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3


 

제 5 장

3

 

며칠동안 계속된 어려운 행군에 지칠대로 지친 대원들은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내처 휴식을 하였다. 숙영지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은 대원들은 신발과 군복을 손질하기도 하고 무기청소도 하였으며 어떤 중대에서는 모여앉아 오락회도 벌리였다.

하늘은 아직 들리지 않았지만 비는 새벽녘에 멎어 숲속에 떠돌던 눅눅한 습기도 가시여지고 발목이 빠지던 부식토가 한벌 깔린 땅이 마르기 시작하였다.

오전내내 지하조직에서 보내온 자료들을 종합분석하시면서 전혀 휴식을 못하신 장군님께서는점심을 드신 후에야 짬을 내시여 숙영지를 돌아보시였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잠이 없는 비서처 권학식이 장군님과 동행하였다. 어찌다가 차례진 조용한 시간이여서 권학식은 여간 기쁜 마음이 아니였다. 권학식은 장군님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그런 때를 늘 갈망하였으며 그런 기회가 오면 제일 행복해하였다. 오늘 권학식의 기쁨은 한층 더하였다. 이 며칠동안 불철주야로 일하시던 장군님께서 휴식시간을 내신것이였다.

지난밤의 비에 말끔히 씻긴 숲은 더욱 싱싱해보였고 따뜻한 해빛이 나무가지사이로 비쳐들어 권학식의 기분은 여느때없이 명랑하였다. 지금 그는 무릎을 치는 새초밥을 헤치면서 국제정세에 대한 장군님의 분석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있었다. 복잡다단하고 격동하는 세계정세는 매일 매 시각 그에게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권학식은 습관적으로 장군님의 말씀을 마디마디 기억해두려고 애쓰면서 그이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장군님께서는 아시아정세와 관련한 구미렬강들의 움직임을 두고 말씀하시였다.

《미국은 국제여론을 기만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일본의 대륙침략을 비난하고있으나 실은 묵인지지하고있습니다. 미국은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석유, 선철과 같은 전략물자수출을 급격히 늘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이렇게 교활하고 음흉합니다.》

권학식은 비서처에서 국제정세를 해설하는 제강을 작성하고있다는것과 제강이 완성되면 각 련대에 배포하여 대원들속에서 강연사업을 벌릴 계획이라고 말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강연제강에다 이런 내용을 첨부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미국의 본심은 어데 있는가. 미국은 일본을 뒤에서 부추겨 중국침략을 두둔하고 장차로는 동맹관계에 있는 독일과 함께 쏘련을 반대해서 싸우도록 하려고 한다. 이것이 미국의 속심이다. 이렇게 해설을 달아주는것이 좋겠습니다.》

《장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제강내용이 깊어지고 분석이 더욱 예리해지겠습니다.》

권학식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품속에서 꺼내든 자그마한 수첩에 재빨리 몇자 적었다.

《정세제강을 만들 때는 정세개괄도 중요하지만 우리 혁명의 립장에서 정세자료를 종합분석해주는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유격대원들이 정세에 주동적으로 림하도록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장군님,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종종장군님의 방조를 청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권학식의 진정에 넘친 목소리를 들으시며 소리없이 웃으시였다.

《그렇게 합시다. 나도 도와주겠습니다.》

소년중대숙영지는 습지대를 벗어져서 양지쪽의 잣나무숲속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소년중대원들은 풀숲에서 묵은 잣송이를 찾느라고 법석 떠들고있었다. 장군님께서 도착하시였을 때 인수와 준오는 선참으로 달려와서 손을 펼쳐들었는데 손바닥에는 노란 잣알이 해빛에 반짝거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잣알을 손에 들어보시며 웃으시였다.

《용케도 얻었구나, 그래 인수는 어떠냐? 인제는 피곤이 풀렸겠지?》

인수는 자세를 바로잡고 총기있는 눈을 깜빡이며 신바람나서 대답하였다.

《예, 힘이 막 솟습니다.》

《그래? 그럼 좋아. 나하구 갔다올데가 있다. 인수가 길안내를 좀 해야겠다. 너 그 삼밭을 찾을수 있겠냐?》

인수는 처음에는 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어 자신이 있는듯 기운찬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예, 찾을수 있습니다. 부대가 휴식하던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골짜기가 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인수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시며 웃으시였다.

《그럼 네가 길안내를 좀 하거라. 내 그 삼밭엘 다녀와야겠다.》

준오며 광호를 비롯한 소년중대원들은 인수의 주위에 뭉켜서서 호기심에 찬 눈으로장군님과 강민의 모습을 살피고있었다.

모두 장군님을 따라 그 삼밭에 갔으면 하는 욕망에 차있었다. 삼밭을 한번 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강민의 얼굴빛은 벌써 어두워졌다.

