모닥불주위에는 정적이 깃들어 인수가 삼키는 흐느낌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는 지금 장군님 말씀을 들으면서 준오와 만나자부터 소닭보듯 하며 소원하게 지내온 일을 아프게 뉘우치고있었다.

《앉거라···》

장군님께서 인수를 기특하게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가 하는 말은 꼭 인수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다. 동지가 얼마나 귀한가를 명심하라고 하는 말이다. 우리 혁명군이 그처럼 강하고 대오가 그처럼 철통같은것은 그 단합의 기초에 무산계급의 혁명사상과 동지애가 놓여있기때문이다. 너희들은 세월이 갈수록 동지애라는 이 말의 뜻을 더 깊이 깨닫게 될게다. 그 뜻은 너희들이 힘들어할 때 배낭을 메다주는 동지의 어깨에도 배여있고 너희들이 괴로와할 때 같이 괴로와하는 동지의 가슴에도 깃들어있고 만약 너희들중 누가 적의 포위속에 들면 죽기를 각오하고 뚫고 들어가 동지를 업고나오는 전우의 숨결에서도 그 뜻을 느끼게 될것이다. 동지를 귀중히 여기고 동지를 사랑할줄 알아야 한다.

···그리구 내 오늘 이자리에서 너희들에게 한마디 더 하고싶은것이 있다. 너희들은 오늘 준오가 책벌을 받은데 대해 놀랍게 생각할수 있는데 너희들은 혁명의 규률에 대하여서도 옳은 인식을 가져야겠다. 우리가 준오에게 책벌을 준것은 자기 잘못을 깊이 깨달으라고 준거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혁명전사는 강한 규률속에서 단련되여야 한다. 앞으로 지휘관들은 너희들이 그렇게 단련되라고 엄하게 요구할것은 요구하고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비판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책벌도 줄수 있다. 고운 자식 매로 키운다는 말과 같이 지휘관들은 너희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만큼 강하게 요구할게다. 너희들은 지휘관들의 그러한 깊은 심정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이 그걸 다 모르니까 아직두 누구한테 꾸중을 듣거나 비판을 받으면 잘못 생각하구 쓸쓸해한다는데 그래서는 못쓴다. 혹시 괴로울 때면 부모없는 설음같은것을 느낄수도 있겠지. 그러나 너희들이 왜 부모가 없다고만 생각하겠느냐. 우리가 부모노릇을 못한데도 있겠지만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너희들의 부모는 우리다. 나다.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다.》

모닥불이 소리없이 타오르며 눈물에 젖은 대원들의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우리에게도 아버지가 있고 나를 낳은 부모품보다 더 큰 어버이품에 내가 안겼다는것을 의식하며 감격에 사무쳐 터뜨리는 흐느낌소리가 밤의 고요를 흔들었다.

《준오야, 네가 책벌을 받았다고 몹시 억울해하였다는데 책벌은 내가 주라고 하였다. 난 네가 날 아버지같이 생각하면 억울한것을 삭일수 있다고 믿는다···》

장군님께서 입술을 깨물고있는 준오와 여러 대원들을 돌아보시였다. 이제는 다 깨달았다고 준오는 장군님께 말씀올리고싶었다. 그러나 불덩이같은것이 가슴에 꽉 차올라 입을 열수가 없었다.

그이께서 준오의 들먹이는 어깨를 잡으시였다.

《준오야, 난 네가 슬픔을 이겨내리라고 믿구 다 이야기했는데 내가 걱정을 안해도 되겠느냐?》

《장군님··· 전 이제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그래두 아버지가 세상에 안계신다고 이따금 외로와할수도 있겠는데 이제부터는 나를 아버지로 생각하여라. 어디 가서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면 내 이름을 대라.》

준오는 눈물을 더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그렇게도 옥물었지만 가슴속 밑창에서부터 터져오르는 울음을 끝내는 막아내지 못하였다.

《장군님-!》

그는 마침내 장군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소리내 울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끝없이 흔들리는 그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셨다.

《울어라. 마음놓고 울어라. 다른데 가서는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 울면 사람들이 숙봐···》

준오는 울음을 삼키며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심중의 가장 깊은 곳에서 저절로 목메인 소리가 흐느낌을 타고 울려나왔다.

《아버지!-》

그것은 전사한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아니였다. 친아버지의 사랑을 백배로 대신해주는 어버이의 품에 안겨 이때까지 얼굴에 그늘이 지게 하던 마음속그늘마저 송두리채 가시고 세상을 향해 밝은 얼굴을 쳐드는, 어버이를 찾은 이 나라의 한 소년의 행복에 넘친 부르짖음이였다.

고요한 밤하늘에 떠있는 뭇별들은 훈기를 안고 설레이는 광막한 이 밀림의 밤을 신비롭게 내려다보았다. 그 어떤 슬픔도 고통도 응어리채 씻어 정화시키며 어린 가슴들에 새로운 넋을 부어주는 거대한 사랑이 물안개처럼 굼니는 밀림의 밤이였다. 청신한 기운은 어디에나 떠있었고 이슬을 받기 시작한 밀림의 거목들은 력사의 이 한 자취를 년륜에 새기듯이 정적속에 숙연히 솟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