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4


 

제 5 장

4

 

어린것들이 집생각을 할가봐 우등불옆에 오래 나와앉아 아무 청이나 다 들어주며 노래까지 불러주신 장군님의 심정은 생각할수록 눈물겨웠다. 잠들수 없는 밤이였다.

강민은 넓은 숙영지안에 취침구령이 울리자 중대천막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중대에서 제일 모범인 1소대는 모든것이 정연하였다. 규정대로 배낭은 베고 총은 옆에 끼고 하나같이 질서있게 잠자리에 누웠다. 소대장 봉석이가 강하게 요구하여 군복은 물론 신발도 깨끗이 새 신처럼 말리워 신었다. 하지만 2, 3소대는 질서가 그렇지 못하였다. 누운모양도 제 각각이고 흙묻은 신발을 털지 않고 잠든 대원도 한둘이 아니였다.

강민은 잠을 갈개는 대원들을 바로눕혀주고 젖은 신발을 조심조심 벗겨가지고 우등불 있는데로 나왔다. 사위여가는 우등불을 다시 살리고 그앞에 앉아 젖은 신발을 한짝한짝 말리웠다.

그럴 때 우등불옆으로 송순이가 나왔다.

《동문 왜 나왔소?》

《···》

송순은 말없이 강민의 곁에 쪼그리고앉으며 자기도 젖은 신을 집어 불앞에 가져다대였다. 그들의 손에 들린 신발에서 흰김이 문문 피여올랐다. 강민은 형편없이 닳아빠지고 해진 신발을 말리워 옆에 놓으며 한숨을 쉬였다.

《잘두 꿰뜨리는군. 송순동무, 이거 또 신발공작을 나가야 하지 않겠소?》

《···》

《왜 대답이 없소?》

그래도 송순이쪽에서는 잠잠하였다. 강민이가 아무리 말을 걸자고 해도 우등불만 바라보며 대꾸가 없었다.

열컬레가 넘는 신발을 다 말리도록 말이 없더니 조용히 가버렸다.

(전번에 한마디 핀잔을 주었더니 저러는게로군. 녀자란 할수 없다니까.)

강민은 송순의 꽁한 마음에 말려드는 자신을 느꼈지만 장군님한테서 받은 과업이 떠올라 우등불앞에 필기도구를 가지고 다시금 나앉았다. 제강을 짜볼 생각이였다.

그러나 한줄도 못쓰고 붓방아를 찧기 시작하였다. 앉은자리에서 줄줄 내리쓸것 같지만 정작 종이장에 옮기자니 무슨 말로 운을 뗐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그는 사령부 비서처에서 견본으로 빌려온 제강을 펼쳐보았다. 이미 여러번 각 련대에 침투된 정치상학제강이였다.

《지난 8월 1일부터 5일간 초수탄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가 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회의를 지도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회의에서 조성된 정세를 랭철하게 분석한데 기초하여 대륙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종국적으로 패망하고 우리 인민의 항일무장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표명하시면서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일제가 대륙침략에 혈안이 되여 날뛰고있는 이때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압록강, 두만강 연안을 비롯한 광활한 판도에서 적배후교란작전을 더욱더 과감히 벌릴데 대하여 먼저 강조하시였다.···》

제강은 초수탄회의에서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방침들을 서술하고 그 방침의 정당성과 의의를 한조목한조목 쉬운말로 조리있게 해설하고있었다.

(이걸 읽어봐선 나도 제꺽 만들것 같은데 왜 안될가? 엑끼, 이놈의 잔태미!)

강민은 잠에 취하여 붓방아를 찧다가 벌써 몇번째 뒤덜미에 성가시게 달라붙은 잔태미를 손으로 때려잡았다. 손바닥에 금시 빨리운 피가 수두자리처럼 빨갛게 묻어났다.

맑게 들린 밤하늘에 얼레달이 무수한 별들을 거느리고 수림우에 금빛을 뿌렸다.

강민은 잔태미의 성화에 기분을 잡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머리를 좀 식혀야 할것 같아서 가슴을 펴고 페장깊이 심호흡을 하며 눅눅한 대기속을 천천히 걷다가 중대작식터앞에 이르러 발길을 멈추었다. 거기서는 송순이가 아직도 자지 않고 우등불앞에 앉아 무슨 역사질에 여념이 없었다.

송순은 사람이 옆에 와선 기미도 채지 못하고 무엇을 만들자고 그러는지 자귀로 나무토막을 열심히 깎고있었다. 한참 열심히 자귀질을 하다간 송골송골 내솟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일손이 서툴기도 하거니와 팔힘이 약하다보니 한번씩 자귀질을 할적마다 잣씨만 한 자귀밥이 겨우 떨어질뿐이였다. 그 일이 안타까운지 송순은 간혹 호- 한숨을 내쉬며 나무토막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했다. 그가 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감을 잡고 뒤채기만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강민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무엇을 만들자고 혼자 나와앉아 이렇게 신고를 할가?)