그는 벌쭉거리는 인수의 철없는 행동을 못마땅한 눈으로 흘끔 바라보다말고 장군님앞으로몇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간청하다싶이 말씀드렸다.

《장군님, 제가 갔다오겠습니다.》

강민은 벌써 장군님의 뜻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장군님께서도 휴식을 좀 하셔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오늘 새벽에도 강민은 숙영지의 보초소들을 돌아보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보았고 오전에 사령부에서 지휘관들의 모임이 있었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러고보면장군님께서는 전혀 휴식을 못하셨을것이였다. 래일은 어려운 행군이 예견된다.

《좋소, 그럼 중대장동무도 같이 갑시다.》

강민은 하는수없이 장군님을 모시고 숙영지를 떠났다. 장군님의 지시로 경위중대에는 알리지 않았다.

나무가지를 꺾어든 인수는 일행의 앞장에 서서 허리를 치는 풀숲을 헤치였다. 나무가지를 휘둘러 풀대를 쓸어눕히기도 하고 인기척에 놀라 하늘높이 날아오르는 메새를 쳐다보기도 하면서 기운이 뻗쳐 씨엉씨엉 걸어갔다. 인수는 지금 장군님께서 삼을 구하시기 위해 그리로 가시는줄로 알았다. 자기가 장군님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하게 된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신명이 나서 뛰여가는 인수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장군님께서도 미소를 지으시였으나 강민은 삼밭에 다달을 때까지 묵묵히 침묵만 지키였다.

《다 왔구나! 장군님, 여기가 인삼밭입니다.》

저만큼 뛰여간 인수는 양지바른 공지에 이르러 환성을 올리였다.

그것은 크지 않은 인삼밭이였으나 주인의 성실한 손끝에서 알뜰하게 가꿔져있었다.

벌써 밭에 들어선 장군님께서는 자꾸 앞으로 흐르는 전투가방을 벗어 인수에게 주시고 인수네의 발자국이 찍힌 밭이랑을 손질하기 시작하시였다. 한옆으로 기울어진 인삼포기들을 조심스럽게 세우시고 반나마 뽑힌 포기는 흙을 끌어다가 북을 돋구어주시고 허물어진 이랑은 다시 바로잡아주시였다. 강민이도 열성껏 장군님의 뒤를 따라가며 밭을 정리하였다.

전투가방을 손에 들고 이 모든것을 바라보는 인수의 얼굴에는 마음속의 뉘우침이 어리였다. 인수는 머리를 떨군채 묵묵히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히시고 일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바라보면서 자기의 발밑에 밟혔던 인삼포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을 끝내신 장군님께서 손에 묻은 흙을 샘물에 씻고 이마의 땀을 훔치실 때까지도 인수는 이깔나무그늘밑에 말없이 서있었다.

《인수, 이리 오너라.》

장군님께서는 가까이 온 인수의 손목을 이끄시며 삼밭아래쪽에 있는 산전막으로 가시였다. 인수가 알고있는 산전막이였다.

《주인님 계십니까?》

문앞에 이른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낮추시며 낮은 목소리로 주인을 찾으시였다.

산전막안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기다려보시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여시였다. 어두운 방안의 통나무벽에는 노루가죽조끼가 걸려있고 그우에는 때국이 흐르는 광목수건이 얹혀있었다. 자그마한 남비가 걸린 부뚜막에는 귀가 떨어진 바가지와 밥사발 한개, 그우에 나무저가락이 당그랗게 놓여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마당가에 넘어진 절구를 세워놓고 장작더미우에 앉으시였다.

《인수, 가방을 가져오너라.》

인수는 들고있던 전투가방을 장군님께 드리였다.

《강민동무, 주인이 없으니 편지라도 한장 써놓고 가야겠소. 내 편지를 쓸동안 밭에서 주어온 삼뿌리를 손질해놓소.》

장군님께서는 전투가방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시여 편지를 쓰시였다. 강민은 뽑혀진채로 있던 인삼 여덟뿌리를 종이에 접어 싸서 부뚜막우에 올려놓았다.

인수는 장군님의 어깨뒤에서 종이를 넌지시 내려다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인민혁명군부대에 있는 소년들이 여기를 지나가다가 삼밭인줄 모르고 밟아놓았는데 널리 량해하라고 쓰시고 인삼값을 두고가니 받아달라고 하시였다.

그리시고는 군복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시여 종이우에 놓고 그우에 목침을 꼭 눌러놓으시였다.

고개를 떨군 인수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됐다. 그만하거라.》

장군님께서는 인수의 어깨를 쓸어주시다가 품에 꼭 껴안으시였다.

이날밤 강민은 도무지 잠들수가 없었다. 삼밭까지 그토록 먼 길을 다녀오신 장군님의 로고와 자기의 잘못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장군님께서 인수를 데리고 직접 삼밭에 갔다오신 걸음이 인수만이 아니라 중대장인 자기까지 교양하시기 위한 걸음이였다는것을 생각할 때 송구스러워서 도저히 가만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또 그대로 장군님을 찾아가서 사과의 말씀을 올렸다.

《사령관동지, 모든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중대장인 제가 미처 살피지 못해서 인수가 그런 행동을 하였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오지랖이 넓게 모든 책임을 혼자 다 뒤집어쓰는 강민을 바라보며 웃으시였다.

《허허, 책임이 어떻게 동무한테 다 있겠소, 나한테도 있지. 동무가 잘못한것은 그게 아니요. 어제 동무가 진짜 잘못한것은 인수를 그의 준비정도에 맞지 않게 다른 대원들앞에 내세우려고 한 그것이요. 그렇게 하면 그애는 무엇이 되겠소? 량심을 파는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겠소. 환경에 따라 눈치를 보며 발라맞추는 아이가 될수도 있소. 대원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잘못은 제때 깨우쳐주고 약한 점은 키워주면서 원칙적으로 교양해야지 인수한테 없는 비단보자기를 씌워주는것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소. 목적이 어디에 있었건 동무가 인수를 준비된 이상으로 내세우려고 한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였소.》

인수를 내세워 봉석의 버릇을 고쳐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에 와서 강민은 생각되는바가 많았다.

《사령관동지, 사실 저는 인수가 삼밭에까지 함부로 들어갈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아직 중대원들을 잘 모르는것 같습니다.》

자책에 잠긴 강민의 말을 듣고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강민동무가 아직 중대원들을 잘 모른다고 한것은 바로 한 말인것 같소. 인수경우만 봐도 그렇지. 그애는 어머니가 밥주걱으로 가마밑을 긁어가면서 귀밀죽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늘 아래목에서 재워 고생을 그리 못해보았소. 그러다보니 각오는 좋지만 의지를 단련할 기회가 적었지. 이번에 인수가 함부로 삼밭에 들어간것도 기본원인은 물론 인민에 대한 관점이 바로 서있지 못한데 있지만 다른 한측면에서 볼 때는 참고 견디는 의지가 약한데 있었소. 그런가 하면 준오는 어떻소? 인수와는 달리 어린 동생을 데리고 떠돌아다니며 숱한 고생을 하다보니 몸이 허약해지고 신경이 예민해져서 걸핏하면 성을 내는것이 흠이요. 덕만이는 겁이 좀 있고 광호는 허풍이 좀 있고··· 그러니만큼 동무는 나그네 말죽 먹이듯이 한뽄새로 그들을 대하지 말고 준비정도와 성미에 맞게 이끌어주고 단련시켜야 하오.》

장군님께서는 강민을 조용히 깨우쳐주고 생각에 잠기셨다가 수첩을 꺼내서 펼쳐보며 말씀하시였다.

《그리구 한가지 부탁할것이 있는데 래일모레가 중대에서 그중 어린 관식의 생일이요. 부모도 없는 그 어린것이 산에 들어와서 처음 맞는 생일인데 미리 뭘 좀 준비했다가 섭섭치 않게 해주시오.》

강민은 순간 가슴이 뭉클하는것을 느꼈다.

그는 장군님께서 지금 펼쳐드신 수첩이 어떤 수첩인가를 잘 알고있다. 그것은 우리 혁명의 근본방침과 전략적문제들에 대한 장군님의 사색의 정화들과 가장 근본적인 의의를 가지는 중대사들이 극히 간략된 표현으로 한두줄씩 적혀있는 수첩이였다. 후일에 사가들이 수만페지의 저술속에 담아도 그 불멸의 의의를 다 분석해줄수 없는 력사의 거룩한 자취들이 적혀있는 수첩에 관식의 생일날이 적혀있을줄은 참으로 몰랐다.

그런데 강민이가 더 놀랍게 생각한것은 장군님께서 어린 대원들의 우단점이며 성미와 생일에 이르기까지 언제 그처럼 자세히 료해하시였는가 하는 그것이였다.