다음순간 강민의 눈길은 송순의 배낭옆에 놓인 절구에 박혔다. 며칠전에 자기가 만들려고 피나무토막을 지고다닐 때 머리속에 그린것과 꼭같이 생긴 절구였다. 강민은 놀랐다. 송순이가 만든 절구치고는 손재간이 여간 아니였다.

《송순동무, 이 절구가 어디서 났소?》

《어마나!》

송순은 강민이가 갑자기 나타나는바람에 깜짝 놀랐을뿐 절구를 누가 만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치마폭에 일감을 감추고 귀뿌리가 빨개서 돌아앉았다. 송순은 지금도 강민이가 절구를 파려고 지고다닌 피나무를 불살개로 만들어버린 일이 미안하고 송구해서 그를 마주볼수 없었다. 요즘 강민을 보기만 하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한것은 그때문이였다.

강민이가 눈치가 없다느니 이담에 누가 데려가겠는지 맘고생하겠다느니 하고 별소리를 다 했지만 그런 말을 백번 들어 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상권의 도움을 받아 피나무토막을 장만해놓고 틈틈이 남모르게 절구를 팠다. 로상권이가 자기한데 맡기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듣지 않고 밤마다 불무지앞에 나앉아 절구를 팠다. 송순의 심정을 기특히 여긴 로상권은 손을 뗐다가 마감세공일만 도와나서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절구공이는 강민중대장한데 부탁하라구. 절구를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강민동문데 혼자 다 만들어버리면 섭섭해하지 않겠소.》

송순은 웅심깊은 로상권의 귀띔이 고마왔으나 절구문제만은 강민이앞에 비치기가 부끄러워 차마 말하지 못했다. 공이도 제손으로 만들려고 지금 이렇게 신고를 하는중이였다.

강민은 물론 그런 내막을 알리 없었다.

송순의 손에서 자귀를 당겨잡은 그는 피나무토막 하나때문에 성낸 일이 후회되여 화해조로 말했다.

《송순동무, 내 잘못했소. 남자라는게 빈정거릴수도 있는건데 뭘 한번 보고 다시 안볼 사람처럼 그러오?》

《제가 어쨌어요?》

《말두 하지 않고 꽁해서 지낸 일은 잊은가보군.》

《그거야 미안해서 그랬지요뭐. 중대장동진 녀자의 마음을 알기나 해요?》

송순은 강민을 쳐다보려다가 용기가 나지 않는지 도로 고개를 숙이였다.

《그렇다? 하긴 내가 사람이 좀 모자라는것 같아. 송순동무앞에선 더구나 그렇게 생각되더라니까.》

《아이참, 별소릴 다 하시네.》

송순은 막 웃었다.

능글맞게 송순을 웃겨놓은 강민은 그쯤하면 기본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절구와 공이감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주세요. 남의 일감은 왜 가져가면서 그래요?》

《동문 가서 좀 쉬오. 이거야 어디 녀자가 할일이요.》

송순은 뜨거운 눈길로 강민을 바라볼뿐이였다.

얼마후였다.

송순은 소년중대천막쪽에서 들려오는 절구질소리를 가려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강민이가 쭈크리고앉아서 절구질을 하고있었다. 무엇을 저리도 열심히 찧을가? 송순은 울렁이는 마음을 가다듬듯이 함함한 머리를 매만지며 그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 벌써 공이를 만들었어요?》

《아, 송순동무요? 뭐 오래 주물것 있소. 대충 만들었지.》

《그런데 뭘 찧어요?》

송순은 그렇게 묻고나서 절구확을 내려다보더니 《아니?》 하고 외마디소리를 냈다.

《이게 율무가 아니예요?》

《옳소, 율무요.》

《어디서 났어요? 이건 약재가 아니예요?》

《송순동무, 사실은 얼마전에 장군님께서 준오의 허약한 몸을 빨리 추세워줄 무슨 방책이 없겠는가고 또 걱정을 하시였소. 그래 생각던끝에 적구로 나드는 통신원편에 부탁하여 이 율무를 구해오게 되였는데 절구가 없었지. 내가 피나무토막을 지고다닌것은 그때문이였소. 절구를 만들고는 이 율무까지 통채로 송순동무한테 안겨주려고 했더랬소.》

송순은 그 말을 듣고보니 강민의 마음을 너무도 몰랐던 자신이 한스러워 부끄러움마저 잊고 그를 마구 두드려주고싶었다. 장군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나무토막까지 지고다닌 사람이 왜 진작 그 말은 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강민에 대한 리해와 존경이 도리여 원망으로 바뀐 송순은 절구앞에 꿇어앉으며 얼굴을 싸쥐였다.