강민은 전에도 기관총소대장으로서 사령부가까이에 있었고 새로운 책임을 맡은 후에도 늘 사령부곁에 있어서 장군님의 일과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련일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들을 통해 사령부산하 모든 부대들과 국내외의 광활한 판도에 뿌리박은 조국광복회조직들은 물론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정형까지 장악하고 천사만사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친히 세워주시는 그 분망한 속에서 큰 전투들을 몸소 구상하고 사처에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담화도 하고 조용한 틈이 생기면 혁명전반을 놓고 사색을 하시며 밤깊도록 대원들을 위한 교양자료를 집필하시였다. 하다보니 그이께서 언제 잠자리에 눕고 언제 일어나시는지 그것은 아무도 몰랐다. 늘 사령부가까이에 있는 강민이도 몰랐다. 잠들기전에 사령부를 바라보면 언제나 불빛이 환히 새여나왔고 깨여나보면 어느새 일어나시였는지 장군님께서는 벌써 넓은 숙영지를 돌아보고 들어오시는것이였다.

생각할수록 강민은 얼굴이 뜨끈해지도록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 없었다. 안고있는 책임으로 보면 그것은 애당초 감히 대비도 할수 없는 량이였다. 장군님께서 거창하고 간고한 조선혁명을 령도하시는데 비하면 강민이자신은 중대원들만 책임지면 된다. 그러나 중대장이라는 사람이 아직 자기 중대원들에 대한 명단 하나 똑똑한것이 없고 그러다보니 교양대책도 여태 변변히 세워놓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강민동무가 생소하고 어려운 일을 맡아안고 고충이 많을것이라고 그가 하는 사업의 난점에 대한 깊은 리해를 표시하시며 준비정도와 성격으로 보아 교양에서 특별히 류의해야 할 십여명의 대원들에 대하여 자신께서 생각하시는바를 더 이야기해주고나서 강조하시였다.

《중요한것은 그애들한데 세계관을 똑바로 세워주는것이요. 그러자면 우리 혁명군이 지침으로 삼고있는 혁명사상과 계급교양, 반제교양에 대한 상학과 이야기모임도 자주 조직하고 동무자신부터 공부를 많이 해야 하오. 앞으로 공부를 하다가 모를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구. 동무가 요구하면 아무때고 시간을 내겠소.》

강민은 자꾸만 후더워지는 가슴에 새로운 의욕과 자신심이 차오르고 눈시울이 더욱 뜨거워지는것을 느끼며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명심하겠습니다.》

《음, 잘해보자구.》

장군님께서는 신뢰가 담긴 이 한마디로 그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표시하시며 한가지 과업을 주시였다.

《강민동무, 정치상학제강을 짜본적이 있소?》

《아직 제강이라고는 한번도 짜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이번에 한번 짜보오. <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수 없다> 이런 제목으로 하나 잘 짜서 중대원들앞에서 동무가 직접 상학을 하는것이 좋겠소.》

강민은 어쩐지 그 일이 간단치 않을것 같았다. 원체 자기는 싸움군이지 정치사업에는 통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온 강민이였다.

《사령관동지, 그런 제강이 비서처에 있을것 같습니다.》

《있지, 내가 말하는것은 중대원들의 실정에 맞는 제강을 동무 손으로 하나 만들라는거요.》

장군님께서는 제강을 짜는데서 류의할 점을 강조하고 천막문을 들치시였다.

구질거리던 하늘이 들리고 달빛이 천막안으로 비쳐들었다. 비온 뒤끝이여서 구름속에서 빠져나온 얼레달은 샘물에 세수를 하고난 아기의 얼굴처럼 말쑥해보였다.

장군님께서는 구름사이를 헤염쳐가는 상현달을 잠시 내다보다가 강민이쪽으로 돌아서시였다.

《강민동무, 우리 함께 그애들한테 나가보지 않겠소? 이런 날은 그애들이 집생각을 할수 있지···》

천막우로는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바람소리가 지나갔다. 강민은 장군님을 모시고 사령부천막에서 나왔다. 밖은 어디라없이 아직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장군님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고 비구름이 떠있는 밤하늘과 찬바람이 불어치는 숙영지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시였다.

우중충한 숲속에서는 우등불이 사방에서 타올랐다. 강민이네 중대원들은 사령부천막에서 그중 가까운 우등불옆에 둘러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큰소리로 웃으며 떠들썩하였다.

장군님께서 그리로 걸음을 옮기시는데 촉기빠른 봉석이가 어느새 알아차리고 달려왔다. 그는 중대원들이 기다린다고 장군님을 우등불옆으로 모셔갔다.

《음, 여기 다 있구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있소?》

《예, 이 동무들이 달을 보니 어쩐지 집생각이 난다고 한창 고향이야기를 하던중입니다.》

봉석이가 네모난 돌덩이를 그이께 하나 가져다드리며 말씀드렸다. 대원들은 땅이 아직 축축하여 전부 돌멩이를 깔고앉았다.

우등불에 넣은 젖은 나무가 실실거리며 탕ㅡ 소리를 낼적마다 콩알만 한 불찌가 사방으로 튕겼다. 장군님께서 광호의 바지가랭이에 붙은 불찌를 털어주시며 생각에 잠겨 말씀하시였다.

《그래 고향이야기를 했단 말이지. 달이 밝으면 고향생각을 하게 되지.》

숙영지우에 뜬 달은 살같이 달리며 구름속으로 사라졌다가는 숨박곡질하는 아이처럼 검푸른 밤하늘로 불쑥 튀여나왔다. 그때면 컴컴하던 수림이 륜곽을 드러내였다. 중대원들은 수림우에 신비한 음영을 던지며 조화를 부리는 밝은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늘에 외로이 떠있는 달에도 은근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엇이 있는듯 하였다.

동무들과 같이 눈물이 그렁하여 달을 바라보던 관식이가 느닷없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귀밀떡이나 먹었으면 좋겠구나.》

《귀밀떡?》

옆에 앉은 광호가 그런것도 있는가고 기웃거리자 관식이는 귀밀떡자랑을 늘어놓았다.

《너 귀밀떡을 먹어보지 못한것 같은데 우리 고장에서는 그걸 제일 일러준다. 귀밀떡은 미끈미끈한 맛에 먹는다. 입에 넣고 씹자고 하면 어느새 배속에 내려가있거든.》

그 말을 들고 광호는 입에 넣기도 전에 배속으로 미끄러지는것도 떡이냐고 웃어버렸다.

《우리 고장에선 그런 귀밀떡같은것은 안먹는다. 돼지나 먹여.》

관식이는 발끈 약이 올라 대들었다.

《얘, 너희네 고향은 도대체 어딘데?》

《저, 홍원이라는데다.》

《홍원? 그게 조선땅이냐? 그래, 거기선 대관절 무얼 제일 일러줘?》

두 동무가 서로 제고장 자랑으로 열을 올리며 싱갱이질을 하는것을 옆에서 모두 재미나게 구경하였다.

《우리 고장에선 무얼 제일 일러주는가 하면 털게다. 홍원털게, 알겠니?》

웃음통이 터졌다. 물고기를 짚으려면 온전한것을 짚을것이지 하필이면 궁상맞게 옆으로 기여다니는 털게를 제일이라고 내대는것이 우스웠다.

장군님께서도 따라웃으시며 게면쩍어하는 광호를 바라보셨다.

《광호가 자랑할만도 하지. 홍원태생이 털게자랑을 안하면 되나. 사철 푸르고 아름다운 동해바다에는 명태, 가재미, 방어, 이면수, 낙지 같은 물고기들도 욱실거린다. 지주집보다도 큰 고래도 있고···》

대원들은 고래가 지주집보다도 크다는 말씀에 눈이 둥그래지며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왜, 놀라우냐? 우리 나라 바다에는 별의별 물고기들이 다 있다. 바다만 그렇겠니, 땅속에는 은금보화가 가득하고 지방마다 특산물이 한가지씩은 다 있지. 이 봉석동무네 고향에도 중대장인 강민동무네 고향에도 내가 나서자란 고향에도 있지.》

대원들은 들쭉과 약밤, 귀밀떡을 제일로 일러주는 자기 고향, 태줄을 묻고 유년시절을 보낸 정든 고장을 두고 달콤한 추억에 잠겼다. 이럴 때 광호가 장군님옆으로 바투 다가앉으며 조심히 물어보았다.

《장군님 고향에서는 무얼 제일 일러줍니까?》

장군님께서도 구름낀 밤하늘과 은은한 달빛에 젖어있는 숙영지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시였다. 수려한 만경대의 산천이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유년시절 짚신을 신고 성안에 드나들며 익혀둔 평양의 모습도 눈앞에 선하시였다.

예로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일러오는 을밀대의 봄풍경, 달맞이 좋은 부벽루, 깎아지른 청류벽, 선조들의 재능이 깃든 련광정과 대동문, 실실이 휘늘어진 릉라도의 버들··· 모든것이 유정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너희들, 평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느냐? 평양에서 음식으로 제일 일러주는것은 랭면이다.》

그이께서는 시원한 평양랭면이야기를 꺼내시였다.

《평양랭면.》 하면서 중대원들은 아득히 먼 남쪽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대원들의 귀에는 회억에 잠기신 장군님의 목소리가 꿈결에서처럼 들려왔다.

《평양은 고구려의 옛도읍지로 우리 나라의 오랜 문화를 자랑하는 고적과 유물이 많고 전해오는 이야기도 많은 곳이다. 옛날부터 평양사람들은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여 외적들이 침범해오면 한사람같이 떨쳐나 나라를 지켜싸웠다. 임진조국전쟁때에도 평양사람들은 왜적을 영용하게 물리쳤다. 그때 김응서장군이 발휘한 용맹과 계월향같은 녀인의 애국적인 절개는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유명하다. 평양사람들은 대동강으로 침입해온 미국해적선 <셔먼>호도 불살라 물속에 처넣었고 3. 1운동때에는 또 일제를 반대해서도 용감히 싸웠다.》

장군님께서 평양에 대하여 절절한 회포를 안고 이야기하시는것을 보고 이번에는 관식이가 조개턱을 쳐들며 물어보았다.