《강민동무, 전 어떻게 하면 좋아요? 왜 이렇게 바보짓만 할가요? 전 바보예요. 절 아무렇게나 꾸짖어주세요.》

《송순동무, 왜 그러우?》

강민은 황급히 송순이를 일으켰다.

《강민동무, 전 왜 이렇게 속이 좁을가요? 왜 옹졸할가요? 전 아무래두 강민동지를 리해하지 못할것만 같애요.》

강민은 송순의 팔소매를 잡아흔들며 그를 진정시켰다.

《동문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거요?》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송순은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며 분을 토로하였다.

《전 강민동무만큼 장군님 뜻을 받들려면 아직 멀었어요.》

《송순동무, 제발 그만하오. 동문 누가 할 소릴 하는지 모르겠구만. 어서 율무나 찧기요. 절구가 생겼는데 눈물은 무슨 생뚱같은 눈물이요. 그런데 이 절구는 누가 만들었소?》

《그건 저··· 로상권아바이가 만들어줬어요.》

《그것 참 상권동무다운 일을 했군. 한데 절구를 만들어주었으면 공이까지 마저 수고해줄것이지···》

《그건 저··· 상권아바이 말씀이··· 이 절구를 만들 생각을 한것은 강민동무라고 하면서··· 중대장동무가···》

송순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민은 송순이가 채 맺지 못한 뒤말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로상권의 그런 당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이를 제손으로 만들려고 애쓴 송순의 심정도 리해되였다.

쿵쿵― 은은한 절구소리가 다시금 고요한 수림속으로 울려갔다. 송순이가 눈굽을 찍어가면서 절구질을 하였다.

《중대장동무, 들어가시라요.》

《괜찮소. 나한테 맡기구 동무나 어서 들어가 쉬오.》

《일없어요.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마저 찧겠어요.》

《이러다간 또 싸움이 나겠군. 그럼 우리 같이 합시다.》

그들은 2∼3분씩 엇바꾸어가며 율무를 찧었다.

어느덧 뭇별마저 깜박깜박 조으는 새벽이 가까와왔다. 송순의 앞에 지켜앉았던 강민이가 잔디밭에 드러눕더니 이어 잠들었다. 팔베개도 안하고 풀대가 듬성듬성한 맨땅에 머리를 대고 깊이 잠들자 이따금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고달프게 몸을 뒤척거리였다.

송순은 어쩐지 강민에 대한 련민의 정이 끓어올랐다.

(이 사람도 부모가 없다지. 부모, 동생이 한날한시에 왜놈들의 총칼에 죽었다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 때가 많을가. 나도 부모없이 자란 녀자로 우린 서로 리해해주고 위해주어야 할 처진데··· 그런데 왜 난 강민동무를 쌀쌀하게 대해준적이 많았을가? 왜 그랬을가? 정말 나도 모를 일이야.)

새벽하늘에서는 별찌가 아득한 공간에 긴꼬리를 끌며 수림너머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민은 잠에서 깨여나자 자기 몸에 송순의 군복저고리가 덮여있는것을 깨닫고 가슴이 뭉클하는것을 느끼며 절구앞에 다가앉았다.

송순은 쑥스러워하며 잠이 설깬 강민이를 쳐다보았다.

《좀 잤어요?》

《음, 인젠 제발 좀 들어가보라구.》

송순은 절구공이를 꼭 쥐며 놓지 않았다.

《마저 찧어 율무쌀을 가지고 들어가겠어요. 제 잊지 않고 매일 한공기씩 준오한테 쒀주겠어요.》

《송순이, 고맙소. 정말 고맙소. 아마 송순동무의 그 성의면 준오가 곧 혈색이 좋아질거요. 빨리 장군님께서 준오에 대한 걱정을 놓으시도록 힘을 합쳐 잘 보살펴주자구.》

강민은 송순의 손에서 공이를 넘겨받았다.

송순은 조금 비켜앉아 쿵쿵― 율무를 찧고있는 강민의 옆모습을 입술을 깨물며 바라보았다.

그러나 강민은 송순의 마음속움직임을 아는것 같지 않게 이미 다른 말을 꺼내고있었다.

《송순동무, 이제 지휘원병사대회때 최춘국려단장동지도 온다오. 그 동무들이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고생스럽게 오는것 같다고 장군님께서 오늘 말씀이 계셨소. 최춘국동지가 오면 준오를 꼭 찾을거요. 잘 아는 사이니까. 아마 최춘국동지한테도 얼굴이 불깃해진 준오를 보여주면 좋아할거요.》

송순은 자신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저, 지휘원병사대회는 언제 한대요?》

《며칠 안남았다는것 같소.》

강민은 적삼소매까지 걷어붙이고 열심히 절구질을 하였다. 그한테는 정말 시간을 다투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