《그럼 장군님께서는 평양이 고향입니까?》

심취해 듣고있던 중대원들이 일시에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 어디서 태여나 어떻게 자라시였는가 하는것은 이들에게 있어서 큰 관심사였다. 아무튼 장군님께서만은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세상과 동떨어진 그 어떤 전설적인 곳에서 이 땅우에 내려오시였을것만 같이 생각되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호기심에 차서 눈이 초롱초롱해진 대원들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평양성안에서 서쪽으로 20리 나가면 만경대라는 곳이 있어. 거기가 바로 내 고향이란다.》

《만경대, 아, 만경대!》 좌중이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장군님, 만경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대원들은 여기저기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이구동성으로 졸랐다.

장군님께서는 조용들 하라고 손짓을 하시였다.

《들려주지.··· 만경대는 참으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앞에 있는 남산에 사철 소나무가 푸르고 그밑으로는 맑은 대동강물이 굽이친다. 집앞에 졸졸 흐르는 내물을 따라가면 순화강이라는 강이 있고 집뒤로는 살구꽃 피는 남리언덕이 있지.》

대원들은 《야-》 하며 만경대의 아름다운 풍치가 눈앞에 보이는듯 손벽을 마주쳤다.

《땅은 척박하다. 그런 땅마저 지주놈이 다 가지고있어서 우리 할아버지는 지금도 거기서 소작살이를 하고있지. 좋은 할아버지야. 일년 열두달 어뜩새벽에 나가 거름도 모아들이고 김도 매면서 쉴새없이 일하시였다. 지금도 그러실거야. 너희들 아마 우리 할아버지 손을 보면 놀랄게다. 너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손도 그렇겠지.》

대원들은 사뭇 놀라는 표정이였다. 장군님한테도 자기네 할아버지와 꼭같이 고생하는 할아버지가 계신다는것이 기이하게 들리였던것이다.

우등불속에서 젖은 나무가 타며 탕ㅡ 하더니 또 불찌를 사방으로 튕겼다. 2소대장 주용길이가 장군님의 손등에 떨어진 불찌를 털어드리며 일어서서 청을 드렸다.

《장군님, 고향이야기가 난김에 어리실 때 천리길을 걸어 고향 찾아나가시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너희들 그 말은 어디서 들었니?》

《어떤 구대원한테서 들었습니다. 구대원들은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어서 들려주십시오.》

2소대장이 재삼 청을 드리자 저마끔 그 이야기를 듣고싶다고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누구든 꼭지를 떼면 즉석에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떠들어대는 이들의 성미를 모르시지 않았다.

《앉아라 앉아, 너희들이 듣고싶다면 이야기해야지.》

중대원들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자기들의 청이라면 꼼짝 못하고 들어주시는 장군님을 응석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없이 장군님뒤에 서있던 강민이도 한옆에 가앉았다.

장군님께서는 우등불에 나무를 몇가치 집어넣고 멀리로 흘러간 그 시절을 기억속에 살리며 이야기를 조용히 꺼내시였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퍽 어렸을 때 혁명활동의 중심지를 압록강연안으로 옮기시였다. 그래서 나는 여덟살때 아버지를 따라 고향 만경대를 떠나게 되였다. 중강, 림강을 거쳐 열살때부터는 팔도구에서 살게 되였지. 거기서 소학교를 다녔다.

내가 팔도구소학교를 졸업한 다음 어느날 아버지는 나에게 조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구나. 아마 고향에 나가서 우리 나라 글을 더 잘 배우고 왜놈들 통치밑에서 인민들이 어떻게 학대받고 고생하는가를 직접 보게 하자는 생각에서 그러신것 같다. 그때 내 나이가 열두살이였는데 아버지는 나더러 만경대로 혼자 가라고 하시질 않겠니. 그래서 3월중순에 팔도구를 떠나 만경대고향집에 나갔는데 그게 바로 천리길이였다.》

장군님께서 이야기를 끝내신듯 더 말씀이 없는것을 보고 관식이가 그이 턱밑으로 다가들었다.

《장군님, 천리길을 어떻게 혼자서 가시였습니까?》

《아버지가 목책에 로정을 적어주셨지. 후창에서 어디까지는 몇리, 강계에서 어디까지는 몇리, 이렇게 평양까지 가는 로정을 적어주고는 전보는 두번 치되 강계에서 한번 치고 평양 가서 한번 치라고 하셨다.》

《적어주신대로 바로 가셨습니까?》

《물론 갔지.》

《발이 아프지 않았습니까?》

누가 묻는지 알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저마끔 한마디씩 물었다.

《왜 아프지 않았겠니. 강을 건너 강계로 나가자면 오가산령을 넘어야 했는데 후창에서부터 이백리길을 이틀인가 사흘인가 걸어서 령밑에 이르고보니 벌써 발이 부르터서 물집이 생겼더구나. 그때 령밑에 마방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로인이 혀를 끌끌 차면서 내 발에 딱총을 놓아주시였다.》

《그때 딱총 놓는 법을 배우셨습니까?》

《그럼, 로인의 말이 오가산령은 범과 곰같은 맹수들이 많은 고갠데 어떻게 혼자 넘겠느냐고 걱정해주면서 가다가 발이 부르트면 딱총을 놓으라고 성냥 한갑을 주시더구나. 고마운 로인이였다. 그 성냥으로 딱총을 놓으면서 종일 오가산령을 넘어 강계로 나갔지. 아버지가 잘 아는 객주집에서 하루밤 자고 다음날 강계우편국으로 갔는데 전보용지를 받아들고 한참 생각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누군가가 우등불너머에서 령감목소리로 물어왔다.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그랬다. 전보문 한자에 3전씩인데 여섯자를 넘으면 1전씩 더 받는다고 하질 않겠니.》

장군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두고 여럿이 울먹거리며 물어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궁리끝에 <강계 무사도착>이라고 여섯자 전보문을 만들어 아버지앞으로 전보를 쳤다. 그리구는 객주집으로 들어가니까 주인이 한 열흘 있으면 평양으로 나가는 자동차편이 있는데 그때까지 자기네 집에 더 묵어있으라고 하더구나. 내가 길이 바빠서 빨리 가야겠다고 하니까 객주집주인은 짚신 두컬레를 삼아주었다. 나는 짚신 한컬레는 신고 한컬레는 메고 객주집을 떠났다. 정 다리가 아프면 지나가는 달구지도 좀 얻어타면서 걷고 또 걸었지.》

《며칠만에 가셨습니까?》

《팔도구를 떠난지 열사흘만에 고향집에 들어섰다.》

《고향집에 들어서실 때 마음이 어땠습니까?》

중대원들은 버릇도 없이 별것을 다 물어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조금도 타내지 않고 웃으시였다.

《어쩐지 여덟살때 떠난 고향집 사립문안에 들어서니 울컥 울음이 나올것 같더구나. 그렇지만 나많은분들이 계시는데 밝지 못한 얼굴로 들어서서야 되겠니. 사립문안에 서서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불렀다. 해질무렵이였는데 손자가 고향집으로 들어서는걸 보고 아래방에서 물레질하시던 할머니와 웃방에서 멍석을 틀던 할아버지가 버선발로 뛰여나오시였다.

할머니는 나를 끌어안은채 <이게 누구냐, 누구하고 함께 왔느냐? 뭘 타구 왔느냐?> 미처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물으시였지. 그러시고는 방안으로 들어가자 어린게 천리길을 혼자 걸어온것만 해두 애처로운 일인데 로비까지 아껴쓰고 남겨왔다고 우시더구나.》

광호가 옆에서 입을 비죽거리며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칭찬은 안했습니까?》

《왜 안해. 칭찬두 했지. 그 먼길을 걸어오자니 다린들 얼마나 아팠겠는가고 하시면서 <네가 사낸 사내로다.>라고 하시질 않겠니. 난 할머니가 칭찬해주니까 다리가 아픈것도 잊고 여기 이 봉석동무처럼 안아프다고 했다.》

봉석은 위신을 차리고앉아 듣고있다가 장군님께서 자기를 꺼드시는바람에 면구스러워하며 말씀드렸다.

《장군님, 이 동무들한테 그때 만경대에 나가셨다가 고향을 떠나오던 이야기도 마저 들려주십시오.》

《그래? 소대장의 청인데 들어야지.》

좌중은 더욱 조용해졌다. 저마다 축축히 젖어드는 눈굽을 찍으며 밭은 기침을 깇었다.

장군님 목소리도 젖어들었다.

《내가 고향에 나가서 보낸 이태동안은 조국을 깊이 알고 우리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뼈에 사무치게 체험케 한 나날이였다. 그런데 내가 열네살나던 해 정월중순에 우리 아버지가 왜놈들에게 체포되였다는 소식이 나오질 않았겠니.

나는 소식이 온 다음날로 팔도구로 들어가기 위해 길떠날 차비를 하고 만경대고향집을 나서게 되였다. 길차비래야 얼마간의 로자와 밤새워 할아버지가 삼으신 짚신 두컬레, 할머니가 꾸려준 삶은 고구마 몇알이 든 자그마한 꾸레미가 전부였다.

추운날인데도 온 집안식구들과 마을사람들이 바래주러 나왔더구나.

남리언덕에 이르러 식구들과 마을사람들더러 추운데 더 나오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허리굽혀 절을 하였다.

<할아버님··· 할머님··· 부디 편안히 계십시오. 저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나라를 찾기전에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들어가시라고 하는데도 천리길을 다 바래우지는 못해도 정거장까지야 어찌 혼자 보낼수가 있겠는가고 하면서 평양역까지 나오시였다. 칠골에서도 작은 외삼촌과 다정히 지내던 여러 동무들이 역에 나왔는데 그들은 헤여지기가 섭섭하여 날 에워싸고 눈물을 흘리며 기차가 떠날 시간이 되였는데도 놓아주질 않았다.

기차가 기적을 울리면서 떠나려 하자 윤범이라는 동무가 흰봉투 한장과 사과 한꾸레미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렬차가 떠나는데도 동무들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막 달려오더구나. 난 할아버지와 동무들에게 인사를 하고 또 할아버지와 동무들은 손을 저으며 따라오면서 그냥 무어라고 소리치는데 기차가 기적소리를 길게 울리는바람에 알아듣지는 못했다.

기차가 몇정거장 지난뒤에 쓸쓸히 윤범이가 준 봉투를 뜯어보니 그안에는 로자에 보태라고 돈 3원이 들어있더구나. 눈물이 나오더라. 돈 3원이 커서보다도 그 성의가 고마왔다.

난 지금도 그때 일이 잊혀지질 않는다. 개천까지 기차를 타고 걸어서 만경대를 떠난지 열이틀만에 팔도구가 건너다보이는 포평나루터에 이르렀지.

눈덮인 압록강기슭에 서서 저녁어둠에 잠겨있는 조국산천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걸음을 재촉하여왔지만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조국이라고 생각하니 안겨오는 조국의 산발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떼여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때 나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며 내가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이렇게 생각하니 슬픔을 금할수가 없었다.

내가 팔도구집에 도착하여보니 아버지는 이미 탈출하여 무송에 들어가계시였다. 그래서 적들은 아버지를 찾느라고 우리 집에 감시를 붙이고 사방에서 수색소동을 벌리는중이였다.

어머니는 두해동안 떨어져있던 아들을 만나 무척 반가와하면서 <만경대집과 외할머니댁에서 다 잘 계시더냐?>라고 몇마디 물어보고는 오늘밤중으로 동생들을 데리구 여기를 떠나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 나는 고향집에 나가있다가 천리길을 걸어서 집에 온것만큼 어머니가 다문 며칠이라도 함께 있자고 하실줄 알았는데 그날밤으로 떠나라고 하는데는 정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머니는 두부지지개를 끓여놓고 저녁 한끼를 같이하고는 그달음으로 떠나라고 하시였다. 내가 어디를 가야 하는가고 물으니 어머니는 림강에 있는 로경두네 집에 찾아가라고 하시였다. 로경두는 우리 아버지친구였다. 나는 어머님 말씀대로 그날밤으로 두동생을 발구에 태워가지구 팔도구를 떠났다. 춥기는 왜 그렇게 추운지 오돌오돌 떠는 동생들한테 덧저고리를 벗어 씌워주고 캄캄한 밤길에 발구를 몰아가던 그때 일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너희들도 다 그런 고생을 했지.》

장군님께서는 타다만 젖은 나무가지를 우등불에 넣으시였다. 너울거리며 소리없이 우등불은 타고 둘러앉은 대원들은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열두살나이부터 두나라 지경을 넘나드시며 광복의 뜻을 키우신 장군님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자기들이 먹은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지 고국의 하늘쪽을 숙연히 바라보았다.

한참후에 준오가 눈굽을 찍으며 일어나서 청을 드렸다.

《장군님, 압록강을 건느실 때 부르시였다는 <압록강의 노래>를 한번 불러주십시오.》

옆에서도 울먹하며 저마다 같은 청이 담긴 눈으로 자리를 일려 하시는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강민이가 그만하라고 대원들쪽에 눈짓을 해보였다. 그는 어쩐지 오늘밤은 장군님 목소리가 갈리는것만 같은 감촉을 받았다.

대원들은 강민의 눈길을 느끼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그냥 졸랐다.

《너희들의 요구라면 불러야지.》

장군님께서 추억에 잠기신채 노래를 부르시였다.

조용히 부르시는 노래소리가 은은하고 비장한 선률을 타고 준오의 가슴에, 모두의 가슴에 흘러들었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